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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에서 일제강점기 때 이뤄진 피해에 대한 배보상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1년 8월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공개한 고 김학순 할머니의 실명 선언이 이뤄진 뒤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제공

일본 정부는 지난달 20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을 명한 지난해 한국 대법원 판결의 법적 과정을 문제 삼아 중재 요청을 했다. 한편으로는 중재라는 법적 대응을 하며, 다른 한편으론 6월 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한-일 정상회담을 할 수 없다는 자세를 보이며 정부를 수세로 몰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피해자에 대한 배려 없이 강제동원 자체를 부정하고 식민지배와 전쟁동원을 합법적인 것이라 강변해왔다. 또 이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다 끝났다며 외면해왔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대응이 ‘적반하장’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중재 거부가 능사인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일본이 요청한 중재는 1965년 체결된 청구권 협정 제3조 2항에 따른 것이다. 중재 요청 자체는 협정이 정하고 있는 분쟁 해결 절차이므로 나무랄 게 없고 자못 ‘쿨’해 보이기도 한다. 협정상 중재는 사전에 한-일이 양국 간 분쟁이 있을 때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합의한 것이므로 한국의 별도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한국이 응하지 않으면, 국제법의 일부인 청구권 협정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아베 신조 총리가 주장해온 대로 ‘한국은 국제법을 위반하는 국가’가 되는 것이다. 헌법상 문제도 발생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2011년 “청구권 협정에 관한 분쟁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의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하라”고 결정했다.

응할 경우 문제를 어떻게 구성해 중재에 맡길지가 핵심이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 판결에 따른 강제집행의 무효 또는 관련 사법 절차의 무력화를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거꾸로 대법원의 판결을 지켜내야 한다.

중요한 점은 일본의 중재 요청에 응한다 해서 한국이 자신이 생각하는 다른 문제를 중재에 회부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점이다. 묵은 현안들인 위안부, 원폭 피해자, 사할린 억류자, 군인·군속으로 동원된 이들, 비시(BC)급 전범 등의 문제가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인지 물을 수 있다.

결정엔 1~2년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결정이 나오면 그동안 청구권 협정을 둘러싼 많은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한-일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중재의 대상은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분쟁이지 과거사 청산 자체가 아니다. 한국이 이긴다 해도 청구권 협정을 대체하든 보충하든 본격적인 협상과 새로운 조약의 체결을 도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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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법학 박사

이겨야 하지만 질 경우에도 대비하여야 한다. 중재 결정엔 협정상 구속력이 부여되기 때문에 따르지 않으면 협정 위반이 된다. 지게 되면 좁게는 지난해 이후 한국이 취한 사법 절차는 사실상 무효가 되고, 중재 결정에 따른 국내 이행조치를 취해야 한다. 일본 가해 기업이 한국의 재판 절차로 입은 손해가 있다면 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넓게는 강제동원 등 한-일 과거사 문제 전반에 대해 일본에 법적인 배보상을 요구하는 게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식민지 지배 책임을 물을 법적 기반마저 사라질 수 있다. 일본의 역사 인식에 대한 문제 제기는 위축될 것이다.

많은 것이 걸려 있는 중재이지만 비켜 가기는 쉽지 않다. 피해 가기 어려운 중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그리고 한-일 간 ‘과거’ 문제 그러나 현재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는 문제를 마무리 짓기 위해 일본에 지혜로운 ‘역제안’을 해보길 기대한다.

한국이 내놓을 새 중재안엔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해법을 담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일본이 국제법의 장으로 문제를 끌고 간 만큼 관련된 국제법 원칙이 중요하다. 피해자 권리에 관한 국제 인권기준과 과거 인권침해에 대한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 등의 원칙이다. 한-일 간의 역사 인식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진실규명 노력도 함께 하자고 할 수 있다.

한겨레 

☞기사원문: [왜냐면] 일본 중재 요청 거부가 능사 아니다 / 조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