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총경 및 공공기관 임원 승진 예정자들이 경찰대에서 성평등 교육을 받던 중 교실을 이탈하거나, 불성실하게 교육에 임했다는 강사의 글이 큰 반향을 얻고 있습니다. 총경 승진 대상자 51명, 공공기관 임원 승진 대상자 14명을 대상으로 한 치안정책과정 교육 중 교육 대상자들이 교육 내용에 반발하거나, 교육 단축을 요구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인데요, 고위 경찰들의 성평등 교육을 대하는 이러한 태도가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정보공개센터는 논란이 일어난 '치안정책과정'에 대해 경찰대 홈페이지 및 정보공개포털의 원문공개 정보들을 활용하여 조사해보았습니다.

치안정책과정을 소개하고 있는 경찰대 홈페이지

 치안정책과정이란 경찰대에서 경찰 총경 및 승진후보자, 일반부처 서기관, 군 대령, 공공기관 1급 이상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24주 동안 진행하는 교육 과정입니다. 매년 상반기, 하반기로 나누어 2차례 교육 과정을 진행하며, 이번에 논란이 된 기수는 2019년 상반기 교육을 듣고 있는 39기입니다. 정보공개포털에서 39기 교육 대상자들에 대한 분임세미나 평가 계획 문서가 공개 되어 있어, 어떤 주제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지, 참석자들은 누구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찰대 치안정책과정 39기 교육 대상자들의 분임세미나 내용 및 시간표

 흥미로운 것은 경찰 뿐 아니라 일반 부처 공무원들도 교육 과정에 참여한다는 점인데요, 경찰대 정보목록을 통해 살펴본 결과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 도로교통공단, 한국철도공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식품의약품안전처, 한국국토정보공사 등 여러 공공기관들이 교육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교육 대상자들은 공직가치, 전략적사고, 직무역량, 리더십, 인문소양, 글로벌역량 등의 이름으로 848시간에 걸쳐 교육을 듣게 되어 있는데요, 문제가 일어난 성평등 교육 역시 단순한 교양 교육이 아니라 공직가치 교육 과정의 일부에 포함 된 정규 교육 과정의 일부입니다.

 교육 프로그램을 잘 뜯어보면, 일주일 간의 공무국외연수 과정 역시 교육에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보공개포털에서 공무국외연수 계획을 살펴본 결과, 39기 교육생들의 경우 5월 16일 ~ 5월 22일 일정으로 세개 조로 나누어 각각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의 경찰관서에 해외연수를 다녀왔다고 합니다.

 

39기 교육생들의 공무국외연수 일정 계획표

 이렇게 공무국외연수를 다녀오는 경우, 세금으로 연수를 다녀오는 만큼 연수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성평등 교육 등 정규 교육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던 교육생들이 과연 해외연수는 제대로 다녀왔을지 의심이 들어,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에서 경찰대에서 제출한 연수 보고서를 확인해보았습니다. 아쉽게도 문제가 된 39기의 경우 아직 연수를 다녀온지 얼마 안되어 보고서 제출이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를 다녀온 38기 교육생들의 국외연수보고서를 살펴보았습니다.

 2018년 11월, 경찰대 치안정책과정 38기생 18명과 경찰대학장 등 인솔단 3명을 포함한 21명의 연수 참가자들이 이탈리아 로마, 피렌체 등을 다녀왔습니다. 연수 보고서는 '자치경찰제 시행 대비, 경찰 기관간 협업 강화 시사점'과 '이탈리아 주요 교통기관별 교통정책과 시사점'이라는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보고서를 찬찬히 살펴보니, 보고서 내용 중 상당 수가 다른 공공기관의 보고서를 표절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의 교통정책을 다룬 두번째 파트의 보고서는 2008년 경기도 공무원들이 작성한 , 2017년 도로교통공단에서 작성한 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짜깁기한 내용이었습니다.


좌측이 2018년 작성된 경찰대 보고서, 우측은 2008년 작성된 경기도 보고서

로마시 교통정책에 대한 내용은 토씨하나 다르지 않고 10년 전 경기도 교통국이 작성한 보고서의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10년 전 보고서를 가져오다보니 대중교통 현황이 달라졌을 것을 우려해서인지, 버스 노선 수나 트램, 지하철 킬로 수 등의 통계는 빼놓았습니다.

2018년 경찰대 치안정책과정 보고서

2017년 도로교통공단 보고서

위쪽 사진이 경찰대 보고서, 아래쪽 사진은 도로교통공단이 2017년에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이탈리아 고속도로에 대한 설명 역시 사진 자료까지 도로교통공단에서 작성한 연수보고서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왔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8년 경찰대 치안정책과정 보고서

2008년 경기도 교통국 보고서

보고서는 단순히 기관 현황, 정책 내용 등 일반적인 서술들에 대한 정보만 표절한 것에 그치지 았습니다. 연수자 본인의 관점에서 적어야 할 시사점 내용 역시 10년 전 보고서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다녀온 경기도 교통국의 보고서에서, 네덜란드라는 글자만 뺀 수준의 보고서입니다.

좌측이 경찰대 치안정책과 보고서, 우측 위편이 경기도 교통국 보고서, 우측 아래편이 도로교통공단 보고서

보고서의 마지막 페이지인 '결언'에 이르면 더욱 가관입니다. 한 페이지에서 두 보고서의 내용들을 반반씩 가져와 짜깁기했습니다. 물론 경기도 보고서에서 '네덜란드'라는 글자를, 도로교통공단 보고서에서 '영국'이라는 글자를 빼놓긴 했습니다.

경찰대학 학장까지 동행한 해외연수에서, 고위 공직자인 경찰서장과 공공기관 기관장 예정자들이 작성한 연수 보고서가 이렇게 표절 범벅이라면 도대체 어디서 준법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경찰대 치안정책과정 자체가 고위 경찰 공직자들의 교육을 위해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고, 해외연수 역시 당연히 세금이 투입되는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정규 교육 과정을 이탈한다거나, 보고서를 표절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평등 교육을 "빨리 끝내라"는 경찰들의 발언이나, 해외연수 보고서를 표절로 발표하는 몰지각한 행각들을 살펴보면 교육 대상자들이 경찰대학의 교육 과정을 공직자로서 본연의 의무를 되새기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기회로 생각하기 보다, 단순히 다음 임지로 나아가기 전에 적당히 놀면서 휴식을 취하는 시기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경찰대학부터, 제대로 프로그램을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무엇보다도 우선, 문제의 39기 교육생들이나 보고서를 표절한 38기 교육생에 대한 엄중한 주의와 처벌이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