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민지 독재정치하에서 썩어빠진 언론
- 언론과의 숙명적인 대척
지난 2007년 3월, 임기를 1년 남짓 남겨둔 고 노무현 대통령이 쓴 친필 메모 내용이다.
뉴스타파는 이처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직접 작성한 친필 메모 266건을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했다.
작성 기간은 2003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다. 정상회담, 정부 부처 업무보고, 각종 위원회 회의, 수석보좌관 회의 도중 노무현 대통령이 메모지에 직접 쓴 글이다. 참여정부 시절 주요 정책 현안이나 정국 흐름과 관련한 노 전 대통령의 의중과 심경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뉴스타파, 정보공개청구 통해 노무현 대통령 친필메모 266건 입수
뉴스타파는 이 기록을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했다. 대통령기록관은 지난해부터 노무현 대통령 관련 기록물을 재분류 심의한 뒤 공개 가능한 기록물을 차례로 공개하고 있다. 올해 1월 26일 대통령기록관이 공개 대상으로 분류한 노무현 대통령 기록물 2만 223건 중 대통령 친필 메모는 266건으로 확인됐다. 대통령이 남긴 친필 메모도 대통령실 기록관리비서관실에서 수집해 대통령기록물로 보존하고 있다.
대통령의 의중, 단상 읽을 수 있는 ‘친필메모’ 기록 가치 높아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남긴 친필 메모의 기록적 가치는 특별하다. 친필 메모는 대통령 생각의 단편만을 알 수 있는 제한적 기록이다. 따라서 일반 연설기록물처럼 완결성을 갖추지 못한 한계는 있다. 하지만 서명만으로 이뤄진 재가 기록, 즉 대통령 결재 기록물과 달리 주요 국정 현안이나 핵심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고민과 심경이 여과없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진한 대통령기록관리 전문위원은 “업무보고나 회의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여러 가지 메모를 남겼기 때문에 이 메모를 보면 당시에 중요한 정국마다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됐는지를 엿볼 수 있어, 친필 기록은 굉장히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메모광’이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수시로 메모를 작성했다고 한다.
대통령님이 메모광이셨어요. 제가 부속실장 할 때 저녁 9시에 퇴근하고 다음 날 아침 7시쯤 관저에 다시 올라가면 9시 뉴스를 보다가 메모한 거, 뒷주머니에서도 1장, 와이셔츠 앞주머니에서도 1장, 이렇게 7, 8장이 나와요.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 떠오르면 메모해서 다음 날 아침에 저희가 출근했을 때, 이런 아이디어는 어떤지 검토해 봐라.
‘메모광’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친필 메모에는 그가 정책 추진 과정에서 마주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고뇌하는 모습이 배어난다. 김종민 의원(참여정부 대변인)은 이 친필 메모를 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바로 옆방에 계시는 것 같다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언론과의 숙명적인 대척”...언론 관련 친필 메모도 여럿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친필 메모 가운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국 언론, 특히 극우보수 언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메모도 여러 건 발견됐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 5년 내내 기득권을 대변하는 극우보수 언론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대표적인 게 2007년 3월 작성한 친필 메모다. 수석보좌관 회의 도중,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과의 숙명적인 대척”이라는 문구를 남긴다.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각종 개혁을 추진하던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기득권 편에 선 언론과의 긴장관계가 불가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참여정부가 하고자 했던 사회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언론과의 대척을 피하기는 어려웠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 임기 5년간 기득권 편에 선 언론과의 긴장관계는 불가피했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끝없이 위세를 과시한다. 모든 권위를 흔들고 끝없이 신뢰를 파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해놓고 막상 추진하면 흔든 것도 한 둘이 아니다.”라는 메모를 남겼다.
2007년 3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식민지 독재정치하에서 썩어빠진 언론”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메모를 남겼다. 윤태영 전 대변인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과 ‘긴장 관계’를 지향했다고 말했다. 윤 전 대변인은 “대통령 권력도 강한 권력이지만 언론 권력도 굉장히 강한 권력이다. 이 강한 권력 둘이 유착하거나 결탁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차라리 거기에 긴장관계를 갖고 있어야 우리도 몸가짐을 똑바르게 하고, 긴장관계에 서 있을 때 똑바르게 할 수 있다는 대통령의 소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대통령 친필 메모를 통해 사학 개혁과 사교육 및 부동산 문제 해법, 학벌 사회와 연고 사회 관련 노 전 대통령의 단상도 읽어낼 수 있다. 또 ‘이단아’, ‘주변인’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득권 세력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친필메모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뉴스타파는 노 대통령의 필사로 불리는 윤태영 전 대변인, 김종민 전 국정홍보비서관, 임상경 전 기록관리비서관 등 참여정부 주요 관계자들과 언론, 부동산, 교육 전문가들을 만나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친필메모 266건의 맥락과 의미를 취재했다.
평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성공한 정책기록만 남겨선 안된다. 모든 기록은 남겨야 된다. 선별적으로 이관하고 기록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공적인 기록으로 넘기고 보존하는 것은 참여정부의 몫이고 그 기록을 통해 정책을 평가하거나 참여정부를 평가하는 것은 후대의 몫이다라는 말씀을 여러차례 하셨습니다.
친필메모 266건 원문, 뉴스타파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
뉴스타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친필메모 가운데, 올해 1차로 공개된 266건 전체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
취재 박중석, 최윤원
데이터 최윤원,임송이
촬영 정형민, 최형석, 오준식, 신영철, 이상찬
편집 정지성 김은
CG 정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