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권리라는 말이 다시
한 번 정치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고초를 겪고 있다
. 사정인즉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한미 정상간
통화내용을 누설한 것에 대해 스스로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밝힌 내용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정부와 여론은 강효상
의원의 행동이 외교기밀누설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 그러면 강효상 의원의 행동은 정말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것이었는지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

사건은 지난 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 의원은 갑작스럽게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기자 회견의 정확한 목적도 무엇이었는지 상당히 모호하기는 한데
, 일단 기자회견에서 나온 강 의원의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첫째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이 5
25~28일 일본을 국빈 방문할 예정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대북문제와 관련해 잠깐이라도 한국을 방문해달라고 요청하고 설득했다
.

둘째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흥미로운 제안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일정이 바빠 문 대통령을 만난 후 즉시 떠나야 한다고 반응했다
.

셋째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단독 방한 제안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이 거절하는 답을 보냈다.

즉 문재인 대통령은 안보 현안인 북한문제의 진전을 보기 위해 동맹 정상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회담을 요청했다. 마침 5월 말에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 예정되어 있어 회담이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 또한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대북 초강경론자 인
것을 감안하면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는 볼턴의 단독 방한으로 북한문제에 대한 진전이 어렵다고 판단이 될 수도 있었기에 볼턴의 단독 방한 제안 거절도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 일 수 있다
.

이처럼 강 의원의 기자회견을 통해 드러난 내용은 사실 지극히 정상적인 국가 정상간 전화통화여서 여기에 도무지
어떤 알권리가 요청되었는지 의문이다
. 즉 이게 무슨 기자회견 거리가 되는지 반문이 필요한 정도라는 말이다. 다만 우리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나경원 원내대표가 23
이를 두고
구걸외교’라고 평하는 것을 미루어 보아, 아마도 강 의원이 가졌던 기자회견은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 방문을 요청했으나 트럼프 대통령 일정이
여의치 않아 시원찮은 대답을 들은 것을 두고
굴욕적이라고
폄하하기 위한 다소 단순한 모욕 목적이었던 듯 하다
. 한데 대다수 국민들은 정작 어느 대목에서 굴욕을
공감해야 할 지는 전혀 모르고 이 기자회견에 관한 뉴스를 흘렸을 것이다
.

허나 정작 문제는 강 의원 기자회견 이후부터 불거졌다. 강 의원의
기자회견 직후 청와대는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강 의원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확정된 바가 없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 또한 이러한 근거 없는 주장에 대해서 강 의원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정부의 대응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정부는 22일 강 의원의 고등학교 후배인 외교관(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공사참사관) A씨가 강 의원 측에 한미 정상간 통화내용을 유출한 사실을 적발해 외교부 징계절차와 함께 형법 제113의 외교상기밀누설죄 위반으로 법적 대응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에 따르면 국가 정상간 통화내용은 3 비밀(보안업무규정 제4조의 3)이며, 특히 해당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 방한 뿐 아니라 북한 단거리 발사체, 대북
식량지원 문제 등 주요 안보사항들이 언급되었다고 한다
. 언뜻 보기에도 강 의원이 누설한 한미 정상간
전화통화 내용은 외교상기밀에 포함될 확률이 매우 높다
. 우선 두 정상 간 통화 자체가 공개가 전제되지
않았던 비공개 대화이며 이 대화의 내용이 두 정상 중 어느 한 쪽 정부에 의해서 발표되지도 않았으며
, 어떤
언론에 의해서도 사전에 보도되지 않았기 때문에 행정적이든 실질적이든 외교상 기밀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또한
통화내용이 의도치 않게 공개됨으로써 향후 미국과의 외교 및 신뢰관계와 가장 중요한 안보 현안인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여지가 크다
.

외교안보기밀을 누설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사진: 오마이뉴스)

상황이 이렇게 생각보다 심각하게 돌아가자 강 의원은 다급하게 국민의
알권리’
라는 방패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알권리는 집어 들기만 하면 무엇이든
방어할 수 있는 만능 방패는 아니다
. 알권리는 다소 복잡한 권리 개념이다. 알권리는 여러 국가에서 알권리 자체로 기본권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한국의 경우 헌법재판소 판례
통해 제
21조가 규정하는 표현의 자유와 본질적 상호관계의 권리 개념으로서 중요한 기본권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모든 기본권이 그렇듯 알권리도 일정한 조건 하에서 제한된다. 국가안보, 국민의 안전, 사생활 비밀의 보호,
사회 또는 시장 질서의 유지 등 알권리의 추구가 이와 같은 공익을 침해할 경우에 법률과 절차를 두어 알권리를 일정 부분 제한 할 수
있다
. 이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외교 및 군사 기밀이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 전화통화 간 국익을 배신하는 언행으로 국민을 기망하고 강 의원이 오로지 공익을
위해 그것을 폭로했다면 알권리라는 방패는 강 의원을 보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 하지만 어떠한 공익적
추구도 없이 그저 현 정권을 근거 없이 깎아내려 그 반사이익을 취하기 위해 기밀까지 서슴없이 누설하는 국회의원과 정당이
국민의 알권리를 입에 담는 것은 국민과 알권리에 대한 지나친 결례가
아닐까
.

*이 글은 팩트체크전문 매체 <뉴스톱>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