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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후쿠시마로 이어진 핵발전소 사고의 비극을 이제 끝내야 합니다
No more Chernobyl! No more Fukushima! No more Nuclear!
[caption id="attachment_198874" align="aligncenter" width="640"]http://kfem.or.kr/wp-content/uploads/2019/04/p사본-IMG_0082-640x360.jpg" alt="" width="640" height="360" /> ⓒ환경운동연합[/caption]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시민방사능감시센터 등 19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탈핵시민행동(준)은 2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체르노빌, 후쿠시마로 이어진 핵발전소 사고의 비극을 이제 끝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1986년 4월 26일, 구소련의 체르노빌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33년이 흘렀습니다. 사고가 있고 벌써 한 세대가 지났지만, 아직도 체르노빌 반경 30km 이내는 출입이 통제되고 있습니다. 체르노빌 지역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현장에 뛰어든 소방관·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인근 지역주민들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로 소중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난 지 한 세대가 지났지만, 지금도 체르노빌 지역주민들은 각종 암과 건강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98877" align="aligncenter" width="640"]http://kfem.or.kr/wp-content/uploads/2019/04/p사본-IMG_0098-640x360.jpg" alt="" width="640" height="360" /> 기자회견에 앞서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환경운동연합[/caption]
이는 2011년 사고가 일어난 일본 후쿠시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고가 일어난 지 8년이 지났지만, 사고 수습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녹아버린 핵연료의 상태 파악도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이며, 폭발한 원자로를 냉각시키기 위해 쏟아부은 냉각수는 계속 넘쳐나고 있습니다. 인근 지역의 땅과 농수산물은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있으나 일본 정부는 추가로 냉각수를 바다로 버리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
핵발전의 비극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같은 대규모 핵사고로 끝나야 합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핵발전을 멈춰야 합니다. 핵발전을 계속한다면 그만큼 사고 위험은 커집니다. 또한 핵발전을 진행하면 할수록 핵폐기물이 늘어납니다. 최소 10만년 이상 보관해야하는 고준위핵폐기물은 아직 안전하게 처분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동안 전 세계 각국 정부와 핵산업계는 핵발전소를 늘려왔고, 핵발전의 비극은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핵산업계가 갖고 있던 각종 비리가 하나씩 밝혀졌습니다. 시험성적서를 위조하고, 엉터리 케이블이나 부품을 납품하는 일이 매우 광범위하게 벌어졌습니다. 최근에는 핵발전소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콘크리트 격납건물과 격납철판에서 대규모 구멍이 발견되어 국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핵발전소가 밀집된 동해안에서는 연일 지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소 건설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핵산업계에서는 각종 가짜뉴스를 앞세워 이미 백지화된 신울진(신한울) 3, 4호기 건설을 재개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정부 역시 외국에 핵발전소 수출을 추진하고 있거나, 핵추진 잠수함이나 쇄빙선 등을 개발하기 위한 계획을 계속 추진하며 핵산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인류 전체에게 뼈아픈 교훈을 안겨줬습니다. 인류와 핵에너지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핵발전을 비롯한 핵에너지 이용을 계속한다면, 인류는 또 다른 사고를 겪게 될 것입니다. 체르노빌 33주기를 맞은 오늘, 우리는 이 안타까운 교훈을 잊지 말고, 하루빨리 핵발전소 없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촉구합니다. 사고가 일어난 이후 후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입니다.
2019.4.26.
탈핵시민행동(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녹색당, 녹색연합, 대전탈핵희망,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 불교환경연대,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정의행동, 영광핵발전소안정성확보를위한공동행동, 정의당, 탈핵경주시민행동, 탈핵전북연대, 천주교예수회 사회사도직위원회, 한국YWCA연합회, 한살림연합, 핵없는세상고창군민행동, 핵없는세상광주전남행동, 환경운동연합
《체르노빌의 목소리》 소개
[caption id="attachment_198880" align="aligncenter" width="640"]http://kfem.or.kr/wp-content/uploads/2019/04/p사본-IMG_0122-640x360.jpg" alt="" width="640" height="360" /> ⓒ환경운동연합[/caption]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산드로브나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벨라루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그는 민스크에 있는 벨라루스 국립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지역 신문사와 문학 예술잡지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소련-아프칸 전쟁, 소련 붕괴, 체르노빌 사고 등 극적인 사건을 겪은 목격자들과의 인터뷰를 기술했다. 10년 넘게 집필한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1997년 처음 출간되었다. 2008년 개정판에는 검열 때문에 초판에서 제외되었던 인터뷰가 새로 더해졌다.
《체르노빌의 목소리》에는 소방대원의 아내, 심리학자, 마을 주민, 군인, 엄마, 고멜 국립대학교 교수, 해체작업자, 사냥꾼, 카메라 감독, 마을 간호장, 교사, 기자, 벨라루스 의원, 역사학자, 당 지역위원회 서기관, 과학 아카데미 핵에너지 연구소장 등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독일어 등 전 세계 1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저자는 2006년 미국 비평가협회상과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발췌
이제는 의사가 남편이 죽어가는 여자에게 위로의 말 대신 이런 말을 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됩니다! 입 맞추면 안 됩니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사선 오염 덩어리입니다.” 이런 대사는 셰익스피어도, 위대한 단테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다가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입을 맞춰도 될까 안될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한 여성은, 게다가 때마침 임신 중이었던 이 여성은 다가가 입 맞추고, 남편이 죽을 때까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에 대한 대가로 자신의 건강과 아기를 바쳐야 했다. 사랑과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하는 기분이 어땠을까? 과거와 낯선 현재 사이를 오갈 때는? 한편 죽어가는 남편과 아들의 곁을 지키지 않은 아내와 어머니들을 비난할 용기 있는 사람은 있는가?- 저자의 독백 인터뷰(20p)
기억하는 것, 기억에 남는 것이 뭐냐고?
매일 방사선 선량기사와 함께 마을을 돌아다녔다. 사과라도 대접하는 아주머니가 한 명도 없었다. 남자들은 덜 무서워해서 사모곤과 훈제비계를 가져와 “같이 드십시다”라고 했다. 거절하기 미안하지만, 세슘 덩어리를 먹기 싫었다. 술은 받았지만, 안주는 안 먹었다. ...(중략) 한 마을에서는 결국 식탁 앞에 억지로 앉았다. 구운 양고기였다. 집주인이 한 잔 걸치더니 털어놨다. “어린 양고기야. 보기가 힘들어서 잡았어. 얼마나 못생겼던지 먹기도 싫네.”나는 사모곤 한 잔을 털어 넣었다. 주인이 웃는다. “콜로라도 감자잎벌레처럼 여기 사는 게 익숙해졌어.” 집 건물로 방사선 측정기를 갖다 대니 기계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치를 넘어버렸다.- 군인의 합창(119p)
갈까, 말까? 날아갈까, 말까? 나는 공산당원인데 어떻게 안 갈 수가 있었나? 조종사 두 명이 아직 아내가 젊고 아이가 없다면서 거절했다. 그러자 그들에게 무안을 줬다. 이제 일 못 할 줄 알아! 그리고 남자가 아니라고, 양심도 없다고 정죄했다. 열정이 없다니! 그는 없지만 나는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아홉 차례 수술과 두 번의 뇌출혈 후에, 이제는 아무도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젊은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의 입장이라면 그래도 갔을 것이다. 그런 분명하다. 그들은 못 갔지만, 나는 갔을 것이다. 남자답게!
위에서, 하늘에서 헬기의 수를 보고 놀랐다. 대형 헬리콥터, 중형 헬리콥터, MI-24! 이건 군사용 헬리콥터였다. 체르노빌에서 군용 헬기로 무엇을 했을까? MI-24는 왜 거기에 있었을까? 조종사들 젊은 친구들은 원자로 옆 숲에 서서 자신이 받은 방사선 수치를 자랑했다. 명령이었다! 군대 명령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을 보내 피폭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도대체 왜? (소리친다) 정말 필요했던 건 무조건 많은 인원이 아니라 전문가였다. 위에서는 보였다. 무너진 건물, 쓰레기 더미,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중략)...
나는 모든 것을 머리에 새겼다. 아들에게 이야기해 주려 했다. 집에서 아들이 물었다. “아빠, 거기 어땠어요?” “전쟁이야.” 다른 말을 찾지 못했다.- 군인의 합창 (131p)
병원에 입원했어요. 정말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부탁했어요.
“엄마, 나 못 참겠어요. 그냥 죽여주세요!”- 어린이 합창(379p) / 알료샤 벨스키 9세
엄마랑 아빠랑 뽀뽀하고 내가 태어났어요.
옛날에는 내가 절대로 안 죽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죽을 거라는 거 알아요. 나랑 같은 병실에 있던 남자애가 있어요. 이름은 바딕 코린코프였어요. 나한테 새 그림을 그려줬어요. 그 애는 죽었어요. 죽는 건 안 무서워요. 그냥 오래오래 잠자고 안 깨는 거예요. 바딕이 나한테 말해줬어요. 자기가 죽으면, 다른 데서 오래 살 거라고 했어요. 바딕은 다른 형들한테 들었대요. 걔는 안 무서워했어요.
내가 죽는 꿈을 꿨어요. 엄마가 우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깼어요. - 어린이 합창(379p) / 올라 즈보나크 10세
내 가장 친한 친구는 안드레이였어요. 안드레이는 수술을 두 번 받고 집에 갔어요. 반년 후에 세 번째 수술하기로 했어요. 안드리이는 자기 허리띠로 목을 매었어요. 모두 체육 수업에 가고 없는 텅 빈 교실 안에서. 의사 선생님께서 안드레이한테 뛰지도, 달리지도 못하게 하셨는데, 안드레이는 학교에서 축구를 제일 잘했어요. 수술, 수술 전까지는....
여기에는 친구가 많이 있었어요. 율랴, 카타, 바딤, 옥사나, 올레크, 그리고 지금은 안드레이. “우리가 죽으면 학문이 될 거야” 안드레이가 말했어요. “우리가 죽으면 다 우리를 잊을 거야.” 카탸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죽으면 무덤에 묻지 마. 나는 무덤이 싫어. 거기에는 죽은 사람이랑 까마귀밖에 없잖아. 나는 들판에 묻어줘.” 옥사나가 부탁했어요. “우리는 죽을 거야....” 율랴가 울었어요.
이제 하늘을 보면 하늘이 살아 있어요. 내 친구들이 거기에 있으니까.... -어린이 합창(390p) / 보리스 시키르만코프 1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