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군부 일당이 쿠데타를 일으킨 지 40년이 돼 간다. 5∙18민주화운동도 39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전두환 세력이 남긴 흔적을 아직 지우지 못했다. 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찾는 노력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가해자로 지목된 전두환쿠데타의 잔당들은 이미 법적, 역사적 평가가 끝났음에도 전두환 정권을 미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뉴스타파는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전두환 쿠데타의 잔재를 찾아봤다.
경남 산청 간디고등학교에서 21년째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최보경 교사. 그는 2008년 여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반국가단체를 찬양, 고무하는 내용의 수업교재를 만들어 학생들을 선동했다는 등의 혐의였다. 검찰은 최 교사가 교재로 쓰기 위해 만든 역사책 3권을 포함해 그의 강의교재 대부분을 문제삼았다.
그런데 검찰이 문제삼은 내용 중엔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내용도 있었다.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이 만들어 배포한 ‘시민궐기문’, ‘오월의 노래’의 가사를 교재에 적었는데, 이것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이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광주민주화운동 시 계엄군에 대한 악랄한 모략을 사실시하는 한편…”
검찰 주장은 뭐였냐면 광주시민궐기문이나 오월의 노래 가사가 ‘유언비어를 사실인 것처럼 기재해서 학생들을 의식화시켰다. 반미교육을 했다’는 거였어요. 공소장에 그렇게 나와 있어요.
검찰이 최 교사를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한 2008년은 5·18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지 11년이나 지난 때였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사망한 계엄군 묘지 일부가 있다. 취재진은 계엄군의 묘비에서 ‘1980년 5월 22일, 광주에서 전사’ 같은 내용의 글귀를 확인했다. 광주 학살 책임을 물어 전두환 일당을 사법처리한 지 20년도 더 지났지만, 전두환 정권 당시 광주시민을 적으로 규정해 세운 묘비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현충원 묘비와 교사 최보경을 재판에 넘긴 검찰의 공소장. 이 두 개의 기록은 전두환의 잔재가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말없이 보여준다.
전두환 쿠데타 세력이 대한민국 곳곳에 남긴 흔적은 상상한 것 이상이다. 뉴스타파는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국방위원회)과 함께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전두환 쿠데타의 잔재들, 특히 군기록을 확인해 봤다.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됐던 여러 군부대내에 설치된 각종 조형물, 군 내부에 남아 있는 전두환과 5·18관련 흔적들을 국방부가 현지 조사해 만든 문서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자료 곳곳에서 전두환시대의 흔적이 확인됐다. ‘80년 5월 27일 광주소요진압 시 전사’, ‘대침투작전 중 전사’, ‘선진 조국의 선봉 대통령 전두환’ 같은 글귀들이 아직도 군 내부 추모비나 조형물 등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군 기록에 아직도 5∙18민주화운동을 대침투작전이라고 적고 있다거나, 계엄군 사망자들이 전사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국민을 적으로 본 전두환 시대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겁니다.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부분은 후세를 위해서라도 기록을 정확히 재정리 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은 최보경 교사는 8년만에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을 받는 사이 유치원생이던 두 딸은 중학생이 됐다.
처음 사건이 시작될 때 제 두 딸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죄받을 때 큰 딸이 중학교 3학년이었어요. 재판을 받는 8년간 평범했던 일상생활이 망가졌습니다. 딸들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최보경 교사가 정리해 둔 8년간의 재판기록에는 1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제자들이 1000일 넘게 릴레이단식을 하며 한줄 한줄 써 내려간 손편지 모음도 여러 권 들어 있었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글, 선생님을 응원하는 내용, 단식을 힘들어 하며 적은 장난스런 낙서 등을 담은 기록이다. 최 교사는 제자들이 쓴 글 하나하나가 무엇보다 강한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고 말했다.
역사를 후퇴시키려는 검찰의 주장을 무력화시켜야 한다고 처음부터 생각했습니다. 공소장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야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고통스런 과정이었지만, 제자들이 쓴 글을 보면서 이겨낼 수 있었고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노력해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취재: 한상진 홍여진 박경현 강민수 강현석 강혜인
촬영: 최형석 정형민 신영철 오준식
내레이션: 조경아
데이터: 최윤원 김강민
편집: 정지성 김은
CG: 정동우
디자인: 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