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오늘(5월 13일) 무려 9개월 동안 진행된 전국 각 대학의 가짜학회 실태 조사와 이에 따른 징계 결과를 발표했다. 와셋과 오믹스 등 가짜학회에 참가한(지난 5년) 대학교수 5백여 명이 징계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징계수위는 대부분 하나 마나 한 주의, 경고 등에 그쳤다. 이런 결과는 각 대학에게 소속 교수와 연구원 등의 가짜학회 참여 실태를 자체 조사해 징계하도록 교육부가 지시했을 때 이미 예견된 일이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의 ‘가짜학회’ 보도와 관련해 교육부는 지난해 8월 국내 4년제 대학과 대학원대학 237곳을 대상으로 최근 5년간 소속 연구자와 교원의 해외 가짜 학술대회 참석 내역을 자체 조사하도록 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를 보면 교육부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선에서 각 대학이 자체 인사 내규에 따라 징계 기준을 정해, 징계 대상과 수준이 매우 느슨하게 나왔다. 결국 ‘셀프 조사’가 ‘제 식구 감싸기’로 이어졌다는 비판을 교육부와 각 대학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짜 해외학회' 참가자 징계 천차만별…반복해 가도 ‘면죄부’
교육부는 13일 자체 조사를 실시한 237개 대학 중 90개 대학 소속 교수와 연구자 574명이 최근 5년 동안 와셋과 오믹스 등 가짜 학술단체에서 운영하는 해외 학술대회에 참석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가 연구비나 학교 자체 예산으로 모두 808회에 걸쳐 가짜 해외학술대회에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1회 참석자는 455명(79%), 2회 이상 참석자는 119명으로 집계됐다. 11번이나 간 사람도 있었다.
가짜학회 참석자 574명 가운데 79%에 이르는 452명이 주의·경고, 76명은 경징계였고, 6명만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40명(7%)은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다.
가짜학회 참가 횟수가 2번 이상이지만 징계 수위는 대학마다 다른 것도 이번 조사와 처벌의 허점이다. 교육부 발표를 보면 주의·경고를 받은 452명 가운데 413명(91%)은 가짜 해외학술대회에 한번 참석한 사람들이지만, 2회 이상 참가한 교원도 39명이나 됐다. 강릉원주대, 국민대, 고려대, 경북대, 경상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등이 2회 이상 참가자에게도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들어 인사상 불이익이 없는 경미한 처분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대, 서울시립대는 2회 이상 참석 교원을 대상으로 주의·경고 처분만을 부과한 이유로 가짜학회 발표를 바탕으로 추후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과학인용색인(SCI)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성과를 올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연구 성과 문제가 아닌 연구 윤리 문제인 가짜학회 사태의 본질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부족하다. 또한 가짜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국책연구비를 부당하게 사용한 사실도 지워지지 않는다.
강릉원주대, 경상대 등 일부 국립대와 가톨릭대, 아주대 등 사립대는 대학 자체 재원으로 가짜학회에 참석한 경우는 2회 이상이라도 주의·경고 처분만 내렸다고 해명했다. 정부 연구비가 아닌 대학 재원으로 참석했다는 이유로 교수들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준 것이다. 하지만 대학 재원도 결국은 학생 등록금과 정부 지원으로 마련되는 공적자금이다.
고려대는 "소명서 심의 결과 학술활동 성실성을 참작"했으며, 경북대와 성균관대는 "징계시효가 지났다”는 해명을 교육부에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부산대, 서울대, 전북대 등은 2회 이상 가짜학회에 참가한 소속 교원 72명에게 고의성이 있다고 보고 경징계 이상의 인사처분을 내렸다.
소속 교원이 가짜학회에 참가한 기록이 드러났지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대학도 많았다. 고려대, 전남대, 제주대 등은 가짜학회 1회 참여 교원에게는 아예 주의·경고 처분조차 내리지 않았다. 전남대 측은 “서면 및 대면 감사 결과 고의성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징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고려대는 취재진의 질의에 답변하지 않았다.
세종대는 2회 이상 참여한 교원 1명에게도 징계시효가 지났다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전국 대학 가운데 가짜학회 참석 교원 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된 서울대(42명)는 1회 참석 교수 37명에게 주의·경고 조치를, 2회 이상 참석한 교수 4명에게는 경징계를 내렸다.
와셋 참석 횟수 상위 교원이 여러 명 나온 강릉원주대의 경우 1회 참석자 전원과 2회 이상 참석자 중 일부를 대상으로 주의·경고 조치만 했다. 강릉원주대 관계자는 국가 연구비가 아닌 대학 재원으로 가짜학회에 참석했기 때문에 이런 처분을 내렸다고 해명했다.
가짜학회에 7번 이상 참가한 교원은 모두 7명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5명은 보직 면직, 정직 등의 중징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나머지 2명은 견책 등의 경징계만 받았다. 이 2명이 소속된 강릉원주대 측은 징계시효가 지난 케이스라 경징계 처분을 했했다고 교육부에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셀프조사’ 한계 우려가 현실화… ‘솜방망이’ 징계에도 속수무책
13일 발표된 가짜학회 조사 및 징계 결과는 지난해 교육부가 가짜학회 관련 대책을 내놨을 때 제기됐던 ‘셀프 조사’ 우려가 그대로 현실화된 모양새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합동으로 진행한 가짜학회 참석 연구자 조사 및 징계 계획 발표에서 대학 자체 징계 계획을 제출받은 후 조사와 징계 판단 과정이 성실하지 못하다고 판단될 경우 재조사 및 재평가하도록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교육부 학술진흥과 윤소영 과장에 따르면 학계 전문가들과의 논의 결과 교육부가 재조사와 징계 재심의 명령을 내리는 것은 대학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났다고 한다. 따라서 교육부는 지침만 내놓고 대학이 자율적으로 조사 및 징계 심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윤 과장은 “교육부가 전체 징계 데이터를 공개하면 각 대학이 다른 대학의 징계 수위를 보고 느끼는 바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대학별 징계 처분과는 별도로 가짜학회 참가 교원들을 대상으로 국가 연구비 회수 절차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가짜학회 참가에 국책 연구비를 사용한 경우 1회 참가라도 회수 대상이다. 교육부는 특히 2회 이상 참가자에겐 가짜학회 출장비 회수 뿐만 아니라 해당 교원이 받아 사용한 국가 연구비 내역 전체를 정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 김지윤 홍우람 신우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