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유전자치료제, 획기적 신약, 세계 최초 퇴행성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지난 2017년 7월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국내 29호 신약으로 등장했던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케이주(이하 인보사)가 허가 1년여 만에 제조와 판매가 중지됐다. 인보사의 주 세포가 허가상 나와 있는 유전자 도입 연골유래세포가 아닌 신장유래세포라는 사실이 미국 내 임상시험 과정에서 확인되면서다. 신장유래세포는 무한증식 세포로 치료제로서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다. 현재까지 인보사 주사를 맞은 국내 환자는 3,400명이 넘는다. ‘제2의 황우석 사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인보사 개발 과정에 지난 20년간 막대한 정부예산이 지원됐다는 사실이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국가R&D 사업내역이 공개돼 있는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 사이트를 통해 지난 2002년부터 코오롱과 관련 연구기관 등에 인보사 개발 명목으로 투입된 정부 예산을 전부 찾아봤다. 그 결과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서 인보사의 제품화와 상용화, 품목 승인 신청과 연골세포 대량배양 시스템 개발 등의 사업에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수십억 원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합하면 139억 원이 넘었다. NTIS엔 2002년 자료부터 공개돼 있기 때문에 코오롱 측이 인보사 개발을 시작한 1999년부터 지원된 예산까지 합하면 전체 정부지원금액은 139억 원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별도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펴낸 2018 첨단바이오의약품 산업 백서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7년 사이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 연구개발에 정부 예산이 82억 1천만 원 지원됐다. 전체 인보사 연구개발비용 154억 4천만 원의 절반 이상이 정부지원금액이었다. 반면 같은 백서에 소개된 다른 국내 허가 신약 개발비는 민간 투자 비용이 정부 지원 규모보다 컸다. 즉 인보사의 경우 정부지원금 자체가 다른 신약에 비해 훨씬 많았고, 정부 지원 비중도 높았다.
“막대한 세금 들어갔으나 제대로 된 검증은 없었다”
시민단체들은 인보사 개발 과정에 막대한 국민 세금이 들어갔으나 신약 허가 과정에 제대로 된 검증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지난 4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인보사 관련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인보사가 2002년부터 보건복지부의 신약개발사업 등 정부의 여러 지원사업을 통해 지속적인 지원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지원이 끝날 때마다 아무도 검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인보사 허가 당시 면밀한 검증보다는 신약개발 지원 실적을 홍보하기 바빴다. 당시 식약처가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식약처가 첨단바이오의약품의 신속한 제품화를 돕는 이른바 ‘마중물’ 사업을 통해 품질관리 기준 설정 등을 밀착상담했고, 인보사 개발 과정 중 시행착오를 최소화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정부의 막대한 예산 지원과 이른바 밀착 관리까지 받았다는 인보사가 결국 제조, 판매 중지됐으나 개발에 투입된 국민 세금 회수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태다. 정부가 지원한 인보사 연구개발비 회수 여부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뉴스타파에 “식약처 조사 결과를 기다려 보겠다”고 밝혔다.
신약허가 검증역량 투자는 뒷전.. 검증시스템 부족이 인보사 사태 불렀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2016년에 발표한 ‘신약개발 분야 정부/민간 R&D 역할조정을 통한 효율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4년 사이 우리 정부가 신약개발 분야에 투입한 돈은 모두 1조 7,423억 원이다. 한해 평균 2,500억 원 규모다.
그러나 정작 신약 허가 여부를 검증하는 식약처의 전문 인력과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신약 허가 관련 업무는 크게 늘고 있지만, 이를 검증할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지난 2018년 국정감사 때 이미 제기된 바 있다.
실제로 미국 FDA 의약품평가센터(CDER) 인력은 4,300명이다. 반면 현재 우리 식약처에서 바이오의약품 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48명, 계약직 등 비정규직으로 심사관을 맡고 있는 인력은 40명에 불과하다. 의약품 전체 허가담당 공무원은 73명, 심사관은 86명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심사관은 신약허가를 신청한 기업이 내는 신약허가수수료로 계약직으로 채용된 인력"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인력 차이는 국가규모나 소득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약회사가 신약허가를 신청할 때 내는 수수료 금액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미국에서 제약회사가 신약허가를 위해 FDA에 내는 수수료는 260만 달러, 우리돈 30억 원이 넘는다. 반면 현재 우리나라의 신약허가 수수료는 680만 원에 불과하다. 신약 시판 허가가 나면 개발 제약사는 큰 수혜를 누릴 수 있지만, 허가신청 수수료는 쥐꼬리만큼 부담해 결과적으로 부실 검증을 초래하는 구조다.
신약 허가 심사를 담당하는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위원을 지낸 한 전문가도 터무니없이 낮은 신약허가 수수료와 그로 인한 전문인력 부족 때문에 식약처가 제대로 된 검증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제약업체가 제출하는 자료를) 전문적으로 봐 줄 수 있는 조직이나 역량이 부족한데, 그걸 해결하려고 하면 식약처에 전문가 그룹들을 뽑아야 해요. 뽑고, (인건비 할) 돈이 없으니까 돈은 수요자인 신약개발 제약업체가 부담을 해야 하는 거죠.
(우리나라의 현실은) 지금처럼 그냥 식약처에서 몇 사람이 (자료검토)하고, 전문가그룹 회의 한 번 하고, 그 사람들은 달랑 10만 원, 20만 원 받고 그 자료 두 시간, 세 시간 보는 거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마 힘들 겁니다. 첨단의약품 쪽은 이런 사례가 또 나올 거예요.
700만원짜리 주사 맞고 불안에 떠는 환자..,퇴직금 410억 원 챙긴 이웅열 전 코오롱회장
시민단체 역시 식약처가 바이오산업과 신약개발 지원에 치중하면서 허가 기준 등은 너무 낮게 적용해 인보사 같은 사태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지난 4월 26일 국회 인보사 토론회에서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국내에 허가된 줄기세포 치료제 4종 중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허가받은 치료제는 한 건도 없다”며 “이런 정도의 낮은 수준의 허가 기준을 가지고 시판한 제품은 돈벌이도 안 되고 사실 우리 국민들을 거의 임상시험 수준의 마루타로 삼는 것밖에 안 된다"고 질타했다.
관절염 치료를 위해 한 대에 700만 원이나 내고 인보사 주사를 맞은 환자들은 부작용 우려 때문에 불안에 떨고 있다. 이은영 환자단체연합회 이사는 “4월 15일 식약처의 최종 발표 이후 환자들이 더 큰 불안에 잠도 못 자고 있다"며 “현재까지 식약처도, 코오롱사도, 해당 병원도 환자들에게 아무런 통지를 주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코오롱 측을 상대로 인보사 주입 환자 집단소송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오킴스 소속 엄태섭 변호사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인보사 투입환자가 3,400여 분 정도 계신데, 한 절반 정도는 본인이 맞은 주사가 인보사인지 모르는 분들도 대부분이고, 아는 분들 중에도 이런 논란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또 절반"이라고 말했다.
반면 인보사를 자신의 ‘넷째 아이'라고 불렀다던 코오롱 이웅열 전 회장은 인보사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지난해 11월 갑자기 회장직을 그만두고 퇴직금 410억 원을 포함해 총 455억 원을 챙겼다.
취재 : 임보영 김지윤 홍우람 연다혜
촬영 : 신영철 정형민
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디자인 : 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