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성이의 방은 따뜻하고 단정했다. 아이를 좋은 곳에 보내준다는 말을 듣고 엄마는 아이의 물건들은 다 태웠으나 아이가 좋아했던 책과 직접 쓴 시만은 남겨두었다. 국어 선생님이 꿈인 아이였다. 늘 엄마부터 걱정하던 다정한 아들과 이불 덮고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그 방에서 그녀가 낯선 사람에게 아이의 이야기를 풀어놓게 하는 이 상황이 미안했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 그녀는 여러번 크게 통곡했다. 온 집안에 그녀의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가슴이 쪼그라들 것 같이 아프다는 그녀의 슬픔이 전해져 한참을 함께 울었다. 그녀가 이 끔찍한 비극에 맞서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그 대단하고 고통스러운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능력이 없어서 그녀에게 또 한번 미안하다.

우리 아들은 자기에 대해서 자주 물었어요. “엄마는 날 어떻게 생각해? 내가 없었으면 어땠을 거 같아?” 그러면 내가 “우리 아들은 공기야. 엄마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기. 아들 없으면 나는 못 살 거 같아” 그랬어요. 애 아빠가 욱하는 성질이 있어서 내가 “네 아빠랑 안 만났어야 됐어” 하면 호성이가 “그럼 내가 어떻게 태어나?” 하고, 나는 또 “넌 그래도 내 아들로 태어났을 거야”라고 하고. 자기가 아플 때 엄마도 감기 기운이 있으면 그래요. “엄마하고 나하고는 연결되어 있잖아. 그래서 아픈 거야.”

4월 16일 그날 아침에도 애가 떠나는 날이라 그랬는지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일어났을 때부터 몸이 가라앉고 ‘호성이가 없으면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이 자꾸 났어요. 이상했어요. 반월공단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일을 하는데 출근하느라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도 계속 눈물이 나. 아침에 TV도 안 틀어봤고 아직 사고 소식도 못 들었을 때인데.

얘는 몇 시간만 어딜 갔다 오더라도 “엄마, 아들 보고 싶으면 어떡할라고?” 그래요. 그날도 “3박 4일인데 아들 보고 싶어서 어떡할라고?” 그래서 나는 “응, 통화 자주 하면 되지. 우리 아들 초등학교 때도 못가고 중학교 때도 못갔는데 이번엔 꼭 가야지. 엄마가 보고 싶어도 참아야지. 아들, 좋겠다”, 엉덩이 두드리면서 그랬어요.

3시 반쯤에 내가 문자를 보냈어요. 호성이는 자꾸 오지 말라고 그러는데, 돈도 좀 더 쥐어주고 싶고… “엄마, 오지 마세요.” 그러다가 저도 안 되겠는지 “ 그럼 음료수 갖고 오실래요? 죄송해요” 그래요. 음료수를 빼먹고 갔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돈 3만원하고, 음료수하고 들고 갔어요. 그런데 그놈의 새끼가 오히려 나한테 2만원을 주는 거예요. “엄마, 돈 갖고 가 봤자 잃어버려. 잃어버리면 잃어버린 사람 잘못이래. 엄마, 빨리 가야 돼. 4시에 차 떠난대.” 손잡고 잠깐 걸었는데 거기서도 볼에다 뽀뽀해주고 끌어안아주면서 “엄마, 아픈데 오라고 해서 미안해” 그랬어요. “나 수학여행 간다고 돈 많이 썼지?” 자기는 이것만 있으면 된다고, 이거 갖고 엄마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그러고 보냈는데…

5월 2일 12시쯤 전화가 왔어요. “신호성 어머니시죠? 애가 나온 거 같아요. DNA가 맞아요.” 그때부터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시신이 올라오면 사진을 찍어서 보여줬거든요. 애 아빠가 그걸 보고 왔어요. 그 전날도 인상착의가 나오는 화면을 보면서 내가 “어? 우리 애 저런 옷 있었는데?” 그랬더니 아빠가 “아니야, 안에 입은 게 민소매라잖아.”, 나는 “그래도 저런 가디건이 있었는데…” 했어요. 그러니까 옷 몸통하고 팔 부분 색깔이 다른 옷 있잖아요. 그걸 민소매라고 써 놓았던 거예요. 우리 애는 겨드랑이 털 보이는 걸 싫어해서 민소매를 안 입거든요. 아빠가 “호성이한테 민소매 있어? 없잖아”라고 해서 내가 “없지. 그래도 혹시 가족이 안 찾아가면 꼭 가봐” 그랬었거든요. 결국 그 애가 우리 호성이었던 거예요.

전화를 받은 그때부터 애 아빠한테 욕을 하기 시작했어요. “네가 아빠야? 네 새끼도 못 찾냐? 내가 그렇게 보고 오라고 했지! 그 애가 느낌이 있다고! 왜 애가 또 찾게 만들어? 살아 있을 때도 똑바로 못해주더니 돈만 벌어다주면 다야? 너는 이 일만 마치면 끝장이야.” 아빠는 애 찾았다니까 짐 챙기고 여기저기 전화하느라고 바쁜데 나는 애 아빠 쫓아다니면서 울기만 했어요. “다른 부모들은 다 알아보고 애 데리고 간다고 아침부터 수속 밟고 그러는데… 왜 내 새끼는… 친구들이랑 같이 나왔는데 아무도 못 알아봐서… 애가 부모를 또 찾아…”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누가 뭐 하자고 그래도 나서지도 못했어요. 너무 창피해서…

다른 부모들은 배 타고 수색하는 데까지 찾아가서 “우리 애가 이래요. 비슷한 애 있으면 연락주세요”라며 사진 보여주고 그러는데, 우리 애 아빠는 배 타면 멀미하고 마누라 옆에만 있으려고 하고. 막 짜증이 나고 속상하고 가슴이 아프고… 우리가 먼저 알아봐야 되는데 애가 또 부모를 찾게 만들어서…

애를 보러 갔는데 얼굴은 보여주지도 않고 거기 사람들이 애 얼굴에 하얀 가제수건을 덮고 자기 손으로 감싸더라고요. 애 모습은 그냥 하예요. 진짜 아무 느낌 없이 허옇더라고요. 머리카락을 보니까 우리 아들이 맞아요. 늘 자던 그 모습. 그런데 보는 순간 눈물이 안 나고 웃음이 났어요. 지퍼 내려서 보여주는데 “어머, 왜 애한테 피가 묻어 있어요?” 나도 모르게 내 몸은 뒷걸음을 치고 있더라고요. 애가 평발이라 “아빠, 발을 봐” 그랬더니 그분들이 지퍼를 내려서 보여줬어요. 아빠가 보더니 표정이 안 좋아요. 내가 다가가려고 하니까 나를 확 밀어버리더라고요. “아빠,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야.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는 이렇게 안 살았는데 왜 나한테 이런 무서운 벌을 주지?” 애한테 ‘수고했다’ ‘고마워’ 말도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서 울기만 했어요. 숨을 못 쉴 것처럼. 그리고 애를 관에다 넣고 나는 다른 차를 타고 애 아빠는 구급차를 타고, 진짜 희한하게 어쩜 그렇게 빨리, 보따리만 하나 챙겨서 그 길로 바로 헬기를 타고 왔어요. 관을 붙들고서도 나는 ‘지금 이게 뭐하는 걸까’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호성이는 학교 갔다가 밤늦게 돌아와도 “엄마, 시장 볼 거 없어? 나 있을 때 가” 해서 마트에 같이 다녔어요. 그랬던 걸 뻔히 아는 분들이니까. 내가 빌라 반장이라서 밤에 집집마다 관리비를 걷으러 돌아다녔는데 애가 뒤에서 후레쉬를 비춰주면서 졸졸 쫓아다녔어요. “엄마, 엄마, 조심, 조심” 그러면서. 사고 난 뒤에 동네 사람들이 나를 보면 “뒤에서 불 비춰주던 걔야?” 그러면서 손 붙잡고 엉엉 울어요. 대화 자체가 안 돼요.

그래서 관리비도 계속 못 걷었어요. ‘오늘은 나가야지, 나가야지’ 하다가도 ‘아, 오늘은 안 되겠다’ 다시 돌아오고. 이번 달부터는 용기를 내야 할 텐데. 애 아빠는 회사를 다니다가 지금 사표를 낸 상태예요. 일 못하겠다네요. 지금 이걸 팽개쳐두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대요. 애들은 자꾸 잊혀져가고 부모들 이렇게 싸우는 것도 영원히 계속될 것 같진 않다고. 같이 힘을 합칠 수 있을 때 같이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드나 봐요. 지금은 ‘416TV’에 들어가서 활동하고 있어요.

그날, 4월 16일 그날, 진짜 최소한의 노력만 보여줬어도 우리가 이렇게까지 안 해요. 그런데 한명도 안 구했잖아요. 그때 그 사람들 행동은 급한 게 하나도 없었어요. 의문투성이에요. 이제는 인양도 제대로 안 해줄 것 같아요. 그럼 다 우리 몫이에요. 인양해달라고 하면 통째로는 힘드니 반으로 쪼개서 인양하든가 바다 밑에 묻겠다고 하겠죠. 그럼 애들도 못 건지고 증거도 다 사라지고 돈만 없애는 거죠. 그럼 국민들이 또 뭐라고 하겠어요. ‘그만큼 건져줬음 됐지, 또 돈을 들이게 하네’, 그런 식으로 우리만 자꾸 몰아가요. 부모들이 어느정도 마무리를 짓고 사회활동을 하게 해줘야 되는데, 이 정부는 부모들까지 몰아붙여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어요. 그래놓고 ‘유족들이 보상금을 몇억을 받았다더라’ 그런 식으로 말해요. 부모들을 너무 바보 취급해요. 너무 억울하고 답답해요. 이런 걸 얘기하고 다니는 거예요. 자식 보내놓고 이렇게 떠들고 다닌다고요. 저희를 미친 사람 취급해도 괜찮아요. 그래도 우린 알려야겠어요.

호성이는 나 철들라고 보내준 선물 같아요. 애 때문에 힘든 세월도 많이 참았거든요. 지금도 멍하니 있다가 “엄마, 뭐해?” 소리 들리면 분향소든 어디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돌아다녀요. 요즘은 우리 아들하고 하는 인사가 이래요. “호성아, 너도 거기서 열심히 착하게 살아야 돼. 엄마도 착하게 살아야 너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나는 너를 꼭 다시 만나서 같이 살고 싶어. 엄마 열심히 살아볼게. 지켜봐.”

누가 그러더라고요. 호성이 가고 나서 호성이 엄마는 만능이 됐다고. 이상한 병에 걸렸어요. 뭐라도 해야 편해요. 애가 힘들게 갔는데 부모가 편하면 안 되지 싶어서. 그래야 애한테 덜 미안하고 죄가 좀 가시는 거 같아서 정신없이 돌아다녀요. 아마 평생 갈 것 같아요.

* 기록 및 재구성: 홍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