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우 엄마를 처음 만난 건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행진 때였다. 약간 지쳐 보이는 얼굴의 그녀는 처음 보는 나에게 노란 우비를 건네주었다. 참사 100일째라 정신이 없었을 유가족이 옆 사람을 먼저 배려하다니… 두번째 만난 건 국회의사당 앞이었다. 세월호특별법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유가족들이 서로 아이들 추억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날은 7반 엄마들이 많았다. 엄마들은 초저녁 하늘에 뜬 별들을 보며 “서울 하늘에서 별을 보다니, 애들이 우리 보고 싶어서 별로 떴나보다. 오늘 별은 7반 애들 별로 하자”라고 했다. 그때 아련한 무언가를 떠올리는 엄마들의 표정이 밝아 보이면서도 슬퍼보였다. 그날 준우 엄마는 아이 이야기를 재밌게 들려주었다. 얘기를 들으니 준우가 어떤 아이였는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난 준우와 준우 엄마의 살아온 날들을 들었다.

그녀는 준우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슬픔을 달래는 듯했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도 준우 이야기로 빠져들었다. 또 그녀는 세월호참사로 모두가 가족을 잃어 힘들지만 여자들이 더 힘든 거 같다고 했다. 활발하고 자기 감정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 그녀는 세월호사건 이후를 종종 아내의 위치, 며느리의 위치에서 바라보곤 했다. 아빠들은 모여 술을 마시면서 달래는데 엄마들은 모여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진도로 친척들이 위로해주려고 왔지만 준우 엄마는 친척들도 챙겨야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일도 덧붙였다. 모두가 같은 바람을 맞아도 처한 위치가 다르니 충격도 다르고 슬픔의 결도 다르고 극복하는 방법도 다른 거니까.

그녀는 세월호 참사 6개월 만에 직장에 복귀했다. 삶의 안정을 되찾으려는 노력 중 하나였지만 세상과의 거리를 확인하는 생활이기도 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그녀에게 말하는 ‘세월호 엄마’라는 말이 싫다고 했다. 세월호 엄마라는 말에는 사람들이 보고 싶은 ‘행동’과 ‘편견’이 포함되어 있을 테니까. 그래서일까. 원래 웃기 잘하는 그녀였지만 말할 때 눈물을 글썽이는 경우가 예전보다 많아졌다. 일상을 되찾고 준우 동생 태준이를 챙기기 위해 꾹꾹 슬픔을 누르는 모습이, 직장 일을 마치고 홀로 분향소에 들려 준우 영정을 보고 가는 모습이, 쓸쓸해보였다. 그 쓸쓸함을 차가운 밤공기가 아닌 따뜻한 무엇이 감싸주면 좋겠다.

준우는 수학여행에 가기 싫어했어요. “엄마 안 가면 안 돼요?” 그래서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보면 돈 없어서 안 보내는 것 같고 남들이 욕한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준우가 “왜 남들 눈치를 봐요. 저 이번에 정말 가기 싫어요. 내일 모레 시험 놔두고 수학여행 가서 즐거울 수가 있겠어요” 하는 거에요. 그래서 수학여행 안 보냈다고 하면 아빠한테 혼나니까 아빠한테 한번 물어봐야겠다고 했어요. 아빠가 미국에서 일 보느라 3개월마다 나왔거든요. 수학여행 일주일 정도 앞두고 아빠가 미국에서 들어왔기에 물어봤어요. 아빠가 하는 말이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고 네 생각도 중요하니 네가 안 가는 걸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애들이 갔다 와서 수학여행을 이야기하면 네가 공부가 되겠냐? 이번에 갔다 와서 두세배로 공부하면 되지 않냐”고 했어요. 부모는 고등학교 친구들하고 마지막 여행이 될 수 있으니 보내고 싶은 거지. 친구들의 추억에 준우가 없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나도 옆에서 거들었지.

수학여행 가기 전날 준우가 일찍 왔어요. 학원에 가서 밤 10시부터 12시까지 하고 오는데 그 날은 좀 일찍 왔어요. 시험기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학교에서 수학여행 간다고 짜증난다며 짐도 싸기 싫으니 먹을 것도 싸지 말라며 공부하게 나보고 방에서 나가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준우야 어차피 내일 수학여행 가니까 오늘은 공부하지 말고 엄마랑 이야기하자”라고 했지. 준우가 “그럼 그럴까요” 하며 같이 침대에 누워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준우가 트라우마가 생기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요. 그래서 내가 “배 타는 게 무섭냐”라고 물으니, 그냥 트라우마가 생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는 거야. 나는 트라우마가 뭔지도 몰랐어요. 생소하니까. 그러니까 준우가 트라우마란 누가 충격을 받으면 생기는데 평생 간다는 뜻이라고 말해줬어요. 그래서 난 준우한데 그런 일 절대 안 일어날 거라고 했지. 그러고는 책상에 있는 준우 사진을 같이 봤어요. 준우가 고등학교 때 처음 찍은 사진을 담은 학생증을 가져와서 자랑했거든요. 자기 얼굴이 생각보다 잘 나왔대, 실제로는 여드름이 엄청 많은데 그 사진에는 그게 없었거든요.

이 벽을 보고 누워서 있다가 준우가 자기 100일 때랑 돌 때 찍은 사진 보면서 자기 낳을 때 어떤 기분이었냐고 물었어요. 준우를 낳았을 때부터 시작해 그동안 키워오면서 느낀 기쁨들을 사진을 꺼내 보면서 이야기 나눴어요. 그러다가 준우가 갑자기 뭐가 생각났는지 일어나더니 밤새 할 일이 있으니 그만 나가라고 하더라고. 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서 “아들 며칠간 보고 싶을 텐데 이야기 더 하자” 했지. 그랬더니 나를 달래려고 한 말인지 모르지만 “엄마, 운명이란 게 있는 거 아시죠. 제가 어떻게 되기나 하겠어요? 제가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게 운명이라고 믿으세요”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운명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지. 준우가 운명이란 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야기해줬는데 내가 요새 머리가 복잡해서 다 까먹었어요. 아무튼 얘 말이 사람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있는 게 운명이고 그건 따르는 거라는 거야.

기록 및 재구성: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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