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세월호 사고 발생 후 광화문에서 알게 된 이성미님의 소중한 말씀을 제가 재구성하여 재판장님께 올립니다.

준영 어머니 대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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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해 자 진 술
2015년 1월 27일 광주지방법원

존경하는 재판장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덧 290일이 다가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버거운 유가족이란 타이틀을 어깨에 짊어지고, 250명 아이의 부모가 되어 광주, 안산, 진도, 광화문, 국회로 뛰어다닌 지 290일이 되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중 가장 힘든 곳은 광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마주하는 순간 끓어오르는 울분을 참아내며 재판을 지켜본다는 것……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그 심정을 알겠습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께서 가족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배려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일 재판 말미에 유가족들은 그 울분을 참지 못하고 토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유가족들을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7월 국정조사와 10월 국정감사에서 해경 P123정 정장 김경일의 답변을 지켜보며 세월호와 해경 P123정의 만남은 정말 잘못된 만남이었구나 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아니 그 이전 김경일의 기자회견 및 기사에서부터 느꼈던 것 같습니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304명이 수장 되는 드라마 같은 상황을 연출시켰던 그 살인자 맞구나 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직업 윤리의식 및 인간적인 도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살인자였습니다.

우선, 김경일은 구조를 위한 준비가 미흡했으며, 적극적인 구조활동 또한 하지 않았습니다.

2012년 전북일보 기사에 따르면 P123정은 올해 위반선박 검거, 단속 및 감시 임무는 물론, 조난선박 구조 등 각종 해양사고에도 탁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우수한 성과를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함정이 투입된 세월호 참사 구조활동은 형편 없었습니다. 김경일이 이끄는 P123정은 세월호 참사 당일 9시경 선체는 45도 가량 기울었으며 400~500명이 조난되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합니다. 대규모의 인명 피해가 날 수도 있는 참사 앞에서 선체진입은 시도도 안하고, 조타실에서 내려오는 선장/선원 및 바다에 떠 있는 사람만 건지는 수준의 구조 활동을 했습니다. 즉, 400~500명이 조난된 배를 구조하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구조를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는 매우 미흡했습니다.

지난 12월 1일 재판에서 누군가 “배 안에 사람이 많이 있다”고 말했는데도 김경일은 “그것은 특공대가 할 일이지 내 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으며, “해경이 민간업체냐”고 비난했었다고 유가족이 증언했습니다. 즉, 인명 구조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가 없었습니다. 또한, 1월 21일 피해자 진술에서 들으셨듯이 생존 학생들은 “해경이 선실에 들어올 수도 있었는데 들어오지도 않았으며 탈출한 뒤에도 고무보트에 타지 말고 끈에 매달려 오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 후 큰 배로 옮겨 탈 때도 일반인이 도와줬다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생존자들은 자신들이 구조된 것이 아니라 탈출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고 당시 P123정에 현장 지휘권한이 있던 만큼, 김경일 정장은 구조작업을 지시하고 상황을 알려줘야 했습니다. 현장에서 함께 구조작업을 한 헬기 511호기와 512호기, 513호기와도 전혀 소통이 없었습니다. 511호기와 두 차례 교신하려고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는데, 다시 시도하거나 다른 헬기에 연락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상부에 전혀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김경일 정장의 독단적인 판단 하에 진행한 구조 작전은 대형 참사를 불러왔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승객들의 퇴선을 제대로 유도하지 않았다는 점은 지켜보는 사람들을 가장 경악하게 만든 점입니다. 현장 책임자인 김경일 정장이 P123정 승조원들이나 헬기를 타고 온 항공 구조사들에게 선내 진입을 지시하거나 퇴선 방송을 하는 등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승객들을 배 밖으로 나오게 할 책임이 있었으며 실제로 퇴선 명령을 내리라는 명령 또한 불복종했습니다. 그런데도 퇴선 방송을 했더라도 헬기의 소음 때문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고 살인자 김경일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 때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추측하는 것일 뿐 그 당시 김경일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 같은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둘째, 김경일은 허위 진술로 책임을 모면하려고 했습니다.

4월 28일 11시 김경일은 긴급 기자회견에서 손도끼와 망치, 유리 파편을 내보이며 세월호 유리창을 깨고 6~7명을 구조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직접 P123정의 사이렌을 울려가며 퇴선 방송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넉 달 뒤 그의 진술은 바뀌었습니다. 참사 당일 일지 기록을 조작하고 비난 여론에 밀려 기자회견을 열였던 것입니다. 세월호 사고 당시 구조활동과 관련해 근무일지 등을 허위로 작성하거나 임의로 폐기했으며, 상황이 워낙 다급했고 배의 경사가 심해 선내진입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당황해서 선체 진입 명령을 깜빡 잊었으나 최선을 다해 구조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방송을 하지 못했으며 하더라고 승객에게 전달되었을 지가 의문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대국민 앞에서 쇼를 벌이며 이 시대의 사기꾼으로 등극한 것입니다.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장난 친 것도 모자라서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이 재판은 김경일의 엄중한 처벌 외에 또 다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판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을 통해 관련 책임자를 처벌하고 안전한 나라 건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재판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다면, 김경일의 살인 행위를 증명하는 것만으로는 진상규명과 안전한 나라 건설이라는 대의를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그마치 304명이 수장되는 참사는 구조의 총체적인 부실로 인해 많은 사람을 잃은 인재입니다. 재판장님도 아시다시피 김경일이 현장 책임자로서 잘못한 것은 명명백백한 일입니다. 하지만 검찰이 참사 당일 무너진 해경의 구조 활동에 대한 책임을 김경일 한 사람에게만 묻기에는 해경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첫째, 4월 16일 자료를 조작한 것은 김경일뿐만 아닙니다. 실제 사고 당일 해경의 로그북을 보면 10명의 잠수사가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발표된 자료는 해경은 118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고 이틀째인 4월 17일에 진도체육관을 방문했을 때, 김석균 해경청장은 대통령 바로 옆에서 “현재 잠수사 500여 명을 투입하고 있습니다”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둘째, 조류오판에 대한 문제도 제기 되었습니다. 물살이 잠잠한 정조기가 아니라 오히려 물살이 강할 때 잠수요원들을 투입하는 바람에, 구조작업에 실패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조류 데이터 확보 여부에 대해 해경은 말을 바꾸며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셋째, 경찰 신분인 김경일이 직접 기자회견까지 열어 저 쇼를 벌이는 동안 대체 해경 상부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기자회견을 열기 전에 상부에 보고를 하고 정확한 사실 검증을 통해 언론에 노출할 수 있도록 관리가 되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물론 일게 경찰 신분으로서 상부의 지시 없이 기자회견을 했다는 것도 비상식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판장님께서 1심 판결하셨던 선장/선원 재판 판결문에서도 “설령 유죄의 의심이 가더라도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은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참사 전체에 대한 유기적인 연결고리는 김경일 정장이 맞겠지만 그 연결 고리만 딱 잘라서 수사를 하고 기소한다는 것은 그 저변에 깔려있는 진실은 묻힐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해경의 전체 부실에 대해 수사하고 철저하게 검증해야만이 진실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해경 재판도 선장/선원 재판의 선례를 밟고 있는 것 아닐까하는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더 이상 가해자들의 양심선언은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재판과정에서 지켜보며 유가족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이 시대의 정의에 대한 도전을 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할 뿐입니다. 다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또 유가족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이준석 선장 등 항소심 재판장님께서도 재판 중에 유가족들이 점점 유능해지고 절제력이 생겼다고 하셨다면서요? 그렇게 되기까지 유가족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판사님께서 더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재판장님, 혹시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프로그램을 아십니까? 1박 2일 동안 아빠들이 엄마 없이 아이들을 키우는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4월 16일 이후 그 프로그램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엄마 없는 동안에 아이들의 성장일기를 기록하는 아빠, 돌아와서 그 일기를 보면서 우는 엄마들을 볼 때 국회, 광화문, 안산, 광주에서 울부짖는 500여명의 유가족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성장일기를 보면서 우는 것은 유가족이나 그 프로그램에 출연자나 같습니다. 다만 유가족들은 아이를 볼 수 없는 그리움이 사무쳐 베개를 적시는 것이고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내 새끼가 이렇게 컸구나 라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것이겠지요.

유가족은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부모처럼 다시는 슈퍼맨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이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적어도, 남겨진 부모와 가족들이, 구조받지 못해 죽어간 사랑하는 이들을 하늘에서 만났을 때, 세월호 사건을 둘러싼 자초지종을 낱낱이 설명하고, 너희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죽을 힘을 다해 노력했고,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이것만이 유가족들의 원통한 마음을 풀고 아이들과 재회할 수 있는 꿈을 꾸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철저한 책임자 처벌을 통한 진상 규명, 안전한 나라 건설의 초석을 마련하는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재판부의 역할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은 재판장님께서 잘 알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아직도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한 국민입니다. 참사 후 구조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과 아이들의 수학여행 목적지를 하늘나라로 바꾸는데 일조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동일한 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면 이 나라에서 보호받을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 또한 심해졌습니다. 부디 국민들이 더 이상 이런 큰 아픔을 겪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다시 한 번 부탁 드립니다. 이 땅의 사법부의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재판을 통해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김경일을 살인죄로 처벌해 주십시오. 그리고, 검찰도 김경일뿐만 아니라 지휘라인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던 책임자의 잘못을 엄중히 물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1월 27일

* 사진자료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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