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자타리 캠프에는 시리아 난민 15만명이 살고 있다. 그중 절반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전쟁으로 부모·형제를 잃었고 고향을 잃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오늘을 살아간다. 전쟁으로 많은 걸 잃었지만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지난 2012년 8월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사진작가 아그네스 몬타나리(59)가 자타리 캠프를 찾았다. 그는 시리아 난민 아이들에게 사진을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게 해주고 싶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의 지원으로 시작한 사진교실이 어느덧 2년이 넘었다.

그가 지난달 25일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6일부터 열리는 시리아 난민촌-단원고 청소년 공동 사진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시리아 난민촌 아이들처럼 단원고 학생들도 지난해 8월부터 ‘한겨레신문’ 곽윤섭 사진기자 지도로 사진을 배웠다. 몬타나리는 “단원고 학생들은 자신이 겪은 충격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과 함께 사회를 살아야 한다”면서 “모두가 같은 처지인 시리아 난민 아이들보다 어떤 측면에서는 단원고 학생들이 더 힘들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단원고 학생들이 아픈 기억을 떨쳐 내고 자신이 이 사회에서 이해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주관하는 이번 공동 사진전 ‘서울, 자타리를 만나다’는 6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57th 갤러리’에서 열린다. 지난 4일 ‘57th 갤러리’에서 사진전 준비에 여념이 없는 몬타나리를 만났다. 이하는 일문일답 전문이다.


프랑스 출신 사진작가 아그네스 몬타나리가 4일 서울 종로구 ‘57th 갤러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email protected]

-어떻게 사진수업을 시작하게 됐나.

시리아 난민촌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지난 2012년 8월 요르단 자타리 캠프를 처음 방문했다. 캠프가 처음 생긴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난민촌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것은 사진이었다. 이전에도 요르단에서 장애아동들에게 사진을 가르쳤고 조지아와 예멘에서도 ‘국경없는 의사회’와 함께 사진 수업을 했다.

 

-왜 사진인가.

나에게 사진은 언어다. 사진을 통해 상대방과 이야기를 하고 자기 감정을 드러낼 수 있다. 시리아 아이들은 힘든 시간을 겪었다. 자기 마음 속 응어리진 것들을 뱉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진은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쉽다. 글로 쓰는 것보다도 쉽다.

 

-시리아 아이들이 처음 사진수업 받던 때를 기억하나.

아이들이 강한 호기심을 보였던 걸로 기억한다. 캠프가 세워지지 않아 모든 것이 혼란스런 상황이었는데 사진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자타리 캠프에서 사진 수업을 듣는 살렘이 작품. 살렘은 사진을 두고 “우리는 시작이나 끝을 볼 수 없다. 기약도 없다. 자타리 캠프 안에서 자유롭지도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아이들이 어떻게 변했나.

일단 사진 찍는 기술이 늘었다.(웃음)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빛’을 사용할 줄 알게 됐다. 사진 자체의 느낌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뭔가 움츠러들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면 지금은 시원한 느낌이 든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척박함 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난민촌에서도 아름다움을 찾는다. 같은 사진을 두고 표현하는 법도 달라졌다. ‘왜 이 사진을 찍었니’라고 물었을 때 ‘그냥 찍었다’고 이야기하던 이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 사진의 의미를 설명하게 됐다.

 

-사진을 찍으면서 아이들이 치유된다는 뜻인가.

그렇다. 난민촌 아이들은 모두 끔찍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마을이 폭격당하고 부모가 죽고 친구를 잃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아이들은 새로운 장면을 보게 되고 새로운 기억을 기록하게 된다. 그 감정과 기억들을 채워 나가면서 과거의 끔찍한 기억들을 털어내고 극복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신들이 찍은 사진이 결과로 나타나고 피드백을 받고 다시 전시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아이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다면?

아이들이 2년 넘게 난민 생활을 하면서 이제 이곳(난민촌)이 자기들의 집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그게 사진에서 드러난다. 살렘은 거리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찍고 “자타리 캠프 안에서 자유롭지도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썼다. 압달라는 자신이 키우는 비둘기 사진을 두고 “시리아에서처럼 자타리 캠프에서도 비둘기를 키운다. 시리아에서 했던 것과 같은 일을 계속 하는 것이 나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난민촌에서도 자기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다.


자타리 캠프 미리암의 작품. 미리암은 “내가 이 사진을 찍은 건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자타리 난민촌에서 우리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곳에서도 시리아에서 가지고 있었던 것들과 똑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당신도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것이 있을 텐데.

나도 어른이라 그런 것인지 가끔 사고방식이 닫혀 있고 제한돼 있다는 걸 느낀다. 아이들은 그런 게 없다. 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지나친 장면을 사진으로 남기고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마다 느낀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을 보여준다.

 

-단원고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첫 방한인가.

그렇다.

 

-세월호 참사는 어떻게 알게 됐나.

지난해 6월인가, 참사 이후 2개월 정도 지나 알았다. 뭐랄까 너무 엄청난 일이다. 사망자수나 생존학생 숫자 같은 문제가 아이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그 현장에서 구조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살아나야 했다. 배가 침몰 되고 아이들이 소리치고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과정이 저절로 상상됐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힘들었다. 상상 자체가 괴로웠다.

 

-단원고 학생들은 이미 만났나.

지난주 일요일(1월25일) 입국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단원고 학생 11명과 함께 이번 사진전에 걸 사진을 고르는 작업을 함께 했다.

 

-어떤 이야기를 했나.

시리아 얘기를 많이 했다. 난민촌에서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사진 찍는 기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후반에는 사진을 두고 토론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시리아 아이들처럼 처음에는 ‘그냥 찍었다’고 말하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왜 자신이 이 사진을 찍었는지 자세하게 이야기하더라. 어떤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찍은 사진이 생각난다. 그 사진을 찍은 학생은 “할머니 주름이 아름다워 보여서 찍었다”고 하더라. 그 이야기가 나온 뒤 자연스럽게 다른 아이들과 아름다움을 두고 토론을 시작했다.

 

-단원고 학생들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시리아 난민촌 아이들은 오히려 자기 감정을 표현하기 쉽다. 난민촌이라는 한 공간에 있고 모두가 같은 처지에 있으니 눈치 볼 것이 없으니까. 단원고 학생들은 다르다. 자신이 겪은 충격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죽은 친구들과 그 부모들에 대한 죄책감을 떨치기도 쉽지 않다. 응어리진 감정을 표현해야 하고 털어내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어떤 측면에서는 시리아 난민촌 아이들보다 단원고 학생들이 더 힘들 수도 있다.

 

-어떻게 해야할까.

학생들 스스로 상처나 아픈 기억을 떨쳐 내고 ‘내가 이 사회에서 이해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도와야 한다. 극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거다.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 작가가 과거 나치 시절 자신이 유태인 수용소에서 겪은 기억을 쓴 게 있다. 그 작가는 책을 끝내기까지 15년이 걸렸다고 했다. 옛날을 떠올리는 게 괴로워 수시로 기억을 멈췄야 했다고 들었다.

 

-이번 사진전에 기대하는게 있다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난민촌 아이들은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 고립감을 느끼고 자신이 외부로부터 단절돼있다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렇게 바깥세상 특히 한국의 아이들과 사진을 주고 받으면서 정신적으로 세상과 끈이 이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되기를 바란다. 이번 교류는 첫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시리아와 단원고 아이들의 교류를 시작으로 더 많은 나라 아이들이 교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서로의 사진을 보면서 다른 나라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고 관용의 폭을 넓힐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 이야기도 궁금하다. 어떻게 사진을 시작했나.

원래 변호사로 일했다. 사진을 시작한지는 12년이 됐다. 혼자 배웠다.

 

-계기가 있었나

남편이 의사다. 전 세계를 돌며 구호활동을 했다. 남편을 따라 30년 넘게 여러 나라를 방문했다.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삶을 봤다. 내가 본 것들을 기록하고 싶었고 내 인생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사진을 시작했다.

 

-어떤 작품들을 찍었나.

조지아와 세르비아의 고문 희생자들을 카메라에 담았고 지금은 예멘 여성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홍등가 여성들도 찍었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많이 찍은 것 같다.

맞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런 사람들을 보면 찍고 싶어진다.

 

-그런 이들을 보며 느낀 점이 있다면.

시리아 난민촌 아이들과 마찬가지다. 그 아이들이 척박한 난민촌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자기들 나름의 인생을 살아간다. 방글라데시 홍등가 여성들도 그저 힘들고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보면 그들도 때로 울고 때로 웃으면서 그들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을 보다 보니 이제는 누구를 만나기 전에 미리 어떨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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