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업살인
2018년 겨울, 범인은 누구인가
- 김용균의 죽음 앞에서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 진행자 : 2016년 구의역 사고 이후에 노동자를 위한 법안, 안전을 위한 법안이 왜 국회에서 계속 통과가 안 됐다고 생각을 하세요?
▶ 우원식(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 하나는 재계에서 반대가 아주 심했습니다. 이렇게 저희는 이런 위험한 사업장,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고 또 위험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직접 고용을 하자, 이것을 하청이나 도급을 주지 말고 직접 고용하자는 법안을 낸 건데요. 그렇게 고용 형태를 제안한 것은 기업에 부담을 준다고 해서 경영계에서 반대가 아주 심했죠. 그런 것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국회 안에서는 야당들, 그러니까 그때로 보면 정부 여당이었는데 한나라당이 굉장히 이 부분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죠.
우원식 의원은 이어서 "위험한 업종을 원래는 정규직, 원청의 정규직이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위험한 업종이니까, 상식적으로. 그런데 우리나라는 구조가 그 위험한 업종을 외주를 줘요" "그 외주를 받은 업체에는 비숙련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한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이게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 라고 계속해서 설명해 준다.
하청노동자가 사망하는 이유를 국민들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해서 가르쳐주는 것일까. 국회의원의 할 일은 무엇일까. 정치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설명할 수는 있다. 여당의 국회의원이 남 탓만 하고 있으니 문제다. 유체이탈이 계속 되니 책임의 구조 자체를 망각한 것인지 모르겠다.
여당 국회의원이 기업과 야당의 반대로 법안을 만들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죽은 노동자의 어머니가 국회 안 복도에 웅크려 두 손을 모은 채, 아들과 같은 죽음을 막고 싶다며, 법안통과 소식을 기다리는 모습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활동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머니께서 오셔서 이 과정의 마지막까지 함께 하셨기 때문에 법안이 처리된 것입니다"
"마음이 참담하실 텐데, 어머니 공이 크십니다. 아드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죽은 노동자의 어머니가 집권여당의 대표와 의원들로부터 감사인사를 받는다. 기사에는 취재진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며, 여야 실무 협상을 맡았던 집권당 간사 의원이 "어머니 더 이상 많이 우시면 안 돼요" 라고 노동자의 어머니를 달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
이것은 미담인가? 이 기사를 작성한, 촬영한, 뉴스로 송출한 모든 언론사에 묻고 싶다. 슬프지만 훈훈한 현장으로 묘사하고 싶었나?
2018년 12월 27일에서 28일의 아침까지 이른바 ‘김용균법’,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통과를 둘러싼 여야의 협상 과정을 전하는 기사들의 드라마틱한 논조는 이 기사가 팔릴 것이라는, ‘상품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흥분에 들떠 스펙터클을 전하는 취재진들의 키보드 소리가 잦아진 자리에서 집권여당은 원청인 서부발전에, 노동부에, 산업자원부에, 청와대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나? 정치는 그 시점부터 시작될 것이고, 어머니의 웅크린 등에 응답할 진심이 있는지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만 드러날 것이다.
12월 11일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이 있기 전까지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노동의 관심 밖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경영계만이 움직였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주요 대기업 114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도급작업에서 산재가 일어나는 원인은 '작업자 부주의'(57.0%), '안전보건조치 부족'(25.6%), '위험한 작업 공정'(8.1%), '안전보건교육 부족'(3.5%), '기계·설비 결함'(1.2%) 순이라고 한다.
하청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서는 '수급사업체의 안전보건 전문성 확보방안 강구'(44.2%), '도급인의 안전관리 책임강화에 비례하는 수급인 근로자 관리 권한 부여'(34.9%)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급박한 위험 시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는 안에 대해서는 '산재 발생 우려의 정의가 모호해 현장 혼란 및 노사갈등 우려'(54.4%), '급박한 위험이 아니어도 긴급대피권이 남발될 우려'(27.2%)를 제기했다.
노동자 사망에 사업주 징역형을 높이고, 법인에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10억 원 이하'로 올리는 안에 대해서는 '근로자 부주의·과실에 비해 벌칙이 과도하다'(57.0%), '규정이 너무 많아 모두 준수하는 것이 어렵다'(21.1%), ‘경영상 손실 고려 시 과도하다'(2.6%)’ 등 80%가 넘는 기업이 지나친 조치라고 응답했다.
산재는 하청기업의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노동자의 잘못으로 일어나며 원청기업의 책임을 묻고 싶으면 하청노동자에 대한 관리 권한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청노동자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하더라도 불법파견으로 시비 걸지 말라는 뜻이다. 노동자의 안전의식 수준을 묻고는 안전의식이 낮다는 응답이 56.1%, 높다는 응답이 7.4%였다고 보고를 마무리한 것은 화룡정점이라 하겠다. 조사는 노동자의 부주의로 시작해 낮은 안전 의식으로 마무리된다. 산재는 노동자의 잘못으로 시작해 노동자의 잘못으로 끝난다.
이 조사가 114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우리가 주장해 온 ‘기업살인법’, 매년 진행해 온 ‘최악의 살인기업상’은 응답 없는 공허한 이벤트에 불과했음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경제계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기업에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 등에 이은 또 다른 시한폭탄"이라고 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대한민국의 기업에게 이런 위상을 갖게 되었다니 영광이라고 해야 할까.
김용균 노동자가 2018년 12월 11일 새벽, 화력발전소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여 사망한 후 원청 한국서부발전이 보여준 반인권적 사고수습 과정은 한국의 공기업이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명을 얼마나 가벼이 여기는지 증명한 적나라한 현장이었다.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보도하는 언론들 중에는 사건의 본질을 은폐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기사들을 끼워 넣기도 하였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 한국발전기술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 숨진 고(故) 김용균(24)씨의 사고의 쟁점이 시민단체 및 정치권에 까지 확대되고 있다.(중략) 이를 두고 시민단체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관철될 때까지 촛불집회를 개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중략) 한편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소 임직원과 고 김용균 씨가 근무했던 협력업체 임직원 등은 사고 다음 날 빈소를 찾아 조문하려고 했지만, 유족과 직장동료들에게 저지당해 발길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균의 사망 후 공기업으로서의 기업윤리는커녕 ‘돈이 먼저, 사람(하청노동자)은 돈을 위한 도구’ 라는 한국사회의 지옥을 보여준 한국서부발전 경영진이 국민의 분노에 놀라 황급히 장례식장을 찾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여러 정황상 언론은 한국서부발전 경영진, 나아가서 이 문제의 관리책임이 있는 산업자원부에 대해서 더 많이 취재하고 발언을 이끌어냈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모든 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같은 위험한 설비를 점검할 때 2인1조로 근무하게 하고, 낙탄 제거처럼 위험한 설비 주변에서 하는 작업은 설비를 정지시킨 뒤 시행하도록 하고, 경력 6개월이 안 된 직원은 단독작업을 금지하고, 개인 안전장구를 완벽히 갖추도록 하겠다고 했다. 위험시설 주변 안전장치를 보완하고 비상정지스위치 작동상태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답은 암기과목 정답처럼 이미 나와 있다. 그런데 이 정도의 기술적인 안전 조치를 현실에서 실행에 옮기려면 인력이 두 배가 되어야 하고, 예산이 늘어야 한다. 김용균 노동자의 동료들은 정부와 언론이 마치 대단한 해법이라도 찾은 것처럼 2인1조를 말할 때 그 현장의 노동자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2017년 11월 현장실습 도중 사망한 제주도의 이민호 학생을 기억할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 제주도 교육감은 제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억울한 심경’을 전했다고 한다.
‘학교에서의 안전문제를 어디까지 봐야하나 고민된다, 학교는 일상적인 안전, 스스로 자기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에 목표를 둬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무슨 고민이 된다는 것일까. 실업계 고등학생이 교육 중에 사망한 사건에 대해서 저런 애매한 말솜씨가 왜 필요한 것인가. 이 문제의 일차적인 해결 방법은 현장실습제도에 대해서 들여다보고 찾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다. 안전 문제를 제기하면 아이들이 제대로 실습을 못해서 피해를 보고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교육감이 협박처럼 이야기한다. 반복해서 학생들이 사망해 왔는데도, 현장실습 제도에 대한 책임감을 찾아볼 수 없다.
이민호 학생의 사망 이후 적어도 학생이 사망할 수도 있는 현장실습제도 자체는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었다. 새로운 직업교육시스템으로 교육당국이 방향을 전환하지 않을까 조금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아니다. 학생이 죽을 수도 있는 산업체에 가서까지 직업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교육당국의 대답은 그렇다, 그렇게 해서라도 현장실습을 가야 한다.
실습학생의 죽음에 대하여 학교에 묻는 것은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진 교육 당국의 책임자.
학생신분으로 공장실습을 하고 다시 노동자로 공장으로 가게 된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자 용기를 냈을 때 어떤 극우정당 국회의원이 던져놓은 말에 대해서 뒤늦게 알게 되고, 아프게 곱씹어 보게 될 까 두렵다.
"어디 싸구려 노동판에서 왔나. 어디서 와서 싸구려 말을 함부로 하고 있어" -지난 해 11월 자유한국당 박순자 의원이 다른 당 의원과 말싸움을 하다 뱉은 말이라고 한다 -
“김용균씨 사건으로 비용절감 이데올로기 아래 구조화된, 존재 파괴적 기업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사람의 소모품화를 억제하려는 ‘사람 중심 사회’론이 모처럼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노력에 긍정적 평가를 내릴 만하다.
... ‘대속’이라는, 오늘날 그리스도교적 적폐처럼 간주되는 교리, 그것의 개념적 뿌리에는 어떤 이(들)의 고통에 직면해서 그것에 공감하는 이들의 성찰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된다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김용균씨 사건에서 그 원초적 믿음의 현상을 재발견할 수 있었다. 김용균씨로 인해 우리는 고통당하는 이들을 공감하는 노력에 동참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간 무감각하게 살던 우리가 구원받는 자의 대열에 서게 되는 체험이며, 그 덕에 2018년을 마감하면서 우리가 받은 하나의 구원체험이다. “
그리고 여기, 진보적(?) 기독교인이 쓴 칼럼을 읽는다. 사회적 고통에 대하여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공동체의 선한 의지를 고양하려는 종교인의 진심을 믿는다. 그런데 난감하다. 난처하다. 죽은 김용균의 옆 자리에서 여전히 컨베이어 벨트를 돌며 검은 낙탄을 치우고 있는 동료들이 이 글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용균의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저런 글이 쓰여졌다는 것을 모르셨으면 좋겠다.
김용균 노동자의 동료는 말한다.
“어머니가 지금 계속 언론에 하고 싶은 얘기는 제발 TV 카메라로 저를 찍지 말고 당신을 찍지 말고 그 사고 현장을 찍어 달라.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어서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에게 보여 달라. 그러면 이게 사람이 일할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국민들이 알 거라고 이렇게 얘기 하십니다”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말한다.
“엊그제 사고소식을 들은 것 같은데 어느덧 49재가 되었습니다. 49재는 이승하고 작별하고 저승으로 가는 날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시신을 냉동고에 놔두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도 비참합니다. 아직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정규직 전환하는 것들을 무엇 하나 이룬 게 없는 실정입니다. 24살 쳐다 보기에도 아까운 아들입니다. 아직 다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입니다. 용균이가 일했던 험악한 현장 상태와 너무도 처참하게 생을 마감한 아들을 생각하면 내 가슴에 맺힌 한은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너무도 억울하고 분한 마음, 내가 죽는 날까지 자본가를 원망하고 이 나라를 원망할 것입니다.”
김용균을 죽게 한 범인은 누구일까.
김용균의 어머니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 이들은 누구일가.
어머니가 용서하지 말아야 할 이들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누구에서 누구까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