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비밀스러운삶

소의 비밀스러운 삶– 명랑한 소들의 기발하고 엉뚱한 일상
로저먼드 영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8년 06월

개나 고양이와는 달리 ‘닭’은 반려동물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선입관을 완전히 깨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고층 아파트에 수탉을 키우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주인공이다. 봄철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키운 것인데 여름쯤이 되자 다 큰 청년 닭이 되어 새벽마다 ‘꼬끼요~’ 하고 울었다. 산책을 할 때면 목에 목줄을 매고 공원을 활보했다. 한번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탔다가 치킨배달을 하는 분과 ‘수탉네 꼬마’를 동시에 만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저 엘리베이터 문이 어서 빨리 열리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동물과 함께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언어’가 다르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감정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소의 비밀스러운 삶’은 3대에 걸쳐 소를 키워온 저자가 소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은밀하게 수집한 ‘소들만의 삶에 대한 자세와 소들과 함께 한 시간들’을 꼼꼼히 기록한 책이다. “만약 소를 반려동물로 키운다면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라는 공상을 현실감 있는 ‘상상’으로 치환하게 해 주는 재미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투박한 글솜씨는 오히려 솔직하고 담백한 ‘소와의 삶’을 상상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최근 동물권에 대한 책들이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는 상황에서 동물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공동체’라는 생각을 의심 없이 품게 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특히 ‘선택’권에 대한 이야기는 책 곳곳에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로 변주되어 소개된다. 예를 들면 농장 동물들은 선택권이 주어지면 물도 골라 마신다고 한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소는 폭포나 물이 쏟아지는 파이프 끝에 입을 갖다 대고 물을 마시고, 자신이 좋아하는 물이 있는 곳에 다다를 때까지 열두 시간이 넘도록 물을 마시지 않는 소도 있다고 한다. 동물들은 알맞은 생활 환경에서 살 때는 스스로 똑똑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말 못하는 동물이라고 해서 사람보다 결코 어리석은 것은 아니며 가축동물들도 충분히 존중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소도 사람과 같이 사생활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해 줄 갖가지 ‘진귀한 경험’들이 가득하다.

고혜미
방송, 다큐멘터리 작가(SBS 독성가족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