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
하재영 지음 / 창비 / 2018년 04월

 

나는 개를 안 먹지만 타인의 취향은 존중한다는 당신께
책의 제목은 독일 작가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서 따온 것일 테고, 부제는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다. 하지만 작가는 버려진 혹은 죽는 개들의 비극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그리고 귀여운 강아지들이 우리 곁에 오기까지 공장식 번식장과 경매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펫샵의 예쁜 품종견도 어떤 불편한 사연들을 담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반려견에 끼지 못한 또는 반려견의 지위에서 벗어난 존재들이 잠재적으로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두루 살피고 증언한다.
작가의 시선과 어투는 ‘쿨’하지도 ‘힙’하지도 않다. 알지 못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나 조금쯤은 알고 있어도 안 보려 했던 것들을 대면하도록 거듭 직구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문학적 기법이 아니라 이 책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에 불가피하게 따를 수밖에 없는 태도일 것 같다.
동물권을 다루는 책들이 적잖이 나왔고 우리 사회의 인식과 운동도 몇 년 사이에 크게 바뀌었지만, 개인적인 체험으로부터 눈길과 발길을 넓히고 또 그만큼을 움직이도록 또는 적어도 ‘시작’하도록 주문하는 구체성과 진실함이 이 책의 큰 가치다. 그리고 그것이 장면 장면의 참혹함을 이겨내며 끝까지 읽게 만들고 또 다른 사람에게 권하게 만드는 힘일 것 같다.
누군가가 개와 고양이의 사정에 대해 말하면, 그러면 소는? 돼지는? 닭은? 그리고 동물을 말하면, 식물은? 이라고 반문 받는 것은 흔히 보는 장면이다. 또한 개 식용 문화를 비난하는 것이 문화적 상대주의를 해치는 태도라거나 상대방의 식습관 취향에 대한 관용이 아니라는 인식도 많다. 개 식용의 합법화와 제도화가 문제를 푸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도 강하다.
그러나 작가는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극단적 태도는 문제의 실마리를 흐리게 할 뿐이라고 보며, 문화적 상대주의를 넘어서 ‘윤리적 보편주의’를 요청해야 인간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고 인간과 동물의 더 좋은 삶을 가능케 하는 길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유기되고 강제 번식되고 도살되는 개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사람들의 상식은 바뀌고, 법과 제도는 이를 훨씬 빠르게 할 수 있다. 고통스럽게 이 책을 읽은 이들이 함께 하게 될 일이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