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댐을 주제로 한 내용이 발표됐다. 지난 15일 전라남도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세계인권도시 포럼에 참석한 필리핀 CPA (Cordillera peoples alliance)활동가 아비게일(Abigail Anongos)씨가 댐 건설과 관련해 필리핀에서 일어난 막전막후를 소개했다.
우리나라는 크고 작은 댐이 약 1만 8000여개 존재한다. 국제대형댐위원회(ICOLD, International Commission on Large Dams)의 기준인 높이 15m 이상의 대형댐은 1200여개로 세계 7위 규모다. 전국 방방곡곡 물이 흐르는 곳이라면, 댐이 있다는 거다. 실제로 대한하천학회에 따르면 국토면적 대비 대 밀집도는 세계 1위다.
특히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은 흐르는 강에 보를 건설해 ‘죽음의 강’으로 뒤바꾸는 “총체적 부실”을 이끌었다. 아비게일의 이야기가 남다르게 전해지는 이유다. 다음은 지난 17일과 19일 두 차례에 걸쳐 아비게일씨가 발표한 내용이다.
[caption id="attachment_150810" align="aligncenter" width="650" class=" "] ⓒ정대희[/caption]
수몰 지역 토착민의 대규모 이주를 동반하는 댐 건설 사업은 해당지역 내에 빈곤과 사회혼란을 초래해 왔다. 필리핀의 경우, 거의 모든 대형 댐이 토착민 거주 지역에 건설되었다. 아시아 각지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대형 댐 건설 사업은 수몰지역의 경제와 환경뿐만이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서도 커다란 문제점을 낳았다. 토착민의 일상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 그리고 그 속에 남겨진 모든 것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땅은 곧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규모 토목사업에 따른 대규모 주민 이주는 일종의 ‘문화 말살(ethnocide)’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수몰지구 내 토착민의 생존권을 박탈하며 추진되는 대규모 댐은 ‘피의 댐(Blood dams)’이다. 세계 댐 위원회(WCD, the World Commission on Dams)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형댐으로 토착민 공동체의 경제가 몰락했다.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고 일자리도 모자랐다., 주거환경도 열악해졌다. 한 때 흔했던 화목과 마초도 이젠 귀한 것이 되었으며, 주민들의 열악한 영양 상태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필리핀에는 현재, 총 149개의 수력발전소와 16개의 지열발전소계획이 완료되었거나 공사 중, 또는 준비 중에 있다. 이와 같은 에너지프로젝트는 강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토착민뿐만이 아니라, 그 밖의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피해를 입힐 우려가 있다. 댐을 향한 끊임없는 집착은 토착민 공동체를 와해시키고 있다. 특히 민다나오 섬 3개 주를 가로지르는 풀랑기댐(Pulangi Dam)은 루마드족과 모로족(Lumad and Moro people)이 사는 23개 마을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 이는 아시아 토착민 조약(AIPP, Asia Indigenous Peoples Pact)이 필리핀 정부의 댐 건설과 관련해 지적한 사항이다.
필리핀 정부는 코타바토에 풀랑기댐(Pulangi Mega Dam V in North Cotabato), 리잘과 퀘존에 칼리와 또는 라이반댐(the Kaliwa or Laiban Dam in Rizal and Quezon), 파나이에 할라우댐(the Jalaur dam in Panay) 그리고 따락에 발록-발록댐(the Balog-balog Dam in Tarlac) 등을 비롯하여 더 많은 대형 댐 건설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특히 한국 수출입은행이 필리핀 정부와 맺은 차관계약을 통하여 건설되는 비사야스 칼리노그(Calinog in the Visayas)의 할라우강 다목적댐(The Jalaur River Multipurpose Dam)은 일로일로(Iloilo) 지역 인근에 영향을 미치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지금껏 댐 건설에 따른 피해자인 투만독(Tumandok) 토착민과 그 어떠한 협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위와 같은 대규모 댐들이 아직은 완공되지 않았지만, 토착민과 그 지원단체는 댐 건설이 불러올 악영향을 우려하여 광범위한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caption id="attachment_150811" align="aligncenter" width="433" class=" "] ⓒ정대희[/caption]
아동 학살을 비롯한 필리핀 정부의 폭력적 탄압
정부는 토착민과 그 지원 단체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하여 무력을 사용했고, 그 과정에서 살인을 비롯한 각종 인권침해 사례가 발생했다. 칼링가와 두마갓(the Kalinga and Dumagat)에서 시위대를 이끌었던 마크클리잉 두락(Macliing Dulag)과 니가노르 델로스 산토스 (Nicanor delos Santos)는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무력사용은 광산, 농장, 댐 또는 기타 에너지프로젝트로부터 조상의 땅과 자신들의 삶을 지키려는 토착민에게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다.
토착민은 자신의 땅과 재산에 대한 집단적 권리뿐만 아니라, 정부의 반란진압작전 과정에서 시민권과 참정권까지 박탈당하였다. 정부의 진압은 폭격, 방화, 집단학살, 식량공급중단, 고문, 임의체포, 불법감금, 비사법적 처형 그리고 강제추방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실제로 2010년 7월부터 2014년 4월 사이에 6명의 아동을 포함한 총 44건의 비사법적 처형이 이루어졌다. 또한, 5개 주에서 총 1,730호의 토착민을 강제 소개한 18건의 사례가 보고되었다. 그리고 총 9,754명의 토착민 학생들이 학대 및 감금당한 16건의 사건이 일어났다. 매우 충격적인 일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산업과 산업형 농업 또는 에너지개발계획에 의해 피해를 입고 있는 전세계의 토착민들은 각자의 장단기 자구책을 내 놓고 있다. 그들은 합법적인 수단뿐만이 아니라 그 밖의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자신들의 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봉쇄, 가두시위 또는 피켓 시위와 같은 직접적인 행동은 가장 일반적인 저항이다. 그리고 동일한 입장에 놓인 타 지역의 주민 및 그 지원단체와의 연합으로 저항을 하고 있다. 또한 정부기관에 대한 로비와 지역적, 전국적 또는 국제적인 홍보 교육캠페인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UN토착민 권리에 관한 상임포럼(UN Permanent Forum on Indigenous Peoples Rights)과 같은 국제기구와 협업도 하고 있다.
대형댐의 대안은 소수력 댐이다
한편, 토착민들은 대형댐에 대한 대안으로 소수력댐을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코르 딜레라의 차퓨센 망굼-우마(CMO, Chapyusen Mangum-uma Organization)가 추진했던 소수력발전 프로젝트(MHP, micro-hydro project)를 지역 공동체 기반의 전력공급 시스템의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MHP는 지역 주민들이 힘으로 필요한 모든 전력(조명, 도정, 사탕수수가공, 금속가공 및 목공)을 자급하고 빈곤층에게도 그 혜택을 나누어주는 사업이다.
지역 주민들이 사업의 전 단계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자체적인 조직력을 강화할 수 있고 사업추진에 소요되는 노동력은 전통적인 품앗이(ubfo)를 통하여 동원된다. 따라서, 각 구성원들은 공동의 목표아래, 각자가 가진 재능을 십분 활용하고 교환하면서 전통적인 공동체 가치를 재건할 수 있다.. 그리고 일부 지역의 토착민들은 외부인으로부터 자신들의 토지와 재산을 지키기 위해 무장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러한 저항은 결국 자주권 선언으로 이어지고 있다.
끝으로 한 가지 부탁이 있다. 필리핀 정부의 무자비한 댐 건설 뒤에는 한국이 수출입은행이 있다. 이곳을 통해 자금지원이 되면서 필리핀 정부의 폭압적인 댐 건설이 계속되고 있다. 이를 한국의 시민사회단체가 막아주고 한국 정부는 지원을 중단해주길 바란다.
한편, 아비게일은 2014년 SBS 물환경대상 국제부문 수상자이다.
[caption id="attachment_150812" align="aligncenter" width="650" class=" "] ⓒ정대희[/cap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