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濕地)는 흔히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알려지며, 그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습지의 사전적 정의는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관계없이 민물 담수 혹은 염수, 민물과 해수가 혼재하는 기수가 영구적 또는 일시적으로 그 표면을 덮고 있는 지역으로서 국내에서는 내륙습지와 연안습지, 인공습지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지구의 역사와 함께하는 석호 

이러한 습지는 지형/지리적 조건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분류되는데, 그 중에서 석호(潟湖. Lagoon)라는 것이 있다. 석호가 형성되는 과정은 지구의 기후변화 역사와 관련 있다. 마지막 빙하기인 약 1만 8천 년 전후 해수면 하강으로 하천의 침식이 강해지면서 골짜기가 형성되고, 약 4천~6천 년 전 기후가 높아지던 후빙기에 다시 해수면 상승으로 다시 해안 저지대와 골짜기가 침수되면서 바다가 육지 쪽으로 굽어 들어온 수역인 만(灣)이 형성된다. 이후 연안을 따라 흐르는 연안류에 의해 운반되는 모래 등에 의한 사주(砂洲. Sand Bar) 혹은 사취(砂嘴. Sand Split))가 만의 입구를 막으면서 형성되는 곳이 석호다. 이러한 이유로 일반적으로 석호는 기후변화와 지각변동, 연안류에 의한 모래톱 등에 의해 약 8천 년 전에 형성된 자연호수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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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 화진포의 형성과정 출처 : 강원평화지역국가지질공원 https://koreadmz.kr


동해안의 주요 석호 습지 

국내에는 석호습지가 국립습지센터에 의해 내륙습지로 분류된 전체 2,499 지점 중 약 20개 지점이 있으며, 이중 동해안에 19개 지점이 있다. 구체적으로 강릉시에 6개 지점(앞개, 풍호, 하시동리, 경포호, 순포호, 향호), 양양군에 5개 지점(가평리 1-2, 염개(큰, 작은), 쌍호, 군개), 속초시에 2개 지점(영랑호, 청초호), 고성군에 6개 지점(선유담, 송지호, 광포호, 봉포호, (구)봉포, 화진포)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강릉시 경포호 및 속초시 영랑호, 고성군의 송지호 및 화진포처럼 내륙호수의 국민관광지로 알려져 있거나, 속초 청초호처럼 내륙항으로 알려진 곳도 있다. 이외에도 석호와 유사한 우각호인 고성의 천진호, 양양의 매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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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 강원도 주요 석호(19개 지점) 및 우각호(2개 지점) 위치도
  

이들 중에서, 경포호(2016) 및 순포호(2016)는 습지보호지역, 쌍호(2016) 및 가평리(2016)는 습지개선지역으로 관리 중이며, 또한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강릉 경포호(2013)는 명승, 매호(1970) 주변지역은 천연기념물, 쌍호(1997)는 문화재보호구역,  화진포(1971)는 명승으로 지정되어 관리 중이다.  


바다와 차단된 석호 

석호는 사주 및 사취에 의해 바다와 공간적으로 분리되었으나, 최근에는 주변부 개발에 의해 바다와 인위적으로 차단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에 방문한 석호 중 영랑호 역시 해수유통이 되는 구간 일부만 남기고 주변부는 모두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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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영랑호 해수유통 구간

석호 습지의 변화는 주변부 개발 이외에 습지 자체의 변화로도 나타난다. 양양국제공항 휴게소 인근에 위치한 염개늪(습지)은 주변 지역 개발은 없으나, 석호 가장자리 주변부의 육화 현상이 눈에 뛰게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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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큰 염개늪(습지). 가장자리 부분으로 소나무의 진입이 확인되고 있다.

염개늪은 큰 염개늪과 작은 염개늪으로 구분되며, 큰 염개늪은 가장자리 부근을 중심으로 전후방 모두 소나무의 진입이 확인되고 있다. 반면, 작은 염개늪의 경우 수면적의 일부 변화가 확인되었으나 이는 최근 강우와 관련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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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작은 염개늪(습지) 전경. 2007년(상), 2018년(하)


석호 주변 변화는 강릉 경포호 석호 주변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경포호 경관 자체는 큰 변화가 없으나 바다와 인접한 주변 지역에는 10년 전과 비교하여 호텔과 리조트 등이 건설되어 경관 자체가 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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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경포호 2007년(상) 2018년(하) 사진


가시연과 큰고니를 만날 수 있는 경포가시연습지 

경포호는 1920년대 까지만 해도 넓이가 약 160만㎡, 둘레가 약 12㎞에 달하였으나, 1960년대 주변부가 농경지로 개간되고 인근 하천의 유로 변경 및 호안 공사 등으로 인해 규모가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 2000년대 초반에 경포호의 원형을 찾으려는 시도가 진행되어 경포호 상부(서쪽) 지역은 2005년 농경지로 개간되었던 지역을 습지로 재자연화 하기 위해 일부를 매입하여 경포가시연습지를 조성하였다.  

이후 가시연을 비롯하여 77과 237조의 식물과 큰고니를 비롯한 42과 152종의 조류가 찾아오는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변모하였다. 현재 경포가시연습지에는 방문자센터(강릉시 경포로 330. 033-640-4450)를 중심으로 매일(09:30~17:30)까지 개인 및 단체를 대상으로 습지해설과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4월~10월에는 습지학교를 통해 석호와 습지생물 관찰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11월~3월에는 철새학교를 통해 철새의 종류 및 관찰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사전예약을 통해 신청할 수 있으며, 강릉시를 방문하는 경우 경포호 석호 생태계를 이해하는데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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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경포가시연습지의 가시연(상), 흰뺨검둥오리(중), 민물가마우지(하)


같은 석호. 같은 보호지역, 다른 관리

강릉시에는 경포호 이외에도 여러 석호 습지가 있다. 이중 순포습지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경포호와 함께 2016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보호 중이다. 그러나 방문자센터가 있어 석호 습지생태계를 안내하던 경포호와 달리, 순포습지는 습지보호지역을 알리는 안내판만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더구나 강릉에서 주문진으로 향하는 해안로 주변에는 습지보호지역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없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경포호에는 석호 생태계를 알 수 있는 방문자센터 및 생물안내판 등이 충분하게 설치되어 있는 반면, 도심에서 벗어난 지역에 위치한 순포습지는 생태계 현황을 알 수 있는 안내판조차 없다는 것이 아쉬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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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순포습지 전경. 방문자 없이 왜가리 홀로 습지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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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이곳이 습지보호지역임을 알리는 안내판(좌). 왜가리(우)


석호 습지가 방치되는 것은 순포습지 만이 아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경포호 및 청초호, 영랑호, 송지호, 화진포 등 규모가 큰 주요한 석호 습지들은 관광지로 인식되어 많은 방문자가 찾아오고 있다. 그러나 순포습지를 비롯해 인근 향호를 비롯한 대부분의 석호들은 찾는 이 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순포습지 인근의 향호와 문화재보호구역에 포함되어 있는 매호 역시 방문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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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향호 석호습지(좌), 매포 석호습지(우)


향호 주변에 설치된 산책로를 강아지 따라 산책하던 주민은, “이곳에서 30년 전 만 해도 재첩을 잡았었다. 지금 사람들은 여기가 석호라는 것을 모른다. 50대 정도 되면 예전에 여기 모습 다 기억한다.”라며 예전 모습을 한참 설명했다. 실제로 2009년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가 향호를 비롯하여 고성 송지로 및 속초 영량호 등 3개 석호를 ‘기수재첩어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한 적 있다. 또한 고성군은 2017년 송지호 일원에 기수재첩 종묘를 방류한 바 있다.  

향호와 매호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군개습지는 리조트와 운동장, 모 대학교 연수원 자리 사이에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으며, 가평리습지(1, 2)는 모두 최근 10년 사이 주변에 연수원 등이 들어섰다. (구)봉포와 봉포, 천진호는 대학 및 병원, 아파트 단지 건설 등으로 주변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했다. 선유담 역시 안내판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석호 보전에 지혜 모아야 

석호 습지는 여전히 2가지 인식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개리와 황조롱이, 남생이 등 천연기념물 8종과 물수리 및 가시연 등 멸종위기종 8종의 서식지이며, 가시고기 등 83종의 어류가 서식하는 공간 석호 습지. 바다와 민물 담수가 만나는 공간이었으나 현재는 절반이 해수유통이 차단된 공간 석호 습지. 대중적인 관광지 혹은 방치된 늪지로 인식되는 공간 석호 습지. 4,000년에서 8,000년의 자연사적 신비를 간직한 동해안 생태계의 보석 같은 공간 혹은 여전히 개발할 수 있는 유휴지로 바라보는 시선. 같은 공간인 석호습지를 둘러싼 서로 다른 시선이다.  

속초시에는 영랑호와 청초호라는 대규모 석호가 있다. 청초호와 영랑호는 석호습지라는 대중적 인식 없이 관광지로 인식되고 있다. 석호 보전활동을 하는 속초고성양양환경연합의 김안나 사무국장은 겨울철 청초호 및 영랑호 등을 대상으로 매월 2회 주기적인 철새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 희귀종인 ‘붉은부리큰제비갈매기’와 비강에 인식표를 단 흰뺨검둥오리 등을 관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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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발목과 부리 비강에 인식표를 달고 있는 흰뺨검둥오리 / ⓒ속초고성양양환경연합 김안나 사무국장

김안나 국장은 “시민들은 석호라는 인식이 별로 없다. 통상 호수로 인식하고, 석호 습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 지자체도 습지가 아니라 관광지로 인식한다. 6천년된 자연습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태적 가치에 대한 홍보와 보호조치가 시급한 상황이다. 주기적인 모니터링 정점을 늘리면서, 그 결과를 바탕으로 석호 습지의 중요성을 알려나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10년 만에 다시 찾아본 석호습지는 그 주변 경관이 많이 변화했다. 습지의 면적 변화는 크지 않은나, 주변부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도로와 택지, 건물들이 주변에 들어서고 있다. 일부 석호는 하천유입부를 중심으로 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석호습지 생태계의 중요성을 알려줄 보전조치는 늦어지고 있다. 또한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도 지자체와 관치기관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것이 현실이다.  

석호 자체가 우리 시대에 사라지게 전에, 더 늦기 전에 전체 석호에 대한 보호지역 지정과 주기적인 생태계조사, 적절한 보호관리 사업과 인식 증진 사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동해안 생태계의 숨겨진 보석 석호습지를 위한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과 사진 : 명호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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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국립습지센터 블로그(https://wetlandkorea.blog.me/)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