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사르데냐섬의 신비한 돌탑들
홍선기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교수, 생태학)
[caption id="attachment_194096" align="aligncenter" width="640"] 사르데냐섬 사사리시 인근의 해변ⓒ홍선기[/caption]
<섬의 날> 제정을 기념하여 목포MBC에서 주관한 글로벌 토론회에 저명한 섬 연구자를 초빙하여 강연을 들었다. 그 중 한분은 영국 캠브리지대학(Cambridge University) 교수이면서 이태리 사사리대학(University of Sasari)의 교수인 글로리아 풍게티(Gloria Pungetti)교수. 풍게티교수는 유럽 국가의 주요 섬에 대한 자연경관, 사회경제, 역사문화에 대한 심도있는 공동연구를 통하여 미래 지속가능한 섬 발전에 대한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프로젝트인 ESLAND(European Culture expressed in Island Landscapes)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에는 이태리의 베네치아를 비롯하여 사르데냐(Sardegna)섬이 포함되어 있다. 사사리대학은 사르데냐에 있으며, 필자는 2012년 10월 ESLAND 심포지엄의 발표자로 초청을 받아 사르데냐섬에 간 적이 있다.
[caption id="attachment_194097" align="aligncenter" width="640"] 사르데냐의 누라게 유적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a/af/Foto_aere_del_Nurag…)[/caption]
사르데냐섬은 이태리 반도 서부 지중해에 위치하는 두 번째로 큰 섬(2만4000㎢)으로서 150여만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섬이다. 지중해는 유럽 고대사에서부터 매우 중요한 교통 교역로의 역할을 하였고, 시실리섬을 비롯하여 사르데냐섬은 지중해를 지키는 로마제국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이 바로 위에는 나폴레옹과 관련된 프랑스령 코르시카섬이 있다.
사르데냐는 대체로 대지상(臺地狀)의 산지가 많고, 저지대에는 평지가 많아서, 고대로부터 정주하는 부족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역사의 기원을 알 수 없는 원형의 거대 돌탑과 돌 유적들이 섬 전체에 산재하여 분포하고 있다. ‘누라게(Nuraghe)’라고 명명하는 이 거대 돌탑들은 BC 2,000~730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사르데냐 섬에만 7천여개 정도가 분포하고 있지만, 고고학자들은 여러 흔적의 조사를 통하여 1만여개의 누라게가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이처럼 사르데냐는 고유한 누라게 문명(Nuragic civilization)의 발생지로 유명하다.
[caption id="attachment_194098" align="aligncenter" width="640"] 누라게 유적인 돌탑의 외부 전경. 출입구는 매우 작다.ⓒ홍선기[/caption]
돌탑은 천정이 막혀있고, 여러 곳에 출입구를 만들어 놓았으며, 내부에는 수십명이 생활할 수 있는 넓은 공간도 있다. 여러 가지 특이한 구조로 봐서 신당(sacred place, 神堂)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구릉지나 평지에 많은 것으로 봐서 주거지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부족장의 주택, 군사 요충지, 회의실, 종교 사원, 거주지 등 조합된 기능을 갖추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 일부 누라게의 경우,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적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방어용으로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다. 또한 부의 상징일 수도 있고, 주변 토지의 소유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다. 일부 학자들은 사르데냐의 누라게와 지중해 동부에서 유입된 메소포타미아 돌탑과 유사함을 주장하면서 문화 유입에 의한 결과로 보는 경향이다.
[caption id="attachment_194099" align="aligncenter" width="640"] 누라게 돌탑의 내부에는 생활수를 공급할 수 있는 우물이 있다. ⓒ홍선기[/caption]
사르데냐섬 전체에 분포하는 돌탑과 출토된 기타 유적들을 분석하면 이 누라게 문명을 일으킨 부족은 단일 부족이 아니고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세 가지 다른 부족이 지역에 따라서 북쪽의 코르시카를 통한 중부 유럽의 문명, 동쪽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서쪽의 이집트를 비롯한 해양민족의 영향으로 나눠질 수 있다. 이처럼 기원을 달리는 고대문명이 종합적으로 한 섬에서 뭉쳐져서 나타나는 경향도 드물 것이다.
[caption id="attachment_194095" align="aligncenter" width="640"] 사르데냐의 누라게 유적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a/af/Foto_aere_del_Nurag…)[/caption]
사르데냐섬은 현재 이태리의 영토이지만, 누라게 문명의 발생지이고, 이후 페니키아인들의 식민지였다가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사라센 제국의 영향권에도 있었다. 18세기 이탈리아 국가가 생기면서, 이탈리아의 영토가 되었다. 사르데냐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문화 정체성은 이태리나 유럽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고유문명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역사에 대한 자부심 때문인지 사르데냐는 이태리에서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사사리 시내를 다니다 보면, 여기저기 벽보에 독립을 주장하는 격문과 그림들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르데냐의 힘든 역사는 사사리시의 부속 섬인 아시나라(Asinara Island)에서도 엿볼 수 있다.
[caption id="attachment_194100" align="aligncenter" width="640"] 아시나라섬에 있는 마피아 수용소 정원. 당시 마피아들이 노동을 하면서 만들었다는 정원인데, 나름 조직의 심볼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이곳 감옥은 개방되어 생태관광 체험프로그램에서 숙박이 가능하다고 한다.ⓒ홍선기[/caption]
아시나라섬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질병 격리소가 있었기 때문에 ‘죽음의 섬(Isola del Diavolo, Devil's Island)’으로 불렸고, 이후 1970년대에는 마피아 소탕으로 잡힌 폭력단들을 수용하는 교도소로 이용되었다. 이러한 악명 높은 아시나라섬은 1997년 10월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숨겨진 자연경관과 독특한 생물자원을 활용한 생태관광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고, 마피아를 수용했던 감방은 생태관광 프로그램에서 숙박 체험이 가능하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바로 이런 곳에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