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시장의 명단 공개, 왜 항의 받았을까
[지방정부 이렇게 바꾸자①] 무상교복 반대 시의원 공개했다 논란... 무기명 투표 뒤에 숨은 지방의회
박근용 참여연대 집행위원
지방선거가 30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칭찬보다는 욕먹는 일이 많다는 것은 국회나 지방의회나 똑같지만, 둘 사이에 확연히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본회의에서 찬성표를 던진 의원, 반대표를 던진 의원이 누군지 국회에서는 알 수 있지만, 지방의회에서는 알 수 없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방의회와 국회의 결정적 차이
▲ 국회 본회의 표결 현황 국회 홈페이지에서는 본회의에서 표결된 모든 안건에 대해 찬반 의원 명단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국회 홈페이지 '본회의 표결정보'에 올라와 있는 2018년 3월 30일에 표결처리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의원 명단 부분을 갈무리한 화면이다.
국회 홈페이지에는 '본회의 표결정보' 코너가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가 보면,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된 법률안, 예산관련 안건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 반대표를 던진 의원을 모두 알 수 있습니다(https://bit.ly/2Iav0Z8). 각 안건 회의록을 보아도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지방의회에 가면 그렇지 않습니다. 지역주민들이나 정당 간에 의견이 갈리는 조례안(지방의회에서 만드는 것은 법률이 아니라 조례)이나 예산안을 표결했는데 누가 찬성, 반대, 기권했는지 회의록에서도 홈페이지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의원들이 무기명 투표를 해버리기 때문입니다.
무기명 투표 속에 숨어버린 시의원 누굴까
▲ 2017년 11월 성남시청 앞에 걸려 있는 펼침막
이재명 성남시장의 정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잘 기억할 사례입니다. 2017년에 이 시장이 '고교 무상교복 지원' 예산이 들어간 추경예산안을 성남시의회에 제출했습니다. 그러자 성남시의회 예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무상교복 예산을 삭감한 추경예산안을 본회의에 넘겼습니다. 9월 22일에 본회의가 열리자 민주당 의원들이 무상교복 예산을 되살린 수정안을 제출하고 의원들이 투표를 합니다. 성남시의원 32명중 31명이 출석하여, 16명 반대, 14명 찬성, 1명 기권으로 부결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시장이 예결특위에서 반대의견을 냈던 8명의 명단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며 시민들이 이들에게 항의하게끔 분위기를 띄웠습니다. 그런데 그 중 당시 바른정당 소속 A의원은 자신은 본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지지 않고 기권했다며 항의합니다.
이 시장의 실수였습니다. 게다가 이 시장은 예결특위에서 반대한 8명의 이름을 거론하기는 했지만, 정작 본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진 16명의 이름은 거론하지 못했습니다. 무기명 투표를 했기 때문입니다.
더 역설적인 상황은 이것입니다. 이 시장과 같은 정당(민주당) 소속 의원이 무상교복 예산안에 반대 표결했습니다. 찬성표가 14명이니, 민주당 의원 1명은 반대표를 던졌다는 것인데, 그게 누군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무기명 투표 뒤에 숨어버린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청소년 알바보호 조례안·무상급식 예산안도 무기명 투표
2017년 10월 25일, 대구광역시 수성구 의회는 청소년 아르바이트생의 권리 보호 조례 제정안을 폐기하였습니다. 본회의에서 18명이 무기명 투표했는데, 찬성 7표, 반대 11표로 부결되었습니다. 반대표를 던진 의원들이 무기명 투표 뒤에 숨고 싶었을 것입니다.
▲ 대구 수성구 의회 회의록 2017년 10월 25일 대구광역시 수성구의회 본회의에서 청소년 알바 보호에 관련한 조례안을 무기명 투표방식으로 표결하자는 박원식 의원의 제안과 이에 대해 이의가 없어서 무기명 투표가 확정된 상황이 의회 기록에 남아 있다. 당시 회의록을 대구시 수성구의회 홈페이지에서 갈무리한 화면.
서울시의회에서도 무기명 투표가 벌어집니다. 상인들의 이해관계가 많이 걸린 서울특별시 주차장 설치 및 관리조례 일부개정안이 2016년 7월 6일에 통과됩니다. 찬성의원 58명, 반대의원 24명, 기권 8명이었습니다. 상인들 눈치가 보여 무기명 투표가 시행된 사례로 보입니다.
2015년에 인천시의회는 인천 강화군 중학교 1학년 무상급식 예산안을 무기명 투표로 처리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무기명 투표를 제안했습니다. 인천시의회의 다수당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무상급식 반대 당론에 구애받지 말고 소신 표결할 것을 기대한 일종의 작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찬성 14명, 반대 19명, 기권 1명으로 부결되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이탈표가 2~3명 정도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작전은 실패했고 반대표를 던진 의원이 누군지는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조례안-예산안, 무조건 기명 투표로 표결해야
▲ 성남시의회 회의규칙 의원들이 동의하면 어떤 안건도 무기명 투표방식으로 표결할 수 있게 되어 있는 성남시의회 회의규칙 41조 2항. 이런 규정은 전국 어느 의회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적용되고 있다
물론 지방의회 본회의 안건의 대부분은 상임위에서 합의처리된 것이기 때문에 본회의에서는 만장일치로 처리됩니다. 가끔 쟁점이 뜨겁지 않은 안건들이 기명투표로 처리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안건인데도 의원들이 원하면 얼마든지 무기명 투표 뒤에 숨기가 가능하고, 이러한 일이 반복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가 조사해보니 대전광역시의회, 전북도의회, 춘천시의회, 여수시의회, 익산시의회, 광주광역시 동구의회 등에서 무기명 처리된 조례안, 예산안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충북도의회와 대구광역시의회에서는 손을 드는 방식, 즉 거수투표를 한 뒤에 숫자만 세고 찬반 의원 명단은 기록에 남기지 않는 방식을 쓰기도 했습니다.
간혹 국회에서도 무기명 투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국회의장 선출안, 의원징계안같이 '인사'에 관한 특수한 경우입니다. 이런 안건도 기명 투표로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미국이나 브라질에서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원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의원이 찬반입장을 말하는 방식 '호명 투표'로 처리합니다.
무기명 투표방식 뒤에 숨어버리는 자세는 무책임합니다. 이번 지방선거에 나온 의원후보자라면 모든 안건을, 그게 어렵다면 지금의 국회처럼 최소한 조례안이나 예산안만큼은 '절대로' 무기명 투표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합니다. 지방의회의 오랜 악습과 적폐도 끊고 청산해야 합니다.
6월 13일에 투표장에 가기 전에, 지방의회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에게 물어봅시다.
"당선되면 무기명 투표 방식이 사라지도록 할 거예요, 안 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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