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장님, 사직합니다.

유난히도 매서웠던 지난겨울, 언제 그랬냐는 듯 봄기운이 따스하게 대지를 덮어주고 있군요.  그런 봄기운과 같은 따스한 주님의 은혜로 인사 올립니다.  아울러 총 회원 여러분에게도 주님의 평화의 인사드립니다. 

먼저 지난 1월 22일 총회가 열리던 첫날 저녁이 생각이 나는군요.  저의 복권문제로 인해 오랜 시간동안 격론이 벌어지던 날 말입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우려와 염려로 반대하는 분들... 그러나 기회를 주자는 분들... 결국 해서는 안 될 표결까지... 다들 부족한 저를 사랑해 주셨던 분들입니다.  결국 ‘복권가결’이란 결정에 저는 5년 근신은 물론 복음교단에 머무는 마지막 날까지 낮추는 자세로 저의 현장 자리에서 머물 것을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계획은 다른데 있었음을 전혀 몰랐습니다.

복음교회에 몸담고 있던 지난 20년(1989년~2009년)의 세월동안 ‘복음교회, 이건 아니다’, ‘복음교회다운 교회를 세우자’고 무던히 몸부림 했었습니다.  밖에서도 암울한 우리 땅의 현실... 우리 교회의 모습에 슬퍼하고 분노하며... 43년을 싸워 왔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것은 밖이 아니라 오롯이 저 자신 안의 문제였습니다.  주님은 아주 작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무시해 버린 저에게 모진 채찍을 들기로 하셨나 봅니다.  그래서 아주 진짜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기로 작정하셨나봅니다. 

서지현 검사의 이른바 ‘미투’ 폭로가 있던 이틀 뒤, 1월 31일에 폭로된 저의 감춰졌던 부끄럽고 민망한 사건을 백일하에 들춰내셨습니다.  세상의 하찮은 철거민이었던 민중 여인... 그녀의 입을 통해 매를 드셨던 겁니다.  저는 당일 즉시 그녀에게 진정어린 사과를 했고 며칠 후 그녀는 제게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로 마음을 전해왔습니다.  며칠 부산지역 시민사회에서는 혼란스러웠지만 부산지역은 물론 전국 기독교계의 발 빠른 조처가 뒤따랐던 몫도 컸습니다.  저는 기독교계의 ‘입장문’에 발표한 약속대로 ‘공개사과문’을 내기로 했고, 2월 7일 페이스북에 게시한 걸 피해자도 받아 자신의 계정에도 올렸습니다.

그런 뒤 일주일여 만에 그녀는 ‘공개사과문’을 자신의 계정에서 내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변에서 그 정도면 되었으니 내리라는 권면전화에도 불구하고 내릴 수 없었습니다.  내 자신의 용서가 아직 마무리가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순간의 욕정을 제어하지 못했던 부끄러움보다, 그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스스로를 두둔하며 합리화했던 자기기만 죄책감이 점점 저를 옥죄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던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지방회장에게 뜻을 전하려고 전주까지 찾아갔었습니다.  10여 일간 목에 걸고 다니던 ‘미투, 나는 성추행한 죄인입니다’란 명패를 단채로 말입니다.  하지만 후배인 지방회장님의 간곡한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10여명도 채 안 되는 우리 공동체 교인들 앞에 ‘고해성사’를 하고, 오랫동안 상징처럼 이미지화 되어버린 상투와 수염을 미는 것으로 대신하였습니다.  또 제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공개사과문’도 장기간 제 마음이 허락될 때까지 게시하여 두기로 했습니다.  2월 7일 이후 3월 12일까지 사건의 파장은 더 이상 확장되지 않았고 잦아들었습니다.  그런데 ‘부산일보’의 뒷북치기 보도가 2차 파장에 불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온라인 오프라인 온 언론 매체들이 ‘받아 적기’로 번져나가더군요.  SNS 상과는 또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빗발치는 기자들의 전화와 내방에 최선의 친절과 진정성으로 대했습니다.  그렇지만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가지 않도록 당사자의 허락여부를 확인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피해자 그녀에게도 문자로 알렸구요.  예상과 달리 그녀는 보도에 적극 협조하는 것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모두 주님이 예정한 섭리였을 겁니다.  이젠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였던 제가 오롯이 받아야 할 몫이라고 담담히 수용할 뿐입니다.

총회장님,

사직의 변이 쓰다 보니 늘어지고 말았군요.  저는 이제부터 ‘기독교대한복음교회’가 안수하여 맡겨주신 교회의 성스러운 목사직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부자격자입니다.  아니 교단을 넘어 기독교의 이름으로 목사라는 직책도 격에 맞지 않는 자리에 떨어졌습니다.  이미 우리사회에서는 기독교와 교회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지만, 예수님의 진정한 정신과 실천을 따르려는 교회가 남아 있는 이상 저 같은 부 자격 목사는 물러남이 당연한 일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교회법에 따라 저의 목사직을 거두어 주시고 교단의 누가 되지 않도록 조처해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인간적으로 오랜 정분과 동지애를 나눴던 교단내의 선후배님들과 교우님들, 또 기독교계 진보적 운동의 선후배 동지들 그립고 아쉽습니다.  간디는 ‘기독교는 싫지만 예수는 좋다’라 했다지만, 기독교에는 물러가더라도 예수님에게는 아직 ‘사표’낼 자격은 아닐 터이기에, 노숙인 형제들의 삶의 바닥에 더 깊이 천착하며 남은 생을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독교대한복음교회’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초라한 모습으로 떠나는 저를 위해서도 기도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사랑합니다.

2018년 3월 14일 부활의집에서 김홍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