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채변봉투라는 것이 있었다. 똥을 검사해서 기생충의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다. 기생충이 있는 아이들은 앞으로 불려나가 약을 받아먹었다. 그렇게 불려나간 아이들은 창피함을 감수해야 했다. 나 또한 한 번 불려나간 적이 있다. 부끄러웠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못사는 것은 아니었기에 부끄러움의 근원이 가난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이 국가로 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너무나 한 참 후에야 알았다. 국가는 인구를 관리한다. 질병 또한 국가의 관리영역 하에 있다. 근대의 국가는 노동력을 위해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린다. '청결한 인간'이라는 국가의 기준안에 들어있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북한병사의 기생충은 그가 '국민'의 범주에 들어있지 않았음을 상징한다. 근대적 국가의 외부인인 탈북자들은 이런 국가의 관리기준으로 부터 벗어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마치 초등학교의 선생님처럼 이국종선생은 북한병사를 앞으로 불러낸 것이다. 아이의 창피함을 배려치 않은 채 자신도 의식치 못한 국가의 관리체계를 가동시키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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