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포천(堀浦川)Ⅱ

물위원회 위원장 김성근

앞에서 언급했듯이 굴포천은 “판개”다.

비록 굴포천이 최초에는 인공적으로 조성되었다고 하나 부평골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계양구, 서구, 부평구, 남동구에 걸쳐 있는 한남정맥 동쪽의 크고 작은 물줄기는 모두 굴포천에 합류되어 한강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우리나라 하천의 역사가 모두 그러하듯이 굴포천 역시 오염의 속도가 인구의 밀집속도(도시발전속도)와 같이 급속도로 오염되기 시작했다. 금마산(인천가족공원) 칠성약수터에서 발원한 굴포천은 부평농장(남동구 간석3동)의 음성나환자촌에서 양계를 시작하면서 모든 생활 오폐수가 굴포천 상류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신촌(新村)과 다다구미(多田組)에서 여과 없이 버려지는 모든 것들이 그대로 굴포천에 쏟아져 들어왔다.이렇게 방치되면서 굴포천은 부평삼거리부터 부평구청 건너편까지 완벽하게 복개되었다. 이렇게 복개된 하천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으며 찾을 수 있는지 많은 고민을 하여야한다.

그래도 굴포천은 꿋꿋하게 흘러 부평벌을 적셔주었으나 큰비만 오면 한강수위가 굴포천수위보다 높아져 역류하며 부평평야, 부천평야의 물난리를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에 김포신곡에 양배수 펌프장을 만들었다. 이러한 연유로 굴포천유역의 홍수방지를 위하여 방수로 계획이 수립되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아라뱃길로 변했고 이 뱃길도 계륵이 될까봐 걱정된다.

2004년부터 굴포천 자연형생태 하천계획을 수립하고 수많은 토론을 통하여 풍납취수장에서 한강원수를 유지용수로 사용하기로하고 2006년에 시험 통수식을 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굴포천이 2016년 12월 국가하천으로 지정되고 미군부대의 이전과 함께 굴포천 상류복원작업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국가하천으로 되었기 때문에 인천시의 예산부담은 덜 수 있으나 복원작업이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주민 모두가 감시하고 주민의견이 반영되어야한다.

다시 변하는 굴포천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