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과 원유를 싣고 가던 허베이스피리트호(號)가 충돌하여 약 10만 톤이 넘는 원유가 태안 앞바다를 뒤덮었던 사고가 있었다. 인근 지역의 해양생태계는 물론 지역주민 건강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 전례 없는 대형 해양오염 사고였다. 해양경찰, 주민, 군인, 자원봉사자들을 포함하여 총 2백 10만여 명이 모여 대대적인 방제작업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황폐했던 태안 앞바다는 표면적으로나마 예전의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그러나 방제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오염물질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신체 및 정신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에 환경부는 2008년 태안환경보건센터(이하 환경보건센터)를 설립하고 지난 10년 간 기름유출로 인한 주민 및 방제작업 참여자의 건강영향 조사와 연구를 진행해 왔다. 지난 9월 15일 만리포에서 유류유출사고가 발생한 지 10년을 맞아 환경보건센터의 연구 결과들과 해외 재난극복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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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원유가 유출되면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 각종 중금속 및 방제작업으로 사용된 유화제 등이 수중과 대기 중을 통해 신체에 유입된다. 방제 작업의 경우 직접적으로 피부에 접촉되기도 한다. 이는 암은 물론 외상 후 스트레스, 우울증, 불안증상 등을 야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경보건센터가 실시한 중장기 건강영향 조사 결과, 방제작업 기간이 길고 원유에 노출될수록 다양한 신체증상(어지러움, 구토, 가슴통증, 피로, 발열 등)을 호소하는 주민이 많았다. 1999년부터 2014년까지 5대 암* 발생률을 조사한 결과, 전국 평균 증가율은 0.7%인데 반해 태안 평균 증가율은 1.3%를 나타내 큰 차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남성의 경우 전립선 암 발생률은 2차 조사기간(`04~`08)에 비해 3차 조사기간(`09~`13)에 154%의 증가율을 보였고, 여성의 백혈병 발생률은 2차 기간보다 5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태안 지역의 사망률 조사 결과도 발표되었다. 모든 원인과 자살 사망을 놓고 분석한 결과, `07년, `09년, `11년에 태안에 거주하는 남성의 자살 사망률은 전국 평균 사망률보다 높았고 여성의 경우도 다른 군 지역보다 자살 사망률이 높고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유류유출로 인한 해양오염으로 어민들의 생계 활동이 중단된 것이 자살률 증가의 원인으로 추정된다. 이 뿐만 아니라 어육류 대신 채소 위주의 식생활을 하거나 뉴스 미디어에 의구심을 갖는 등 생활 전반에 대한 변화도 있다고 발표되었다.


대표적인 해외 유류유출 사고 사례를 공유하기 위해 미국의 독성학 박사이자 생태운동가인 리크 오트(Riki Ott) 박사와 스페인의 제마 로드리게즈 트리고(Gema Rodriquez-Trigo) 박사도 본 심포지엄에 참여했다. 미국의 경우 1989년 엑손발데즈(Exxon Valdez)호 사고와 2010년 딥워터 호라이즌(Deepwater Horizon)호 사고로 최악의 기름유출 피해를 경험한 바 있다. 엑손발데즈호 사고 후 원유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된 분산제(dispersant)가 기름과 합쳐지면 암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화학물질이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사고로 미국 정부는 유류유출 대응에 대한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하도록 하여 원유 회사들이 훈련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 2002년에 발생한 프레스티지(Prestige)호 사고로 호흡기 질환과 염색체 손상 문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고, 호흡기를 통해 원유 중 발암물질(VOCs, PAHs 등)에 고농도로 노출된 사람들은 유전자 변형비율이 높아 암 발생이 두드러진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고는 해양 환경에 유례없는 재앙을 불러왔지만, 동시에 유류유출이 인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적으로 살펴보게 되는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세워진 환경보건센터는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유류유출과 건강영향과의 상관성을 규명하고 있고, 사고에 대비한 환경보건 대응체계 구축에도 기여하고 있어 앞으로의 연구 활동이 주목된다. 


그러나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암을 유발하는 정확한 요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최소 10년에서 20년이 걸리기 때문에 긴 추적과 연구조사가 있어야 하고, 스페인 사례처럼 유류유출로 인한 염색체 손상 연구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된 연구와 법제가 마련되어야 충분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고, 장기적이고 다각적인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더불어 원인 분석뿐만 아니라 신체 및 정신 건강 피해를 위한 정책과 치료 프로그램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재난대응에 있어서 사고 시 소관 부처 간의 유기적인 대응 또한 제대로 발휘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고는 대응도 중요하지만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에 원유 회사들은 독성 유류물질 이동 및 관리 매뉴얼을 철저히 이행하고 안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해야 한다. 


 * 5대 암: 남성 - 위, 폐, 대장, 간, 전립선 / 여성 ? 위, 폐, 대장, 갑상선, 유방

 **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글/사진 : 신주운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