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결국, 세상을 새로운 방향으로 펼치는 힘은 '오늘, 여기에서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부터 나올 것입니다.
실존을 위협받는, 혹은 무시당하는 이들이 자신의 입으로, 글로 '이야기'의 조각들을 하나 하나 뱉어낼 수 있다면, 그 이야기들이 한 두사람에게라도 공명을 일으킬 수 있다면, '발화'를 꿈꾸는 이들이 더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 답을 하는 사람, 통역을 하는 사람, 그냥 지켜보는 사람, 행여 도움이 될 일을 찾아 대기하는사람들이 심야에 옥상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짧은 관념들을 소통하는데도, 시간은 무척이나 더디고, 모어와 낯선세계 언어의 시니피에들은 자주 어긋나고 미끄러집니다. 말하는 사람은, 내면의 복잡한 번민과 회한과 예감들을 몇 개의 단어의 조합에 담아내야만하는게 너무 힘들고..., 듣는 사람은, 통역자의 한국어 습득도와 감수성에 걸러져서 들려오는 한국어 조각들의 시니피앙들을 넘어 '이야기'를 재구성해야 합니다. 통역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인터뷰이이의 발화를 통해 전해받은 풍성한 맥락들을, 낯선 언어로 충분히 옮겨실을수 없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하는 수 없이... 듣는 이가, 자신의 상상력을 최대한 탄력적으로 만들어야하고, 감수성의 촉수를 섬세하게 뻗어야합니다.
참여자 모두의 정신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갑작스레 '멀티 태스킹' 하는 컴퓨터들처럼 처리 속도가 느려집니다.
여기는 지구인의 정류장 9월 15일 토요일밤의 옥상입니다.
지구인 대 여섯명이, '이야기'를 말하고, 듣고 있습니다.
'잘 소통'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이야기'는 형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야기'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삶도 펼쳐지지(develop)' 않을 것입니다.
"태초 (아직 삶이란 게 시작되지 않았을 때...)에 '이야기'가 있었다. " - 성서 첫 줄에 쓰인 말도 아마 그런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