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시 료지 선생님과의 인터뷰 1>  

- 2017년 4월 소식지 게재.  글:김미정 운영위원장

 

한국반핵의사회와 후쿠시마공동진료소는 2017년 1월 18일 국회세미나실에서 [방사능의 건강영향 : 후쿠시마와 한국원전주변]이란 제목으로 국제심포지움을 가졌습니다. 후쿠시마공동진료소측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이후 피폭으로 인한 갑상선암 발생으로 추정되는 환자분들을 대표하여 오코시 료지(大越良二)선생님이 참가하여 증언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증언을 듣고 좀 더 자세히 선생님의 상황들을 알고자하여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한국반핵의사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인 제가 질문지를 만들었고, 일본어 번역가분에게 부탁하였습니다. 다음은 선생님과 나눈 이메일 인터뷰 전문 중 1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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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6년 9월 갑상선암의 발견과 수술. 발견 당시의 증상,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➀ 발견하게 된 경위

2011년 3월 11일부터 현재까지 후쿠시마 현 후쿠시마 시에서 피폭에 노출되어 왔습니다.

2014년 10월, ‘후쿠시마 공동진료소’에서 건강진단. 그 때 갑상선암, 간, 췌장 등도 건강진단에 포함되었습니다.

2015년 1월, 갑상선암에 10mm의 결절(종양)이 발견되어 3개월 경과관찰 하기로 하였습니다.

3개월 후 초음파 검사 결과, 크기에 변화 없었으며, 이후 1년 더 경과 관찰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외에 “췌관이 크다”고 하여 후쿠시마 시 소재의 종합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으며 CT, MRI, 초음파 검사. 결과는 ➀ 담관 이상 의심, ② 췌관은 정상 판정으로 나왔습니다. 3개월 후, 후쿠시마 현 고리야마(郡山)시 소재 종합병원에서 진찰한 결과, 이상 없다고 하였습니다.

2016년 8월, ‘후쿠시마 공동진료소’에서 건강진단에서는 갑상선에 10mm 결절(종양) 보였으며 지난번과 같은 크기였으나, 국립 암연구센터의 기사(시노다[篠田]씨, 지난번과 동일)는 ‘천자세포진’ 진단을 권유하였습니다.

2016년 9월, ‘후쿠시마 현립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천자세포진 검사 결과, ‘좌엽 유두암, 림프절 전이 의심’으로 진단되었습니다.

 

② 발견 당시의 증상

■ 자각증상은 거의 없었습니다. 검사하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한 채 지나쳤을 것입니다. 알아채거나 자각한다고 할 때, 갑상선암의 증상과 외견상의 변화로 알 수 있게 됩니다. 건강검진 없이는 대부분 알 수 없습니다.

■왜 건강검진을 받았는가. 방사선 피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사선이 갑상선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체르노빌 사고를 통해 배워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후쿠시마 공동진료소’에서 검진을 받았습니다. 피폭이라는 사실 때문에 갑상선 검사는 필수적인 것이 되고 있습니다.

■ 하지만 2016년 6월부터 ‘후쿠시마현 소아과 의회’는 ‘갑상선 검사는 받지 않는 것이 좋다’는 요청서를 제출한 바 있습니다. 덧붙여 2016년 9월에 개최된 ‘후쿠시마 국제전문가회의’는 후쿠시마 현에 대하여 ‘갑상선 검사는 개인의 자유의사에 맡기는 것이 좋다’는 제언을 발표하면서 ‘국제적인 제3자 기관의 설치’ 필요성도 언급했습니다.(역자; 2016년 825, ‘후쿠시마현 소아과 의회’가 ‘건강 불안이 증대되고 있고, 과잉검사 문제가 있으니 검사를 축소해 달는 현립의과대, 나가사키 대학, 기타가 공동주최, 후쿠시마현, 히로시마대학, 일본의사회, 일본간호협회, 일본약제사회 등이 후원하는 회의. 2016년 9월에 제5회.)

■ 이런 배경 속에서 18세 이상 소아갑상선 검사를 받는 비율이 25%대까지 떨어졌습니다. 이 갑상선 검사를 받지 않는 청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 중 일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취직하여 일이 바쁘거나 휴가 받기가 힘들다는 노동조건에 원인이 있다고도 하고, ‘정부나 현 당국은 갑상선암은 방사능 영향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검사를 받으나 안 받으나 마찬가지’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갑상선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실태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검사를 받든 안 받든 상관없다는 식의 가벼운 의식이 있습니다.

 

2. 나의 활동 이력

 

■ 3.11 이전

고등학교 졸업 후, 국철(역자; ‘일본국유철도’의 약자, 1987년 분할 민영화로 해산)에 입사. 이후, 7년 동안 국철 노동자로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참가하였습니다. 그 후 구 사회당 계열 청년운동의 상근활동가. 약 20년간 기관지를 담당. 청년운동 후에는 일반기업 건설업계에서 업계전문지의 기자/편집자로서 12년간 일하였습니다. 이후 퇴직하여 장애인 취로지원사업을 공동으로 일으켜 2년간 종사 후, 운동방향의 차이로 인해 스스로 20여명 회원과 함께 2011년 2월에 현재의 ‘NPO 팜 히로노(Farm広野)]를 설립하였습니다. 그 직후 원전사고를 당하였습니다.

■ 3.11 이후

지진재해와 피폭 이후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 닥쳤습니다. 방사능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장애인 취로지원사업은 농사일을 통해 장애인의 취업의식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보니 거의 불가능해져서(방사능에 오염된 토양과 논밭으로 인해 못하게 됨) 고민스러웠습니다. 하지만 ‘NPO법인 체르노빌 구원 주부(中部)’라는 단체의 관계자들, 특히 가와다 마사하루(河田昌東) 선생님에게서 많은 지도를 받았습니다. 선생님에게서 지도 받은 것은

a. 체르노빌의 경험을 배우고 국내외 과학자에게서 배우기.

b. 건강을 지키는 활동. 특히 농산물의 세슘 함유 측정 활동, ‘후쿠시마 공동진료소’의 지원을 받음.

c. 농업을 지키는 활동. 농지와 목초지의 세슘 측정을 통해 제염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제언.

d. 취로지원사업으로는 ‘반다이 다르크’ 모임의 의존증을 앓는 분들(역자- 반다이(磐梯): 후쿠시마에 소재한 산. 다르크(DARC; 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의 머리글자를 조합한 조어, 약물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민간 재활시설.)과 5년간에 걸친 협동노동으로 무와 감자를 생산. 또한 지역의 정신 장애인들과도 농업 노동을 통해 교류.

■ 이러한 상황에서 A4판 8쪽 분량의 정보지『팜 히로노』를 매달 발행. 현재 1,000부. 23개 광역 지자체(역자; 전국은 47개)의 독자 약 200명에게 보내고, 지역 내에서는 500가구 가까운 농촌에서 호별 배포 200가구, 회람 300가구. 시내에서는 3개 대학, 현립/시립 도서관에 약 200부 보내고 있습니다.

 

3. 주위 사람들의 ‘수술 후’ 반응

 

(1) 지역 배경

앞서 언급했듯 6년에 걸쳐 『팜 히로노』를 가가호호 배포하다 보니 사이가 좋아지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인사 정도만 하는 사람, 용건만 주고받는 사람 등 폭넓게 주민들을 접합니다. 특히 농민들과 접점이 많았습니다. 농촌도 피폐해지다 보니, 몇 안 되는 전업농가(히로노 지역에서는 약 80가구 중 3가구 뿐)를 제외하면 모두 “나의 대에서 농사일은 끝”이라고들 합니다. 자작농으로서 일본을 지탱해왔지만 쌀 가격 하락으로 몰락하기 직전입니다. 원전사고로 그 속도가 더욱 빨라졌습니다. 그런데도 의식은 봉건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아, 옛 지주 등 유력자들이 시키는 대로 지내왔습니다.

우리 활동에도 동조하지 않고 농민 특유의 의심 많은 특성을 보여왔습니다. 방사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역자; 오염을 믿지 않음). 하지만 농작물 기형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고, 노인들의 급사도 잇달았습니다. 여하튼 장례식이 많았으니 말입니다. 때문에 지금도 불안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부근에서는 우물물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고 ‘공공 수도’가 아닙니다. 그 우물물에 세슘이 유입돼 있지 않은 지 조사하기 위해 우물물 측정(활동)을 실시했습니다. 아마도 우물물을 측정해달라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150가구 중 40가구 이상이 가지고 왔습니다. 제대로 알리고 제안했더라면 (측정을 원하는 사람은) 더 많았을 것입니다.

 

(2) 나의 갑상선암 문제를 호소하는 과정에서 지역 사람들의 건강 파괴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지역이 불안한 가운데 『팜 히로노』에 게재한 갑상선암 관련 정보는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마을 논밭 두렁에서 마주치면 (내가 수술한 것을 알고) “몸은 괜찮으냐?”며 신경 써주는 사람도 있었고, 경트럭을 타고 가다가 만나 인사를 하면, 불러 세워놓고 30-40분씩 얘기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뇌경색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남편 때문이 아니라, 내 몸 때문에 지난 연말에는 힘들었다. 내가 남편과 함께 애쓰느라 피곤한 것을 알고 있는 약장수(행상)가 있는데, 그 사람이 ‘동물들은 출산할 때 나오는 태반 등 잔여물을 먹으며 산후조리를 한다. 인간도 피곤할 때는 이런 잔여물을 먹으면 원기가 회복된다’며 동물 태반 등을 분말로 만든 약을 내게 팔았다. 나도 피로가 쌓여 있었기 때문에 손을 댔다. 하지만 그 약을 먹고나서 온몸 여기저기에 이상이 생겼고, CT며 MRI 등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지만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정말 고생이 심했다.”

■ 또 평소 자주 이야기 나누고 지내던 사람을 찾아가니, 오랜만이라며 차라도 한잔 하고 가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낙농가입니다. 장기외 종양이 생겨 수술을 되풀이 했지만 완치되지 않았습니다. 작년 말에는 13시간에 걸쳐 수술도 받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친구 B씨의 갑상선암 전이에 대해 얘기해줬습니다. B씨는 아내와 함께 후쿠시마 현립과대학에서 진료를 받고 있었는데 “암이 폐에도 전이 됐어”라고 말했다합니다. B씨는 이전에 갑상선암이 발병해 검은콩 요법으로 대응한 적이 있었습니다(수술 안 함). 마침 나도 갑상선암 결절을 처음 발견한 2014년에 즈음이었습니다. B씨는 나와 달리 검은콩 요법에 의존했습니다. 아마도 병원에서는 “갑상선암, 유두암은 얌전한 암이어서 평생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고 의사가 조언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의사에게서 그런 식으로 권유 받았으니까요.

■ 나는 중요한 것을 알게 됐다. 아무래도 방사능의 영향으로 갑상선 유두암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의 유두암도 2014년에는 10mm 결절을 ‘경과관찰’하자는 상태였다. 하지만 1년반 후인 2016년 8월에는 10mm로 크기는 같아도 ‘천자 세포진’ (검사를 해야 할) 정도로 진행이 되어 있었다. 진행이 됐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냐 하면, 검사 기사에게 물어보니 “(결절의) 얼굴이 변했어요”라고 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결절의 양상이 이전과 다르다는 얘기였다. 그 변화, 진행 때문에 즉각 ‘천자 세포진’ 검사를 하게 됐다. 150가구 미만이 사는 이 작은 농촌에서 두 사람이 갑상선암에 걸렸다. 어른에게도 많이 발생했다는 얘기다. B씨도 처음부터 수술을 했더라면 폐로 전이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경우는 방사능 영향을 강하게 의심했기 때문에 수술을 즉각 결단했다.

■ 또 여러 해 동안 얘기도 하고 농담도 주고받던 고령자가 “나, 실은 치매야. 그래서 차도 못 타는 위험 인물이지”라며 자신의 병을 터놓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이 분의 어머니(당시 84세)도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84세나 되셨으니 수술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것”이라 했다지만, 본인에게 전하니 그래도 수술을 받고 싶어하셨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어머니는 오래 살고 싶다, 병으로 죽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셨던 거죠”라고 했습니다. “수술 후에 어머니는 ‘의사 선생님은 목소리가 나올 거라고 말했는데 목소리가 안 나와. 선생님이 거짓말을 했어’라며 한탄하셨어요. 얼마 지나니 쉰 목소리만 나오더라구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 분의 이야기를 통해 84세 나이일지라도 병으로 죽고 싶어하지는 않는다는, 삶에 대한 근원적인 마음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목소리가 안 나온다는 얘기도 큰 문제입니다. 나도 수술 후 처음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좀 걱정이 됐지만, 이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 나니, 아, 모두들 겪는 비슷한 증상 중 하나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차 한잔 마시고 가”로 시작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백내장의 빈발 등 이전에는 없던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3) 통원 환자와의 대화, 지역 노동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병원 대기실에서 접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나이 많은 여성이 “최근에는 남자가 많네. 예전에는 남자는 웬만해서는 안 왔는데.” “10년 동안 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갑상선암은 전이가 무섭다 보니 마음을 다잡기가 어렵더라고요.”라고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갑상선암은 발병한 이에게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지역 노동자 중에서도 제 발언을 접한 사람이 “나도 X선을 사용해 철의 품질을 검사하는 일을 했었다. 그 때문에 손이 구부러지고 손가락은 켈로이드 상태가 됐다”며 손을 펼쳐 보여주었습니다. 80세가 넘는 사람이었습니다. 후쿠시마에서도 폐품 수거 일을 하던 엄마와 아들이 함께 갑상선암에 걸렸습니다. 폐품 수거 일도 다른 직종과 비교하면 피폭량이 분명 많을 것입니다. 원인을 밝히는 것 또한 커다란 과제라는 점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4.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부흥’을 최우선시 하면서 어떤 선전공격을 펼치고 있는지

 

(1) “방사선량이 낮은 후쿠시마에 건강문제는 있을 수 없다.”

“후쿠시마는 체르노빌에 비해 방사선량이 낮다. 이 수준에서 건강문제가 일어날 리가 없다.” 이 견해는 작년 9월에 개최된 후쿠시마 전문가국제회의가 갑상선암에 대하여 드러낸 입장을 집약적으로 보여줍니다. ‘후쿠시마현 건강조사 검토위원회’에서도 처음부터 “갑상선암은 원전사고 영향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반복적으로 얘기되어왔습니다. 184명에 달하는 갑상선암 확진 또는 의심 판정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잉진단’과 ‘스크리닝 효과’ 등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이는 결코 후쿠시마의 갑상선암 실태를 바탕으로 한 연구의 결과가 아니며, 일반적 의학연구에서 도출한 견해와 결론에 따른 것입니다.

a. 이 논의가 시작된 초기에 ‘3개현 조사’가 실시된 바 있습니다. 아오모리(青森)현, 야마나시(山梨)현, 나가사키(長崎)현에서 4,500명을 대상으로 후쿠시마와 동일한 갑상선 검사를 실시한 후 “후쿠시마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는 선전을 일제히 펼친 것입니다. 이 ‘3개현 조사’를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➀ 연령상의 바이어스가 있었다. 후쿠시마현은 유소년기 연령층이 많고, 15세 이상이 3개현보다 적었다. 고령자들은 B랭크가 많고 유소년기는 A가 많다. 따라서 후쿠시마보다 3개현에서 B가 더 많이 발생하게 된다. 이것이 “같다”는 결론이 나오게 한 장치다.

② 3개현이 여성 비율이 더 많다. 여성은 남성보다 발생률이 높다. 이 점 또한 위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렇듯 편중 요인이 있었기 때문에 환경성에서 작성한 제안에서도 이 ‘3개현 조사’는 비교자료로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후쿠시마현과 3개현 조사는 (결론이) 같다’는 캠페인을 펼쳤고 이러한 바탕 위에서 ‘과잉진단’론도 생겨났습니다. “원래 어느 현에서든 갑상선 검사를 실시하면 같은 결과가 나온다”고 말입니다.

※ ‘3개현 조사’를 뿐만 아니라, 과거 체르노빌 의료에 참여한 바 있는 의사나 교수들이 ‘유전자가 체르노빌과 다르다’며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의 차이를 떠들어댔습니다. 모두 과학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 속설이었습니다.

b. 이와 같은 정부의 ‘허구 만들기’ 바탕 위에 과잉진단, 스크리닝 효과 주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설령 앞으로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고 해도 이미 많은 현민과 의사들이 상황에 말려들어갔습니다. “(원전사고 후) 1-2년 사이에 갑상선암이 발생할 리가 없다”는 견해도 뿌리깊게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18세 이하 현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두번째 검사에서도 (첫번째 검사 당시) A랭크 판정을 받은 사람 중 90% 이상이 갑자기 갑상선암으로 진단되는 현상, 즉 진행이 빠르다는 특징이 나타났습니다. 이 본격 검사(두번째 검사)에 대한 총괄은 향후 발표될 예정입니다.

c. 이러한 선전을 바탕으로 당국은 현내 기업, 지역, 학교 등에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펼쳤습니다. 사전 등록제라는 참가형태를 취하고, 영상촬영이나 녹음 등은 금지했으며, 반론제기나 갑상선 실태와 건강이상 등에 관한 이야기는 봉쇄한 채 건강문제 강습회 등을 개최한 것입니다.

 

(2) 부흥 분위기와 갑성선암 다발, 입을 다문 환자들

부흥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이제 6년이 지났다. 대부분 지역에서 ‘제염’(역자: 방사능 오염 제거)도 끝났으니 귀환자만 기다린다. 농업과 관련해서는 쌀의 99.99%가 25Bq/㎏ 이하인 실정이다. 어업도 (방사능 허용) 기준치 이상의 생선은 없었다”고 합니다. 저맥락(Low-context; 낮은 수준의 데이터를 들어 증명함) 방식으로 후쿠시마가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고 강력히 어필하고 있습니다. 물론 원래의 후쿠시마로 돌아왔다는 것은 산업 차원에서 생각할 때나 지역에서 생각할 때, 실태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믿기 어려운 얘기입니다. 뭔가를 은폐하고 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후쿠시마 현민의 불안은 지금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며, 실태가 반영되지 않은 그림에 그린 부흥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히고자 합니다.

■ 다음으로, 제염은 끝났으니 귀환만 기다린다는 내용을 살펴봅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은 후쿠시마시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염이 마지막으로 실시된 곳입니다. ‘후쿠시마 시내 중 오염이 가장 낮은 곳’이라는 선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2011년 3월 피폭(역자: 원문 그대로)에 의한 오염은 평균하면 50만 Bq/㎡였습니다. 때문에 아직도 10~15만 Bq/㎡에 달하는 논밭, 들, 산이 있습니다. 우리집 마당도 제염이 끝났는데도 10만 Bq/㎡ 정도는 되며, 가까운 이웃 세 집도 7~8만 Bq/㎡였습니다. 방사선관리구역의 기준이 법률로 정해져 있는데, 4만 Bq/㎡ 이상일 경우 임신여성이나 어린이는 그 구역에 출입이 금지됩니다. 식사를 해서도 안 되고 정기적으로 피폭량을 검사하도록 의무화 돼있습니다. (오염 선량이)‘후쿠시마에서 가장 낮다’고 얘기되는 이 지역조차도 이런 실정입니다.

시내에서는 특히 주택 밀집지역 중에 오염이 가장 높은 곳이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최종적으로 귀환정책이 추진되고 있는데, 공간방사선량 기준치인 20mSv/y 이하인 지역에는 귀환을 시키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다른 나라의 20배에 해당하는 고농도 오염지역을 의미합니다. 또한 백내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방사선량이라고 ICRP가 경고하고 있는 수치입니다. 이런 곳에서 유아와 임신여성 등이 수 십 년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 항목의 정리>

 

a. 우리는 말도 안되는 오염수치를 참도록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시버트라는 속임수의 수치, 토양오염실태와 내부피폭을 반영하지 않는 수치를 가지고 정부특례(아직도 계엄령 아래 있다)로 취급하며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b. 우리는 이러한 후쿠시마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싸워 나갈 것인가. 무엇보다도 생명과 건강이 문제입니다. 소아 갑상선암의 다량발생 사실이 지금 국민 가운데에서나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갑상선암은 하나의 커다란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건강 파괴가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인정하게 만드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근거(evidence)라는 특수한 증명이 사회적으로도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미 지금까지의 데이터, 조사/연구를 통해 역학적으로는 밝혀지고 있습니다.

c. 그러나 법정투쟁조차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현실이 존재합니다. 4번에서 언급한 정부와 도쿄전력, 그리고 이를 추종하는 과학자/전문가들의 선전이 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핵의사회도 견해가 갈라져 있습니다. 노동운동은 거의 견해를 갖고 있지 않으니, 그 기반 위에 서있는 야당 또한 견해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먼저 갑상선암 환자가 들고일어나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시하여, ‘3.11가족회’를 비롯해 ‘어린이 갑상선암 지원기금’ 등과 연계를 강화해 나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