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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에 대한 장밋빛 환상 거두자

 

박종운 동국대 에너지 원자력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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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원자력 공학자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핵(脫核) 정책에 반대한다는 원자력 학계의 성명에 아쉬움을 느낀다. 사회적 합의 부재, 전문가 배제, 전기요금 과다 상승 등이 표면적 이유였지만, 내면은 기득권 상실에 대한 보호 본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원자력 전문가들이 에너지 믹스 정책, 전력 그리드나 전기요금까지 거론한 것은 마치 치과의사가 내과 진료를 하는 것과 같다.

우선 사회적 합의만 해도 그렇다. 지난 정부는 법적으로는 수차례 수명연장이 가능한 고리원전 1호기를 별다른 공론화 없이 포기시킨 바 있다. 전기 판매수익 4000억원이 사라졌지만, 이때 원자력계는 조용했다.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건국 이래 정부 정책으로 추진됐고 사회적 합의도 없었다. 원자력계의 주장과는 달리 원전의 경쟁력은 이미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은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35기가 건설 도중 중지됐다. 그 후 처음 짓는 AP1000 4기 원전도 건설비 예상을 잘못한 탓에 11조원의 손실을 보았다.

현재 원전 건설은 중국·인도처럼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 하든지, 스웨덴·영국처럼 폐로 원전을 대체하는 정도로 이뤄진다. 프랑스는 원전 발전량을 63기가와트(GW) 수준으로 유지한다지만, 그러려면 2030년까지 10기의 원전을 더 지어야 하는데 건설비 문제로 불투명하다. 그래서 전력소비 30% 감축 목표도 병행 추진하고 있다. 2040년까지 유럽 내 해체 예정 원전은 150기 수준으로, 새로 짓는 것보다 사라지는 게 더 많다. 재생에너지 증가와 무관치 않다.

대만도 2025년 원전 제로가 목표다. 일본은 탈원전 계획이 없으나, 추가 건설이나 전체 재가동 계획도 없다. 40년 수명까지 가동하는 게 원칙이라 이카타 원전 1기도 포기했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여파로 우리나라 보유 대수의 두 배나 되는 50여 기를 동시에 중지했기 때문에 무리가 있었다. 이것이 탈원전이라면 우리나라 현 정부의 계획보다 100배 빠른 셈이다. 한국은 향후 40~50년 걸려 원전 제로를 한다고 하는데 이는 탈원전 선언 국가 중에서 가장 느린 속도다.

원자력계에서는 신고리 원전 건설 중지가 원전 수출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원전 수출은 기술보다 펀딩이다. 막대한 돈을 장기 대여하는 사업이다. 한국은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하며 12조원을 28년간 빌려주는 조건이었다. 러시아도 인도에 2기 원전을 수출하며 5조원을 빌려주기로 했다. 원전 수출은 정치이며 금융사업이다. 원전 건설에 펀딩까지 하다가 아레바·웨스팅하우스가 파산했다.

사용후 핵연료도 난제다. 미국 에너지부는 3개 주에 걸친 고준위폐기물 4.2㎞ 초심층 처분 적합성 시험계획을 철회했다. 혹시라도 처분장이 될까 두려워한 주민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국토가 광활한 미국도 이러하다. 하물며 우리나라는 처분장 희망이 안 보인다. 2㎞짜리 단층 없는 균일한 암반도 없다. 고준위핵폐기물은 원자력계가 방치해 온 것으로 원전 감축의 가장 큰 명분 중 하나다. 재처리도 대안이 되기 어렵다. 핵 재처리 시설은 1950년대부터 끊임없이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재처리하려면 사용후 핵연료를 일부러 개봉해야 하는데 이때 기체 방사성 물질이 나오니 원전으로 보면 사고를 만드는 행위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미국에너지정보원(EIA)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미국 신규 전원별 균등화발전단가(LCOE)는 메가와트시(㎿h)당 원자력이 100달러, 풍력 51달러, 태양광 58달러가 될 전망이다. 원전 발전단가가 재생에너지의 두 배다. 선진국 신규 원전이 이런 수준인데, 국내에서는 영구처분, 폐로, 사고처리 예비비 등이 낮게 책정돼 발전단가가 싸게 보인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의 손실인 최소 200조원을 우리 원전 25기가 40년간 나누어 예비비로 충당한다면, ㎾h당 32원 늘어난다. 판매단가가 ㎾h당 100원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원전은 세계 최고의 고밀도로 인해 안전 경쟁력도 잃어간다. 원전이 주력이 아니라 보조로 가야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20%를 목표로 하면 연간 1.5%씩 증가하는 셈인데, 요금폭탄이란 있을 수 없다. 그 때까지 원전발전량은 10%만 줄어든다.

원자력계가 두려워하는 것과 달리 가동 중 원전의 유지·관리에만도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추가 인력은 새로운 에너지원의 증대로 흡수될 수 있다. 원자력계도 에너지 전환에 동참해 원전기술을 일반산업과 신에너지 기술에 응용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 글은 7.20 중앙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