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교수단지에서 '정원이 들려주는 소리' 라는 이름으로 정원페스티벌을 개최한다는 연락을 받고 지난 5월 12일 정릉교수단지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정릉교수단지와 녹색교통의 인연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녹색교통은 2014년 부터 '걷기 좋은 서울'시민공모전을 매년 주관해서 진행하고 있었는데, 2015년 공모전에 정릉교수단지 주민분들이 참여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를 떠올려 보면 마을에 애정이 정말 많으신 분들이었다는 기억이 납니다.
당시 '마을 보행환경 개선' 제안 공모에 응모하셨는데, 이 공모전은 주민분들이 자신의 마을 보행환경을 이렇게 개선했으면 좋겠다라는 제안을 하고 심사를 통해 수상작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공모전의 핵심은 수상작 중 검토를 통해 선정된 작품은 실제 개선을 시행한다는 것이었고 실제 마을 보행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정릉교수단지 주민분들은 각종 워크숍에도 빠짐없이 참여하는 등 열성을 보이셨습니다.
그결과 은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서울시의 검토를 통해 보행자우선도로로 지정되어 도로 포장을 보행자 중심으로 바꾸었으며, 서울시 '걷는 도시 서울' 시민위원회 주민주도형 보행환경 개선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어, 마을에 화단을 꾸미고, 불법 주정차 cctv 설치, 벽화 설치, 벽에 도자기를 설치하는 등 많은 변화를 맞이하였습니다.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녹색교통은 정릉교수단지 주민분들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고 협조를 하면서 인연을 이어나갔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마을 축제에 초대를 받고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할까 고민을 하다가 주민해설사가 함께하는 마을탐방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을이 바뀐 모습을 찬찬히 살펴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이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었습니다.
12시에 정릉 매표소에서 마을탐방이 시작된다고 하여 10분 정도 일찍 도착하였습니다. 정릉에 대한 안내판을 읽으며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주민 해설사 분이 오셨습니다. 마을 해설은 처음 해본다며 떨리신다고 하셨는데 막상 시작하니까 말씀을 아주 잘하셨습니다.^^
저는 주민해설사분, 마을 만들기에 관심이 있어서 안산에서 오셨다는 시민분들과 함께 마을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마을 탐방은 주민들이 손수 가꾼 마당 정원을 살펴보고 주민들이 마련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도착한 집은 '너나들이뜰' 이라는 집이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가 푸근한 미소로 반겨주는 이집은 아직 정원을 가꾼지 얼마 안되서 소박한 정원이었지만 그 정성 만큼은 소박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방문한집은 '다복한 뜰' 집이었는데요. 이집은 주인 부부부터 증손까지 4대가 함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집은 JTBC '한끼줍쇼' 프로그램에 나와 더 유명해졌다고 하는데요. 안으로 들어가보니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있던 것은 나비 애벌레와 각종 곤충들이 었는데요. 신기해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제 마음도 흐뭇해졌습니다.
다음집으로 이동하는 마을길에서 벽화를 발견했습니다. 정릉의 고유한 역사에 맞는 고즈넉한 그림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걷다보면 마을길을 따라 만들어진 화단이 눈에 띄는데요. 예전에 주민들이 조금씩 만들었던 것을 이번에 서울시 '걷는 도시, 서울'시민위원회의 주민주도형 마을 보행환경 개선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더 많이 확충했다고 합니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꽃길 걷고 싶으시죠?
꽃 관리는 주민분들이 자발적으로 하신다고 하는데 비가 왔을 때 빗물을 가둬놨다가 꽃에 물을 준다고 합니다. 이것이 빗물을 가둬놓는 빗물저금통이라고 하네요.
빗물저금통에서 화단으로 호스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밸브만 열면 자동으로 물이 분사된다고 하네요. 화단 관리에 세밀하게 신경을 쓰신 부분이 돋보였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자투리공간을 이용해 정원을 만든것이 보였습니다. '한평 정원'으로 이름 붙이셨네요. 넉넉한 공간은 아니지만 이런 공간에도 정원을 조성한 마을 주민분의 열정이 느껴집니다. 창문위에 도자기 인형이 보이시나요? 주민분이 직접 만드신거라고 합니다.
지나가는 길에 '박여병 어르신 댁'을 보았습니다. 이 집을 설명하려면 정릉교수단지의 유래를 알아야 하는데요.
1963년 서울대 교직원들이 사단법인 '서울대학교주택조합'을 결성하여 교수단지(대학교 교직원 주택단지)를 개발했습니다. 이는 민간에서 조합이 결성되어 주택단지를 개발한 첫 사례라고 합니다. 교수단지 설립부터 현재까지 마을에 거주하는 유일한 분이 박여병 어르신이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정릉교수단지의 역사와 함께 해온 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지금은 많이 연로하셔서 집을 개방하지는 않는다고 하시네요.
보행자우선도로 사업을 통해 잘 정비된 마을길이 산뜻합니다. 기존의 자동차 중심 문화의 상징인 아스팔트 포장을 걷어내고 보도 형태의 포장을 통해 보행자 중심의 마을길 이라는 느낌을 주네요.
다음으로 '선이 머무르는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아담한 정자가 있는 예쁜 정원 외에도 주인 할아버지께서 69세부터 독학으로 배우신 연필화를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독학으로 배웠다고 하기에는 그림 실력이 상당하셨는데 조금 늦은 나이지만 용감하게 새로운 것에 도전하신 멋진 할아버지를 보며,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도도화' 정원을 방문하였습니다. 이곳에는 정원 곳곳에 도자기 인형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사실 마을 곳곳에 도자기 작품이 많이 있었는데 대부분 주민들이 손수 만든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민들이 함께 도자기 만드는 것을 배워 마을을 꾸며가고 있다고 하더군요. 정원에 도자기 기린 귀엽지 않나요?
이곳은 주민해설사님의 집인데요. '행복한 뜰'입니다. 정원 가꾸기를 시작한지는 얼마 안되셨다고 하는데 정원을 보니 그동안 기울이신 노력과 열정이 보이는듯합니다. 이 하트 모양 너무 예쁘지 않나요?
이밖에도 직접 만든 도자기를 전시했던 '매화향기', 백세까지 사셔서 정부로부터 청려장을 받으셨다는 '백세 며느리댁' 등 소개할 곳이 많지만 지면관계상 마지막으로 한곳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여기는 '하모니가 있는 집'입니다. 내일 이곳에서 마을 결혼식이 열린다고 하네요. 아담하고 예쁜 정원에서의 결혼식...생각만 해도 멋질것 같습니다. 지금은 마을에서 파는 먹거리를 즐길 수 있게 돗자리를 깔아 놓으셨습니다.
마을 탐방을 하다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훌쩍지나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꽃 비빕밥과 부추전을 사서 돗자리에 앉아 먹었습니다. 맛있었겠죠? 사실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이밖에도 정원음악회, 바자회, 전래놀이 체험 등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시간관계상 참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했습니다.
예전에 어릴적을 생각해보면 마을길은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주민들의 모여 친분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사이엔가 마을길은 자동차를 위한 공간이 되어버렸고 마을길에서 사람은 소외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정릉교수단지를 보고 마을길이 다시 사람에게 돌아올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정릉교수단지 마을 축제를 소개한 것은 이것이 대단한 행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소박하지만 마을에 애착을 가지고 사람 중심의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마을에 관심이 많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계신 분들에게 용기를 드리기 위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조금씩 용기를 갖고 노력한다면 예전에 사람냄새 나는 마을을 다시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 그런날이 꼭 올거라는 희망을 갖고 이 글을 마쳐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