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우주 MRO 분야 첨단산업 육성 - 경기 추미애 님의 공약
희망제작소는 지난 2일 일자리 전문가와 각 지역의 일자리 담당 공무원과 함께 ‘제1차 지역일자리 위기대응 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이날 포럼에서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선도적으로 일자리 정책을 시행하는 전라북도 전주시와 서울특별시 구로구의 사례를 발표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석자들은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지방정부가 지역의 특성에 맞춰서 만드는 일자리 정책이 지속가능성에 있어서 중앙정부의 정책보다 더욱 성공적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역 거버넌스 형성과 혁신적인 시각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전주시, 거버넌스 구축과 당사자 간 소통의 필요성 강조
전라북도 전주시의 사례를 발표한 김병수 전주시 신성장경제국장은 이번 정책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거버넌스 구축’과 ‘당사자 간의 소통’을 꼽았습니다. 전주시는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고 고용문제가 심각해지자 공무원이 직접 현장으로 나가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 자영업자와 노동자를 직접 만나 어려운 점을 직접 보고 경청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노ㆍ사ㆍ정 거버넌스를 구축해 고용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의견을 모았습니다. 전주시는 거버넌스에서 토의된 내용을 주축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해 쉬운 신용대출과 그 액수의 상한선을 늘리기 위해 신용보증기금을 직접 설득했습니다. 또 대량 실직사태를 막기 위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유급휴직지원금과 직업훈련을 주도적으로 제공했습니다.
전주시 사례는 직접 현장과 만나 당사자 간 거버넌스를 구축해 각 부문의 창의적인 생각을 모으고,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으로 일자리 정책을 한층 발전시키고 있었습니다. 토론자로 나선 채준호 전북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거버넌스가 가동이 되려면 지역역량을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사관계 전문가 과정’이나 ‘일자리 혁신학교’와 같은 지역역량의 수준을 한층 높일 수 있는 교육을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시 구로구, 지역특성과 재정정책 강조
서울특별시 구로구 사례는 지역 일자리 정책을 시작하는 단계로서 재정적 정책을 먼저 시작하고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단계였습니다. 사례 발표에 나선 김성종 구로구 기획경제국장은 구로구 일자리 정책의 가장 중요한 점을 ‘지역특성’과 ‘재정정책’을 꼽았습니다. 구로구는 국가산업단지가 존재하고, 청년층이 많은 도시라는 특징을 갖고 있어 자체적인 경제 동향을 파악한 뒤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먼저 ‘해고없는 도시, 구로’ 상생선언에 참여한 기업과 다중이용시설에서 운영하는 소상공인에게 직접적으로 지원금을 지급했습니다. 지역적 특성을 이용해 G밸리(서울디지털산업단지) 고용환경 개선 및 일자리 조성사업, 캠퍼스타운조성사업을 기획했습니다. 구로구 내 G밸리의 존재는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이용해 지방자치단체를 주축으로 한 거버넌스, 상공인과 노동자와의 상생거버넌스로 구로구만의 ‘사회적 대타협 모델’을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토론자로 나선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자체마다 지역적 조건과 일자리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일률적인 정책은 서로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며, 지방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구로구처럼 지역에 맞는 정책을 발굴해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정책의 중앙집권화를 지방분권의 기회로
전문가 발제자로 나선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영향평가센터장은 전주시와 구로구의 선제적인 지역 일자리 정책의 사례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특히 지방정부의 창의적인 일자리 정책 시행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심화되고 있는 정책의 중앙집권화를 다시 지방분권으로 돌릴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중앙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지방정부의 지역적 특성과 여건에 맞지 않은 정책이 많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창의적인 극복 주체가 된다면 중앙정부의 정책방향을 오히려 전환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토론자인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방정부가 단순히 중앙정부의 정책을 바라보기보다 지방정부 간 교류를 통해 소통하는 게 사회혁신의 출발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 지자체의 논의 속에서 아이디어가 공유가 되는 수평적 정책행위 플랫폼을 희망제작소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낸다면 상호 사회혁신에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지역적 특성에 맞춘 일자리 정책을 마련해야
토론 이후에는 이번 포럼에 참여한 경상남도 거제시, 경상북도 구미시,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의 상황을 공유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 지역 모두 지역적 특성이 명확해 그에 맞는 일자리 정책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거제시는 조선 산업 및 제조업 경기 침체로 인해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된 데 이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다시금 경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청년주도형 일자리사업을 추진했으나 조선산업 침체로 인해 많은 청년이 지역을 떠났고, 신중년 일자리 사업으로 전환해 일자리를 창출한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경상북도 구미시는 상생형 일자리 모델인 구미형 일자리가 실시되고 있는 곳으로서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진 경험이 있는 지역입니다. 또 코로나 19 이후에 구미시가 선제적으로 소상공인 지원정책을 실시했는데, 이러한 정책이 경상북도 전체로 확대됐다고 말했습니다. 노사정 대타협의 경험과 선제적 정책의 시행으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의 아이디어가 오히려 잘 시행되고 확대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서는 청년 계층이 많은 곳으로 청년에 관한 맞춤형 일자리 정책을 시도 중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자리 정책을 시행하는데 있어 기초자치단체와 광역자치단체 간의 갈등과 실질적인 사업보다는 ‘보여주기식 사업’이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상황도 덧붙였습니다.
이번 포럼을 주최한 희망제작소의 임주환 부소장은 “향후 포럼에서는 기존에 논의된 정책들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면서 전주 모델, 구로 모델, 구미 모델 등을 심화시키고, 지방정부 간 협력을 통해서 지방중심의 지속가능한 일자리 정책을 마련하도록 돕겠다”라고 밝혔습니다.
– 글: 김세진 연구원
코로나 사태가 돌출하자 첫 번째로 확인해야 할 작업은 역사적 유사성을 검색하는 것이었다 – 1914년, 1929년 아니면 1942년? 현재까지 몇 주가 지나면서, 그리고 앞으로도 몇 주 또는 몇 개월 겪겠지만, 역사적으로 전혀 새로운 충격을 맞이하고 있는 듯하다. 일단 당장의 충격으로 미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25% 수준의 위축을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이것은 대공황 시기와 비슷한 규모이지만, 차이는 대공황 시기에는 충격이 몇 년에 걸쳐서 나타났지만, 이번 경우에는 불과 수개월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하늘아래 처음으로 겪는 돌발적 상황이다, 정말 공포스럽다.

지난 3월 초만해도 미국의 실업률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나, 겨우 4주가 지난 3월 말에는 13%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다. 더구나 실업률 통계시스템이 실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충격의 첫 주차에는 3.3백만에서 2주 차에는 6.6백만 명이 그리고 연속해서 3주 차에도 6.6백만 명이 실업보험을 신청했다. 이러한 통계에 기반하여 뉴욕타임즈의 경제분석가인 Justin Wolfers는 매일 0.5%로 실업률이 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속도의 증가라면 이번 여름에 30.0%의 실업률에 도달하리라는 추정이 비현실적인 것만도 아니다.
서구(유럽)의 경제권도 자신들이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잔인하고 심각한 경제적 충격에 직면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충격은 경기변동에 예민한 부동산과 건설업에서 시작하여 투자에 의존하는 산업엔지니어링 그리고 국제적 경쟁이 심한 자동차 산업 등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이들 분야의 고용 비중은 대충 25%선 미만이지만, 이들의 위축은 경제영역 전반에 점차적으로 확산되게 마련된다.
코로나 방역봉쇄 조치는 서비스 분야에 직격탄을 날린다 – 소매업, 부동산 임대, 교육, 여가산업 그리고 요식업 등 – 이는 미국인의 80%가 직업으로 일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결과는 매우 즉각적이고 재앙적 일수 밖에 없다. 특히 소매업 분야는 이미 온라인 판매로 인해 심한 압박을 받아온 영역으로 임시적인 휴업은 치명적이다. 아마도 상당수의 가게들은 다시 문을 열기 어려울 것이고, 이에 고용된 수백만의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이들 가족들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충격은 다만 미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사회안전망으로 잠시의 휴직에 수당을 지급하면서 하강국면을 완화시키겠지만, 경제 전반에 걸친 붕괴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부 이탈리아는 단순히 고급스런 관광지역일 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 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지역이다. 독일의 GDP는 수출에 크게 의존하면서 미국의 충격이상으로 위축될 것으로 예상한다. OECD의 최근 예측은 전(全)회원국에게 재앙적이며, 특히 바이러스 충격이 이제 시작단계인 일본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임을 암시한다. 그래도 부유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일단 충격의 수준을 대충 가늠할 수 있다.
중국은 가장 먼저 지난 1월23일 격리봉쇄를 시행하였으며, 최근의 공식보도로는 약 6.2%의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1990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이다. 중국 당국은 줄곧 실업은 자본주의 국가들에게서 나타나는 문제라고 주장해 왔던 터라, 상기의 수치는 중국내의 위기상황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비공식적으로는 임시직 2억 5천만 명의 노동자들이 휴직상태라고 알려져 있으며, 이는 중국 노동자 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인도의 경우, 모디 수상의 갑작스런 21일간의 봉쇄명령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누가 감히 측량할 수 있겠는가? 인도의 4억7천만 명의 공식 노동자 중에 겨우 19%만이 사회안전망에 보호를 받으며, 3분의 2에 해당하는 노동자는 취업계약서조차 없으며, 1억명 수준이 임시직에 해당한다. 이들 대부분은 기약도 없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는 인도가 분할된 1947년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이렇게 거대하게 펼쳐지는 경제의 대추락이라는 인류의 드라마는 추산(推算)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제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올해부터 전세계의 GDP를 신뢰도있게 집계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가들의 경제(emerging market)가 그저 위축되고 있다는 통계 이외에는 별다른 내용을 내놓을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 한 마디로 전세계 경제가 한 순간에 멈추어 섰다.
이러한 붕괴는 금융위기의 결과도 아니고, 팬데믹이 직접적으로 초래한 것도 아니며, 심사숙고한 정책적인 선택의 결과인 점이 전혀 새롭고 급진적인 사태인 것이다. 선택의 내용은 경제를 촉진하는 것보다 멈추어 세워야만 (팬데믹의)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으로, 이는 인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미국의 연방의회가, 사회봉쇄를 결정한 수 일만에, 평화시기에 있었던 최대규모의 재난지원책을 결정하면서 연이어 전세계에 걸쳐 유사한 조처들이 뒤따랐다. 국가재정에 매우 보수적인 독일조차 공공부채에 대한 제한을 철회하였다. 전반적으로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연대적 재정구제의 노력을 목격하고 있으며, 조처의 효과는 수 주 내지는 수개월 뒤에 판명될 것이다.
이미 한가지는 분명해졌다. 우선 당장 급한 것은 거대한 금융위기가 도래하기 전에 추세를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연방준비위원회의 제롬 파웰의장이 2008년에 준비된 매뉴엘에 따라 조처를 취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사실이며, 금융시장의 모든 영역을 지원하기 위해 매일 새로운 구제 프로그램이 발표되고 있다. 핵심은 연방준비위의 개입 규모에 있다. 봉쇄조치에 따른 광범한 충격에 대처하기 위하여, 이에 응당한 거대한 규모의 유동성이 파도처럼 제공되고 있다.
3월말 경에는 매일 900억 달러의 금융자산이 매입되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규모보다 큰 것이다. 평소에는 연방준비위는 초단위로 백만 달러 정도의 연방채권과 담보성 유가증권을 현금으로 스왑(교환)하여 왔다. 그런데 공포스러운 실업숫자(6.6백만 명)가 발표되던 날인 4월 9일 아침에, 연방준비위는 2.3조 달러어치 금융자산의 구매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신속하고 거대한 대응조처 덕분에 즉각적인 세계금융의 위기를 당장에는 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장기간 지속될 수요와 투자의 격감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3월에만 미국 가구의 73%가 가계의 수입에 곤란을 겪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수입이 끊기면 당장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생필품 부족과 고통 그리고 파산으로 몰린다. 금융채무자들의 부채 불이행이 치솟을 것이고, 금융산업의 손실을 가져올 것이다. 불요불급한 지출은 미루어 질 것이고, 유럽에서는 이미 석유소비가 88% 격감되었다 한다. 신규 자동차 수요는 돌같이 동결되었고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자동차 업체들은 재고가 쌓여 있는 거대한 주차장에 앉아 있는 꼴이다.
봉쇄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경제에 미치는 상처는 깊어지고 회복은 지연될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중국은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접근하고 있지만, 제2, 제3 돌출의 위험이 도사린 가운데 언제 어느 속도로 정상적인 생활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극적인 의료사고를 차단한다는 것은 봉쇄조치가 수시로 취해지고 해당지역의 통행이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경우에는 V자형의 힘찬 회복보다는 장기간 지루하게 지연되는 양상이 예상된다.
더구나 현재의 생산과 고용이 재가동된다 하더라도 앞으로 수 년간은 금융의 불안이 계속될 것이다. 당장은 재정정책에 논란의 여지는 없을 것이고 급한대로 돈을 푸는 것에 쉽게 동의가 이루어질 테지만, 사태가 진정되면 논쟁은 싸움처럼 변할 것이다. 위에 언급하였듯이 평화시절에 유례가 없는 대규모의 공공부채를 발생시켰고 중앙은행의 재무제표에 부채를 주차시켜 놓은 꼴이다. 중앙은행들은 초저금리를 유지하면서 발생한 공공부채를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겠지만, 문제는 향후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보수적인 입장에 따르면 향후 재정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늘려서 갚아나가야 한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좀더 급진적인 대안들이 존재한다. 하나는 인플레를 발생시키면서 현재의 경제조건을 과감하게 재편해가는 것이지만 이에 대한 전망은 분명하지 않다. 다른 대안은 국가부채의 면제인데 이는 공공의 파산을 점잖게 표현한 것으로 실제로 중앙은행의 재무표상에 부채로 기재하는 것처럼 그렇게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 일부의 의견은 중앙은행이 정부발행 채권의 구입을 중단하고 거대한 규모의 화폐발행으로 직접적으로 정부에 신용을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단순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지난 4월9일 영국은행이 선언한 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어떤 목적과 의도와 상관없이, 돈을 찍어내는 것이다. 보수적인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식을 채택한 것은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보여 준다. 재미있는 것은 금융시장의 반응으로 이에 대해 심하게 항의하거나 곧바로 공황적 투매를 진행하지 않고 그저 어깨만 들썩인(little more than a shrug) 것이다. 이들은 중앙은행들이 취하고 있는 묘기행진에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절제된 태도는 위기를 극복하는 입장에서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침묵이 지속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아니 된다. 뚜껑이 열리는 시점이 되면, ‘국가부채의 적정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정치적 공격과 논쟁이 재개될 것이다. 더구나 누적된 국가부채의 거대한 규모를 감안하면, 논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여기서 다시 돌이켜 볼 것은 우리가 알듯이 과거 이미 경제와 금융이 급진적인 혼란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2008년의 금융위기 시절, 예상치 못한 불확실성에 대해 수많은 논의와 필요한 조처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고 이를 수확적 확률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도 경험하였다. 솔직히 전문적 예측에 의존하는 것은 오만함과 만능이라는 환상을 부추기는 것이다.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등장이라는 충격으로 포플리즘이라는 변덕스러운 정치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회자되었다. 트럼프의 공격적인 통상정책과 중국과 벌이는 세계주도권 경쟁은 세계화의 미래에 대한 안이한 전망을 뒤흔들었다. 2019년까지 이러한 불확실성은 투자를 주저하게 하고 불황의 위험을 높이는 수준에 머물렀다.
중앙은행들은, 2008년 이후 극적인 개입을 정상화하고 통화량을 줄어가면서 정상적 궤도로 진입하는 와중에, 이제 경로를 급변경하며 초저금리로 회귀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결국은 다시 중앙은행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시기로 진입하는 절박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정말로 괴이한 것으로 우리는 돌출적인 불안정성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인류의 상당수가 일상에 필수적 것을 수급받지 못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누구도 언제 팬데믹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불과 수주전인 지난 1월에는 모든 것이 정상적이었다 이전에는 돌출적인 상황이 예외적인 염려의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일상적인 것이 되었고, 모든 독감(flu)발생에 지극히 조심해야만 한다. 의학적인 비유로 말하자면 우리가 스스로 완치를 선언하려면 얼마나 더 기대려야 하는가?
봉쇄가 끝나면 지출의 규모가 반등되는 효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얼마나 지속되겠는가? 이러한 충격에 대한 우리 경험상 분명한 반응은 위축이다. 2008년 이후 미국에서 나타난 현저한 추이의 하나가 가계 비중이 축소된 것이다. 세계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인들의 소비가 확실하게 침체되었고, 이에 따라 투자도 줄고 생산성도 정체되었다. 이러한 침체는 서구사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개발도상의 시장들도 함께 침체되었다. 우리는 이를 전반적 침체(scular stagnation)라고 불러왔다.
전례없던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에 대한 기업과 가계의 반응이 안전에 대한 싸움으로 나타난다면, 이는 복합적인 침체를 가져올 것이다. 이번 위기로 인해 발생한 공공부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재정축소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반대로 미래를 내다보는 정부라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주도적으로 행동해야 합리적이고 상식에 맞다. 이 지점에서 핵심은 어떤 정책적 조처를 취하고 누구를 위한 정치세력이 이를 통제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2020.04.09.
Adam Tooze
콜롬비아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이자 유럽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의 최근 저서로는 “Crashed: How a Decade of Financial Crises Changed the World,”가 있고 기후위기에 대한 역사를 집필하고 있다.
북한에서 사람들은 보상이 없이 20년째 꼬박꼬박 출근하고 있다.

북한은 남한과 달리 취업걱정이 없다. 모두 직업배치가 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실업이 없는 사회이다. 실업없는 사회야말로 우리 인류가 오랫동안 꿈꾸어온 사회가 아니던가. 매우 달콤하게 들린다. 북한에서 설사 원료나 전기가 없어 생산을 못해 공장이 가동되지 않더라도 항상 일자리는 넘쳐난다. 그러나 공장 기업소에서 배급을 주지 못하고 국정가격으로 공급하는 물품이 없어진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생활비(임금)는 그 의미를 잃었다. 넘치는 무보상 일자리 속에서 북한의 노동은 사람들에게 고통의 근원이 되었다.
북한에서 모든 공민들은 노동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일해야만 한다. 우리처럼 일감이 있고 일감에 따라 고용과 해고를 하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노동은 사적인 돈벌이가 아니라 ‘공공적이며 이타적인 것’, ‘신성하고 영예로운 것‘으로 규정된다. 북한 사회주의 헌법 83조에 “노동은 공민의 신성한 의무이며 영예이다”라고 써있다. 즉 북한에서 노동은 선택이 아닌 의무이고 직업은 개인의 이익적 목적이 아니라 집단의 이익, 국가의 이익에 복종하는 충실성의 개념이고 척도가 된다. 낡은 관념은 노동의 의무를 살아있는 생명에게 강제하면서 그들을 덧씌우는 굴레가 되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무슨 일을 할까? 1990년대 중반의 경제위기 이후 기업소 운영 부실화되면서 대부분의 기업소에서 배급 중지 혹은 간헐적으로 배급을 지급한다. 생활비는 거의 의미가 없다. 고등중학교나 대학을 졸업한 북한청년들은 이처럼 무보상 노동을 해야 하는 공장이나 기업소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동되지 않는 직장에 사람들이 꼬박꼬박 출근하는 기이한 현상이 지난 20여년간 지속되어 왔다. 물론 일단 출근하면 공장생산을 하지 않더라도 할 일은 넘친다. 각종 국가적 일에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장이나 기업소에서 생산을 하지 않더라도 각종 도로수리나 건설, 농촌지원 등에 ‘동원’되기도 하고 국가에서 내려보내는 각종 사회적 과제를 수행한다. 일이 있는 다른 곳에 파견되는 더벌이도 한다. 노동자들은 출근해서 잡담을 하면서 여가시간을 보내는 일도 드물지 않다.
북한 노동사회를 이해하는 두 가지 코드,‘직업’과‘벌이’
이처럼 기이한 현상이 생긴 시기는 언제부터인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래 배급체제가 붕괴하고 국가는 공장기업소로 배급의 책임을 넘기면서 각 공장기업소별로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는 차별화되었다. 2000년대부터 북한사회에는 기존의 계획경제하에서 운영되는 국유 기업소 공장 외에 새로이 노동시장이 생겨났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미증유의 경제위기와 비공식경제의 대두를 배경으로 국가가 아니라 개인장사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고용해서 일을 시키는 장 즉 노동시장(labour market)이 열리게 된 것이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비록 노동력의 매매가 이루어지면서 신성하고 영예로운 노동을 돈으로 팔고 사는 일이 행해졌지만, 이를 북한사람들은 아무도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대신에 북한사람들은 이러한 행위를 ‘벌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북한 사람들이 경제적 위기를 넘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시장에서의 ‘벌이’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북한사람들은 벌이를 직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북한에서 노동의 의미는 사적인 돈벌이가 아니라 ‘공공적이며 이타적인 것’, ‘신성하고 영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사람들에게 직업을 배치하고 동시에 이를 통해 소속 즉 정치사회학적 생명을 주었다. 사람은 직위를 통해 살아있는 유기체이자 공동체에서 자신의 위치를 얻는다. 그러니, 오늘날의 북한에는 두 개의 일이 존재한다. 계획경제와 국가에서 배정한 공적 ‘직업’, 시장경제와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벌이’이다. 이것이 오늘날 북한의 직업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기본 키워드이다. 사람들도 공식부문- 국영기업체에서 거의 무급으로 일하다가 생계가 어려우니까 그나마 벌이를 하러(소득을 얻고자) 시장(비공식경제부문)에 나간다. 혹은 두 개를 오가면서 혹은 병행하면서 투잡을 가지고 일하기도 한다. 그러면 북한사람들은 어떻게 직업생활을 영위하는지 다섯 가지 질문과 응답을 통해 알아보자.
첫 번째 질문, 이직(移職) VS 조동(調動):
국가에서 배정해 준 직장을 떠나 내가 원하는 직장으로 가려면 어떻게 하나?
사실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우리도 일상에서 늘 겪는 일이다. 그 때 우리는 이직을 시도한다. 나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업그레이드하고 새로 나오는 구인정보들을 체크하여 이력서를 보낸다. 북한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가에 저는 다른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배급 주는 공장으로 바꿔 주십시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을까? 북한사람들 역시 당연히 보다 나은 직장으로 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갈만한 직장을 알아보고 옮기려고 노력한다. 대부분 배급이나 보상이 적은 국영경제부문의 공장 기업소를 떠나서 먹을 알이 있는 국영경제부문의 일자리 혹은 소득이 있는 시장경제부문의 일자리로 옮겨가는 추세가 나타난다.
그렇지만 이들이 직장을 옮기는 방식은 남한과 다르다. 개인이 마음대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다른 곳으로 옮긴다? 그것은 당연히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직(移職)’대신 북한어로는 ’조동(調動)‘이라고 하는데, 조동의 뜻은 “행정적인 조치로 직장을 옮김”이다. 지금 다니는 직장의 책임자에게 ‘사업’을 해서 즉 돈을 주고 다른 곳으로 보내도록 일을 꾸민다. 직장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은 국가에게 있다. 그러니 이직을 원하는 나는 국가의 대리인들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동인(動因)을 제공한다. 그 동인은 돈이다. 이직과 조동. 이 미묘한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직의 주체가 개인 노동자라면, 북한에서 조동의 주체는 국가가 된다. 국가가 노동자를 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결과는 같을 지라도 이동의 주체나 과정은 달라진다.
그러면 그들도 옮길 때 이력서를 쓸까? 북한도 원래 기록문화가 상당히 발전해서 미군노획문서에 의하면 자서전 이력서, 평정서 등과 같은 자료들이 많다. 그렇지만 일반 신규노동자의 입직시 별도의 이력서나 자기 소개서를 제출하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문건은 평정서이다. 평정서는 당사자는 보지 못하는 문건인데, 기관 당국이 개개인을 평가하는 평정서가 있다. 이 평정서에 기초하여 직업이 배치된다고 하겠다. 학교에서 기록한 생활기록부와 평정서를 참조하여 직업배치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일반노동자가 아니라 직위가 높은 직업의 경우에는 조동시 이력서가 필요하다.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도 아니고, 시장경제도 아닌 공식/비공식 부문이 혼합된 나타나는 양상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도 공식부문-국영기업체에서 일하기도 하고, 비공식경제부문이라는 선택지가 한 군데 늘어났다. 사람들은 배급도 없고 그렇다고 소득도 없는 공식부문-국영기업체를 떠나 소득이 있는 비공식부문 일자리를 향해 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소득도 없는 공식부문-국영기업체에 있는 일자리를 떠난다는 것도 쉽지 않다. 이때 등장하는 것은 돈이다. 돈을 가지고 사업을 해서 책임자에게 돈을 주고 자리를 옮기는 일이 많다. 노동자 자신이 이직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기에 권한 있는 윗 사람에게 돈을 써서 옮겨야 한다. 딱한 사람들은 그럴 돈도 없는 사람이다.
어제 필자는 최근에 국경연선지역에서 탈북한 한 여성노동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탈북전 19세의 나이였던 그녀는 배급도 없고 새벽 4시부터 11시까지 장시간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일자리를 그만 두고 다른 자리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집안은 돈이 없어서 옮길 수가 없었고 결국 탈북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두 번째 질문. 북한사람들은 어떤 직업을 선호하나?
남한이 열광하는 의사, 변호사를 그들도 선호할까?
특정 직업을 가리켜 북한 선호직업이다. 개인의 취향도 있기에 이렇게 말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아래와 같이 거칠게 정리해볼 수 있다. 북한은 권력으로 움직이는 사회이기에 법간부, 경찰간부, 당간부 등 권력있는 직업을 가장 선호하며, 그 다음으로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선호한다. 아직 북한사회에서 돈은 독립변수로 작동되지 않는다. 권력의 빛을 받아야 힘을 발휘하는 달과 같은 존재이다. 장사는 추세, 외환 등에 민감하지 않으면 한 순간에 망하기도 하는 불안정한 직업이다. 특히 권력의 지원 없이는 할 수 없다. 북한은 시장화 과정에서 많은 장삿꾼들이 망하거나 비법행위로 처벌되거나 심지어 처형되는 일을 겪었으며 주민들은 이를 목도해왔다. 그래서 최근에 올수록 국가기관에서 직업을 가지고 일하면서 안정적이고 ‘먹을 알’이 있는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도 도드라진다. 위험성이 있는 불안정한 벌이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한다.
일반적으로 북한사람들은 피곤하고 위험성이 높은 외화벌이보다 안정적이고 권력 있는 직업을 가장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보안원, 보위부야말로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다. 시장경제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주민들 경제활동 자체가 비법과 일탈로 이루어지다 보니 북한의 경찰인 보안원은 일상에서 큰 권력을 갖게 된다. 세관원 또한 최고의 직업인데 일반인들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직업이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의사와 변호사는 어떤가? 남한처럼 선호하나?
결론부터 말해자면 의사도 변호사도 남한처럼 잘 나가는 직업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 의사 역시 우리나라만큼 돈 잘 버는 직업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일반인에 비해 돈도 잘 버는 직업임에는 틀림없다. 2016년 현재 한국에 들어온 의사출신 탈북민들의 수는 100명 가량 되는데, 그 중 총 24여명만이 한국에서 의사자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 북한에서 변호사를 했다는 탈북민은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북한 변호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우리사회의 변호사와는 개념이 다른 직업인 듯 하다.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사회에서는 용의자인 개인이 변호사를 선임해서 조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소속되고, 경제적 범죄에 국한되어 다소 조력을 주는 정도라고 한다. 즉 북한에는 국선변호사만 있으며 정치적인 문제에는 조력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탈북과 같은 국가적 범죄인 경우, 재판을 받을 때 변호사의 조력을 받았다는 탈북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북한에도 변호사가 있기는 하지만 개인이 돈을 내고 선임해서 조력을 받는 경우는 특권층에 한한다. 북한의 일반인(평백성)에게는 변호사는 상징적 존재에 불과하다.
세 번째 질문. 북한에 스펙은 있는가?
북한의 학부모도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려고 노력할까?
우리에게 스펙쌓기란 힘있는 자격증, 해외연수, 대회에서 상타기, 양질의 기관이나 회사에서 인턴 등을 가리키는데, 북한에서 이같은 스펙쌓기가 아직 그렇게 성행하지는 않는 듯하다. 북한의 기본 스펙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대학졸업, 둘째는 군대 가기, 셋째는 당원이다. 물론 당원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스펙이다.
물론 이같은 스펙쌓기에 대한 열망은 계층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북한의 흙수저들은 감히 꿈을 꾸지 않으며, 출신지역이 도시냐 농촌이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일반 노동자, 농민층들 특히 대를 이어 농장에서 일해야 하는 농장원들은 대부분 체념하고 위로 올라가려고 하거나 상승을 위한 꿈을 아예 꾸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이 있는 사람들 금수저들은 늘 진로를 깊이 고민한다. 여기에 시장경제가 형성되는 틈새에서 장사를 해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추가되면서 북한사회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다.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과외도 하고, 돈도 쓰고 자녀들에게 정성을 쏟고 있다. 그들의 자녀를 일류 고등중학교에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사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북한은 더 이상 한 덩어리가 아니다. 북한의 계층들이 점점 분화하면서 계층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네 번째 질문. 자유로이 장사하는 북한 여성들, 그들의 지위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가?
여성은 결혼을 하면 부양이라고 해서 표면적으로는 세대주인 남자의 부양을 받는 게 된다. 우리에게 전업주부와 같은 개념이다. 실질적으로는 여성이 시장경제 부문에서 장사일을 해서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고, 온 가족의 부양을 하는 여성들이 거꾸로 ‘부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는 사실이야말로 북한의 역설이다. 이는 지난 20여년 동안 억척스럽게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고 돈을 벌어오면서 자신들의 힘을 만들어왔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정은 미약한 현실을 보여준다.
남자들은 일단 국가가 주는 일자리에서 벗어나면 강한 처벌을 받는다. 3개월 이상 무단으로 직장에 출근하지 않으면 노동단련대에 보내기 때문에 보통은 직장에 매월 돈을 내고 8.3노동자가 되어 자기 마음대로 노동시장에 나가서 노동력을 파는 일용노동자가 되든 아니면 자영업을 하든 아니면 자기 사업을 벌이든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은 벌이는 하는 것이지 ‘직업’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소속된 공장 기업소에서 국가가 준 직위를 지켜야 하고 최소한 적(소속)을 유지해야 한다.
다섯 번째 질문, 지난 20여년간 북한 직업세계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8.3노동자들, 공장 문을 열고 시장으로 나가 변신을 거듭하다.
최근 북한이 시장화이후 겪는 가장 큰 직업세계의 변화를 꼽으라면 나는 역시 8.3노동자의 등장과 진화와 노동이동을 들고 싶다.
첫 번째 변화는 8.3노동자의 등장이다. 8.3노동자가 등장한 90년대 말부터 2019년 현재까지 8.3노동자들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사회주의 로동법에 의하면 노동자는 공장 기업소에 출근 의무가 있고 안 나가면 단련대가 잡으러 간다. 그 중에서도 시세에 빠른 일군의 노동자들은 공장 기업소에 출근을 하지 않으려고 공장 기업소에 돈을 내고 시장에 나가게 되었다. 이들은 공장에 나가지 않는 대신에 노동시장에 나가서 짐도 나르고, 장사고 해서 돈을 번다.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거나, 자영업을 해서 살아간다. 이들이 내는 돈은 공장 기업소에서 소중한 운영자금이 된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8.3노동자들을 애초에 채용하는 공장이나 기업소가 생기게 되었다. 대체로 8.3노동자는 공장 기업소 노동자들의 15% 내외이다.
두 번째 변화는 점점 노동자들의 이동이 잦아지고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 국영기업체에 배치되었던 청년들은 배급도 없고 그렇다고 소득도 없는 공식부문-국영기업체를 떠나 소득이 있는 비공식시장경제 일자리, 공식 시장경제 일자리, 비공식 국영경제를 향해 이동을 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돈이 있어야 이동도 가능하다.
남북한 청년들의 일자리상황, 그 억울함과 고단함, 희망 없음에 대하여
오늘날 남북한 청년 모두 심각한 일자리 문제에 직면해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남과 북 모두가 행복하게 일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지 못하였다. 북한사회에서 청년들은 노동의 보수가 없는 사회에서 일하며 사니 억울해하고 남한 청년들은 두 개의 양극화된 노동시장, 사회적 이동이 되지 않는 공정이 무너진 사회에서 사니 억울해한다. 남북한 청년 모두 고단하고 억울하고 불안하다. 끝없이 무기를 사들일게 아니라 우리의 일자리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남북이 함께 상생하는 평화로운 공간을 열어가야 한다.
북한의 경우 일부 기업은 그나마 생산을 해서 일부라도 배급을 주지만 배급조차 나오지 않은 열악한 공장기업소가 더 많다. 북한남성들은 노동보수가 없는 국영경제 공장기업소 일자리에 나가서 국가를 위해 거의 무상노동을 하고, 부인이 장마당에 나가서 생계유지를 하는 것이 기본구조이다. 이런 구조하에서 주민들은 아주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직업배치를 받아서 기업소나 공장을 간다고 쳐도 배급은 거의 안 나오거나 잘 나오는 기업소도 반달치는 주기 힘들어하고 생활비(한국의 임금)는 담배 한갑 가격정도밖에 안 되니 아무도 월급(생활비는)을 신경쓰지 않게되면서, 일반 북한 청년들이 공장이나 기업소에 가길 원치 않을 수 밖에 없다.
한편, 남한에서 우리는 두 개로 나누어진 노동시장, 괜찮은 일자리와 주변부 일자리로 양극화된 직업세계에서 일하고 있다. 괜찮은 일자리를 이미 기성세대의 일부가 점하고 있고, 신규 인력인 청년층들은 대부분 제 2차 노동시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노동 강도도 너무 강하고 최저 임금을 받고 휴가도 제대로 쓸 수 없고 장시간 노동을 하고, 두 개의 노동시장은 분절되어 있어 이동이 불가능하다. 청년들은 희망이 없으니 소확행을 찾아가게 된다. 먹방에 열중한다.
남과 북 모두 노동의 개혁이 필요하다. 이같은 노동의 개혁없이는 남과 북 청년들의 희망도 없다.
편집자 주:
북미 협상의 교착으로 남북 교류와 협력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에 대한 잠재적 기대가 당분간 어려운 가운데, 아세안과 인도가 한국 경제와 외교의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유망한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비동맹과 중립적 위치를 표방해온 이들 지역은 미중 또는 미러 간의 패권 경쟁에서도 자유롭고, 장래적인 경제 전망이 매우 밝은 곳이다. 이에 문재인 정부가 아세안에 공을 들이며 전략적 수준의 협력을 모색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고 박수를 보낼 일이다. 다만, 이 지역과 관계를 현재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한 단기적인 이익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긴 역사의 관점으로 함께 공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방향에서 모색할 일이다.

한국은 오랜 기간 외부 패권 투쟁의 한복판에서 역사를 써온 나라다.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은 현재 한국의 지정학적 현실을 형성하는 데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럼에도 한국은 지금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내기 위해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하며 매우 예외적인 지속적 성장을 거뒀다.
한국은 현재도 지역 패권 정치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한국은 현재 중국 및 일본과의 분쟁에 계속해서 휘말리고 있다. 역사적 적대감은 한국 점령기간 동안 한국인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의 보상문제에서 비롯됐다. 한국의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도 중국의 안보 불안을 부추겼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과 중국 쌍방은 한국에 대한 보복적 무역 조치를 시행했다.
그 결과 한국은 다른 파트너 국가들과의 무역 및 외교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신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국 정부는 2017년 11월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Northeast Asia Plus Community of Responsibility)의 일환으로 신남방정책(New Southern Policy)을 천명했다. 신남방정책은 아세안 국가들과의 관계를 미국, 중국, 일본 및 러시아와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중요시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한국과 아세안의 관계는 아세안의 다른 대화파트너, 특히 일본 및 중국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한국은 1991년까지 완전한 대화파트너가 되지 못한 반면, 일본은 1977년 관계를 공식화했다. 문재인 정권 하에서 한국은 해당 지역에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문대통령은 태국, 미얀마, 라오스를 순방하는 동안 미얀마에 10억 달러 규모의 원조 제공, 태국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라오스와의 사업협력 등 세간의 이목을 끄는 계약을 다수 맺었다.
비록 아세안 국가와의 협약이 한국이 목표로 하는 새로운 이니셔티브는 아니지만, 이같이 지속적인 접근은 분명히 이전과 차이를 보인다. 통상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재임 초기 아세안 정책에 중점을 두지만, 한반도 문제와 주요 강대국들과의 관계가 아세안 관련 정책들을 제치고 부상했기에 오래가지 못했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신아시아구상(New Asia Initiative)’에서 아세안 국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의 외교 정책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을 보였지만, 해당 정책은 결국 지정학적 중요성을 지니는 몇몇 국가들에만 초점을 맞추는 데 그쳤다.
문대통령은 전임자들과는 달리 아세안과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 직속 신남방정책 특별위원회(Presidential Committee on New Southern Policy)와 같은 정부기관의 제도화를 통해 아세안 국가들과의 교류에 대한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지역에서의 정책 지속성 및 이니셔티브를 촉진하기 위한 연구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아세안센터 설립뿐만 아니라 한-아세안 청년네트워크워크숍, 한-아세안 학술 컨퍼런스, 주한아세안 교수협의회(Council of ASEAN Professors in Korea)와 같은 인적교류 프로젝트도 포함된다.
아세안은 동아시아에서 더 많은 교류를 위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아세안은 비동맹 및 비간섭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 미국 간 경쟁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와의 교류를 지속할 수 있었다. 또 아세안 국가들은 싱가포르와 베트남이 북미정상회담(North Korea–US Summits)의 주최국으로서의 역할을 보여준 것처럼 중립적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왔다.
한국은 아세안 국가와의 관계 증진을 통해 남북한 갈등 해결을 위한 자체적 접근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은 남한보다 아세안과 더 활발히 교류했다. 일부 아세안 국가들은 당사자간 관계나 고위급 교류를 통해 북한과 정치적 대화 채널을 유지해 왔다. 아세안이 중립성과 포괄성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세안과의 관계 개선은 남한에 경제적 이점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일본, 중국과의 분쟁으로 인해 더 큰 규모의 무역 상대국에 대한 의존이 취약점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은 대체 시장일 뿐만 아니라 자연 및 인적 자원의 잠재적 공급원이기도 하다.
한국이 베트남 같은 일부 아세안 국가들과 강력한 교역 관계를 맺었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같은 선진국과의 교역 및 투자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실정이다. 인도네시아와의 문대통령은 포괄적경제 동반자협정(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타결을 위한 노력과 같은 이니셔티브를 통해 이들 아세안 회원국들과의 다자간, 양자간 교역 관계 증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아세안 내의 다양성은 한국이 신남방정책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미안바 정부의 로힝야 소수민족에 대한 대우 방식은 아세안 회원국 사이에서 많은 의견차이를 낳았다. 한국이 로힝야족이나 미얀마 정부 중 어느 한 측에 대한 지원을 추진한다면 반발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아세안은 안보협력을 발전시키기 보다 태국에 대한 군사수출 증대의 근거가 될 수 있는 태국과의 군사정보 보호협정과 같은 이니셔티브의 장단점도 고려해야 한다.
눌리아나 카마루딘(Nurliana Kamaruddin)
국제 말라야 대학교 아시아-유럽 연구소에서 안보 및 개발 협력 분야 전문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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