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대형 방산업체 연관 유령회사 발견… ‘스위스계좌 개설’

지역

대형 방산업체 연관 유령회사 발견… ‘스위스계좌 개설’

익명 (미확인) | 수, 2016/04/27- 07:32

파나마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에서 유출된 자료에서 국내 방위산업 분야 대기업들이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두 개의 페이퍼 컴퍼니가 발견됐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두 회사는 스위스 UBS 은행 계좌도 개설한 것으로 드러났다.

터키의 무기 중개업체 KTR, 조세도피처에 유령회사 설립

뉴스타파는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에서 유출된 자료에서 현대로템,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 등 한국의 대형 방위산업체와 거래해 온 터키 무기 중개업체 KTR과, 이 업체가 만든 페이퍼 컴퍼니 관련 서류를 무더기로 발견했다.

2016042702_01

조세도피처인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만들어진 이 유령회사의 이름은 ‘코오롱 리미티드(KOLON Limited)’와 ‘KTR 리미티드(KTR Limited)’다. KTR은 ‘코오롱 터키(KOLON TURKEY)’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회사들의 이름이 우리에게 익숙한 ‘코오롱’에서 파생된 이유를 이해하려면, 터키 무기 중개업체 KTR이 설립된 과정을 알아야 한다.

1980년대, 한국 회사 코오롱은 터키에 탄약을 수출했다. 이때 터키 현지에서 각종 시장 정보를 수집해 코오롱 본사에 제공하고 현지에서 기술 지원을 하는 에이전트 회사 ‘코오롱 리미티드’가 설립됐다. 90년대부터 터키에 무기를 수출해 온 한화테크윈(전 삼성테크윈) 관계자는, “코오롱의 사업을 도와주는 일을 계속하다보니 회사 이름 자체를 코오롱 리미티드라고 지은 것”이라고 전했다.

코오롱 리미티드가 설립된 시점은 1987년. 이 회사는 지난 2001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같은 이름의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었다. 터키 정부가 한국 업체 삼성테크윈으로부터 K-9 자주포(자체추진곡사포) 도입 계약을 한 직후였다. 코오롱 리미티드는 당시 삼성테크윈의 터키 내 독점 에이전트로 일했다. 코오롱 리미티드는 이후 회사 이름을 KTR로 바꾼 뒤, 2003년 또다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KTR 리미티드라는 같은 이름의 회사를 설립했다.

정리하자면, 터키 현지에 KTR(舊 코오롱 리미티드)이라는 무기중개업체가 있고, 버진 아일랜드에는 이 업체가 만든 코오롱 리미티드와 KTR 리미티드란 유령회사 2개가 있는 것이다. 이 두 개의 유령회사는 지난 해 모색 폰세카 내부 자료가 유출되었던 시점에도 계속 살아있었다.

‘마르타 에드힐’, ‘비앙카 스콧’… 회사 수천 개 가진 차명이사들

이 페이퍼 컴퍼니의 이사는 ‘마르타 에드힐(Marta Edghill)’과 ‘비앙카 스콧(Vianca Scott)’이다. 이 두 사람의 이름은 페이퍼 컴퍼니 세계에서 유명하다. 국제 회사정보 데이터베이스인 오픈코퍼레이트닷컴(opencorporates.com)에서 ‘마르타 에드힐’을 검색하면 조세도피처인 파나마에서만 8,959개의 회사의 이사로 나온다. 마찬가지로 ‘비앙카 스콧’을 검색하면 파나마에서만 무려 만 개가 넘는 회사에 이사로 이름을 올려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이사로 등재된 코오롱 리미티드, KTR 리미티드 등의 회사는 차명이사 서비스를 이용한 전형적인 페이퍼 컴퍼니다.

▲ 조세도피처인 파나마에서 ‘비앙카 스콧'이 이사로 등재된 회사는 10,361개에 이른다.

▲ 조세도피처인 파나마에서 ‘비앙카 스콧’이 이사로 등재된 회사는 10,361개에 이른다.

이 유령회사들의 용도는 무엇일까. 취재진은 두 페이퍼 컴퍼니와 관련한 모색 폰세카 유출 자료를 검토하던 중 용도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냈다.

두 회사 모두, 특이하게도 설립 당일 두 번의 이사회를 열었다. 코오롱 리미티드의 경우, 설립일인 2001년 7월 25일 열린 이사회에서 회사 주소를 수천 개의 페이퍼컴퍼니가 등록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의 아카라 빌딩으로 정하고, 주식은 무기명으로 1000주를 발행한다. 또한 첫 번째 이사회가 끝난 뒤 같은 날 두 번째 이사회를 열어, 스위스 UBS 은행에 계좌를 만들 것을 결의한다. 설립 시점이 2003년 1월 8일인 KTR 리미티드도 설립 당일 똑같은 결의를 했다.

수천 개의 페이퍼 컴퍼니가 등록된 주소지, 조세도피처에 단골로 등장하는 차명이사들의 이름, 그리고 하루에 두 번 열린 이사회에서 결의된 스위스 UBS 은행의 계좌 개설까지. 몇 가지 정황 증거를 통해, 이 유령회사들의 주요 설립 목적이 스위스 비밀계좌 개설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다.

▲ 설립 당일 열린 KTR 리미티드와 코오롱 리미티드 이사회의 회의록에는 스위스 비밀 계좌 개설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

▲ 설립 당일 열린 KTR 리미티드와 코오롱 리미티드 이사회의 회의록에는 스위스 비밀 계좌 개설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

KTR, 한국 업체와 주로 거래… 방산 검은 돈 은닉 목적?

터키의 KTR은 설립 이후 주로 한국의 방산 대기업들과 일해왔다. KTR의 홈페이지에는 첫 화면에 삼성테크윈, 현대로템 등이 주요 거래처라고 적혀 있다. 다른 업체들도 모두 한국 기업이다. 국제 무기 거래 이면에는 로비자금, 리베이트, 킥백 등의 명목으로 막대한 뒷돈이 오간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때문에 두 페이퍼 컴퍼니가 개설한 스위스 비밀계좌가 한국의 방위산업체와 터키의 무기 거래 과정에서 생기는 검은 돈의 유통 경로로 이용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모색 폰세카 유출 자료에는 버진 아일랜드에 등록된 페이퍼 컴퍼니 코오롱 리미티드와 KTR 리미티드 명의로 진행된 계약서가 두 건 포함되어 있다. 이 계약서엔 코오롱 리미티드 계약서의 경우 “코오롱 리미티드(principal, 계약당사자)는 삼성테크윈의 독점 중개업체”라고 적혀 있고, KTR 계약서에도 마찬가지로 “KTR 리미티드는 한화로템의 독점 중개업체”라고 적혀 있다.

▲ 조세도피처에 설립된 코오롱 리미티드와 KTR 리미티드의 계약서 내용 중

▲ 조세도피처에 설립된 코오롱 리미티드와 KTR 리미티드의 계약서 내용 중

이 계약서들은 2001년 당시 삼성테크윈의 K-9 자주포 수출과 2008년 현대로템의 K-2 흑표전차 터키 기술 이전 등 1조 원 규모의 대 터기 무기 수출 사업 과정에서 터키 KTR의 법률 대리인인 모색 폰세카가 작성한 것이다. 조세도피처에 만들어진 KTR의 유령회사들이 삼성테크윈과 현대로템의 ‘독점 에이전트’라고 명시되어 있는 점, 이 페이퍼 컴퍼니들이 모두 스위스에 비밀 계좌를 운용하기 위한 목적의 유령회사라는 점 등을 볼 때, K-9 자주포와 K-2 흑표전차 거래 과정에서 스위스 비밀계좌가 이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계약서에 언급된 한국의 두 방산업체는 페이퍼 컴퍼니와의 거래를 부인했다. 한화테크윈(전 삼성테크윈) 관계자는 “2001년 K-9 자주포의 터키 수출을 준비하면서, 터키에 현지 네트워크가 없다보니 1999년부터 한국 업체와 협업 경험이 있는 ‘코오롱 리미티드 터키’라는 회사와 공동 마케팅 등을 했다. 그러다가 2000년부터 정식 에이전트 계약을 했다”고 설명했다. 중개 수수료를 어디로 보냈는지 확인해달라는 질의에 대해서는 “자금 거래는 기밀 사항이므로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대로템 관계자 역시 터키의 KTR과 거래한 것은 사실이지만 “KTR의 페이퍼 컴퍼니에 대해서는 저희가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밝혔다. 현대로템이 터키에 있는 회사와 거래를 했는지, 조세도피처에 있는 회사하고 거래를 한 것인지만 확인해달라고 요구하자,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국세청에서 예전에 확인을 다 받았다”고 주장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페이퍼 컴퍼니의 용도를 묻기 위해 터키의 KTR에도 직접 연락을 시도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대신 KTR은 뉴스타파가 이메일을 보낸 직후 홈페이지 첫 화면에 눈에 잘 띄게 게재해 놨던 주요 거래 파트너 목록을 삭제했다. 목록에는 모두 한국의 대형 방산업체 이름들이 들어있었다.

▲ 위 : 뉴스타파 취재 전 KTR의 홈페이지. 오른편에 주요 거래 상대로 한국 대규모 방산업체들이 명시되어 있다. / 아래 : 뉴스타파 연락 후 KTR의 홈페이지. 한국 업체들이 사라졌다.

▲ 위 : 뉴스타파 취재 전 KTR의 홈페이지. 오른편에 주요 거래 상대로 한국 대규모 방산업체들이 명시되어 있다. / 아래 : 뉴스타파 연락 후 KTR의 홈페이지. 한국 업체들이 사라졌다.


취재 : 정재원
촬영 : 김남범
편집 : 박서영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10월 25일 ‘해병 잡는 해병대’ 뉴스타파 보도 이후, 해병대 덕산스포텔에서 벌어진 엽기적 가혹행위는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고, 가해자 이중사는 결국 구속됐다. 해병대사령부는 또, 이중사의 가혹행위를 묵인해온 부사관 3명은 보직해임 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피해 병사들은 추가 피해가 없도록 보호 중이며 지난 8월 병사들의 내부고발을 묵살한 사령부감찰실 소속 소령도 처벌할 예정이라고 해병대사령부는 밝혔다.

2017102704_01

그러나, 해병대의 공식 발표에는 여전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해병대사령부 중간수사결과에 따르면, 덕산스포텔 감찰을 담당했다는 “해병대 감찰실 소령은 ‘전반적 설문 내용이 부대 근무에 다소 힘든 부분이 있지만 만족한다’로 나왔다며 결과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덮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해병대사령부 추광호 정훈공보실장은 뉴스타파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8월 29일날 스포텔 인원들 설문했습니다. 소령이 설문했는데 소령이 그거를 자기가 그냥 처리해버렸어요. 보고를 따로 안하고 내용에 대한 후속조치를 안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자체도 자기 서랍에 넣어놓고 있던 거죠.

하지만 당시 이른바 공관병 갑질 사건 이후 전 군에 일제 조사가 실시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장 감찰을 담당한 소령이 피해 설문지를 서랍에 넣고 덮어버렸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뉴스타파가 입수한 해병대 병사들의 감찰 관련 진술서 내용은 해병대 해명과도 큰 차이가 있다.

피해병사 A

“감찰실에 다 적어 올리고 달마다 하는 설문지에 늘 적어봐도 소용이 없기에 이렇게 글을 써 올립니다”

피해병사 B

“참다참다 참지못한 ㅇㅇㅇ해병은 감찰실에서 조사가 왔을 떄 이러한 내용들을 적었지만 이 일은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없어져 버렸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해병대 가혹행위 보도 이후 현장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덕산스포텔을 찾아갔다. 병사들을 괴롭히던 가해자와 구타 가혹행위를 묵인해온 부사관들은 더이상 자리에 없었고, 병사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었다.

어떻게 될 지 궁금해요. 이 일이 일어나고 난 후에 다른 부대로 간다거나 변화가 있는건지 그런 것들이…

피해병사 C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뉴스타파가 보도한 해병대 가혹행위 사건과 관련해 감찰 보고 누락 경위 등에 대해 직권 조사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취재: 박대용, 박종화
촬영: 정형민
편집: 박서영

금, 2017/10/27- 21:07
118
0

해병대에서 엽기적인 폭행과 가혹행위가 장기간 일상적으로 발생했지만 내부에서 묵인, 은폐돼 온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결과 드러났다. 지난 8월엔 해병대사령부의 감찰반이 와서 피해 병사들의 진술까지 받아갔지만 두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최근 해병대사령부가 운영하는 해병대 휴양시설인 덕산스포텔, 일명 덕산대에서 복무 중인 해병대 병사들의 폭행 및 가혹행위 피해 자술서를 입수했다. 이 자술서엔 덕산대 부사관들이 사병들을 상대로 자행한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행위를 하거나 이를 묵인한 과정 등이 상세히 기재돼 있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뚝배기 집게로 병사 혀 잡아 당기기, 주방용 가위를 병사 입과 귀에 대고 자른다고 위협하기, 병따개를 손가락에 끼워 꺾는 동안 웃으며 노래 1절을 부르기, 목공용 공구인 타카를 병사를 향해 쏘기, 빨래 건조대 봉에서 뽑은 철심을 허벅지나 팔에 튕기기, 술을 마시고 들어와 병사의 머리에 야구배트를 크게 휘두르기, 글러브를 끼고 권투를 하듯 병사 때리기 등등.

이 같은 폭행과 가혹행위가 상습적으로 발생한 경기도 화성 해병대사령부 덕산스포텔은 해병대사령부와 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피해 병사들의 피해 진술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덕산스포텔을 찾았다.

객실과 연회장, 골프장 등이 딸린 군 복지시설, 해병대원 20명 복무

서울에서 약 두 시간 거리. 산비탈에 걸쳐 있는 덕산스포텔은 해병대사령부 본부대 본부중대가 직접 관리하는 군 복지시설이다. 이 곳은 주말이면 발디딜 틈이 없는 이른바 핫플레이스다. 바로 앞에는 골프장이 있고 노래방, 목욕탕, 한실과 양실을 겸비한 객실, 그리고 150명은 거뜬히 수용하는 연회장과 룸, 식당이 들어선 4층 복합건물이다. 현역, 전역 해병대 관계자뿐 아니라 민간인도 10% 부가세를 붙인 가격이면 이용할 수 있다. 음식과 주류도 저렴하고, 객실 이용료도 보통 휴양시설보다 싼 편이다. 그래서인지 3성 장군인 해병대사령관부터 가족 단위 민간인들도 많이 오는 곳이다.

▲ 주말 저녁은 대부분의 테이블이 가득 찰 정도로 많은 전현직 군인들이 회식장소로 찾는다.

▲ 주말 저녁은 대부분의 테이블이 가득 찰 정도로 많은 전현직 군인들이 회식장소로 찾는다.

덕산스포텔은 상사 1명, 중사 3명 등 4명의 부사관과 사병 16명, 그리고 민간인 군무원까지 총 25명이 근무한다. 병사들은 폭행과 가혹행위가 주로 이 모 중사(26)에 의해 자행됐다고 진술했다. 부사관 4명의 직무는 관리관, 시설관, 보급관, 보좌관으로 나뉜다. 이 중사는 시설관이다. 그는 올해 봄 덕산스포텔으로 근무 명령을 받았다. 이 중사는 덕산스포텔에 빠르게 적응했고 “내가 이곳의 실세”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혀 잡아당긴 집게로 주방 일 해야 하는 병사들

병사들의 피해 진술서에는 피해 당사자로서 쓴 진술도 있고, 동료 병사가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내용도 담겨있다. 취재진이 병사들의 피해 진술서 수십 장을 분석해보니 이 중사가 자행한 폭력의 유형은 크게 세가지로 나타났다. 구타와 도구를 이용한 폭력 및 가혹행위, 그리고 성희롱이 섞인 언어폭력이었다. 특히 조용하고 겁이 많은 병사들이 주요 폭력의 대상이었다. 다음은 한 피해 해병의 진술서 내용이다.

나는 과업지 후임과 같이 항상 폭행을 당했다. 주먹과 팔꿈치는 기본이고 때로는 도구를 이용해 때리기도 한다. 도구는 가위, 집게, 야구방망이, 가느다란 철봉 타카 등 많다.

뚝배기 집게

▲ 뚝배기 집게

▲ 뚝배기 집게

또 다른 피해 병사는 지난 4, 5월 경 이 중사와 단 둘이 사무실에 있다가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한다. CCTV는 물론 다른 병사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중사는 뚝배기 집게를 들고 이 병사의 혀를 집게로 잡아 당겼다. 다음은 진술서 내용이다.

이oo 중사가 혀를 내밀라고 하여 혓바닥을 잡고 당겼습니다

취재진은 덕산스포텔 현장 취재 과정에서 이 병사를 직접 만나 당시 상황을 재확인했다. 그는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증언했다.

혀를 내밀라고 해서 이렇게 내밀었더니 더 내밀라고 해서 (집게로) 집어서 당겼습니다.

가위

▲ 덕산스포텔 주방용 가위

▲ 덕산스포텔 주방용 가위

지난 8월 중순 쯤 덕산스포텔 프론트에서 근무 중이던 한 피해병사는 이 중사에게 가위로 위협을 당했다. 점심을 같이 먹지 않고 먼저 먹었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밥을 같이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술과 귀에 가위를 들이대며 잘라버리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당시 장면을 목격한 동료 사병은 이렇게 진술했다.

가위로는 후임의 신체 일부를 자른다고 했습니다.

병따개

▲ 덕산스포텔 병따개

▲ 덕산스포텔 병따개

병따개로 괴롭힘을 당한 병사도 있었다.

상습적으로 병따개를 손가락에 끼워서 꺾습니다. 다른 병사들도 많이 당했습니다.

병따개 가혹행위는 다른 병사들도 여러번 목격했다.

병따개로 손가락을 꺾어서 당한 병사가 아파하면 웃으면서 중사 이OO는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노래가 1절이 끝날 때까지 계속 손을 꺾고 있는 거죠.

야구배트

▲ 덕산대 가혹행위에 사용된 야구배트

▲ 덕산대 가혹행위에 사용된 야구배트

알루미늄 야구배트도 동원됐다. 이 중사는 야구방망이로 병사들의 팔, 다리는 물론 머리도 가격했다고 한다.

야구방망이로 엉덩이와 팔을 가격했습니다. 정말로 다른 후임, 선임도 있는데 퍽퍽 소리나서 이걸 이렇게 세게 때리냐고 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야구배트를 휘둘렀다는 목격 병사의 증언이다.

술을 먹고 스포텔에 온 이OO 중사가 시설근무를 서고 있는 000 해병에게 욕설과 야구배트로 머리를 때리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고..

빨래 건조대 철심

▲ 덕산대 가혹행위에 사용된 빨래 건조대 철심

▲ 덕산대 가혹행위에 사용된 빨래 건조대 철심

가느다란 철봉은 빨래 건조대의 살인데 허벅지를 주로 때렸습니다.

쇠막대기로 팔뚝을 휘둘렀습니다. 아프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너 번 더 때렸습니다.

타카

2017102502_07

▲덕산스포텔 가혹행위에 사용된 ‘타카'

▲덕산스포텔 가혹행위에 사용된 ‘타카’

목공용 공구인 이른바 ‘타카’는 벽에 포스터를 붙일 때나 건물 벽을 세울 때 사용한다. 가혹행위에 사용된 ‘타카’는 디귿자 형 심을 박는 일반 타카와 바늘처럼 생긴 심을 쏘는 에어 타카 등 2종류였다. 방아쇠를 당겨 총을 쏘듯 타카를 병사들에게 쐈다고 한다.

타카라고. 스테이플러같은 것인데, 좀 센 스테이플러인데, 그것을 사람한테 쏘는 거죠. 일반 타카는 스테이플러가 좀 센 정도인데 콤프레셔 연결해서 쓰는 타카도 있는데 그건 캔음료에 쏘면 캔음료가 빵꾸날 정도의 강도인데 그걸 사람한테 쏘는 거죠. 총처럼.

뉴스타파 취재진은 덕산스포텔 현장에서 시설관 이 중사를 만났다. 그는 병따개와 야구배트, 타카로 병사들에게 가혹행위를 한 사실을 시인했다. 이유를 묻자 병사들이 “말을 듣지 않고 장난을 쳐서”라고 답했다.

새벽에 술 취해 들어와 근무 중인 병사에게 가족 성희롱도

해병대사령부 덕산대 내에서 일어난 언어폭력, 성희롱 발언도 병사들을 괴롭혔다.

새벽 근무를 서고 있는데, 중사 이OO와 중사 최OO가 술에 취해 스포텔에 왔습니다. 노래방을 이용하고 새벽 3시 30분에 누나를 소개시켜 달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안된다고 했지만 계속해서 요구를 하길래 저는 피곤하고 귀찮은 마음에 누나에게 물어보겠다며 상황을 넘겼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마무리 되는 듯했으나 중사 이OO가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손동작을 취하면서 “네 덕에 한 번 하겠네”라며 성희롱을 했습니다. 저는 순간 너무 화가 나서 표정을 굳히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피해병사 진술서

방관과 은폐, 그리고 제보

덕산스포텔에서 근무하는 해병 부대의 책임자는 관리관이라는 보직을 맡고 있는 장 모 상사다. 취재진과 만난 그는 이곳에서 일어난 폭력과 가혹행위 일체를 부인했다. 그는 병사들과 “매일 고충상담을 하고 있다”면서도 병사들이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중사 오OO과 상사 장OO 모두 아무 말 없이 넘어가고 방관만 하며 상황을 회피하고 넘어가려고만 했다.

피해병사 진술서

덕산스포텔 근무 해병 16명은 이렇게 절망 속에서 군생활을 지속했다. 그런데 지난 7월, 박찬주 육군 대장의 이른바 공관병 갑질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여론이 비등해졌고, 8월 말 덕산스포텔에도 해병대사령부의 감찰반이 나왔다. 사령부 감찰팀은 병사들에게 “우리는 사령관 직속 기관이기 때문에 다른 간부나 누가 터치하는 게 없고 바로 사령관님한테 보고한다. 우리가 다 해결해줄테니 문제 되는 것들 다 써라”고 말했다고 했다. 병사들은 설문조사지를 받아 들고 꼼꼼하게 부사관들의 폭행 및 가혹행위와 간부들의 근무태도 불량, 갑질 등을 작성해서 사령부 감찰팀에 제출했다.

병사들은 곧 변화가 오길 기대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병사들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덕산스포텔 현장 취재 중 마침 연회 차 이곳을 방문한 전진구 해병대사령관을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 덕산대 감찰 결과를 보고받았는지 물었다. 하지만 전진구 사령관은 “지금 처음 듣는 얘기”라며 “폭력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전 사령관은 덕산스포텔에서 음식 조리와 서빙, 시설 관리 등을 담당하는 해병대원들이 상습적인 폭행과 가혹행위,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하고 있는 시기에도 각종 모임과 행사, 연회 등을 위해 이곳을 자주 방문했다. 해병대는 뉴스타파 취재가 시작되고나서야 덕산대 가혹행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해병대는 피해 병사들을 보호하고, 부사관들의 폭력과 묵인을 제대로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고 바꾸고 싶어서. 솔직히 걱정도 많이 했고 지금도 걱정이 되는데. …알려진다면 제대로 된 조사나 제대로 된 처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사령부가 지척에 있는 작은 해병 부대에서 가혹행위에 시달려온 병사들이, 도저히 내부에서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두 달이 넘게 고민하고 피해 진술서를 쓰며 외부에 제보를 결심하고 결행했던 날, 뉴스타파에 보내 온 간절한 바람이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군내 폭력과 가혹행위 관련 제보를 뉴스타파 홈페이지를 통해 받고 있다.


취재: 박종화, 박대용
촬영: 정형민, 김기철, 오준식
편집: 윤석민, 박서영
디자인: 하난희
C.G.: 정동우

수, 2017/10/25- 15:38
117
0

국정감사 철이 다가왔습니다. 매년 이맘 때면  국회의원들은 자기 이름을 박아 정책자료집을 경쟁적으로 내놓습니다. 정책자료집은 국정감사 ‘우수의원’을 뽑는 근거로도 쓰입니다. 그러나 과연 정책자료집이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을까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적폐청산 프로젝트-국회개혁>의 일환으로 국회의원 정책자료집의 내용과 발간 비용을 분석하던 중 그 동안 감춰져 온 비밀을 발견했습니다. 뉴스타파는 그 결과물을 국회 국정감사 시기에 맞춰 차례로 보도합니다.

뉴스타파가 자유한국당 홍문표 의원의 정책자료집을 분석한 결과, 자신이 속한 국회 상임위 피감기관의 연구보고서를 통째로 베낀 사실이 확인됐다.

2017101105_01

홍문표 의원은 2012년 10월 정책자료집 “산지위판장 시설개선 방안”을 발간했다. 모두 73쪽 분량으로 수산물 유통과 위판장 시설 개선 방안을 다루고 있다. 정책자료집에는 전국 각지의 위판장 사진을 올려놓고 ‘현장방문 사진’이라고 명시했다. 마치 홍 의원이나 보좌관들이 직접 전국을 돌며 촬영한 사진인 것처럼 보였다.

▲ 홍문표의원 정책자료집과 수산경제연구원 연구보고서

▲ 홍문표의원 정책자료집과 수산경제연구원 연구보고서

하지만 조사 결과 홍 의원의 정책자료집은 2010년 수협중앙회 소속 연구기관인 수산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연구보고서의 내용과 판박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1장에서부터 7장까지 연구보고서 내용을 대부분 그대로 옮겨왔다. 도표와 ‘현장방문 사진’도 같다. 홍 의원은 그러나 출처 표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 연구보고서의 ‘현장방문사진’도 그대로 옮겨왔다.

▲ 연구보고서의 ‘현장방문사진’도 그대로 옮겨왔다.

홍문표 의원의 정책자료집과 수산경제연구원 연구보고서 전문 보기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 홍문표 의원 정책자료집
2012년 10월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산지위판장 시설개선 방안>

– 대상자료
2010년 12월 수협중앙회 수산경제연구원 <산지위판장 시설개선 및 어촌관광 연계 방안>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국회 상임위의 피감기관 소속 연구기관의 보고서를 베껴 정책자료집을 만든 것이다. 홍문표 의원은 오랫동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에서 활동해왔다.

그렇다면 홍문표 의원은 연구보고서 저자의 허락을 받고 정책자료집을 만든 것일까? 취재진은 수산경제연구원을 찾아가 확인했다. 연구보고서의 저자는 홍 의원 측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고, 홍 의원이 낸 정책자료집의 존재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해당 저자는 이처럼 자신의 연구가 통째로 도용당한 사실을 확인하더라도 국회의원을 상대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밝혔다. 국회 피감 기관에 속한 연구자가 해당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등을 거론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고 했다. 그는 공식 인터뷰는 어렵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알았다 해도 공식적으로 문제제기 하기는 쉽지 않겠죠. 괜히 노출됐다가는 저는 상관이 없는데 이제 조직적으로 시끄러워지니까, 게다가 저희 국정감사가 코 앞이라서요. 아시다시피 현재 권력관계가 그렇다보니까 현장이 있는 저희 입장은 조심스러워요. 국정감사 때 괜히 잘못 밉보이면 또 골치 아파져요.

연구보고서 저자

취재진은 9월 14일 홍문표 의원을 만나 피감기관 소속 연구기관이 발행한 보고서를 출처 표기 없이 베낀 경위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보좌관에게 설명 들으라고 했다.

며칠 후 홍문표 의원실을 찾아 보좌관을 만났다. 이 보좌관은 취재진이 이미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왔다는 것을 모르고, 저자의 허락을 받아 정책자료집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가 이미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고 하자 급히 말을 바꿨다.

2017101105_04

홍문표 의원실은 “국회의원은 교수가 아니고 (정책자료집을) 상업적으로 판매할 목적으로 만들지도 않았으며, 연구기관과 암묵적인 묵인 하에 정책자료집을 제작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과연 ‘암묵적인 묵인’이란 어떤 묵인을 의미하는 건지 더 이상의 해명은 없었다.

뉴스타파는 홍문표 의원실에 피감기관 연구보고서를 베껴서 정책자료집을 내고 발간 비용으로 국회 예산을 얼마나 받았는지 공개할 것을 요청했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3선의 홍문표 의원은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을 지냈으며, 오랫동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에서 활동해왔다. 그는 현재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취재 : 박중석, 최윤원
촬영 : 김남범, 오준식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자료조사 : 김도희, 정혜원

수, 2017/10/11- 20:30
116
0
ⓒgettyimages

ⓒgettyimages

두려움은 다양한 형태로 찾아온다. 한달 전, 이곳 터키에서 유혈 쿠데타가 벌어졌던 날 밤, 나는 이스탄불과 앙카라 시민 수백만 명과 마찬가지로 거실을 뒤흔드는 폭발음과 창문 밖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총소리에 온몸이 굳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아래층에 사는 이웃들은 욕실에서 서로 부둥켜안은 채 서로의 안전과 소중한 사람들의 생사를 걱정했고, 밖에서는 탱크가 지나가는 가운데 제트기와 헬리콥터가 하늘을 가득 메웠으며, 시민들은 반란군의 총에 쓰러졌다.

끔찍한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크게 안도했다. 그러나 매캐한 연기처럼이나 두려움은 여전히 가실 줄을 몰랐다. 밤에는 쿠데타 시도 저지를 축하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면서 거의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낮이 되면 거리는 여전히 긴장된 분위기였다. 상점 주인들의 얼굴에서 평소의 미소는 사라지고 꾹 다문 입술과 찌푸린 눈썹이 자리를 대신했다. 그 외에 많은 시민들은 집에 머물면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채 긴장하고 상황을 지켜보며 기다릴 뿐이었다. 쿠데타 위험은 막은 걸까? 폭력적인 권력 장악 시도가 또다시 이루어질 것인가?

이러한 공포의 기저에는 과거 터키에서 벌어졌던 잔혹한 쿠데타의 기억이 있다. 1980년 쿠데타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구금되고, 고문을 당하고, 사형이 집행됐다. 그 시대를 겪은 세대는 그 공포를 잘 알고 있고, 당시의 기억이 없는 젊은 사람들도 부모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쿠데타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며칠 후, 정부의 숙청이 시작됐고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며 이러한 공포는 수그러들기는커녕 또 다른 공포로 바뀌었다. 쿠데타 이후 한 달 동안 23,000명 이상이 구금됐고 약 82,000명이 직무정지되거나 해고되었다.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된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의 활동에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 사람들은 누구나 그 대상이 됐다. 군인, 경찰, 판사, 변호사, 학자, 기자, 교사, 의사, 심지어는 축구 심판까지 포함되었고, 누구도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정부는 치안을 확보하고, 시민을 보호하고, 일반인에게 폭력적인 공격을 가한 책임자를 기소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용의자로 의심되는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에만 조사와 기소가 이루어져야 한다. 누구도 임의로 체포, 구금되거나 처벌받을 수 없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간 터키 대통령이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숙청 대상이 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받은 영향은 막대했다. 직위가 정지되거나 해고된 사람들은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 것이다. 최근 아이 아빠가 된 한 사람은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직무정지를 당한 건 노동조합 회원이라서가 이유인 것 같아요. 이번 주부터 다시 출근하고 있지만 아직 절차를 기다리고 있어요. 이러다 해고를 당하면 새 직장도 못 구하고 가족들의 생계도 막막해질 텐데 그게 너무 두려워요.”

이렇게 많은 인원이 갑자기 해고되면서 국가 기능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판사 중 1/5이 직무정지, 해고, 구금되었고, 그 외에도 교육과 같이 필수적인 국가 기능들은 힘을 잃어 하룻밤 새로는 재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두려움에 떠는 것은 대중들뿐만이 아니다. 기자, 활동가, 변호사들 역시 목소리 내기를 꺼리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 역시 의혹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점은 현재 에르도간 정부가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 과거 군부 독재정권의 유산이라는 것이다. 1983년 통과된 비상사태법에 따르면 정부는 통행금지령을 부과하고, 시위를 금지하고, 기업, 재단, 협회를 폐쇄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며, 경찰은 영장 없이 검문수색을 할 수 있다. 다수의 보고서에서는 터키 경찰이 이러한 권한을 개인의 휴대폰 문자메시지와 소셜미디어 메시지를 확인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고 추측했다.

또한 이 법은 칙령에 따른 통치를 허용하기 때문에 정부는 아무런 이의 없이 새로운 법률을 통과시킬 수 있다. 지금까지 시행된 두 개의 칙령으로 인신보호영장을 30일까지 유예할 수 있고, 구금자가 변호사 접견권을 제한할 수 있으며, 칙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던 공무원은 기소로부터 면책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현대 터키 역사상 유례없는 수준의 언론 탄압이 이루어졌다. 지난달 131개 언론사 및 출판사가 문을 닫았으며 기자들을 대상으로 최소 89번 이상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이러한 쿠데타 숙청이 벌어진 것은 터키의 표현과 결사,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 이미 가속화되고 있던 시기였다. 터키 정부는 반 귈렌 성향의 신문사를 운영할 예정이었으며 쿠데타가 벌어지기 수 개월 전 이미 텔레비전 채널 15개가 폐쇄됐다. 평화적인 집회의 자유는 이미 제한된 상태였으며 시위 해산 과정에서 경찰이 과도한 무력을 사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쿠르드계 분리주의 단체 PKK와 정부군이 여러 차례 충돌했던 터키 동남부 지역에서 정부는 쿠르드족 마을과 인근을 대상으로 24시간 통행금지를 부과하고 서비스를 차단하는 등의 맹공격을 주도했다. 정부군은 주거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수행했고, 이 때문에 수만 명이 강제이주를 당하며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게 됐다.

쿠데타 이후 분위기가 과열된 양상에서 반정부 세력의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쿠데타 책임자와 단순 귈렌 동조자를 구별하는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음은 이미 명백하다. 정부의 “반역자”에 대한 정의는 좌파 인사, 쿠르드계 비평가를 모두 아우르는 수준까지 확장될 수 있었다.

폭력적인 쿠데타 시도와 뒤이은 정부의 숙청 과정은 앞으로도 수년 간 터키의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것이다. 터키는 점차 일상을 되찾고 있지만, 이전과는 다른 일상이다. 시민사회의 숨통이 줄어들고, 끊임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상인 것이다.

This article was first published by Time, and is republished here with their kind permission.

영어전문 보기
Turkey’s many shades of fear

Fear comes in many forms. A month ago, on the night of the bloody coup attempt here in Turkey, I together with millions in Istanbul and Ankara experienced gut-tightening fear as explosions shook our living rooms and gunfire crackled outside our windows. Downstairs my neighbours huddled in their bathroom, afraid for their safety and for the lives of loved ones. Outside, tanks rolled by whilst jets and helicopters filled the skies and civilians were gunned down by would-be putschists.

After it became clear that the bloody coup had failed there was huge relief, at least initially. But, like the acrid smell, fear still hung in the air. While large orchestrated rallies celebrating the defeat of the attempted coup brought an almost festive atmosphere at night, the mood on the streets during the day remained tense. Taut lips and furrowed brows had replaced the local shopkeepers’ usual smiles. Many others remained at home, watching and waiting nervously, unsure what would come next. Had the risk of a coup been averted? Could there be another violent attempt to seize power?

Underpinning this fear was the memory of brutal coups in Turkey’s past: of the detentions, torture and executions that followed the 1980 coup. Those who lived through it know the horror, whilst those too young to remember have heard the stories from their parents.

In the days after the failed coup, as the government crackdown began and the state of emergency was announced, the gnawing fear did not subside – it merely transformed. Over the month since the attempted uprising, more than 23,000 people have been detained and nearly 82,000 have been suspended or removed from their jobs. Anyone with any perceived link to the movement of U.S.-based cleric, Fethullah Gülen, accused of orchestrating the coup, has been targeted. Soldiers, police, judges, lawyers, academics, journalists, teachers, doctors and even football referees. Seemingly no one is immune.

While the government has the duty to ensure security, protect citizens, and prosecute those responsible for violent attacks on ordinary people, individuals should only be investigated and brought to justice where there is sufficient evidence against them. People must not be arbitrarily arrested, detained or punished. And that is where the government of President Recep Tayyip Erdogan is failing.

The impact on individuals and their families has been huge. Those who have been suspended or fired will have difficulty finding other jobs. One new father I spoke to explained: “I think the reason for my suspension is because I am a member of a trade union,” he said. “I am back at work this week but proceedings are pending. I am very scared that if I lose my job I won’t get another and it won’t be possible to provide for my family.”

Having so many people suddenly dismissed has had significant consequence for the functioning of the state. One fifth of the judiciary has been suspended, fired, or detained. Other essential state functions, such as education, have been brought to their knees and cannot be rebuilt overnight. Members of the public are not the only ones afraid. Journalists, activists and lawyers are petrified of speaking out, lest they, too, become a target of suspicion.

Ironically, the mechanisms being used by the Erdogan government now are a legacy of Turkey’s past military rulers. The state of emergency law, passed in 1983, gives the government the power to impose curfews, ban demonstrations, and close businesses, foundations and associations. It gives police the power to stop and search people without judicial authorization. Several reports suggest that the police are using these powers to look at text and social media messages on people’s phones.

The law also gives the government power to rule by decree so they can pass laws unchallenged. So far two decrees have allowed habeas corpus to be suspended for up to 30 days, restricted the rights of detainees to consult with lawyers, and given state officials immunity from prosecution for carrying out duties under the decrees.

Meanwhile, we have witnessed a crackdown on the media that is unprecedented in modern Turkish history. In the past month, 131 media outlets and publishing houses have been shut down and at least 89 arrest warrants have been issued for journalists.

The post-coup purge comes at a time when Turkey’s attack on freedoms of expression, association and assembly was already gathering momentum. Government administrators had been appointed to run Gülen-linked opposition newspapers and 15 TV channels were shut down in the months before the coup. The right to freedom of peaceful assembly was already restricted and excessive force was regularly used by police to disperse protests.

In the south-east of the country, where there have been clashes between members of Kurdish separatist group the PKK and security forces, the government has overseen an onslaught on Kurdish towns and neighbourhoods, which includes round-the-clock curfews and cuts to services. The military have conducted operations in residential areas resulting in hundreds of thousands being displaced and unable to return.

In the febrile post-coup atmosphere, it is likely that the situation for dissenters will further deteriorate. A blurring of the distinction between culpability for the coup and being a Gülen sympathizer has already been visible. The authorities’ definition of “traitor” could be broadened further still to encompass secular, leftist or Kurdish critics.

The violent coup attempt, together with the government crackdown that has followed, will leave indelible scars on Turkey for years to come. The country is gradually returning to normal – but it is a new normal. A normal where there is less oxygen for civil society and where underlying fear is a constant.

turkeygif

목, 2016/08/18- 18:31
115
0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프로젝트’를 주도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의 부대표 마리나 게바라를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가 만났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프로젝트 시작 시점에서 이뤄진 이 인터뷰에서 마리나 게바라 부대표는 국제협업 저널리즘의 중요성, 데이터 저널리즘, ICIJ의 향후 계획 등을 밝혔다.

화, 2017/11/07- 21:20
11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