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신촌 차없는 거리에서 2016 총선청년네트워크 "VOTEr DAY" 행사가 열렸습니다. 다가온 제20대 총선에서 희망을 말하려는 청년들이 모여 변화를 이야기하는 자리였는데요,
KYC 체인지리더는 신촌의 한 스터디룸에 미리 모여 각 정당들이 이번 총선에 내건 청년 공약들을 살펴본 후 행사에 함께했습니다.
날씨도 참 좋고, 벚꽃도 피었던 토요일 신촌에 모인 체인지리더! 체인지리더는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민중연합당의 정책 공약 자료집에서 청년 관련 공약을 발췌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각 정당들이 말하고 있는 청년 공약들은 참 많았습니다.
얼핏 보면 다 청년을 위한 것처럼 보이고, 다 좋아보이는 정책들... 하지만 하나씩 살펴보면 의아한 점들도 눈에 보입니다. 정부의 청년 일자리 정책은 2억 1천 억원이라는 예산에도 불구하고 그만큼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어떤 정당은 이 정책들을 확대하고, 또한 노동개혁을 통해 청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합니다. 그럴듯한 공약을 제시하지만 구체적인 실현방안은 제시하지 못하는 정당도 있습니다.
다양한 정당들이 청년 문제를 이야기하며 청년 공약을 내세우는데요, 총선이 지나서도 계속해서 청년 정책을 지켜보고, 이행 사항을 모니터링하는 활동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책은 많고, 전망은 불안하고.. 모두의 표정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정리하고 밖으로 나가 VOTEr DAY에 합류했습니다.
KYC를 비롯해 20여개 단체가 함께하는 2016 총선청년네트워크는 지난 두 달 정도에 걸쳐서 이번 20대 총선 과정에서 청년의 목소리를 모으고, 이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활동을 계속해서 진행해왔는데요.
그 활동을 보여드리고, 더 많은 청년이 함께하자는 마음을 담아서 신촌 거리 눈에 잘 띄는 노란빛 아래 각 단체별로 활동 전시를 하거나 지나가는 분들에게 캠페인 참여를 부탁하기도 하고 청년 문제를 다룬 게임, 청년 정책 평가 등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날 모든 단체 부스에서는 '우리는 변화에 투표할 것입니다'라는 글이 적힌 카드와 함께 세월호 리본을 나누어드렸습니다. 우리가 투표하는 이유, 앞으로의 세대가 다시 그와 같은 일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변화에 투표할 것을 표현한 플래시몹이었습니다. 눈을 가리고, 말하지 않더라도 유권자로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고
변화에 대한 바람을 담아 투표할 것을 다짐하며, 같이 투표하자는 권유까지 담긴 꽤 심오한 의미를 가진 몸짓이었는데요, 그럼에도 경쾌하고 재미있게 이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쭈뼛쭈뼛 수줍어하던 체인지리더들도 어느샌가 함께하며 색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신촌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을 강탈한 플래시몹 후, 세월호 진실을 촉구하고 변화에 투표할 것을 외치며 끼고 있던 장갑을 던지는 것으로 행사는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2016 총선청년네트워크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우리는 변화에 투표할 것입니다"라고 계속해서 말해왔는데요,
KYC 체인지리더도 지난 한 달간 "청년이 투표하는 이유"를 주제로 청년 정책 평가와 더불어 청년이 바라는 변화를 말해왔습니다.
청년들이 말하는 변화는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테이블토크 참가자들이 가끔 말하는 것처럼 "답이 없다"고 느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청년정책을 말하고, 변화를 이야기하고, 목소리를 내어 요구하려고 합니다. 청년의 정책, 청년의 삶을 계속해서 고민해나갈 것입니다.
참여연대는 2008년 반값등록금운동은 물론 청년실업·청년복지·연금행동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청년 문제 해결에 힘써왔습니다. 또한 2006년부터는 6회에 거친 청년연수프로그램, 16회에 거친 청년인턴프로그램을 진행하여 다양한 청년활동가와 청년시민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활동이 함께 이루어지도록, 청년들이 스스로를 대변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청년참여연대를 만듭니다. '청년들이 만드는 즐거운 변화,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해 함께해주세요!
- KYC 체인지리더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변화를 상상하고 창조합니다. - 2009년부터 시작된 체인지리더 활동 : 청년정책 FGI(Focus Group Interview), 서울시장공개채용프로젝트, 커피파티, 20‘s 정책 Choice, 정부 청년정책 모니터링 및 기사 작성 - 2016 체인지리더 6기는 청년문제들을 살펴보는 학습과 청년문제 해결을 상상하는 테이블 토크를 진행합니다. - 2016 체인지리더 6기는 기본교육 수료 후 내년 4월 20대 총선에서 유권자운동을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 2016 체인지리더 6기는 더 나은 청년들의 삶을 만들기 위해 학습하고 행동하는 청년활동가입니다.
헬조선의 다른 이름은 불안한 미래, 불평등·불공정한 사회입니다. 체인지리더를 통해 청년들의 현실을 고민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싶은 청년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지금 바로 체인지리더가 되어주세요!
[체인지리더 6기 활동과정]
☑ 기본교육 청년들은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이야기하며, 부모의 재력에 따라 자신을 금수저, 흙수저 등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우리가 헬조선이라 이야기하는 것이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를 배워서일까요? 그보다는 우리의 현실이 불평등, 불공정, 불안으로 둘러싸여 있어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포기해야 할까요? 개인의 노오력으로 내 살길을 찾아야 하는 걸까요?
포기하지 말고, 함께 청년 중심의 경제, 청년정책, 정치를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각 분야의 전문가와 청년활동가들의 이야기도 듣고,우리의 생각을 모아 해결 방법을 상상해보는 테이블 토크도 함께 진행합니다.
기본교육은 테이블 토크 1시간+강연 2시간으로 구성됩니다.
☑ 청년참여 캠페인
선거는 청년들에게 기회의 공간입니다. 체인지리더 6기는 2016년 4월, 20대 총선을 맞아 다양한 청년 유권자운동을 기획하고 참여합니다. 헬조선이라는 자조를 넘어 힘겨운 현실의 변화를 만드는 유쾌한 활동을 기획합니다. 더 많은 청년들의 투표 참여를 위한 테이블 토크를 기획·운영하는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합니다.
☑ 체리 활동 수료식
기본교육 8강을 수강하고 체인지리더로서 청년세대의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활동한 청년들을 위한 축하자리입니다. 4개월간의 활동을 돌아보고, 우리가 가져온 변화가 무엇인지를 함께 보며 희망을 찾아가는 시간입니다. 체인지리더 6기 수료증 및 자원봉사 확인서 등이 발급됩니다.
- 모집 기한 : 2015년 12월 22일(화) ~ 2016년 1월 19일(화) - 등록 절차 : 신청서 접수 -> 수강료 입금 -> 확인 문자 -> 등록완료 * 수강료를 입금하셔야 등록이 완료됩니다. - 수강료 : 5만원(서울KYC회원 40% 할인, 3만원) [신한은행] 100-014-292108 예금주 : (사)KYC한국청년연합 교육시작 후에는 환불되지 않습니다. - 교육 수료 조건 : 기본 교육 7강 중 5강 이상 참여
[특전]
* 기본 교육 수료시 : 체인지리더 기본 교육 수료증 발급 * 체인지리더 활동 참여시 : 체인지리더 활동 증명서 발급, 자원봉사확인서 발급, 우수활동자 NGO 및 국회 인턴 지원시 추천서 발급 가능(요청시), 모임공간 지원(KYC 성북동 사무국)
#우리동네_노동상담사 #찾아가는_노동상담 #일상에서_함께하는_노동상담 지난 7월 15일, <청년유니온 우리동네 노동상담사> 워크샵 겸 수료식으로 세미나기간을 마치고 노동상담을 시작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지난 4주동안의 세미나에서 공부한걸 바탕으로, 앞으로 실제로 상담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시간으로 가졌는데요. 처음에는 그동안 해왔던 내용을 복습할겸, 작년에 청년유니온에서 만들었던 <내ː일을 위한 보드게임>을 함께 했습니다. 그동안 세미나의 결실인지, 문제들을 다들 잘 맞춰주셔서 다른때보다 훨씬 빠른 시간내에 끝나서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김병철 노동상담팀장의 "우리동네 노동상담사, 이정도는 알고 상담하자" (부제: 노동상담를 시작할때 알아야 할 것들, 분쟁상황시 구제절차, 그리고 노동조합)에 대해서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많은 내용을 깔끔하게 이야기해주셔서 다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대망의 모의상담!! 내담자와 상담자팀으로 나눠서, 실제 사례들을 각색해서 모의상담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모의상담을 진행하니 궁금한 것도 분명 해지고, 앞으로 상담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수료식! 우리동네 노동상담사로 함께하자는 수료증과 명함, 그리고 더운날 사람들 열심히 찾아돌아다니기 위한(!!) 미니선풍기를 선물로 수료품으로 나눴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수료증을 읽어주며 수료식을 진행했어요~ㅎㅎ 앞으로 9월말까지 활동을 하면서, 조합원모임이나 일상공간으로 찾아가는 "찾아가는 노동상담"을 진행하고, 노동상담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만들려고해요!!ㅎㅎ 앞으로 활동 기대해주시고 <우리동네 노동상담사> 많이 찾아주세요!
지난 6월 23일, 전주를 다시 찾았습니다. 5월 지역으로 가는 감사의 식탁 전주 모임에 참여하셨던 후원회원님들과 지역의 청년들이 후속모임을 하기로 약속한 날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모임은 김경희 관장님의 초대를 받아 전주 책마루어린이도서관(이하 책마루)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저녁, 후원회원님들과 책마루에 관심 있는 전주 청년들도 함께 해 더 반가웠습니다. 한 달 만에 다시 모인 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김밥과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관장님의 소개로 책마루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구석구석 지역주민의 손길이
책마루에는 구석구석 지역주민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만든 ‘사람들이 만화책을 읽을 때는 조용!’이라는 재미있는 문구가 적힌 팻말부터, 책 속의 주인공을 모빌로 만든 조형물까지… 이곳은 단순히 아이들이 책만 읽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한 곳에 모여 놀이와 배움이 어우러지는 곳이었습니다. 7만7천여 명(누적)의 이용자가 모두 책마루의 후원자이자 자원활동가라는 소개에서 이곳이 지역주민의 손으로 만들어졌고,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친구에게 추천하는 책을 따로 전시해놓은 것을 보며, 도서관 운영에 직접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주인의식이 자연스레 학습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도서관은 조용히 공부하는 곳’이라는 말보다 더 깊은 가르침이지요.
책마루에는 아이와 어른이 함께 활동하는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수요똑똑똑, 책꾸러미나르기, 방과후교사, 책읽어주기 등… 소통, 나눔, 북돋음, 키움, 기다림을 바탕으로 한 운영정신이 잘 반영된 활동이었습니다. 책마루 활동가이신 공세영 후원회원님께서 ‘모치모치나무’라는 동화책을 읽어주셨는데요. 너나 할 것 없이 낭독 선생님이 읽어주시는 동화책 내용에 푹 빠졌답니다.
함께 만드는 따뜻한 도서관
책마루에서 운영 중인 졸음쉼터(활동가, 지역사람들의 쉼터)와 한솥밥(지역민들과 동짓날 팥죽 나누는 행사)과 같은 프로그램은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도서관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 ‘함께 누리고, 함께 만들어 가는, 따뜻한 도서관’이 책마루가 나아갈 길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후원회원님들과 전주 청년들도 후원과 활동 참여로 책마루의 앞길에 마음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희망제작소 덕분에 청년들에게 책마루를 소개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지역분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자주 있으면 좋겠습니다.” – 김경희 책마루어린이도서관 관장
“전주에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어요. 책마루어린이도서관 너무 좋아요!” - 전주 청년
“지역의 청년들과 만나고 함께 모이는 후원회원행사에 다른 후원회원들도 많이 참여하면 좋겠어요.” - 전주 후원회원
다음 만남도 기대합니다
5월 지역으로 가는 감사의 식탁은, 이렇게 지역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졌습니다. 지역의 청년들도 함께해 더 의미 있는 자리가 되었지요. 이번 만남을 기억하며, 7월 17일(금) 부산에서 진행될 지역으로 가는 감사의 식탁도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제주 4.3사건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이 가능할까?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로 사람이 죽었고, 이에 대해 사과와 책임 요구를 묵살! 3월 10일 경찰, 법원, 행정 조직 등 도민의 95%가 참여한 총파업 이때부터 레드아일랜드 '빨갱이섬'으로 낙인찍혀 대대적인 구금 검거 작전이 일어난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350명의 무장봉기! 5.10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 통일정부 수립촉구!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 중지! 무장대는 이렇게 주장하며 경찰지서, 우익단체 요인들의 집을 습격하며 봉기를 시작했다. 5월10일 단독선거! 제주도의 세개 선거구 가운데 두개 선거구에서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처리되면서, 남한에서 제주도가 유일하게 5.10선거를 거부한 지역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이승만 대통령은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제주 사태를 인식하고 '해안선으로부터 5㎞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해총살하겠다'는 포고문 발표, 그 후 포고령은 소개령으로 이어졌다. 11월 게엄령을 선포하면서 중산간마을에 이른바 '초토화작전'을 벌인다. 1948년 11월 중순부터 약 4개월 동안, 중산간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 학살했다. 해안마을 주민들은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1949년 한라산 더 깊은 곳으로 피신해있던 주민들에게 사면정책을 발표해 산을 내려오게했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예비검속"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1954년 한라산 금족(禁足)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무장대와 토벌대사이의 무장충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사건이 마감되었다...
4.3사건으로 희생된 사람은 13,000~30,000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고, 죽음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것도 여전하다. 왜 이렇게 많은 희생이 있었을까...? 누가 죽었을까..? 어디에서 죽었지...? 왜 죽어야 했을까..? 4.3은 왜 그토록 오랜시간 잠들어있었을까..? 제주는 이 모진 세월을 어떻게 버티고, 견디고 있었을까...?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던 제주. 제대로 울지도 못했던 제주. 어딜가더라도 붉은피로 물들었던 고통스러운 제주 제주가 기억하고 있는 4.3의 현장. 우리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가로세로 500m 크기의 선흘리 낙선동 성터.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폐허가 된 마을을 복원하면서 쌓은 성으로 주민들과 무장대간의 연계를 차단하고 주민들을 효율적으로 감시. 통제하기 위한 전략촌이다.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기에 성을 쌓고, 보초를 서는것은 노약자와 여성들의 몫이 되었다. 낙선동성에서 천여명의 사람들이 집단생활을 했다고 한다. 좁은 곳에 수많은 사람을 수용하니 짐승우리같은 곳에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갔다. 수많은 성터는 모두 허물어지고, 이곳은 최근에 복원되었다. 초소도, 통시(화장실)도, 함바집도 깨끗하게 단장했다. 그래서 살만한 곳인가? 고통스러웠던 현장이 새돌로 다시 만들어져 말끔해졌다. 그래도 아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을이 초토화되자 일부 주민들은 해안마을로 피난했지만, 기르던 가축과 수확한 곡식을 두고갈 수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임시 피난처를 찾았다. '며칠만 숨어 있으면 사태가 끝나겠지'하는 생각으로 찾아든 곳이 숲이 우거진 천연동굴이었다. 선흘곶 지역의 반못굴(도틀굴), 주변의 목시물굴, 다랑쉬굴 등등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토벌대를 피해 조마조마 숨죽이며 지내던 동굴들이 여기저기 그대로다.
안덕면 동광리 주민들이 은신 생활을 했던 큰넓궤. 이곳은 영화 '지슬'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졌다. 낮은 자세로 기어서 입구를 들어가면 갑자기 넓고 높은 공간이 나온다. 서서 다닐 수 있을 정도! 청년들은 물론, 노인에서 아이들까지 토벌대를 피해 이곳에서 숨어살아야했다.
토벌대의 습격에 대비해 망을 보기도 하고 식량이나 물을 나르기도 했다. 아직도 동굴에는 항아리 파편 등 당시 생활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짧게는 5일에서 길게는 50일이 넘도록 동굴생활을 했다고한다. 굴이 발각되면 한라산 더 깊은 곳으로 도망을 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총살당하거나 무자비한 고문을 받았다. 큰넓궤에서 생포된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정방폭포에서 대부분 학살되었다. 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숲풀을 헤치며, 겨우 도착해야 만날 수 있는 곳.
그 당시는 아마도 더 찾기가 어려웠을 그런 곳에 위치해있다. 혼자 오면 과연 찾아갈 수 있을까? 큰넓궤, 도엣궤가 있는 땅은 이제 사유지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살았던 동굴. 우리는 그 동굴을 온전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 이런 역사의 현장이 방치된채 있는 것이 지금의 4.3의 현실인것인가?
순이삼춘의 무대가 된 북촌리 마을. 북촌초등학교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살인. 집단학살. 이곳은 한때 무남촌이라 불릴 정도로 '무장대가 될지도 모를 남자들'이 모조리 희생된 곳이다. 평생 순이삼촌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오누이를 잃었던 옴팡밭의 기억. 지금 그 옴팡밭에는 [순이삼촌] 문학비가 세워져있다. 붉은 피로 상장되는 송이 위에 눕혀져 있는 비석들은 당시 쓰러져간 희생자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밤에는 무장대가 출몰하고, 낮에는 순경이 출몰하여 “폭도에 쫓기고 군경에 쫓겨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조천읍 북촌리, 학살과 강요된 침묵, 그리고 울음마저도 죄가 되던 암울한 시대 4.3의 참혹함과 고통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순이삼촌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중산간마을 초토화작전으로,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고 마을은 불타고 모든것이 사라졌다. 동광리에서 가장 큰 마을에 속하는 무동이왓마을도 잃어버린 마을이다. 모든것들이 사라져서, 마을 자체가 무너져서,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다. 무동이왓 주민들은 토벌대를 피해서 큰넓궤로 피신했다. 제주 곳곳에 300여개 정도 '잃어버린 마을'이 남아있다고 한다. 사람의 온기는 사라졌지만 방으로, 부엌으로 사용되었던 흔적에 돌탑이 쌓여있다. 마을이 있던 흔적을 알려주는 대나무와 연자방아터, 학살터.. 땅은 그대로인데, 이곳에는 더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 4.3의 아픔이 그대로 담겨있어 살 수 없는 땅이라서 그런 것인가...
무등이왓에서 가까운 곳에 지슬밭을 지나가다보면 헛묘가 나온다. 헛묘는 가짜묘다. 봉분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 시신이 없다. 정방폭포에서 사살된 사람들. 시신 수습을 하지 못해서, 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칠성판위에 입던 옷을 넣어서 묘를 세웠다고 한다. 봉분은 7기인데, 9분이 모셔져 있다고 하니 합장묘인 것도 있다. 시신을 못찾아 행방불명된 억울한 죽음. 유가족들의 피맺은 한이 만들어낸 헛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보도연맹원을 체포 구금했다. 제주에서도 4.3때 체포된 사람들, 이른바'불순분자'를 검속한 후 섯알오름에서 집단학살한 사건이 발생한다. 계엄군에 의해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이 한밤중에 무참히 총살. 이름모를 산야에 암매장되거나 깊은 바다에 수정되었다. 섯알오름은 유일하게 남은 학살터이다. 섯알오름은 일본군이 1944년 말부터 대정읍 ‘알뜨르’ 지역을 군사요새화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폭탄 창고 터였다. 주변에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시설, 송악산 해안동굴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패망후 미군에 의해 오름이 폭파되면서, 절반이 함몰되어 큰 구덩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구덩이에서 집단학살이 벌어진다.
전쟁이 끝나고도 유족들이 유골을 수습하지 못하다 7년이 지난 1957년에야 현장을 찾았는데 서로 엉킨 유골을 구분할 수 없어서 함께 모아 묘를 만들어 그 억울한 죽음을 추모할 수 있도록 만든 곳이 백조일손지묘이다. "조상이 다른 132명이 죽어, 뼈가 엉퀴어 하나되었다 "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구분할 수 없어 합동제사를 지내기 위한 유족들의 마음이었다. 5.16쿠데타 당시에는, 빨갱이를 처단한다는 이유로 묘비가 훼손되기도 했다.
제주4.3사건으로 붉은색이 덧씌워진 제주도민들은 사건 이후에도 냉전과 정치공작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한다. 각종 조작간첩사건이 만들어지고, 연좌제로 인해 고통이 되물림되었다. 군사독재시절 은폐, 왜곡... 강요된 침묵 속에서 4.3의 진실은 드러낼 수 없었다.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통해 조금씩 4.3이 세상과 만나게 되었고 민주화이후 숨죽여온 유가족들의 절규가 알려지면서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국가기념일이 되었다.
그래서, 잃어버린 마을이 돌아오고, 억울한 죽음이 위로가 되었을까? 아직도 여전히 4.3은 진행중이라고 한다. '레드컴플렉스'에 시달려온 고통의 시간. 아직도 입밖으로 꺼내는 것이 두려워 4.3의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사람들. 미신고되거나 이름대신 유해번호로 남아있는 미확인 희생자들 국가 예산이 중단되어 유해발굴을 하지 못하는 현장들... 국가가 민간인을 무참하게 학살한 4.3의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고 있는 중이었다.
감요된 침묵의 시대, 울음도 토해내지 못했던 시대. 군경 토벌대에 학살당한 사람, 무장대에 학살당한 사람.... 제주는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과 그들의 유가족들이 얼굴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날의 기억을 지우고 못하고 있다.
우리는, 제주4.3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 것인가? 도대체 왜 이 비극적인 사건에 4.3이라는 무장봉기 날자를 붙이게 되었을까? 그 날짜에 가려진, 긴긴 고통의 시간들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 아픔의 치유와 해결을 오로지 제주의 몫으로 남겨둬서는 안될 것이다. 비참한 4.3의 역사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본다. 그동안 너무 외롭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다. 아름다운 제주 곳곳에 남아있는 4.3의 흔적 제주의 속살을 제대로 보지않고, 제주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방문했던 4.3유적터에서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은 곧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4.3의 흔적이 지워지게 해서는 안되겠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더 자주, 앞으로도 계속 그곳에 가야겠다.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역사의 '진실'을 찾는 것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더이상 국가폭력으로 비참하게, 억울한 죽음이 생기지 않도록 4.3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려고 한다.
폭도, 산사람들, 무장대, 빨갱이라 불렸을 그들을 제대로 알아주기까지. 제주4.3의 제대로된 이름을 찾는날까지!! 우리들의 여행은 계속 될 것이다.
11월 12일 박근혜퇴진! 백만촛불이 타올랐던 광장에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은 함덕해수욕장에서 우리들만의 '함성'으로 달랬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