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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 교수(고려대 행정학과,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 저자)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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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 교수(고려대 행정학과,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 저자) 초청

익명 (미확인) | 월, 2016/04/11- 10:05

김태일 교수(고려대 행정학과,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 저자) 초청

특별 강연 후기

 

- 김종환 회원(변시 2회)

 

 

‘아이쿠!’

월례회 강연 후기 작성을 부탁 받았을 때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생각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집중을 했어야 하는데…’라는 후회도 들더군요.

그렇지만 많은 깨달음을 주고 문제의식을 일깨우는 강연이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제 소감을 말씀 드려 보려고 합니다. 질문/토론까지 2시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짧은 지면에 모두 요약하는 것은 제 능력 밖의 일이어서 제가 흥미롭게 느꼈던 부분을 위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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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알려져 있듯, 산업구조가 고도화될수록 경제는 1차산업->2차산업->3차산업으로 그 중심이 이동하게 됩니다. 제조업 중심의 2차산업은 그 속성상 농어업과 같은 1차산업보다 생산성이 높기 때문에 2차산업 중심의 경제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2차산업이 생산성이 높다는 점은 기술이 발달할수록 2차산업은 더 적은 노동력으로도 같거나 더 많은 생산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2차산업에서 생긴 잉여인력이 서비스업과 같은 3차산업으로 옮겨 가게 됩니다. 문제는 서비스업은 일반적으로 생산성 증가가 2차산업에 비하여 더디다는 점입니다. 서비스업의 낮은 생산성 증가는 임금을 인상할 여지가 적어지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결국, 많은 노동자들이 생산성이 낮아 임금이 낮은 서비스업에 종사하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는 1차산업->2차산업으로의 전환기(산업사회의 발전기)에는 생기지 않는데 이는 보통 2차산업의 생산성이 1차산업보다 높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소득도 증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3차산업이 중심이 되는 탈산업사회에서는 산업사회와 달리 근로빈곤(working poor)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됩니다.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요인은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에서 비정규직의 비중이 크다는 점이라고 합니다.(현대자동차의 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과 맥도날드의 알바생을 자르는 것 중 어느 쪽이 쉬운지를 생각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 결과, 탈산업사회는 낮은 경제 성장률과 질 낮은 고용(높은 실업률)이라는 양대 경제 문제를 떠안게 됩니다. 여기에서 복지 제도 확충의 필요성이 생기게 됩니다. 산업사회에서는 복지제도가 노령, 질병, 실업에 대한 대비를 중심으로 마련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워킹푸어가 대거 등장하게 되는 탈산업사회에서는 일하는 빈곤층을 위한 복지제도 강화가 중요해집니다. 특히 일하는 빈곤층과 관련하여 복지의 사각제도에 있는 청년층에 대한 복지 확대도 절실하다고 합니다. 복지제도의 강화는 복지인력 고용을 통해 사회 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하여 실업률을 낮추는 장점도 가지므로 일거양득의 효과도 가집니다.(이와 관련하여, 김태일 교수님은 국가가 아닌 가족이 보육, 간호 등의 책임을 떠맡는 일은 매우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비판하셨습니다.)(저 역시, 최근 가장 고용 증가 속도가 빠른 부문이 사회복지 영역이라고 들은 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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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복지 강화를 위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 것인가? 교수님은 한국의 세율이 여전히 낮은(법인세뿐만 아니라 소득세도 마찬가지) 상황에서 복지 강화를 위하여 증세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보시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와 관련, 교수님은 노무현 정권 말기에 흑자재정 상태에 이르렀다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재정 적자가 커지고 있는데 이것이 복지 제도의 확충 때문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의 감세정책이 주된 원인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셨습니다. 증세와 관련해서 토론 시간에 부자증세와 보편적 증세 중 어느 쪽이 올바른 방향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교수님은 부유층의 탈세를 막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이것만으로 복지제도 확충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므로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표명하셨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보시는 듯 했습니다.

 

강의를 듣고 지금의 저성장과 고실업이 범지구적 현상이고 피할 수 없는 트렌드라는 교수님의 지적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문제는 ‘헬조선’이 아니라 ‘헬지구’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수님은 서비스업의 경우, 한 단위직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수가 적으므로 파편화된 노동자들이 조직화되기 어려워 노동조합의 힘이 약화되고 따라서 노동자의 권익이 위협을 받게 된다고 언급하셨는데 그렇다면 이 상황을 탈피하는 추동력은 어떤 세력에게 기대할 수 있을까? 전통적인 진보 운동의 방식으로 이 현실에 대처할 수 있을까? 저로서는 답을 찾기 어려운 많은 의문과 우려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런 상황일수록 ‘시혜’ 개념의 복지가 아닌 경제발전과 사회발전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복지제도 강화가 필요하다는 교수님의 논지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세’에 대하여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많은 국민들에게 ‘내가 낸 세금이 나를 위해 쓰인다’는 신뢰를 통해 증세에 대한 동의를 얻어 낼 방법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이에 대해서는 뒤풀이 자리에서도 논의가 이어져서 증세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매우 치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유익한 강연을 들을 기회를 주신 김태일 교수님, 조세재정팀장 조수진 변호사님 그리고 후기를 통해 강연 내용을 돌아 볼 기회를 주신 (처음에는 살짝 귀찮았습니다만 곧 반성했습니다^^) 이유진 간사님 및 사무처 다른 간사님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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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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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민변 제30차 정기총회 일정 안내 및
참가 회신 요청

– 총회 일정 : 5. 27.(토)~5. 28.(일) 경남 통영 동원리조트
– 참가신청 : https://goo.gl/eHZ66e 또는
첨부된 참가신청서를 작성하여 메일([email protected])로 회신

* 가족방은 신청이 마감되었습니다.

[양식] 30차 총회 참가신청서

30차 정기총회 웹자보

회원 여러분께

1. 민변의 1년 활동 중 가장 큰 행사이며, 전국의 회원들이 모이는 정기총회가 오는 5. 27.(토)~5. 28.(일) 경남 통영에서 개최되며, 경남지부와 본부가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2. 총회에 참석하실 회원께서는 구글닥스 https://goo.gl/eHZ66e 로 신청해주시거나, 첨부된 참가신청서를 작성하여 메일([email protected])로 회신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가족방은 신청이 마감되었음을 미리 안내드립니다.

3. 관련하여 문의가 있는 회원께서는 언제든 총회준비위원회 (이현아 간사/ T. 02-522-7284, 이메일:[email protected])로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회원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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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차 민변 정기총회> 일정 등 안내

총회 일정_홈피 공지

수, 2017/05/1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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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23-24. 민변 노동위원회 전체 모임을 다녀와서

- 이정환 회원

 

어느덧 5년차 변호사가 되었고, 변호사란 호칭에 어색해하지 않게 되었음에도, 그동안 노동위원회 전체모임에 참석해보지 못했다. 심지어 재작년 전주에서 모임을 할 때에는 사전 준비를 위하여 미리 답사도 다녀왔지만 정작 모임 날에는 지독한 감기의 구애에 무너져 참석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사실 처음에는 갈 계획이 없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출발 당일 아침 7시 30분 난 민변 사무실 앞에 서 있었고, 강릉으로 향하였다.

 

선발대로 가는 인원은 조촐하여 3대의 자동차에 나누어 탈 수 있었고, 평창 휴게소에서 그 전날 여성위원회 전체 모임을 참가하신 그러니까 도합 2박3일의 일정을 소화하실 김 진 변호사님, 안현지 변호사님을 나누어 태웠다.

 

가는 길의 영동 고속도로는 평창 올림픽을 맞이하여 온갖 공사들로 한창이었다. 도로보수 공사로 차들은 속도를 낼 수 없었고, 한편에는 ktx공사로 멀쩡한 산을 깎고 있었다.

 

정작 개최 유치를 하기는 했지만 아직 국민들의 머릿속에서는 남의 일인 평창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하여 강원도의 자연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나 역시도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ktx개통으로 1시간여 만에 강릉까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마냥 기뻐하고만 있었으리라.

 

평창휴게소에서 타신 강릉 출신 김 진 변호사님은 가는 길의 명소 그리고 지명의 유래 등을 설명해주셨다. 덕분에 아는 만큼 보인다고 가는 길이 매우 즐거웠고 유익하였다. 단지 고향이 있는 곳이라서 잘 아시는구나라고 생각하였는데, 올 11월 즈음에 가족분과 함께 같이 강원도 여행안내 책자를 출간하신다는 소식에, 그 열정 그리고 실천력에 감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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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해안길 헌화로와 정동진을 지나 심곡항으로 향했다. 그러나 하필 주말임에도 마을 전체가 미역 말리는 작업을 하는 바람에 마을 전체의 식당이 휴무하는 불의타를 맞이하여 다른 식당을 찾아가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 역시 도시에서는 짐작도 하지 못할 어촌만의 사정이리라.

 

돌고 돌아 간 식당의 점심 메뉴는 강원도의 명물 옹심이. 우리 테이블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순 옹심이로 통일하였으나, 너무나도 맛있는 김치와 함께 하였음에도, 그리고 오후 1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음에도,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의 넉넉한 인심이 담긴 푸짐한 양에 다들 조금씩 남길 수밖에 없었다.(이 글을 보실 일은 아마도 없으실 텐데 혹시라도 그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오해를 안 하셨으면 좋겠다. 당신의 음식들은 최고였다고. 그저 우리들이 위(胃)대한 사람들이 아니라서 그랬다고).

 

세미나 장소이자 숙소인 녹색도시체험센터. 좋은 시설을 갖추었음에도 약간의 편의시설이 미비한 탓인지(대형 방에는 화장실이 없다든지, 취사시설을 갖춘 숙박시설을 운영함에도 필요 물품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없다든지) 그 큰 리조트를 민변 노동위원회가 통으로 빌린 듯한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이어 진행된 지역 현안에 대한 세미나 시간. 삼척에 위치한 동양시멘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 측과 사용자 측의 극심한 대립에 대하여 그 사건에 대리인으로 참여하고 계신 김상은 변호사님의 발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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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에서는 원청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형식적인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운영 중인 사업장, 그리고 이러한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에 맞선 노조와 그 노동자들, 그리고 다시 노조의 세력규합을 막기 위하여 업무방해, 폭행 등으로 형사적 압박을 하는 사측,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장기화됨에 따라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끝까지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1시간여 동안 펼쳐졌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의뢰인과 대리인이 깊은 신뢰관계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답답하다. 위장도급으로 실제로는 원청과 노동자 사이에 묵시적 근로관계가 있음을 입증하여 노동자들이 원청 소속 노동자임을 밝히는 데에 성공하였음에도 이를 버젓이 행하는 사용자들을 처벌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형사처벌 할 수가 없다. 차라리 상대적으로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본다면 파견법의 적용을 받아 처벌할 수가 있음에도 말이다.

 

서로의 지혜를 모아 해결방안을 모색해보았다. 그러나 결국 입법을 통하여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이후 오후 5시부터는 전체회의가 있었다. 처음 참여해보는 전체회의, 지난 1년간의 모든 행사들이 여러 각도에서 재조명되었다. 그리고 이번 전체회의에서 가장 뜨거운 테마인 회비규정 정비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사실 회무에 관심이 크지 않은 많은 회원들 입장에서는 처음 개요만 보고나서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난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이면에는 많은 고민거리가 숨겨져 있었다. 노동위원회의 많은 활동은 결국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 그리고 회비에서 비롯되는지라 단순하게 처리될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처음 규정이 제정되고 개정된 시기와 지금은 변호사 수 증가 등으로 인하여 업계의 사정이 많이 달라져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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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자신이 변호사를 하게 되면 민변에 꼭 가입해서 활동하겠다는 많은 친구들도 여러 이유로 활동하지 못하거나 민변을 떠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이 중에는 단순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민변 변호사라는 타이틀에 의뢰인들이 부담을 느끼기 때문인 것도 있을 것이다. 나조차도 몇 번 안 되는 공공기관에 징계위원회 위원 등으로 참석하는 경험 중에 처음에는 막연히 호의적으로 인사말을 주고받다가도, 민변 노동위원회 소속이라고 밝히는 순간 돌변하여 경계의 대상으로 바뀌는 경우를 겪었을 정도이니까. 하물며 많은 선배변호사님들은 어떠하셨을까.

 

여러 가지 방안에 대하여 그리고 생각해볼 수 있는 부작용이나 배려해볼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하였다. 그러나 나처럼 문제의식을 비로소 가지게 된 사람 입장에서 그 자리에서 일도양단 식으로 결론을 내기는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많은 부분을 구체화하였음에도 여전히 상당 부분을 유보한 채로 마무리 하여야 했다.

 

그리고 저녁시간. 많은 회원들을 알아가는 자리이다. 이에 대한 즐거움은 강문해변의 식당으로 걸어서 이동하는 약 1.5킬로의 거리를 멀고 힘든 길이 아닌 설레는 길로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기대에 120% 부응하는 음식들, 그리고 사람들.

 

생애 첫 양력 생일을 함께 맞이하신 김선수 변호사님, 전영식 변호사님, 김도형 변호사님, 노동위원회 위원장 임기를 훌륭히 마치신 강문대 변호사님, 그리고 노동위원회 위원장직을 흔쾌히 수락해주신 김 진 변호사님. 모두들 노동위원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분들이다. 이러한 선배님들과 잔을 나누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 또 법률원에서 고생하는 변호사님들, 평소에 인사를 잘 나누지 못했던 변호사들, 민변 노동위원회의 술자리는 항상 옳다.

(이 급한 마무리는 술자리에서의 내 기억이 온전치 못해서는 아닐 거라고 강변하고 싶다.)

 

다음날 각자의 시간을 즐겼다. 일출을 즐기는 사람, 허난설헌 생가를 산책하는 사람, 인근 해변길을 거닐며 사색하는 사람, 밀린 잠을 자는 사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바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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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사람들은 사평해변에서 물회를 먹고, 영진해변에서 커피를 즐겼다. 피곤하면서도 그냥 이대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강문대 변호사님과 둘이 나선 소금강 트랙킹. 구룡폭포까지의 길은 고즈넉하고 문자 그대로 아름다웠다. 정말 강문대 변호사님과 둘만 이러한 풍경을 본다는 것이 너무너무 아까울 정도로. 계곡을 급한 경사가 없도록 많은 다리로 연결해 놓은 길. 이러한 길을 설치하기 위하여 누군가가 많은 땀을 흘렸으리라.

 

이후 정말 속세로 돌아갔다. 속세는 내가 없어도 여전히 바쁘구나. 그리고 정말 사람들 많구나.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정을 준비하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다음 모임에서는 더 많은 분들을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 2016/05/0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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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통일기행을 다녀와서

- 통일위원회 양승봉 변호사

 

천지는 푸르다.

천지는 맑고 넓다.

그리고 천지는 슬프다.

 

2015. 8. 21.일부터 24일까지 3박 4일 동안 민변 통일위가 주관한 통일기행 백두산 탐방을 천낙붕, 이광철, 서중희, 양창영, 설창일, 김용민, 그리고 저를 포함하여 7명의 단촐한 식구가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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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모토는 “가보자 북녘땅, 만나자 북녘동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행을 시작할 즈음은 남북이 극단적 대치를 한 후 협상을 막 시작한 때로 통일 기행 내내 우리는 인터넷을 확인하며 협상 결과를 주시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습니다. 통일을 위해 한창 교류를 하고 미래의 청사진을 공유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남북 관계를 악화시켜 온 양쪽 수뇌부의 퇴행적인 행태가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21일-송강하를 향하다.

 

말로만 듣던 백두산 천지를 간다는 설렘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른 아침 인천공항, 간단히 수속을 마치고 약 1시간 10여 분에 걸친 짧은 비행시간 후 심양에 도착하였습니다. 비자심사를 마친 후 가이드를 만나 심양공항을 배경으로 현수막을 내걸고 기념사진을 찍고 곧바로 백두산을 오르는 전초기지, 송강하라는 곳을 향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해박한 역사 지식을 자랑하는 59살의 조선생님이라는 조선족이었습니다. 조선생은 해박한 지식으로 여행내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선생과 나눈 대화는 여행의 또 다른 맛은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선생의 할아버지는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출신이라고 하였고 조선생은 딸 둘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 큰딸은 중국에서 판사를 하고 있고 작은 딸은 한국의 대학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

 

가이드를 낀 여행이 그렇듯이 조선생도 버스에 타자마자 간단히 심양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심양의 옛 이름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봉천으로 현재 1,200만명 정도가 살고 있는 중국 5-6위에 해당하는 매우 큰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도시가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한동안 달려도 산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심양에서 송강하까지 약 6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하여 본격적인 도로주행을 앞두고 우리는 중국의 구멍가게에서 중국이 자랑하는 맛난 칭따오 10병과 안주를 샀습니다. 그런데 그 비용이 무려 75위안!! 우리 돈으로 약 15,000원 정도에 불과해 돈 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맥주를 마시며 우리는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가 중국시간으로 오전 10시가 겨우 넘은 시간이었으니 우리는 취하면 애비도 몰라본다는 낮술을 점심 먹기 전부터 시작하는 소박한 호사?를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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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에 차량이 거의 없었지만 의외로 속도를 크게 내지 않아 약간 더디게 나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양쪽에 옥수수밭을 지나 달리고 또 달려도 계속 옥수수밭,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지루하고 따분했을텐데 여행이 주는 설레임은 지루함을 못 느끼게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많이 살아 어쩌면 우리 땅이 되었을 수도 있는 만주벌판을 거의 다섯 시간 가까이 달려 3시 40분 경 늦은 점심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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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조선생은 이제부터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달린다 하면서 약 60km가 남았는데 세 시간 정도 가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기껏 60km를 세 시간에 간다는 말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막상 도로를 달려보니 곧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달린 길은 편도 1차, 왕복 2차선으로 된 좁은 도로였는데 그 도로를 달리는 모든 차량은 흡사 곡예를 하듯이 달렸고 여러 번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도로 곳곳에 경운기가 다니고 소를 비롯한 가축을 싣고 가는 트럭들, 그리고 차선을 무시하고 달리는 차량으로 도로의 모든 차량은 가다서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우리가 목격한 가장 압권인 장면은 터널 내부임에도 양쪽 차선을 꽉 채워 일방도로처럼 3대씩 줄지어 달리는 광경이었는데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송강하는 백두산 등정을 하는 관광객이 머무는 곳으로 이름도 왠지 멋지게 느껴집니다. 송강하를 거의 도착할 즈음 조선생은 1년에 약 300여 명의 중국인들이 백두산에 송이나 산삼, 약초 등을 채취하러 들어가 실종이 되어 결국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믿기 힘든 말을 해주었습니다. 백두산을 부산모수(父山母水)라고 칭하여 아버지의 산이라고도 한다는 데 그 산에서 해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어 종적을 알 수 없게 된다고 하니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생이 말했던 것보다 약 1시간 일찍 우리는 숙소인 그린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이동하여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연길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오는 유가려 가족을 기다렸습니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유가려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의 여동생입니다. 여동생 유가려는 아버지와 고모, 그리고 2주 뒤 결혼을 할 남편과 함께 왔습니다. 유가려는 국정원 합동심문센터에서 2013년 4월 26일 석방된 후 오빠의 재판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허위 진술을 하게 되었는지 조작 과정을 자세히 밝힌 후 2013년 7월 초 추방이 되었습니다. 반가왔지만 늦은 시간이라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다음 날 점심때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22일-천지를 보다

 

조선생은 백두산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 늦게 출발하면 기다리다 지친다며 최소한 6시에는 일어나서 식사를 마쳐야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일찍 식사를 시작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지런한 한국관광객들이 한꺼번에 식당으로 밀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일행이 제일 단촐해 우리는 제일 일찍 백두산을 향했습니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도 설레임을 주었습니다. 곳곳에 작약나무가 부러져 있었고 길 양쪽으로는 예쁜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조선생은 백두산을 우는 아기 얼굴이라고도 부른다면서(언제 어떻게 표정이 바뀔지 알 수가 없다는 의미로..) 은근히 천지를 구경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언질을 하였습니다. 길 옆 곳곳에 늪처럼 보이는 웅덩이, 그리고 무성한 숲은 남한 땅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우리가 지나는 그 곳이 바로 개마고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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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분을 달려 백두산 입구 매표소에 도달하였는데 가지고 간 현수막을 펼치지 못하였습니다. 중국 공안은 백두산 인근에서는 한글로 된 현수막을 펼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 가이드가 드는 안내 깃발에 사용된 한글도 현출시키지 못하게 한답니다. 중국은 백두산에서 한글이 현출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강한 제재를 한다는 것입니다. 백두산을 포함한 인근의 땅에 대하여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하는 나만의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조상들이 제대로 대응을 못해 멋진 땅을 놓쳐 버렸다는 아쉬움이 다시 들었습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 후 또 버스를 타고 백두산 천지를 향하는데 입장료와 버스표 가격이 무려 4만 원이 넘는 고가였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관광객들이 지불하는 돈이 모두 중국의 주머니로 향한다고 생각하니 참 아까왔습니다.

 

드디어 천지를 향해 버스를 타고 달립니다. 작약나무 숲을 지나고, 잡목을 스치고…나지막한 풀숲과 오밀조밀 이쁜 야생화를 굽이굽이 지나치면서 달렸습니다. 30분 정도 달린 후 우리는 드디어 천지를 향해 걷습니다. 일찍 서둘렀는데도 벌써 산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있습니다. 1,441개의 계단을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한 걸음씩 밟고 올라갑니다. 날씨가 흐렸고 곳곳에 안개가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천지를 보기는 글렀구나하고 내심 포기를 하였습니다. 다음에 보면 되지…근데 언제 또 올 수 있으려나….흠흠

 

마침내 계단을 다 올라 천지를 내려다 본 순간, 잊을 수 없는 멋진 광경이 눈앞에 드러났습니다. 아 천지… 멋진 장면에 입이 다물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절로 입이 벌어졌습니다. 순간 뭉클하고 감동의 물결이 가슴을 스칩니다. 우리 일행 모두에게 감동의 물결이 스치는 것이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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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안 가본 사람들이 여행자랑을 하면 말을 섞지 말자고 하였습니다.–천지도 안가봤으면서–좋은 책을 일독을 권하듯이 저는 천지에 다녀온 후 지인들에게 천지를 권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도 권합니다. 앞으로 2-3년 내에 송강하에 직항이 생길 예정이라고 하니 훨씬 편하게 구경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천지에 뛰어 내려가 직접 물을 만지고 싶었지만 접근을 금지시킵니다. 직접 접할 수 없어 아쉬웠지만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습니다.

백두4

 

백번을 가면 두 번을 본다고 해서 백두산이라고 한다던 농담부터 시작해서 3대의 덕이 모여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 말까지…참 다양한 말들이 천지를 더 신비롭게 합니다. 우리는 구름이 걷히는 순간부터 해맑은 천지까지 멋진 모습을 모두 관찰하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피곤한 일정이었지만 우리 일행 모두 천지를 보는 순간 참으로 들떠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오르는 방향에 따라 서파, 북파, 남파…라고 일컫는데 우리는 서파로 올랐습니다. 서파에는 북한과 중국의 경계비가 서있고 비록 북녘 동포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천지에서 허용된 북녘 땅만 조금 밟아보았습니다.

 

천지가 주는 웅장한 경관은 참으로 감탄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천지는 통일을 원하는 우리 동포의 염원을 모두 담을 만큼 크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멋진 천지를 우리 땅이 아닌 중국 땅을 통해 구경을 해야만 하고 여전히 우리는 티격태격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조선생의 채근에 아쉬움을 가득 남기고 천지를 떠납니다. 또 언제 올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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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서 내려와 용암이 쓸고 간 흔적인 금강대협곡을 구경하였습니다. 백두산 바닥은 용암이 굳은 곳에 나무가 자라 뿌리가 야무지게 뻗지 못해서 곳곳에 나무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사람이 다니는 곳을 빼고는 주변이 울창해 호랑이라도 튀어 나올 듯 합니다.

 

금강대협곡까지 돌아본 후 아쉬움을 두고 하산을 합니다. 매표소를 거쳐 강원도 식당이라는 곳에서 한국식으로 된 식사를 합니다. 그 곳에서 어제 약속했던 대로 유가려를 다시 만나 점심을 함께 하고 헤어졌습니다.

 

이제 통화로 향합니다. 통화로 가는 길도 약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여 서둘렀습니다. 피곤하였지만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였습니다.

 

백산이라는 곳을 지나기 전에 본 석탄촌은 곳곳에 석탄이 쌓여 있었는데 아침에 석탄을 캐서 바로 성냥불로 불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은 자연자원은 재생이 안되니 후손에게 자연자원을 물려주자며 될 수 있으면 개발을 늦춘다고 합니다. 백산이라는 곳은 석탄으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데 지금은 북한에서 석탄과 철광을 수입을 하고 있고 북한의 무산 철광을 수입해 철판으로 가공하여 돈을 버는 것은 일본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도요타에서 50년간 50억 불을 제공하기로 하고 철판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통화는 제약과 포도주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통화 중심부에는 비류수가 흐릅니다. 비류수는 부여와 고구려의 경계로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놓아 주몽을 구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우리가 백두산부터 오랜 시간을 달려왔던 그리고 내일 달려갈 모든 땅이 모두 고구려의 땅이었습니다.

 

통화에서는 저녁에 북한식당인 “묘향산”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식당을 가기 전 일행은 발맛사지를 받고 백두산을 오르느라 고생했던 발에 호강을 시켜주었습니다.

 

북한 식당은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입맛에 맞는 음식을 우리에게 제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술값이 너무 비싸서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맥주 1병에 1만 원, 소주 1병에 4만 원, 설창일 위원장님이 기분좋게 한 턱 쏘셔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생각보다 중국인 관광객도 제법 있었고 흥에 겨운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북한 가수들의 노래에 어우러져 춤을 추는 모습도 정겨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짐을 푼 후 아쉬운 마음에 비류수, 통화의 강가를 7인의 낭인처럼 어슬렁거렸습니다. 통화는 상당히 깨끗하였는데 비류수 주변도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있어 운치있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도 아쉬움에 호텔 옆 가게에서 양꼬치를 시켜 기어코 맥주를 한 사발씩 먹고 들어갑니다. 식사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주문을 할 수 없었는데 우리 7명이 주문한 양꼬치보다 옆자리에 앉은 대륙의 남녀 2명이 주문한 음식이 훨씬 푸짐하고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비스하는 남자가 우리를 쏘아보는 눈빛이 예사롭지는 않았다는…

 

23일과 24일

 

백두산을 본 뒤라 비교적 여유가 있었습니다. 다음 날 천낙붕 변호사님의 제안으로 일정에 없었던 양정우 기념관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 가는 도중 10시도 채 안된 시간이었는데 엄청난 폭죽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란 우리들을 향해 조선생은 결혼식 축포라고 하면서 적게는 몇 십만 원부터 많게는 몇 백만 원씩 비용을 들여 폭죽을 쏜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양정우는 동북일대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했던 사람으로 우리에게는 낯선 사람이었지만 중국에서는 기념관과 무덤을 둘 정도로 유명한 항일투쟁가였습니다.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36세에 일본군과 대치하다 사살을 당하였는데 그와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한 사람들 중 조선인이 많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을 잘 꾸며서 후손들이 기리고 있는 모습은 부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양정우 기념관을 보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살아서 영화를 안겨주지 못한다면 죽어서라도 반드시 제대로 대접을 해줘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양정우 기념관 관람을 끝내고 내일 비행기를 탈 심양을 향해 갑니다. 다시 4시간의 긴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맛난 맥주를 사서 낮술을 먹습니다. 비교적 한가한 일정이라 버스 안에서 변호사스럽게 자신이 겪었던 훌륭하신 판사님과 검사님에 대한 초보적인 뒷담화를 시작해서 어느 덧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과 제도에까지 소재를 넓혀가면서 맛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재미난 이야기와 맥주로 배를 채우다 보니 저절로 생긴 뇨의는 우리를 매우 당황하게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버스기사님은 벌금의 두려움 때문에 우리의 요구를 묵살하고 결코 정차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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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에 도착하여 서시라는 시장의 양념파는 곳을 짧고 산만하게 구경하고 조선생님이 극찬을 하는 로벤교자라는 만두집으로 향합니다. 만두집이 하나의 건물로 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 맛은 한국에서 먹는 만두와 별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에 짐을 풀었지만 우리는 택시를 타고 시내로 향합니다. 피곤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면 각종 서면이 기다린다….

 

시내에서 한가롭게 배회를 합니다. 인도가 참 널찍하니 사람이 많아도 산책하기가 수월합니다. 음악소리가 어찌나 크던지…..군것질도 하면서 산책을 합니다. 호텔로 복귀 후 친철하고 영리해보이는 아가씨가 서빙을 하는 대로변 양꼬치집에서 소박하고 즐겁게 맥주를 마셨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우리는 북릉이라는 곳을 방문합니다. 북릉은 황태극의 무덤으로 황태극은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의 아들로 청이라 국가이름을 바꾼 사람입니다. 그는 1592년에 태어나 1643년에 사망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우리가 임진왜란을 겪었던 해에 태어나 자신은 우리에게 병자호란을 일으켰던 사람입니다. 그가 죽을 때 앉은 채로 사망하여 청에서 새긴 용은 앉아 있는 형상이라고 하는데 여하튼 우리와 좋은 인연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북릉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비교적 잘 가꾸어 놓았습니다.

 

북릉을 가면서 생각보다 교통이 덜 혼잡하여 이유를 물었더니 출근시차제라는 것을 적용하여 직장의 아침 출근 시간을 조금씩 조절한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생은 중국의 모습을 수탉의 모습이라고 묘사를 하면서 동북삼성은 닭의 모가지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조선생은 기마민족이 말을 타고 움직이는 습성이 있다보니 성격도 급하다고 하면서 우리 민족도 기마민족이어서 성격이 급하고 우리나라의 버선코가 위로 굽은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이 기마족이 말을 달릴 때 유용하도록 신발을 만든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북릉을 구경하고 중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한식당에서 하였습니다. 패키지 여행의 마지막에 한식을 주는 것은 만족을 느끼고 돌아가라는 의미인 것 같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새로 지은 박물관으로 이동을 하였지만 막상 휴관을 하여 구경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박물관에는 삼부인과 청동단검과 비파형동검 등 우리가 교과서에서 봤던 물건들이 있다고 하였는데 문을 열지 않았으니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여 조선생과 헤어졌고 우리는 다시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항공사에서 무작위로 업그레이드를 해주는 서비스에 우리 일행이 모두 비즈니스석을 배정받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비즈니스석을 배정받고도 이를 모른 채 언제 이런 자리에서 편하게 여행해보나..하는 생각으로 지나쳤는데. 그 자리에 앉아서 돌아올 줄이야…..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참 편합니다. 무지 편합니다. 잠이 안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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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며

우리가 3박 4일간 여행을 하면서 백두산 천지에 머문 시간은 매우 짧았고 중국 땅, 그것도 길에 뿌린 시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천지가 준 감동은 오래 남았습니다.

 

비록 중국 땅에서 본 천지지만 언젠가 우리 땅에서 오르리라.. 통일이 되는 날 천지에 한 번 더 오르리라…우리 일행은 천지에 많은 다짐을 남기고 왔고 천지에 그런 다짐을 둔 것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히 즐겁고 가치있었습니다. 더불어 좋은 사람들과 같은 하늘아래에서 3박 4일가 어울린 것 역시 소중한 추억이었습니다.

 

비록 북녘땅과 북한동포를 많이 접하진 못했지만 천지에 담은 희망으로 내일을 기약하면서 여행기를 마칩니다.

 

 

목, 2015/09/1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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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사드체계 배치사업, 환경영향평가에 대한법적 검토 의견 제출
– 사드체계 배치사업은 전략환경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대상 사업
– 소규모환경영향평가로 갈음할 수 없음

 

1. 민주언론을 위한 귀 언론사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 우리 모임은 수차례 사드 체계 배치 문제가 헌법과 법률의 수호 문제라는 점을 밝힌 바 있고, 새로운 정부는 사드 체계 배치 문제에 대해 민주주의와 소통의 관점에서 필요한 절차를 모색 중입니다.

 

3. 그러나 국방부는 여전히 헌법과 법률에 맞지 않는 주장을 반복하며, 국민들에게 그릇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모임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한 규범적 검토의견을 아래와 같이 발표합니다. 아래 의견은 법령과 기존의 판례 및 각 부처들이 진행했던 사례들을 망라한 것입니다.

 

4. 사드 체계 배치와 관련하여 헌법과 국민주권의 차원에서 철저하게 검토되고 조사되기를 바랍니다.

 

5. 의견서 개요

 

 가. 국방부의 주장

국방부는 사드체계 배치사업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하여 “미측에 공여된 부지에 설치되는 사드체계 배치사업은 미측 사업으로 국내법상의 환경영향평가법 적용 대상이 아니”나 “한․미 합의를 통해서 우리 국민의 불안감 해소와 안전보장을 위하여 「환경영향평가법」의 절차를 준용하여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있으며 평가 완료 후 군사보안 사항을 제외하고 그 결과를 공개할 것입니다”라고 함. 2017. 6. 1.에는 사업면적은 10만 제곱미터이므로 ‘소규모환경영향평가’ 대상에 해당된다고도 함.
나. 그러나 사드배치사업은 전략환경영향평가와 환경영향영향평가 대상사업

  1) 사드체계 배치사업은 전략환경영향평가 실시 대상사업

사드체계 배치사업은 「국방·군사시설 사업에 관한 법률」(이하 ‘국방시설사업법’이라고 함) 제4조에 따른 사업 시행면적이 33만 제곱미터 이상인 사업으로서, 전략환경영향평가 실시 대상 사업임.

   가) 사드체계 배치사업은 토지의 취득방식과 무관하게 국방시설사업법이 적용됨.

국방부는 국방시설사업법이 ‘토지 등을 수용’하는 경우에만 적용되고, 사드부지는 ‘교환계약’을 통해 확보했기 때문에 법이 적용 안된다고 주장함.
그러나 국방시설사업법에 외국군대의 시설도 국방군사시설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법에 ‘토지 등의 수용’의 경우에만 적용한다는 말도 없음. 오히려 국방시설사업법상의 승인 절차를 설명하는 「국방․군사시설 사업에 관한 법률에 따른 승인 등에 관한 훈령」은 사업계획 승인 업무 절차에서 명확히 ‘토지 등의 수용 또는 사용’을 포함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승인 업무절차를 구분하고 있음. 환경부 역시 질의회신에서 “국방시설사업법 제4조의 사업계획의 경우 토지수용여부와 관계없이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이라고 하였음.

   나) 사드체계 배치사업은 “사업시행 면적이 33만 제곱미터 이상인 사업”에 해당함.

사업시행면적과 관련하여서 국방부는 공여된 면적이 ‘328,779 제곱미터’이기 때문에 전략환경영향평가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음. 그러나 국방부는 2017. 2. 28. 주한미군의 사드배치를 위한 목적으로만 148만 제곱미터를 확보하였고, 취득한 부지 전체에 철조망을 치고 군사기지로 조성하였으며, 이를 기초로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이하 ‘군사기지법’이라고 함)을 적용하여 경찰에 시설보호 요청을 하였음. 주한미군에게 공여하기로 한 토지의 면적이 곧 사업시행 면적은 아님. 법원 역시 ‘도창리 백골종합훈련장 피탄지조성사업계획’과 관련하여 공사면적과 무관하게 전체 사업계획 면적을 대상사업 면적이라고 보고 전체에 대해서 사전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다고 판시하였음(대법원 2006. 6. 30. 선고 2005두14363 판결).

   다) 즉, 사드 배치와 관련한 사업시행 면적은 33만 이상 제곱미터라고 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사드체계 배치 여부를 결정할 때 하였어야 했음.

 다. 설령, 사업시행면적이 33만 제곱미터 미만이라고 할지라도 소규모환경영향평가가 아닌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여야 함.

환경영향평가법상의 환경영향평가에는 전략환경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소규모환경영향평가가 있음. 설령 국방부의 주장대로 설령 사업시행면적이 33만 제곱미터 미만이라고 하더라도 소규모환경영향평가가 아닌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여야 함. 환경영향평가법 및 시행령에 의하면 군사기지법상의 군사기지 안에서 시행되는 사업면적 20만 제곱미터 이상인 사업이거나 혹은 20만 제곱미터의 군사시설 설치사업은 환경영향평가를 하여야 함. 사드배치가 군사기지에서 이루어지는 사업이 분명하고, 군사시설에 해당함은 국방부가 이미 인적하고 있으며, 그 면적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적어도 20만 제곱미터 이상임은 분명하므로 환경영향평가 실시 대상 사업임.

 라.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로 사드 배치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갈음할 수 없음.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는 “환경보전이 필요한 지역이나 난개발(亂開發)이 우려되어 계획적 개발이 필요한 지역에서 개발사업을 시행할 때에 입지의 타당성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조사·예측·평가하여 환경보전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말하고(환경영향평가법 제2조 제3호), 사드체계 배치사업은 환경보전이 필요한 지역이나 난개발이 우려되어 계획적 개발이 필요한 지역에서 시행되는 개발사업이 아니어서 그 요건에 해당하지 않음(환경영향평가법 시행령 [별표4] 참조). 소규모환경영향평가는 환경영향평가서에 포함될 항목이 적고,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대한 주민 의견 수렴 절차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사드 배치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

 마. 결론

사드체계 배치와 관련하여 반드시 실시했어야 하는 적법절차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 그 과정에서 배제된 주민들과 국회, 국민들의 충분한 토론이 필요함. 이것은 헌법과 국민주권의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사드 문제를 해결하여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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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정 연 순

월, 2017/06/0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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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실무수습 후기

 

- 민변 2015년 여름 로스쿨 실무수습생 이승훈

 

지난 7월 6일 월요일 오후, 무더위 속에서 오랜만에 단정한 복장을 하고 처음으로 민변 사무실을 찾아가는 길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사무실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자랑스러운 민변의 이름이 크게 걸려있지 않을까 했는데, 지도상의 위치에 와서도 도무지 간판이 보이지 않아 적잖이 당황한 끝에 건물안내판을 찾아 겨우 지각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의문을 뻔히 예상하셨는지, 송상교 팀장님께서 인사말에 앞서 “저희는 일부러 간판을 안 달아놨어요. 요즘 워낙 시위하러 많이 찾아오셔서, 종북세력 해체하라고 막 그러니까… 하하.” 하고 농담인 듯도 하지만 생각할수록 진담일 것만 같은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민변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를 새삼 되새기며, 2주간의 짧은 수습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긴 시간을 보냈던 곳은 17명의 수습생이 1, 2명씩 나누어 배정된 각 사무소였습니다. 저는 수륜아시아 법률사무소에 배정되어 지도변호사이신 김종우 변호사님과 한 방을 쓰며 밀착 지도를 받았습니다. 또 송기호, 노주희, 최재홍, 조선영 변호사님께서도 각자의 다양한 경험에 기초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고, 따로 기록을 주시거나 과제를 내주시기도 했습니다. 정리된 사실관계를 읽고 교과서의 쟁점을 논하면 되는 사례집에서의 문제만을 접해오다가 실제 사건에 기초한 과제를 수행하려니,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당사자를 특정하는 단계에서부터 혼란 끝에 자신감을 잃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매번 큰 줄기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고, 변호사님들의 지적과 격려를 받으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에 즐겁기만 한 하루하루였습니다.

 

한편 민변의 속살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위원회 참석을 통해서였습니다. 2주간 여러 위원회들에 자유롭게 참석해 보면서 각 위원회마다의 확연한 개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먼저 노동위 수요모임은 짧은 시간동안 점심식사와 함께 그야말로 치열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각종 성명서, 기자회견, 현장조사, 사건변론 등 한주간의 활동보고와 주요 노동사건 정리, 판례동향까지 두툼한 인쇄물에 담긴 내용을 빠르게 짚으며 논의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민생경제위원회 조세재정팀에서는 조세 현안에 대한 활발한 정책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른바 명예세 도입에 관하여 치열하게 찬반토론하고, 우리나라 조세정책상의 과세사각지대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을 들으며 마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민생경제위원회 월례회에서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관하여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재벌그룹의 세습경영 문제에 대한 토론을 통해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민생경제위원회에서는 전문화된 네 개의 팀이 은근한 경쟁을 통해 긍정적인 시너지효과를 내는듯하여 앞으로의 성과가 기대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습 일정이 모두 끝난 금요일 저녁에는 사법위원회에 참석할 수 있었는데, 다른 위원회에 비해 많은 원로급 변호사님들과 그래서인지 더 젊게 보이는 청년 변호사님들이 잘 조화되어 각자의 역할을 맡고 계셨습니다. 특히 토론에 있어서는 경력과 나이를 접어두고 오직 지식과 논리를 무기로, 각을 세우되 모두가 경청하는 자세로 임하는 모습이 참 ‘민변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면법, 사형폐지법, 변호사시험 성적 공개, 일부 범죄 공소시효 적용 배제 등 하나같이 묵직한 주제들을 다루었지만 오히려 가장 센스와 유머 넘치는 발언들이 많았던 유쾌한 회의시간이었습니다.

 

또 권영국 변호사님 기소사건의 공판기일을 다함께 방청한 것도 의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검사측의 최종의견을 들으며 뭔지 모를 거부감이 느껴졌지만 법리적인 문제점을 콕 집어내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다가, 변호사님들의 ppt를 적절히 활용한 날카로운 변론을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습니다. 특히 검사측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강문대 변호사님의 호통과 같은 변론에 와서는 크게 박수를 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야 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차례의 특강이 있었고, 공통과제를 수행하고 송기호 변호사님의 초대로 평등사회 전환포럼의 창립총회에 참석하는 등 정말 알찬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그저 짧은 기간이 아쉬울 뿐, 단순한 사무실에서의 실무수습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를 경험하며 감사한 배움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단순히 생계를 위한 직업을 갖기보다 좀 더 의미있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로스쿨에 진학하였습니다. 학업부담과 과도한 경쟁, 로스쿨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전망들, 또 희망을 찾기 어려운 갑갑한 뉴스들에 조금씩 지쳐만 가던 2학년 여름에 이렇게 민변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민변의 여러 변호사님들을 만나면서, 변호사라는 직업의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조화롭게 병행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저도 충분히 살릴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2년 후에 꼭 수습 동기들과 함께 정회원이 되어 다시 뵙겠습니다. 여러 간사님들, 변호사님들, 모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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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7/2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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