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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주제1] 소득중심의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반드시 필요하다

[기획주제1] 소득중심의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반드시 필요하다

익명 (미확인) | 금, 2015/04/10- 15:17

참여연대 기고글

 

소득중심의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건강보험하나로 팀장 김종명

 

기대를 모았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이 결국 흐지부지될 위기에 처해 있다. 보건복지부가 백지화 선언이후 비판적 여론에 밀려 새누리당과 정부간 당정협의로 재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애초의 후퇴된 정부안조차 제대로 추진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여론에 밀린 정치적 액션인 만큼 여론이 잠잠해지면, 유야무야될 것이기에 그렇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저소득층의 건강보험료를 조금 경감해주는 선에서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마무리 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편,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제대로 추진하도록 감시하고 요구해야할 시민사회진영은 엉뚱하게도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소득중심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노동자증세, 혹은 서민증세로 바라보는 시각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시민사회진영의 입장은 비록 의도치 않더라도 부과체계 개편을 소폭으로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정부에 명분을 주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글에서는 다시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이 왜 필요한지를 살펴보고, 현재 일부 시민사회단체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쟁점을 다시 한 번 짚어보고자 한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의 필요성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요구는 주로 학계와 보험자단체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주도해 왔다. 10여년 전부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가 공평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계속되어 왔고 많은 연구보고서들이 제출되었다. 특히 불공평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로 인해 지역가입자들의 항의와 민원들이 쏟아졌기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일찍부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이 필요함을 인식해 왔었다. 이에 보수적 인사로 분류되는 김종대 전이사장 조차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임기동안 핵심과제로 추진하게 된 것이다. 반면, 진보적 보건의료 시민사회단체 진영은 상대적으로 이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관심뿐 아니라 입장조차 갖고 있지 못했다. 현재 부과체계 개편에 대한 혼선은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본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가 공평하지 못하다는 인식은 지역가입자에서 먼저 쏟아져 나왔다. 자신의 부담능력에 비해 과다하게 건강보험료가 부과되고 있기에 그렇다. 지역가입자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소득기준 외에도 재산, 자동차에도 건강보험료가 각각 부과되고 합산되어 부담한다. 특히 재산에 부과되는 건강보험료가 매우 과다하고, 공평하지도 못하다. 특히 소액재산에도 과다하게 건강보험료가 부과고 있다. 5천만 원의 재산이 있으면 4만 7천원이 부과되고, 1억에는 7만7천원, 3억이면 12만원이 부과되고 있다. 재산으로부터 소득이 발생되기 어려운 전월세, 소액의 1주택에 매우 과도하게 건강보험료가 부과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가입자들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의 47%가 재산요소에서 발생한다. 지역가입자는 소득기준이 아니라 재산기준으로 건강보험료가 부과된다고 할 정도다. 이 재산기준으로 인해 지역가입자들은 소득이 실제로 없는데도 건강보험료가 과다하게 부과되고 있다. 더욱이 연 소득이 500만 원 이하인 경우에는 가구원수와 성/연령에 따라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송파세모녀의 건강보험료가 5만원이 부과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한편 건강보험료의 형평성 문제는 직장가입자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건강보험료를 부과한다. 근로소득 외의 종합소득이 연 7천200만원을 초과한 경우에만 건강보험료가 추가로 부과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대상자는 3만 7천 명 정도에 불과하다. 더욱이 분리 과세되고 있는 금융소득, 임대소득 등은 제외되어 있어 실제로는 1억 원 이상의 근로 외 소득이 있더라도 건강보험료가 부과되고 있지 않다. 이는 또 다른 형평성 문제를 낳고 있다. 근로소득만을 유일한 소득원으로 가진 대다수 평범한 직장가입자는 자신의 소득만큼 건강보험료를 부담하고 있는 반면, 근로소득 외의 종합소득이 있는 경우에는 건강보험료가 부과되고 있지 않아, 부담능력(소득)에 비례한 건강보험료 부과라는 사회보장제도의 원칙이 어긋나고 있다. 직장가입자 중 15%정도가 종합소득을 갖고 있다.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피부양자는 소득이 있더라도 금융소득이 연 4천만원이하, 연금소득이 연 4천만원이하, 기타소득이 4천만원이하라면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이 소득기준은 총 소득기준이 아니라, 개별소득기준이라서 마찬가지로 각 소득 기준에만 부합하면 총 소득이 1억이 넘더라도 피부양자로 유지되어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고소득이 있는데도 피부양자로 등록되어 무임승차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별소득기준이 아니라 총소득기준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점을 감사원조차 지적한 바 있다. 이렇듯 고소득이 있는데도 근로소득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료를 부담하지 않고 무임승차하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로 인한 부담은 지역가입자와 평범한 직장가입자에게로 전가되고 있다.  

 

한국사회는 점차 소득의 불평등과 부의 불평등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고소득으로부터 금융자산과 부동자산을 축적하게 되고, 그 자산은 또 다시 불로소득을 만들어 낸다. 이 불로 소득의 규모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금융소득, 임대소득, 양도소득, 상속증여소득은 모두 자산으로부터 발생하는 소득이다. 그 자산(금융 및 부동산)은 자식에게 대물림되고 그로부터 불로소득이 발생된다. 그런데 이러한 소득에는 건강보험료가 부과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료 부과의 불공평은 우리사회의 부의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건강보험료 부담에 대한 형평성도  날로 악화되고 있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불공평한 부과체계는 또 다른 문제도 발생시킨다. 요즘은 일부 안정된 고용계층을 제외하면 직장의 불안정성이 커서 이직률이 크고, 그때마다 직장가입에서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그런데 직업을 잃어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소득은 사라지는데도 오히려 건강보험료가 더 높게 부과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안정된 직장으로부터 정년퇴직을 하게 되더라도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지금은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정년퇴직을 앞둔 시점이다. 정년퇴직을 하게 되면, 또 다시 가입자격이 변동된다. 정년퇴직 후 다행이도(?) 직장이 있는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록되면 건강보험료를 부담하지 않아도 되지만, 자녀가 무직이거나 실직상태라면 지역가입자로 전환되어 건강보험료를 부담해야하는 문제가 발생된다. 이원화된 부과체계로 인해 황당한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렇듯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간의 건강보험료의 부과방식의 불형평성, 또, 건강보험료가 부과되는 소득의 종류에 따른 불형평성은 매우 심각하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이 필요한 이유이다. 정의롭지 못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사회보장제도인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신뢰를 추락시키고 있다. 

 

건강보험료 개편, 왜 ‘소득중심’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할 것인가. 그 기준을 무엇으로 삼아야 공평하다고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제시된 기준이 바로 ‘소득’이다. 현행 건강보험료 체계는 이원화되어 있고 건강보험료가 부과되는 소득 범위도 제한적이다. 지역가입자는 소득, 성·연령, 재산, 자동차를 기준으로 부과하는 반면,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을 중심으로만 부과하고 있다. 공평한 부과방식이라면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여기에서 가장 공평한 잣대는 ‘소득’일 것이다. 현행 사회보험제도는 ‘부담능력’에 비례하여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기에 그렇다. 소득을 기준으로 건강보험료를 부과하게 되면, 현행 이원화된 체계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 소득의 종류를 따지지 않고 소득이 같으면 동일한 건강보험료를 부과하게 되면, 소득이 있는데도 건강보험료를 부담하지 않는 무임승차 문제가 해결된다. 또한, 실직이나 퇴직 후 소득이 사라지는데도 건강보험료가 오히려 급등하는 문제도 해결이 가능하다. 소득의 종류를 따지지 않고, 소득만큼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 공평할 것이다. 따라서  건강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을 제고할 가장 공평한 기준은 소득기준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편 어느 소득까지 건강보험료를 부과할 것인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현행 소득세법상 소득에는 종합소득(근로, 이자, 배당, 사업, 연금, 기타소득), 양도소득, 퇴직소득이 있고, 상속세및증여세법상 재산이전으로 인한 소득이 있다. 애초 정부안은 근로외 종합소득까지만 확대하는 안을 담고 있다. 그 역시 연 2,000만원 이상의 종합과세소득에만 부과하자는 안이다. 그리고, 양도소득 퇴직소득은 일회성 소득이라는 점, 상속 및 증여소득은 재산이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근거로 배제했다. 이에 반해 소득중심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방안은 양도, 퇴직 소득뿐 아니라 상속 및 증여소득까지 포함하자는 안이다. 양도, 퇴직소득도 소득이며, 상속재산과 증여재산 역시 부의 무상이전에 따른 소득이기에 그렇다. 원칙적으로 모든 소득에 건강보험료가 부과되어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진영의 일부는 지역가입자에게 ‘재산’ 요소를 배제하는 것에 비판적이다. 특히 고액재산가의 건강보험료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지난해 무상의료본부가 이를 두고 고액재산가의 건강보험료 부담을 경감해주는 ‘부자감세’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착각이다. 객관적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사실 고액재산가의 문제를 지역가입자의 문제로 여기는 것 자체가 잘못된 판단이다. 현재 고액재산가들은 대부분이 지역가입자가 아니라 직장가입자로 전환되어 있다. 과거 한때는 고액재산가들은 대체로 지역가입자였지만, 현재는 대부분이 직장가입자다. 현행 건강보험제도는 1인 이상을 고용하고 있는 개인사업자는 모두 직장가입자로 편입하고 있다. 고액재산가들은 이런 규정을 편법적으로 활용하여 직장가입으로 편입하고, 소액의 근로소득을 책정하여 여기에만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는 사례가 매우 많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때 건강보험료를 2만원만 낸 사례가 대표적인 예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고소득 자영업자들은 과거엔 지역가입자였지만, 지금은 대부분 직장가입자로 편입되어 있다. 의사, 변호사, 약사 등의 고소득 전문직 개인사업자들, 음식·숙박업을 영위하는 개인사업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 결과 지역가입자는 고용 없이 자가 노동력만으로 운영하는 영세자영업자, 일용직, 특수고용직, 농어업 자영업자, 은퇴자, 노인, 무직자, 실직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형적으로 서민, 영세민들이다. 이들은 소득도 적기에 재산도 많지 않다. 그런데도 재산기준으로 인해 과다한 보험료가 부과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황은 부과체계 기획단의 자료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지역가입자의 중위 재산은 1천 1백만 원에 불과하다. 지역가입자의 81%가 1억 미만의 재산을 갖고 있을 뿐이다. 3억 이상을 소유한 지역가입자는 6.3%에 불과하다. 즉, 대다수의 지역가입자는 소액재산만을 갖고 있으며, 그 재산으로부터는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데도 건강보험료가 과다하게 부과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일각의 주장처럼 ‘재산’기준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형평성 있는 방식은 직장가입자에게도 동일하게 ‘재산’기준 보험료를 적용해야 한다. 이게 과연 합당한가? 그리고 직장가입자에게도 재산기준 보험료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아마 못할 것이다. 더욱이 현행 재산기준은 고액재산가의 부담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민의 부담을 늘리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기에 더 그렇다. 

물론 여전히 고액재산가들을 중심으로 해서는 ‘재산’기준 건강보험료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일리 있다. 그러나 남는 문제가 있다. 고액재산가의 건강보험료 부과 방식을 지역가입자에게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더욱 고액재산가들의 대부분은 지역가입자가 아닌 직장가입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다. 즉 직장가입자에게 적용을 확대하자는 주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재산기준을 배제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이를 주장한 바가 없었다. 지역가입자에게만 적용하는 것은 여전히 형평하지 못하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지역이든 직장가입자든 고액재산에 건강보험료를 부과한다고 하자. 그러면 ‘재산으로부터 발생되는 소득’에는 건강보험료를 부과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이중부과논란 때문이다. 특히 양도소득, 임대소득, 상속증여소득은 ‘재산으로부터 발생되는 소득’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다. 여기에 부과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합당한 부과기준이라면 재산이 아니라, 재산으로부터 발생되는 소득에 부과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할 것이다. 건강보험료 부과 소득 범위를 ‘모든 소득’에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자산의 불평등이 심각한 현실을 고려할 때 재산에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여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고액 자산 자체에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은 사회보험의 원리에 꼭 부합하진 않는다. 오히려 이는 조세정책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에도 종합부동산세와 같은 부유세가 존재한다. 비록 MB정부가 부자감세를 하여 고액재산가의 세부담을 줄여주었지만, 이는 반드시 다시 강화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사회보험방식에서는 정률방식을 취하지만, 조세방식은 누진율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액재산에 대한 접근은 조세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공평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현행 사회보험의 원리에 충실한 방향이라면 재산, 자동차, 성, 연령과 같은 기준을 폐지하는 대신 ‘모든 가입자’에게 ‘모든 소득’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것이 가장 합당할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 역시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전히 소득파악문제가 남아 있기에 그렇다. 십분 동의한다. 현행 세무행정 구조하에서는 100%완벽한 제도를 설계하기란 실제로 어렵다. 여전히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은 남는다. 그러나 그 문제 역시 지역가입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직장가입자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영업자의 소득탈루 문제 역시 주로는 현행 직장가입자로 편입되어 있는 고소득 자영업자에서 발생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무엇을 원칙으로 삼을 것인가와 그 원칙을 보완해야할 문제는 무엇인가를 구별해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득기준’이 완벽하지 못하다고 그 원칙을 버리는 것과, 그것을 보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접근방식이다. 소득을 기준으로 부과하되, 소득파악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보완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의 문제는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 원칙을 흔드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할 문제일 뿐이다. 

 

몇 가지 논쟁지점에 대한 평가 

 

소득 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안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비판들이 있다. 몇 가지만 간추려 보자. 

우선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보다 국고지원과 사업주 부담률 조정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특히 국고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을 지적하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의 핵심은 국가가 약속을 지키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는 지적을 한다. 국고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당연히 문제가 있다. 하지만, 부과체계 개편 문제는 건강보험 재원의 세 주체인 국민, 국가, 기업 중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의 형평성을 어떻게 제고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점에서 논점이 다른 주장이다. 설령 국고지원이 제대로 이뤄지더라도 여전히 국민들이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이원화되어 발생되는 건강보험료의 형평성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즉, 국고지원 문제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은 다른 문제일 뿐이다. 국고지원율을 현행보다 더 상향하더라도 부과체계 개편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또한, 건강보험 재정에서 국고지원을 상향하게 되면 그만큼 국고수입을 늘려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는 또 다른 사회적 논란이 추가로 발생할 것이다. 조세로 이뤄지는 국고 역시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이다. 현재 조세의 형평성이 결코 건강보험료의 형평성보다 우수하다는 근거는 없다. 간접세 비중이 매우 크기에 그렇다. 조세와 건강보험 재정에서 기업이 부담하는 비중은 오히려 건강보험이 더 크다. 건강보험 재정의 30%는 기업주의 부담이지만, 조세에서 법인세 부담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정도 수준이다. 조세보다 오히려 기업부담이 더 많다. 어찌되었든 건강보험료의 부과체계 개편 문제는 국고지원이나 사업주부담률 조정과는 다른 논점이다. 논점을 정확히 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또,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을 서민증세, 노동자 증세로 바라보는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주장이다.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은 오히려 그간 과도하게 부담해온 서민들, 특히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료 부담을 부담능력에 맞게 조정하자는 것이다.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방안을 실행하게 되면 대부분의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료 부담은 줄어들게 되어 있다. 굳이 붙인다면 이는 서민감세에 해당하지 서민증세라고 볼 근거는 없다. 단, 지역가입자의 하위 15%정도는 최저보험료 설정으로 실질적인 부담경감은 없다는 문제는 남아있다. 이들은 사실상 빈곤층으로 건강보험료를 면제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저소득층의 건강보험료 부담을 늘리는 방안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맞지 않다. 부과체계 기획단과 정부는 최저보험료 설정으로 저소득층의 보험료가 인상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몇 차례 밝힌 바도 있기에 그렇다. 송파세모녀의 예처럼 최저보험료를 설정하더라도 대부분의 서민들의 건강보험료 부담은 대폭 경감되기에 그렇다. 

 

한편 노동자 증세라는 주장도 그렇다. 소득중심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온전히 시행하게 되면, 직장가입자중 16.7%는 건강보험료 부담이 늘어난다. 이들은 소액이라도 근로 외소득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적지 않은 상위 소득을 가진 노동자가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건강보험료 부담이 늘어난다. 부과체계 개편을 노동자증세로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는 전적으로 상위 노동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시각이 짙게 깔려있다. 그러나, 이는 온당치 않다.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은 부자의 부담을 늘리고, 서민의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제기된 것이 아니다. 단지 건보료 부과의 형평성을 제고하고자 함이다. 누구는 소득이 없는데도 건강보험료를 부담하고 있고, 누구는 똑같이 100만원의 소득있는 데도 소득의 종류가 다르며 근로소득에는 부과하는 반면, 금융소득에는 건강보험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이게 공평한가. 그렇지 않다. 단지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 방안은 그간 무임승차해왔던 근로외 종합소득에 대해서도 근로소득과 같은 동일한 소득이라면 동일하게 건강보험료를 부담시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의 효과는 근로외 소득을 가진 상위 소득계층은 건강보험료 부담이 늘어나게 되고, 지역가입자의 대부분인 서민들은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거기에 상위 노동자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이를 노동자증세로 바라보는 것은 절대 온당치 않다. 대부분의 평범한 노동자들이라면 근로외 소득을 갖긴 어렵다. 근로외종합소득이라면 이자소득, 금융소득, 임대소득이기에 그렇다. 노동자의 85%는 오직 근로소득만을 갖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부과체계 개편을 노동자증세라고 한다면, 명확히 단서를 붙여야 한다. ‘상위 10% 노동자증세’라고 말이다. 이를 노동자 일반의 증세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왜 상위 10%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해야 하나? 왜 대다수 평범한 노동자의 시각으로, 과다한 건강보험료로 고통 받고 있는 지역가입자·서민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지 않는 건가. 더욱이 ‘증세’라는 표현도 가당찮다. 그건 증세가 아니라, 그간 부당하게도 무임승차를 누려왔던 특혜를 환수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른 한편, 소득중심으로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소득범위에 연금소득이 포함된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연간 2천만 원의 연금소득자가 부자냐는 항변이다. 노동자 증세라는 비판과 상통하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의 기저에는 노동자이 부담은 가중시키는 것은 절대 반대하는 논리가 깔려 있다. 그러나 그렇게 볼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연금소득자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연금소득자 입장에서는 여기에 건강보험료가 부과되는 것이 마땅찮을 수 있다. 그러나, 현행 공적 연금체계는 시장소득이 연금소득으로까지 이어지는 특성이 있다. 고용이 안정되고 소득이 많은 계층일수록 연금수령액도 높다. 반면, 고용이 불안하고 소득이 적은 계층은 연금수령액이 적다. 더욱이 비정규직, 영세자영자 등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국민연금제도가 안정화된 후라도 전체 국민이 절반이상은 국민연금의 혜택에서 배제되어 있다. 노후의 연금소득 역시 시장소득의 양극화가 그대로 이어지는 구조이다. 또한 온전히 소득중심의 부과체계를 개편했을 때와 현행 체제를 유지했을 때를 비교하자면, 연금소득에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소득중심의 개편안이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행 구조에서는 연금소득이 발생하는 시점인 퇴직 후에는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이거나, 혹은 지역가입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피부양자라면 연금소득에 대해 건강보험료가 부과되지 않지만, 지역가입자로 전환될 경우에는 현행 체제에서도 연금소득에 대해 건강보험료가 부과되고 있다. 지역가입자의 소득에는 연금소득이 20%가 반영될 뿐 아니라, 재산, 자동차 기준이 적용되어 오히려 건강보험료가 소득에 비해 과다하게 부과되고 있는 실정이기에 그렇다. 여전히 연금소득에 대해 형평성 문제가 남게 된다. 더욱이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방안에서는  연금소득 전체가 아니라 일부인 25%정도만을 반영하고 있기에 그 부담이 크지 않다.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디딤돌

 

지금까지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이 왜 필요한지, 왜 소득중심의 개편이 필요한지, 그리고 관련하여 진보진영 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몇 가지 논점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안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비판 논리를 보자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애초부터 자신의 입장을 갖지 못한 데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여기에 보수적 인사로 알려진 김종대 전이사장이 강력히 추진함에 따라 오히려 왜곡된 시각으로 바로보지 않았나 싶다. 더불어 우리사회의 다양한 현안을 너무 이념적 잣대로만 바라보는 것도 문제라고 보여진다. 부자 대 서민(혹은 노동자) 프레임이다. 소위 1%대 99% 프레임이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단지 공평한 부과체계를 위함이지 부자증세(혹은 노동자증세)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프레임으로만 바라본다. 그러다 보니 형평성 문제는 사라지고, ‘왜 내가 더 내야 하느냐’는 항변만이 존재한다. 이런 잘못된 프레임은 올바른 개혁조차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뿐이다. 소득중심의 부과체계 개편이 상위 1%만이 아닌 상위 10%의 고소득 노동자의 부담이 늘어난다며, 이를 ‘노동자 증세’로 규정하는 주장은 결국 상위 10%의 ‘나는 더 내기 싫다’는 반증세 정서를 대변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상위 소득계층의 건보료 무임승차를 정당화시켜 주고 있을 뿐인 거다. 우리 사회가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회연대 의식’ 형성을 가로막는 역할을 해줄 뿐이라고 본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선하는 것은 향후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라는 무상의료는 요원할 것이다. 형평성 있는 부과체계 없이 재원을 확충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설령 그 책임을 국가와 기업에 온전히 넘긴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많은 국민들은 복지확대를 위해 증세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으나, 증세의 가장 큰 걸림돌은 조세의 형평성과 그것이 과연 복지에 제대로 쓰일 것인지에 대한 신뢰부족으로 인해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조세든, 건강보험료든 동일한 숙제가 놓여 있는 셈이다. 기업의 부담률을 높이는 것 역시 간단하지는 않다. 기업 소득은 대부분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고용은 그 반대이기에 그렇다. 여전히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는 건강보험의 보장을 위한 개혁은 현행 건강보험제도 자체에서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올바른 해법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건강보험의 형평성을 개선해야 하는 것이다. 그 잣대로 소득기준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대중적 동의도 간편하다.

 

소득중심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발판삼아,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획기적으로  확대하자.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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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AI 가 수집 요약한 글 입니다..
토, 2026/06/13-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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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고려장’ 장애인활동지원 만 65세 연령제한 문제와 노인장기요양서비스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

 

2019년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예산 중 예산규모가 가장 크고, 장애인과 가족의 만족도가 비교적 높은 제도가 바로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이다. 이 제도는「장애인활동지원에관한법률」 제1조(목적)을 통해 “신체적·정신적 장애 등의 사유로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여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줄임으로써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사회서비스이지만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만 65세 연령제한에 따른 대상제한’ 문제다. 활동지원서비스를 수급 받던 장애인이 만 65세가 되면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른 수급심사를 받아야 하고, 요양등급을 판정받게 되면 ‘노인장기요양서비스’로 강제 전환되는 것이다.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불리는 이 문제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문제는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 및 변화 과정(’07~’11: 장애인활동보조지원사업 / ’11~현재: 장애인활동지원제도)과 함께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와 장애인활동지원제도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2007년 4월 국회를 통과했는데, 이때 국회 상임위에서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의 부대 의견으로 아래의 내용을 결의하였다.


이 법은 국민의 보험료부담 증가, 장애인에 대한 서비스 제공 시설 부족 등과 아울러 서비스 본질이 노인은 일상생활 보조 위주의 서비스인데 비하여 장애인은 사회참여․재활치료를 통한 자립지원에 중점을 둔 서비스라는 점을 고려하여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 당시에는 부득이 65세 미만의 비 노인성질환을 가진 장애인은 장기요양보험급여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으나, 중증장애인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현실적 여건과 각종 장애인 시책이 장애인의 요구수준에 미흡하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장기요양보험급여에 상응하는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필요성이 있음.



 

부대 의견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장애인과 노인은 서비스의 목적과 내용이 다르지만, 장애인도 ‘장기요양(Long-term Care)’적 특성에 해당되는 서비스 필요도가 있을 수 있고, 전반적인 장애인복지서비스가 부족한 가운데 ‘장기요양보험급여’에 상응하는 복지서비스가 추가로 제공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대의견에 따라 당시 정부는 공청회와 시범사업 등을 통해 국회에서 제시한 일정에 따라 ‘장애인장기요양보장제도(현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준비하였다.

 

활동보조서비스 제도의 첫 시작인 2007년 4월 ‘장애인활동보조지원사업’은 지침을 통해 신청자격상 만 6세에서 만 65세까지 ‘연령제한’을 두었으며, 기존 수급자가 만 65세가 되는 경우에는 해당 연말까지 지원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연령제한’ 조치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 피해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9년 3월 에이블뉴스에 보도1)된 지체장애인 김광성 씨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부족하나마 월 230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고 있었지만, 같은 해 5월 15일 만 65세 생일이 다가와 활동보조서비스가 중단되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 당시 보건복지부 담당 과장은 언론을 통해 “노인요양시설을 이용하는 37% 정도가 장애를 가진 노인”이라며, “노인장기요양제도에 비해 활동보조서비스가 비용면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활동보조서비스와 노인장기요양 중 선택권을 준다면 현재 요양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는 현재 보건복지부가 반대하는 이유와 유사하다.

 

2011년 11월 ‘장애인활동지원제도’로 변경되면서 발표된 ‘2011년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지침’에서는 “활동지원 수급자가 만 65세가 도래하였으나, 장애 특성상 활동지원급여가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활동지원급여를 계속 희망하는 경우”로 신청자격이 바뀌었다. 변경된 지침은 2012년까지 적용이 되었는데, 2013년 지침에는 다시 2011년 10월 이전처럼 ‘장기요양 등급 외 판정을 받은 경우’로 제한되었다. 2011년에는 ‘장애인활동지원’과 ‘노인장기요양’ 중 ‘선택권’을 인정하였다가 다시 1여년 만에 철회한 셈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법령에는 규정되어 있지 않았던 내용을 지침에는 담았다가 다시 철회한 촌극은 왜 일어난 것일까? 이에 대해 정부는 특별한 설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장애인활동지원과 노인장기요양 제도 간의 차이를 정부도 알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첫 지침에 이런 중대한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는 「노인장기요양법」제정 당시 부대 의견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기도 하다.

 

장애인에게도 ‘장기요양’이 필요할 수 있으니, 보다 더 사회적 활동(자립생활)을 지원하는 ‘활동보조’는 그대로 둔 채 ‘방문요양’과 ‘방문목욕’이라는 ‘장기요양’ 서비스를 추가한 것이 지금의 ‘장애인활동지원제도’다. 이 제도의 목적에 부합되려면 65세 이후에는 ‘장애인+노인’으로서 기존 활동지원급여에서 ‘장기요양’을 더 이용할 수 있도록 급여를 추가해주거나 최소한 유지해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현재는 ‘장애인+노인’은커녕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의 필요는 하루아침에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비장애)노인’으로서의 필요만 인정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장애인과 노인의 형평성?

이 문제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가장 주요하게 제기하는 것은 노인장기요양 수급자와의 형평성 문제다. 노인도 장애인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데 만 65세 이후에도 장애인이 노인장기요양제도보다 더 많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장애인활동지원을 유지한다면 노인들이 불공평하다고 느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되면 기존 수급자를 포함하여 노인들이 ‘장애인 등록’을 하려고 할 것이고 모두 장애인활동지원으로 넘어올 것이며, 결국 ‘보험’이 아니라 ‘조세’로 운영되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예산이 엄청나게 불어날 것이라는 이유이다.

 

‘형평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거꾸로 생각해보면 ‘불균형’하고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불공평’한 쪽을 공평하게 맞추는 것이 우선이지, 반대로 ‘모두 공평하게’ 라는 말로 포장시켜 하향시키는 것이 맞는 것인가? 결국 핵심은 ‘예산’이다. 돈 많이 들어가니 못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를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만 65세 이하인 장애인이 ‘노인장기요양’ 등급을 신청하여 등급이 결정된 사람은 수급권을 포기하더라도 ‘장애인활동지원’을 신청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16년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지침’에는 제외 대상 중 하나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른 노인장기요양 급여를 받는 자 또는 수급자격이 있는 자

  • 만 65세 미만인 장애인이 장애인활동지원급여 신청 전 노인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하여 노인장기요양등급이 결정된 사람은 

  • 노인장기요양수급권을 포기하더라도 활동지원급여를 받을 수 없음을 상세히 안내할 것

 

만 65세 이하인 장애인이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몰라서(!)’ 노인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하면, 노인장기요양 수급권을 포기하고 싶어도 다시는 물릴 수 없다는 것이다. 어째서 수급권을 가졌다고 해서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고 지침에 명시해둔 걸까? 만 65세 이하 장애인이 ‘노인장기요양’ 수급을 신청할 경우, ‘장기요양’ 서비스도 포함하고 있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안내하고 신청을 돕는 것이 오히려 맞는 것 아닌가? 2017년 지침부터 ‘안내 규정’은 사라졌지만 이 문제는 아직도 진행중인 사안이며, 2017년에는 이와 관련된 행정심판이 청구되기도 했다.

 

만 65세 연령제한에 따른 피해 실태

2018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윤소하 의원실에서 질의하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피해실태는 다음과 같다. 연평균 약 250명 정도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노인장기요양제도로 전환되었으며, 이는 최근 6년간 서비스 수급자 증가 인원인 1만 9천명의 8.31% 수준에 이른다.

 

노인장기요양 등급이 인정되어 강제로 전환된 802명의 장애인이 ‘활동보조’와 가장 유사한 ‘방문요양’을 이용한다고 가정하였을 경우, 2017년 수가 기준으로 서비스 시간이 감소한 인원과 평균 감소시간은 다음 표와 같다.

 

<표 1-1> 노인장기요양 전환에 따른 급여시간 비교(’15년~’17년)

<표 1-1> 노인장기요양 전환에 따른 급여시간 비교(’15년~’17년)https://lh4.googleusercontent.com/3M-ECkZggQlqHAqPXx-NhN2U1aOoKy9XxFVOY3... />

 

서비스 이용 시간을 기준으로 한 경우 최소한 약 63% 이상이 서비스 시간 감소로 이어졌으며, 월 평균 감소시간은 약 56시간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종전 활동지원 1등급의 장애인(최중증장애인) 344명만으로 한정해서 보면 피해실태는 다음과 같다.

 

<표 1-2> 장애인활동지원 1등급 장애인의 노인장기요양 전환에 따른 급여시간 비교(’15년~’17년)

<표 1-2> 장애인활동지원 1등급 장애인의 노인장기요양 전환에 따른 급여시간 비교(’15년~’17년)https://lh6.googleusercontent.com/OKcbiUPluhj9bJB3P__vBaJaGNAN4AAsaJXfXN... />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장애인활동지원 1등급의 장애인이 노인장기요양제도로 전환된 경우 서비스 시간이 100%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평균 감소시간도 월 77시간에 이르고, 이를 하루 평균으로 계산해보면 2시간 이상이 줄어드는 것이다.

 

제도의 피해자는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지자체 추가지원까지 더해 하루 24시간 지원을 받고 있던 송용헌 씨의 사례가 알려졌다. 송용헌 씨는 경추손상으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활동지원사의 적절한 지원이 없을 경우 욕창 등으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최중증장애인이다. 만일 9월말까지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하루 24시간 지원에서 방문요양 하루 4시간으로 서비스가 줄어드는 상황이다. 지난 8월 14일부터 이어지고 있는 충정로 사회보장위원회 점거 및 릴레이 단식 농성의 첫 주자로 송용헌 씨가 나선 것은 말 그대로 ‘고려장’ 당하지 않으려는 절박한 투쟁이다.

 

<그림 1-1> 농성 첫 날 단식 중인 송용헌 씨

<그림 1-1> 농성 첫 날 단식 중인 송용헌 씨https://lh6.googleusercontent.com/bydAikUJ87mDXOOXhUm0qx2MM9fSH6AkBwCNfZ... />

사진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문재인 정부와 20대 국회는 법 개정과 예산을 마련해야

현재 국회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정안들이 발의되어 있지만 상임위에서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입장이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16년 11월 제도 개선 권고를 하였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얼마 전 국회의장에게 관련 법 개정을 권고하기도 하였다. 문재인 정부도, 20대 국회도 이 문제의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회서비스 정책의 방향은 ‘지역사회 중심’이며, ‘공적 지원’속에 ‘통합’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애인활동지원도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제도 간 형평성’ 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핑계로 장애인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제도가 변화하고 맞춰가야 한다는 것을 ‘만 65세 연령제한’ 문제 개선으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1) “요양이 아니라 자립생활 하고 싶어요”. 에이블뉴스. 2009년3월10일. (출처: http://www.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28&NewsCo...

화, 2019/10/15-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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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보건복지 분야 예산안 분석

- 노인복지 분야 -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전체적인 평가

2020년 노인복지 예산은 총 16조 5,887억 원으로 보건복지부 총지출 예산의 20.0%, 보건복지부 사회복지 예산의 23.8%를 차지함. 2019년 대비 17.8% 증가한 것으로 사회복지 소관 예산 증가율 14.2%와 비교해 높음.

 

노인복지 예산의 세부 구성을 살펴보면, 기초연금 13조 1,765억 원과 노인정책 소관 일반회계 3조 1,759억 원, 국민건강증진기금 2,366억 원으로 구성됨.

 

노인 1인당 노인분야 예산은 2020년 2,041,690원(노인인구 8,125천 명 기준)으로 2019년 1,832,564원(노인인구 7,685천 명 기준)보다 13.1% 증가되었음. 기초연금을 제외하고 노인 1인당 예산은 390,885원으로 2019년 303,462원보다 87,423원 증가하였음.

 

노인 1인당 노인복지분야 예산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기초연금 포함 1인당 노인복지예산이 전년보다 증가율이 높지 않은 것으로 확인됨. 노인인구의 증가폭이 커짐에 따라 실질적 정책 수행을 위한 예산 증가율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임.

 

<표 5-1> 2020년 보건복지부 총지출과 사회복지 예산, 노인복지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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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적인 평가 

<표 5-2> 2020년 보건복지부 등 노인복지 예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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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금

기초연금은 13,176,531백만 원으로 2019년 11,495,198백만 원보다 14.6% 증가한 예산이 편성됨. 기초연금 수급자 수 증가와 소득하위 40% 대상 기초연금 30만 원 조기 인상에 따른 것으로 보임. 노인복지 소관 예산 중 약 80%가 기초연금으로 편성된 반면, 나머지는 노인돌봄, 노인장기요양 등의 예산으로 책정됨. 우리나라 노인인구는 급속하게 증가하는 추세이며, 예상보다 1년 먼저 고령사회(Aging Society)에 도달하였음. 향후 노인돌봄정책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이며, 이에 대한 제도마련과 예산 편성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음.

 

노인요양시설 확충

노인요양시설 확충은 143,190백만 원이 편성되었고, 전년대비 21.1% 증가하였음. 그 중 예산의 93.2%인 133,426백만 원이 치매전담형 요양 확충을 위한 예산임. 이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치매국가책임제‘ 실시에 따른 것임. 현재 노인 분야 공공인프라는 많이 부족한 상황인데 공공요양시설은 약 2%밖에 되지 않으며, 재가복지시설은 1%도 채 되지 않음. 그러나 종합재가기관 및 주야간보호시설 예산이 전년과 동일한 625백만 원으로 편성함. 공공인프라를 위한 정부의 노인돌봄 로드맵 제시와 예산 편성이 필요함. 또한 2018년부터 치매 시설에 대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바, 관련 정책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임. 그리고 노인성 질환은 복합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노인돌봄이라는 큰 틀에서 제도를 추진할 필요가 있음.

 

양로시설

2020년 양로시설 운영지원 예산은 38,619백만 원으로 전년대비 6.3% 증액한 예산이 편성됨. 이는 양로시설 지원인원이 2019년 4,123명에서 2020년 4,206명으로 증가한 것에 기인함. 그간 국고지원으로 지원하던 양로시설은 92개 소였으나 2019년부터는 94개 소에 지원하기로 한 점은 긍정적임. 그러나 점차 저소득 취약 노인이 증가하고 있는 점을 반영한 실질적인 예산 편성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됨.

 

노인보호전문기관

노인보호전문기관 예산은 2020년 9,205백만 원으로 2019년 8,561백만 원 대비 7.5% 증가하였음. 지역노인보호전문기관이 2019년 32개소에서 34개소로 늘고 인력이 소폭 증가한 현실을 반영한 예산임. 현재 우리나라 노인학대는 2014년 10,569건에서 2018년 15,482건으로 약 46.5%나 증가(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2019)하였음. 점차 노인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노인학대 관련 제도의 점검과 정책이 보완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노인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지 않을 뿐 아니라 예산 편성만 확인하더라도 정부 정책이 소극적임을 확인할 수 있음.

 

지난 2017년 UN 사회권규약 심의에서 우리나라 노인학대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하라는 권고가 있었음. 이후 2019년, 2020년 예산 편성에서 권고 이행을 위한 정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없음. 따라서 정부는 노인학대 정책을 사후적 대응이 아닌 예방중심으로 전환하고, 현재보다 충분한 시설과 인력이 확보하는 등 적극적인 정책 추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임.

 

노인단체지원

노인단체지원 예산은 40,488백만 원이 편성되었는데 2019년 44,246백만 원에 비해 3,758백만 원이 삭감되었음. 이는 대한노인회 중심의 노인자원봉사 클럽 운영지원 내역이 전액 삭감된 것에 기인함. 매년 경로당 냉난방비 및 양곡비 지원사업이 정부예산에서 누락되었던 문제가 있었는데, 2019년 예산부터는 정부안에 반영하도록 하였음.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

노인일자리 지원 사업은 2019년 대비 29.9% 증액되어 1,199,064백만 원이 편성되었음. 노인일자리 수는 2019년 64만 개에서 2020년 78만개로 14만 개가 증가하였는데 이는 2017년 43.7만개에서 2022년 80만 개로 확대하겠다는 국정과제 수행을 반영한 것으로 보임. 그러나 공익형 일자리 급여수준은 작년과 같은 27만 원으로 책정되었는데, 2020년까지 40만 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국정과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예산임.

 

노인일자리 사업에 지원하는 노인들의 대부분이 생계를 위해 참여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임금수준이 낮고, 사업의 근무기간이 짧은 공익활동형 일자리가 전체 일자리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음. 민간형 일자리는 작년보다 11,235백만 원 증가한 75,294백만 원이며, 대상자는 10,000명 증가한 130,000명으로 나타남.

 

그동안 비판받았던 노인일자리 질과 임금 수준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2019년부터 사회서비스형 일자리가 도입되었음. 2020년에는 대상자가 37,000명으로 2019년 20,000명에 비해 85% 증가하였고 예산도 65,353백만 원 증액하여 139,489백만 원 편성됨.

 

노인일자리 사업 목표가 빈곤감소, 사회참여 확대, 건강증진, 지역사회 기여 등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보니 정책 방향이 명확하지 않은 문제가 있음. 따라서 일자리 수를 확대하기 전 명확한 사업 목표 설정 후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임.

 

노인장기요양보험 사업운영

2020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사업운영 예산은 1,327,105백만 원으로 2019년 1,035,129백만 원 대비 28.2% 증가함. 이는 건강보험료율 3.49% 인상, 가입자 수 3.14% 증가, 보수월액 2.58% 증가하여 2020년 예산 장기요양보험 예상수입액이 증가한 것에 기인함.

 

노인장기요양보험 국고지원을 ‘20년 요양보험료 예상수입액의 18.4%인 1,153,890백만 원만 편성함. 그러나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제58조 제1항에 의하면 국가지원을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지원하도록 명시하고 있어 이에 상응하는 1,254,228백만 원으로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음.

 

매년 정부는 법적 지원금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국고를 지원하고 있었는데, 2016년, 2017년 결산 심의에서 국고지원금 확충에 노력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음.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노인빈곤율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고지원에 대한 정부의 책임은 클 수밖에 없음. 따라서 정부는 2020년 국고지원 예산을 법정 수준으로 증액하여 편성해야 함.

 

노인맞춤돌봄서비스

2020년부터 노인돌봄기본·종합서비스, 단기가사서비스, 독거노인사회관계활성화, 초기 독거노인 자립지원, 지역사회자원연계를 통합·개편하여 노인맞춤돌봄서비스를 시행하기로 함. 관련 예산은 2019년 112,396백만 원에서 2020년 372,797백만 원으로 231.7% 대폭 증가함.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수혜자를 제외하고, 우리나라는 노인돌봄서비스는 지원 대상과 내용 등에 따라 노인돌봄종합서비스, 독거노인지원서비스, 단기가사지원서비스 등이 있음. 비슷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음에도 분절적으로 서비스가 제공되거나 서비스가 다양하게 제공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음. 따라서 노인맞춤돌봄서비스로 통합하면서 대상자를 일반돌봄군, 중점돌봄군, 특화사업 대상 등을 분류하여 대상자의 욕구에 따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제도의 취지는 고무적임. 그러나 수행기관을 대폭 줄이면서 종사자들의 고용승계 문제와 불안정한 서비스 연계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여 대책이 필요해 보임.

 

노인건강관리

국민증진기금으로 편성되는 노인건강관리 예산은 2019년 19,596백만 원에서 25,199백만 원으로 28.6% 증가하였음. 이는 치매국가책임제 시행 이후, 치매조기검진 등 치매환자의 적극적 발굴 사업의 규모 확장을 위한 예산 증가에 기인함. 반면 저소득층 노인 실명 지원, 무릎관절 수술비 지원은 전년과 동일한 예산만 편성함.

 

치매관리체계 구축

노인건강관리와 함께 건강지원기금에서 지원되는 치매관리체계 구축 사업은 전년대비 10.5% 삭감되어 211,435백만 원이 편성됨. 치매안심센터 전문인력 중 일부를 공무원으로 채용함에 따라 예산이 삭감된 것임.

 

결론

노인관련 예산 중 대부분은 기초연금이 차지하고 있으며, 예산 중 20%만이 노인돌봄 관련 예산이라 할 수 있음. 그러나 노인인구의 절대적 증가에 따른 문제가 신사회적 위험으로 간주되고 있는 사회적 현실을 고려한 제도의 설계와 예산편성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임. 대상자 욕구에 따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돌봄서비스를 시행하겠다고 밝혔으나, 공공인프라 확충 등의 예산 수준은 예년과 다름없는 등 예산상으로는 실제 노인돌봄서비스의 양적, 질적 확대를 위한 제도의 취지가 드러나지 않음.

 

특히, 문재인 정부의 1호 공약이었던 치매국가책임제 시행을 위해 2017년 추경부터 현재까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음. 치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명시한 것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음. 그러나 노인성 질환은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치매에 한정하여 다른 노인돌봄 관련 예산이 제자리걸음인 것은 아쉬운 부분임. 따라서 앞으로 노인돌봄정책이라는 큰 틀 안에서 정책을 재조명하고 추진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임.

 

 

마지막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 국고지원이 매년 법정지원금 20%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제58조 위반이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대한 국가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것임. 따라서 예산심의 과정에서 20%에 해당하는 예산을 편성하도록 해야 함.

월, 2019/11/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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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진료와 지역의료의 실험

- 집을 찾아가는 의료가 만드는 다른 가능성

 

홍종원 방문의료클리닉 건강의집의원 대표원장

 

바람의 빛깔


"자기와 다른 모습을 가졌다고 무시하려고 하지 말아요. 그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바람의 빛깔, 포카혼타스OST


 

가을이 되니 자연스럽게 올 한해 지나온 일들이 머릿속에 스친다. 존재감 없이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삶의 신조인데 겁도 없이 방문진료 전문 의원을 개원해서 여러 사람들의 집을 찾아다니고 있다. 헤매고 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집만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배드민턴 치시는 분을 따라가고 하모니카 부는 모임에 간다. 방문을 하는 분들이 중증 장애인이기에 휠체어를 타고 배드민턴을 쳤고, 2층에서 1층으로 까지 하모니카 부는 분의 휠체어를 옮기는 것을 도와드렸다. 운 좋게 인연이 닿아 집을 찾고 있는 종국씨는 척수장애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생활하시는 분이다. 말씀이 많은 분이 아니라 항상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할 지 막막함을 느끼는 분 중 한 분이다. 그래도 차근차근 건강상태를 점검하였고 혈액검사를 통해 당뇨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성질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려드리고 생활 습관에 대해서 질문하고 또 조언하였다. 집에서 진료 하다보면 의학 상담만하는 것이 아니라 식습관, 음주, 취미 생활, 사회적 관계망 혹은 신변잡기 이야기까지 한다. 그렇게 대화하던 중에 대학로에서 노래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힘들다고 하셔서 몇 번 가다 안 가시려고 하시나 걱정했다. 노래가 어떤 약보다도 좋은 치료라는 생각에 나름대로 지속하시도록 격려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종국씨 집을 드나들었다. 다행스럽게 혈액검사 소견이 호전 되어 서로 기분 좋은 관계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공연 소식을 알려주셨다. 노래 연습이 힘들다고 하셔서 그만두시는 것은 아닐지 조마조마 했는데 공연 소식을 전해주시니 정말 반가웠다. 조심스레 언제, 어디서 하는지 여쭤보았다. 간다고 하면 부담스럽게 느끼실까봐 대단하시다고 잘하실 거라고 격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공연 날이 되었다. 이 집, 저 집 다니느라 정신없이 살고 있지만 장소와 시간을 수차례 확인하여 공연을 보러 갈 여유를 만들었다. 대학로 이음센터 5층 공연장에 승강기를 타고 딱 내렸는데 마침 종국씨가 있었다. 반갑게 인사드렸다. 종국씨는 깜짝 놀라며 "어떻게 오셨어요." 하신다. "인터넷으로 찾아봤어요. 유명하시던데요." 종국씨가 속한 중창단은 한 장애인자립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문화 프로그램 일환으로 탄생한 팀이었다. 스치듯이 말해준 이야기를 듣고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공연관련 정보를 확인한 터였다. 겸손히 말하였지만 이 팀은 버스킹도 하고 가요제에서 상도 탄 실력파 팀이었다. 종국씨는 뒤 늦게 합류한 팀원이었다. 공연장에 온 아내분과 자녀분도 만나 인사 나누고 조용히 뒷자리에 앉았다.

 

멤버이자, 장애당사자인 장애인자립지원센터 센터장이 사회를 보며 공연을 시작하였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순수 아마추어라고 소개를 하고 노래 중간 중간 "들을만하시죠."하고 겸손하게 말하였다. 실상은 꽤 실력 있는 중창단이었다. 노래를 듣는데 지난 시간이 떠오르며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그들이 장애인이서 특별히 감동을 받은 것이었을까? 우리 사회는 정상과 비정상을 철저하게 갈라 인간 사회에 층위를 만들고 자기와 다른 모습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이 일상이다.1) 나 역시 인지하든 못하든 차별의 시선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의사란 직업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나누고 비정상을 정상화 하는 역할을 한다. 중증 장애인들의 집을 찾으며 스스로는 다른 의사가 되고자 했다. “의사가 뭐 이래? 약도 안주고” 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집을 찾아가는 의료는 다른 의료여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8개월 동안 장애인 대상자를 만나며 장애란 단어 자체를 쓰지 않으려 했다. 내가 다시 그들을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으로 호명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치료 대상으로 그분들을 대하지 않고 그저 이웃이자 친구가 되고 싶었다. 치료가 시급한 문제가 있다면 해결하고자 노력하였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상(normal)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다른 점(비정상성) 덕분에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 덕분에 아픈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공연 사회자는 종국씨의 솔로 공연을 앞두고 소개하며, “이 분이 경추장애에요. 배에 힘을 못줘요. 그런데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고 소개하였다. 그랬다. 노래를 정말 잘하였다. 사회자는 노래가 끝나고 “노래 잘 하죠? 배에 힘을 못줘도 이렇게 잘 합니다. 여러 분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노래를 못하는 비장애인인 나에게 희망을 전해주었다.

 


"얼마나 크게 될지 나무를 베면 알 수가 없죠. 서로 다른 피부색을 지녔다 해도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죠. 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눈이 필요 한 거죠. 아름다운 빛의 세상을 함께 본다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요."
바람의 빛깔, 포카혼타스OST


 

집을 찾아가는 의사가 된다면

운 좋게 의사가 되었지만 병원이 내가 일해야 하는 공간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의사인 나에게도 병원이라는 공간은 답답하고 지루하며, 삭막하다고 느껴졌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든 효율적인 공간 배치 속에 의사와 환자 모두 아늑한 돌봄의 기운을 받기 보다는 차가운 대상화의 시선을 느낀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검사나 기술에 의존하게 되었고 본질적인 만남은 사라졌다. 섬세한 진찰과 손길은 이미 낡은 것이 된 병원은 가지 않을 수 있다면 가지 않는 것이 이득인 곳이 되었다. 의사가 된 후 대형병원에 발을 들이진 않았지만 환자들을 만나고 싶었기에, 또 먹고는 살아야했기에 틈틈이 동네 의원에서 진료해왔다. 큰 열정 없이 반복적으로 진료를 해오며 차라리 나름의 철학으로 병원을 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다. 원체 끈기가 없고 오래 일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사람이라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데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새로운 환경이 다가오고 있었고 이 흐름 속에서 새롭게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의 기술이 발달하여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통한 건강 관리기술이 유행하고, 유전자 치료를 통해 희귀질환을 정복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완벽히 무르익지 않았는지 연구 자료를 조작해서 국민 건강에 피해를 끼치는 사례도 나타났다.2) 그럼에도 정부는 나서서 원격의료 및 바이오 헬스 산업을 도입하려고 서둘렀다. 오래된 시도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구체적인 모습을 갖췄고 기업과 정부는 한 편이 되어 장밋빛 전망을 전하고 있다.

 

한편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체계에 대해서 관심이 커졌다. 과거와 다르게 질병의 양상이 만성질환 위주로 변하여 치료(cure)보다는 돌봄(care)의 중요성이 커졌다. 2018년 정부는 커뮤니티케어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지역사회중심의 일차의료와 돌봄 서비스 체계를 만들겠다고 하였다. 방문의료, 재택의료 혹은 왕진 등의 이름으로 의사가 환자의 집으로 찾아가는 진료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그 동안 한국에서는 의사가 환자의 집을 찾는 진료는 활성화 되지 않았다. 오히려 불법으로 인식되었다. 의사의 선의가 환자들을 자신의 병원으로 유인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될 여지가 컸다. 의료행위를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진행하는 것이기에 안전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방문 진료는 사회에 필요한 진료 방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의 경우 왕진은 국가 의료 제도 속에 적절한 지불 체계가 자리 잡았다. 영화, 드라마 등을 봐도 의사가 집으로 찾아가는 것이 문화적으로 익숙한 듯 했다. 왕진을 통해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줄일 수 있고 적절히 처치를 제때 못 받고 응급실을 이용하여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령사회에 대비해 주기적으로 건강을 확인하여 질병을 예방 할 수 있다. 미국, 싱가포르 등의 국가도 다양한 방식으로 방문 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물론 한국 역시 보건소에서 시행하는 방문진료 및 방문간호 사업이 있고 노인장기요양제도 안에 방문간호 제도가 있다. 그런데 일반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방문 진료를 전문하는 경우는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방문해서 진료를 하는데 대한 수가가 책정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환자가 병원에 와서 진료 받는 경우와 찾아가서 진료하는 경우 받는 비용이 똑같다. 교통비 등을 환자에게 실비로 청구할 수 있다고는 하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병원 내 진료가 의사, 환자 모두에게 익숙하기에 집에서 하는 진료는 서로에게 어색하다. 무슨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 모르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가 시작되었다.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는 중증 장애인도 건강할 권리가 있다는 취지로 거동이 불편한 중증 장애인에게 의사가 찾아가서 건강관리를 돕는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제도화된 왕진이다. 이 제도를 통해서 중증 장애 환자에게 의사가 방문해서 진료하고 적절한 처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치료만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담을 통해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게 2019년 3월 중증 장애인 및 거동 불편자들의 집을 찾고자 건강의집 의원을 개원하였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외래진료는 하지 않는 방문진료 전문 의원이다. 1회 방문당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충분한 진료시간을 갖는다. 가정 방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돌봄 체계에 참여하고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여러 기관 및 관계자들을 만나는 데 충분한 시간을 쏟았다. 지역사회에서 중증장애인과 칩거 노인들을 위해 헌신하는 가족, 이웃, 요양보호사, 활동지원사, 사회복지사, 동주민센터 행정직원, 보건소 방문간호사 및 치료사들을 만나서 고민을 나누고 도움을 서로 주고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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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진료, 그 너머의 가능성

의사의 역할은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그런데 의사의 일상적인 진료가 사회의 건강을 증진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병원이라는 건강 생산 공장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가? 수명의 증가라는 근대적 목표 설정은 그 어느 나라보다 빨리 달성을 했으나 한국의 국민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살며, 죽고 싶다는 생각을 언제나 곁에 두고 산다. 실제로 죽음을 시도한 사람도 많다. 그런데 의사는 계속 치료를 강제하고 건강하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건강에 환장한 사회인데, 그것이 어떤 건강인지는 질문되지 않는다. 건강은 생산 가능한 가치인가? 치료기반의 의료가 건강한 사회를 담보하는가? 구매하는 건강, 강제된 건강이 우리가 성취해야할 목표인가? 어떻게 건강의 가치를 재구성할 수 있을까? 가령 고급 분양아파트의 주민들이 임대아파트 주민들과는 어떻게든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사회일까? 청년들의 불안이 향 정신 약물을 통해 조절되는 것은 장려되어야 하는가? 현재 의료의 제공 방식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제시하는가?

 

의학 기술은 날로 발전하는 것 같은데 역설적으로 건강을 돌보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어떤 질병도 치료할 준비가 된 사회이지만 여전히 가난한 이들은 죽지 못해 산다. 때론 죄송한 마음으로 사회와 작별한다.4)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이 많을 때 우리는 건강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충분한 경제적 여유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이다. 장시간 일해야 하는 노동자는 돈의 많고 적음과 별개로 건강을 돌볼 여유가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유행 아래 그럴싸한 이름의 플랫폼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안전망을 가지지 못한 채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경제적 조건이 다소 부족하다면 꼭 갖춰야 할 조건 중 하나는 곁에서 잔소리를 끊임없이 해줄 존재이다. 도시에서 이웃과 관계를 맺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대부분의 관계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구성된다. 일종의 거래로 경제적 이득이 매개되지 않으면 관계가 생기지 않거나 이어지지 않는다. 친구를 사귈 때도 어떤 이득을 줄 것이 기대될 때 흔쾌히 응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만나는데 드는 비용 때문에 집 밖을 나서지 않는다. 게다가 시간은 더욱 귀하기 때문에 아무나 만나서 낭비할 수는 없다.

 

아픈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돌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아픈 시간을 함께 견뎌내는 것은 외면하고만 싶은 어려운 일이다. 아픔 속에 있는 사람을 곁에서 바라보는 일은 참 버겁다. 의사이기 때문에 뭔가 해야 한다. 아프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약을 처방하든지 주사를 놓든 뭘 하든 말이다. 그런데 나름의 노력을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오는 난감한 문제. 결코 개선되지 않은 통증. 그런 것들이 분명히 있다. 신이 해결해주지 않으면 해결이 되지 않은 상황들.

 

모든 아픔이 치료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치료받아야 할 존재인가? 생명이 있는 이상 아픔은 필연이다. 그런데 아픔을 다루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을 때 서럽지만 또 그것을 통해서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할 수도 있다. 극복되지 않은 손상도 물론 있다. 아픔과 손상을 극복하는 것 아니라 자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는 것은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손상과 아픔을 ‘함께’ 겪는 것,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손상과 아픔을 누구와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이냐. 그것이 신체든, 정신이든.

 

건강을 도모하는 일은 대단한 검사와 치료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잠시 기술적 도움 받을 뿐이다. 건강을 홀로 돌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함께 사는 이들이 곁에서 긴 인생을 겪으며 울고 웃으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서로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다. 병원의 진료를 집으로 옮겨 놓는 것이 방문 진료의 전부일까? 그저 움직이지 못하기에 움직일 수 있는 쪽이 움직이는 편의성 제공인가? 방문 진료의 가능성을 더욱 생각해보려고 한다. 집이라서 가능 한 것들, 사는 곳이 알려주는 여러 단서들이 분명 있을 텐데 말이다. 방문 진료 전문 의원을 열기 전 나는 ‘집’을 운영했었다. 의사였지만 의료기관이 아닌 삶의 장소에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서 오래된 동네 상가를 얻어 ‘건강의집’이라고 이름 짓고 딸린 방 한 칸에 몸을 뉘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모였고 모일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편히 지내는 모두의 집이 되었다. 집을 구하기 어려운 청년 활동가들이 함께 살았다. 사적공간의 대명사인 집은 해방의 공간이 되었다. 운영했다기보다 문을 열어두었을 뿐이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으니 여러 사람이 드나들었다. 건강의집 의원을 여는데 계기가 된 이 공간 운영 경험을 통해 집은 관계를 촉진하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같은 집을 여러 번 찾아가면 그 집의 모양과 냄새가 익숙해진다. 그 곳의 삶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이후엔 그 너머의 삶을 함께 그려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방문진료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새로운 건강 생산 체계를 모색해볼 수 있지 않을지 작은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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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원 건강의집 의원 대표원장의 모습(=맨 왼쪽) <사진 = 건강의집의원>

 


1)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장애학의 도전, 김도현, 오월의봄

2) 종양유발세포가 들어간 골관절염치료제가 충분한 검증 없이 환자들에게 투여되었다. https://news.v.daum.net/v/20191115204105469 뉴스타파, 인보사를 ‘기적의 신약’으로 만든 언론.

3) 2019-10-20 제1회 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 학술대회, ‘왜 방문진료인가’, 건강의집의원 김창오 원장 발표자료.

 

4) ○○구 N모녀 사건이 반복되지만 정부는 발굴 혹은 색출에만 혈안일 뿐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접근은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렇게 가난한 이들은 조용히 사라진다. http://beminor.com/detail.php?number=14036&thread=03r01 비마이너, 다가오는 ‘디지털 복지 디스토피아의 그림자.

수, 2019/12/04-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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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협력이 변하니?

: 민관협력사업의 일방적 중단과 명령복종 태도의 부산시를 규탄하며

 

김경일 사회복지연대 사무국장

 

지난 8월 탈북모자 아사 사건과 11월 성북구 네 모녀 사건이 일어나며 우리 사회를 가슴 아프게 하는 일이 또 일어났다. 가슴 아파할 겨를도 없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가 익숙하게 봐왔던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구축해야한다”라는 말이 그러했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후 사회보장제도의 개정과 읍면동 복지허브화 정책이 추진되었고 서울시의 ‘찾동’, 부산시의 ‘다복동’, 경기도의 ‘따복’ 등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사업이 펼쳐지며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취약계층 발굴 등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복지서비스의 최전선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까지 이르렀다. 안전망에 구멍이 났다는 비판은 익숙하게 들리지만 대안은 늘 구멍을 메우는 데만 집중하는 현상을 보며 과연 옳은 대안인가 고민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달체계 개편으로 일컬어지는 사회서비스원 설립과 커뮤니티케어 등의 사업이 진행되는지도 모르겠다.

 

부산시는 이른바 부산형 사업을 통해 사회복지관을 중심으로 민관협력 체계를 구축해왔다. 다복동으로 불리는 이 사업은 53개 종합사회복지관마다 민관협력 전담인력 1인씩을 배치하고 9개 구군에 플러스센터, 광역지원단을 설치해 총 77명을 고용하며 민관협력체계 구축을 통해 사례관리 등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사업을 펼쳐왔다. 그런데 민관협력체계가 잘 구축되었는지, 사각지대 발굴과 해소는 얼마나 되었는지 그간의 축적된 경험을 제대로 평가하기도 전에 사업이 일방적으로 종료되었다.

 

결국 일방적인 행정에 77명의 종사자는 올해 말로 계약이 만료된다. 보건복지부 2019 사회복지시설 관리안내에 명시된 경력인정을 부산시가 갑자기 축소 해석해 종사자들의 경력마저 미인정되는 사태가 발생할 뻔 했으나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을 통해 경력 미인정 문제는 해결되었다. 여전히 관련 협회들이 부산시와 협의 중에 있지만 좀처럼 부산시를 바라보는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민관협력체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와 파트너십이 아닌 명령복종의 태도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진행되었던 민관협력 사업이 일방 중단되며 부산시가 내세운 대안은 구군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사무국 설치였다. 이는 민선7기 부산시장의 공약이었으며 지역사회에서 오랜 기간 합의하고 요구했던 사안이기에 환영해야 하지만 읍면동 단위의 민관협력 기반을 해체하고 구군 단위의 민관협력을 통해 이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밑돌을 빼내어 윗돌을 괴겠다는 꼴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모순적인 상황이 되었다. 또한 일방적 사업 중단으로 인해 무너진 신뢰는 생각지도 않고 신규 사업을 통해 민간이 참여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얼마나 부산시가 모순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민관협력체계의 해체뿐만 아니라 민간을 바라보는 부산시의 시각과 태도 역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현장의 사례는 가히 충격적이다. 특히, 감사를 통해 드러난 부산시의 인식은 단순히 사회복지시설 등을 감시와 평가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후원금, 식자재 구입을 담당하는 직원에게 개인계좌조회를 강요하며 동의서 작성과 통장사본 등을 제출받는가 하면 “보조금을 지원받는데 왜 공동모금회 예산을 지원받느냐”, “타이어는 왜 교체했느냐”라는 등의 어록을 남긴 감사는 마치 사회복지노동자들이 범죄 집단인 것처럼 감사가 아닌 수사의 탈을 쓰고 진행되었고 그 결과는 환수조치로 집중되었다. 사회복지법인을 통한 종교 및 후원강요 등 인권침해와 비리들이 드러나기도 하였지만 마치 노동자들이 범죄의 일선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감사를 진행한 것은 투명성 제고라는 본질적 의미를 넘어 노동자들의 의욕을 저하시켜 서비스 제공에 악영향만 남기고 있다. 이러한 우려와 불만들 속에 부산사회복지계의 공동행동이 계획되고 면담 등이 계속 추진되고 있으나 과연 부산시를 믿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불신의 마음은 회복되기 좀처럼 어려워 보인다.

 

사회 전반의 영역에서 복지사각지대 해소의 패러다임을 넘어 기본권 보장을 이야기하고 있고, 사회복지전달체계 개편으로 일컬어지는 사회서비스원 설립과 지역사회통합돌봄(커뮤니티 케어)체계 구축은 그간의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모든 서비스 제공을 공공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이러한 체계 개편 속에서 놓지 말아야할 핵심은 ‘민관협력’이다. 공공성을 높이는 것은 단순히 운영주체를 민간에서 공공으로 전환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관 모두가 그간에 중요시해왔던 수익성보다 시민들의 삶과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지향할 수 있도록 체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기에 민관협력을 통하지 않는다면 작금의 지향하고 있는 공공성을 사수한다는 것은 말뿐인 상처로 남을지도 모른다. 적절한 규제와 감시는 유지하되 민관협력체계 구축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었음을 부산시는 깨달아야 한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SNS에 경력인정 문제해결을 마치 부산시의 성과인 듯 표현하였다. 핵심은 민관협력체계를 유지하고 민간을 바라보는 겸손한 태도인데 여전히 머릿속에 협력은 없는 것일까? 의심하게 된다. 제대로 묻고 싶다. 어떻게 그동안의 협력이 변하니?

수, 2019/12/04-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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