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기획주제2] 건강보험 부과체계 소득중심 개편의 위험성

[기획주제2] 건강보험 부과체계 소득중심 개편의 위험성

익명 (미확인) | 금, 2015/04/10- 15:22

건강보험 부과체계 소득중심 개편의 위험성 

 

제갈현숙 / 민주노총정책연구원장

 

2013년 연간 근로소득이 2,000만 원보다 적은 249만 명은 약 5,234억 원, 1인당 약 18만 원가량의 소득세를 냈다. 반면 2주택 임대소득자들은 임대소득세를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유리지갑’으로 국세청에 고스란히 소득신고가 되기 때문에 소득만큼 조세 책임을 지고 있다. 반면 부동산 및 불노소득을 매개로 증식되는 재산소득에 대한 세금 부과는 여전히 미약하다. 이러한 조세형평성의 문제가 개선되지 못한 시점에서 건강보험 부과체계마저도 소득중심으로 개편된다면, 소득재분배에 역행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소득재분배는 재산을 포함한 소득이 높은 계층에서 소득이 낮은 계층으로 수직적인 재분배가 클수록 효과적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구조에서 소득중심 혹은 소득단일 부과체계 개편은 국세청이 확보한 사업 및 근로소득의 신고 정도에 따라 보험료 수준이 결정될 수 있다. 그러나 임대소득과 같이 재산을 기반에 둔 고자산가에 대한 소득파악 자료의 미비로 이들에 대한 부과체계 기준이 마련되기 어렵고, 그 결과 보험료 수입구조에서 소득역진성이 발생한다. 부자감세와 서민증세로 조세의 형평성이 왜곡된 요즘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근로소득 이외에 임대, 배당, 상속, 증여와 같이 재산증식형 소득에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 논의에서 제기되고 있는 소득중심 개편 방향이 갖는 위험성에 대해 살펴본다.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 논의의 배경과 경과 

 

부과체계 개편에 대한 정부의 문제의식은 ‘공평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마련에 있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공평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간의 부과기준 차이, 소득 있는 피부양자의 무임승차 문제, 재산부과 비율의 증가에 따른 문제점이다. 이에 2012년 9월부터 직장가입자 중 7,200만 원 이상 종합소득자에 대한 추가 보험료가 부과되었고, 2013년 6월부터 금융, 연금, 임대소득이 각각 4,000만원 넘을 경우에 대해 피부양자 자격을 상실시켰다. 이 두 가지 방안은 기존 부과체계 방안을 보완하고 소득수준에 따른 형평성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수용 가능했다. 그런데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담 중 재산에 따른 비중이 1998년 27%에서 2010년 40%로 증가하면서 재산부과 비율의 증가에 따른 문제점은 심화되었다.

 

이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2년 12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단일화 방안」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건강보험 부과체계를 소득중심으로 전환하고, 이를 위해 재산에 보험료를 부과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재정 부족분을 어떻게 마련하는 가에 대한 방안이 중심과제였다. 보고서에서는 양도․상속․증여 소득에 부과함으로써 약 2조원을 마련하고 , 이 밖에 부가가치세에 건강세 부과, 연금소득 인정률 100% 상향, 사회적 약자에 대한 경감 규정 폐지 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방안은 양도․상속․증여 소득에 대한 부과 이외에는 서민증세적인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공단 밖으로 공론화되지 못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초기 부가가치세 인상을 통한 건보재정 확대가 잠시 수면위로 올랐다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박근혜 정부는 건보부과체계 개편을 국정과제로 설정했다. 이후 2013년 7월 25일 건강보험 부과체계개선기획단(이하 기획단)이 발족되어, 2014년 9월까지 운영되었다. 기획단의 단장은 맡은 이규식 교수는 의료민영화를 주장해왔던 대표적인 학자로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영리병원 도입 등을 주장해왔을 뿐만 아니라, 2012년 국민건강보험공단 보고서 작성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었다. 기획단의 건강보험부과체계는 2015년 1월 연말정산의 후폭풍 속에서 복지부가 개편안 발표를 보류하기로 했다가, 기획단 안이 마치 매우 친서민적으로 마련된 방안인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폐기한 것처럼 그려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소득이 적은 지역가입자가 재산부과에 따른 상대적으로 높은 보험료가 갖는 문제점과 고자산자 피부양자 문제가 또 다시 부각되었다. 그렇다면 기획단의 소득중심 부과체계 방안대로라면 이러한 문제점이 해결될 수 있을까?

 

건강보험료 부과체계개선기획단 최종활동보고서의 주요 내용

 

첫째, 보수 이외에 별도의 종합과세소득을 보유한 직장가입자에 대해 보험료를 추가로 부과한다. 직장가입자가 보수 이외에 임대소득 등 사업소득, 금융소득, 근로소득 등 종합과세소득을 보유한 경우에 대해 보험료를 추가 부과한다. 현재 직장가입자 중 보수외 소득이 연간 7,200만원을 초과한 경우에만 일반 보험료율의 1/2(’13년도 2.945%)을 적용하여 추가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으나, 종합과세소득이 있는 경우 보험료 부과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추가 보험료 대상층은 과연 부유층 혹은 고소득자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금융소득에서 주식배상이나 펀드수익은 배제됐으며, 소득에 대한 부과 기준에서 양도․상속․증여 소득이 단일성 소득이란 이유로 배제되었다. 이렇게 볼 때, 국세청에 신고 되는 소득이 높을수록 부과되는 보험료는 증가될 수 있고, 보수월액의 기준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득부족으로 투 잡을 하게 되는 노동자가 추가 보험료를 적용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 부담능력과 소득 있는 피부양자에 대한 보험료 부과이다. 소득과 재산이 있는 피부양자의 경우,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보험료 책임을 면해왔다. 그러나 부담능력 즉, 종합과세소득이 있는 경우, 피부양자에서 제외하고 보험료를 부과 한다는 계획이다. 피부양자 중 종합과세소득 보유자수는 약 233만 명(전체 피부양자의 약 11.5%)이고, 이중 66%가 연소득 336만원, 월 28만 원 이하 소득자였다. 결국 주요 피부양자 박탈 대상자는 공적연금 수급자가 될 것이다. 

 

셋째, 지역가입자의 소득 이외의 보험료 부과 기준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재산보험료에서 재산에 대한 기초공제 제도를 도입 하고, 재산에 대한 보험료 부담 완화를 추진한다. 재산보험료 기초공제액을 적용할 경우 기초공제액 규모에 따라 재정 감소 액은 약 8천억 원에서 1.7조원 수준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소득이 없는 지역가입자에 대한 최저보험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연소득 500만 원 이하 세대에게는 최저보험료를 부과하고, 연소득 500만원 초과 세대에 대해서는 소득과 재산을 모두 고려한다. 

 

약화되는 자본의 재정 책임 VS 강화되는 노동의 보험료 부담

 

기획단의 소득중심 단일화 방안대로라면 소득을 중심으로 직장가입 노동자들은 기존의 월급 이외에 추가적인 소득에 보험료를 더 부과 받게 된다. 추가적인 보험료 부담은 해당 노동자가 개인으로 더 납부하게 되기 때문에 증가된 액수만큼 자본의 보험료 증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보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재정책임을 자본과 노동자가 절반씩 부담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원칙이 신자유주의 복지국가 개혁과정에서 점진적으로 노동자가 더 부담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 온 측면이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병수당(질환으로 입원 시 지급되는 생계비 급여)을 민영화하거나 노동측이 더 부담하는 방식으로 개혁되거나,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서 자녀가 없는 경우 보험료율을 더 내는 방식 등이 유럽에서는 사용되었다. 그러나 공적 의료보험 급여와 관련된 보험료 부과에서 노동과 자본의 부담률을 차등적으로 적용하진 않았다. 

 

그런데 기획단의 방안대로라면, 생계를 위한 모든 노동에 부과된 세금은 국세청 자료로 등록되고, 이것이 건강보험 보험료 산정에 그대로 노출되게 된다. 이제까지 직장소득이외 종합소득으로 추가적인 7,000만 원 이상의 소득 기준보다 더 하향화된 기준이 제시된다. 이것은 자칫 소득이 있는 모든 곳에 세금이나 보험료를 부과한다는 측면에서 진보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철저하게 노동자의 소득에 준한다. 자본의 추가적인 소득이나, 주식배당, 펀드 수익은 아예 배제된 것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두 가지인데 첫째, 자본의 사회보험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책임을 절반 이하로 축소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실제 고소득층은 노동자 개인이 아니라 법인이고, 이들은 노동비용 절감을 위해 고용형태를 유연화 시켜왔다. 그 결과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보험료 책임에서 벗어나 있고, 국가복지를 위한 재정 책임에서도 법인세 인하라는 혜택을 받아왔다. 그런데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에서 더 많은 보험료 부과 대상에서 누락시킴으로서 건강보험 재정 책임의 주요 주체에서 이탈되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 가입자의 위치를 개개인의 소득으로 집중시킴으로써 가입자 내부의 왜곡현상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왜곡현상은 끊임없이 노동자 내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간 새로운 형평성 논란을 야기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과체계 개편의 근본적인 목적은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의 형평성 제고가 아니라, 건강보험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재정책임의 정의로운 책임 부과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소득 지역가입자에 대한 재산부과는 당연히 개선되어야 한다. 

 

고자산가와 국가의 재정책임 강화의 필요성

 

기획단의 핵심 고려 대상은 재산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초점을 두었다. 그 과정에서 공단의 보고서에서 유의미했던 양도․상속․증여 소득에 대한 보험료 부과는 삭제된 반면, 피부양자의 자격상실 기준을 연간 4,000만 원 이상에서 2,000만원으로 낮췄다. 이렇게 될 경우 공적연금 수급자 중 월 167만 원 이상 연금을 받게 되는 노년층은 피부양자 자격이 박탈되어 월평균 최소 65,000원의 보험료를 책임지게 된다. 그러나 8억 원 상당의 주택소유자이지만, 국세청에 소득이 드러나지 않는 노인의 경우 한 푼의 보험료를 내지 않게 된다. 즉 문제의 핵심은 고액 자산가들에 대한 보험료 인상기준이 소득중심 부과체계에서는 마련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소득중심 방안은 국세청의 과세자료를 근거로 보험료를 부과하게 되는데, 부동산을 매개로 증식되는 소득에 대한 과제자료 및 세금 산정이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다. 2012년 기준으로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률은 62.7%, 근로자의 소득파악률은 100.3%, 임대소득의 경우 과세 대상자 중 신고자는 단 6%로, 신고 된 수입은 추정치 44조원의 단 2%에 머무는 1조 2,963억 원이다. 이렇게 볼 때 소위 ‘불로소득’의 근원이 되는 재산에 대한 부과기준 마련이 오히려 필요하다. 이러한 고자산가들에 대한 재정 책임은 불명확한 반면, 소득이 낮은 가입자에 대한 재정책임은 명확하게 했다. 

 

기획단은 ‘소득이 없더라도 누구나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사회보험 원칙을 고려’해서, 소득파악 문제로 인한 무임승차를 방지하기 위해 소득 없는 세대에 대해 정액의 최저보험료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회보험의 원칙에서 소득이 없는 대상자가 반드시 갹출해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이것은 가입자의 재정 책임 원칙을 과도하게 적용함으로써 국가 재원으로 지원해야할 공공부조 대상자에게 정액의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이 마치 사회보험의 정의인 것처럼 호도하고 것이다. 현재 월 보험료 16,480원 이하 세대는 지역 가입자 중 127만 세대로 16.8%에 이르고, 체납세대 비율을 보면 이들 중 대부분은 보험료 납부 자체가 어려운 상태이다. 500만원 미만 소득이 없거나 소득 자료가 없는 세대에 대해 최저보험료를 적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저소득층에 대한 정액 보험료를 신설한다는 것이다. 사회보험과 공공부조의 원리와 지원은 구분되어야 하고, 국가는 공공부조 대상자에 대한 의료보장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의료급여 수혜율이 전 국민의 단 2%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의료급여 대상자의 획기적인 확대가 국가재정을 통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간의 공평성보다는 재정책임에 대한 공정한 부과에 역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논의된 소득중심 부과체계는 재산증식형 소득에 대한 부과체계 기준 마련보다는 노동을 매개로 한 소득에 대한 더 많은 보험료 부과의 우려가 있다. 또한 국가와 자본의 책임이 축소되지 않고, 강화될 수 있는 방안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편집인의글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listStyle=list&categ... rel="nofollow">[편집인의글] 복지동향 제273호 | 남기철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복지동향 편집위원장

 

기획주제 : 직접일자리의 허와 실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listStyle=list&categ... rel="nofollow">[기획1] 사회서비스 공공일자리, 허와 실│김형용 동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listStyle=list&categ... rel="nofollow">[기획2] 노인일자리의 진단과 개선과제│박경하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연구조사센터장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listStyle=list&categ... rel="nofollow">[기획3] 장애인 일자리 사업 현황과 과제│이인재 한신대학교 재활상담학과 교수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listStyle=list&categ... rel="nofollow">[기획4] 자활, 일자리 사업인가? 복지 사업인가?│최상미 동국대학교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

 

동향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listStyle=list&categ... rel="nofollow">[동향1]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복지사의 과제다 - 사회정의 실현을 약속한 사회복지사들께 드리는 요청의 글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listStyle=list&categ... rel="nofollow">[동향2] 포스트코로나를 준비하는 시기,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 바라는 요구│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listStyle=list&categ... rel="nofollow">[동향3] 대한노인회 소수 임원을 위한 특혜법, 대한노인회법안 발의를 철회하라” │이미진 건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복지톡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listStyle=list&categ... rel="nofollow">[복지톡] 우리가 플라스틱 사용을 강요당하고 있지는 않을까?│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복지칼럼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listStyle=list&categ... rel="nofollow">[복지칼럼] AI는 아동학대를 예방할 수 있을까?│한은희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부연구위원

 

금, 2021/07/02- 03:27
3
0

이주노동자1)의 3대 사회보험 현황 및 정책 제언

 

김기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들어가며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칠 수 있다. 또 실직하고, 늙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개별적인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사회보장제도가 있다. 물론 사회보장제도가 내국인에게 한정될 이유는 없다. 국내에 들어와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산재와 실직 등의 문제는 언제든 닥칠 수 있다. ‘국민국가 성원 자격의 위계에서 가장 아래쪽에 머무는’(설동훈, 2017) 이주노동자들은 사회적 위험에 대한 노출 수준이 더 높을 수도 있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점검하기 위해서는 비전문취업(E-9), 방문취업(H-2) 노동자들의 독특한 법적 지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사회보장기본법 8조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사회보장제도를 적용할 때, 상호주의의 원칙에 따른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여기서 상호주의란, 흔히 국가 사이의 사회보장협정의 기초가 되는 원칙인데, 상대편 나라에서 우리나라 국민이 대우받는 수준과 동일하게 우리나라에서도 이주민을 대우한다는 의미이다(조성혜, 2020). 한국인이 태국에서 고용보험에서 배제된다면, 한국의 태국 노동자에게도 고용보험을 적용할 이유는 없다는 의미다. 물론 이와 같은 원칙을 한국의 이주노동자에게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이른바 고용허가제를 통해서 한국땅을 밟은 이주노동자 집단의 특수성 때문이다. 이들은 산업현장에서 일손이 부족한 한국의 필요에 따라 한국을 방문해 일정 기간 고용이 됐다. 바꾸어 말하면, 한국의 필요에 따라 기한을 정해서 유입된 인구들이다. 본국보다 근로소득 수준이 높은 한국의 일터를 찾는 이주노동자들의 경제적인 이해도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호주의의 원칙을 이들에게 적용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이들에 대한 사회보장제도 운용은 제도의 원칙, 이들의 독특한 법적 위상, 한국 사회의 수용성 등을 골고루 반영하는 수밖에 없다. 이글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산재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을 둘러싼 현황을 간단히 짚고, 관련한 정책 제언을 시도한다. 

 

이주노동자 산업재해보험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보상제도는 적용 대상을 ‘국민’으로 한정하지 않고, ‘근로자’(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조)로 정하고 있어 이주노동자를 배제하지 않는다. 한국의 사회보험 가운데 유일하게 내외국인의 구분이 거의 없이 적용되는 법이다(조성혜, 2020). 그렇지만, 이주노동자가 체감하는 산재보험의 적용 수준은 낮은 편이다. 이주노동자 가운데 본인의 사업장이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다고 답한 비율이 46.9%였다 (김기태 외, 2020). 통계청 공식통계에서는 그 비율이 높다. 2019년 이주민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의 결과를 보면, 비전문취업 노동자의 경우, 본인 사업장이 산재보험에 가입됐다고 답한 비율이 91.9%였다. 미가입이 5.2%, 모름이 2.9%였다. 물론, 두 조사 모두에서 사업장의 실제 산재 가입 여부를 확인한 것은 아니다. 이주노동자가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산재 가입 여부를 물어본 것이므로, 사업장의 실제 산재 가입률이 더 높을 수 있다. 

 

이주노동자의 취약한 노동여건을 고려하면 산업재해보험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인구는 최근 늘어나는 추세다 (<그림 3-1> 참고). 이들의 산업재해 현황은 통계의 수치보다도 더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외국인 산업재해의 경우 은폐율이 높기 때문이다. 이유는 두 가지로 풀이된다(김기태 외, 2020). 첫째,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사업장들이 대부분 상대적으로 영세한 작업장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주노동자들이 안전에 관해 소통하는 데 내국인 노동자보다는 미숙한 탓도 있다. 이주노동자의 경우, 업무상 질병인정률도 낮다. 지난 2016년 내국인 노동자의 경우 업무상 질병 인정률이 평균 44.1%였다. 반면, 이주노동자는 2016년 인정률이 38.6%로 내국인보다 낮다(박선희, 2018). 

 

https://lh4.googleusercontent.com/76vux-xOPho6k_rICSJGuIr9aaKZGE9czWrGse... alt="76vux-xOPho6k_rICSJGuIr9aaKZGE9czWrGseZU" />

 

2021년에도 이주노동자들의 몸은 계속 훼손되고 있다. 지난 2020년 1월~2021년 6월 중대재해 사망자 1113명 가운데 135명(12.1%)이 외국인이었다(이상서, 2021). 이주노동자의 전체 국내 노동자 대비 비율(3.9%)을 고려하면, 이주노동자의 사망비율은 3배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를 막기 위한 정책은 국내 취약 노동자를 위한 산업재해 방지 정책과 대부분 일치한다. 내국인 저임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다수 일하기 때문이다. 산업재해 방지 정책은 국적을 가라지 않고 모든 저임노동자에게 적용된다. 이를테면, 사업장 작업 환경 개선, 산업안전 교육 내실화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주노동자에 한정한 산업재해 관련 정책을 한가지만 제시하자면, 현행 이주노동자 배정 과정에서 점수제에 대한 조정이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지난 2012년부터 점수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싶은 사업장들은 일정한 기준에 따른 점수를 부여받은 뒤, 이에 따라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지를 통보받게 된다. 

 

점수의 배점 항목을 보면, 성폭행은 10점, 폭행, 폭언, 성희롱은 5점, 임금체불 및 근로조건 위반 및 기타 사업주 귀책사유는 3점의 감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사망 재해 2년 연속 발생에 대한 감점은 2점에 불과하다(고용노동부, n.d.). 주의할 점은 일반 재해에 대한 감점은 없고, 사망 재해에 한정해서 감점이 있다는 점이다.2) 또 산재 은폐 또는 보고의무 위반 사업장에 대한 감점 역시 1~2점이다. 특히 이주민에게 자주 발생하는 산재의 특성을 고려해서 산업재해에 대한 감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주노동자의 국민연금

 

국민연금은 상호주의가 적용된다. 한국과 맺은 사회보장협정의 내용에 따라 국민연금의 적용여부가 달라진다. 중국,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등 3개국은 사업장과 지역 모두 당연가입이 적용된다. 사업장은 당연가입이 적용되지만, 지역은 제외되는 나라는 키르기스스탄, 몽골, 인도네시아, 태국, 라오스 등 5개국이다. 사업장 가입 및 지역 가입이 모두 적용 제외되는 나라는 7개국으로 베트남, 캄보디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미얀마, 티모르 등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국내에서 장기체류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동남아 출신 비전문취업(E9) 노동자들은 수급대상이 되기 힘들다. 가입기간이 10년 이상이고 연령이 60세 이상이라는 일반적인 수급요건을 충족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국민연금으로부터 배제할 이유는 없다. 연금수급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가입자에게는 출국할 때 반환일시금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반환일시금의 액수는 가입자가 낸 연금보험료 총액에 일정한 이자를 더한 액수다. 어차피 낸 만큼만 돌려받는다면 이들을 굳이 국민연금에 가입할 이유가 적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국민연금 보험료는 사업주가 보험료의 절반(4.5%)를 납부한다. 따라서 외국인노동자가 국내 체류를 마치고 반환일시금으로 받는 액수는 본인이 납부한 보험료의 총액의 두배를 넘게 된다. 이주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들을 국민연금에서 포괄할 필요가 있다. 이들을 국민연금에서 배제한다면, 이는 외국인 고용법상 차별금지 원칙에 어긋난다(조성혜, 2020). 

 

국민연금과 관련해서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사업주가 국민연금을 미가입하거나 체납한 경우다. 이에 따라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이 본인이 납입한 국민연금 보험료의 원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국민권익위원회, 2013). 이와 같은 문제점은 해당 사업장에 대한 제재의 강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법 128조에서는 이와 같은 사업장에 대해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규정이 집행된 사례는 드물다(김기태 외, 2020). 현재는 연금보험료 체납 사업장에 대해서 독촉고지 및 체납업무 안내 등의 조치만 이뤄질 뿐이다. 

 

이주노동자의 고용보험

 

일부 국내거주(F2) 및 영주(F5)자격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고용보험 실업급여의 임의적용의 대상이 된다. 즉, 본인이 신청한 경우에만 실업급여 수급 대상이 된다. 이주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50%에 이르지 못한다(김기태 외, 2020). 이에 따라,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자 변경 기간 동안에 소득 단절에 따른 어려움을 겪게 된다. 2013년 이전에는 이주노동자의 전용보험인 출국만기보험제도가 회사를 떠나는 이주노동자의 퇴직금 구실을 했다. 2014년 법 개정 및 시행에 따라서 이주노동자들은 출국한 다음에야 출국만기보험금을 받게 됐다(윤지영, 2014). 

 

https://lh4.googleusercontent.com/rQYndDx-RsjxHJ0_nyXs6rpwXX4WvNlxeG4R_9... alt="rQYndDx-RsjxHJ0_nyXs6rpwXX4WvNlxeG4R_99y" />



 

이주노동자를 위한 고용보험제도의 개선 방향으로, 고용보험이 이주노동자를 포괄하는 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3) 지난 2020년 고용보험법 10조의 2가 개정되어 비전문취업(E9)과 방문취업(H2) 이주노동자는 고용보험 가운데 고용안정·직업능력개발사업 가입이 의무화된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고용안정 및 직업능력개발 부분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을 포괄하면서, 고용보험의 주요한 축인 실업급여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배제할 이유는 적다. 상대적으로 작업장 선택이 자유로운 H2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최대 3개월 동안의 구직 기간이 보장된 E9 노동자들도 실업 시에 소득 단절이라는 문제를 겪는 것은 내국인 노동자들과 다르지 않다. 

 

또한, 고용보험에 이미 임의가입된 비전문취업(E9) 노동자들에 대한 구직급여 지급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의 분석 결과를 보면, 고용보험 보험료를 낸 이주민 구직자 가운데 구직급여를 받은 비율은 13.5%에 불과했다(김기태 외, 2020). 

 

나가며

 

지금까지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를 건강보험을 제외한 3대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3대 사회보험은 실업, 산업재해, 노령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보장제도이지만, 그 안에서도 이들은 일정한 배제의 대상이 됐다. 이들을 포괄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한가지 첨언하겠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개선과 아울러, 이들의 작업 및 주거 환경 개선에 대한 노력도 필요하다.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최저보다 낮은’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최저보다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이주와 인권 연구소, 2019). 지난해 12월에는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속헹씨(31)가 숙소인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작업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부당해고, 폭행, 성폭력 등의 극악한 관행들은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그림 3-3> 참고). 기본적인 인권 보장의 토대 위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https://lh5.googleusercontent.com/7VNznGQIkq9TynimC74bHmQqTX39s7q0Dr48NL... alt="7VNznGQIkq9TynimC74bHmQqTX39s7q0Dr48NLpG" />

 


1) 이 글에서는 비전문취업(E-9), 방문취업(H-2), 재외동포(F-4) 체류자격을 지닌 이주노동자로 대상을 한정한다. 참고로, 비전문취업 노동자는 대부분 동남아 노동자들이며, 방문취업 및 재외동포 노동자

들은 중국동포들이다.

2) 점수제 도입 초기에는 산재 발생에 대한 감점이 있었으나 사라졌다. 산재 발생으로 인한 불이익은 산재 은폐로 이어진다는 우려에 따른 결과였다(박선희, 2018).

3) 고용보험의 실업급여를 이주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안에 대한 다른 의견도 있다. 조성혜(2020)는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 변경이 제한되므로 실업의 가능성이 적고, 설혹 이직을 하더라도 구직활동이 가능한 기간이 3개월 이내인 점을 고려해서, 실제로 실업급여를 수급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이들은 고용보험료만 내고 급여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점을 고려해서, 체류기간이 아직 경과하지는 않았지만 실직 상태에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해서 출국만기보험금을 일부 지급하는 안을 제시했다. 이 또한 실업 중인 이주노동자를 위한 소득보장제도로 검토할 여지가 있다. 정책 마련을 위해, 이주노동자의 실업 빈도 등에 대한 현황 파악 및 검토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김기태, 곽윤경, 이주미, 주유선, 정기선, 김석호, 김철효, 김보미 (2020) 사회배제 대응을 위한 새로운 복지국가 체제 개발. 세종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상서 (2021.8.3.) “최근 1년 반 동안 중대재해 사망자 12%는 외국인.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10801059600371?input=1195m에서 인출

설동훈. (2017). 한국 내 이주민의 권리 보장: 동향과 쟁점, 복지동향 12월호 DOI: www.peoplepower21.org/Welfare/1539643에서 2019. 3. 5. 인출.

조성혜 (2020) 외국인근로자의 사회보장법상 지위_외국인고용법이 사회보장법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사회법연구. 40. 35-84.

박선희. (2018). 이주노동자 산업재해 실태. 2018 노동자 건강권 포럼 발표 자료. 95-100 (일과 건강,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주최) 

고용노동부. (n.d.). 고용허가제 정보 가운데 점수제 소개. https://www.eps.go.kr/eo/ScoreInfo.eo?tabGb=03에서 2021.8.23. 인출

국민권익위원회. (2013). 외국인근로자 국민연금 체불방지 방안. 국민권익위원회. 

윤지영. (2014). 이주노동자 퇴직급 출국 후 수령제도의 도입과 문제점. 복지동향. http://www.peoplepower21.org/Welfare/1224831에서 2020. 8.22. 인출.

 

이주와 인권 연구소. (2019). 최저보다 낮은: 2018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주거환경 실태조사. 부산: 이주와 인권 연구소.

 

목, 2021/09/02- 00:31
3
0

김성욱 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지난해 6월 필자는 본지에 윤석열 정부 소득보장제도의 전망과 과제에 대한 짧은 글을 쓴 바 있다. 한편으로는 문재인 정부 소득보장 부문의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공약과 정부 출범 후 제시한 국정과제를 비교하였다. 굳이 요약하자면 지난 정부에 비해 새로울 것 없이, 팬데믹 시기 소득 위기를 타개할 청사진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현 정부 소득보장제도에 대한 우려였다. 어느덧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최근까지 국민연금이나 실업급여 등 일부 제도조정을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윤석열 정부의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없는 상태이다. 정부는 국정과제 발표한 지 1년 넘게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계획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 정부 씽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정책기획위원회가 폐지된 상태에서 정부의 공식 자료로 확인할 수 있는 정책의 구체적인 진행 과정과 성과는 제한적이다. 이 가운데 올해 초 보건복지부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있었다. 윤석열 정부가 2022년 5월에 출범했으니 이번 복지부 업무보고는 사실상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윤석열 정부만의 고유한 세부 플랜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내 소득보장 분야의 진행 상황을 복지부 업무보고를 통해 점검하고 평가하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논의에 앞서 개념을 짚을 필요가 있다. 많은 사회과학 연구와 칼럼, 정부보고서에서 소득보장 혹은 소득보장제도라는 개념을 활용하지만, 소득을 보장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소득보장제도에 포괄되는 정책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에 대해 합의는 없다. 통상 소득보장은 통상 질병, 실업, 사고 등으로 인한 소득의 중단 혹은 상실이 발생할 경우 시장에서의 일차분배를 재분배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일부 혹은 그 기능을 일컫는다. 따라서 소득을 보장하는 정형화된 제도나 정책프로그램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기보다 다양한 노동-경제사회정책들이 소득을 정책적으로 재분배하기 위해 수행하는 활동과 성과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혹자는 소득보장‘제도’를 사회보장(통상 개념적으로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사회복지서비스의 총체)과 혼용하여 쓰기도 하고, 연금과 각종 수당 및 현금성 급여(대표적으로 생계급여)만을 소득보장‘제도’로 간주하기도 한다. 시중의 사회보장 관련 교과서에서도 김태성 서울대 교수의 기여와 소득/자산조사 여부를 활용한 소득보장제도 분류법 정도가 소개되는 데 그치고 있지만 이 또한 개념적 엄밀성이나 역사성, 학계의 통상적 인용 등을 가진 설명은 아니다(이에 따르면 다양한 보편적 수당제도, 사회보험, 공공부조가 이에 해당된다). 필자도 작년 윤석열 정부 소득보장제도를 전망하면서 개념적 엄밀성을 고려하지 않고 국민연금,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 근로장려금 정도를 소득보장으로 ‘퉁’쳤음을 고백한다. 향후 소득보장 혹은 소득보장제도의 이론적 개념화, 세부 구성, 범위, 타 제도와의 관계 등이 학술적으로 충분히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논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소득보장’을 어떤 제도로 구현할 수 있다고 보는지 정부의 입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많은 문서들이 있지만 그나마 가장 확실한 기준으로 삼을만한 것은 정부가 법률에 근거하여 작성한 ‘사회보장기본계획’이 아닐까 한다. 2014년 발표한 1차 기본계획에 따르면 소득보장은 국민연금, 사적연금, 그리고 기초연금(구 기초노령연금)으로 달성되는 것으로 보았고 주로 연금과 같은 노후소득보장 관계정책과 일부 농어촌 주민들 대상 소득보조 사업이 언급되는 수준에서 논의되었다. 2019년 2차 기본계획에서는 소득보장을 노후소득보장과 근로연령층 소득보장으로 더 세분화하였다. 이에 따르면 노후소득보장은 공적연금, 퇴직연금, 기초연금, 생계급여를, 근로연령층 소득보장은 고용보험, EITC, 기초생활보장제도 내 자활급여 등으로 구성된다. 다만 국회예산정책처는 2020년 편찬한 보고서에서 소득보장분야를 ‘취약계층대상 소득보장’(생계급여, 자활급여, 장애인연금 및 장애(아동)수당)과 ‘노후소득보장체계’(기초연금, 국민연금, 특수직역연금, 퇴직연금, 농지연금)로 소득보장의 범위를 재조정하였다(근로연령층 소득보장은 고용 분야 분석으로 이관). 다만 여기서 일부 재정사업들(출산크레딧, 실업크레딧, 농어업인 보험료 지원, 공무원 및 군인연금의 국가보전금 등)도 소득보장에 포함하였다. 확고하다고 볼 수 없고 다소 불명료한 점은 있지만 필자는 최대한 정부의 이러한 분류법에 기초하여 출범 2년을 맞은 윤석열 정부의 소득보장제도의 성과와 과제를 검토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소득보장 관련 국정과제의 성과는 고사하고 그간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문제점은 없었는지, 향후 어떤 구체적 실행계획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다. 2023년 복지부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살펴보자.

일단 그간의 추진 성과가 지나치게 부족하다. 작년 보건복지부는 업무보고를 통해 문재인 정부 기간 새로운 소득보장제도(아동수당 도입,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노인 및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등)를 도입하고 대상 및 보장 수준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시장불평등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을 개선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올해 복지부는 소득보장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요 정책성과로 약자 복지 기반 마련과 생애주기별 취약 대상맞춤 돌봄을 확대하였고, 건보료 부과 체계 개편, 코로나19 대응, 바이오헬스 글로벌 도약 가능성 확인을 제시하였다. 다른 많은 성과가 있어도 굳이 넣지 않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복지부가 밝힌 윤석열 정부 보건복지 주요 성과는 이게 전부다. 그나마 작년 9월 안상훈 사회수석이 발표하여 아직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약자복지’도 긴급복지 및 자립수당 확대, 국공립어린이집 확대 및 시간제보육개편, 노인재택의료센터 도입, 발달장애인돌봄대책 마련, 부모급여 도입 정도다. 이 가운데 소득보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기존 양육수당을 확대하여 만 2세 미만 보호자에 매월 최대 70만원을 추가로 지급(단 보육료 바우처만큼 감액)하는 부모급여 도입 정도인데, 이마저도 아동수당법이 법사위에 계류되어 있어 실제 집행이 될지, 언제 어느 정도 될지는 미지수다. 역대 최대 인상폭(5.47%)이라고 홍보한 기준중위소득도 사실상 그간 기재부 반대로 매번 무산됐던 것을 이번 정부 들어 ‘21년 합의한 로드맵대로 이행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다. 상병수당 도입논의는 ‘시범사업 중’(25년 6월까지 예정)이라는 말 하나로 거의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특이사항이 없다. 생계급여 선정기준도 현행 기준중위소득 30%를 35%로 상향할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고, 재산기준 완화나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개선도 올해 8월에 나올 예정인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24~‘26)’에 반영하겠다는 정도의 계획을 제시한 정도다. 실업급여와 육아휴직 급여확대에 대해서는 일부 논의가 진행되었을 뿐 검토단계에 들어가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 특히 저소득계층의 소득 위기를 어떻게 보호했는지 매년 비슷하게 반복되는 성과조차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계획과 검토만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 기초연금을 최대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국정과제는 매년 물가상승률만 반영해도 몇 년 안에 달성될 것이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임기 말까지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윤석열 정부의 가장 왕성한(?) 소득보장 개선 노력은 국민연금개혁 논의로 모아질 것으로 보이나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는 논의가 지배적이다. 현 정부의 연금개혁에는 기금(돈) 운영만 있을 뿐 정작 국민의 안정적 노후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는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으로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하여 자신의 연금개혁의지를 공론화하겠다고 밝혔으나, 국정과제에서는 국회 설치로 선회하여 논란의 중심에서 피해가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이에 현재 4월 종료 예정인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운영되고 있지만, 언론을 통해 일부 조정안이 확대 보도되는 등 논란만 확산되었을 뿐 정작 연금개혁 당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론화위 활동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최근 기업범죄 전문 검사 출신을 연기금 상근전문위원으로 임명하는가 하면 노동계 기금위원을 특별한 사유 없이 해촉하였고, 찬반토론을 무시하고 안건을 상정하여 수탁자책임전문위원을 줄이고 이를 복지부 장관이 임명하겠다며 표결처리를 강행하였다. 박근혜 정부 당시 삼성물산 합병사건을 계기로 2020년 이후 기금의 거버넌스와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을 단 3년만에 와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프랑스가 엄청난 대중적 공분에도 불구하고 연금개혁을 강행한 바를 배워 우리도 소득대체율을 낮추고 보험료를 올리는 연금개혁을 달성하자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건 비교 대상이 아니다. 프랑스는 정년을 연장하여 수급개시연령을 늦추자는 것으로, 사실은 수급개시연령이 아니라 정년연장, 즉 보다 오래 일하라는 정부의 개혁안을 대중들이 거부하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실질은퇴연령은 OECD 국가 중 가장 길지만, 근속연수는 가장 짧은 국가이다. 젊을 때부터 다닌 안정적 직장에서 빨리 퇴직하면서 부득이 노인이 되어서 저임금 일이나마 놓지 못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당해연도에 걷은 보험료와 세금으로 당해에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연금보험료 28%를 걷어 소득대체율 60%(우리는 각각 9%, 42%)의 제도를 운영하는 프랑스의 연금개혁을 보고 우리도 개혁하자는 것은 마치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더 하라는 걸 보고는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의 음식을 빼앗는 것과 다름없다. 기만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국민연금기금의 기본 목적은 가입자의 안정적인 노후연금 지급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도의 지속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적정한 노후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어떠한 재정운용 전략을 가져야 하는가와 같은 인식의 흐름이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는 적정 노후에 대한 고려 없이 연기금 고갈과 재정안정화만을 반복적으로 강조할 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국민연금의 제도적 기반이 훼손되거나 불안하다고 인식될수록 기금운용의 실질적인 지배권을 가지려고 욕망하는 기재부 등 재정권력과 민간 금융권은 반사이익을 얻는다. 실제 민간 금융회사들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일부 연구집단들은 지속적으로 연기금의 고갈을 강조하고 국민연금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제도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런 것을 보면, 정부와 재정안정화론자들은 국민연금기금을 쌓아두기만 하고 활용 가치가 낮아 소위 경제 전체에 사중손실을 유발하는 수괴 정도로 여기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연기금의 지속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논의는 국민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이 아니라 재정안정이 목적이라고 대중들을 현혹시키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로 기능한다. 하지만 연기금 및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은 단순히 기금투자수익률이나 보험료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구구조와 노동시장의 문제라는 점은 명확하다. 전세계 가장 낮은 출생율과 그에 따른 빠른 속도의 고령화라는 제약조건 속에서 기금의 적극적인 사회적 보호의 역할을 방관한 채 기금을 보호해야 한다는 재정 관료들과 재정안정화론자들의 주장은 사실상 국민연금제도를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기금고갈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연금논의가 세대갈등으로 번져가는 지금의 상황은 제도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올해도 어김없이 기금재정재계산이 발표되었고 상당한 사회적 논란만 가중된 채 뚜렷한 해법이나 논의의 진전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연금과 노동시장에 대한 청년들의 불만을 일부 양분삼아 집권에 성공한 현 정부는 정작 논의를 국회로 넘긴 채 위원회의 민주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자기 사람 심기에 바쁜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글은 2년 차를 맞는 윤석열 정부가 국민의 불안한 삶을 어떻게 얼마나 보호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쓴 글이다. 대체로 이런 종류의 글은 성과의 과오를 판단하고 더 나은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는 정도의 내용으로 구성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소득보장 성과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평가할 내용이 부족하다. 무엇인가를 했다면 그걸 평가하면 될 일이지만, 뭔가를 별로 하지 않은 상태라면 평가도 궁색할 수밖에 없다. 정부 초기부터 윤석열 정부에 대한 최대의 우려는 무능이었다. 초기에는 주로 대통령 개인의 정치 및 국정운영 경험 부족이 집중적으로 거론되었다면, 지금 시점에서는 정권 자체의 무관심이 문제가 아닐까라는 우려를 하게 된다. 약자복지라는 이상한 용어를 내세웠지만 정작 긴급복지, 자립수당, 기준중위소득에서 소폭 인상하고 기존 양육수당을 일부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그쳤다.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막연한 계획만 있을 뿐이다. 

어느 정부 때나 그랬지만 정권이 바뀌면 취약계층들은 일말의 희망을 갖는다. 특히 소득과 건강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위기가구라면 그러한 희망만이 거의 유력한 탈출구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아직 그러한 희망은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그나마 미약한 계획만이 있을 뿐이다. 남은 집권 기간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계획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박스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과 밥을 굶는 아이, 단칸방에서 맞는 고독사, 병원에 가지 못하는 장애인, 경제적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뼈아픈 사례들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걸 부정할 수 있을까. 팬데믹이 휩쓴 가계의 불안은 과거 가족 동반자살이라는 말로 포장되었던 자녀살해, 가족살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으로 파괴적인 모습으로 여전히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모든 정권이 동일한 정책목표를 가지고 유사한 성과를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백번 양보하여, 정부가 국민의 소득을 안정적으로 보호하는 데 능력이 부족할 수는 있다. 이는 다른 많은 정책자원들을 활용하면 대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관심은 다른 문제다. 부디 이러한 우려가 기우이기를, 그리하여 남은 집권기간 동안 말잔치로 끝나지 않고 위험에 처한 국민들을 따뜻하게 보호하기 위해 무언가라도 하는 국정을 펼치기 바란다.

The post [기획1] 윤석열 정부 소득보장제도, 무엇을 했는가 appeared first on 참여연대.

월, 2023/04/03- 14:26
3
0

유민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들어가며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여성이 평생동안 아이를 낳는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은 2022년에 0.78명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사회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고 이에 대응하여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사회정책이 제안되고 있다. 하지만 한 개인의 결혼과 출산 결정은 한 개인의 생애과정의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반해, 현재 주요하게 나타나는 관련 정책들은 출산 시기나 그 이후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진 경향이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이 글은 출산에 맞추어진 초점을 그 이전의 단계, 즉 성인 이행기(the transition period to adulthood)에맞추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 성인 이행기가 길어지고 있고, 여기에 가중된 자립의 어려움으로 인해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글의 접근이 실제 결혼과 출산 결정 유보 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하는 것이라면, 합계출산율을 높이고자 하는 정책은 비단 출산과 그 전후 시점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성인 이행기에도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즉, 성인 이행기 청년의 자립을 지원하여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여기서는 오늘날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나아가는 과정, 즉 ‘성인 이행기’가 길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변화에 대해서도 간단히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향후 저출산 정책과 청년 정책의 방향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길어진 성인 이행기: 교육기간, 혼인연령, 출산연령의 예

성인이 되는 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만19세가 넘으면 법적으로 성인이 되지만, 이 연령이 지났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당장 성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자신이 성인이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 청년들의 성인 자각을 조사하였을 때 20대 초반의 성인 자각은 매우 낮은 편이었고, 20대 후반에 들어서야 절반 이상이 자신을 ‘가끔’ 혹은 ‘항상’성인이라고 느낀다고 하였다(유민상 외, 2022). 이는 이 시기가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시기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의 전환기 혹은 이행기(transition period)가 나타나고, 길어지는 현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경제 선진국들에서 유사하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아네뜨(Arnett, 2000)는 이러한 시기를 새로운 성인기 혹은 발현 성인기(emerging adulthood)라고 불렀는데,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 사이에 새롭게 등장한 시기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동·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급격하게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안정된 직업을 탐색하는 시기가 등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법적으로 성인 연령이 되면 바로 노동시장에 나가거나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시기가 근래에 들어 대학교육이나 훈련을 받고 직업생활을 하고 조금 늦게 결혼과 출산을 하는 시기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성인 이행기가 길어지는 현상은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그리고 성인 이행기의 자립을 지원하는 국가 수준의 청년 정책의 출현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다음은 길어진 성인 이행기를 보여주는 지표와 이를 어렵게 만드는 지표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1) 길어진 교육 기간

현대 산업사회는 과거에 비해 긴 교육이나 훈련을 요구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서 오랜 교육을 필요로 하는 직종이 많아지고 있고, 최근에는 대학원 학위를 추가적으로 필요로 하는 직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경쟁적으로 대학 입학 경쟁에 뛰어들고 있고 높은 고등교육 진학률로 나타나고 있다. 1980년대 10% 남짓하던 대학진학률(고등교육 진학률)은 2020년대 70%를 넘어서고 있다. 그 이상의 역량을 쌓기 위해 방학이나 휴학 기간 중 추가적인 경쟁도 늘어나는 추세이며, 휴학과 졸업 유예 등으로 이러한 시기를 더 늘리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2) 늦어진 혼인 시기

혼인 시기도 점차적으로 늦어지고 있다. 1990년에 여성의 평균 혼인 연령은 24.78세였으나 2021년에는 31.08세로 높아졌고, 2022년에는 31.3세로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연령별 혼인율을 보면 이러한 변화가 더 잘 눈에 띈다. 1990년대 여성의 혼인은 20대 후반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2022년에는 30대 초반의 혼인율이 가장 높아졌다. 여전히 여성들은 사회가 주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연령 규범의 부담을 안고 있겠지만 실제로는 이전보다 늦게 혼인을 하거나 아예 혼인을 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서 탈표준화되고 있다. 이러한 탈표준화의 방향에 결혼이나 출산을 빨리 하려는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고 있고, 반대로 결혼과 출산의 시기를 늦추거나, 아예 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3) 늦어진 출산 시기

혼인 시기가 늦어지면서 출산 시기도 함께 늦어지고 있다. 2000년에만 하더라도 여성은 평균적으로 20대에 결혼하고 출산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여성들은 30대 초반에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는 경우가 가장 많아지고 있다. 다만 이 시기의 다른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상태로 인생 경로의 탈표준화를 경험하고 있기도 하다. 모두가 같은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4) 성인 이행기 지연 요인으로서의 높은 니트 비율

이상에서 살펴본 것은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음 단계로의 시간이 연장된 이유는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까지가 더 험난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타당하다면, 우리나라 청년들이 자주 경험하게 된 니트 상태(NEET: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탈표준화되는 인생 경로

지금까지 길어진 성인 이행기를 보여주는 지표와 이를 어렵게 만드는 지표에 대해 살펴보았다. 과거에는 결혼과 출산이 인생의 중요한 단계이며 개인이 따라야 하는 사회 규범으로 작용하였다. 이는 많은 이들이 결혼이 적합하다는 사회적 시기에 따라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는 동기 혹은 추동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적 단계 혹은 표준화된 단계는 점차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이 필수적인 생애 과업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 과업으로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은 변화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2020년에 시행한 「청소년종합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13-24세의 청소년들은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에 대해 39.1%만이 ‘그렇다’고 응답하였다. 이는 2017년 51.0%에 비해 12%p 가량 하락한 수치이다. 특히 남자는 42.9%, 여자는 34.8%를 기록하였는데 이는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나타나는 변화라는 걸 보여준다. ‘결혼을 하더라도 반드시 아이를 가질 필요는 없다’에 대해서는 60.3%가 동의하였다. 이는 2017년 조사 결과인 46.1%에 비해 증가한 수치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청소년들이 ‘반드시’ 결혼이나 출산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을 점차 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청소년들에게는 점차적으로 결혼과 출산이 필수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역시 ‘선택’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2016년~2021년까지 시행한 「청년사회·경제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2016년 결혼과 출산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은 전체의 50%가 넘었으나, 2021년 조사에서는 30%대로 줄어들었다. 대신 결혼과 출산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청년들의 비율이 가장 많아졌다. ‘결혼할 필요 없음’과 ‘자녀를 가질 필요 없음’은 각각 6.6%와 7.3%로 아직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결혼과 출산은 반드시 해야 할 인생 과업은 아니지만, 기회가 되면 선택할 수 있는 여전히 선호되는 선택지라는 것이다. 

요컨대 모든 사람이 결혼과 출산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수가 원하고 있으므로 여전히 결혼과 출산에 대한 지원은 필요하다. 다만 이를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는 결혼과 출산을 선호하지만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조건과 환경에 있지 않은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표준화된 인생경로를 강요하지 않고, 다양한 인생경로를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삶의 질 지원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저출산 정책과 청년 정책의 방향

이 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저출산 정책은 더 생애주기적 관점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고,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성인 이행기 동안의 자립 지원을 통해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보완해야 한다. 성인 이행기에 있는 청년들이 자립을 하고, 그 이후 새로운 사회적 결속과 재생산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관련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이는 청년 정책의 영역도 아니었고 저출산 정책의 영역도 아니었으나, 이제는 함께 고민하고 실행해야 할 정책 영역이 된 것이다. 청년 정책에서 성인 이행기 자립을 지원하고, 저출산 정책에서 그 이후의 재생산과 관련된 지원을 담당하되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청년 정책에서 모호하고 상징적으로만 다루어졌던 성인 이행기 자립에 대한 개념적 명확화와 실행 방안 정책화가 필요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정책 방향을 검토해볼 수 있다. 첫째, 성인 이행기 니트 청년의 지원이 필요하다. 성인 이행기가 지연되는데 일조하고 있는 니트 상태와 관련하여, 청년들이 니트 상태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사업이 더 확대되고 전문화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니트 상태에서 벗어나는 정책은 개인이 가진 권리 차원에서 제공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하며, 권리적 차원의 정책지원은 유럽의 청년 보장(youth guarantee)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성인 이행기 자립 시기를 앞당겨주는 지원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대학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그리고 결혼자금을 마련하느라 길어지는 시간을 줄여주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대학 졸업 후 학자금 상환을 위해 긴 시간을 쓰는 청년들을 위해 보편적인 무료 대학 교육을 상상해볼 수 있고, 교육 시기의 장학금과 생활비와 같은 지원금(stipend), 주거비 지원도 함께 고려해볼 수 있다. 이는 고등교육으로 인해 소요되는 비용을 상환하기 위해 쓰는 시간을 앞당겨줄 것이다. 셋째, 성인 이행기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기존에 개인과 가족의 지원에 의해 지원되고 투자되었던 교육, 결혼, 출산에 대한 부담을 사회적 부담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불균등하게 가족의 투자와 지원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던 성인 이행기의 자립이 사회적 지원을 통해 보편적으로 균형 있게 이루어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현 청년세대의 자립을 지원하여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를 갖기 위해 고려해야 할 장기적 부담(자녀에 대한 교육/취업/결혼 지원)을 줄여주는데 기여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길어지는 성인 이행기는 단순히 개인적 변화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거대한 변화이다. 이는 특정 세대를 탓하고 출산을 강요하는 것으로 해소되기 어렵다. 힘든 성인 이행기를 경험한 청년들, 그리고 그 이후 단계를 위해 노력하지만 힘겨움을 느끼고 있는 청년들에게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으라는 캠페인은 의미 없게 들릴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사회정책적 함의는 “사회정책이 국가적 이익과 사회적 효용을 위하여 개인에게 결혼과 출산에 대한 선택을 강요하는 메시지를 던질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이 원하는 삶의 형태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인생에서 보다 나은 삶의 질을 누리도록 지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자신의 인생에서 원하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선택한 경로에 대해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정책이 발전되길 기대한다.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1) 이 글은 2023년 2월 22일 보건복지부 ‘제1차 미래와 인구전략 포럼’에서 발표된 ‘성인 이행기 청년의 결혼, 출산 인식과 함의’를 토대로 작성되었다. 해당 발표는 ‘유민상, 신동훈, 신영규, 박미희(2022). 청년 사회 첫 출발 실태 및 대응 방안 연구II: 성인 이행기 청년의 자립. 세종: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보고서를 요약한 것임을 밝힌다

참고문헌

김기헌, 유민상, 배정희, 신동훈, 정지운(2021). 니트 등 비경제활동 청년층의 노동시장 유입을 위한 정책방안 연구. 세종: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2020). 2020 청소년종합실태조사. 서울: 여성가족부

유민상, 신동훈, 신영규, 박미희(2022). 청년 사회 첫 출발 실태 및 정책방안 연구II: 성인 이행기 청년의 자립. 세종: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Arnett, J. J. (2000). Emerging adulthood: A theory of development from the late teens through the twenties. American psychologist, 55(5), 469

The post [동향1] 청년들의 길어진 성인 이행기와 탈표준화된 인생 경로 : 저출산고령사회 대응 정책에의 함의1) appeared first on 참여연대.

월, 2023/04/03- 14:26
3
0

저소득 한계채무자의 안정적인 사회 복귀를 위해 기준 중위소득 대폭 인상 필요하다 

 

신동화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

 

보건복지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이하, 중생보위)가 7월말 내년도 기준 중위소득을 결정했다. 기준 중위소득은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73개 복지사업의 기준선으로 쓰이므로 그 어느 수준에서 결정되느냐에 따라 삶의 한계선에 내몰린 우리 사회 저소득 이웃들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 매년 중생보위 결정에 따라 수많은 빈곤 시민들이 그나마 삶의 부담을 한시름 덜어낼 수 있을지, 아니면 또다시 지옥 같은 삶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며 근근히 버텨야 할지가 판가름 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복지사업의 수혜자들 외에도 기준 중위소득 결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법원의 개인회생절차를 통해 변제계획을 이행하고 있는 채무자들이다. 

 

공적채무조정 중 개인회생 채무자의 생계비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 중위소득 기준

 

법원의 개인회생절차는 비록 고정적인 수입은 있으나 과도한 채무를 상환하기에는 역부족인 한계채무자들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제도이다. 채무조정제도는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신용회복위원회와 협약을 체결한 금융회사의 채무를 조정하는 사적채무조정1)이고, 또 다른 하나는 법원을 중심으로 채무관계 청산을 위해 제반 사항들을 처리하는 공적채무조정이다. 공적채무조정에는 채무자의 자산 처분을 통해 채무관계를 청산하는 파산절차와 특정 기간2) 동안 채무자의 가용소득을 모두 채무 변제에 지출하도록 하고 그 후 채무를 청산하는 개인회생절차가 있다. 

 

그런데 이 개인회생절차에서 가용소득을 산정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바로 기준 중위소득이다. 채무자회생법 제579조에 따르면 개인회생 채무자가 갚아야 할 돈에 해당하는 “가용소득”은 채무자가 수령하는 모든 수입 중 ① 세금 납부를 위해 필요한 금액, ② 채무자가 사업자일 경우 사업의 계속을 위해 필요한 비용, ③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생계비를 제한 후 나머지 모든 금액으로 규정되어 있다.3) 이와 관련해 법원은 개인회생 채무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변제의무에서 제외되는 생계비 산정을 기준 중위소득의 60% 수준에서 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4)

 

기준 중위소득의 60%에 맞춰진 개인회생 채무자의 생계비 기준

낮은 생계비 인정 수준과 생활 압박은 개인회생절차의 성실한 이행을 어렵게 하는 요인

 

물론 개인회생 절차에서 법원의 재량에 따라 생계비를 적절히 조정해 책정할 수 있도록 여지를 두고는 있다. 실제로 서울회생법원은 별도의 ‘생계비 검토 위원회’ 의결을 통해 기준 중위소득 60%에 해당하는 생계비 외 추가 생계비를 보장하기도 했다.5) 그러나 이는 그 어느 법원보다도 채무자 회생에 우선 순위를 두고 도산제도를 운영하는 서울회생법원에 국한된 예외적인 경우이고, 통상 법률상 ‘원칙’ 준수를 강조하는 사법부에서 예외를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즉, 서울회생법원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법원의 공적채무조정은 여전히 채권자의 재산권 보장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개인회생절차를 이행하는 많은 채무자들이 중위 기준소득의 60%에 해당하는 생계비만으로 그 과정을 견뎌내야만 한다. 

 

지난 4년간 전국 평균 월세 가격은 2017년 6월 56만 원에서 2021년 6월 65만8천 원으로 17.5% 증가했다.6) 그러나 기준 중위소득은 지난 4년간 평균 2%가량 상승했을 뿐이다.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한계채무자 중 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생계비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전국 각 지방법원이 2017년~2019년 기간 동안 개인회생 및 변제 수행으로 채무청산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채무자 수는 약 19만6천 명인데 이중 14%에 해당하는 27,537명이 개인회생절차를 도중에 포기했고, 그 숫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최소화된 생계비만으로는 그 과정을 견디기 어려운 것이 주요한 이유일 것이다. 채무자의 효율적인 회생을 도모하는 개인회생제도가 과도하게 낮은 생계비 기준, 나아가 그 근거가 되는 기준 중위소득7)문제로 인해 그 실효성을 상실하고 있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결국 기준 중위소득 인상만으로도 개인회생 채무자들의 생계조건은 크게 개선될 수 있고, 그에 따라 채무청산에 성공하는 개인채무자들 역시 늘어날 것임을 의미한다.

 

기준 중위소득의 인상은 개인회생 채무자의 채무청산과 사회복귀 넘어 

그간 정부가 방기한 기본 책임을 이행하는 일

 

개인회생 절차를 밟는 채무자들은 매월 꾸준히 자기의 가용소득 모두를 변제로 차감하더라도 빚을 갚고 회생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안정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다면, 채무를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하는 사회적 비용은 줄어들 것이고 우리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구성원들은 늘어날 것이다. 빚에 허덕이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니다. 한국의 가계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200%에 달하는 현 상황,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가계부채 리스크가 가장 심각한 나라인 현실은 국가가 조세수입 또는 정부부채를 동원해서라도 구축했어야 할 사회안전망이 부실하게 갖춰져 있는 상황에서 그 공백을 일반 국민들 각자의 빚으로 메꾸어왔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8) 따라서 정부가 또 다시 기준 중위소득을 최소한으로만 인상하려 하면서 그 이유로 재원부족을 구실로 삼은 것은 정말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정부는 그간 자신들이 방기하고 있었던 국가의 책임을 이행하고,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시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기준 중위소득 인상에 적극 나섰어야 했다. 


1) 프리워크아웃, 워크아웃이 이에 해당한다.

2) 현행법상 3년 이내, 2018. 6. 13.이전에 개인회생 변제 절차에 돌입한 개인채무자는 5년 이내.

3)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579조(용어의 정의) 이 절차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가용소득”이라 함은 다음 가목의 금액에서 나목 내지 라목의 금액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말한다.

가. 채무자가 수령하는 근로소득ㆍ연금소득ㆍ부동산임대소득ㆍ사업소득ㆍ농업소득ㆍ임업소득, 그 밖에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모든 종류의 소득의 합계 금액

나. 소득세ㆍ주민세 개인분ㆍ개인지방소득세ㆍ건강보험료,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것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금액

다. 채무자 및 그 피부양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생계비로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6조의 규정에 따라 공표된 최저생계비, 채무자 및 그 피부양자의 연령, 피부양자의 수, 거주지역, 물가상황,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법원이 정하는 금액

라. 채무자가 영업에 종사하는 경우에 그 영업의 경영, 보존 및 계속을 위하여 필요한 비용

4) 개인회생사건 처리지침(재민 2004-4) 

제7조(채무자의 소득의 산정) 

② 법 제579조 제4호 제다목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6조의 규정에 따라 공표된 최저생계비, 채무자 및 그 피부양자의 연령, 피부양자의 수, 거주지역, 물가상황,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법원이 정하는 금액”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6조의 규정에 따라 공표된 개인회생절차개시신청 당시의 기준 중위소득에 100분의 60을 곱한 금액으로 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적절히 증감할 수 있다.

5) 서울회생법원, 2021. 2. 16., 생계비 검토위원회 회의 의결 사항 참고.

6) 한국부동산원, 2017. 6.~2021. 6. 평균월세가격(검색일: 2021. 7. 25.)

7)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조(목적)

8) 이와 관련해 독일의 사회학자 볼프강슈트랙은 유럽 사회에서 가계부채가 증가한 것은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화와 국가-자본-노동 역학관계의 변화로 국가의 조세 확보 능력이 떨어지면서 그 재원을 국가부채의 부담으로 전이시켰고, 이마저 여의치 않자 다시 그 부담을 가계에 전가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볼프강슈트랙, 『시간벌기』, 2015년 김희상 옮김. 참고). 한국의 경우에는 애초에 유럽과 같은 수준의 복지정책, 공적서비스 제공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므로, 각 개별 가구는 사회적 생존을 위해 자산 확보 전략에 매진하거나 부족한 공적서비스를 사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부채를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목, 2021/09/02- 00:21
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