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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주제1] 2016년 총선, 무엇을 심판하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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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주제1] 2016년 총선, 무엇을 심판하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익명 (미확인) | 목, 2016/03/10- 17:10

2016년 총선, 무엇을 심판하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남찬섭 l 동아대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

 

들어가며

올해 4월 13일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는 날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중심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대통령선거가 쟁점을 형성하고 유권자들의 관심을 끄는 힘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4‧13 총선은 내년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도 하고 또 더 본질적으로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민의를 대변할 대표자를 뽑는 선거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대선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이번 4‧13 총선이 현재 한국사회가 처한 전환기적 성격에 대한 대응을 주도할 정치세력을 선택하는 중대한 기회라는 사실이다. 물론 역대 총선 가운데 우리사회를 이끌어갈 정치세력을 선택하는 의미를 가지지 않은 총선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거는 다른 선거에 비해 시대적 의미를 달리 부여받는 선거가 될 수 있고, 필자는 이번 4‧13 총선이 그런 선거라고 생각한다.

 

총선과 복지국가논쟁

지금으로부터 벌써 4년이 더 지난 이야기이지만 2009년 말부터 2012년 초까지 대략 3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한국사회는 범사회적인 규모의 복지국가논쟁을 경험하였다. 이 논쟁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전개된 논쟁이었으며, 21세기의 새로운 상황 속에서 한국사회를 복지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는 대안사회요구의 분출이라는 의미를 가진 논쟁이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대안사회를 둘러싼 논쟁은 지난 2010년대 초의 복지국가논쟁이 처음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투쟁도 당시의 한국사회를 민주화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새롭게 재구조화하려는 요청을 둘러싸고 벌어진 대안사회논쟁이었다. 또한 더 멀게는 1960년 4‧19 혁명과 그 이후 나타난 여러 시도들 역시 ‘재건’, ‘경제발전’으로 표현된 가치를 중심으로 당시의 사회를 재구조화하려는 대안사회논쟁이었다. 그리고 이런 시기에 치러지는 선거는 일종의 정초선거(founding election)와 같은 성격을 갖거나 또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갖게 된다. 1960년대 초에는 대안사회논쟁이 군사쿠데타와 그에 이은 군사독재에 의해 왜곡되었고 그에 따라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1963년의 대선과 총선 역시 그런 왜곡 속에서 치러졌다. 반면 1987년 대선과 1988년 총선은 민주화라는 대안사회논쟁의 상징과 같은 의미를 부여받을 정도로 중요한 선거였다.

 

물론 복지국가논쟁은 2010년대 초에 있었고 지금은 소강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이번 4‧13 총선이 그런 복지국가논쟁을 통해 표출된 대안사회요구와 얼마나 관계가 있을 것인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4‧13 총선이 복지국가논쟁을 통해 표출된 대안사회요구와 두 가지 점에서 매우 중요한 관련성을 갖는다. 첫째는, 오늘날 한국사회가 저출산‧고령화와 세계화‧탈산업화라는 새로운 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극심한 양극화로 절망상태에 빠지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노인자살률은 10여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OECD 국가 중 1위를 하고 있다. 노인빈곤율 역시 수년 간 지속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에 있다. 청소년자살률도 매우 높으며 그 증가속도는 더욱 높은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근로시간은 OECD 최장임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은 OECD 최저수준이며,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노동시장차별문제 등으로 노동력재생산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결과는 매우 낮은 출산율이라는 형태로 표현되고 있는데,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5년이 가깝도록 1.3 미만인 초저출산을 기록하여 OECD 최저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몇 가지 지표로도 알 수 있는 절망상황은 최근 유행하는 ‘헬조선’이나 ‘N포세대’와 같은 조어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이런 절망상황은 아직도 복지국가로 대표되는 대안사회요구가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는, 2012년 대선 당시 복지국가를 중심으로 한 대안사회요구, 한 마디로 말해서 복지국가민심을 포착하여 이를 대선공약으로 내걸어 선거에서 승리한 현 집권세력이 집권 후에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복지공약만 선택적으로 채택하고 나머지는 헌신짝 버리듯 파기하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현 집권세력의 행태를 보면 대체로 보편복지를 지향하는 공약은 파기하고 선별복지를 지향하는 공약은 채택하여 실행에 옳기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또 여기서 더 나아가 보편복지라는 요구 자체가 다시는 분출하지 못하게끔 제도적 억압장치를 구축하는 행태까지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선택적 채택 및 파기, 그리고 보편복지요구의 제도적 봉쇄 시도는 명백히 복지국가민심의 배신이며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적 사명과도 배치되는 행태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점을 종합하면, 복지국가로 대표되는 대안사회요구, 즉 복지국가민심이 여전히 유효한데도 불구하고 이미 집권 초기부터 그 민심을 배신해온 데 대한 냉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며, 4‧13 총선은 그런 평가의 기회라는 것이다. 또한 이번 총선은 그런 평가를 통해 더 이상의 역주행을 막고 내년에 있을 대선에서 보다 본격적인 평가를 할 토대를 마련하는 의미도 갖는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 민주화투쟁의 연장선에서 보자면 2010년대 복지국가논쟁은 198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 정치적 민주화를 계승하여 이제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열망의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라는 두 민주정부가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성취라는 역사적 과제를 부여받고 나름대로 노력하였으나 세계화‧탈산업화 및 저출산‧고령화라는 새로운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미완의 과제로 남고 말았다. 이 미완의 과제를 이행해야 한다는 복지국가민심을 배신한 정치세력에 대한 심판이 없이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이룩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며

그러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무엇보다 복지국가민심을 실현할 의지와 대안을 가진 정치세력을 선택해야 한다. 이제 신자유주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신자유주의적 처방은 더 이상 시민들의 삶을 보장하지 못한다. 이는 작년 영국에서 노동당 당수로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이 당선되고 현재 미국에서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사회민주주의자인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가 거물 정치인 힐러리 클린턴과 대등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데서도 나타난다. 작년 말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남부유럽 4개국에서 좌파연정이 승리하였는데 이것이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약한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코빈과 샌더스는 그렇지 않다. 코빈의 노동당 당수 당선으로 블레어의 중도노선은 지지받지 못하게 되었으며, 샌더스 역시 힐러리보다 훨씬 좌파적인 대안을 내놓고 있다. 우리도 코빈이나 샌더스가 제시하는 것과 같은 대안을 필요로 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당연히 나라마다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이 되어야 하겠지만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이 시대의 역사적 과제인 것이다.

 

물론, 한국의 선거는 정책선거라기보다는 상호비방전의 성격을 더 많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코빈이나 샌더스 같이 자신의 신념을 거침없이 말하는 정치인이 그처럼 꿋꿋하게 성장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며 설사 어느 정도 성장했다 하더라도 온갖 정치공세에 시달려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펴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코빈이나 샌더스 같은 인물을 키워야 하고 또 그런 인물을 중심으로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이룰 세력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선거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상호비방 속에서도 후보자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와 각 후보자 및 그 후보자가 속한 정당의 정책에 대한 정보를 찾아내고 공유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현실정치적으로 볼 때, 야권의 분열로 일각에서는 현 집권세력에게 개헌선마저 내줄 정도로 총선에서 패배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정책선거를 향한 노력들을 모아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추진할 정치세력을 선택하는 길이야말로 현 집권세력을 심판하여 역사적 과제를 완료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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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를 잘해야 합니다. 흙수저에게 꿈과 희망을!”경실련 20대 총선, '정당 공약 평가 결과' ...
월, 2016/04/04-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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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회고성과 정권 심판

 

남기철 ㅣ 동덕여대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들어가며

몇 십 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만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 복지에서도 여러 외양은 커졌는데 정부가 사회복지와 관련하여 내어놓는 화두는 몇 십 년 전의 인식을 복사해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위안부 문제 등 정부가 형편없는 능력으로 국민의 공분을 사 궁지에 몰릴 때마다 안보이슈가 불거지는 모습에서는 쓴 웃음을 자아낼 만큼 예전  ‘새마을 시대’와 닮았다.

 

그간 정부의 정책이 잘못되었음이 지적될 때마다 친 정부의 인사들은 정부의 정책이 실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정부’가 온전히 실패하기를 바랄 수만은 없다. 정부의 실패는 기본적으로 너무나 많은 국민의 고통을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지금이 그런 말에 딱 어울리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실패하고 있는 정책, 그리고 정부에 대해 묵과하는 것은 더 좋지 않다. 선거의 국면에서는 적극적인 문제의 제기와 심판이 특히 중요할 것이다.

 

사실 선거는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방법 중 하나이지 국민 참여의 모든 것은 아니다. 선거라는 시스템이 국민의 참여와 의사를 대변하는 방법으로서 완벽한 것이라면 시민운동, 시민의 직접 참여, 그리고 지방자치라는 것도 의미가 약해진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민주주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정보와 소통 자체가 극히 불완전하다보니 선거와 그 결과가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대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의료라는 재화가 완전경쟁의 시장상황에서 적절하게 생산소비될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양상을 선거 상황에서 재현하기도 한다. 물론 당선 가능성 등 현실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대안의 부재 때문에 ‘덜 나쁜’ 투표에 매달리게 되기도 한다. 반(反) 여당의 표심이 어떤 경우에는 새로운 정당에 투표하려는 움직임으로 불거지기도 하고, 비교적 규모가 큰 야당으로 몰아주자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혹은 서울지역에서의 무상급식 투표와 같이 투표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행위가 시민의 의사를 반영하기도 한다. 가장 나쁘게는 무관심이나 냉소에 의한 선거불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번 총선은 어떤 표심이 어떤 방식으로 불거질 것일까? 또 그 결과는 무엇을 나타내는 것이 될까? 우리나라에서 선거는 선거직전까지도 어떤 변수가 부각되는가에 따라 결과가 요동치는 역동성이 부각되기에 사실 아직도 그 결과를 짐작하기 힘들다.

 

선거는 지금부터 일정 기간 동안 정치에서 활동할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고 현재와 미래 상황에 대한 공약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판단의 근거에서 우리는 최근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상황에 대한 회고성을 지닐 수밖에 없고 또 그러해야 한다. 선거에 출마하는 개인의 됨됨이나 역량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정책과 정권 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너무나 당연히 정당 등 집단의 성격에 대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

 

현 정부 출범 이래의 상황을 반추해보자.

세월호와 메르스, 보육대란, 그리고 냉전적 위기를 거치면서 우리사회는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양극화 심화와 가계부채의 증가 등 경제의 피폐와 위기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국민은 이 과정에서 어떤 사고나 문제가 발생한 것 자체보다도 그에 대응하는 정부의 무력함 혹은 잘못된 대응에 분노하게 된다. 있을 수 있는(?) 사고 자체보다도 그 사고를 거대한 재앙으로 만들어버린 정부의 잘못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정부는 출범한지 3년만에 너무나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정부가 지금까지 추진하고 있는 여러 정책들이나 발언들로 보아 현 정부가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미래상을 짐작할 수 있다.

 

불행히도 복지와는 거리가 멀다. 21세기 한국에서 사는 국민이 적절한 삶의 수준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보장받도록 주장하는 것은 불온한 것으로 취급된다. 현 정부가 생각하는 사회상은 아마도 기득권이나 거대한 자원을 소유한 집단이 보다 효율적으로 자본을 형성할 수 있도록 모든 영역에서 지원하고 축적하려는 것에 초점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지난 수십년 간 그나마 형성되어 온 공공성에 의한 복지나 사회권은 비효율과 규제로 보아 해체하고 있다. 경제활성화라는 미명하에 다수 국민들을 광범위한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로 전락시켜 기득권 집단의 효율적인 수단이 되게끔 하고 있다. 양극화 속에서 국민이 느끼는 박탈감은 그래도 북한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반문으로 입을 막아버린다. 현 정권의 집권에 주효한 수단이 되기도 하였던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의 공약은 권리성을 해체하고 자선의 수혜자로 만들어 프로그램을 개악하는 것으로 둔갑하였다. 얼마 전부터 회자되는 헬조선, 흙수저 신드롬은 현 국민의 팍팍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보다는 미래세대가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지지 못하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사회복지와 관련하여 현 정권에 대해 성토해야 할 대표적인 부분들이 몇 가지 있다.

가장 먼저 연금과 건강보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어렵게 마련된 사회보장정책의 연대성에 대한 침해, 권리에 대한 해체이다. 그나마 우리나라를 복지국가의 초입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토대인 사회보장제도들이 점점 후퇴하고 있다. 비교적 적극적인 기초연금안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정부이지만, 집권 후 박근혜 정부는 연금에 대해 미래의 재정 적자에 대해서만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연금이 의도하는 수준의 생활보장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사회보험이나 공공부조는 국민의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의 인정과 이를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프로그램이지, 제도 자체가 적자나 추가적 투자 없이 무한정 진행되는 영구동력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그야말로 최저생계도 보장하지 못하는 연금이라면 재정부담이 없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기초연금은 지방정부에게 본질적 부담을 떠넘겨버렸다. 건강보험도 큰 금액의 흑자가 누적되고 있지만 보장성 강화는 전혀 기약이 없다. 의료비에서 건강보험이 보장하고 있는 비율은 전 국민 건강보험 시대의 의미를 형해화시켰다. 현 정부들어 ‘세모녀법’이라며 시도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전면적 개편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개별급여제로의 전환을 가져왔지만 시민사회가 주목하는 것은 이런 형태적 변화가 아니다. 국민들의 최저생계비 이상의 수준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국민의 권리, 국가의 책임성에 대한 규정이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부분이다. 현 정권의 입장에서는 국민의 이러한 권리는 매우 불손하게 여겨진 것이리라.

 

지방자치의 핵심내용이라 할 수 있는 지방정부의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한 전면적 부정에 대한 사안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도 지방자치제가 어느 정도의 연륜이 쌓이면서 미력하나마 생활정치와 관련된 이슈들이 조금씩 정착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상당부분은 지역의 사회복지와 관련된 내용들이 지방자치의 특징적 모습으로 지역마다 만들어져 가고 있다. 지역별 복지기준선, 공공복지전달체계의 자체적 보강,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장애인에 대한 추가적 보장, 노인수당과 같이 지역별로 독특한 보충적 성격의 복지급여 설정이 만들어져 왔다. 혹은 청년수당과 같이 과거에는 복지급여 대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에 대한 프로그램 신설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중앙정부는 2년 전부터 중앙정부(청와대)가 인정하지 못하는 모든 복지 프로그램에 대해 이런저런 이유와 협박성 조치를 통해 지방정부를 옥죄고 있다. 소위 사회보장 유사중복사업 정비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보장제도에 대한 협의는, 예를 들어 중앙정부가 갑작스러운 제도 신설 등으로 지방정부의 전달체계나 상응하는 조치가 따라오지 못할 경우 적절한 방법을 찾기 위해 필요한 협의를 수행하는 것이 본질이다. 현 정부는 이를 중앙정부의 뜻에 반하는 복지 프로그램 설치를 방지할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와 궤를 같이 하며 최근의 보육대란과 같이 지방정부에 재정적 책임을 과도하게 떠넘기는 것 역시 국민의 복지수준을 결정적으로 후퇴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박근혜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와 선친 때부터 꿈꾸어 왔다는 ‘복지국가’를 동시에 나열할 때부터 예견된 문제들일 수 있다.

 

복지국가 운동의 관점에서 현 정권은 복지국가라는 미래상을 혼탁하게 만든 것에 권력을 사용하였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심각한 부분이다. 사회복지의 확대 혹은 보편적 복지국가에 대한 호도와 사회적 갈등을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이들은 사회복지 대신 사회보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이 자체는 본질이 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사안들을 복잡하게 만들면서 사실상 복지에 대한 축소와 함께 구시대적·잔여적 정책의 관점으로 회귀시키고 있다. 21세기 중반 우리나라의 재정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이미(!) 복지제도가 충분하다는 궤변을 보수언론을 통해 광범위하게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근거삼아 미래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칠 권리적 사회복지의 해체를 지금 시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장도 총선의 결과와 관련하여 의료 등 공공휴먼서비스 분야에 대한 영리화, 노동개악의 문제 등 현안들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 사회복지의 미래에 대해서는 소통이나 공론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소통의 부재는 현 정권 모든 영역에서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정권에 불리한 논의의 국면은 안보라는 문제로 문이 닫혀버린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평화’는 사회복지 증진을 위한 특징적 토대가 된다. 복지는 평화, 민주주의라는 요소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현 정권은 평화나 민주주의라는 복지의 기초전제에 대해 줄타기하듯 위험한 상황을 조장하고 즐기면서 국민의 권리나 특히 복지, 삶의 질에 대한 이슈를 희석시키고 있다.

 

우리는 세월호. 메르스, 평화정착의 사안들에서 현 정권의 대응력에 대해 전혀 신뢰할 수 없었다. 저출산고령화, 사회양극화라는 당면한 과제에 대응할 사회복지의 중요한 역할과 관련하여 박근혜 정부의 태도와 능력 역시 전혀 신뢰할 수 없다. 지난 3년의 경험에 비추어 미래세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대한민국의 사회복지를 현 정권이 후퇴시키는 것을 용납해서는 곤란하다. 현 정부는 복지의 논의를 포퓰리즘이나 도덕적 해이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빈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정부 개입 이전과 이후에 상대빈곤율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서구국가들은 정부개입 이전에는 우리나라보다 더 높은 빈곤율을 나타내지만 국가의 정책적 개입 후에는 모두 우리나라보다 빈곤율이 크게 낮아진다. 정부의 빈곤완화를 위한 역할정도가 극히 미미하다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OECD등 보수적인 국제기구마저도 우리나라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우리나라의 복지병을 지나치게 걱정 혹은 홍보하고 있다.

 

얼마 전 사회복지사 1급 국가고시에서는 비정상적으로 새마을운동을 예찬하는 뜬금없는 문제가 출제되어 구설수에 올랐다. ‘충성경쟁(?)’이 상식을 뛰어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분야의 상식을 지키는 것보다 충성을 과시하는 것이 유리해진 정권의 분위기 탓이리라. 선거에서 이번 정권을 심판하는 것은 합리성, 상식을 되찾는 것에서도 중요하다.

 

마치며

사실 이번 총선을 둘러싼 현재까지의 분위기는 암울하다. 북한의 핵개발이나 사드의 배치와 관련하여 소위 안보정국이 조성되고 있다. 대표적인 야당은 분열과 그 과정에서의 잡음으로 인해 과연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그러나 정치공학적인 측면들은 잠시 제쳐두고라도 현 정권이 사회복지 영역에서 보이는 움직임들은 분명한 심판이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다. 지난 3년에 대해 ‘회고적’ 성격의 선거와 투표를 필요로 한다. 지난 3년 간 사회복지 분야에서 벌어진 일들은 현 정권과 같은 세력이 어떤 공약이나 미래 전망을 내어놓더라도 저출산, 양극화. 헬조선의 문제로부터 우리국민을 보호할 수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물론 우리나라의 역대 정부가 대부분 복지정책이라는 측면에서 선도성이나 혁신성을 지향해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히 현 정권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형성과 양립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이들에 대한 심판이 없다면 향후 보편적 복지국가의 전망은 없다. 우리 국민 다수에게 복지권이 확장되어가는 미래는 없다. 21세기에 어울리는 대한민국의 전망은 없다. 산업화 시대 이데올로기로의 복귀이다. 현 정권에게 대기업, 토지재벌, 수구세력의 독점적 이익은 국민 다수의 삶의 질, 인권, 평화보다 중요하다. 심판이 필요하다.

목, 2016/03/1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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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꼼짝마” 국가기관선거개입감시캠페인단,

국정원 항의방문해 선거개입 금지요구

20대 총선 불법개입 금지 약속 요구했으나 국정원 묵묵부답
국정원 불신 극심한 만큼,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방지대책 공개해야 


일시장소 : 2016. 3. 29. (화) 오전 11시30분, 국가정보원 정문 입구


「국가기관 선거개입 감시 캠페인단」(2016총선시민네트워크,전국공무원노조,전국언론노조,민주언론시민연합,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 참여, 이하 캠페인단)은 오늘(3/28)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불법대선개입’과 같은 문제가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시민의 요구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국정원의 불성실한 행태를 규탄하고, 이번 총선에서 국정원이 어떤 관여나 개입도 하지 말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캠페인단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선거의 자유, 너무나 당연한 민주주의의 권리를 뺏기지 않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18대 대선 불법개입 사건 이후 국정원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극도에 달했다고 강조했다. 또 “대선개입 사건의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은 여전히 심리전단을 운영”하고 있는 점, “국내정보를 수집하는 요직인 2차장에 청와대 민정수석의 측근이 임명”된 점 등을 들며,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국정원이 또 다시 자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을 펼치거나, 정권의 반대정치세력을 사찰, 감시”하려는 것은 아닌지 국민들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캠페인단은 국정원이 이런 불신과 의심을 받고 있는 만큼, 이번 총선에서 불법선거개입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국민들 앞에 공개적으로 약속하고 그 구체적 조치들을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캠페인단의 이번 항의방문은 캠페인단이 두 차례에 걸쳐 국정원에 공문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이 무응답으로 일관한 것에 따른 것이다. 캠페인단은 지난 3월 4일 제18대 대통령 선거 불법개입사건에 책임이 있는 국정원 등 10개 국가기관에 이번 총선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말 것과 이를 공개적으로 약속해줄 것을 요구하는 요구서를 발송했으나, 캠페인단은 3월 29일 현재까지 국정원으로부터 아무런 회신을 받지 못했다. 또 3월 11일에는 불법선거개입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세우고 있는지 직접 듣기 위해 국정원장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역시 답변을 받지 못했다.

 

 

기자회견 개요

- (행사)제목 : 국가정보원의 20대 총선 불법개입 금지 요구 기자회견 

- 일시와 장소 : 2016년 3월 29일 오전 11시30분 국가정보원 정문 입구 앞(아래 지도참조)
- 주최 : 국가기관 선거개입 감시 캠페인단(2016총선시민네트워크,전국공무원노조,전국언론노조,민주언론시민연합,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주관 : 참여연대

- 참석자 발언

- 검찰, 법무부, 국방부, 서울선관위에서 공개한 ‘4.13총선 불법개입 차단 조치’ 소개

- 기자회견문 낭독

- 퍼포먼스

 

※ 국정원 출입이 제한된 관계로, 기자회견은 국정원 정문 출입로 근처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기자회견문

국가정보원은 이번 총선에서 선거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하라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제도를 지배하는 다섯 가지 원칙은 보통, 평등, 직접, 비밀, 그리고 자유선거이다. ‘자유선거의 원칙’은 “선거인의 외부의 간섭이나 강제를 받지 않고 자신의 선거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원칙”을 말한다. 이것은 헌법에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당연히 요청되는 것이라고,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우리가 총선을 목전에 두고 국가정보원을 찾아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선거의 자유, 너무나 당연한 민주주의의 권리를 뺏기지 않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가정보원의 주도로 조직된 ‘댓글부대’가 오로지 정권옹호의 논리를 앞세워 자국민의 생각을 통제하고 여론을 조작한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언론을 매수해 편향된 주장을 보도하도록 하고, 일부 보수시민단체를 부추겨 야당 후보자를 원색적으로 비방하게 하는 등 온갖 불법행위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벌였던 것도 기억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근간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국정원은 국민 앞에 어떤 사과나 반성도 없었다. 정권이 아닌 국민을 위한 국정원으로 거듭나라는 개혁의 요구도 ‘셀프개혁’ 운운하며 거부했다. 그리곤 ‘국정원을 믿으라’는 뻔뻔한 소리만 반복하고 있다.


더 이상 국정원을 믿을 수 없다.

시늉에 불과한 ‘셀프개혁’으로 국민의 눈을 속이고, 이제는 테러를 빙자한 ‘국민감시법’까지 제정해 국민들을 합법적으로 감시하겠다는 국정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반성 없는 과거의 잘못은 반복될 뿐이다.

대선개입 사건의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은 여전히 심리전단을 운영하고 있고, 올해 초에는 국내정보를 수집하는 요직인 2차장에 청와대 민정수석의 측근이 임명되었다. 국정원이 또 다시 자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을 펼치거나, 정권의 반대정치세력을 사찰, 감시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은 아닌지 국민들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총선을 15일여 앞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국정원은 정치와 선거에 개입해 여론을 조작하는 정치개입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국민들 앞에 공개적으로 약속하고 그 구체적 조치들을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부당한 선거개입 행위는 선거의 공정성을 무너뜨리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범죄행위이자 헌법 파괴행위이다. 이런 범죄행위는 형사적 처벌을 넘어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국정원이 수호한다는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체제’는 오로지 국민들의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을 국정원과 국정원 직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16년 3월 29일
국가기관 선거개입 감시 캠페인단

화, 2016/03/2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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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는 시민들이 모여 ‘노란테이블’을 펼치고 누가 좋은 국회의원인지 토론해볼 것을 제안한다. 이제 ‘누가 나쁜 국회의원인가’가 아니라, ‘누가 좋은 국회의원인가’에 대한 답을 시민이 직접 찾아야 한다. 노란테이블은 시민이 모인 자리라면 언제 어디서든 열릴 수 있다. <노란테이블2 : 누가 좋은 국회의원인가?> 토론 가이드를 따라 우리가 바라는 좋은 국회의원의 모습을 직접 그려보자. 늘 그렇듯 토론의 결과는 열려 있다.

* 더 많은 분들이 쉽게 노란테이블을 펼쳐보실 수 있도록 노란테이블 토론툴킷을 PDF 파일을 공유합니다.
다운로드 페이지 바로가기

화, 2016/03/2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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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이하 민변 노동위), 참여연...
화, 2016/03/2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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