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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주제3] 선거를 심판의 장이 아닌 대안 선택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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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주제3] 선거를 심판의 장이 아닌 대안 선택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익명 (미확인) | 목, 2016/03/10- 17:46

선거를 심판의 장이 아닌 대안 선택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김보영 l 영남대학교 새마을국제개발학과 교수

 

의회민주주의의 산실에서 찾은 선거의 의미

영국에서 보낸 5년여 기간동안의 유학생활은 나의 정치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바꾸어놓았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1990년대 말 민주적인 정권교체와 그 뒤에 이어진 사회복지의 확대를 지켜보면서 그 이후의 사회복지의 대안을 찾아보겠다며 나선 유학길이었다. 세계 2차 대전 직후,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유명한 베버리지 보고서를 바탕으로 복지국가를 건설하고, 1980년대 이를 비판하며 등장한 신자유주의 물결에서 역시 영국의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는 대처 정부를 빼놓을 수 없으며, 1990년대 말에는 다시 대안으로 등장한 ‘제 3의 물결’ 중심에는 역시 영국의 신노동당 정부가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현대사의 시기마다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도하고 그 것이 어떻게 정치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것이 항상 큰 질문이었다.

 

그런 와중 영국에서 관찰하게 된 선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2005년 선거는 혜성같이 등장한 토니 블레어와 신노동당이 압승을 거둔 1997년 이후 세 번째 선거였다. 노동당은 2003년 이라크 침공의 후과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지만 선거강령(election manifesto)을 통해서는 ‘영국, 퇴보가 아닌 진보(Britain Forward, Not Back)’를 당당히 외쳤다. 그 선거강령에는 8년 전 어떻게 엉망이었던 영국 경제와 사회를 자신들의 집권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했으며, 4년 전 우리가 어떤 약속을 하고 지켜왔는가를 언급한 후, 어떻게 영국은 여전히 더 나아질 수 있는지를 빼곡히 적어 놓았다. 이것은 ‘당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고 계십니까?(Are you thinking what we’re thinking?)’라는 다소 맥빠진 구호에 조세 감축, 학교 질서, 청결한 병원, 경찰 증원, 이민 감축 등 단편적 공약을 나열한 보수당의 선거강령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다양한 토론과 분석을 통해 이러한 정책적 차이가 신랄하게 드러났다. 총선 보도의 중심에는 언제나 각 분야별 정당의 정책이 있었다. 선거강령을 중심으로 각 정당이 어떠한 정책과 방향을 제시하였으며 그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분석과 토론이 선거보도의 중심이었다. 선거운동은 지역 정당 활동가들이 선거강령을 각 집집마다 방문하여 설명하며 설득하는 것이었다. 즉, 영국의 총선은 개개인의 후보자에 대한 투표가 아니라 그 정당이 내세운 선거강령에 대한 투표라는 의미가 그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이라크 침공에 대한 저항투표 여론도 높았지만 여전히 보수당은 노동당에 대안을 제대로 내세우지 못했고, 줄곧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노동당에 다시 승리를 내주고 말았다.

 

우리나라 선거에서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말 중 하나는 ‘심판’이다. 제대로 못한 정부의 여당이나 제대로 역할을 못한 야당에게 표를 주지 말자는 소리다. 사실 이 심판론은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87년 대통령 직선제가 이루어진 이후 이전의 독재여당이 선거에 참여하니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야당이 내세우는 것은 ‘심판’의 논리였고, 이것은 독재의 잔재로부터 벗어나고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 안에서 정당성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적인 정권교체가 일어났고, 교차집권이 이루어진 지금 상황에서 여전한 심판론은 대안이 없다는 안일함의 표현일 뿐이다.

 

지금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의 의미를 집어보고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의제가 집중되는 공간은 총선이 아닌 대선이었다. 총선은 집권 정부의 중간 평가 내지는 예비 대선의 성격으로 다소 부수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강원택, 2012). 물론 이것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우리나라 정치의 취약성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일단 대선을 중심으로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선거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며 어떻게 선거에서 표출된 사회적 요구와 정치의 대응이 어떻게 엇갈려 왔는지를 살펴보고, 우리가 이를 극복할 기반을 가지고 있는지를 집어본 후, 선거의 의미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결론지어보도록 하겠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선거: 분출되는 요구, 엇갈린 정치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정치를 지배했던 의제를 꼽으라면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경제발전은 해방과 한국전쟁 등 격변의 시기를 겪으면서 세계 최빈국으로 꼽혔던 현실에서 분출되었던 요구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며, 이는 6~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전면적으로 내세운 의제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정권의 시기를 개발독재라고 칭하기도 한다. 민주화는 그 독재아래에서 자연스럽게 태생된 의제였으며, 아이러니하게도 개발독재의 산업화가 성과를 거둘수록 당장의 경제적 문제로부터 벗어나게 된 국민들에게서 그 요구는 더욱 폭발적으로 분출되었다.

 

경제발전과 민주화는 그 역사적 맥락에서 서로 상극인 듯하지만 사실 시대적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요구의 측면에서는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었다. 6~70년대 국민들의 삶의 문제의 핵심에는 가난에 있었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경제발전이었다. 그리고 경제 성장을 경험하기 시작하면서는 삶의 문제의 원인을 부정과 부패에 물든 권위주의에서 찾기 시작하였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는 민주화로 표출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997년은 이러한 흐름에서 매우 중대한 기점이 되었다. 우선 민주화에 있어 1997년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는 이루어지면서 일단 형식적인 완성을 이루어냈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의 가장 가시적 성과를 대통령 직선제 쟁취라고 한다면 그 직선제에 의해 실제 여야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것은 선거에 의한 권력의 교체를 이루어낸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이루어졌다. 이를 계기로 고속성장 구조가 붕괴되면서 그간 그 속에서 완화되거나 감추어져 왔던 사회적 문제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고속성장 속에 감추어져왔던 사회문제들이 민주화와 동시에 터져 나오기 시작했으니 가희 민주화의 비극이라 할 만하였다.

 

현재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거론되는 빈곤과 양극화, 자살, 저출산 문제에 대한 추이를 보면 [그림 1]과 같다. 이와 관련된 지표들은 모두 문민정부가 들어선 90년대부터 완만하게 악화되거나 정체되어 있다가 97년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급격히 악화되었다. 그리고는 2000년을 기점으로 잠시 완화되었다가 2000년대 초반에 다시 급격한 악화가 시작되어 지속적으로 상승 또는 감소하는 추이를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다. 즉 경제위기 때 닥쳤던 사회적 위기는 김대중 정부 시기에 잠시 완화되는 듯 하였으나 노무현 정부 시기에 다시 본격적인 악화를 겪었던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민주화 흐름에 있어서는 정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역주의 타파와 탈권위주의를 전면에 내걸었던 노무현 정부는 민주화의 완결판이리고 할 수 있었다. 그에 맞추어 분권화도 강력하게 추진하였지만 그 당시 상황은 국가의 주도적인 위기개입이 절실했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엇박자는 사회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가 깊숙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국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는 사람이 권력을 잡은 듯 보였지만 삶의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본격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을 맞이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민주화의 의제는 힘을 잃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 다시 떠오른 것은 경제성장의 의제였다. 민주화가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니 과거와 같은 고속성장이 다가온다면 다시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이에 화답을 하듯 2007년 대선에서 현대건설 입사 12년 만에 최고경영자에 오른 ‘샐러리맨의 신화’, 즉 경제성장 시대의 상징인 이명박 후보가 연 7% 성장에 4만달러 국민소득으로 세계 7위 경제대국을 만들겠다며 747공약을 전면에 내세웠고, 정동영 후보는 8%로 받아치는 등 선거는 온통 ‘성장’판이었다. 결국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지만 집권기간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3.1%로 노무현 정부의 연평균 경제성장률 4.3%에도 못 미치는 것이었다(주간경향, 2012). 경제성장의 신화가 집권을 하여도 고속성장은 다시 찾아오지 않으니 그렇게 경제성장의 의제도 퇴색되고 만 것이다.

 

이렇게 퇴색된 전통적인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의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경제민주화와 복지 의제였다. 결국 사람들이 앞의 두 의제가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경험을 하면서 새로운 의제에 주목하기 시작한 결과이다. 2008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무상급식과 같은 복지공약이 출현하기 시작하면서 그 영향력은 급격히 확산되었다. 저출산 대응으로 등장하게 된 무상보육, 노인빈곤 문제로 인해 도입하게 된 기초(노령)연금 등은 그 대상도 소외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하위 70% 등 포괄적으로 설정되어 상당수의 사람들이 정책으로 인해 실제 삶의 문제가 완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중심의제는 단연 경제민주화와 복지였다. 이를 전면에 내세우는데 뒤지지 않았던 박근혜 후보는 전통적으로 진보적 의제라고 여겨졌던 것들이지만 여당은 같은 해 총선에서 전면 무상보육을 전격적으로 도입했다. 박근혜 후보는 이미 1년 전 「사회보장기본법」 전면개정안을 직접 발의하였으며, 경제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인 김종인 박사를 영입하는 등 의제를 선점하는데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결국 집권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현재 목도하다시피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집권 이후에는 자취를 감추었으며 국민들의 삶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 중심의 경제대책들만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우리사회는 2000년대부터 이전과는 다른 성격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된 대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삶의 문제의 해결을 원하며 그 욕망이 정치에 표출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대응은 계속 엇갈리고 있다. 악화되기 시작한 문제는 계속되고 있고, 가계부채 증가나 청년실업 등 새로운 위기가 더해질 뿐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여전히 40%대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과거의 향수를 공유하고 있는 고연령층이나 특정 지역기반 등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율이 버티고 있는 탓이기도 하지만 별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쉽게 현재의 희망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구호를 다시 외치는 것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복지의 경우에는 이미 여러 번 예산 논란을 겪으면서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공유되었다. 예를 들어, 최근 공무원 연금개혁을 둘러싸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상향조정하자는 것이 매우 첨예한 정치적 쟁점이 되어 여야뿐 아니라 청와대까지 대립하였다. 그러나 애초 소득대체율을 40%까지 낮추었던 것은 가장 진보적이었다는 노무현 정부였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진보적이었다는 유시민 복지부 장관이 대국민 호소문까지 써가며 추진했던 것이다. 아무리 복지를 표방한 정치세력이 집권한다고 한들 충분히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면 금방 재정논리에 휩싸여 누구보다도 후퇴할 수 있는 것이다.

 

대안이 있는 선거를 위하여

지금까지 민주화 이후 우리사회의 위기는 심화되고 있지만 정치의 대응은 이에 계속 엇갈려왔음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더 이상 전통적인 경제성장이나 민주화의 의제가 적합하지 않다.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나 복지의 의제가 등장했던 것처럼 이제 현재의 심화되기만 하는 사회적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절실한 시기인 것이다. 이는 점차 단순한 구호의 싸움이 아니라 대안의 설득력과 구체성의 싸움이 되어가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빈곤과 양극화, 실업과 고용불안 등의 사회적 위기를 대응하는 것과 재정 및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설득력있는 고리로 연결되지 못하면 공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대응은 여전히 구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은 ‘더불어 성장론’을 들고 나오고, 안철수의 국민의당도 ‘공정성장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여전히 정치하지 못하다. 더불어 성장론도 비정규직 차별 철폐, 최저임금 인상, 혁신중소기업 육성, 국토균형발전, 사회적 경제활성화 등 그동안 무수하게 등장했던 구호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공정성장론 역시 현재 대기업에 편중된 경쟁구조를 보다 공정하게 하면 혁신성장이 될 수 있다는 구호 수준이다. 각각의 ‘론’을 내세우면서 법안과 대책을 내놓기도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그에 필요한 일부일 순 있어도 이들이 이루어지면 정말 더불어 성장이나 공정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인지 충분한 대안이 담겨있지는 않다.

 

이렇게 정치권의 대안이 여전히 구호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도 않고, 그럴 수 있는 기반도 없기 때문이다. 오랜 권위주의와 민주화의 역사 속에서 정치권의 몫이란 저항의 구호를 앞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구체적인 정책은 언제나 정부 관료들의 몫이었다. 지금까지도 구체적 정책 생산의 기반은 이러한 정부 관료들의 부처 산하에 있는 국책연구기관들에서 나온다. 이러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정부의 요구에 의한 연구가 주를 이루다보니 당연히 사회적 대안을 생산하는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러한 정치적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한 것은 경제계 쪽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 현대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소 등 대기업의 싱크탱크들은 97년 경제위기 이후에 자사의 이해를 반영하는 정책생산에 관심을 집중시켜 왔으며(황윤원, 2009), 노무현 정부 시기에 한미 FTA를 추진한 배경에 삼성경제연구소가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기실 기업 연구기관의 대표격인 삼성경제연구소(SERI)는 국책연구기관의 대표격인 한국개발원(KDI)을 예산, 인력 등의 규모에서 훨씬 능가하고 있다. 하지만 당연히 이러한 연구기관 역시 자사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일 뿐 사회적 위기에 대한 대안을 생산하는 것과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당 연구소는 어떠한가. 주요 정당들은 국고보조금을 포함하여 수십억원의 예산을 쓰고 있지만 자체적인 전문인력부터 부족한 상황이며, 정당에 소속되다보니 단편적인 정치적 이슈투쟁에 전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황윤원, 2008). 대부분의 정책연구는 외부 전문가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며, 정당 부설이다 보니 정당의 하부조직으로 인사나 운영에 있어 정당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단편적인 이슈에 매몰되고 사회적 대안생산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 정치가 구체적 대안보다는 구호에 익숙하다보니 역시 정당 연구소조차 단편적 논리제공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독립성도 있으면서 문제의식도 가지고 있는 시민사회의 싱크탱크는 어떠한가. 주요 국책연구기관이나 기업의 경제연구소들이 수백억의 예산을 사용하고, 정당연구소들이 수십억의 예산을 가지고 있지만 시민사회 연구소들은 1억 미만인 경우가 1/3에 달하고 대부분 한자리 수를 넘지 못했다(홍일표, 2011).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안정적이고 구체적인 생산물을 내기에는 그 기반자체가 매우 취약한 수준인 것이다. 결국 사회적 난제를 풀어내기 위한 대안을 의미있게 생산하기에는 영세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구조를 그대로 두고서 어떤 제대로 된 대안이 출현하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희망일 것이다. 물론 규모 있는 연구소가 대안의 생산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앞서 든 영국의 예에서 복지국가의 출현에는 페이비언 소사이어티, 대처리즘의 등장에는 경제문제연구소(IEA), 신노동당의 등장에는 공공정책연구소(IPPR)이 있었지만 이 싱크탱크들은 작은 소모임에서 시작하거나 한, 두 명의 연구자의 후원자에 의해서 출발한 것이었다(김보영, 2015). 하지만 이들의 아이디어가 주목을 받으면서 다양한 경로의 재원을 끌어들여 연간 수십억 규모의 싱크탱크로 성장할 수 있었다. 기업뿐 아니라 정당, 노동조합, 민간재단들이 그 재원이 되었고 이 싱크탱크들은 이 재원간의 균형을 맞추는 등 자신들의 독립성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활용하면서 성장한 것이다.

 

대안이 있는 정치,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선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더 이상 구호의 정치가 아닌 대안의 정치가 되어야한다는 명확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현재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대안생산 구조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과 같이 의식있는 연구자들의 머리맞대기식 대안모색이 전부라면 우리는 일정수준 이상의 설득력있는 대안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선거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한 심판은 물론이거니와 정치적 행동만 따질 수는 없는 것이고, 결국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는 구조부터 고민해야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강원택, 2012, “왜 회고적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한국정치학회보』, 46(4), 129- 147.
김보영. 2015. “베버리지 복지국가에서 캐머런 정부까지: 복지국가 패러다임의 변화에 있어 싱크탱크의 역할과 전략에 대한 영국 사례연구”. 『한국사회복지학』. 67(2). 259-284
김태완 외, 2008, 『2008 빈곤통계연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주간경향, 2012, “‘747공약’ 공수표로 끝났네”. 1006호. 12월 25일자
황윤원, 2009, “정책결정과정에서의 민간싱크탱크 역할과 발전방안 연구”. 『한국거버넌스학회보』, 16(3), 1-31.
황윤원, 2008. “우리나라 정당 싱크탱크의 실태 분석과 발전방향”. 『한국거버넌스학회보』, 15(3), 383-413.
홍일표. 2011. “한국에서 ‘시민사회 싱크탱크’의 발전과 특성: 33개 시민사회 싱크탱크 설문조사 결과 분석을 중심으로”. 『시민사회와 NGO』. 9(1). 93-128.
홍진표·최순호, 2011. 『대한민국 자살현황 연간보고서』. 보건복지부·한국자살예방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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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 1년, 사병월급 100만원... 당장 가능

[우리는 희망에 투표한다 16] 군병력 30~40만 규모로 당장 감축 가능

16.04.07 07:35l최종 업데이트 16.04.07 07:35l 글: 이태호(pspd1994)

[참여연대-오마이뉴스 공동기획]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변되는 불평등과 양극화, 총체적 경제위기. 군사적 충돌마저 걱정해야 하는 한반도. 국민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테러방지법.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는 20대 총선에서 민생과 평화,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을 위한 공약을 촉구하기 위해 정책 제안을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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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총선 정책제안]우리는 희망에 투표합니다.
ⓒ 고정미  


우리나라 남성청년들은 병역법에 따라 21개월(육군기준) 동안 군대에 가야 한다. 1년 하고도 9개월이다. 

이 기간 동안 남성청년들이 지불해야 하는 기회비용을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2016년 최저임금 기준에 따라 추산해보자. 고용노동부가 밝힌 최저임금 월급이 월 126만270원이니, 군에 가는 청년들은 19개월간 총 2천394만5130원 상당(월 126만270원×19개월)의 노동력을 국가에 제공하는 셈이다. 

게다가 군대는 상당히 위험하고 기본권도 제약되는 공간이고, 여기서 24시간 생활하는 것이라는 점을 반영하면 기회비용은 훨씬 커질 것임이 틀림없다. 이에 비해 청년들에게 국가가 제공하는 급여는 비인간적인 수준이다. 2015년 현재 이등병 월급은 12만9400원(×3개월), 일등병은 14만 원(×7개월), 상병은 15만4800원(×7개월), 병장은 17만1400원(×4개월)로 21개월 근무 시 총 313만7400원을 지급받는다. 최저임금 월급의 1/7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대한민국 헌법이 병역의무를 명시하고 있으므로 이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하는 걸까? 대한민국의 모든 청년들, 특히 남성청년들, 그리고 그들의 앵그리맘들에게 좀 더 꼼꼼히 따져 볼 것을 제안한다. 군복무는 12개월이면 충분하고, 사병월급으로 최소 월 100만 원을 지불할 수 있다. 

왜 우리만 21개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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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5년 8월 경기도 파주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인근에서 훈련중인 장병들.
ⓒ 연합뉴스  


실제로 징병제 국가들 중 상당수의 국가에서 군복무기간을 12개월 이내로 유지하고 있다. 독일은 최근 모병제로 전환했지만 징병제를 채택했던 2004년에 육군 사병 복무기간은 9개월에 불과했다. 프랑스 역시 모병제로 전환하기 전 징병제 육군사병의 복무기간은 10개월이었다. 러시아의 장병 복무기간은 12개월이다. 거대 중국과 대치하고 있는 대만은 1996년 이래 24개월이던 군복무기간을 축소하여 2009년 12개월로 축소했고, 점차 모병제로 전환하고 있다. 

군에서는 군복무기간을 단축하면 병사 숙련도 유지에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육군 보병의 경우 기본 역량을 갖추기 위한 훈련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군 훈련체계를 개선하면 10개월 이내에 기본 임수수행이 가능하다. 다만 특수 병과나 기술 병과는 일반 사병이 아니라 숙련된 유급사병과 부사관이 주축을 담당하게 하면 된다. 대다수의 징병제 나라가 이렇게 운영하고 있다.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문제는 한국군의 훈련방식에 있다. 그는 "(군은) 입대하고 1년은 지나야 일을 제대로 하게 된다고 주장하지만, 직장에 들어가서 한 달이면 그 직장에서 수행할 기본적인 내용은 충분히 배우고 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데, 군대라고 다를 것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이렇게 주장한다.

"군인도 생각하는 사람이다. 군인이 기계적으로 또는 반사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사고하면서 행동하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면 기본적 업무수행을 배우는 데 왜 1년이나 걸린다는 말인가? 문제는 과거 일제시대의 잔재인, 정신을 빼놓는 훈련과정 때문이다."

낮은 출산율 때문에라도 단축해야 한다 

사실 노무현 정부가 군복무기간 단축을 시도했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당시의 방안도 그다지 과감한 것은 아니었다. 출산율이 저하되어 장정수는 줄고 있는데 적정군사력은 유지해야 하므로 군복무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군의 주장이다. 

하지만 낮은 출산율은 군복무기간 연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낮은 출산율은 오히려 군복무기간 단축이 갈수록 중요해 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낮은 출산율이란 청년층의 노령인구 부양 부담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갈수록 희소해질 청년층을 군대에 더 오래 묶어 둘 수는 없다. 국가경제에 손실이 클 것은 차치하더라도, 다가올 장래에 과연 정치적으로든 상식으로든 그러한 발상이 국민들에게 통할지 의문이다. 

징집제를 채택한 나라 중 대부분의 발전된 국가들에서 군복무기간을 1년 내외로 한정하고 군병력도 인구의 1% 미만으로 유지하는 이유는 바로 저출산 고령화 현상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한국은 심각한 저출산 고령사회이므로 이 비율은 더 낮아져야 한다. 

50만 명 이상의 병력이 과연 필요한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적정 군사력은 몇 명인가? 2005년 이래 군은 대략 50만 명 정도를 대한민국 적정병력 수라고 주장하고 있고, 따라서 18개월에서 21개월의 군복무는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펴오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방부는 적정군사력을 50만 명으로 봤다. 당시 제시된 국방개혁 2020안은 2020년까지 68만 명의 병력을 50만 명으로 감축한다는 전제 아래 군복무기간을 2014년까지 18개월(육군 현역병 기준)로 단축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국방부는 군복무기간 단축을 중단하고 21개월로 동결했다. 2025년까지 52만 2천명의 병력을 유지해야 하고 출산율도 더 악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군복무기간을 18개월로 다시 감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집권하자마자 '중장기 과제로 변경한다'면서 사실상 공약을 뒤집었다. 박근혜 정부 역시 2022년까지 병력 52만 2천명을, 2030년까지도 50만 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30~40만 명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50만 명이 병력감축의 마지노선은 아니다. 사실 90년대 이래 군의 거부로 좌절된 국방개혁안들을 살펴보면 이보다 훨씬 파격적인 병력감축안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국방개혁방안을 연구한 대다수 연구자들이 제시한 적정병력수는 30~40만 명이었다.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실제 정부와 국회에서도 획기적인 병력감축안이 다수 제기되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국방개혁위원회에서는, 비록 최종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2015년까지 40~50만 명으로 감축하자는 안을 검토한 바 있다. 

이보다 앞선 1997년, 언론보도에 따르면,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의 정보화특별위원회가 60만 명의 육·해·공군 체제를 20만 명 규모의 통합제로 단계적으로 감군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당지도부에 건의하려 했다. 비교적 최근인 2005년에는 국방연구원 수석연구원 경력의 한나라당의 송영선 의원(18대)이 35만 명으로의 감군을 주장한 바 있다. 2012년 민주통합당의 대선 예비경선에서 김두관 후보가 모병제로의 전환과 30만 명 미만으로의 감군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육군은 왜 50만 명 미만으로의 병력감축에 한사코 반대하는 것일까? 군은 '안정적인 전투력 유지'라는 모호한 주장만을 반복하고 있지만 핵심이유는 다른 데 있다. 유사시 '북한 안정화 작전에 필요한 충분한' 사단 수와 병력 수를 유지하자는 전략 때문이다. 대한민국 방어가 아니라 북한을 점령할 계획 때문에 그렇다는 거다. 

걸림돌은 비현실적인 북한점령 시나리오

만약 국방부가 북한을 무력으로 점령한다는 무모하고 비현실적이며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은 계획을 철회한다면 병력규모는 얼마든지 대폭 삭감될 수 있다. 북한점령을 가정하는 군사계획은 왜 무모하고 비현실적인가? 

우선, 국제법상 남과 북은 유엔 가입국이므로 북한 내부의 비상사태를 이유로 한미가 북한지역에서 군사행동을 전개하는 것은 침략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군은 이 점에 대해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둘째, 한미연합군의 북한 주둔 계획은 한반도를 이라크와 같은 장기분쟁지역으로 만들 위험이 매우 크다. 한국전쟁까지 포함해서 최근 어떤 전쟁에서도 점령이 해피엔딩으로 끝난 사례는 없다. 따라서 현실에서 한미연합군이 휴전선 이북으로 진출하는 계획은 실현되기 어렵고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그건 한반도 주민 모두에게 큰 재앙이 될 것이다. 

셋째, 북한 자신이 전면전 계획 대신 비대칭전력 중심의 국지전 계획으로 군사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남한점령계획을 사실상 포기하고 체제유지에 중점을 둔 군사전략으로 수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재래식 군비 부담이 너무 크고 남한에 비해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한이 북한도발 시 북한까지 밀고 올라가겠다는 '롤백 전략'을 수정한다면, 군은 더 이상 대규모 육군병력을 유지할 이유가 없게 될 것이다.  

북한 군사력에 대한 미 군사 전문가들의 최근 분석들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분명해진다. 2009년 3월 19일 미 상원에 제출된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의 보고서에서는 "북한의 특수부대가 기존의 12만 명에서 4만 명이 줄어든 8만 명에 불과"하다고 적시하면서 "북한의 재래식 전면전 수행능력은 점차 감소하고 있고, 앞으로 충돌위협은 국지전 형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연구센터(CSIS)가 2011년 7월 발행한 보고서 "한반도 군사력 균형"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과거에는 북한이 1만9000명의 특수전 병력을 동시에 수송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지만(공중으로 4000명, 바다로 1만5000명) 지난 15년간의 경제적 문제와 이에 따른 해공군의 작전능력의 감소로 인해 수송능력은 20~40%까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 경보병 부대로의 전환은 한반도 미래 전투 양상에 대해 전략적으로 재검토한 결과 많은 수의 '가벼운' 부대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발칸, 이라크, 아프간에서의 최근 전투에서 얻은 교훈도 영향을 미쳤다." 

한마디로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 자국 내 게릴라전을 염두에 두고 군을 재편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3월 10일 미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마이클 네이플스 미 국방부 정보국(DIA) 국장 역시 이렇게 밝혔다. 

"북한의 주된 목표는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내부 안정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수준에서 경제상황을 개선하는 것이다. 북한은 남한을 상대로 대규모 군사작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태다. 이런 상대적 열세 때문에, 북한은 기술적 우위에 있는 상대에 대해 자신들의 주권과 독립을 보장할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장사정포를 비무장지대에 전진배치하는 한편, 한국과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과 동맹군을 겨냥하여 대량살상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다수의 탄도미사일 전력의 향상을 꾀하고 있다."

군병력을 35~40만 명 수준으로 감축하는 것은 지금 당장 가능하다. 우선 7만 명을 웃도는 장교인원을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의 군사강국들보다 유사하거나 약간 많은 4~5만 명으로 줄인다. 이어 부사관(하사관 등) 규모를 12~15만 명으로, 즉 간부 규모를 16~20만 명으로 줄이면서, 징병제로 입영하는 사병규모를 16~20만으로 유지할 수 있고, 군복무기간을 12개월 내외로 줄일 수 있다. 

부사관의 수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12개월 미만의 징병기간을 마친 사병들을 유급지원 사병 혹은 하사로 재충원한다면 군의 안정적인 전투력 유지나 병사 숙련도에도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지 않고 군병력 감축에 도달할 수 있다. 

사병을 20만 명 이내로 줄이면 사병의 월급을 100만 원으로 인상해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최대 20만 명의 사병을 유지할 경우 1년 사병월급은 최대 2조4천억인데, 현재 평균 15만 원 안팎의 사병월급 수준을 고려할 때 실제 추가 부담액은 2조 안팎이 될 것이다. 

이 정도의 비용은 다른 나라보다 과도하게 많은 7만 명 가량의 장교수 를 5만 명 이하로 정상화하고, 북한점령이나 전면전 상황을 가정하여 불필요하게 유지하고 있는 전시편성사단이나 동원사단 수를 대폭 줄여 현 48개 사단에서 노무현 정부 당시의 개혁안대로 20개 수준으로 정예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조달가능하다. 

참여연대가 제안하는 정책과제는 크게 3대 분야 52개로 서민 생존권과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책과제, 한반도 평화와 미래를 위한 정책과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정책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해당 정책제안은 참여연대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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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입니다.

목, 2016/04/0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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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요약

○ <누가 좋은 국회의원인가? 시민 100인이 함께하는 노란테이블 시즌2>(이하 ‘노란테이블2’)는 2016년 4월 치러질 20대 총선을 앞두고 좋은 대표, 좋은 국회의원의 기준을 시민들 스스로 찾아보는 것을 주제로 삼고, 이를 통해 시민참여형 정치토론의 방법과 대안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 연구진은 2015년 8월부터 기획안을 작성하고, 노란테이블2 토론툴킷을 제작했다. 참가자는 9월 30일부터 한 달 간, 온 · 오프라인을 통해 공개모집했고 185명이 신청했다. 다음카카오 스토리펀딩 ‘어디 좋은 국회의원 없나요?’를 통해 노란테이블2의 기획의도와 문제의식을 전달하고, 노란테이블에서 모아진 시민들의 의견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한 활동도 진행했다.

○ 2015년 11월 7일 진행된 토론회에서는, 희망제작소가 연구 ․ 개발한 ‘노란테이블2 토론툴킷’이 사용되었다. 토론툴킷은 토론카드와 참고자료, 노란테이블보로 구성된다. 토론카드는 토론을 이끌고 나가는 주요 도구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발견하고 대안을 상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도록 ‘문제발견’ 카드와 ‘기준발견’ 카드로 구성되어 있다. ‘요구’ 카드는 시민이 바라는 좋은 대표, 좋은 정치가 실현되기 위해서 변화해야 할 것들에 대한 요구를 담아내기 위한 도구이다. 노란테이블보는 언제 어디서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토론을 할 수 있다는 상징이다.

○ 참가자들은 노란테이블이 시민들이 모여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공론의 장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기존의 투표 기준 등 정치적 선택의 기준이나 의미, 정치적 사안은 물론 일상적인 삶의 문제를 반성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답했다. 또 토론툴킷을 사용해 쉽고 재미있게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고, 모두가 동등한 토론자로서 참여하고, 발언의 독점을 막는 토론 규칙을 통해 평등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 본 보고서는 노란테이블2의 사업결과보고서로 노란테이블2의 준비 단계부터 시민들과 함께 한 토론 과정과 결과, 그 의미를 정리해 담고자 했다. Ⅱ장에서는 희망제작소가 노란테이블2를 기획하게 된 배경으로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 대안으로 토의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Ⅲ장은 2015년 가을 진행한 노란테이블2 세미나와 시민토론회의 개요, 참가자 정보, 노란테이블 토론툴킷 구성과 규칙 등을 정리하였다. Ⅳ장은 노란테이블2 토의의 실제 과정을 상세히 담았다. ‘소개하기-발견하기-논의하기-상상하기-마무리’ 각 단계의 활동 목적과 진행 방식 등을 소개한다. 시민토론회의 현장 기록을 옮겨 토의 과정과 결과를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Ⅴ장에서는 시민토론회 참가자 대상 초점집단면접 결과를 중심으로, ‘노란테이블2’ 토론 결과의 의미와 시민참여형 토의민주주의의 의의와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목차

연구요약

프롤로그
– 두 번째 노란테이블을 열며

I. 서론
1. 사업 배경과 의미
2. 사업 경과 및 보고서 개요

Ⅱ.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와 그 대안: 시민참여형 토의민주주의
1.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와 시민의 부재
2. 토의민주주의와 시민
3. 시민이 제시하는 ‘좋은 대표’

III. 노란테이블2 진행 개요
1. 세미나: 대의민주주의와 좋은 대표
2. 시민토론회: 누가 좋은 국회의원인가?
3. 참가자 정보
4. 노란테이블 토론툴킷과 규칙

Ⅳ. 시민토론: 누가 좋은 국회의원인가?
1. 소개하기: 나의 투표 이야기
2. 발견하기: 한국정치, 무엇이 문제인가
3. 논의하기: 좋은 국회의원의 기준은 무엇인가
4. 상상하기: 좋은 국회의원 모델 만들기
5. 마무리

Ⅴ. 시사점
1. 노란테이블 토론의 결과
2. 노란테이블의 의의와 가능성
3. 시민참여형 토의민주주의의 미래

에필로그

참고문헌

부록

화, 2016/05/1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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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폄훼, 이렇게 시작되었다

진실의 주인은 누구인가?

유경남 5.18민주화운동기록관 학예연구사
 


5.18 민주화 운동에서 진실은 1980년 광주항쟁 기간, 그리고 '5월 운동'의 전 과정에서 끊임없이 요구·실천되었던 의제였다. '5.18 진실 규명'의 구호는 책임자 처벌과 함께 1980년 광주 문제를 해결하는 선결 조건으로 중요하게 인식되었고, 한국 민주화 운동의 주요 동력이었다. 민주화 운동의 주체들은 '5.18의 진실규명이 곧 한국의 민주화'와 직결되는 과제였다.

 

이에 1980~199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5.18의 진실을 억압하는 세력에 저항하여, 5.18의 진실을 밝혀내는 담론 투쟁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5월 운동'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5월 운동, 민주화 운동을 통해 1988~1989년 광주 청문회가 이루어졌고, 1995년 5․18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이를 통해 5.18 항쟁의 사실들은 법적·제도적 차원에서 진실의 위상을 부여받았고, 정치적 복권과 기념사업 등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지만원을 비롯한 보수세력들이 '광주 사태는 북한 특수부대의 소행이다' 등의 5.18 왜곡 사례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1980년 신군부의 5.18 왜곡 – 왜곡의 기원

 

5.18 왜곡의 기원은 1980년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차지하는 계획에 따라 전국적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1980년 5월 21일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계엄군의 잔악한 진압이 원인이 되어 시민들의 시위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고 단순히 불순분자들의 유언비어에 의해 시위가 발생했다며 광주 시민들의 분노와 저항을 소수의 조종에 의한 것으로 폄하했다.

다음으로 신군부는 항쟁을 진압하고 6월부터 '김대중 음모론'을 조작해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김대중 음모론을 적용하여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을 처벌하는 공식적 죄목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당시 군부가 구속자들을 김대중 음모론으로 기소한 죄목들은 많은 증언을 통해 날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유언비어론과 김대중 음모론은 '이창용 간첩 사건'과 같이 북한의 사주에 의한 광주사태로 귀결된다. 결국 신군부는 분단이라는 정치적 조건을 활용하는 반공주의에 5.18 항쟁을 집어넣어, 대한민국의 분열과 갈등의 요소로 낙인찍어 버렸다. 5.18 항쟁을 통해 남한 사회를 반공의 이데올로기로 몰아넣으며, 5월의 시위 상황을 광주지역에 한정시켰고, 광주 시민의 저항을 '지역 감정' 문제로 유폐시켜버렸던 것이다.

 

과거 청산 운동으로서의 5.18 – 왜곡의 조건

 

1980년 5월 27일 5.18 항쟁이 진압된 이후 5.18 유가족 및 관련자 그리고 지역민들은 그리고 다수의 민주화 운동 세력은 5.18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신군부 및 정부가 5.18의 사실들을 정치적으로 유폐시키고자 사용했던 '광주 사태'라는 함의를 '의거', '항쟁', '민주화 운동'으로 재정립하려고 노력하였고, 우리 사회는 이를 '5월 운동'이라고 말한다. 1987년 6월 항쟁은 5.18의 진실을 전국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1988~1989 '광주 청문회'를 계기로 관 주도의 진실규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주요 관련자들은 진술을 거부하였고, 관련 자료에 접근하는 데 현실적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건의 진상들이 밝혀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김영삼 정부 시절은 5․18특별법이 만들어 지면서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되었고, 관련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이 이루어졌다. 이들에게 적용된 죄목은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이었다. 이렇게 5.18 항쟁을 폭력으로 진압한 전두환·노태우 등 사건 관련자들이 군사반란 및 내란죄로 구속되어 처벌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5월 21일 전남도청 앞 발포 명령, 지휘권 이원화, 외곽봉쇄 과정에서의 민간인 살상, 실종자 등의 문제 등이 미해결로 남았다. 이러한 미해결 과제를 해결하고자 노무현 정부는 지난 2007년 국방부 내에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여 자체적으로 과거에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을 재조사하여 규명하도록 했다. 국방부 과거사위는 국회청문회, 검찰 수사와 법원의 재판 등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국방부 내부 자료를 수집·검토하고, 관련자를 인터뷰하는 등 그 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진상에 접근하는데 큰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5.18 항쟁에 대한 다방면의 조사와 사법적 집행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보상 및 정치적 복권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5.18 항쟁에 대한 진실규명과 과거사 청산이 때로는 정치적 타협에 의해, 때로는 사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되면서 많은 한계점이 지적되고 있다.

 

민주화 운동의 부인과 5.18 왜곡의 재등장 – 왜곡의 성격

 

5.18 항쟁을 필두로 한 국가의 진상규명 작업은 제주 4·3 항쟁, 70년대 민주화 운동 관련자, 여순 사건, 의문사 사건, 85년 미문화원점거 사건, 군산 오송회 사건 등 과거 독재정권이 조작했던 정치적 사건들의 진상규명을 가능하게 했다. 동시에 국가기구로서 국가인권위원회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등이 설치되면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사건과 관련자들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과 명예회복 그리고 이들의 희생에 대한 보상이 진행되었다. 또한 이러한 진상규명의 성과에 힘입어 과거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했던 사람들이 복직되거나 개인적 명예를 회복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5.18 항쟁에 대한 왜곡의 경우 1990년대 후반 지만원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지만원은 "5․18광주폭동은 반미주의의 뿌리이며 북괴군의 적화전략이다"라든지 "5.18도 5.18묘지에 묻힌 민주열사도 다 좌익들의 자산이다" 등의 글을 인터넷에 유포시켰고, 다른 보수 웹사이트는 "왜 우리는 광주사태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가?"(2010년 1월8일), "집단발포를 한쪽은 5.18무장단체였다", "광주사태를 간첩이 선동했다고 보는 50개의 이유!"등의 글을 웹상에서 유통시켰다. 급기야 <12․12와 5.18>,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과 같은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처음 이들의 주장이 등장했을 때 5․18의 사실관계를 무시하여 자의적으로 배치·조작하고 있다는 점, "~했다는 이야길 전해 들었다"와 같이 간접 참여자의 증언을 직접 참여자의 증언으로 과장하고 있다는 점, 일부 보수세력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은 그저 미비한 양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대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이명박 정권 시절 '친북반국가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등장했고, 이들은 일련의 과거청산 작업을 "좌파진영이 정부권력을 끼고 '역사 뒤집기'를 진행하는 것"으로 부인했다. 또한 일련의 민주화 운동 관련자의 정치적 복권과 명예 회복을 국가정체성, 대한민국의 정통성 문제로 몰아갔다.

 

진실의 주인은 누구인가?

 

일련의 5.18 왜곡은 과거 신군부세력이 5.18 항쟁의 진실을 은폐하고 실상을 지역에 고립시켜 전국화시킴으로서 당대의 민주화 요구를 차단했던 정치적 전략의 산물이었다. 또한 최근의 왜곡 담론은 5․18의 진실을 폄훼하면서 궁극적으로 진보세력을 반정부·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함으로써 반대로 보수세력의 집결을 도모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깔려 있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보수 단체들의 5.18 왜곡 활동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눈감아 주는 듯 했다. 박근혜 정부는 역사교과서를 국정화시키면서 일부 보수단체의 입장을 공식화하려 했다.

 

지만원의 왜곡을 배경으로 조선일보의 5.18 왜곡 보도, 인터넷 뉴스매체 <뉴스타운> 등 인터넷상의 왜곡이 사회 문제로 등장하자, 최근에는 이를 바로 잡고자 하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학살의 책임자인 전두환이 5.18을 왜곡하는 내용을 담은 회고록을 출간하고 옛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에서 공중 사격한 탄흔이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밝혀지지 않은 사건들을 비롯한 5.18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가 주목받고 있다.

 

5.18 왜곡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하기 위해 비공개 문서의 공개와, 위원회 구성을 통한 재조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자칫 일련의 대응이 왜곡 담론과의 대결 구도를 형성함으로써 이들을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해 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지난 10년의 보수 정권을 보면, 이들은 보수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를 하나로 귀결시키는 반공주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또한 정부가 주도하는 5.18담론은 정권에 따라 그 내용이 좌우되면서 지역적 갈등과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기도 했다.

 

2011년 5.18 민주화 운동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5.18 항쟁과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세계 인권운동으로서 공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5.18 담론이 사회적 문제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 스스로 5.18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유가족과 항쟁의 참여자 그리고 광주 지역민들이 바라는 것은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제대로 인정을 받고, 우리 사회가 제대로 인정하고 공감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제시했던 바와 같이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포함시키는 등 근본적인 권위와 역사적 당위를 인정해주는 것. 그리고 최근 추가적인 진실규명을 통해 제대로 된 사실을 밝히고 이를 전국에 다음 세대에게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5.18이 더 이상 지역 간 갈등의 주제가 아니라는 점을 사회의 구성원들이 제대로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올바른 역사로 남게 해야 할 것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월, 2017/05/2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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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하는 날 (원제 : 비 오는 날, 마종기)

 

표심이 표심을 만나면

큰 소리를 내듯이

아,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치면서

그렇게 만나고 싶다. 당신을

 

표심이 표심을 갑자기 만날 때 환한 불을 일시에 켜듯이

나도 당신을 만나서

잃어버린 내 길을 찾고 싶다.

 

표심이 부르는 노래의 높고 낮음을

나는 같이 따라 부를 수가 없지만

표는 표끼리 만나야 서로 젖는다고

당신은 눈부시게 내게 알려준다.

 

 

총선특집10. 선거 연가 '투표하는 날' 

 

참여연대 팟캐스트 총선특집 마지막편, 정치철학자 김만권 교수가 들려주는 '함께 투표하세요' 입니다.

 

우리가 미워하는 것은 서로를 돌보아야 하는 '정치'가 아닌 세상을 오염시키는 '정치꾼'들일 것입니다. 당장 큰 변화는 끌어낼 수 없다고 해도 최소한 '정치꾼'들을 막기 위해 함께 투표하세요. - 김만권

 

투표를 부탁드리는 마음, 마종기 시인의 '비 오는 날'을 조금 고쳐서 '투표하는 날'로 대신합니다.

 

 

*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경우 : http://www.podbbang.com/ch/8005?e=21943708

* 아이튠즈로 듣기 : https://goo.gl/Ootj4v

* 유튜브로 듣기 : https://youtu.be/05re9OLSscI

 

참여연대 팟캐스트 총선 특집 목차

  1편. 정의당과 녹색당, 진보정당의 생존방법
  2편. 국민TV 총선특집 '2016총선시민네트워크' 활동 소개
  3편. 미국 대선과 4.13총선, 유권자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
  4편. 청년유권자파티 현장중계 '이생망, 이대로 죽을 순 없다!!!'
  5편. 절실한 야권연대, 아래로부터의 단일화로!
  6편. 드라마 '태양의 후예', '시그널'과 함께 진행하는 '투표합시다' 이벤트
  7편. 416유권자위원회가 요구하는 약속운동
  8편. 북토크 '책 속에 그려진 선거 풍경'
  9편. 뭐라도 합시다! 욕이라도 합시다!
10편. 선거 연가 '투표하는 날'

 

금, 2016/04/0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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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청원권', 제대로 행사하려면

[우리는 희망에 투표한다 15] 대의제 보완할 국민 청원권 실질화해야

16.04.02 15:35l최종 업데이트 16.04.02 15:35l 글: 한상희(pspd1994)

[참여연대-오마이뉴스 공동기획]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변되는 불평등과 양극화, 총체적 경제위기. 군사적 충돌마저 걱정해야 하는 한반도. 국민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테러방지법. '참여연대'와 <오마이뉴스>는 20대 총선에서 민생과 평화,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을 위한 공약을 촉구하기 위해 정책 제안을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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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총선 정책제안]우리는 희망에 투표한다
ⓒ 고정미  


대의제는 분명 민주주의의 꽃이다. 하지만 의원들은 우리의 요구를 제대로 대변하지 않는다. 의원들의 행동을 아무리 선의로 해석한다 하더라도, 불과 300명의 의원이 5천만의 의사를 대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효자동 1번지의 구중궁궐에 갇혀 지내는 대통령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청원권은 이런 대의제의 한계를 보완한다. 청원권은 그들이 제대로 대변하지 않는 우리의 의사나 요구를 직접 정책결정 과정에 투입하고 국가기관으로부터 그에 대한 심사 결과를 받아볼 수 있는 권리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대표로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청원권은 '국민의 대표'라는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놓치는, 구체적인 정치적·정책적 사안에 대해 시민 개개인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보다 실질적으로 실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헌법 제26조가 모든 국민에게 문서로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이나, 미국 백악관의 청원게시판 명칭이 미국헌법전문에 나오는 '우리 인민들(We the People)'인 것은 이 때문이다. 

19대 국회, 청원 226건 중 의결 반영은 고작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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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민주 의원들 집단 퇴장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3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 외 106인이 발의한 테러방지법 수정안이 부결되자 집단 퇴장하고 있다.
ⓒ 남소연  


문제는 실효성이다. 국회만 보아도 그렇다. 제19대 국회에 제출된 청원은 226건에 이르지만 의결에 반영된 것은 오직 8건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이런 저런 무관심 속에서 그냥 폐기되어 버리고 말았다. 

사실 청원을 하려면 국회의원의 소개도 있어야 하며, 문서로 작성해서 국회사무처를 직접 방문해야 하는 등의 힘든 작업도 거쳐야 한다. 행정부에 대한 청원 역시 마찬가지다. 온라인 청원 등이 가능하다고는 하나, 어렵사리 청원을 하게 되면 그냥 담당기관에 이첩했다거나 혹은 검토해 보았더니 별 이유 없더라는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온다. 

청원이라고 해봐야 뭔가 속 시원한, 그래서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만 더 답답해지고 안 하니만 못한 상황만 거듭되는 것이 우리의 청원 현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청원법이나 청원에 관련된 국회법, 지방자치법은 우리가 제기한 청원에 대해 국회나 행정기관이 어떤 절차를 거쳐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여야 하는지 거의 규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30일 이내에 150명 이상의 지지서명을 확보한 청원은 누구나 검색해서 볼 수 있게 공시하고, 10만 명 이상의 지지서명을 받은 경우에는 답변의 의무를 지운다. 실제 미국은 국민의 청원에 국가가 반드시 답변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미국도 이렇게 청원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자 노력한다. 

거기에 반해 우리 헌법은 애초부터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고, 청원법은 90일 이내에 그 처리 결과를 통지할 의무까지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의 청원 제도는 형식뿐 그 실체는 미진하기 짝이 없다. 국민과 국가 사이의 소통을 위한 제도로 보기에는 너무도 모자라는 불통의 현실이 존재한다. 

이렇게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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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피해자 모임인 '4.16가족협의회'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아래 특조위)의 정상적 활동을 위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입법청원했다. 약 6만 2000명의 이름이 담긴 청원서를 들고 18일 국회 기자회견장을 찾은 4.16가족협의회는 "국민의 이름으로 4.16가족협의회가 제출한 개정안은 특별법의 입법 취지를 보호하고 강화하는 내용으로 일관돼 있다"며 "기존 특별법의 입법 정신을 보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 소중한  


청원권은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핵심적인 기본권이다. 그것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 몇 가지 시급한 개선이 필요한 사항부터 간략히 정리해 보자.

첫째, 집단적 청원의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현재 청원제도는 개인이 단독으로 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다른 사람의 지지서명을 받아서 한꺼번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청원안을 제출하는 순간 더 이상의 시민정치는 진행되지 않는다. 

미국 백악관이 그러하듯, 같은 의견을 가진 지지자들을 모아갈 수 있는 장을 제공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국민신문고와 같은 온라인 청원 게시판을 만들어 50명이나 100명 정도의 지지서명을 받아 제출된 청원안은 별도의 토론방을 만들어 찬반의 의견을 교환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 일정한 숫자 이상의 지지를 모은 청원안에 대해서는 반드시 공청회를 개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도 절실하다. 청원은 단순한 민원제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시민들이 국가 공공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이자 주권자로서 자기 지배를 실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청원안 제출에 그칠 것이 아니라, 청원자의 의견을 널리 알리고 이에 대한 공론을 수렴하는 단계를 청원 제도에 필수로 포함해야 한다. 그래서 게시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일정 수 이상의 지지서명을 받은 청원안에 대해서는 주무기관(국회의 경우 소관 상임위원회)이 반드시 공청회를 개최하고, 청원인 대표자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을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10만 명을 기준으로 하는 미국 백악관의 예에 비추어 인구가 미국의 1/6에 불과한 우리의 경우에는 1만 5천 명 내지 2만 명 정도면 될 것이다.)

셋째, 현재 청원권을 거의 무력화시키고 있는 국회 청원 제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회의 청원 절차를 대폭 간편화할 필요가 있다. 비교적 자유롭게, 그리고 온라인으로 청원할 수 있는 행정부와 달리 국회는 그 절차가 복잡하다. 반드시 국회의원의 소개가 있어야 하며 청원서 또한 국회를 방문하여 현장접수를 해야 한다. 

명분은 무분별한 청원의 폭주를 막겠다는 것인데, 국민들의 정책 참여 의지를 이렇게 폄훼할 이유는 없다. 그 내용이 무엇이든 일단은 손쉽게 청원하고, 손쉽게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연후에 내용 여하나 경중에 따라 각하하거나 본격심의에 들어갈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그래서 ① 온라인 청원을 가능하도록 하되, ② 반드시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없애고 누구나 자유롭게 청원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③ 또한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 청원이 제기된 때에는 국회가 반드시 그 청원안을 심사하도록 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 혹은 정당의 소개를 받거나, 일정 수(예컨대 1천 명) 이상의 국민서명으로 이루어진 청원안에 대해서는 심의를 강제해야 한다. 청원심사기한(현재 90일) 내에 심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 기간이 만료한 날 이후에 처음 열리는 소관 상임위 회의에 자동 상정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국민권익위원회의 형태로 미약하게 구성되어 있는 옴부즈맨 제도를 보다 활성화하여 시민의 민원을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처리해 내는 것도 절실하다. 

거듭 말하지만, 청원권을 개개인이 내뱉는 불평·불만을 처리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불평불만 자체가 민주주의의 요체를 이루는 주권자의 명령임을 각성한 결과가 바로 이 청원권이다. 

청원권은 우리 정치의 주변부에 맴도는 군더더기 같은 권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실체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본적 권리이다. 바로 이 때문에 한계에 이른 대의제를 보완하여 대표를 강화하는 가장 강력한 장치다. 

20대 총선은 청원권을 실질화함으로써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통치하는 자기지배의 이념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교두보가 되어야 한다. 

참여연대가 제안하는 정책과제는 크게 3대 분야 52개로 서민 생존권과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책과제, 한반도 평화와 미래를 위한 정책과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정책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해당 정책제안은 참여연대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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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입니다.

토, 2016/04/0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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