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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들을 은밀하게 숨겨주는 모색 폰세카의 속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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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들을 은밀하게 숨겨주는 모색 폰세카의 속임수

익명 (미확인) | 수, 2016/04/06- 07:00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는 CIA 정보원이나 첩보 세계 관련자들이 당국의 눈을 피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작성 : 윌 피츠기번(Will Fitzgibbon)

재선 캠페인이 한창이던 1996년 8월의 어느 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캔자스 시티에 위치한 웨스틴 크라운 센터 호텔의 한 연회장을 찾았다. 선거 자금 25만 달러가 달린 행사 때문이었다. 그날의 주인공은 클린턴의 든든한 후원자 파하드 아지마(Farhad Azima). 아지마를 향해 서 있던 클린턴을 시작으로 참석자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이란 출신의 미국 전세 항공사 대표인 파하드 아지마는 미 행정부의 오랜 후원자다. 1995년 10월부터 1996년 12월 사이 백악관을 총 10회 방문했고, 대통령과 함께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1999년 12월 힐러리 클린턴이 상원 의원직에 출마하자 후원 행사를 열어 40명의 참석자들로부터 2,500 달러의 후원금을 모으기도 했다.

이러한 아지마의 민주당 기금모금 활동 덕분에 후일 그의 이력에 흥미로운 상황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발생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정치 스캔들 ‘이란-콘드라(Iran-Contra)’사건으로 아지마 역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된다.

1980년대 중반, 레이건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미국인 인질 7명의 석방을 돕기 위해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고 그 이익으로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1985년에 아지마의 회사의 보잉 707기가 23톤에 달하는 군사 장비를 이란으로 운반했다. 그는 해당 비행기는 물론이고 그러한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는 ICIJ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란-콘트라 사건과 무관하다”고 답했다. 또한, “미국 내 모든 관련 기관에서 이미 조사를 받았고, ‘관련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면서 “사법 당국이나 규제 당국은 헛수고를 했고, 낚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Suddenutsche Zeitung, SZ), 언론 파트너가 함께 입수한 문건에는 미국에서 가장 화려한 정치 후원자 중 한 명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이란-콘트라 사건 관련자이기도 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억만장자 아드난 카쇼기(Adnan Khashoggi)의 역외 거래 관련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1997년부터 2015년 말 사이 작성된 1,100만이 넘는 문건에는 파나마 국적의 기업 Mossack Fonseca(MF)의 내부 활동상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MF는 기업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어 합법적인 기업 활동과 은밀한 첩보 세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데 전문성을 자랑하는 파나마 법률 회사다.

스파이들의 역외 거래 활동

이번 문건은 전직 CIA 요원과 무기 거래상들이 개인적, 사적 이익을 위해 어떠한 방식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하는지에 대해 수백 건의 세부 사항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또한, 첩보 국장, 비밀 요원, 정보원 등 CIA와 다른 정보 기관에서 활동하던 기간이나 그 이후에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했던 수 많은 인물들의 활동 상황도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조지아대 로흐 K. 존슨 교수는 페이퍼 컴퍼니의 위장과 관련해 “자신이 스파이임을 밝히고 활동하는 사람은 없다”고 설명했다. 한 때 미국 정부정보활동조사특별위원회(속칭 ‘처치위원회 (Church Committee)’)의 자문을 역임했던 존슨 교수는 수십 년간 CIA의 위장 기업(front company)을 연구했다.

이번 문건에 포함된 MF의 고객 가운데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제1대 정보 국장 셰이크 카말 아드함(Sheikh Kamal Adham)과 콜롬비아의 퇴역 육군 소장 리카르도 루비아노그루트(Ricardo Rubianogroot), 그리고 의사에서 폴 카가메(Paul Kagame) 르완다 대통령의 정보 국장으로 변신한 엠마누엘 느다히로(Emmanuel Ndahiro) 준장(Brig. Gen.)도 포함되어 있다. 셰이크 카말 아드함은 미국 상원위원회에서 “1960년대 중반부터 1979년까지 CIA의 중동 지역 주요 소식통”으로 언급된 인물로 후일 미국의 은행 스캔들에 연루된 여러 페이퍼 컴퍼니를 소유했었고, 전직 콜롬비아 항공정보국장이기도 한 엠마누엘 느다히로는 항공 물류 기업의 주주였다.

아드함은 1999년 사망했고, 느다히로는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루비아노그루트는 항공 전자기기 회사(미국) 매입을 위해 설립된 West Tech Panama의 소주주였음을 자신이 ICIJ 파트너와 콜롬비아 탐사 보도 기관 Consejo de Redaccion에 확인시켜 주었다. 현재 이 회사는 파산 절차를 진행하는 중이다.

MF는 “우리는, 신규•예비 의뢰인에 대해 우리 업계가 준수해야 하는 현 규정과 기준보다 훨씬 철저한 실사를 실시하고 있다”면서 “의뢰인 상당수는 주요 중개 은행(correspondent banks)을 비롯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로펌, 금융기관을 통해 확보하고 있으며…따라서 신분이나 자금 출처에 대한 증빙서류 제공을 꺼리거나 그러한 서류 제공이 불가한 개인, 기관 등의 의뢰인과는 함께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성명을 통해 밝혔다.

한편, 스파이 세계를 모방한 사례도 문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위장 기업을 설립하려는 의뢰인을 대신해 한 금융 관계자가 MF에 보낸 2010년도 서신에는 “회사 이름을 ‘글로벌보험서비스(World Insurance Services Limited)’나 007영화에 등장한 ‘유니버셜무역회사(Universal Exports)’로 했으면 하는데, 그렇게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유니버셜무역회사는 이언 플레밍의 소설 “제임스 본드”에 등장하는 영국 첩보국의 위장 기업이다.

문건에 따르면, MF는 007 시리즈 제목과 악당의 이름을 따서 ‘Goldfinger,’ ‘SkyFall,’ ‘GoldenEye,’ ‘Moonraker,’ ‘Specgre,’ ‘Golfeld’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했고, 심지어는 ‘Octopussy’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해 달라는 요청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뢰인 중에는 실명이 오스틴 파워(Austin Powers), 잭 바우어(Jack Bauer, 유명 미국 드라마 ‘24시’ 주인공)인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후자의 경우 그 이름은 의뢰인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했던 직원이 우연히 해당 의뢰인을 술집에서 만나서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첩보 활동과 MF의 연계는 허구가 아닌 실제 상황이다.

항공업계

문건에 따르면, 당시 60개 이상의 항공기를 보유한 전세 항공사를 운영하던 파하드 아지마는 2000년에 MF와 함께 지사 형태의 첫 페이퍼 컴퍼니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했다. 회사명은 ‘ALG (Asia & Pacific) Limited’ 였다.

한편, MF는 2013년이 되어서야 아지마와 CIA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당시 의례적인 신설 기업 주주에 대한 배경 조사 과정에서 아지마의 CIA 연루설 관련 기사를 발견한 것이다. MF 직원들이 찾아낸 온라인 기사에는 그가 리비아로 무기를 밀매한 전직 CIA 요원에게 “항공•물류 서비스를 지원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한 그와 관련해서 CIA로부터 아지마를 “건들이지 말라(off limits)”는 경고를 받았다는 FBI 요원의 증언이 담긴 기사도 있었다.

MF가 아지마의 대리인에게 신원을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지마는 이후에도 MF의 의뢰인으로 남았고, 그와 관련해 놀라운 일들은 계속됐다.

MF가 호셍 호사인푸아(Hosshang 호사인푸아)와 CIA 간의 유착 관계에 대한 온라인 문서를 발견한지 1년 뒤, 미 재무부가 그를 수천만 달러가 경제 재제를 받던 이란의 국내 기업으로 흘러가는 것을 도운 인물이라고 언급했다.

문건에 따르면, 2011년에 조지아(옛 그루지아)의 한 호텔을 매입하려 했던 기업의 내부문서에도 아지마와 호사인푸아의 이름이 등장했다. 같은 해 재무부 관계자들이 호사인푸아가 플라이조지아(FlyGeorgia)라는 민간 항공사를 공동으로 설립한 뒤, 또 다른 두 명과 함께 이란으로 수백만 달러를 빼돌리기 시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이와 관련해서 3년 뒤에 처벌을 받았다.

호사인푸아는 2011년 11월부터 시작해 잠깐 동안만 유라시아 호텔 홀딩스(Eurasia Hotel Holdings Limited)의 주식을 보유했다. 그런데, 행정팀에서는 MF측에 호사인푸아는 회사와 관련이 없으며 그가 보유한 주식은 ‘행정 착오(administrative error)’로 발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상호를 ‘유라시아 항공 홀딩스(Eurasia Aviation Holdings)’로 변경한 뒤, 회사 전용기(Hawer Beechcraft 400XP)를 162만 5천달러에 구입한 것으로 밝혀 졌다.

아지마는 그 회사는 단지 전용기 구입을 위한 이용된 것일 뿐, 호사인푸아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ICJI에 해명했다.

또한, 당시 구입한 전용기의 사용지가 미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국에 등록할 필요가 없었고, 회사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한 것은 세금 문제 때문이었다고 설명하면서, “나는 세금이란 세금은 모두 내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호사인푸아에게서는 아무런 언급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2013년 법적 처벌을 받기 전 이루어진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란과의 관계를 적극 부인하면서 “법적 조치를 피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답했다.

MF의 내부 문건에서 발견된 CIA와의 커넥션과 관련해 눈에 띄는 인물로 로프튀르 요한슨(Loftur Johannesson)도 있다. 올해 85세인 그는 아이슬랜드의 수도 레이캬비크(Rekyavik) 출신이다. 70년대와 80년대 CIA와 함께 일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의 반공 무장 단체에 무기를 공급한 인물로 책이나 신문에서 흔히 등장하고 있다. CIA를 위해 활동한 대가로 받은 돈으로 바베이도스에서는 저택을 프랑스에서는 포도 농장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 졌다.

요한슨이 MF의 내부 문서에 등장한 것은 2002년도로 첩보원 활동에서 은퇴한 지 한참이 지난 뒤였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와 파나마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 최소 4곳과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런던의 웨스터민스터 사원 뒤쪽 지역과 바베이도스 수변 단지 등에 고가의 주택을 소유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들 지역의 주택의 매매가는 한 채에 3,500만 달러에 이른다. 2015년 1월에는 MF서비스 대가로 수천 달러를 지불했다.

“요한슨씨는 항공 관련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제적인 사업가다. 그가 정보 기관을 위해 일을 했었을 것이라는 ICJI의 주장을 단호히 일축했다”고 대변이 ICJI에 전했다.

요원 ‘로코 & 008’ = 페이퍼 컴퍼니 설립 면허?

이란-콘트라 스캔들과 연루된 또 다른 인물로 아드난 캬쇼기(Adnan Khashoggi)를 들 수 있다. 아드닌 캬쇼기는 한 때 세계 최고의 ‘사치왕’으로 이름을 날렸던 사우디의 억만장자다. 1992년도 상원 보고서(공동 작성자- 존 케리 상원의원)에 따르면, 국제적인 무기 중개상이었던 그는 1970년대 미국과 사우디간에 있었던 수백만 달러 규모의 무기 거래 협상을 이끌었고 이란과의 무기(총) 거래가 “미국 정부에 유리하도록 이끈 핵심 인물”이었다.

카쇼기의 이름이 MF 문건에 처음 등장한 것은 그가 ISIS Overseas S.A라는 파나마 회사의 대표로 취임했던 1978년이다. MF와의 비즈니스는 대부분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에 이루어졌고, 적어도 4개 이상의 회사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MF의 문건에는 카쇼기가 소유한 회사들의 설립 목적은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중 두 곳 (Propicterrain S.A.와 Beachview Inc.)은 스페인과 카나리아 제도(the Grand Canaries islands)의 주택 담보대출 (mortgages for homes)과 관련이 있었다.

카쇼기가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대통령이 수백만 달러를 해외로 빼돌리는 것을 도운 혐의로 기소되어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던 그 해, MF는 아다난 캬쇼기 그룹(Adanan Khashoggi Group)이 지급한 돈을 처리하고 있었다. 비록 이후에 무혐의 처리가 되기는 했으나 당시 MF가 그의 과거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자료는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MF의 문건에는 MF가 2003년에 캬쇼기와의 거래를 중단한 것으로 나와 있다.

MF는 냉전 시대 적이라 해도 크게 차이를 두지 않았다.

‘요원 로코(Agent Rocco)’라는 가명으로 동독 비밀경찰의 스파이로 활동한 혐의로 기소되었던 그리스의 부호 소크라티스 코칼리스(Sokratis Kokkalis, 76세)도 명단에 있었다. 독일 의회 조사 결과, 코칼리스는 1960년대 초반에 독일과 러시아에서 거주하면서 주변 인물과 연락책에 대한 정보를 주기적으로 동독 비밀경찰에 제공한 것으로 밝혀 졌다. 그는 2010까지 그리스 축구단인 올림피아코스(Olympiakos)의 구단주였으며 현재 그리스 최대 통신사 (OTE)를 소유하고 있다.

MF는 2015년 2월 코칼리스 소유의 기업(Upton International Group)에 대한 의례적인 조사 과정에서 그가 첩보 활동에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MF 직원이 인터넷 검색 이후 작성한 기록을 보면 코칼리스는 “60년대 초에 간첩, 사기, 자금 세탁 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동독 당국에 의해 기소되었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적혀 있다. MF 문건에 따르면 코칼리스의 대리인은 코칼리스 본인과 그가 소유한 회사, 회사 설립 목적에 대한 MF의 요청 사항에 응하지 않았다.

코칼리스 측으로부터는 아무런 의견도 들을 수 없었다. 이처럼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그도 한때 모든 혐의를 부인하면서 유명 정치인들과 언론(신문사)이 자신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2005년, MF 직원들이 기겁할 만한 일이 발생했다. MF의 회계장부에 스페인의 악명 높은 비밀 요원 프란시스코 파에사 산체스 (FRanscisco Paesa Sanchez)로 추정되는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산체스 관련 자료를 처음 찾아낸 한 직원이 “내용이 정말 오싹했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MF은 ‘프란시스코 P. 산체스 (Francisco P. Sanche z)’라는 인물이 이사로 있는 회사 7개를 설립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파에사는 부패 경찰서장, 분리주의자 등을 색출하면서 부를 축적했고 수백만 달러를 가지고 스페인에서 도피했다. 1998년, 파에사는 자신이 사망한 것으로 위장하고 그의 가족들은 파에사가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는 사망 진단서 발급받았다. 하지만, 수사 당국이 룩셈부르크에 있던 그를 추적해 찾아냈다. 파에사는 자신의 사망 보도에 ‘착오(misunderstanding)’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2005년 12월, 한 스페인 잡지에 모로코 호텔, 카지노, 골프장을 건설하고 소유하고 있는 파에사의 ‘비즈니스 네트워크’ 관련 기사가 실렸다. 해당 기사에는 MF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회사 7곳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2005년 10월, MF는 P. 산체스(파에사)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들과 관계를 끊기로 결정을 내렸다. MF는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스캔들이 당사의 이미지에 미칠 영향이 우려되어 이 같은 결정을 내기게 된 것”이라고 관련자에게 서면으로 거래 중단 사유를 밝혔다.

MF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의뢰인이 MF와의 거래와 관련된 사실 자료 특히 자신의 신원과 배경에 솔직하지 않은 경우, 이는 거래 관계 종료 사유로 충분하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파에사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검지는 없어도 이름은 두 개

2015년 3월,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클라우스 몰너(Claus Mollner)’라는 인물이 거의 30년 동안 MF의 고객이었던 것이다. 관련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페이스북(Facebook), 가계도, 언어적 검수(linguistic review) 자료 가운데 뜻밖의 자료를 찾아내면서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 자료들은 델라웨어 대학교에 있었다.

이 자료들에는 “클라우스 몰러(베르너 마우스(Werner Mauss)가 이용한 이름)”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008 요원(Agent 008)’ 또는 ‘검지 없는 남자(The Man of Nine Fingers)’로 알려 진 몰너, 즉 마우스는 ‘독일 최초의 비밀요원’으로 일컬어 지고 있다. 지금은 은퇴한 마우스의 웹사이트에는 ‘100개의 범죄 조직을 소탕(smashing 100 criminal groups)’ 작업에서의 그의 역할이 무용담처럼 설명되어 있다.

1966년에 콜롬비아 당국이 게릴라와 공모하여 여성을 납치하고 몸값의 일부를 빼돌린 혐의로 마우스를 기소했다. 마우스는 납치를 주도한 것이 자들이 반군 세력이 아니었으며 자신은 당시 몸값을 절대 빼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모든 작전은 독일 정부 기관과 관련 당국의 협조 여부에 영향을 받는다”고 밝혔다.

마우스의 실명이 MF의 내부 문건에 언급된 적은 없지만, 수 많은 자료들을 통해 파나마에 있는 그의 기업 네트워크를 자세히 알 수 있다. 적어도 두 개 회사가 독일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마우스의 변호사는 이번 탐사보도팀(ICJI, Sz, DNR, 등)에게 마우스는 사적인 이유로 역외 회사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면서, 그와 관련된 모든 관련 기업과 재단의 설립 목적은 “마우스가(家)의 재정적 이익(financial interests)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기업과 재단은 모두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고 그에 따른 세금도 모두 납부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MF의 내무 문건에 등장한 일부 기업은 평화적인 “인도적 지원 활동” 및 “병원, 수술 장비, 대규모 항생제 등 구호 물품 전달”을 위한 인질 협상 시에 이용됐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문건에 따르면, 2015년 3월 MF 직원이 구글 검색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몰너와 마우스의 연관성을 발견했다. 그러나, MF가 마우스의 실제 정체를 파악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그의 기업은 2015년도 까지 MF의 장부에 기록되어 있었다.

MF는 몰너든 마우스든 이름에 상관없이 자사의 고객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1988년 몰너를 인터뷰했던 기자로서 “베르너 마우스의 신분 은폐 능력은 그가 지닌 비밀 병기(capital)”였다고 생각한다.

※ 기사 원문 보기(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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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에서 엽기적인 폭행과 가혹행위가 장기간 일상적으로 발생했지만 내부에서 묵인, 은폐돼 온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결과 드러났다. 지난 8월엔 해병대사령부의 감찰반이 와서 피해 병사들의 진술까지 받아갔지만 두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최근 해병대사령부가 운영하는 해병대 휴양시설인 덕산스포텔, 일명 덕산대에서 복무 중인 해병대 병사들의 폭행 및 가혹행위 피해 자술서를 입수했다. 이 자술서엔 덕산대 부사관들이 사병들을 상대로 자행한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행위를 하거나 이를 묵인한 과정 등이 상세히 기재돼 있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뚝배기 집게로 병사 혀 잡아 당기기, 주방용 가위를 병사 입과 귀에 대고 자른다고 위협하기, 병따개를 손가락에 끼워 꺾는 동안 웃으며 노래 1절을 부르기, 목공용 공구인 타카를 병사를 향해 쏘기, 빨래 건조대 봉에서 뽑은 철심을 허벅지나 팔에 튕기기, 술을 마시고 들어와 병사의 머리에 야구배트를 크게 휘두르기, 글러브를 끼고 권투를 하듯 병사 때리기 등등.

이 같은 폭행과 가혹행위가 상습적으로 발생한 경기도 화성 해병대사령부 덕산스포텔은 해병대사령부와 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피해 병사들의 피해 진술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덕산스포텔을 찾았다.

객실과 연회장, 골프장 등이 딸린 군 복지시설, 해병대원 20명 복무

서울에서 약 두 시간 거리. 산비탈에 걸쳐 있는 덕산스포텔은 해병대사령부 본부대 본부중대가 직접 관리하는 군 복지시설이다. 이 곳은 주말이면 발디딜 틈이 없는 이른바 핫플레이스다. 바로 앞에는 골프장이 있고 노래방, 목욕탕, 한실과 양실을 겸비한 객실, 그리고 150명은 거뜬히 수용하는 연회장과 룸, 식당이 들어선 4층 복합건물이다. 현역, 전역 해병대 관계자뿐 아니라 민간인도 10% 부가세를 붙인 가격이면 이용할 수 있다. 음식과 주류도 저렴하고, 객실 이용료도 보통 휴양시설보다 싼 편이다. 그래서인지 3성 장군인 해병대사령관부터 가족 단위 민간인들도 많이 오는 곳이다.

▲ 주말 저녁은 대부분의 테이블이 가득 찰 정도로 많은 전현직 군인들이 회식장소로 찾는다.

▲ 주말 저녁은 대부분의 테이블이 가득 찰 정도로 많은 전현직 군인들이 회식장소로 찾는다.

덕산스포텔은 상사 1명, 중사 3명 등 4명의 부사관과 사병 16명, 그리고 민간인 군무원까지 총 25명이 근무한다. 병사들은 폭행과 가혹행위가 주로 이 모 중사(26)에 의해 자행됐다고 진술했다. 부사관 4명의 직무는 관리관, 시설관, 보급관, 보좌관으로 나뉜다. 이 중사는 시설관이다. 그는 올해 봄 덕산스포텔으로 근무 명령을 받았다. 이 중사는 덕산스포텔에 빠르게 적응했고 “내가 이곳의 실세”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혀 잡아당긴 집게로 주방 일 해야 하는 병사들

병사들의 피해 진술서에는 피해 당사자로서 쓴 진술도 있고, 동료 병사가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내용도 담겨있다. 취재진이 병사들의 피해 진술서 수십 장을 분석해보니 이 중사가 자행한 폭력의 유형은 크게 세가지로 나타났다. 구타와 도구를 이용한 폭력 및 가혹행위, 그리고 성희롱이 섞인 언어폭력이었다. 특히 조용하고 겁이 많은 병사들이 주요 폭력의 대상이었다. 다음은 한 피해 해병의 진술서 내용이다.

나는 과업지 후임과 같이 항상 폭행을 당했다. 주먹과 팔꿈치는 기본이고 때로는 도구를 이용해 때리기도 한다. 도구는 가위, 집게, 야구방망이, 가느다란 철봉 타카 등 많다.

뚝배기 집게

▲ 뚝배기 집게

▲ 뚝배기 집게

또 다른 피해 병사는 지난 4, 5월 경 이 중사와 단 둘이 사무실에 있다가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한다. CCTV는 물론 다른 병사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중사는 뚝배기 집게를 들고 이 병사의 혀를 집게로 잡아 당겼다. 다음은 진술서 내용이다.

이oo 중사가 혀를 내밀라고 하여 혓바닥을 잡고 당겼습니다

취재진은 덕산스포텔 현장 취재 과정에서 이 병사를 직접 만나 당시 상황을 재확인했다. 그는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증언했다.

혀를 내밀라고 해서 이렇게 내밀었더니 더 내밀라고 해서 (집게로) 집어서 당겼습니다.

가위

▲ 덕산스포텔 주방용 가위

▲ 덕산스포텔 주방용 가위

지난 8월 중순 쯤 덕산스포텔 프론트에서 근무 중이던 한 피해병사는 이 중사에게 가위로 위협을 당했다. 점심을 같이 먹지 않고 먼저 먹었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밥을 같이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술과 귀에 가위를 들이대며 잘라버리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당시 장면을 목격한 동료 사병은 이렇게 진술했다.

가위로는 후임의 신체 일부를 자른다고 했습니다.

병따개

▲ 덕산스포텔 병따개

▲ 덕산스포텔 병따개

병따개로 괴롭힘을 당한 병사도 있었다.

상습적으로 병따개를 손가락에 끼워서 꺾습니다. 다른 병사들도 많이 당했습니다.

병따개 가혹행위는 다른 병사들도 여러번 목격했다.

병따개로 손가락을 꺾어서 당한 병사가 아파하면 웃으면서 중사 이OO는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노래가 1절이 끝날 때까지 계속 손을 꺾고 있는 거죠.

야구배트

▲ 덕산대 가혹행위에 사용된 야구배트

▲ 덕산대 가혹행위에 사용된 야구배트

알루미늄 야구배트도 동원됐다. 이 중사는 야구방망이로 병사들의 팔, 다리는 물론 머리도 가격했다고 한다.

야구방망이로 엉덩이와 팔을 가격했습니다. 정말로 다른 후임, 선임도 있는데 퍽퍽 소리나서 이걸 이렇게 세게 때리냐고 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야구배트를 휘둘렀다는 목격 병사의 증언이다.

술을 먹고 스포텔에 온 이OO 중사가 시설근무를 서고 있는 000 해병에게 욕설과 야구배트로 머리를 때리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고..

빨래 건조대 철심

▲ 덕산대 가혹행위에 사용된 빨래 건조대 철심

▲ 덕산대 가혹행위에 사용된 빨래 건조대 철심

가느다란 철봉은 빨래 건조대의 살인데 허벅지를 주로 때렸습니다.

쇠막대기로 팔뚝을 휘둘렀습니다. 아프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너 번 더 때렸습니다.

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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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스포텔 가혹행위에 사용된 ‘타카'

▲덕산스포텔 가혹행위에 사용된 ‘타카’

목공용 공구인 이른바 ‘타카’는 벽에 포스터를 붙일 때나 건물 벽을 세울 때 사용한다. 가혹행위에 사용된 ‘타카’는 디귿자 형 심을 박는 일반 타카와 바늘처럼 생긴 심을 쏘는 에어 타카 등 2종류였다. 방아쇠를 당겨 총을 쏘듯 타카를 병사들에게 쐈다고 한다.

타카라고. 스테이플러같은 것인데, 좀 센 스테이플러인데, 그것을 사람한테 쏘는 거죠. 일반 타카는 스테이플러가 좀 센 정도인데 콤프레셔 연결해서 쓰는 타카도 있는데 그건 캔음료에 쏘면 캔음료가 빵꾸날 정도의 강도인데 그걸 사람한테 쏘는 거죠. 총처럼.

뉴스타파 취재진은 덕산스포텔 현장에서 시설관 이 중사를 만났다. 그는 병따개와 야구배트, 타카로 병사들에게 가혹행위를 한 사실을 시인했다. 이유를 묻자 병사들이 “말을 듣지 않고 장난을 쳐서”라고 답했다.

새벽에 술 취해 들어와 근무 중인 병사에게 가족 성희롱도

해병대사령부 덕산대 내에서 일어난 언어폭력, 성희롱 발언도 병사들을 괴롭혔다.

새벽 근무를 서고 있는데, 중사 이OO와 중사 최OO가 술에 취해 스포텔에 왔습니다. 노래방을 이용하고 새벽 3시 30분에 누나를 소개시켜 달라는 말을 꺼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안된다고 했지만 계속해서 요구를 하길래 저는 피곤하고 귀찮은 마음에 누나에게 물어보겠다며 상황을 넘겼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마무리 되는 듯했으나 중사 이OO가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손동작을 취하면서 “네 덕에 한 번 하겠네”라며 성희롱을 했습니다. 저는 순간 너무 화가 나서 표정을 굳히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피해병사 진술서

방관과 은폐, 그리고 제보

덕산스포텔에서 근무하는 해병 부대의 책임자는 관리관이라는 보직을 맡고 있는 장 모 상사다. 취재진과 만난 그는 이곳에서 일어난 폭력과 가혹행위 일체를 부인했다. 그는 병사들과 “매일 고충상담을 하고 있다”면서도 병사들이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중사 오OO과 상사 장OO 모두 아무 말 없이 넘어가고 방관만 하며 상황을 회피하고 넘어가려고만 했다.

피해병사 진술서

덕산스포텔 근무 해병 16명은 이렇게 절망 속에서 군생활을 지속했다. 그런데 지난 7월, 박찬주 육군 대장의 이른바 공관병 갑질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여론이 비등해졌고, 8월 말 덕산스포텔에도 해병대사령부의 감찰반이 나왔다. 사령부 감찰팀은 병사들에게 “우리는 사령관 직속 기관이기 때문에 다른 간부나 누가 터치하는 게 없고 바로 사령관님한테 보고한다. 우리가 다 해결해줄테니 문제 되는 것들 다 써라”고 말했다고 했다. 병사들은 설문조사지를 받아 들고 꼼꼼하게 부사관들의 폭행 및 가혹행위와 간부들의 근무태도 불량, 갑질 등을 작성해서 사령부 감찰팀에 제출했다.

병사들은 곧 변화가 오길 기대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병사들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덕산스포텔 현장 취재 중 마침 연회 차 이곳을 방문한 전진구 해병대사령관을 만날 수 있었다. 그에게 덕산대 감찰 결과를 보고받았는지 물었다. 하지만 전진구 사령관은 “지금 처음 듣는 얘기”라며 “폭력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전 사령관은 덕산스포텔에서 음식 조리와 서빙, 시설 관리 등을 담당하는 해병대원들이 상습적인 폭행과 가혹행위,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하고 있는 시기에도 각종 모임과 행사, 연회 등을 위해 이곳을 자주 방문했다. 해병대는 뉴스타파 취재가 시작되고나서야 덕산대 가혹행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해병대는 피해 병사들을 보호하고, 부사관들의 폭력과 묵인을 제대로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고 바꾸고 싶어서. 솔직히 걱정도 많이 했고 지금도 걱정이 되는데. …알려진다면 제대로 된 조사나 제대로 된 처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사령부가 지척에 있는 작은 해병 부대에서 가혹행위에 시달려온 병사들이, 도저히 내부에서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두 달이 넘게 고민하고 피해 진술서를 쓰며 외부에 제보를 결심하고 결행했던 날, 뉴스타파에 보내 온 간절한 바람이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군내 폭력과 가혹행위 관련 제보를 뉴스타파 홈페이지를 통해 받고 있다.


취재: 박종화, 박대용
촬영: 정형민, 김기철, 오준식
편집: 윤석민, 박서영
디자인: 하난희
C.G.: 정동우

수, 2017/10/25-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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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페이퍼스 프로젝트’를 주도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의 부대표 마리나 게바라를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가 만났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프로젝트 시작 시점에서 이뤄진 이 인터뷰에서 마리나 게바라 부대표는 국제협업 저널리즘의 중요성, 데이터 저널리즘, ICIJ의 향후 계획 등을 밝혔다.

화, 2017/11/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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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안상수 의원이 정부 보도자료와 연구보고서를 출처 표기 없이 통째로 베껴 자신의 이름으로 정책자료집을 발간했고 이 과정에서 발간 비용으로 국회예산 890만 원을 사용했다는 최근 뉴스타파 보도와 관련해, 시민단체가 성명을 내고 안상수 의원은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베낀 정책료집에 쓰인 예산을 전액 반납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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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평화복지연대는 오늘(10월 18일) 성명을 내고 정부 보도자료와 다른 기관의 자료를 베끼고 국회 예산까지 사용해 정책자료집을 만드는 것은 저작권법 등 실정법을 위반한 것뿐 아니라 세금을 부정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안 의원의 정책자료집 베끼기 행태는 국회의 대표적인 적폐라고 비판했다.

인천평화복지연대는 또 인천 시민들을 실망스럽게 하고 더 큰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뉴스타파와의 취재과정에서 보여준 안상수 의원의 태도라고 지적하고, 안 의원이 ‘미친놈’, ‘별놈 다보겠다’라며 막말을 하고 ‘허가받고 (발간)했다”며 취재 기자에게 거짓 해명을 한 것에 대해서도 국민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안상수 의원

시민단체는 안상수 의원은 베껴 만든 것으로 확인된 정책자료집의 발간 비용 890만 원 외에 전체 정책개발비용이 어디에 어떻게 쓰여졌는지 근거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또 다른 자료를 베껴 정책자료집을 만들면서 사용한 국회예산에 대한 환수운동과 함께 법적 대응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 2017/10/18-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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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탐사보도협회 IRE(Investigative Reporters & Editors)는 1975년 미국의 저명한 탐사보도 기자들이 모여 조직한 비영리단체다. 매년 미국 전역을 돌며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이제 이 IRE 컨퍼런스는 전세계 탐사보도 언론인들의 제전이 됐다. IRE 컨퍼런스에 참여한 기자들은 그간의 취재성과와 새로운 취재기법을 공유한다.

올해 IRE 컨퍼런스(6.21-6.25)가 열린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시는 IRE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40년 전, IRE 창립회원인 애리조나 리퍼블릭 지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돈 볼스가 범죄 조직과 정치권의 유착문제를 취재하다 의문의 차량폭탄테러로 사망한 곳이기 때문. IRE는 돈 볼스 기자를 추모하기 위해 10년마다 이곳에서 컨퍼런스와 함께 추모행사를 갖는다. 올해 컨퍼런스에는 전세계에서 1,500명이 넘는 기자들이 참여했다.

돈 볼스 기자 사망 이후 미국 전역에서 40명 가까운 탐사보도 기자들이 피닉스 시로 모였다. 돈 볼스가 못다 한 취재를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들은 일명 ‘애리조나 프로젝트’를 시작, 수많은 기사를 쏟아내며 진실을 파헤쳤다. ‘애리조나 프로젝트’는 이후 언론의 존재 이유, 언론 자유의 의미를 보여준 역사적인 사례가 됐다.

더그 하디스 IRE 대표는 이번 컨퍼런스에 참석한 뉴스타파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탐사보도는 어둠 속에 빛을 비추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밝혀내는 작업이다. (탐사보도 기자들이) 서로 협력하고 배우면서 저널리즘을 향한 위협이 우리를 막지 못하고 기사도 막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애리조나 프로젝트’와 IRE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취재 : 한상진
영상구성 : 정형민

금, 2017/08/0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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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세월호 화물칸에 실렸던 차량들의 블랙박스 영상을 입수해 분석했다. 그 결과 세월호 침몰 원인은 일각에서 제기한 선체 외부 충격이나 내부 폭발 등이 아닌 배 자체의 문제로 좁혀졌다. 참사 당시의 세월호는 정상적인 방향 전환, 즉 급격히 방향을 꺾지 않은 상태에서도 선체가 크게 기울어져 원위치로 돌아올 수 없을 만큼 복원성이 좋지 않았다는 뜻이다. 블랙박스 영상에 나오는 단서들을 토대로 세월호 침몰 원인 조사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 정리했다.

예측 넘어선 급격한 횡경사…AIS 항적 납득 가능해져

복원된 블랙박스 영상들은 세월호 침몰 원인과 관련해 몇 가지 사실들을 확증하게 한다. 외부 충돌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 그리고 횡경사와 화물의 쏠림은 그동안 추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급격하게 진행됐다는 점이다.

이 같은 사실들은 참사 당시 세월호의 움직임이 기록된 유일한 자료인 AIS 항적 데이터와도 부합한다. 화물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시작된 오전 8시 49분 26초 직후 AIS 데이터를 보면, 우현으로 변침하고 있던 세월호의 선수 방향 변화가 점점 심해져 처음으로 초당 1도까지 변화하기 시작하고 있다.

8시 49분 26초 직후 AIS 데이터

횡경사가 21도에서 47도까지 급격하게 커졌던 오전 8시 49분 36초부터 59초 사이의 구간에 상응하는 AIS 데이터를 보면, 선수각은 14초 동안 178도에서 234도까지 급격히 꺾여 무려 초당 2.3도라는 엄청난 변화를 보인 것이 확인된다.

8시 49분 36초 이후 AIS 데이터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기존 연구와 조사에서는 당시 선체가 이처럼 급격한 선수각 변화를 일으킨 것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세월호에 실렸던 화물과 평형수, 청수, 연료 등 참사 이후 조사된 모든 수치를 대입해 계산해봐도 선체가 이렇게 급격히 기울게 할 정도로 나쁜 복원성 수치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원된 블랙박스 영상에서 확인된 사실들은 AIS 데이터가 보여주는 세월호의 항적이 실제로 가능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영상을 본 임남규 목포해양대 항해학부 교수는 “영상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당시 선체가 20도, 30도 정도까지 단번에 기울었고, 그 사이에 일부 화물의 이동이 있었다는 것인데, 기존의 AIS 항적 데이터의 변화하고도 일치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정도라면 그동안 알려졌던 것보다 당시 세월호의 복원성 수치가 훨씬 더 나빴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알려진 것보다 훨씬 나빴던 복원성… 잘못 입력된 데이터는 뭘까

이에 따라 이제부터의 세월호 침몰 원인 분석은 지금까지와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예측을 초월한 급격한 초기 횡경사가 실제로 확인된 만큼, 당시 세월호의 복원성도 그 정도로 나빴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까지 세월호 침몰 당시의 복원성을 계산하는 수식에 대입했던 화물과 평형수, 연료유, 청수 등 각종 중량 데이터들이 실제와 거리가 있었다는 뜻이 된다. 결국 이제부터의 조사는 이 데이터들을 다시 정확히 찾아내는 데 집중돼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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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현재까지 세월호 선체에서는 특조위의 화물조사에서도 파악되지 않았던 포크레인 2대와 오토바이 1대, 컨테이너 1개 등이 더 수습됐다. 기존의 복원성 계산에 쓰인 화물량 데이터가 정확하지 못했다는 직접적인 증거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복원성 값에 큰 영향을 미치는 평형수와 청수, 연료유 등의 양도 기존 데이터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강원식 1등 항해사와 박기호 기관장이 검경 조사 과정에서 진술한 수치를 그대로 인정하고 복원성 계산에 활용했지만, 이제는 이들에 대한 재조사도 필수적인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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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3년 반 만에 비로소 복구된 블랙박스 영상이 세월호 침몰 원인을 실체적으로 규명할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는 앞으로 더 많은 블랙박스가 수습돼 복구될수록 더 정밀한 조사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취재 : 김성수
영상취재 : 김기철
영상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금, 2017/09/1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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