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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동향 칼럼] 복지구조조정 속에 사라진 기초보장의 권리

[복지동향 칼럼] 복지구조조정 속에 사라진 기초보장의 권리

익명 (미확인) | 금, 2015/04/10- 15:52

복지구조조정 속에 사라진 기초보장의 권리

 

남기철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근 공무원 연금, 무상급식 등 사회복지와 관련된 몇몇의 이슈가 연일 뉴스의 맨 처음을 장식할 만큼 뜨거운 사회적·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공통점이라면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던 기존의 복지 프로그램에 대해 보수적 정치세력이 복지축소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절대적 빈약성 때문에, 새로운 복지제도나 프로그램을 도입하거나 확충하려는 시도가 쟁점화되어왔던 것과는 정 반대의 양상이 연출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연달아 직면하는 공통적인 사회복지 상황이다. “모든 노인에게 2배의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겠다”던 공약으로 노인층의 스타가 되었던 대통령의 행적으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반복지적 움직임이다. 물론 이 기초연금 공약도 허공에 날아가버린지 오래이다. 연금이나 학교급식의 이슈에 비해 다소 조용히(?) 진행되어버린 또 하나의 주요한 이슈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것이다. 불행히도 이 역시 복지의 보강이라는 방향이 아니라 복지의 후퇴라는 방향으로 진행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현 정부의 일관성을 보여주는 사건이라 하겠다. 

 

지금 이 순간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그간의 최저생계비와 연계된 통합급여체계의 시대를 뒤로 하고, 개별급여와 ‘급여기준선’에 토대한 제도체계로 변화하고 있다. 얼핏 듣기에 공공부조제도의 전문적 기술사항의 변화로 보인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간 시민사회에서 기초보장제도의 개혁을 요구해왔던 결과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 이후 수급자와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했던 비수급 빈곤층 사이의 공공지원의 격차, 광범위한 사각지대의 문제, 최저생계비를 절대적 방식으로 계측하면서 계속 그 수준이 하락되어왔던 문제, 비현실적으로 낮았던 주거급여 등의 문제에 대한 비판들과 개선요구가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과 현재의 제도개편 방향은 시민사회가 요구해왔던 개선과는 전혀 다른 내용과 방향이며 너무나 개탄스러운 것이다.

 

첫째, 통합급여에서 개별급여로 전환되었다고 정부는 표현한다. 그런데 애초에 개별급여 주장이 나타났던 이유는 수급자가 아닌 차상위층 등의 경우에도 (생계급여는 받지 않지만) 주거나 의료 등의 영역에서 폭넓은 사회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번 개편은 주거나 의료급여의 확대라기보다는 생계급여의 대상과 보장수준을 축소하는 결과로 귀결되어버렸다.

 

둘째, 대상자 선정 기준에서 절대빈곤에서 상대빈곤으로의 방식전환을 표방하였다. 기존에 시민단체에서는 (수백 가지의 물품가격을 더한 전물량방식으로 측정하는) 절대빈곤선 방식의 최저생계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던 바 있다. 이는 수급자 혹은 빈곤층의 생활과 필수품에 대해 ‘비현실적으로 규격화’하는 방식이라 문제가 있고, 그 수준 역시 너무 낮아서 일반적 생활 모습과의 격차가 커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개편은 상대빈곤을 표방하였다고 하지만, 중위소득 대비 너무 낮은 수준을 그 기준으로 삼고 있다. 또 중위소득 산정방법마저도 예전에 일반적으로 논의해왔던 자료들과는 다른 방식을 채택하는 꼼수를 부렸다. 여러 편법을 동원하여 결국 상대빈곤선 측정방식을 도입하되, 그 수준은 매우 낮은 수준으로 제약하고 있다. 결국 상대빈곤방식으로의 전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셋째, 주거급여를 독립된 방식으로 도입하였으나 그 실제 운영에서 별도의 전달체계 라인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 사실상 공급자 이해관계 위주의 개편이 되고 있다. 이는 비용의 문제, 일선 현장성이 없는 제도의 운영 등 부작용을 유발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넷째, 가장 중요한 문제로 권리성의 삭제이다. 그간 학교의 강의 등에서, 15년 전 생활보호제도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로 바뀌었을 때, 그 가장 큰 의미는 국민이 최저생계비 이상의 생활수준을 보장받도록 한다는 근대적 권리성 공공부조제도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라고 교육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최저생계비가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개념으로 바뀌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임의적 복지프로그램 중 하나로 전락하였다. 최저생계비 이상의 보장수준에 대한 국민의 권리성이라는 부분이 사실상 없어졌고, 예산 논리에 따라 얼마든지 국가가 축소나 철회시키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이번 개편은 결국 제도개편의 필요성이 제기된 원래의 방향(실질적 보장수준의 강화, 사각지대의 해소)에 대해 접근해가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궤도를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궤도의 이탈은 빠른 시간 내에 바로잡아야 한다. 이탈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야할 길과 멀어져 바로잡을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우리나라의 빈곤문제에 대응하는 소득보장 체계가 가지는 특성 중의 하나가 공공부조제도 비중이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이 개선은 공공부조제도의 지원이 필요한 계층을 줄여가는 소득보장 체계의 정상화, 즉, 연금제도, 각종 수당, 임금체계 등의 개편과 보강을 통해서 관철되어야지 무조건 공공부조제도의 축소를 통해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이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은 광범위한 복지사각지대의 빈곤층에 대한 복지지원 내실화를 시도하였다기 보다는 명백하게 “불필요한(?) 복지지원의 구조조정과 축소”를 겨냥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세 모녀법’이라는 범주 안에 이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을 섞어 넣었다. 민생지원이라는 범주에 포함될 수 없는 개악임에도 불구하고 현란한 수사를 사용하여 마치 ‘보강’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이번 개편내용을 기계적으로 적용해보아도 세 모녀 사건은 예방이 가능하지 않다. 세 모녀 사건을 포장지 삼아 오히려 복지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시민사회와 친복지 진영은 이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더 큰 다른 유사한 이슈들에 묻혀 빈곤층에 집중된 사안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권리성 해체는 정부와 보수정당의 이해관계 속에 무난히 진행되어 버렸다.

 

시민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몇 년 전까지 시민사회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과 관련하여 광범위한 사각지대의 해소와 보장수준의 향상을 요구해왔다. 이러한 기조 속에서 최저생계비 상승과 측정방식 변화, 부양의무자 기준의 철폐, 탈수급 저해요인인 차상위층 이상에 대한 부분적 지원방식(개별급여)의 보강이나 소득공제제도 보강을 요구해왔다. 허무하게도 이번 정부의 제도개편은 이런 흐름과는 정반대의 구조조정 측면에서 ‘개별급여‘와 ’최저생계비‘ 이슈를 다루었다. 그리고 국민의 복지권이라는 것을 해체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정부는 행복이음 등 전산망을 통해 부정수급을 줄이겠다는 감시적 전산망 운영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당분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관련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제도개선 요구의 기초가 되었던 ‘권리성 공공부조’의 기반 자체를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특정 부분에서 보장수준을 높이려 했던 미시적 활동에 집중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현 정부는 복지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비용의 축소’와 ‘권리의 해체’를 도모하고 있다.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권리성을 ‘회복’하려는 시민사회는 기초보장제도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보다 넓은 연대의 활동에 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지향 혹은 복지국가운동이 선별주의적 제도의 전형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살리는 가장 좋은 길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에 많은 것을 위임할 수는 없다. 정부와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불행히도 야당 역시 최근의 복지의 권리 해체 상황에서 보수적인 프레임의 한계를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었기에 신뢰는 극히 제한적이다. ‘세 모녀’를 혹은 심지어 ‘장그래’를 살리려는 진정성은 정치가 직업인 현재의 그 누구에게서도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구도의 정당정치에서 수단을 찾고자 집중하기보다는 새로운 여론화의 밑바닥 작업을 더 필요로 한다. 국민들의 사회적 이슈화를 위한 힘으로 보수 정치권을 압박하고 견인해야 할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시민사회의 활동이 그간 너무 정치권과 입법부와의 소통기술에만 집중되어 있었던 대가를 지금 치루고 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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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집다운 집’에 살 수 있기를

 

김승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경기아동옹호센터 소장

 

지난 10월 24일 국토교통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법무부 등 관계부처 합동 「아동 주거권 보장 등 주거지원 강화 대책」 발표가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있었다. 사각지대가 없는 더 촘촘한 복지망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담은 「꿈을 키우고 꿈을 찾는 집」 선포식도 함께 진행되었다. 이 대책은 주거복지로드맵(2017.11) 발표 이후 취약계층·고령자 주거지원방안(2018.10)의 성과와 수요자·시민사회단체 등의 의견수렴을 통해 보완된 ‘지원방안 2.0’이다.

 

특히 이번 발표는 「아동 주거권 보장」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정부 최초의 정책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그동안의 아동에 대한 주거복지정책은 다른 정책들에 비해 우선순위 밖에 있었다. 사회통합형 주거사다리 구축을 위한 주거복지로드맵의 생애단계·소득수준별 맞춤형 지원방안에서도 청년, 신혼부부, 고령층에 대해서는 향후 추진계획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만 아동가구의 경우 저소득·취약계층 내 빈곤아동가구 지원으로만 명시돼 있고 구체적인 계획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아동주거빈곤 규모는 97만 명이다. 이 가운데 10명 중 1명은 더욱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비좁은 단칸방에서 다수의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거나 방 안의 가득한 곰팡이로 폐렴 등의 질환을 달고 산다. 또,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주변의 관공서 화장실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림 1-1> 전국·서울·경기도의 아동주거빈곤 현황

<그림 1-1> 전국·서울·경기도의 아동주거빈곤 현황https://lh4.googleusercontent.com/FrJaah4bGAmBXhf-MCn0mBc_Ok9rmOalXMn1T0... />

자료: 통계청, 2015, 인구주택총조사

 

아동이 적절한 주거 환경을 제공받지 못하는 것 즉, ‘주거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은 ▲안전권 ▲건강권 ▲발달권 등 다른 권리도 함께 침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보호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그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포함한 시민사회단체는 정책에서 소외된 아동의 주거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또한 열악한 주거환경이 아동들에게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왔다.

 

그 결과, 지난 2018년 3월, 2019년 7월 주거취약계층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 지원 대상에 최저주거기준 중 필수설비미달1) 아동가구, 최저주거기준 중 용도별 방 개수 미달인 아동가구, 출산예정의 미혼모가 포함되었다. 해당 가구는 보증금 50만 원과 주변시세 30% 금액의 월 임대료로 매입임대주택이나 전세임대주택 등의 공공임대주택에 우선 입주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지난 4월 주거기본법 제3조 3항의 주거지원이 필요한 계층에 ‘아동’이 포함되었고, 10월 「아동 주거권 보장 등 주거지원 강화 대책」 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이번 정책은 특히 아동의 주거권을 언급한 첫 번째 정책으로서 의미가 크다. 아동주거정책을 시혜적 관점이 아닌 권리로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발표라는 점에서 기존의 대책과 다르다. 기존 신혼부부, 청년, 고령자 등에게만 별도로 있던 공급계획이 다자녀 아동가구로 확대되는 것이다.

 

이번 정책에는 아동 및 비주택 거주자 등 주거지원이 시급한 대상가구에 2022년까지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3만 가구2)를 공급한다는 것과 금융지원 및 아동돌봄정착 등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하고 수요를 추가 발굴하고자 하는 계획 등을 담고 있다. 아동가구의 경우 무주택·저소득이면서 최저주거기준 미달 주택에 거주하는 두 자녀 이상 가구가 적정 규모의 주택에서 살 수 있도록 정부가 전세, 매입 자금 지원을 늘려서 1만 1천 가구를 보급하고 주택구입 및 전세자금 대출시 금리를 인하하기로 했다. 또한 다자녀 가구가 사는 공공임대주택 안에 돌봄 공간을 조성해 주택 공급뿐 아니라 아동의 정서 발달도 지원한다. 보호종료아동3) 6천명에게는 지원주택의 유형을 기존의 전세임대에서 매입임대·건설임대 등으로 다양화하는 한편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한 비주택거주자에게도 주택공급 뿐만 아니라 이주 및 정착까지 지원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지자체를 통해 오는 연말까지 공공임대주택 수요조사를 실시 후 2020년부터 공급에 들어갈 전망이다.

 

<그림 1-2> 2019 아동주거권 보장 등 주거지원 강화대책

<그림 1-1> 전국·서울·경기도의 아동주거빈곤 현황https://lh4.googleusercontent.com/Akl3rX8Raebf_qcYsb0IpJJMyAa4h1KdQeoHX4... />

자료: 국토교통부

 

특히 이번 대책에서는 탁상행정이 아닌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듣고 여러 차례 현장 방문을 통해 수요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직접 듣고 반영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었다.

 

시흥시 정왕지역은 아동주거 빈곤 비율이 전국 1위이나 외관상으로는 주거 빈곤 형태의 확인이 어려운 지역이다. 하지만 실제로 집 안을 들어가 보면 불법 쪼개기를 통해 원룸으로 개조되어 여러 명의 아동과 부모가 함께 살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 과도한 월세부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LH가 매입을 통해 매입임대주택을 확보하려 했지만 구입할 수 있는 조건의 주택이 거의 없었으며, 그나마 매입할 수 있는 조건의 주택 또한 대부분 원룸이었다. 국토부와 LH 관계자들은 적합한 주택 매입이 어려운 상황을 파악하고 원룸 주택을 매입·리모델링하여 2룸형 주택으로 개조하는 공공리모델링 시범사업을 정왕동에서 시범사업으로 추진하게 되었고, 현 대책에도 포함해 발표했다. 이를 통해 정왕지역의 아동가구 중 적은 수이나 전학 없이 기존 살던 지역에서 매입임대주택으로 이사해 자신의 방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기존의 법령이나 제도 안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림 1-2> 공공 리모델링 시범사업<그림 1-2> 공공 리모델링 시범사업https://lh5.googleusercontent.com/8-AXpee30DOc-cy0qivEYLXcvY97MGwf-SY8_5... />

 

두 번째로 다자녀 가구유형을 신설한 것이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전세임대제도는 신혼부부, 청년, 소년소녀가정, 기존전세임대제도 등으로 구분된다. 이중 신혼부부와 청년을 대상으로 한 전세임대지원금은 수도권 기준으로 1억2천만 원이나 소년소녀가정과 기존 전세임대제도의 임대지원금은 이보다 적은 9천만 원이다. 가구원 수가 많은 아동가구의 경우 신혼부부와 청년보다 더 넓은 면적과 방이 필요하지만 9천만 원으로 집을 구하다보니 면적이나 방의 개수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인 집을 구하거나 반지하 또는 옥탑 등의 주택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대책에서는 아동 성장에 필요한 적정 주거면적을 확보할 수 있도록 매입·전세임대 ‘다자녀 유형’을 신설하고, 호당 지원금액을 인상하여 자녀수에 적합한 면적(46~85㎡)을 갖춘 2룸 이상 주택을 지원한다. 수도권의 경우 아동 2명인 가구는 1억2천만 원까지 전세임대금을 지원 받을 수 있고, 아동 3명부터는 한 명당 2천만 원씩 추가 지원받아 임대주택을 구할 수 있게 된다. 매입임대 주택도 호당 구입단가가 인상되어 기존 생활권 내에서 다자녀 가구가 살기에 적합한 전세·매입임대주택 입주가 용이해졌다. 대책 발표 시 김현미 국토부장관이 언급한 “어린이도 성별에 따른 독립된 공간을 보장받고 갑작스러운 전학으로 친구들과 헤어지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정책이라 할 수 있겠다.

 

<표 1-1> 전세임대, 매입임대의 호당, 지역별 단가

<표 1-1> 전세임대, 매입임대의 호당, 지역별 단가https://lh3.googleusercontent.com/a83L1i4rTmHNvYgDvppU0BBEpPiFyZykEHWfHA...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과 향후 과제는 남아있다. 첫째 이번 발표의 정책대상이 아동가구 중 두 자녀 이상의 다가구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최저주거기준미달인 1인 아동가구, 두 자녀 이상이나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지 않는 지하, 옥탑방, 구옥 등에 살고 있는 아동가구는 해당 되지 않는다. 현재 최저주거기준은 필수설비미달과 가구원수에 따른 방수, 면적만으로 미달여부를 측정하고 반지하, 옥탑 등의 구조, 성능, 환경 등에 따른 최저주거기준 미달여부는 판단하지 않는다. 때문에 반지하, 옥탑, 구옥 등과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는 아동가구의 경우 최저주거기준 미달이라는 조건에 맞지 않으면 지원받기 어렵고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 또한 두 자녀가 아닌 최저주거 미달가구인 경우 여전히 기존의 공공임대물량 한도 내에서 경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사례1

반지하 방 2칸, 거실에서 부모 자녀 총 6명(부모, 자녀4-초ㆍ중ㆍ고) 거주, 계약형태는 전세(보증금 2,400만 원), 반지하이다 보니 집안가득 핀 곰팡이로 인해 아이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이고 아버지 소득이 적은편이나 수급대상이 아니어서 전세나 매입임대 1순위가 아님. 또한 거실이 방으로 포함되어 최저주거기준 중 방 수 미달의 대상으로 분류되지 못하며 면적 미달에도 해당되지 않음.아동주거빈곤 사례#1https://lh4.googleusercontent.com/k5x4tkcSgfLTXvWW7vfkBSwGCQ7nYBqyNqFXt_... />


 

둘째, 기존 공공임대입주자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기존의 공공임대인 영구임대, 전세임대 등에 거주하고 있는 아동 가구 중 최저주거기준 미달인 환경에서 거주하고 있는 아동들이 있다. 임대주택의 과밀한 주거환경에서 지내거나 정부의 지원금으로 마땅한 전세임대주택을 구하기 어려워 반지하에 거주하기도 한다. 현재 공공임대로 입주해 있는 아동가구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좀 더 나은 환경으로 이전하도록 지원하는 정책도 병행해 추진해야 한다.

 


#사례2

영구임대주택(11평)에 조모, 외삼촌, 아동5명(초중고) 총 7명 거주. 방은 총2개로 하나는 외삼촌이 사용하고 있으며 또 다른 하나는 거실과 이어져 아동들과 조모가 함께 사용하고 있음. 거실이 비좁아 아동 1명은 베란다에서 생활, 협소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아동들끼리 서로 싸우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상황임.

아동주거빈곤 사례#2https://lh6.googleusercontent.com/PNIB5VfFtsjdFtTm3H_i9a6neWc2D6yF6thQso... />


 

셋째, 정책의 적극적인 홍보와 지자체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 다양한 주거복지정책들은 모두 ‘신청주의’이다. 즉 수요자가 정책을 알고 해당기간에 직접 신청해야만 가능하기에 정부의 정책이 필요한 대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으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때문에 이번 정책이 실효성을 가지고 주거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해 본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필요계층에 비해 공급물량이 너무 적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올 연말에 계획된 다자녀 가구와 비주택 이주 희망 수요조사와 더불어 이에 따른 이주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번에 확보한 3만 가구의 물량마저도 원활한 공급이 어려울 수 있다. 수요조사를 통해 수요량이 제대로 파악될 경우 보다 많은 물량을 정부에 요구 할 수 있다. 아동의 주거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관련 주거지원 정책이 마련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나 이후 정책이 제대로 가동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아동들이 주거권이 보장되고 적절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는 날까지 우리의 목소리는 계속될 것이다.

 


1) 전용 입식부엌 또는 전용 수세식 화장실을 구비하지 못한 주거환경

2) 다자녀 가구 1만1천 가구, 보호종료아동 등 6천 명, 비주택 가구 1만 3천 가구

 

3) 가정위탁 종결, 아동보호시설ㆍ청소년쉼터ㆍ자립생활관 퇴소

수, 2019/12/04-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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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채택 최종견해 이행을 위한 당사국의 책무

- 2019 아동권리포럼을 중심으로 -

 

김희진 국제아동인권센터 변호사

 

2019년 11월 18일, 대한민국의 아동권리협약 이행 제5-6차 심의에 따른 최종견해 이행방안을 모색하는 2019 아동권리포럼이 개최되었다. 국제아동인권센터는 보건복지부의 2019년 아동인권증진사업의 한 내용으로, 위 포럼을 주관하였다. 본 원고는 포럼 준비과정과 당일의 현장을 소회하며, 협약 이행을 위한 당사국의 책무를 확인하고자 한다.

 

최종견해(Concluding Observations)의 의의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이하 ‘아동권리위원회’ 또는 ‘위원회’)의 제5-6차 최종견해는 2019년 9월 27일 채택되었다.1) 2017년 12월 제5-6차 국가보고서가 제출된 이후, 2018년 11월 대안보고서2)와 아동보고서 제출, 2019년 2월 사전심의와 쟁점목록 채택, 2019년 8월 쟁점목록에 대한 정부 답변서와 시민단체 추가의견서 제출, 그리고 9월 18-19일 양일에 걸쳐 아동권리위원회와 당사국 대표단이 ‘건설적인 대화(constructive dialogue)’를 진행한 본심의 결과 도출된 문서이다.

 

특히 제5-6차 심의는 시민사회의 역할에 주목할 수 있다. 국가보고서(State party’s Report) 이후 제출된 대안보고서(Alternative Report)는 아동보고서(Children’s Report) 및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NHRI’s Report)를 포함하여 총 16개에 이르렀으며, 10여개 단체가 사전심의에 참석하여 대한민국의 다양한 아동인권 현안을 위원들에게 전달하였다. 심의과정에 함께한 단체도 아동복지단체의 범주를 넘어 여성, 환경, 장애, 노동, 이주민 인권 등 다양한 단체로 확대되어, 세상의 모든 인권현안이 아동의 인권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경험적 과정을 거쳤다. 본심의 현장까지 12개 단체가 참여하여 조직적인 로비활동을 이어나갔다. 제5-6차 최종견해는 한국 시민사회의 연대와 성장이 만들어낸 성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이번 최종견해는 종전과 비교하여3) 유례없이 다양한 이슈를 다루고 있으며, 각각의 권고도 굉장히 구체적으로 언급되었다. 노키즈존,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구제,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에 근거한 차별, 미세먼지와 유해물질 노출, 베이비박스와 익명출산제, 선거연령과 정당 가입 연령, 스마트폰을 포함한 아동의 사생활 및 개인정보 보호, 스쿨미투와 의제강간 연령, 온라인 그루밍, 부의 육아휴직제도, 수용자 자녀 등은 제5-6차 심의과정에서 새롭게 제시된 아동인권 사안이다. 이주아동, 소년사법, 장애아동과 성착취 피해아동 등 소수자 아동과 관련한 문제는 세부적인 법·제도 개선요청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최종견해는 당사국의 협약 이행을 위한 지침으로 기능한다. 협약이 포괄하는 아동인권 실태는 각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으며, 계속하여 변화하는 사회모습에 따라 아동인권의 내용도 새롭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위원회의 최종견해는 해당 국가의 사회문화환경을 바탕으로 아동인권을 존중·보호·실현하기 위한 당사국의 단계적 책무를 안내하는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즉, 아동권리협약 이행을 위한 일차적 의무이행자는 ‘당사국’으로서, 협약을 비준한 대한민국은 아동권리협약이 지향하는 가치에 기초하여 최종견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시민단체는 당사국을 조력하여 협약 이행을 촉진하는 동반자이자 감시자로 존재한다.

 

이에 최종견해를 알리고, 그 이행방안을 모색하는 공론의 장은 필수적이다. 대중은 물론 최종견해와 관련한 담당부처가 해당 권고내용을 알고, 권고의 문언적 내용을 넘어 그 함의를 해석하고 실천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는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분명 지난 30년간 점진적으로 개선되었으나, 여전히 “성인과 동등한 아동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제한적이다. 부모와 교사의 체벌은 훈육을 이유로 정당화되고, 스마트폰 감시앱 의무설치 정책과 학교의 휴대폰 일괄수거 조치 등 아동의 사생활과 개인정보는 보호를 명목으로 손쉽게 침해된다. 잔혹한 소년범죄가 보도될 때마다 소년법 폐지여론이 드높고, 학교 밖·가정 밖 아동에 대한 시각은 문제아에 대한 낙인이다. 아동이 나의 삶과 관련된 일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특별하거나 특이한 경우로 인식된다. 나의 근원을 알아야 할 자연스러운 권리는 아동과 아동을 양육하는 가정의 행복을 이유로 후차적이거나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치부된다. 즉, 여전한 현실을 변화시키는 출발점은 계획과 전략이며,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명확한 체계이다. 따라서 아동권리협약 이행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최종견해 이행방안을 모색하는 포럼’을 주최한다는 결정은 매우 의미있었다.

 

포럼 준비과정의 어려움

하지만 포럼을 준비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 첫 번째 어려움은 시간이다. 포럼 기획이 확정된 시점은 10월 중순이었는데, 아동권리협약 채택 30주년을 맞이하는 11월 20일 전후로 포럼을 개최하고자 하니 약 5주간의 기간만 남아있었다. 준비 일정을 고려하여 시기를 미루는 방안도 논의하였으나, 최종견해 이행에 대한 논의로 아동권리주간을 시작하는 포문을 연다는 의미에서 11월 18일 월요일로 확정하여 추진하게 되었다. 일정은 긴급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① 최종견해 번역자료 확정, ② 최종견해와 관련한 소관부처 확인, ③ 포럼에서 논의될 주제와 내용 구성, ④ 발표자 섭외와 원고 취합 등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그러나 촉박한 일정보다 어려웠던 것은 포럼을 구성하는 과정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차기 정기보고서 제출시까지 최종견해에 기초하여 협약 이행방안을 모색한다는 것은 권고의 적극적인 해석과 이행계획 수립이 주요하게 요청된다. 문제는 정부부처의 이행 모니터링 체계가 부재한 현실에서 관계부처의 협력을 구하고, 해당 부서의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 자체가 용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민간과 국가기관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성 대신 다양한 주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형태를 제안하였다. 그에 따라 ‘시민사회의 제언’과 ‘정부의 이행의견 표명’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도출하고자 했던 당초의 계획은 ‘최종견해에 대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둥글한 형태로 변경되었다. 개괄적인 발제 이후, 시민사회와 부처가 각자의 의견을 발표하는 소위 ‘라운드테이블’ 형태였다면 이해가 갈까.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관계부처가 최종견해를 인식하는 명확한 계기를 마련하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포럼을 준비하였음을 밝힌다.

 

포럼에서 논의될 이슈를 선정하는 것도 긴 논의가 필요했다. 협약은 인간의 모든 권리를 포괄하며, 더욱이 급변하는 사회가 여실히 반영된 제5-6차 최종견해는 굉장히 많은 쟁점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주제가 논의되어 아동인권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확산되기를 바랐으나, 포럼 준비일정을 고려할 때 논의하고자 하는 모든 주제와 관련된 부처를 섭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했다. 부처 간 이견이 있는 사항은 참석협조가 더욱 어려울 수 있으며,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진전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사안에서는 그다지 새롭지 않은 의견만 반복될 수 있다는 보건복지부의 우려도 있었다. 발언자가 너무 많으면 포럼 전반이 늘어질 수 있다는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포럼의 큰 틀은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와 ‘모든 아동을 위한 포용국가’ 2개의 세션으로 구성되었고, ‘교육’과 ‘포용’의 범위에 가능한 포괄적인 논의를 담아보고자 노력하였다.

 

무엇보다 라운드테이블의 형태에 맞지 않는 발표 준비과정이 마음 한 켠을 불편하게 했다. 보다 유연한 분위기 속에 다양한 부처의 참여를 확보하고, 그들의 참석이 최종견해 이행을 위한 각 부처의 출발선이 되기를 바랐다면, 부처 역시 최소한의 준비는 필요했다. 시민사회의 제언과 방향성에 ‘응답’하는 역할이 아닌, 협약 이행을 위한 의무이행자로서 그들 나름의 입장과 성과, 노력과 어려움을 밝히는 대등한 주체로서 포럼에 참석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하지만 보건복지부를 통해 발제 원고는 물론 시민사회의 발표원고를 관계부처에 사전에 회람하며 참석 회신을 기다려야 했고, 그 결정 또한 포럼 직전에야 결정되었다. 관계부처의 부담을 줄여 참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는지 의문이며, 아동권리증진 및 아동권리 관련 국제협약에 관한 사항을 소관하는 보건복지부의 역할과 권한은 무엇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4) 또한 발제와 시민사회의 원고도 촉박한 일정 속에 준비되어야 했던 만큼, 해당 원고를 부처에 전달하는 과정도 상당히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부처 외) 모든 발표자료가 취합된 11월 13일 오전이 지나서야 참석을 요청하고자 하는 부처에 원고들이 전달되었으며, 포럼에 참석한 부처 중 사전에 원고를 준비하여 발표한 곳은 없었다.

 

과연 대한민국의 정부는 협약 이행의 첫 번째 의무이행자로 당신의 역할을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포럼을 준비하며 머릿속에 맴돌던 물음이다. 상호대등한 부처관계에서 협약 이행과 관련한 업무를 이리도 추진하기 어렵다면, 과연 국제인권조약의 담당부서는 행정부 특정 부서의 업무로 분장되는 것이 적절한 것일까. ‘협약 이행 모니터링 체계 마련’을 위한 험난한 발걸음을 예고하는 듯한 경험이었다.

 

포럼의 아쉬움과 성과

많은 어려움과 내면적 갈등을 거치며 포럼은 개최되었고, 현장에 참석한 부처의 발언과 답변도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예컨대, 교육부 민주시민교육과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제언에도 불구하고 ‘인권조례가 지역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도돌이표 강조를 하였다. 아동인권 실현을 위한 범국가 단위의 역할을 외면한 것은 아닐지, 협약 이행을 위한 입법적 조치의 의미를 되묻게 하였다.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는 서두에‘정부를 합리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진의가 어떠하든 인권보장을 위한 국가의 기능적 신뢰를 바탕으로 그 이상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민주사회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발언이었다고 생각한다. 법률에 근거한 행정부의 법 집행은 견제와 감시를 통해 균형을 유지하지만, 그것이 곧 ‘불신’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통합교육이 실천되지 않는 국내 교육제도의 한계를 짚지 않은 채, ‘특수학교로 가지 못한 학부모의 항의’를 단편적으로 언급한 교육부 특수교육정책과의 발표도 협약에 대한 제한적인 인식을 나타냈다. 또한 ‘여성가족부는 모든 청소년 정책의 총괄부처인데, 상황별로 부처를 달리 보는 의견이 안타깝다’면서도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온라인 기반 아동 성착취 근절을 위한 법적 도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포럼 발표를 통해 아이돌봄 서비스도 아동인권 관련 여성가족부 업무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는 여성가족부 권익지원과의 발언은 진정 모든 아동을 포괄하는 정책 수립을 위한 인권기반 접근을 모색하고 실천하고 있는지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협약 이행 역사상 최초로 최종견해 이행방안을 모색하고자 한 이번 포럼은 분명히 의미 있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발표자 포함 120여 명이 참여하며 협약과 최종견해에 대한 인식제고에 기여하였으며,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장의 아동권리협약 이행 경과보고를 통해 부처의 심의 준비과정이 대외적으로 공유될 수 있었다. 국가보고서와 쟁점목록 답변서를 집필한 김영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이 협약 이행을 위한 대한민국의 과제를 명확하게 짚으며, 협약 이행을 위한 당사국의 구체적인 역할도 공론의 장에 올려졌다. 심의 전 과정에 참여한 아동보고서 집필진의 발표는 ‘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한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상기시켰고, 포럼에서 논의된 세부주제를 넘어 ‘교육제도’와 ‘포용국가’ 전반을 포괄하는 다양한 질문도 현장에서 제시되었다. 포럼에 참석한 관계부처 담당자가 최종견해에 따른 책무를 인지하였다는 것도 소정의 수확이다. 하루 일정으로 다루기에 불가능할 만큼 광범위한 주제들을 다룬 결과 종일 시간에 쫓기는 일정이었지만, 협약 이행 방향을 모색하는 총론을 시작했다는 점에 그 의의를 찾아본다. 비록 관계부처와 의견 조율이 확정된 최종견해 발간자료는 완성되지 못했지만, 보건복지부 발행 최종견해 일차자료집도 만들어졌다. 추후 활용도 측면에서, 정부발행의 국문자료 발간은 대표적인 성과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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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아동권리포럼에서 발표 중인 김희진 변호사 <사진 = 국제아동인권센터>

 

부디 이 포럼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를, 시민사회는 물론 부처가 스스로의 책무를 인지하는 계기가 되기를, 이후 협약 이행을 위한 일련의 단계적 과제를 도출하는 촉진제가 되었기를, 그로써 아동인권을 보장·증진하는 대한민국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19 아동권리포럼은 다음 스텝을 위한 첫 발자국일 뿐이다. 

 


1) 제5-6차 최종견해는 9월 27일 채택된 이후, 10월 3일 미편집본이 공개되었고(출처: OHCHR 웹사이트 - Human Rights Bodies - 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 – Media – Press release - UN Child Rights Committee publishes findings on Australia, Bosnia and Herzegovina, Georgia, Mozambique, Panama, Portugal, and the Republic of Korea, https://www.ohchr.org/EN/NewsEvents/Pages/DisplayNews.aspx?NewsID=25095&...), 이후 문장 및 세부표현 등을 정리한 최종 편집본이 10월 24일 공표되었다(출처: OHCHR 웹사이트 - Human Rights Bodies - 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 - Country-specific information = Republic of Korea, https://tbinternet.ohchr.org/_layouts/15/TreatyBodyExternal/Countries.as...). 본문의 최종견해는 10월 24일 최종공표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하였다.

2) 당사국 이외 NGO, 시민사회단체, 국가인권기구 또는 아동 당사자가 제출하는 보고서를 지칭하는 정식명칭은 없다. 다만, 이러한 보고서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당사국의 협약 이행 상황을 객관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에, 대안보고서(Alternative Report), 보완보고서(Supplementary Report, Complementary Report) 등의 용어로 다양하게 불린다. 본문에서는 대안보고서라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3) 대한민국은 아동권리협약 이행보고에 따라 1996년 2월 제일차, 2003년 3월 제2차, 2012년 2월 제3-4차 최종견해를 전달받았으며(일자는 문서에 기록된 최종 편집본 공표날짜를 기준으로 하였다). 제5-6차 최종견해는 4번째 심의 결과 채택되었다.

 

4) 「보건복지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제16조 제3항 제12호

수, 2019/12/04-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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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글

http://www.peoplepower21.org/1672963" rel="nofollow">복지동향 제254호 | 정형준 월간 복지동향 편집위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기획주제: 한국 일차보건의료체계 현황과 대안

http://www.peoplepower21.org/1672986" rel="nofollow">[기획1] 일차보건의료체계의 중요성과 함의 | 신영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http://www.peoplepower21.org/1673002" rel="nofollow">[기획2] 일차의료와 주치의제도 | 이재호 가톨릭의대 가정의학교실 교수

http://www.peoplepower21.org/1673017" rel="nofollow">[기획3] 시민 관점에서 본 일차보건의료의 개선과제 |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

http://www.peoplepower21.org/1673042" rel="nofollow">[기획4] 방문진료와 지역의료의 실험 | 홍종원 방문의료클리닉 건강의집의원 대표원장

 

동향

http://www.peoplepower21.org/1673056" rel="nofollow">[동향1] 아이들이 ‘집다운 집’에 살 수 있기를 | 김승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경기아동옹호센터 소장

http://www.peoplepower21.org/1673069" rel="nofollow">[동향2]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채택 최종견해 이행을 위한 당사국의 책무 | 김희진 국제아동인권센터 변호사

  

복지톡

http://www.peoplepower21.org/1673083" rel="nofollow">[복지톡] 제1회 매드프라이드를 개최하기까지 | 심명진 안티카 대표

 

생생복지

http://www.peoplepower21.org/1673099" rel="nofollow">[생생복지1] 평균의 함정에 빠진 서울시 복지사업 | 김경훈 서울복지시민연대 간사

http://www.peoplepower21.org/1673135" rel="nofollow">[생생복지2] 어떻게 협력이 변하니? | 김경훈 서울복지시민연대 간사

수, 2019/12/04-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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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형 기초보장,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없이 빈곤사각지대 문제해결도 없다

 

김승연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

 

최근 관악구 탈북모자 사망, 강서구 모자 사망,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신청도 못한 채 극단적 선택을 한 인천의 일가족 사망 사건 등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망 사건 이후 각종 대책들이 무색하게 생계비관형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사건에 대해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의 문제로 진단하고 있는데, ‘발굴하지 못함’의 문제보다 제도적 배제로 빈곤 사각지대를 방치하는 상황이 더 심각한 문제이다.

 

정부는 2017년 「제1차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2018~2022」에서 비수급빈곤층 규모가 63만 가구, 93만 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발굴하지 못한 사각지대가 아니라 부양의무자 기준과 같은 제도적 배제로 외면되고 있다. 서울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해결하지 못하는 빈곤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2013년부터 지자체 최초로 서울형 기초보장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더 이상의 생계비관형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사각지대 ‘발굴’이 아닌 실질적인 ‘지원’을 하는 서울형 기초보장제도의 과감한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울에서 ‘빈곤의 자격’

서울형 기초보장제도는 생활은 어려우나 소득·재산 기준 등이 법정 기준에 맞지 않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맞춤형 급여 수급에서 탈락한 취약계층에게 생계급여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서울형 기초보장제도는 서울시민의 경제적 수준을 반영하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보다 수급자 및 부양의무자의 소득·재산 기준을 완화하여 적용하고 있다.

 

서울형 기초보장제도 선정기준은 크게 보장가구의 인적, 소득 및 재산 기준과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서울시 거주자이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의료·주거 수급가구가 아니어야 한다. 서울형 기초보장제도 수급을 희망하더라도 맞춤형 급여를 우선 적용한다. 둘째, 소득평가액과 재산의 소득환산액을 합산한 소득인정액을 사용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달리 서울형 기초보장제도는 소득평가액과 재산기준액을 별도로 적용한다. 소득평가액 기준은 기준 중위소득의 43% 이하이고, 재산 기준은 가구당 1억 3천5백만 원 이하이다. 셋째, 부양의무자의 소득·재산기준이 가구 규모별 소득기준 이하이면서, 재산 기준은 가구 규모와 상관없이 5억 원 이하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2인의 수급자 가구에 1인의 부양의무자 가구인 경우, 부양의무자 가구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능력 없음’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부양능력 판정소득액이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인 167만 원 미만이면서, 재산의 소득환산액이 약 2억 5천만 원 이하여야 하는데, 서울형 기초보장제도는 부양의무자 가구 소득이 452만 원 이하이면서 재산이 5억 원 이하인 경우 부양능력이 없는 것으로 인정된다(2018년 기준).

 

<표 4-1>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서울형 기초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 비교(2018년 기준)https://lh3.googleusercontent.com/u54HPPzqvZ3XfvcXB9oIcycypKCRIyO8s9kMZJ... />

 

서울형 기초보장 시행 6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빈곤 사각지대

서울형 기초보장제도 도입 당시, 서울의 비수급빈곤층 규모가 약 29만 명으로 추계되어, 2018년까지 19만 명을 지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제도 시행 이후 수급자 수는 매년 5~7천 명 정도로 수차례 제도개선에도 불구하고, 수급자가 늘지 않고 있다.

 

최근 서울연구원 분석 결과에 따르면, 서울의 비수급 빈곤층은 19만 가구(24만 명)로 전체 가구의 4.92%나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기준중위소득 44%이하)를 제외한, 실제 서울형 기초보장제도의 대상이 되는 비수급빈곤층의 규모는 약 12만 가구로 추정된다(김승연, 2019). 그런데 서울형 기초보장제도의 수급률은 37.0%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률 72.8%(손병돈, 2016)에 비해서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그림 4-1> 서울의 비수급빈곤층 도해https://lh6.googleusercontent.com/0gY7Y_1fmA3sWLRmez81eXIs7ARGaG01o_lOkV... />

 

소득과 재산보다 부양의무자 기준이 문제다

서울형 기초보장제도 시행 이후 6년간 총 10차례 제도를 개편해 왔다. 그동안의 개편은 주로 수급가구와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과 재산 기준을 조정하거나 정부 정책 개편을 반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소득과 재산 기준을 완화시킨 것이 오히려 수치적으로 비수급 빈곤층의 규모를 확대시킨 결과를 초래했다.

 

서울의 비수급 빈곤층을 해소하기 위해서 소득과 재산 기준의 완화보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개선하는 것이 더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2018년 10월 주거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이후, 서울시 주거급여 수급가구 수가 10개월 만에 약 3만 4천 가구가 증가하였다. 이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급여를 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그만큼 많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게다가 서울의 비수급 빈곤가구 중 84.9%가 부양의무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소득과 재산 기준으로 보면 실제 빈곤하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서울형 기초보장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가구가 상당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서울형 기초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 개선이 불가피

이제 서울형 기초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 개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 이유는 첫째, 정부 계획에 따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단계적으로 폐지되면, 서울형 기초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적용이 불가능하다. 서울형 기초보장제도는 서울시 고유사업으로 자체적으로 소득·재산 등의 개인정보를 조사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신청 자료를 통해 서울형 수급권을 조사한다. 따라서 맞춤형 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면, 서울형 수급신청자의 부양의무자 정보를 조사할 수 없게 된다. 둘째, 서울형 기초보장제도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 탈락자를 대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가 확대될수록 서울형 수급권자가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2015년 맞춤형 급여체계로 전환되면서 서울의 맞춤형 급여 수급자가 급격히 증가한 반면에 서울형 수급자는 4천 명 이하로 감소한 바가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폐지에 따른 서울형 기초보장제도의 수급권 확대방안이 요구된다.

 

<그림 4-2> 서울시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연도별 수급자 현황https://lh5.googleusercontent.com/nNNlUqxksm0NG7E9jw0Kc0bhdLKwvFaSPa-R4m... />

 

<그림 4-3> 서울형 기초보장제도 수급가구 현황https://lh5.googleusercontent.com/dGwxhJM_xHKwYAjz7-wWVIq8mfLWITpufaepRr... />

 

마지막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서울형 수급자가 맞춤형 급여 수급자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급여가 감소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일례로, 2018년 10월 주거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따라 서울형 수급자의 상당수가 주거급여 수급자로 전환되면서 이들의 수급액에 감소한 바 있다. 이는 1인 가구의 서울형 생계급여는 최저 8.3만 원에서 최고 25만 원(2018년 기준)인 데 비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주거급여는 최저 0원에서 최고 21.3만 원으로 서울형 생계급여보다 낮기 때문이다.

 

부양의무자 폐지,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

정부는 '재정적 뒷받침'과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형 기초보장제도의 부양의무제 폐지를 통한 빈곤 사각지대 해소’가 민선 7기 서울시장의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아직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시행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서울형 기초보장제도의 개선에 따른 빈곤사각지대 개선 효과를 분석한 연구에서(김승연, 2019), 소득이나 재산 기준보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경우, 개선 효과가 큰 것으로 파악됐다. 노인·중증장애인 가구에 한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할 경우 약 2만 2천 가구가 신규 수급자가 되어 빈곤 사각지대 개선 효과 비율이 약 44.8%로 예상된다. 만일 부양의무자 기준을 전면 폐지할 경우, 서울형 기초보장제도의 소득·재산 기준을 충족하는 비수급 빈곤층 전체 4만 9천 가구가 수급자로 전환되어 빈곤 사각지대 해소 효과가 가장 클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게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면, 연간 추가예산이 660억 원(노인·중증장애인 가구)에서 1,594억 원(부양의무자 기준 전명 폐지)으로 예상된다.

 

 

지방자체단체인 서울시가 독자적으로 기초보장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예산 부담도 크고, 운영에 따른 행정력이 상당하다. 부양의무자 폐지에 따른 추가적인 재원도 감당하기에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비용이 가난한 사람들의 반복되는 죽음을 방치하는 것과 비교될 수 없다. 서울시가 그동안 보편적 복지사업들을 선도해 온 행적과 필요한 사업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추진했던 실행력으로 서울에서 먼저 부양의무자 기준의 완전 폐지가 실행되길 기대해 본다.

화, 2020/01/07-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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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국민을 위해 문제기업에 대한 주주권을 행사하라

 

이지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

 

스튜어드십 코드란 대관절 무엇인가?

토종 한국인에게는 발음조차 생소할 수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라는 말이 우리 사회 전반에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를 거칠게 해석하면 관리인, 또는 집사(Steward)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규칙이나 규범으로, 한국어로는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이라고 한다. 즉, 스튜어드십 코드는 ‘타인을 대리하여 그 자산을 관리하는 이가 지켜야 하는 원칙’을 말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주들이 단순히 회사 주식에 투자하여 이익을 얻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도입되었다. 2000년대 중반 미국의 초저금리 정책 중단 후 시작된 부동산 가격 하락이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이어졌고, 이를 활용한 파생상품에 방만하게 투자했던 투자은행들의 연쇄적 파산은 전 세계적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즉,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은 금융위기 당시 투자은행 등의 부실이 기업지배구조의 취약성과 주주들의 무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자성의 목소리에서 시작됐다. 이전에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식으로 문제기업의 주식을 팔아치우는 월스트리트 룰(Wallstreet Rule)이 기관투자자들 사이에 팽배했다면 이제는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통해 선량한 수탁자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2010년 7월 영국 재무보고위원회(FRC: Financial Reporting Council)가 최초로 ‘영국 스튜어드십 코드(The UK Stewardship Code)’를 발표1)했고, 이후 캐나다, 네덜란드, 스위스, 이탈리아, 홍콩, 일본 등이 잇따라 기관투자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제정했다. 한국의 경우, 2016년 12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투자기업의 가치 향상과 지속 가능한 성장, 고객과 수익자의 이익 증진, 자본시장과 경제 전반의 성장과 발전을 목표로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제정2)하였다. 이후 2018년 7월 국민연금은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을 심의·의결하고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선언3)했다.

 

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하는가?

2019년 3분기 말 기준 국민연금 전체 규모는 714조 원으로 이 중 122.3조 원(17.1%)이 국내주식에 투자되고 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시가총액은 1,379조 원4)이다. 일견 엄청난 규모처럼 보이지만 세계 주식시장으로 눈을 돌려보면 조금 다르다. 세계 각국 거래소의 시가총액은 약 78.8조 달러5)로, 한화로 약 8경 6,680조 원에 달한다. 여기서 한국 주식시장은 소위 말하는 ‘신흥 시장(Emerging Market)’으로, 코스피와 코스닥, 코넥스 등 지수를 다 합쳐도 세계 주식시장의 2%6)가 채 안 된다. 그리고 한국 시장 투자 주체 중 외국인의 비율은 30%7)가 넘으며, 이들의 동향에 따라 주식시장이 출렁이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국내 주식시장의 규모가 ‘한 줌’이라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 성향이다. 엄청난 자금력을 가진 외국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연기금 및 기관투자자들은 투자 대상을 결정할 때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 경영 의사결정의 예측 가능성 등을 중시한다. 이는 국민의 노후자금이 달린, 어찌 보면 매우 실존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 Asian Corporate Governance Association)에 따르면 2018년 한국 기업지배구조 순위는 아시아 12개 국가 중 9위8)에 불과하다.

 

한국 기업지배구조의 취약성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회사 업무집행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기구인 이사회와 주주총회가 실질적 기능을 하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2019년 5월 기준 자산총액 5조 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 총수일가 이사 등재율9)은 자산 규모 2조 원 이상 상장회사의 경우 41.7%,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의 경우 56.6%로 소위 ‘주력회사’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으며, 이사회 안건 중 사외이사 반대 등으로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건은 전체 안건 6,722건 중 24건(0.36%)에 불과했다. 특히 안건 중 대규모 내부거래 관련 755건이 모두 원안 가결되었으며, 이 중 수의계약 체결된 331건 중 그 사유를 기재하지 않은 건이 268건(80.9%)에 달했다. 이는 독립적 사외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내리기보다 재벌 총수가 직접 이사회에 침투(?)하여 뜻을 관철하는 전근대적인 경영 풍토를 보여준다. 이사회가 마치 총수 일가의 거수기처럼 운영되는 것이다.

 

주주권리의 경우, 현재 우리나라 상법상 주주제안권, 대표소송제기권, 이사·감사 등의 해임청구권 등 다양한 소수주주권이 보장되어 있으나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로 기능한다. 2018년 5월부터 2019년 5월까지 56개 공시대상기업집단 250개 상장회사 중 소수주주권이 행사된 사례10)는 주주제안권(11건), 주주명부 열람권(3건), 주주대표소송제기권(1건) 등 20건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집중투표제의 경우 11개 사(4.4%), 서면투표제의 경우 21개 사(8.4%), 전자투표제의 경우 86개 사(34.4%)만이 도입하여 소수주주 의결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부실했다.

 

2018년 말 기준 국민연금이 투자하고 있는 779개 국내 기업의 주식 중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회사는 281개, 10% 이상 지분을 가진 회사는 81개에 달한다. 외국인 투자자야 수틀리면 언제든지 주식을 팔고 떠날 수 있지만, 국민연금은 그렇지 못하다. 빠르면 2050년 중반 국민연금 고갈11) 예측이 나오는 지금,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요구되는 이유이다.

 

국민연금은 수탁자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국민연금이 신실한 수탁자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일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 사례는 2015년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이다. 2015년 7월 17일 (구)삼성물산 주주총회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주식 11.21%, 제일모직 5.04%를 보유 중으로, 삼성물산에 유리한 합병 비율이 결정되어야 국민연금에게는 유리한 상황이었다. 당시 ISS, 글래스루이스 등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들도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다며 합병 반대 보고서를 낸 바 있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엉뚱하게 1:0.35라는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에 찬성한다. 이는 (구)삼성물산 1주와 제일모직 0.35주를 교환하는 것으로, 제일모직의 가치가 삼성물산의 무려 3배에 가깝게 평가된 비율이었다.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등 국정농단 연루자들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이러한 합병 비율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작업을 위한 것이었음이 입증되고 있다. 2017년 11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항소심 법원은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2019년 8월 박근혜 전 대통령, 최서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삼성의 승계 작업 존재 및 뇌물제공의 대가성을 인정했다. 국민연금이 성실한 국민 노후자금의 수탁자가 아닌, 재벌 총수의 승계를 위해 이용된 도구였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의 추산 결과12)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적정한 합병 비율은 1:1.0~1:1.36으로, 불공정한 합병비율로 인한 이재용 부회장의 부당이득이 3.1~4.1조 원인데 비해 국민연금의 손실은 무려 5,200~6,750억 원에 달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한 사실상의 첫 사례는 한진그룹이다. 2014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 하나로 비행기를 되돌린 ‘땅콩 회항’ 사건 이후 2018년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물컵 갑질’, ‘가사노동자 갑질’ 등이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후 2019년 3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는 이사의 의무를 저버리고 270억 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연임 안건이 상정되었다. 재벌 총수 일가가 전근대적 인식을 갖고 회사를 사유화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이에 참여연대를 비롯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행사를 촉구하고, 소액주주들과 함께 고 조양호 회장의 연임 안건 부결13)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당시 국민연금은 고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개최했지만 15시간의 장고 끝에야 입장을 정할 수 있었다. 불법 혐의로 재판 중인 이사 후보에 대한 반대표를 던지는 것조차 엄청난 진통 끝에 결정한 것이다. 같은 기간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은 ‘이사가 회사에 관한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가 확정된 때에는 즉시 이사직을 상실한다’는 정관변경 주주제안을 했지만 부결되고 말았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따른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는 시작도 못 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올해도 효성, 대림그룹 등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 총수 일가의 횡령·배임, 사익편취 혐의가 드러났고, 이들의 이사 연임 안건이 내년 주주총회에 상정될 것으로 보이나 국민연금이 이와 관련해 어떠한 주주활동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연금 사회주의’라는 새빨간 거짓말

해외 연기금 및 기관투자자는 이미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ifornia Public Employees’ Retirement System, CalPERS)은 1987년부터 Focus List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기업지배구조가 취약하거나 저평가된 기업에 대한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으며, ESG(Governance, Social, Environmental) 분야 등에 의결권을 행사하고, 기업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등 적극적 주주활동14)을 펼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의 경우 미국 상장회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Proxy Voting Guidelines)15)을 개정하여 이사회 독립성 및 다양성, 이사의 과도한 겸직 반대 및 보수 환수제안 등 다양한 주주제안 및 의결권 행사를 실행하고 있다. 그 외 NBIM(노르웨이), AP(스웨덴), APG(네덜란드), CPPIB(캐나다) 등 다양한 연기금들이 활발한 주주활동을 진행16)하고 있다.

 

재계는 ‘연금 사회주의’를 우려하지만, 기관투자자의 주주권행사는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에서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노동·시민사회단체가 국민연금에 요구하는 것은 경영간섭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국민 노후자금의 수탁자로서 기금에 이익이 되는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를 만들기 위한 감시·감독에 나서라는 것이다. 독립적 이사회가 총수의 사익이 아닌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경영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 경영간섭인가? 회삿돈을 쌈짓돈처럼 횡령하는 등 불법을 저지른 총수 일가의 이사직을 박탈하는 것이 경영간섭인가? 예측하기 어려운 총수 일가의 전횡과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는 기업 가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장기적으로 기금 수익률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국민의 연금’인 국민연금이 2020년 주주총회에서 ‘국민을 위해’ 문제기업 대상 주주권행사에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1) 2019. 9., FRC, 「The UK Stewardship Code (September 2012)」 1p.,  https://www.frc.org.uk/getattachment/d67933f9-ca38-4233-b603-3d24b2f62c5...(September-2012).pdf" rel="nofollow">https://www.frc.org.uk/getattachment/d67933f9-ca38-4233-b603-3d24b2f62c5...(September-2012).pdf

2) 2016. 12. 19.,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보도자료, 「2016년 12월 19일,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 공표」, http://www.cgs.or.kr/news/press_view.jsp?pp=6&skey=&svalue=&pg=7&no=122" rel="nofollow">http://www.cgs.or.kr/news/press_view.jsp?pp=6&skey=&svalue=&pg=7&no=122<...

3) 2018. 07. 30.,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선언」, http://www.mohw.go.kr/react/al/sal0301vw.jsp?PAR_MENU_ID=04&MENU_ID=0403... rel="nofollow">http://www.mohw.go.kr/react/al/sal0301vw.jsp?PAR_MENU_ID=04&MENU_ID=0403...

4) KRX Marketdata, http://marketdata.krx.co.kr/mdi#document=13020300" rel="nofollow">http://marketdata.krx.co.kr/mdi#document=13020300

5) 2019. 11. 24., 연합뉴스, “한국 증시 시가총액 세계 15위…2년째 뒷걸음질”, https://www.yna.co.kr/view/AKR20191123040400008?input=1195m" rel="nofollow">https://www.yna.co.kr/view/AKR20191123040400008?input=1195m

6) 2019. 3분기 말 기준 코스닥 시가총액 218.4조 원, 코넥스 시가총액 5.8조 원

7) 2019. 12. 16., 뉴스핌, “외국인, 8월이후 넉달 연속 주식 순매도...11월 코스피 2.5조원 팔아”, http://www.newspim.com/news/view/20191215000123" rel="nofollow">http://www.newspim.com/news/view/20191215000123

8) 2018. 12., ACGA, 「CG Watch 2018: Hard decisions」, https://www.acga-asia.org/cgwatch-detail.php?id=362 (※참조 : 1위 호주, 2위 홍콩, 3위 싱가포르, 4위 말레이시아, 5위 대만, 6위 태국, 공동 7위 인도· 일본, 9위 한국, 10위 중국, 11위 필리핀, 12위 인도네시아)

9) 2019. 12. 9. 공정거래위원회, 「2019년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발표」, http://www.ftc.go.kr/www/selectReportUserView.do?key=10&rpttype=1&report... rel="nofollow">http://www.ftc.go.kr/www/selectReportUserView.do?key=10&rpttype=1&report...

10) 각주 9) 참조

11) 2019. 9. 5. 보건복지부 보도해명 “[9월 5일, 조선일보 등] 국민연금 보도 관련”, http://www.mohw.go.kr/react/al/sal0301vw.jsp?PAR_MENU_ID=04&MENU_ID=0404... rel="nofollow">http://www.mohw.go.kr/react/al/sal0301vw.jsp?PAR_MENU_ID=04&MENU_ID=0404...

12) 2019. 7. 15.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기자간담회] 이재용 부당 승계와 삼바 회계사기 사건에 관한 종합보고서 발표” http://www.peoplepower21.org/Economy/1643483" rel="nofollow">http://www.peoplepower21.org/Economy/1643483

13) 2019. 3. 27.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논평] 조양호 회장 연임 부결, 주주의 힘으로 무자격 총수 연임 저지해”, http://www.peoplepower21.org/Economy/1620172" rel="nofollow">http://www.peoplepower21.org/Economy/1620172

14) 2018. 8. 17. 한국기업지배구조원, 「SC 동향: CalPERS의 주주활동과 의결권 행사 현황 및 실제사례」, http://sc.cgs.or.kr/resources/case_view.jsp?pp=6&divi=&skey=&svalue=&idx... rel="nofollow">http://sc.cgs.or.kr/resources/case_view.jsp?pp=6&divi=&skey=&svalue=&idx...

15) 2018. 3. 30.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 「2018 BlackRock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 주요 내용」, http://sc.cgs.or.kr/resources/case_view.jsp?pp=6&divi=&skey=&svalue=&idx... rel="nofollow">http://sc.cgs.or.kr/resources/case_view.jsp?pp=6&divi=&skey=&svalue=&idx...

16) 2018. 7. 18. 내일신문, “해외에선 주주제안·사외이사추천 '당연'”,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282503" rel="nofollow">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282503

화, 2020/01/07-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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