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시민들과 등교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초록정책을 가진 후보에게 투표하자는 유권자 투표참여 캠페인을 4월 5일, 아침 8시 20분에 경복궁역 1번 출구 앞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시작에 앞서 간단한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생태도시팀 조민정활동가가 백사실 계곡과 도롱뇽 보존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스크를 쓴 시민이 ‘먼지 없는 정치, 먼지 없는 서울, 초록에 투표하겠다’는 다짐을 담아 스티커를 붙이고 있습니다. 또 귀여운 도롱뇽을 핸드폰에 담아가는 시민도 있네요.
먼지털이단은 서울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생태계 보전을 촉구하고, 유권자들이 도롱뇽과 함께 살아갈 정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투표참여를 요청할 계획입니다.
청량공원은 풍수지리상으로 굉장히 빼어나다고 하는데, 이에 하늘이 숨겨놓은 명당이라 하여 천장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천장산 산책로를 따라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돌뫼어린이공원에서 이것저것 살펴보다 보니 오른쪽 사진 뒤편에 나있는 것처럼 산책로에 철조망들이 설치가 되어있습니다. 한데 서리풀공원처럼 공원 산책로를 막기 위해 세워진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천장산 일대에 조선 왕족의 무덤 의릉이 있다 보니 그 주변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앞선 사진과 다른게 뭔지 모르실 수도 있지만, 길을 오르던 중간에 경관 조망대가 들어서 있길래 찍었습니다. 저 풍경을 바라보니 이곳만은 지키자 캠페인을 처음 진행했던 와룡공원이 생각나네요. 와룡공원에서도 위와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햇빛이 좋아서인지 조망대 즘에 도달해서는 꽤나 단풍물이 들어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공원 곳곳을 둘러보던 중 펜스와 더불어 철조망이 쳐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많은 공원들에 철조망이나 현수막, 펜스 등이 쳐지거나, 치려는 움직임들이 있었고, 각 공원을 관할하는 부처에서는 이를 철거하는 것 같던데, 이렇게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을 봐서는 문화제를 보호할 목적으로 공공에서 설치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청량공원은 동네 뒷산 같은 느낌의 근린공원입니다. 매일 같이 공원에서 운동하시는 분들을 위한 운동기구들도 놓여 있고, 표지판에 나와있듯이 어르신 건강마당(?)이란 것도 설치되어 있나 봅니다. 어르신 건강마당 쪽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하고 그동안 올라온 계단만큼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청량공원에는 아무래도 이곳저곳에 어린이공원, 소공원 같은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는 듯합니다. 도시자연공원이나 청량 근린공원 같은 산지형 근린공원들이 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면, 위와 같은 소공원들은 자연과는 조금 거리가 멀 수 있어도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는 쉼의 공간이자 놀이, 운동공간이지요. 요즘 들어 흙으로 된 놀이터가 사라지는 것이 참 서글픈데, 이런 공원들까지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현재 계획만 되어 있고 실제로 조성되지는 않은 수만은 소공원들이 더욱 조성되어야 할 텐데요.
서울, 이곳만은 지키자 캠페인을 진행한지도 어느덧 10회차가 되었습니다. 오늘 10번째로 방문한 실효 대상 도시공원은 동대문구에 위치한 배봉산공원! 1992년에 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주거 단지 인근에 위치하여 다양한 연령층이 다양한 목적으로 공원을 이용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배봉산(拜峰山)은 절 배 자에 봉우리 봉 자 뫼 산 자를 써서 배봉산입니다. 배봉산이라는 이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 들이 있는데요. 이를 얘기하기 전 간단하게 배경지식을 설명드리자면 조선 후기 제21대 왕인 영조의 아들이자 제22대 왕인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소, 영우원이 수원으로 옮겨지기 전에 배봉산에 있었고, 제23대 왕 순조의 생모 수빈 박 씨의 묘소인 휘경원도 남양주로 옮겨지기 전에 배봉산에 있었다고 합니다. 왕가의 무덤이 있었던 산이라는 것이죠.
배봉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정조가 부친인 사도세자의 묘소를 향해 절을 했기 때문이라는 설, 산의 형상이 도성을 향해 절을 하는 형세를 보이기 때문이라는 설, 이곳에 왕실의 묘소인 영우원과 휘경원이 있어서 나그네들이 고개를 숙이고 지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설, 배봉산 앞뜰의 동적전에서 왕이 친히 농사를 지으며 하늘에 풍년을 기원한 선농제와 관련이 있다는 설 등 여러 소문만 무성할 뿐입니다.
이 중 가장 유력한 설은 정조가 부친인 사도세자의 묘소를 향해 절을 했기 때문이라는 설인데요. 사도세자 비문과 조선왕조의 ‘선원보’ 등에 따르면 배봉산은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처음 안장한 수은묘가 있던 곳으로, 효자였던 정조가 이곳을 지날 때마다 절을 올리니 백성들도 따라서 절을 하고 지나다닌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것이지요. 이 수은묘가 정조가 즉위한 이후 영우원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고, 그로부터 13년 후인 1789년 수원으로 무덤을 옮기게 되면서 능호를 현릉으로 높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저는 버스를 통해 장안교에서 내려 숲속 도서관 쪽 입구를 통해 산을 올랐습니다. 평일인데도 수많은 시민들이 공원을 이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요. 숲속 도서관 건물 1층에는 공동육아 방도 마련이 되어 있어 유모차를 끌고 공원을 찾는 부모님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집 근처에 이렇게 좋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면 아무래도 아이를 키우시는 부모님들께 좋은 소식일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가을 단풍이 화려하게 물든 산책길을 따라 정상부를 먼저 찾기로 했습니다. 배봉산의 정상부 인근은 2015년까지 군사시설로 이용되었었기 때문에, 92년에 지정된 공원이지만 그 안에 들어찬 시설물들은 굉장히 새것의 상태를 유지하는 중에 있습니다. 걸어가기에는 굉장히 편안하지만 산을 둘러싸는 나무데크 길을 바라보니 어딘가 울적해지기도 합니다. 자연의 생김새를 무시하고, 멋대로 바꾸면서까지 우리는 편안함을 찾아야 하는 걸지 고민하며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리고 정상부에서 발굴이 완료된 유적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군시설을 이전하며 문화재 발굴조사가 진행된 것 같은데요. 이것은 그 흔적이겠지요? 이 배봉산 유적은 동대문구를 포함하는 중랑천 서쪽에서 확인된 최초의 삼국시대 관방유적이라고 합니다. 즉 삼국시대 관방 체제 연구에 있어서 획기적인 자료라 할 수 있다 하는데, 추가적으로 주변부까지 정밀조사를 진행하면 해당 유적의 정확한 조성시기와 조성 주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네요. 또 해당 유적과 주변의 유적들에서 선사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는데. 이를 봤을 때 배봉산은 선사시대부터 양호한 입지를 바탕으로 장기간에 걸쳐 유적이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즉 동대문구민들의 생활권 공원으로서 사랑받고 있는 배봉산근린공원은 먼 옛날부터 다양한 목적으로 애용되던 공간이었을 거란 뜻이죠!
산 하단부에도 주변을 둘러싼 둘레길과 함께 여러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잘 조성되어 있는 공원이니 시민들이 애용하는 것일 테고, 시민들이 애용하는 공원이다 보니 행정 측에서도 잘 조성하고 유지관리하려 노력하는 것이겠지요? 이런 공원이 일몰 되어 이용에 제약이 생긴다면 여타 공원들보다도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공원을 나서기 직전, 출구 옆으로 작은 생태연못이 나있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생긴 것으로 보았을 때는 개구리 등 양서류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일 것 같습니다. 슬쩍 살펴봤지만, 때가 때인지라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요. 겨울철에 다시 방문한다면 반드시 확인할 것 중 하나로 체크해놔야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배봉산에 다녀온 이야기를 적어보았습니다. 이곳만은 지키자 캠페인도 어느덧 막바지를 향하고 있고, 일몰제가 실효되는 시점도 점점 다가오고만 있습니다. 걱정은 점점 늘어만 가네요. 그렇지만 일몰제가 실효된 후에도 서울의 공원들이 공원으로 오랫동안 존속될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해 나가야지요.
햇살이 따스하고, 공원에 가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오늘의 이곳만은 지키자를 진행할 장소는 성북구와 강북구에 걸쳐 위치한 오동근린공원! 6개 동에 걸쳐 있는 대단위 공원으로 수림이 잘 형성되어 있고, 쉼터와 구민체육관, 인조잔디구장, 테니스장 등 다양한 기반 시설들을 두루 갖추고 있어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대표적인 쉼터로 자리 잡은 곳입니다. 오른편 위로는 구민체육관이 보이고, 낙엽이 물들어 바닥에 수북이 깔려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공원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가 산지형 공원이기 때문일 텐데요. 평지형 공원은 굉장히 희귀하고, 접근성이 쉽다는 점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반면, 한국의 지대를 생각했을 때 평지형 공원이 흔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전국토의 76%가량이 산지인 국가이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도시지역에서도 공원을 찾으면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산지형 공원은 말 그대로 숲으로 이루어진 곳이니 말이죠!
오동공원에 입구에 도착해보니, 자가용도 조금씩 세워져 있고.. 아무래도 산지형 공원이라 접근성이 그리 좋지는 않다 보니 자가용을 이용해 일부러 오는 분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또 오동공원 정상부에서는 서울의 다른 여러 명산들을 관조할 수 있기도 하고, 전망 좋은 길로도 선정이 되어 있네요!
어느 정도 길을 오르고, 공원의 모습을 살피다 보니, 여러 방면으로 갈림길이 나있고, 다양한 곳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연간 어마어마한 양의 온실가스를 감축한다고 알려진, 오패산의 북서울 꿈의 숲 쪽으로 방문할지를 고민하다가 정상부를 찾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상강이 한참 지나서야 상강 다운 풍경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24절기 같은 선조들의 지혜가 통용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기후가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올해 여름에는 작년만큼 폭염이 계속되지 않아 올겨울 농작물 시세가 안정적일 것이라 생각했건만.. 가을에 수차례 맞이한 태풍 피해로 전년과 그리 다를 게 없는 상황이네요.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의 모습도 보이고, 우수한 조망명소로 선정될 만큼, 멋진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정상부에 돌출된 암반에서 많은 어르신들이 산책을 하고, 경관을 감상하고, 돗자리를 깔고 낮잠을 자는 등, 주민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공원이라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만은 지키자 캠페인을 진행하며 그간 14여 개의 도시공원들을 방문하고 시민들과 도시공원일몰제에 대해 나누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도시공원일몰제에 대해 접하는 순간 놀람을 금치 못하였고, 이는 오동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이런 도시공원들이 계속 사랑받을 수 있도록, 도시공원들이 시민들의 여가공간으로 길이 보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느 때와 같이 찾아온 수능 한파로 쌀쌀하던 14(금) 일에는, 지난 8월 8일부터 시작한 서울, 이곳만은 지키자의 마지막 행선지 관악산 도시자연공원으로 캠페인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4개월간 부진히도 달려온 서울환경연합의 이곳만은 지키자, 그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관악산을 올라 도시공원일몰제를 알리기 위해 서울대학교를 찾았습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기만 한데, 날씨는 한파라는 말에 어울리게 매서웠습니다.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실물로는 처음 본 ‘샤’자를 지나 등산 진입로를 찾고 있었으나.. 날이 너무도 추운 관계로 버스를 타고 서울대 공학관에서부터 오르기로 결정했습니다.
버스정류장에서부터 300m 가량 내려오고 나니, 관악산 정상(연주대) 방향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나옵니다. 서울대학교 건물이 워낙 크기도 하고, 관악산도 워낙 커다란 산이기 때문에, 이 코스로 오르면서 시민들을 많이 마주칠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지만 우선 길처럼 생긴 곳을 따라 쭉 올라갑니다.
생태경관보전지역은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여 생태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거나,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특별히 보전할 가치가 큰 지역으로서 지정되는 지역입니다. 관악산의 생물상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형과 소형 포유류 중 멧토끼, 다람쥐, 땃쥐, 쥐, 박쥐 등이 서식하리라 짐작되는 곳이기도 하고, 족제비와 두더지 같은 경우 적지만 확실히 서식한다고 하는 데다, 조류만 해도 검은댕기해오라비, 솔개, 붉은배새매, 말똥가리 등 41종이 관찰되었다고 하니 생물 다양성이 낮거나 한 곳은 아니겠지만, 관악산 생태경관보전지역은 이 경관이 너무나 수려해서 지정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길을 오르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과천이나 사당 등지에서부터 올라, 서울대학교 인근으로 하산하더군요. 덕분에 챙겨온 리플렛이 생각보다 빠르게 소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왜 세워놓은 것일지 모를 돌탑들도 많이 나오더군요. 관악산을 찾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대목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생태경관보전지역에서 부터 시작되는 가파른 계단들을 오르고 오르다 보면, 어느새 생각보다 높이 올라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저 멀리 서울 전경이 펼쳐져 있고, 그 반대편으로는 과천과 잠실, 강남 등지의 모습이 보입니다. 잠실 롯데 타워는 멀리서도 정말 잘 보이고.. 과천과 서울의 경계를 건물 높이로만 나눠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으신가요..? 서울에서는 빌딩들 때문에 도시공원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서는 널찍한 전경을 감상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도시에서 멀어져서 도시를 바라보는 기분은..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무언가인 것 같아요.
계단을 지나고 능선 길 따라 쭉 걸어가다 보면 기상관측시설물(?)이 등장하고 연주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표지판이 속속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간 계단을 올라오며 단 한 번도 표지판이 나오지 않아 내심 불안했는데.. 벌써부터 뿌듯한 마음이 저 밑에서부터 솟구쳐 옵니다. 제가 이 지점에 도착했을 때의 시간이 4시 즈음이었는데, 이때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산행을 하고 있으셨습니다.
대부분 한국의 산들이 그렇듯 정상부로 갈수록 암반이 돌출되어 있고 소나무가 자라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곳만은 지키자 캠페인을 진행하며 방문한 도시자연공원 중엔 안 이런 곳이 없는 것 같은데, 신기하면서도 한국은 정말 천혜의 산들을 타고난 나라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좋은 산을 갖고 있다면, 잘 관리해서 오래도록 보전해야 할 텐데요..
저 멀리로 관악산의 정상 연주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관악산의 기암절벽 위에 석축을 쌓아 터를 마련하고 지은 이 암자는, 원래 신라의 승려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 17년(677)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관악사를 건립할 때 함께 건립한 것으로 의상대라 불렸다고 합니다. 관악사와 의상대는 연주암과 연주대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 내력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조선 개국 후에 고려에 대한 연민을 간직한 사람들이 이곳에 들러 개성을 바라보며 고려의 충신과 열사와 망해버린 왕조를 연모했다고 하여 연주대라 불렀다는 이야기고, 또 하나는 조선 태종의 첫 번째 왕자인 양녕대군과 두 번째 왕자인 효령대군이 왕위 계승에서 멀어진 뒤 방랑하다가 이곳에 올라 왕위에 대한 미련과 동경의 심정을 담아 왕궁을 바라보았다 하여 연주대라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두 이야기 모두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인데요, 이것은 연주대의 주변 경관이 워낙 뛰어난 절경인데다 한눈에 멀리까지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여서 붙여진 전설로 생각됩니다. 현재의 건물은 세 평 남짓한 맛배 지붕으로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을 최근에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라는데, 계속 사찰(?), 암자(?)로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기도객이 아닌 이상엔 방문이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올라가는 길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내려갈 때는 또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들이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해 설치한 전선주들이 능선에서 바라볼 수 있는 절경을 망치니.. 아쉬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관악산은 서울 경복궁의 조산 또는 외안산이 되는데, 산봉우리의 모양이 불과 같기 때문에 풍수적으로 화산이 된다 합니다. 따라서 이 산이 바라보는 서울에 화재가 잘 난다고 믿어 그 불을 누른다는 상징적 의미로 산꼭대기에 못을 파고,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옆 양쪽에 불을 막는다는 상상의 동물인 해태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고 합니다. 조선 태조는 화환을 막기 위해 무학의 말에 따라 이 산에 연주, 원각 두 사찰을 세웠다고 하고, 서울의 숭례문을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과 관악산을 잇는 일직선상에 위치하게 하여 관악산이 덜 보이게 한 것 등이 불기운을 막기 위한 풍수적인 의미라고 하네요. 예전에 퍼머컬처에 대한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를 자연 풍수라고 번역했던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나무가 가득한 산에서 불의 기운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오히려 나무가 많으니 불의 기운이 강한 걸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 하며 빠르게 하산하였습니다.
2019년에 진행한 서울, 이곳만은 지키자 캠페인은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도시공원일몰제에 대해 알리고 도시공원의 모습들을 알리고, 도시공원일몰제를 타파하기 위해 우선 매주 1회씩 현장에 나가보자!라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한 이번 캠페인이 이렇게 막을 내렸네요. 물론 앞으로도 도시공원일몰제에 대한 활동은 끝나지 않을 것이고, 도시공원들의 위기도 사라진 것이 아니니 앞으로도 새로운 활동, 새로운 모습으로 도시공원을 지키기 위해 이번 캠페인을 보완하여 새로운 활동으로 나타나겠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