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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헌, 조세도피처에 무엇을 숨기려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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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헌, 조세도피처에 무엇을 숨기려 했나?

익명 (미확인) | 월, 2016/04/04- 11:00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씨가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3개나 만든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혹시 아버지로부터 건네받았을지도 모르는 비자금과 관련된 것일까? 아니면 매형인 SK 최태원 회장과 관련된 일일까?

아버지 노태우의 비자금?

노재헌 씨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사실상 유령회사인 자본금 1달러 짜리 페이퍼 컴퍼니 3개를 만든 시점은 2012년 5월이다. 당시 상황을 복기해 보자.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 형과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받았다. 8개월 뒤인 1997년 12월, 사면을 받아 감옥에서 풀려 나온 노태우 씨는 추징금을 갚아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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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징금을 갚는 방식은, 노태우 씨가 비자금을 맡겨둔 사람을 지목하면 검찰이 수사를 벌여 돈을 추징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노태우 씨가 누구에게 비자금을 맡겨두었는지가 드러난다. 대표적인 사람이 노태우 씨의 동생 노재우 씨와 사돈 신명수 씨다. 신명수 씨는 해표 식용유로 유명한 신동방그룹의 회장이다. 노태우 씨는 이런 방식으로 2011년 말까지 추징금의 90% 가량인 2,397억 원을 97차례에 걸쳐 납부했다. 그러나 2011년 이후부터는 추징금을 더 이상 내지 않았다. 낼 돈이 없다면서 동생 노재우 씨와 사돈 신명수 씨가 추징금을 마저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날선 법적 공방이 이어졌다. 여론의 관심도 높아져 갔다.

이 시기에 뜻밖의 변수가 생긴다. 2011년 3월 노재헌 씨의 부인이자 신명수 전 회장의 딸인 신정화 씨가 홍콩 법원에서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것. 신정화 씨는 재산 분할을 위해 노재헌 씨의 재산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한다. 이 사실은 2011년 12월 국내 언론에 보도됐고, 국내 언론들은 노재헌 씨에게 흘러 들어갔을지도 모르는 노태우 비자금이 이혼 소송을 통해 드러날 수도 있다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노태우 비자금이 노재헌 씨에게 전해졌을 수도 있다는 의혹은 이전부터 있었다. 동생과 사돈에게는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주면서 아들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는 게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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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헌 씨가 조세도피처인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 3곳을 만든 시점은 바로 이 때부터 5개월 뒤인 2012년 5월 18일이다. 남은 추징금 납부를 둘러싼 법적 공방과 이혼 소송 때문에 비자금 상속 여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남아있던 돈을 숨기기 위해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것은 아닐까? 페이퍼 컴퍼니를 동시에 3곳이나 만들고, 한 회사를 다른 회사의 주주로 등록하는 등 추적하기에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 역시 은밀한 돈을 감추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이에 부합하는 정황은 또 있다.

노재헌 씨가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지 1년 뒤인 2013년 5월 21일, 뉴스타파는 조세도피처에 회사를 설립한 한국인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사흘 뒤 노재헌 씨는 페이퍼 컴퍼니 3곳의 이사직에서 동시에 사퇴했다. 페이퍼 컴퍼니가 보도될 수 있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이후 뉴스타파의 폭로 등에 힘입어 검찰이 전두환 일가에 대한 수사를 벌이자, 노태우 씨는 넉 달 뒤 남은 추징금 231억 원을 완납했다. 그러나 이 돈은 노태우 씨나 노재헌 씨가 내지 않았다. 동생 노재우 씨가 150억 원, 사돈 신명수 씨가 80억 원 이렇게 나누어 냈다. 만약 조세도피처의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아버지의 비자금을 숨기는 게 노재헌 씨의 목적이었다면 그 목적은 달성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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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헌 씨의 비자금 상속 여부와 관련해, 노재우 씨 측으로부터 흘러나온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추징금 납부를 둘러싸고 노태우, 노재우, 신명수가 공방을 벌이던 당시 나온 얘기다. 당시 노재우 씨의 법률 대리를 맡았던 이 모 변호사는 서울 연희동에 있는 노태우 씨의 자택의 별채 부지가 노재헌 씨 명의로 되어 있다며 이 부지의 구입자금이 아버지 노태우 비자금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등기부 등본 상에는 여전히 노재헌 씨가 불과 35살이던 2000년에 이 땅을 사들인 것으로 되어있다. 당시 시세는 10억 원이 넘었다. 이 밖에 대구 지묘동의 60평짜리 아파트와 30억 상당의 강원도 평창 고급 별장 역시 노태우 씨의 비자금으로 구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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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형인 SK 최태원 회장과 관련?

노재헌 씨의 페이퍼 컴퍼니가 매형인 SK 최태원 회장과 관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재헌 씨는 ‘인크로스’라는 IT기업의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이며 최근까지도 주요 주주이자 등기 이사였다. 이 회사는 지난 2007년에 설립되었고, 그동안 대부분의 매출이 SK와의 거래 관계에서 발생해왔다. 2009년에는 200억 대의 매출을 올린 SK 계열사 크로스엠 인사이트를 단돈 40억 원에 인수했다. 이 인수로 연 93억 원이었던 인크로스의 매출은 360억 원대로 수직 상승했다. 2010년에는 매출 490억 원에 이르는 SK 계열사인 이노에이스를 인수 합병하는데, 지분 절반 이상을 매수하는 데 든 비용이 60억 원대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인크로스의 성장 과정이 SK의 도움 없이는 절대 불가능했을 거라는 점, 그리고 최태원 회장의 처남인 노재헌 씨가 주요 주주라는 점 때문에 인크로스가 사실은 처남을 앞세운 최태원 회장의 위장 회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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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회사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2010년 홍콩에 ‘인크로스 인터내셔널’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한 흔적이 나온다. 인크로스 인터내셔널의 대표는 노재헌 씨였다. 홍콩은 노재헌 씨에게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준 중개 회사가 있는 곳이다. 노재헌 씨가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든 시점도 노 씨가 인크로스 인터내셔널 대표로 재직하던 시기와 겹친다. 만약 노재헌 씨가 만든 페이퍼 컴퍼니가 인크로스와 연관된 것이라면, SK 최태원 회장과의 연관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노재헌 “개인적인 사업 목적으로 페이퍼 컴퍼니 만들었을 뿐”

뉴스타파는 조세도피처의 페이퍼 컴퍼니에 대한 노재헌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경로로 접촉을 시도했다. 노 씨가 상임 이사로 재직 중인 한 비영리 법인을 통해 열흘에 걸쳐 여러 차례 입장을 물었으나 답변이 없었다. 인터뷰를 요청한 지 열흘 만에 노재헌 씨는 인크로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입장을 전해왔다. “홍콩에서 살면서 사업 준비 차 1불 짜리 회사를 몇 개 만들어 두었는데, 이혼하고 결국 아무 것도 못했다. 대체 왜 문제를 삼는지 모르겠다”라는 것이 노재헌 씨의 답변이었다.

그러나 노 씨의 답변이 사실이라면, 왜 굳이 조세도피처인 버진 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왜 같은 시기에 회사를 세 곳이나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뉴스타파가 홍콩에서 만난 조세도피처 회사 설립 대행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조세도피처 회사들이 만들어지는 이유가 법인 명의의 계좌를 만들어 자금을 관리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추가 질의를 위해 노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노 씨는 더 이상 답변하지 않았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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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15.

드론으로 찍은 홍콩 시위 장면 입니다.

 

일, 2019/06/1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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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비 등에서 유출된 파일들은 120명 이상의 정치인들과 세계 지도자들의 역외거래를 낱낱이 폭로합니다. 영국 여왕이 빈곤층을 착취한다는 비난을 받는 기업에 투자한 사실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에 이르기까지.


제작 : ICIJ
번역 : 뉴스타파

 

월, 2017/11/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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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02시 02분.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의 손진기 차장은 당시 쿠키뉴스 김강석 기자를 향해 다음과 같은 문자를 남기고 자살했다.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요.

손 차장과 김 기자 사이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손진기 차장이 죽기 전 컴퓨터에 남긴 글, 두 사람 사이의 전화통화 녹음파일, 한국패션산업연구원 고위 간부의 증언에 그 단서가 숨어 있었다.


취재: 최경영
촬영: 최형석
C.G: 정동우
편집: 윤석민

금, 2017/11/1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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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전재국 씨 조세도피처 회사 발표를 시작으로 지난 5년간 뉴스타파는 조세 도피와의 전쟁을 해왔습니다. 2014년에는 조세도피처로 간 국민연금을 추적 보도했고, 이듬 해 삼성인원 명의의 스위스 계좌도 발견해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 노재헌 씨의 자금을 추적한 파나마 페이퍼스에 이어 올해에는 파라다이스 페이퍼스를 보도합니다.

월, 2017/11/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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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2019년 내내 이어진 홍콩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2019년 12월 7일부터 11일까지 홍콩에 다녀왔습니다. 다산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인권운동공간 활,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한국YMCA전국연맹의 활동가 7명이 만난 홍콩의 오늘에 대한 이야기를 여섯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 기자 말

 

 

 

 

황수영 /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활동가

 

 

 

 

 

4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공항에는 분주함도, 복잡함도 없었다. 여유롭게 게이트를 나오자 12월의 햇살은 따뜻했고 거리는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조금 걷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온갖 구호들, 부서진 신호등,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여진 레넌벽, 보도블럭을 깬 흔적들이 이어지는 것을.

 

 

 

"The Ballot is stronger than the bullet."(선거는 총알보다 강하다) "Zero Tolerance for HK Police Brutality."(경찰의 폭력에는 무관용을) "If not us, Who? If not now, When?"(우리가 아니라면 누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횡단보도, 도로 표지판, 지하철, 식당 외벽까지 도시 전체가 홍콩 시민들의 외침으로 가득했다. 

 

 

 

 

 

 

홍콩 거리 광고판에 적힌 구호.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103/IE002589279_STD.jpg"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text-align:center;width:600px;" />

▲  홍콩 거리 광고판에 적힌 구호

 

 

 

 

 

 

시위를 지지하는 식당의 외벽에는 쪽지가 가득하다.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103/IE002589283_STD.jpg"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text-align:center;width:600px;" />

▲  시위를 지지하는 식당의 외벽에는 쪽지가 가득하다.

 

 

 

 

 

홍콩에서 타전되는 긴급한 소식들이 한국 시민들의 마음을 울린 2019년이었다. 우리는 민주파가 압승한 구의원 선거 이후 열린 첫 대규모 집회인 세계인권선언기념일 행진 'World Day of Human Rights Rally'(월드 데이 오브 휴먼 라이츠 랠리)에 참석하기 위해 홍콩을 찾았다. 홍콩 시민사회단체와 정당들의 연합 조직인 민간인권전선의 에릭 라이 부의장 방한 이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홍콩 시민들은 송환법 철회 이후에도 ▲송환법 공식 철회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경찰 폭력에 대한 독립적 조사위원회 설치 ▲행정장관과 입법회 직선제 다섯 가지 요구 중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는 '오대요구 결일불가'(五大訴求 決一不可)를 외치며 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We stand with HK People!

 

 

 

행진 시작 장소인 빅토리아 파크로 가는 길은 각종 단체와 정당에서 차린 부스로 가득했다. 메가폰을 잡은 사람들이 시민들을 독려했고 곳곳에서 손피켓과 마스크를 나눠줬다. 노동조합의 부스에서는 조합원을 모집했고, 경찰 폭력을 감시하는 팀은 조끼와 장비를 준비했다. 천주교 미사도 한쪽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들뜬 분위기에서 행진이 시작되자 빅토리아 파크부터 센트럴까지 거대한 물결이 생겨났다. 선두가 센트럴에 도착할 때까지 마지막 행렬이 출발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앞이 잘 보이지 않거나 방송차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도, 시민들은 여기저기서 구호를 외치며 뚜벅뚜벅 걸었다.

 

 

 

 

 

 

집회에서 발언 중인 한국 시민사회 연대방문단.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103/IE002589324_STD.jpg"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text-align:center;width:600px;" />

▲  집회에서 발언 중인 한국 시민사회 연대방문단

 

 

 

우리는 집회 연대발언을 통해 '많은 한국 시민들이 홍콩을 지켜보고 지지하고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We stand with HK people"(우리는 홍콩 시민들과 함께 합니다)이라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함께 걸었다. 행진 내내 남녀노소 많은 홍콩 시민들이 환호의 박수와 고맙다는 인사를 보내줬다. 아, 이곳에 오길 잘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는 순간이었다. 

 

 

 

행진이 진행되는 모든 곳에는 경찰이 있었다. 골목에는 총을 들고 중무장한 경찰들이 대기 중이었고, 행진 대열의 위쪽을 지나가는 다리마다 경찰들이 포진해 시위대를 내려다봤다. 하늘에는 헬기가 날았고, 대중교통에서의 검문 검색도 일상적인 일이 돼버린 것 같았다. "경찰에게 복수하자!" 경찰에 대한 구호는 비판과 요구를 넘어 '복수'로 변해 있었다. 경찰과 정부에 대한 신뢰가 정말 바닥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무장한 홍콩 경찰의 모습.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103/IE002589294_STD.jpg"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text-align:center;width:600px;" />

▲  무장한 홍콩 경찰의 모습

 

 

 

 

 

 

거리에 비치된 우산과 헬멧들. 시위에 참여한 사람 누구나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사람들이 놓고 간 것이다.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103/IE002589314_STD.jpg"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text-align:center;width:600px;" />

▲  거리에 비치된 우산과 헬멧들. 시위에 참여한 사람 누구나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사람들이 놓고 간 것이다.

 

 

 

 

 

"우리는 손발이 묶여 있다"

 

 

 

홍콩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는 변호사 단체, 인권 단체, 입법회 의원, 노조 등 다양한 단위를 만나 현 상황에 대한 생각과 직면한 어려움 그리고 희망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선거는 민주파가 승리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분노한 결과입니다. 우리 민주파 의원들은 그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사실상 실패했던 것입니다."

 

 

 

한 입법회의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친중파가 주류인 입법회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면서 "우리는 손발이 묶여 있다"(hand-tied)라고도 표현했다.

 

 

 

정부를 통제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한다거나, 입법회 차원의 조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합의가 필요한데 현 입법회 구조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입법회가 사실상 정부가 발의한 법안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역할만 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단적인 예로 정부가 현재 사용하는 최루탄의 성분을 공개하지 않아 각종 질병으로 병원에 가도 원인이 무엇인지,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입법회 의원이 최루탄 성분에 대한 자료를 요구할 수조차 없다고 한다. 홍콩 시민들의 5대 요구 중 하나로 직선제와 정치 개혁을 외치는 이유를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 6월 입법회 점거 투쟁 이후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입법회 건물.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103/IE002589320_STD.jpg"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text-align:center;width:600px;" />

▲  지난 6월 입법회 점거 투쟁 이후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입법회 건물

 

 

 

 

 

인권단체들은 홍콩 경찰의 폭력이 얼마나 심각하고 지속적인지 증언했다. 체포된 참가자의 손을 뒤로 묶고 바닥에 꿇어 앉힌 채 마스크 등을 모두 벗기고 그 앞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사례, 경찰서에서 연행자의 눈을 향해 레이저포인터를 쏜 사례, 눈을 가리고 폭행한 사례, 알몸 수색 등 성희롱 그리고 성폭력까지. 악의적인 행위들이었다. 사람들이 정부를 믿지 못하고 증언을 두려워하고 있어 아직 많은 피해자들이 말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활동가들은 경찰 폭력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구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유엔 특별보고관들에게 홍콩 정부의 집회 시위와 표현의 자유 탄압, 인권옹호자 탄압, 여성인권 침해 등의 사실을 지속적으로 전달해왔지만 특별보고관들의 홍콩 방문 자체가 막힌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우리는 한국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나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졌는지,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나 경찰 폭력 감시를 위해 어떻게 연대해왔는지, 고 백남기 농민 사망 이후 경찰의 물대포 사용을 금지하기 위해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 등의 경험을 자세히 공유했다. 때로는 나아가고 때로는 후퇴해온 운동 속에서 국제연대가 큰 힘이 됐다는 사실도 빼놓지 않았다.

 

 

 

 

 

 

홍콩 노총과의 간담회.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103/IE002589325_STD.JPG"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text-align:center;width:600px;" />

▲  홍콩 노총과의 간담회

 

 

 

 

 

"홍콩의 미래는 홍콩 시민들이 결정하겠다"

 

 

 

영국과 중국의 통치 기간 동안 지체돼온 민주주의, 민의를 표현할 제도의 부재, 자유롭게 말할 공간의 축소,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에 홍콩 시민들은 '지금 저항해야 한다'고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민주주의 없이는 더 나은 미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에도 상황은 선뜻 좋아질 것 같지 않다. 홍콩의 새해는 최루탄 연기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이 운동은 5대 요구가 모두 실현될 때까지, 어떤 형태로든 매우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홍콩의 미래는 홍콩 시민들이 결정하겠다'는 의지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홍콩 사회가 직면한 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더 많이 연결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아시아의 친구로서,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가 서로의 영감이 된다면 긴 여정도 지치지 않고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친미나 반중, 폭력 집회와 같은 이미지만으로 설명하기엔 너무도 부족한, 홍콩의 오늘에 대한 이야기를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전하려 한다. 

 

 

 

 

 

 

민간인권전선 활동가들과 함께 Five Demands, Not One Less!를 외치며.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103/IE002589319_STD.jpg" style="border-width:1px;border-style:solid;text-align:center;width:600px;" />

▲  민간인권전선 활동가들과 함께 Five Demands, Not One Less!를 외치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01381&PAGE... target="_blank" rel="nofollow">오마이뉴스에서 보기>>

토, 2020/01/04-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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