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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시장화된 대학교육에 맞선 세계 대학생들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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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시장화된 대학교육에 맞선 세계 대학생들의 연대

익명 (미확인) | 화, 2016/03/29- 14:09

대한민국 밖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의 눈길을 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을 ‘세계는 지금’에서 소개합니다.

세계는 지금(13)
시장화된 대학교육에 맞선 세계 대학생들의 연대

세계의 대학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구 곳곳에서 대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캠퍼스를 누비며 학문적 소양을 쌓기에도 바쁜 이들은 왜 거리로 나왔을까요? 먼저, 몇몇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1. 영국에서는 등록금을 3배로 인상하는 계획안을 둘러싸고 13만 명의 대학생들이 연일 거리로 나섰다. 학비가 전액 무료였던 영국은 1998년부터 연간 1,000파운드(약 180만 원)의 등록금을 부과하기 시작한 이후 2004년부터는 연간 최대 3,000파운드(약 540만 원)까지 등록금을 책정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2010년 이를 9,000파운드(약 1620만 원)까지 올리기로 한 학비 인상안이 하원을 통과하면서 대대적인 과격시위가 벌어졌으며, 지난해 영국런던정치경제대학(LSE)의 학생들은 갈수록 시장화되는 고등교육정책에 반대하며 등록금 철폐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학생들은 ‘등록금무료’, ‘무상교육’ 등을 외치며 학장실을 점거했으며, 이들은 대학이 학생, 교수, 노동자에 의해 운영되길 바라며 ‘교육은 학생을 등록금으로 구속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 세계 최고의 등록금에도 불구하고 학생 시위가 거의 없던 미국에서도 2010년 이후 전국적인 대중시위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9년부터 시위를 벌여 온 캘리포니아 주립대를 비롯해 노스 캘리포니아 주립대생과 조지아주·달톤 주립대 학생들도 거리로 나섰으며, 맨해튼의 뉴욕 대학과 헌터 칼리지, 뉴 스쿨 등 사립대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해 3월, 33개 주 122개 대학 캠퍼스와 주 의사당에서 학생들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등록금 액수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에서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경우 35%나 등록금이 올라 2002년에 비해 182%가 인상되는 등, 학생들이 감당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버린 탓이다.

#3. 지난해 10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학생들은 2016학년도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여 일부 수업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등록금 인상은 많은 흑인 학생들과 가난한 학생들을 교육에서 소외시킬 것”이라고 외쳤으며, 요하네스버그에 위치한 한 대학에서 시작한 시위는 다른 학교로 전국적으로 번져나갔다.

#4. 교육예산 삭감과 교육현장 일자리 축소를 추진하고 있는 이탈리아 정부에 맞서 2천여 명의 대학생들은 피사의 사탑과 콜로세움 등 유명 관광지를 점거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또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 학생들과 직원들은 대학의 전면적인 구조조정에 대해 반대하면서, 대학 교육의 ‘더 많은 민주화’와 재정 투명성을 가진 ‘새로운 대학’을 요구하며 지난해 대학건물을 점령하는 시위를 벌였다.

#5. 2015년 12월, 칠레에서는 국립대학에 다니는 저소득층 대학생들에게 무상교육을 제공하자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2006년에는 칠레의 공교육 강화를 요구한 10대들의 ‘펭귄혁명’이 있었고, 2011년 봄에는 급기야 수십만의 학생들이 ‘모두를 위한 무상교육’을 요구하는 교육개혁시위를 펼쳤다. 학생들은 수백 개의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점거하고 다양한 시위와 포괄적인 사회적 연대 활동을 펼쳤다. 계급 차별적인 대학교육 시스템에 저항한 학생시위는 전국적으로 사상가, 예술인, 교육자, 인문학자 등 20만 명의 지지를 받았고, 결국 교육부 장관의 해임으로 학생운동은 승리를 거두었다.

▲ 사진 출처 : 로이터=뉴스1

▲ 사진 출처 : 로이터=뉴스1

이처럼 전 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저항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한국 대학생들의 현실이 궁금해집니다. 우리나라 역시 2010년 전후로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집회와 시위가 절정에 다다른 적이 있었습니다.

교육 시장화의 흐름은 ‘등록금 1,000만 원’ 시대를 넘어, 최소한의 생활비만 합쳐도 대학생 한 명이 1년에 감당해야 될 돈이 2,000만 원이 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시위는 단순히 등록금만 반값으로 떨어뜨리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 대학 법인화 반대, 비리사학 구재단 복귀 반대를 동시에 요구하는 등 대학 교육의 신자유주의화에 제동을 걸고 대학의 사회적 기능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담고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 학생운동은 90년대 이래로 급격하게 위축되어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세계 대학생들의 시위 물결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신자유주의적 교육 시장화의 폐해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너무나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대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과 열망은 모두가 바라는 일치된 목표와 지향점이 존재한다면 언제든 광범위한 저항의 물결로 확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독일과 프랑스 같은 몇몇 유럽 나라들에서 대학교육에 대한 사회적 지원과 대학생들을 위한 공적 안전망이 처음부터 포괄적으로 발전돼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 등록금이 없는 독일의 경우, 처음부터 수업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946년 당시 22살이던 프랑크푸르트의 한 대학생이 수업료가 위법이라는 소송을 제기해 승소함에 따라 이후 독일 전역에서 수업료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제도가 가능했던 것은, 대학생들이 직접 1960년대 초 대학 개혁안을 스스로 만들고 ‘학생의 경제적 해방’을 대학 개혁의 주요한 목표로 삼아 끊임없이 비판하고 저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프랑스에서 역시 68혁명을 계기로 고소득층을 위한 교육제도, 빈약한 복지제도와 고용불안, 비싼 등록금, 대학의 권위주의에 대한 학생들의 문제의식이 맞물리며 폭발적인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그 결과 프랑스 대학은 평준화되고 대학 무상교육이 실시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의 시혜적 정책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게 중요합니다. 결국 대학 변화의 원동력은 대학생들에게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현재 20대의 삶의 조건은 이전 세대보다 더 불리하며 불안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혹한 조건을 변화시키려는 대학생들의 연대와 행동이 지식인과 전문가의 지원, 시민들의 관심과 여론 조성, 그리고 정부와 정당의 강력한 정책 추진과 만나 비로소 대학의 사회공공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은 ‘교육장사’를 하는 곳, ‘취업사관학교’가 아닙니다. 한국의 대학이 지닌 의미를 바꾸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꿈꾸고 사회 공공성을 강화하는 공간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기획은 이러한 대학 상업화에 저항하고 대학의 사회공공성을 강화하려는 연대와 노력이 견고한 시민사회 기반 위에 서야 합니다.

글 : 이은지 | 지속가능발전팀 연구원 · [email protected]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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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와 함께 한 2015년 어떠셨나요? 희망제작소에게 2015년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흘러나왔던 절망과 한숨을 희망과 대안을 찾는 활동으로 바꾸고자 노력했던 한 해였습니다. 1년 동안 다양한 활동을 하며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2015년을 마무리하는 12월, 희망제작소와 소중한 인연을 맺은 분들께서 정성스런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희망제작소와 함께 한 2015년 ③ 퇴근후Let’s 참가자]

하늘이 무슨 색이었는지도 잊을 만큼 ‘금융회사 직원 17년차’라는 명함에 갇혀 사회생활로 겪는 복잡한 문제들 속에서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2015년도, 아마 그 전 해에도 그랬었을 것이다. 나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초조함의 연속이다. 각종 방송매체에서는 은퇴 후 잘 살려면 10억이 필요하다, 청년실업의 심화로 인해 자식교육에 자원 투자가 더 필요하다는 등의 이야기들로 불안감을 조성하고, 직장에서는 상승경쟁, 구조조정 등의 체감되는 걱정들이 피곤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주변 동료의 추천으로 “퇴근후Let’s”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심상치 않은 곳’이라는 것을 모임 첫 날 바로 알게 되었다. 첫 날 자기소개 시간, 나와 비슷한 연령들임에도 불구하고 제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었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솔직한 고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 역시 그런 분위기 속에서 단단했던 경계태세가 무너지고 내 속의 진솔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

‘그래, 이게 제대로 사는 삶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내가 많이 지쳐있었고 스스로 꼬여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절을 친절로 받아들이고, 주변의 사람들이 두려움과 짜증의 대상이 아닌 나와 같은 고민과 눈물과 웃음을 가진 존재로 여기게 되는 경험을 했다. 복잡하고 지겹게 느꼈던 인간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고 지금 다니는 직장에 대한 불안감에서 해방되어 언제라도 호기 있게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나에게 ‘퇴근후Let’s’는 인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해 주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 안에서 만난 동기들과 교육들은 잃어버린 자신감을 회복하게 했고 지금 가진 것들에 대한 만족감을 주었다. 그리고 2016년, 새롭게 달릴 도전의식을 가지게 해 주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퇴근후Let’s 7기 황병민

[희망제작소와 함께 한 2015년 ① ‘작지만 아름다운 아파트 작은도서관 희망학교’ 참가자분들]
[희망제작소와 함께 한 2015년 ② 목민관클럽 대표]
[희망제작소와 함께 한 2015년 ④ 연구자문위원]

화, 2015/12/2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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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와 함께 한 2015년 어떠셨나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베어나왔던 절망과 한숨의 소리를 희망과 대안을 찾는 활동으로 바꾸고자 했던 한 해였습니다. 그러한 활동들 속에서 희망제작소와 만났던 분들께서 2015년을 돌아보며 정성스런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아파트 작은도서관에서, 또 다른 심장을 찾는 퇴근후렛츠 모임에서, 목민관클럽 포럼과 연수활동에서, 그리고 한국사회 대안을 찾는 새로운 연구작업까지…올 한 해 희망제작소와 함께 해주신 분들의 인사, 감사히 듣겠습니다.

[희망제작소와 함께 한 2015년 ② 목민관클럽 대표]

지방자치 실시 첫 해에 기초의원이 되어, 주민이 주인되는 세상을 꿈꾸며 줄곧 달려왔으니 내 정치경력과 지방자치는 똑 같은 나이다. 최근 몇 년간 중앙정부의 통제 특히 재정자치의 숨통을 조여오는 상황에서 목민관클럽은 회원 단체장들의 산소통 역할을 했다. 창립 당시 희망제작소 소장이었던 박원순 시장의 지방자치에 대한 경험과 열정은 지역에서 올바른 지방자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단체장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음은 새삼 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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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와 함께 한 2015년을 돌아보면, 첫 1박2일 프로그램에서 여러 단체장들이 함께 현장을 둘러보고 밤샘토론을 했던 생생한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목민관클럽 단체장 대부분이 재선에 성공하였고, 전국적으로는 1/4에 해당하는 60여 명이 참여하는 견실한 조직이 되었다. 어느새 단체장은 물론이고 소속 공무원들이 더 많이 참여하고 배우는 참 좋은 모임으로 발전한 것을 보면서 희망제작소를 이끌고 계시는 분들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힘들고 빡빡하기로 정평이 난 목민관클럽의 해외연수는 여러 프로그램 중 단연 백미로 꼽힌다. 금년 영국∼스페인 도시재생과 사회적경제 연수는 지역의 비전을 고민하던 나에게 가능성의 해답을 찾아가는 빛줄기가 되고 있다.

세상은 스스로 진화하지 않는다. 정의로운 세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진화한다. 목민관클럽 활동을 통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진화되기를 희구한다. 홍미영 목민관클럽 대표

[희망제작소와 함께 한 2015년 ① ‘작지만 아름다운 아파트 작은도서관 희망학교’ 참가자분들]
[희망제작소와 함께 한 2015년 ③ 퇴근후Let’s 참가자]
[희망제작소와 함께 한 2015년 ④ 연구자문위원]

화, 2015/12/2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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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와 함께 한 2015년 어떠셨나요? 희망제작소에게 2015년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흘러나왔던 절망과 한숨을 희망과 대안을 찾는 활동으로 바꾸고자 노력했던 한 해였습니다. 1년 동안 다양한 활동을 하며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2015년을 마무리하는 12월, 희망제작소와 소중한 인연을 맺은 분들께서 정성스런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희망제작소와 함께 한 2015년 ④ 연구자문위원]

연구자문위원으로 올해부터 함께하기 시작했지만, 희망제작소는 제 시야를 크게 벗어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관심이나 활동과 상당히 동선이 비슷하여 종종 희망제작소의 활약이나 발자취를 보고 지난 10년을 지냈던 것 같습니다. 희망제작소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현장’, ‘실용’, ‘참여’, ‘대안’이었습니다. 너무도 중요한 우리들의 ‘일상’ 하지만 항상 거대한 사건/사안들에 치여 누구도 깊게 다루지 못하는 주제들을 조근조근 하지만 심도 깊게 다루며 대안들을 찾아왔던 곳이었지요.

최근에는 저의 직장에서 가장 큰 이슈였던 대학청소노동자 문제를 희망제작소의 방식으로 다루어주시는 것을 접하면서 꼭 필요한 우리 사회의 ‘제작소’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연구자문위원을 요청받았을 때 제 능력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만,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서 승선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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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에서 함께 하는 동안 제가 보았던 희망제작소의 희망 여럿 중 둘을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변화의 노력입니다. 유럽 학회에서 정치경제 그리고 복지까지 계속 잘 하고 있는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모델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기억합니다. 저명하신 한 학자께서는 ‘민주’나 ‘평등’이 아니라 ‘변화’라고 하시더군요. 스웨덴 모델은 끊임없이 변화해왔기 때문에 지금이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참 많이 변화한 듯 변화하지 않은 듯한 스웨덴 모습은 희망제작소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시대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실용과 참여는 어떻게 가능한지 등 희망제작소가 ‘응답’해야 할 주제들이 너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희망제작소는 그러한 고민을 깊이 담아가고 있는 중이더군요. ‘사다리포럼’이나 ‘누가 좋은 국회의원인가’ 등은 매우 희망제작소답지만 또한 변화를 느끼게 했던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희망제작소다운 ‘변화’들을 기대합니다.

둘째는 참여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입니다. 우리 사회는 참 ‘탑다운(top-down)’이 많은 곳이고, 더욱 그런 사회로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참 우려가 됩니다. 권위자의 말에 따라 혹은 ‘엄밀한’ 연구에 의한 결론이 나오면 그것을 정답으로 삼아 모두가 움직여야 하고,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면 쉽게 ‘음모’가 되곤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인 만스키(Manski)라는 분은 정책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들이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지만, 연구의 결론을 사용하는 정책결정가나 심지어 학자조차도 너무 확신에 차서 이야기를 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복잡해 보이는 지식이 대중을 소외시키기 시작하면서 규범과 가치보다는 수치와 증거가 더 대접받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때로는 수치와 증거에 참으로 많이 기대고, 더 기대고 싶은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고의 지식도 공유되지 못하고 규범과 가치를 내재하지 못하면 최선의 것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제작소는 10년이 지났음에도 ‘멋진 지식’의 달콤한 유혹을 참으로 잘 참아내면서 ‘참여’라는 가치를 지켜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두 가지 희망은 ‘앞으로 어떻게’라는 관점에서 제작소의 도전 주제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벌써 10살이 되면서 해왔던 일들, 잘하는 일들, 해야 할 일들, 능력과 한계에 대한 고민이 조금도 쉬지 않고 진행되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이러한 고민과 새로운 발자국들이 2016년 희망제작소가 시작하는 멋진 ‘질풍노도’의 10대 시기를 더욱 기대하게 합니다. 최영준 연구자문위원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희망제작소와 함께 한 2015년 ① ‘작지만 아름다운 아파트 작은도서관 희망학교’ 참가자분들]
[희망제작소와 함께 한 2015년 ② 목민관클럽 대표]
[희망제작소와 함께 한 2015년 ③ 퇴근후Let’s 참가자]

화, 2015/12/2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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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발전소에서 <정치적 글쓰기/말하기 반>을 모집합니다. 정치 관련 주제의 논문 및 기사, 에세이, 연설문 작성자를 위한 코스로 박상훈 학교장이 강의와 함께 글쓰기 지도를 하는 3개월 코스입니다.

첫 모임은 2016년 1월 11일(월) 저녁 7시이며, 이후 매주 월요일 저녁 7시-9시 사이에 진행됩니다. 첫 모임에서는 박상훈 학교장의 대표작인 <만들어진 현실 : 한국의 지역주의,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후마니타스 출판사)>를 교재로 “나의 정치적 글쓰기”에 대한 강의를 듣습니다. 수강자 여러분 가운데 “박상훈의 정치적 글쓰기,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가 아닌가”에 대한 의견을 갖고 오시는 것을 환영합니다. ()

두 번째 시간부터는 <정치의 기초>를 전체 주제로 총 5주에 거쳐서 1) 인간과 정치, 2) 정치가는 누구인가, 3)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닌 것, 4) 민주적 정당정치론, 5) 정치적 말의 힘에 대한 강의를 진행합니다. 6주째부터는 수강자 여러분이 작성한 글에 대한 발표 및 논평이 이어집니다.

참여하실 분은 각자 자신이 쓰고자 하는 정치적 글쓰기 주제에 대한 아주 짧은 소개문을 제출해야 합니다. 1월 11일 첫 모임 때까지 이메일로나 출력된 용지로 제출하면 됩니다. 분량은 짧을수록 좋고 최대 A4 1매를 넘지 않았으면 합니다. 왜 그 주제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하는지에 대해서만 간략히 이야기하면 되겠습니다.

참가를 희망하히는 분은 박상훈 학교장에게 이메일로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참가 의사를 말해주세요. 박 교장의 이메일 주소는 [email protected] 입니다. 참가비는 월 5만원(비회원 10만원)이며, 납부 방법은 신청자에 한해 별도로 연락을 하겠습니다. 혹 참가비 부담 때문에 주저하시는 분은 조교 신청을 박상훈 학교장에게 해주세요. 조교는 참가비를 면제받는 대신 이번 코스의 진행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강의 장소는 2호선 홍대입구역 2번 출구에 있는 ‘미디어카페후’입니다. 카운터에서 정치발전소 모임 공간이 어딘지를 문의하시면 됩니다. 기타 문의 역시 박상훈 학교장의 이메일로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화, 2015/12/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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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에 156억, 그럴 리 없겠죠 [현장] KEC 노조, 156억 손해배상청구소송 올바른 판결촉구 기자회견   “우리는 법원에 마지막으로 호소할 말이 있습니다. 결국 우리 노동자들의 인생을 지켜달라는 […]
수, 2015/12/2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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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상모&노동당서울시당 공동 평가회


● 기획취지


기획부동산 문제와 잦은 상가임대차 분쟁은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를 계획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래서 상인들의 피해 구제와 함께 상권 자체의 판을 바꿀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일정


12월 31일(목) 14시~

홍대 참숯만난닭갈비



저작자 표시 비영리
수, 2015/12/2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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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소식] 166:



노동당서울시당 주간 소식



166(2015.12.23)







[위원장칼럼] 잘 버텼습니다, 내년에 바꿉시다


노동당의 48시간 긴급행동이 오늘 오전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청와대는 연일 국회에 노동악법을 처리하지 않으면 경제위기가 올 수도 있다, 신용등급이 떨어진다 협박하고 이에 호응하듯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꼭두각시 인형처럼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는 국회의장에 대한 불신임결의안을 협박하듯 꺼내들었습니다. 2011년 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새정치’라는 말로 탈정치화를 혁신인 것 마냥 등장했던 안철수 발 야권 분화는 점입가경입니다. 무능력을 구호로 둔갑시켰던 안철수식 정치의 속사정이 나타난 것은 다행이지만 오히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을 부채질 할까 걱정됩니다. 아닌게 아니라 오늘자 신문에는 국책연구기관인 행정연구원에서 실시한 사회통합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이를 보면, 정부기관 중 국회를 신뢰하는 국민들이 10명 중 3명에 불과하다고 나타났습니다. 이런 정치의 불신이 정치의 기득권 구조를 강화시킬 뿐이라는 점은 여러 사례에서 입증된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국회 앞에서 진행한 48시간 연속 농성은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이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거부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정치 행위이자, 왜 우리의 정치가 국회로 한정되어서는 안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활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대표단과 당직자, 그리고 함께 한 당원들의 노력에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회라는 둑이 깨져 이곳 저곳 물이 새 나온지는 오래되었습니다. 번번히 새롭게 생긴 틈을 메꾸기 위해 올 한해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참사 당일에 멈춰져 있는 세월호참사, 복면 집필진으로 만들어지는 국정교과서, 국민연금 보장률 상향이라는 약속은 지키지 않은 채 공무원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공무원연금 개악, 그리고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노예로 만드는 ‘노동개악’ 시도 등 매일 매일이 사회의 후퇴를 막기 위한 투쟁의 과정이었습니다. 서울이라는 지역만 놓고 보면, 갑자기 150원이나 오른 대중교통요금인상을 막기 위해 공청회장을 점거하기도 했고 서울 당원들과 함께 6,000여명의 서명을 받아 서울시에 시민청구 공청회를 요구했습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뉴타운재개발 주민들과 함께했고, 4군데서 상가임차인상담소를 운영하면서 상가분쟁에 미리 개입하면서도 맘상모 상인들과 몸으로 강제철거를 막기도 했습니다. 아직 지켜지지 않은 직접고용 문제를 풀기 위해 다산콜센터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새누리당사 앞에서 진행되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싸움을 지원하기 위한 화요일 당번은 지금도 계속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버티는 것 만으로는 안됩니다. 이 불안한 상태를 정상상태로 놔두고서는 인간다운 삶, 연대와 평화가 흐르는 사회, 조화로운 노동이 중심이 되는 세상은 유토피아로 끊임없이 밀려날 뿐입니다. 그러니 내년엔 바꿉시다. 구체적으로 3년의 정치기획을 통해서 틈이 점점 벌어지고 있는 구사회의 그릇을 바꿀 우리의 그릇을 마련합시다. 서울시당부터 이런 그릇만들기를 고민하겠습니다. 더 이상 버티는 삶이 아니라 바꾸는 삶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대안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나오지만 날 것의 경험 자체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다수가 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고 이 힘으로 세상을 바꿔야 합니다. 내년부터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우리의 싸움을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고민하되 같이 결정하고 끝까지 함께하는 서울시당이 되겠습니다. 올 한 해, 정말 감사했습니다.



[논평] 삶의 자리를 요구하는 두 가지 움직임에 주목한다_탈시설자립주택 농성과 노숙인 추모제에 부쳐


새해를 앞둔 세밑, 그것도 한 해 중 가장 밤이 길어 춥다는 동지인 오늘 '삶의 자리'를 요구하는 두 가지 움직임이 벌어진다. 하나는 오늘부터 25일까지 마로니에 공원에서 진행될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주택 확충 요구 노성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저녁에 서울역 광장에서 열릴 노숙인 추모제다. 이 둘은 인간의 기본권인 삶의 자리, 즉 주거권과 관련한 목소리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먼저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주택의 요구를 보자. 지난 2009년 기존 장애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던 장애인 8명이 시설에서 나와 마로니에 공원에서 농성을 시작한다. 자신들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요구하면서, 탈시설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장애인시설을 운영하는 법인의 비리문제에서 촉발된 이 사건은 단순히 운영법인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들을 단체로 수용하는 시설 위주의 정책이 문제라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의 오랜 농성에 힘입어 서울시는 20137<탈시설 5개년 계획>을 발표하는데, 2017년까지 자립생활이 가능한 주거공간을 600개 공급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하지만 이 계획을 통해서 공급되는 주택이 대부분 자립생활체험홈이라 불리는 공동생활 주택으로의 이주여서 사실상 "시설에서 시설로의 이전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지역사회에서 정착을 하고 싶은 장애인들에게 공급하는 주택은 100개를 조금 상회할 뿐이었다. 실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하고 생활하려면 활동보조 서비스와 기타 생활에 필요한 공공지원이 확대되어야 하지만 이를 재정문제로만 접근하는 서울시의 근시안적인 정책에 의해 '반쪽짜리 탈시설'에 머물고 말았다. 결국 세밑, 동짓날에 장애인들은 다시 마로니에에서 농성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5개년 계획의 절반이 지나는 동안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고 서울시의 대책은 빈 말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왼쪽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농성을 준비중인 장애인들의 모습이고, 오른쪽으로 노숙인 긴급구조에 대한 서울시 공보물이다>


오늘 저녁 6시부터 서울역 광장에서는 "쫒겨나는 사람들, 설 곳 없는 홈리스"라는 주제로 노숙인 추모제가 열린다. 한 해 중 가장 밤이 길고 추운 동지날에 매년 열리고 있는 이 추모제는, 한 해 동안 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한 노숙인을 기리는 행사다. 서울시는 '노숙인위기대응콜' 등의 긴급구조정책을 시행한다고 하지만, 올 한해 노숙인들의 거처였던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촌에서 노숙인들이 쫒겨나는 것을 방치했으며 실효성있는 노숙인 주거정책은 요원하다. 게다가 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한 노숙인 시신을 의료용/교육용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사체처리법'이 새누리당 의원이 주도해 발의하는 등, 죽음 이후에도 존엄성이 무시되고 있는 형편이다


노숙인 문제는 홈리스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주거 불안에서 파생되는 문제이지만 그것이 나타난 배경에는 노숙인 개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사회의 문제가 존재한다. 불안정한 노동구조, 국가보다는 가정의 책임으로 전가된 복지, 그리고 안정적이고 부담가능한 주택의 부족은 불가피하게 노숙인으로서 거리를 떠돌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노숙인의 문제는 단순히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노숙인들을 낳는 원인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옳다. 하지만 중앙정부도 서울시도 '개인의 책임'으로 머물고 있는 노숙인 정책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사이 노숙인들은 거리에서 계속 생을 마감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2000년 이후 거리에서 생을 마감한 노숙인이 2,000명을 넘어섰다는 조사결과가 있으며 이에 따르면 한 해에 100명이 넘는 규모가 된다.


노동당서울시당은 동지날 터져나온 이 두가지 요구에 대해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응답하길 기대한다. 청계천엔 화려한 전등불빛이 반짝이고 서울광장에서는 스케이트 장이 놓여 있지만, 정작 돌아가서 생활할 집이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이유는 혼자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고, 그래서 우리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장애인이며 노숙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주길 바란다.


그래서 세밑 서울의 하늘 아래에서는 장애인들도 노숙인들도 함께 청계천의 불빛과 서울광장의 스케이트를 즐기게 되길 바란다. 이것은 그저 선한 마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서울시의 강력한 정책의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공염불에 불과한 '탈시설 5개년 계획'이나 '노숙인 응급지원'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노동당서울시당은 서울시에 진짜 '함께 살 수 있는 서울'을 요구하며, 이를 위해서는 장애인, 노숙인 당사자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본다. []




[행사] 이것이 기본이다. 월례교육 2015년 마무리

서울시당이 2015년 동안 꾸준히 진행하였던 월례교육을 돌아보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장애인지교육을 담당하셨던 배정학동지와 여러 당원분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올해의 교육왕으로는 월례교육에 최다 참석한 강서의 박예준위원장이 선정되었고, 의무교육 관련 OX퀴즈대회는 동작의 황정연위원장이 마지막 생존자가 되었습니다.

내년에도 꾸준히 진행하는 월례교육이 되겠습니다.





[적록포럼] 1년의 기록

지난 1220일 일요일 신촌 쉬바팝에서는 적록포럼 1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노동당, 녹색당 당원들과 함께 가졌습니다. 1년을 돌아보면서 느꼈던 점, 아쉬웠던 점, 부족했던 점들을 이야기 나눴고, 내년 적록포럼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나눴던 자리였습니다. 내년에도 계속될 적록포럼, 당원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행사] 홈리스추모제

매년 동지에는 거리에서 죽어가는 홈리스들을 위한 추모제가 열립니다. 서울역 광장에서 위패를 모시고, 여러 홈리스들과 팥죽을 나눠먹고, 홈리스들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행사입니다.

올해의 화두는 무연고 사망자들에 대한 이야기, 공영장례, 장제급여의 현실화, 그리고, 홈리스들의 노동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중앙당] 노동개악저지 국회앞 48시간 긴급행동

노동개악 저지 노동당 48시간 긴급행동이 국회앞에서 2110시부터 23일 오전 10시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연대사업]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송년문회제

일시 : 20151229일 목요일 오후 7

(오후 3시부터는 벼룩시장과 난장이 펼쳐집니다.)

무성의한 무성씨 때문에 올해의 마지막도 거리에서 보내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송년회에 많은 참여, 관심 부탁드립니다.




콜트콜텍릴레이 동조단식 집중결합

(꼭 농성장에 오시지 않으셔도 가능합니다.)


1. 콜트콜텍 동조단식 구글신청을 한다.

http://goo.gl/forms/M5BUouEnsH
2.
신청을 하면, 문자로 콜친번호가 옵니다.

3. 농성장에서 오시는 경우, 농성장에서 각종 인증샷을 찍으시면 되고요.

4. 일상에서 단식을 진행하실 경우, 준비된 양식에 콜친번호를 적으신 후 인증샷을 찍고,

서울시당메일([email protected]) 이나 노동당서울시당조직대협국장 윤원필에게 보내시면 됩니다.

5. 그리고, 각종 SNS에 노동당임을 밝히며, 자랑질 부탁드립니다.




[연대사업] 1231일 세종호텔투쟁 연대

일시 : 20151231일 목요일 저녁 6

장소 : 명동 세종호텔입구




[행사] 맘상모&서울시당 공동평가회

일시 : 20151231일 목요일 오후 2

장소 : 홍대참숯





[당협] 도봉당협 정당연설회&송년회

일시 : 20151223() 저녁 7

장소 : 창동역 1번출구







[강협] 은평당협 송년회

일시 : 20151224() 저녁 7

장소 : 은평민중의 집 랄랄라







[강협] 동대문당협 송년회

일시 : 20151226() 저녁 5

장소 : 경희대앞 민들레영토







[강협] 강서당협 송년회

일시 : 20151227() 저녁 3

장소 : 은행정 책마당

양천구 신월동 505-7 2, 양강중학교 건너편








[간추린일정]

날짜

일정

12/23()

[당협] 도봉당협 정당연설회&송년회

@창동역1번출구(19:00)

12/24()

[당협] 은평당협 송년회 @은평민중의집랄랄라(19:00)

12/25()


12/26()

[당협] 동대문당협 송년회 @경희대앞 민들레영토(17:00)

12/27()

[당협] 강서당협 송년회 @은행정책마당(15:00)

12/28()


12/29)

[연대] 콜트콜텍기타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송년문화제 @여의도콜트콜텍농성장(19:00)

12/30()


12/31()

[연대사업] 세종호텔 투쟁결합 @세종호텔(18:00)

[행사] 맘상모&서울시당공동평가회 @참숯(14:00)


저작자 표시 비영리
수, 2015/12/2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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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 모금전문가학교가 2016년 제14기를 맞이하여 모금실습프로그램을 획기적으로 전환합니다. 사전에 선정된 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했던 모금실습을 교육생 소속단체를 위한 모금실습으로 전환키로 한 것인데요.
목, 2015/12/2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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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는 2016년 창립 10주년을 앞두고 시민 관점의 정책제안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이 시리즈는 ‘좋은 일’의 기준을 찾는 설문조사를 위한 것입니다. 설문결과는 전문가토론을 거쳐 ‘2016 정책제안 보고서’에 반영됩니다.

[기획연재] 좋은 일, 공정한 노동⑤ 노동조합, 다른 세계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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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최근 종영된 JTBC 드라마 ‘송곳’에 대해 어느 시청자가 남긴 감상평이다.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해고 위기 속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싸워가는 과정을 다룬 이 드라마는 ‘처음으로 노동현실을 제대로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한편, ‘나와는 다른 세계 이야기’로 여기는 반응도 적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기업 내에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비율, 즉 노조 조직률이 10.3%인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나마 이 10%도 뜯어봐야 하는 수치다. 대기업(300인 이상) 노조 조직률이 47.7%인 반면 중소기업 노조 조직률은 2%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임금근로자 중 중소기업 직원 비율이 90%에 가까우므로, 우리나라에서 노동조합을 경험한다는 자체가 희귀한 일이다.

헌법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제 33조 제1항)고 ‘노동 3권’을 보장했는데, 이것이 ‘남의 일’이 되는 사이에 우리 노동 현실에는 무슨 일이 생겼을까?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을까?

그 답을 찾아보기 위해 조금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드라마 ‘송곳’과 같은 해고 노동자 투쟁 이야기에 감정이입 해 볼 필요도 있지만, 여기 그친다면 “노동조합은 위기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만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노동조합은 일상의 풍경처럼 존재할 수 있는, 지극히 합법적인 조직이다. 이 점을 환기시켜 줄 만한 노동조합 두 곳을 찾아가 봤다. 로레알 코리아 노동조합, 그리고 새누리당 사무처 노동조합이다.

‘감정노동자 보호법’ 모델이 된 노동조합

노동조합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좋은 향기가 확 끼쳐 왔다. 서울 삼성동 로레알 코리아 본사 내부에 위치한, 화장품 기업의 노조 사무실이라 그런 모양이다. 로레알은 랑콤, 비오템, 키엘, 슈에무라, 로레알파리, 메이블린뉴욕 등 백화점‧마트‧약국‧미용실 등에서 판매하는 화장품 브랜드 17개를 보유한 글로벌 기업이다. 한국 지사인 로레알 코리아의 노동조합에는 전국 백화점 등 매장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현장 직원 1,000여 명이 가입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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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조는 노동계 및 정치권에서 나름대로 유명하다. 정부가 나서서 마련 중인 ‘감정노동자 보호법’의 모델이 됐기 때문이다. 감정수당 및 감정휴가 지급, 심리치료 실시 등 사내 제도를 업계 최초로 만들어 온 것이다 .이 모두는 노동조합이 ‘단체협상’을 통해 관철해 온 것이다.

“프랑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니 노동조합이 자연스럽게 존재하게 된 것일까?”하는 우문(愚問)에 이은희 위원장은 “아유, 그럴 리가 있어요?”라고 답했다. “프랑스에서 당연하다고 여기서도 당연하겠습니까?” 어디서 들어본 말이다.

로레알 코리아는 1993년 설립됐고 노동조합 설립 준비는 12년 후인 2005년 시작됐다. 그 때까지도 화장품업계에 노동조합은 전무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주5일제 도입을 앞두고 시작된 임금체계 개편이었다.
“매니저급 직원들을 모아 놓고 새 임금체계를 설명했는데, 대부분 매니저들이 알아듣지 못했어요. 저도 그랬고요. 그 때만 해도 회사에 대한 무한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회사가 알아서 직원들에게 좋은 방향으로 정했으려니 했죠.”

그렇지만 실제로 주5일제가 실시된 뒤 임금을 받자 문제가 명확해졌다. 회사에서 ‘조삼모사’ 식으로 설명해서 몰랐을 뿐, ‘주5일 근무제’ 시행에 따라 근로자가 받는 혜택이 없었던 것이다. 매니저 10여 명이 문제의식을 나누다 보니 다른 불만들도 제기됐다. 포장용품 일부를 현장 직원이 개인 비용으로 구입해야 하는 문제 등이었다. 이런 점들을 모아서 문제제기를 하자는 의견은 모였지만, 어떻게 하느냐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일 수밖에 없었다.

소개받은 노무사의 조언으로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했다. 놀라운 건, 설립총회에 서울 경기 지역에서 100여 명이 참석했는데 그 과정이 사측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그만큼 노조 설립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두려웠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10년째 노조를 이끌면서 강단 못지않게 여유도 생겼지만 당시에는 이 위원장도 걱정에 밤잠을 설쳤다.
“휴대전화만 울려도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그런 고비들을 어떻게 넘겼나 모르겠어요.”

‘노동자 쉴 권리’에 “백화점 영업해도 매장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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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2005년 6월, 로레알 코리아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설립총회 이후 노조 간부들이 전국을 다니면서 설명하고 설득한 결과 당시 현장 직원 대부분인 500여 명이 가입된 채였다. 화장품업계 첫 노동조합이었다.
노동조합이 생기고 가장 좋아진 점은 “힘들 때 이야기할 데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데서부터 힘이 생겨났다. 관리자가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일부터가 확 줄었다. 최근 ‘고객 갑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입점업체에 대한 백화점의 우월적 지위가 원인으로 지목되곤 하는데 로레알 산하 매장들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매년 1월 1일, 추석과 설날 당일은 전체가 쉬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간혹 이날 영업을 강행하는 백화점이 있어요. 그럼 저희는 매장을 휘장으로 가려 놓고 쉬어요.”
영업 중인 백화점에서 일부 매장만 닫혀 있다는 게 상상이 잘 안 되지만 이 위원장의 “조합원의 쉴 권리를 위해서는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는 말을 들으니, 오히려 ‘회사 사정 상 안 될 것’이라며 노동자의 권리를 너무 쉽게 양보해 온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로레알 코리아 노조는 단체협상을 통해 ‘감정노동’ 보상 제도를 적극적으로 따냈다. 현장 직원들에게 기업이 감정수당 월 8만원, 감정휴가 연 1일, 심리치료 연 1회를 제공하도록 한 것이다. 이 위원장은 “감정노동의 고충을 회사가 알고 있으며, 가치를 인정해 준다는 의미가 크다”고 했다.

성과가 많았지만 이 노조 역시 걱정은 있다. 전반적 노동 환경이 워낙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로레알 코리아도 과거에는 전 직원이 정규직이었지만 지금은 매장별로 아르바이트 직원을 두고 있다. “개별 조합이 아무리 애써도 노동법이 후퇴하고 정부가 방관하면 노동 환경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이 위원장은 우려했다.
그래서 조합원 교육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어디나 그렇지만 신입사원들은 노동조합에 대해 ‘투쟁으로 인한 교통 불편’, ‘빨간 띠 두른 이미지’밖에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중에 여기 아니라 다른 직장에 다닐 수도 있는 거고, 옆 매장 직원의 고충을 들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 더 열심히 교육 받으라고 권합니다. 한 명이라도 더 노동자의 권리를 알아야 주위부터 변화시켜 갈 수 있으니까요.”

새누리당 직원도 노동조합 조합원이다

새누리당 사무처 노동조합을 방문한 날, 서울 여의도의 새누리당사는 경찰들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다. 당사 앞에서 ‘노동법 개악 규탄’ 집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 노조를 방문한다는 것처럼 아이러니한 일도 없을 것이다.

“새누리당에 노동조합이 있는 것을 아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깜짝 놀란다. 혹자는 “당은 노동권 보호에 소극적이면서 사무처에는 노동조합이 있느냐”고 비판할지 모른다. 그러나 새누리당 당직자들 역시 엄연한 임금노동자이며 ‘노동 3권’을 가지고 있다. 이 노조가 고민하는 것들도 다른 직장인들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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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왕희 위원장은 2015년 12월 초에 당선됐지만 노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에도 1년간 노조위원장을 역임했기 때문이다.
전체 직원 200여 명 중 140여 명이 가입한 이 노조는 2004년부터 존재했고, 2011년 설립 인가를 받았다. 상급단체에는 가입돼 있지 않은 단일노조다.

새누리당은 집권여당이고 다수당이지만, 노조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직 단체협약도 마련하지 못했다. 임금협상은 윤 위원장 임기였던 2012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뤄졌다. 당시 3년간 임금이 동결됐었고 사측은 “사정이 좋지 않다”면서 동결안을 가져왔었다. 노조는 “물가가 올랐는데 동결이면 임금 삭감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해 적게나마 인상을 관철시켰다.

성과가 또 하나 있었다.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말은 즉, 그 전까지는 직원들이 육아휴직을 쓰지 못 했다는 것이다.
“육아휴직 쓴다고 말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였어요. 심지어 한 직원은 출산휴가가 끝날 때쯤 아기 건강 문제로 하는 수 없이 무급휴직을 신청했어요. 그러면 나라에서 주는 수당도 못 받는데다가 근속연수 계산에서도 불이익을 받는데도요. 이에 대해 노조에서 문제제기를 해서 첫 사례로 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집권 여당 내부부터 노동자 권리 지키자”

이 일이 가능했던 것은 그 해 대통령선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후보가 ‘가족행복 5대 약속’을 공약으로 내거는데 당 직원들이 육아휴직을 못 쓴다면 말이 되느냐”는 노조의 주장이 효과를 본 것이다.
윤 위원장은 올해 임기 중에는 ‘남성 육아휴직 1호’도 배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렇게 육아휴직에 비중을 두는 것은 그 스스로가 주 양육자로 아기를 키워본 일이 있기 때문이다. 취직보다 결혼을 먼저 해서 아내가 외벌이를 하던 시절 경험이다.
아직 우리 기업 문화는 육아휴직의 필요성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직장 내 여성 비율, 혹은 육아휴직을 쓰려는 남성 비율이 적기 때문”이라면서 “노동조합은 다수의 필요가 아니라 소수라 하더라도 절박한 조합원의 필요를 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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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 관리 용역업체 직원들에 대한 처우 개선, 비정규직 직원의 정규직 전환 등 비조합원을 위한 목표도 있다. 다만 조합의 최대 목표는 조합원들의 노동 환경 개선일 수밖에 없다.
“임금인상 요구는 노동자에게 제 1의 권리입니다. 일하는 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고 이뤄가는 것은 직장 만족도를 높이는 중요한 경험입니다. 사람이 신 나서 일해야 조직에도 이익이 되지 않겠습니까?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집권여당 안에서부터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자’고 주장해서 우리 요구를 관철시킬 계획입니다.”

노동권은 ‘먹고 사는 문제’ 이상의 권리

물론 이 두 사례에 긍정적 반응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노조에 대한 흔한 비판들이 예약된 것이나 다름없다. 대표적인 것이 “더 열악한 사람들도 있는데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는 비판이다.
노동전문가 출신인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책 ‘날아라 노동-꼭꼭 숨겨진 나와 당신의 권리’에서 “노동권을 생존권의 테두리에만 가두기 때문에 나타나는 중대한 오류”라고 지적했다. 노동을 ‘먹고 살기 위한 최소한을 얻기 위한 것’으로 바라보면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먹고 살 만하게 해 줄 테니 노동권을 포기해”라고 하고 고임금 노동자에게는 “먹고 살 만한데 왜 파업이냐?”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은 위원은 이 책에서 “노동권은 헌법상의 자유권이고 사회권이라는 점에서 생존권을 넘어선다”면서 “저임금 노동자든 고액 연봉자든, 경제성장률이 높든 낮든, 독재정권이든 아니든 노동권을 기본적 권리로 보장하라는 것이 노동권의 역사이고 의미”라고 강조했다.

또 우리 사회에는 노동자가 극한의 위기, 즉 해고나 극심한 비인격적 처우에 몰렸을 때에만 ‘노동 3권’ 행사를 용인하는 경향이 있다. 드라마 ‘송곳’과 영화 ‘카트’의 배경이 된 2007년 홈에버 대량 해고 사태가 그나마 이에 해당하는 예다. 이 때 노조 사무국장이었던 홍윤경 영등포산업선교회 비정규직선교센터 사무국장은 “위기 상황에 직면해서야 노동조합을 만들어서는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지킬 수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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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업에 별 문제가 없으면 노동조합이 필요 없다, 노동조합이 생겼다면 그 기업은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망조’가 든 것이라는 식의 사회적 인식 때문에 노조 조직과 활동이 더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정규직 노동조합에 대해 ‘비정규직 양산의 주범’, ‘자기 이익만 챙기는 귀족 노조’라는 비판은 너무 흔해서 익숙할 지경이다. 실제로 대기업-정규직 사업장에 비해 중소기업 또는 비정규직 사업장의 임금 수준, 근속 연수, 사회보험 적용 비율 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다만 노동 전문가들은 그 책임을 묻기 위해 ‘대기업-정규직’ 노동조합을 비판하고 그 조직률을 떨어트리려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라고 지적한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산업별 노동조합을 역할을 재정립하고 활성화시켜서 대기업-정규직 노동조합의 성과가 노동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전체 노동자 중 절반 이상(55.7%)이 민주노총, 한국노총과 같은 산업별 노동조합 소속이지만 실제로 산별교섭 등 산업 단위의 활동을 하지 못 해온 것이 노동 양극화의 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물론 산별교섭을 인정하지 않아 온 정부와 기업의 책임도 있다.
배 선임연구위원은 산별노조가 업종별, 소산업 별로 임금 및 근로시간 표준화, 신규 조직 지원, 노동권 교육 등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청년유니온, 희망연대노조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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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런 시도는 이미 진행 중이다. 2010년 청년유니온이 처음으로 청년이라는 특정 세대를 대변하는 초기업노조로 출범했다. 불법고용 실태조사 및 고발 등에 적극 나서고, 주휴수당 등 노동자의 권리를 알려 나가자 짧은 시간에 조직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 영향으로 노년유니온(2012년 설립), 알바노조(2013), 패션노조(2014), 미용노조(2015) 등도 생겨났다.

희망연대노조(2009)는 케이블설치기사 등 비정규직 조합원을 위한 활동을 ‘지역사회운동’으로 펼치는 시도를 해왔다. 지역에 기여하고 주민들과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온 결과, 한 지역의 케이블기사들이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될 때 주민들이 “우리 지역 노동자를 왜 해고하느냐”고 기업에 항의해 저지한 일도 있다고 한다.

새로운 시도들은 반갑지만, 대안이 없어 스스로 활로를 찾은 노조들에게 “계속 자생하라”고만 할 수는 없다. 제도 개선책에 대해 하종강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기존에 있는 법부터 잘 지켜지도록 하자”고 말했다. ‘송곳’의 여러 장면에도 등장하는, 노조 활동을 방해하는 것은 법이 금지한 부당노동행위인데, 관리감독이 소홀하다보니 만연해졌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법 테두리에서 형사처벌만 확실히 이뤄져도 기업의 이런 시도가 확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이밖에도 합법 파업에까지 기업이 노조에 고액 손해배상 소송을 거는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노조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까지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제한을 위한 법 개정안은 이미 은수미 의원 등이 발의해 국회 계류 중이긴 하지만 통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노동개혁법’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이만큼 어울리는 법도 없는데 말이다.

법제도 개선, 관리감독 강화, 산별노조의 재편 등 과제는 많지만, 그보다 앞선 전제가 있다. “노동조합은 필요한 존재”라는 공감대, 아니, “내가 노동자”라는 인식부터 필요한 것이다.

희망제작소는 이 연재 시리즈와 설문조사를 통해서 ‘좋은 일’의 기준을 찾아 가고 있다. 아래 설문조사에 지금까지 7,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이 중에는 불법적, 비상식적인 근로환경을 호소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이 목소리들을 모아서 “우리는 어떤 일을 원한다”는 요구로 만들어 내는 것이 이 기획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데 그동안 하지 않았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구조조정, 해고, 극심한 비인격적 처우, 차별과 같은 상황에 직면하기 전, 지금처럼 평범하게 일하고 있을 때부터 말이다.

글_황세원(연구조정실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사진_이우기(사진작가)

월, 2016/01/0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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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7년쯤인가? 아니어도 무방하다. 지금 내 혼이 비정상적이어서인지 정확한 시기가 기억나지 않는다. 희망제작소 출범 초기 단계 즈음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여름 무렵 지리산 화계사 근방의 숙소를 예약했는데, 희망제작소 때문에 주인 부부가 대판 싸움을 했다. 왜 희망제작소 예약을 받았느냐는 부인의 강력한 질책 때문이었다. 오잉, 숙소 예약이 왜? 이유인즉슨, 이 분은 ‘희망제작소’라고 하니 무슨 목공소나 제재소 정도로 오해해서, 조용한 마을에 시커먼 ‘노가다’ 남정네 이십여 명이 들이닥치는 것을 두렵게 생각한 것이었다.

#2.
2009년쯤인가? 이 역시 정확한 시기에 대한 기억이 자신 없기는 매한가지. ‘우리나라가 테러방지법이 없다는 어마무시한 극도의 보안사항을 IS가 알아버렸다’고 하니 겁나서 정신 줄을 놓쳐 버린 탓이다. 대충 희망제작소가 평창동으로 이사 간 이후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루는 중년의 부인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여기 혹시 싱크대도 만들어주나요?” “네? @_@” 이 분은 ‘희망제작소’가 싱크탱크라고 하니 무슨 주방용품 제조업체쯤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기 멤버, 고통과 자긍심의 다른 이름 

여전히 목공소나 싱크대 제작소라고 오해하는 분이 계실 수도 있지만, 출범 초기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제법 상승했을 것입니다. 시민사회진영 내에서는 시민권도 얻었을 테고 근육도 어느 정도 붙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초기 멤버의 노력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초기 멤버는 ‘처음’을 만들어가는 구성원으로서의 자긍심도 있으나 첫 삽질의 수고스러움과 맨땅에 헤딩하는 고통을 숙명처럼 안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이 처음이다 보니 말 못할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일도 심심찮게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월이 흐른 후 진행되는 창립 기념식에서는 초기의 어설펐던 일들이 종종 희극으로 소환되어 웃음바다를 이루기도 합니다. 한때는 이것을 소재로 시트콤을 만들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원순 씨(現 박원순 서울시장)는 창업자의 지분뿐 아니라 무수한 아이디어와 전투적인 추진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진솔하고 성실하기까지 해서 모든 연구원을 압도하였는데, 따지고 보면 초기 멤버 고통의 8할은 그로부터 말미암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당시 박원순 상임이사가 했다고 해도 별로 어색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당신은 있는 것을 보고 ‘왜?’냐고 묻지만 나는 결코 없었던 것을 꿈꾸며 ‘안 될 게 뭐야?’라고 묻는다.”
아니, 당연하게 여겨지는 익숙한 것에 대해 ‘왜?’라는 비판적 성찰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인데 ‘결코 없었던 꿈이 안 될 게 뭐야?’라며 한 걸음 훌쩍 더 나가다니. 잘 났어. 정말.

원순 씨와 연구원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는 강. 어떤 이는 용감하게 뛰어들어 강을 건너기도 했고, 강이 깊다며 되돌아오는 이도 있었고, 간을 보며 강가를 어슬렁거리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집중회의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집중회의’ 일정이 잡히면 오직 ‘집중회의’에만 집중하느라 처리해야 할 다른 일에 집중을 못 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회의실 들어가기 직전에 우황청심원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그녀는 우황청심환의 약발이 별로라며 애꿎은 우황청심환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습니다.

여러분은 건강한 공공재에서 일하는 공익근무요원입니다

희망제작소는 초기와 비교하면 인지도가 올랐지만, 영향력까지 동반상승 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인지도야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면 얼마든지 높일 수 있지만, 영향력은 실력의 문제니까요. 게다가 희망제작소가 표방하는 것은 실사구시적 방식으로 현실에 접근하는 것, 이를 통해 연구 결과물을 길어 올리는 것. 다시 말해 혁신적인 도전과 그 도전의 결과물을 추상화하는 역량, 이것이 2016년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이 좀 더 집중해야 할 일입니다. 땅을 파고 터를 닦아 건물을 세운 초기 단계에는 근대적 성실함과 맷집이 필요했지만, 10년이 지난 2016년은 여러분에게 새로운 무엇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요구에 얼마나 잘 조응하느냐가 결국 희망제작소의 성패와 영향력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는 군부독재와 민주정부의 시절을 거쳐 어찌 된 일인지 정상적인 혼과 비정상적인 혼이 횡행하는 무속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우주의 기운을 받기 힘든 사회가 될 것 같습니다. 워낙 강력한 지배 블록이 형성되어 있어 쉽사리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국가의 근본적인 변화, 사회 시스템의 해체와 구축 등 더 필요하고 절박한 과제가 놓여 있는데, 내가 지금 머물러 있는 현장의 소소한 일상과 별 영양가 없어 보이는 보고서가 참 옹색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길게 보고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지치면 쉽게 나오는 증세가 무의미의 우울증입니다. 악마는 화난 얼굴이 아니라 섹시한 표정으로 다가와 우리의 열정을 무장해제 시킨 후 허무의 늪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동료, 선후배를 믿고 의지하며 나아갈 수 있는 만큼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몇 안 되는 우리 사회 건강한 공공재에서 일하는 공익근무 요원이고, 여러분이 희망제작소에서 하는 일 중 무의미한 것은 없습니다. 희망제작소의 도전과 실험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작년보다 더 지혜로워진 것을 축하합니다!

남미 안데스에서 유래한 우화 한 토막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숲이 타고 있었다. 숲속의 동물들은 앞다투어 도망을 갔다. 하지만 크리킨디란 이름의 벌새는 왔다 갔다 하며 작은 주둥이로 물고 온 단 한 방울의 물로 불을 끄느라 분주했다. 다른 동물들은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저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어”라며 비웃었다. 크리킨디는 대답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제가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에 ‘무탄트 메시지’가 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참사람 부족’에게는 생일 축하라는 것이 없습니다.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먹게 되는 나이를 축하하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것이지요. 자신이 더 나아지는 것, 작년보다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다면 그것을 축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그 파티를 열게 되는 시점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만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올해가 희망제작소 10주년이네요. 10년은 단지 시간의 경과가 아니라 오랜 날들을 버텨온 고통과 노력의 산물이기에 기꺼이 박수 받을 일입니다. 다만 얼마나 성장했는지에 관한 질문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20주년 30주년이 아니라 연구원이, 그리고 희망제작소가 한 뼘 더 성장했음을 축하하는 소박한 파티를 열어 봅시다. 많은 선배들이 언제든, 기꺼이 그 자리에 동참할 것입니다.

글_정성원 수원시 평생학습관 관장(희망제작소 연구자문위원)

이 글을 써주신 정성원 관장님은 2006년부터 희망제작소와 함께 하셨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사무국장 등을 맡으셨고 비공식적으로는 자칭 희망제작소 ‘명사회자’의 역할까지 두루 해오시다가, 2011년 희망제작소가 위탁운영하게 된 수원시 평생학습관을 이끌고 계십니다. 희망제작소 10주년을 맞이하는 2016년 새해 첫 뉴스레터에 연구원 후배들에게 애정어린 글을 보내주신 정성원 관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화, 2016/01/0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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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서울시당 지역정치 빨간펜 

'구청이 들썩들썩' step2.


● 기획취지

지역정치 빨간펜 '구청이 들썩들썩'은 새로운 지역정치 활동의 모델을 형성하기 위해 당원이 참여하여 기초정부를 평가해 보자는 취지입니다. 구체적인 지역 현안에 대한 개입력을 높여서 당원협의회 차원의 정치활동을 준비하고, 당원 스스로가 지역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기본적인 정책역량을 갖고자 합니다. 그래서 지난 11월 22일에 정책학교를 진행했고, 12월 9일에는 구청이 들썩들썩 step1. 모임이 있었습니다.


● step2.

1부.

1. 구별 2016년 예산서를 꼭 받아내어, 가장 많이 예산이 증가한 사업을 찾고 분석해 주세요.

2. 지역 현안을 하나 정해서, 당협의 대응 계획을 제출해 주세요. 

(논평/캠페인 수준일수도 있고 그전에 정보공개청구, 예산 등 현안에 대한 상세 파악 수준일 수도 있습니다.)

2부.  신년 포트락 파티

● 일정

2016년 1월 14일(목) 

19:30

중앙당 회의실


● 발표를 열심히 준비한 당협에게는 '지방예산 쟁점 100' 책을 드립니다.


● 문의전화

02-786-6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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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6/01/0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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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해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안신숙의 일본통신 39
리사이클 가게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재생’한 노숙자들

노숙자들이 운영하는 리사이클 가게 아웅을 소개합니다.

도쿄도 다이토구(台東区) 북동부 우에나와 아사쿠사 근방에 위치한 산야(山谷)지구는 오사카의 카마가사키, 요코하마의 고토부키쵸와 함께 3대 일용 노동자들의 거주지로 알려져 있다. 메이지 초기부터 근처 유곽에서 일하는 마부 등 빈곤자들이 많이 거주해 온 관계로 도야(쪽방)라 불리는 간이 숙박소가 줄지어 들어섰으며, 고도경제성장기가 되자 공사장에서 일하는 일용노동자들이 이들 값싼 간이숙박소를 찾아 모여들면서 일용노동자들의 마을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일자리를 잃고 도야에서조차 내몰린 일용노동자이 근처 스미다강가나 우에노공원 등지에 텐트를 치고 노상 생활을 시작하면서 노숙자들 또한 많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도쿄 히가시닛포리에서 문을 연 리사이클샵 아웅, 그 옆에 트럭 주차장과 물품 창고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도쿄 히가시닛포리에서 문을 연 리사이클샵 아웅, 그 옆에 트럭 주차장과 물품 창고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이 산야지구에서 조금 떨어진 아라가와구 히가시닛포리(荒川区東日暮里) 주택가 한쪽 모퉁이에 ‘리사이클 가게 아웅’이 있다. 토요일 오후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꽤 많은 손님들이 20평 남짓한 가게에서 헌옷과 잡화를 둘러보고 있다. 파산한 마치코바(시내 영세 공장)를 임대하여 조합원들이 폐건자재를 이용해 손수 개조했다고 한다. 1층 오른켠에는 헌옷이 가즈란히 걸려 있고, 왼켠에는 새것처럼 잘 닦여진 생활 잡화가 정렬돼 있다. 나무로 설치한 계단을 타고 2층에 올라가니 헌옷과 각종 잡화들이 가득 쌓여 있다. 여기서 수집된 헌옷과 잡화들을 점포 판매용, 노숙자들에게 나눠줄 물건, 중간상들에게 넘길 물건등으로 분리하고 있다고 한다.

“일단 아웅에 오면 노숙자등 빈곤자들이 목조 아파트 한 칸을 빌려 새생활을 시작하는데 필요한 물건 일체를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 컨셉입니다.”
아웅을 이끌고 있는 나카무라 미츠오(中村光男, 64세)씨의 설명대로 잡화 코너에는 냉장고등의 소형 가전제품은 물론 담요와 코다츠, 커텐 레일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 지역 주민, 학생, 외국인 등이 점포를 꾸준히 방문해 주기도 하지만 신생활자들을 위한 ‘패키지 판매’가 매상을 올리는 주력이라고 한다. 냉장고, 세탁기, 가스렌지, 전기 밥솥, 테이블, 칼라 복스 등을 저렴한 가격의 패키지로 준비해 전화로 주문하면 배달과 설치까지 해주고 있어 주머니가 얇은 빈민들에게는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벤리야(便利屋)와 산업폐기물 처리업으로 사업 모델 합리화

아웅에서 판매하고 있는 헌옷과 잡화중 기부받는 물품은 불과 10%에 지나지 않는다. 리사이클가게를 개점한 이듬해 2003년 부터 벤리야(심부름센터와 같은 용달업)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가게 옆 주차장에는 영업용 2톤 트럭들이 나란히 주차돼 있다. 2대로 시작해 지금은 8대의 트럭을 소유할 정도로 일거리가 많아졌다고 한다. 동네에서 험한 일은 무엇이든 받아하는 이 ‘용달업’이 실은 아웅의 리사이클판매업과 산업폐기물중간처리업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복지사무소나 구청 고령자복지과에서 의뢰받은 무연고자들의 유품 정리와 고령자들의 이사 대행이 가장 많다.

이사나 유품 정리를 하고 나면 다량의 불용품과 폐기물이 나오는데, 아웅은 이들 폐기물을, 헌옷과 가전, 가재 도구뿐만 아니라 나무 판자나 알미늄 샷시등의 폐건자재, 하물며 전기줄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모두 수거해 온다. 그중 재활용 가능한 것들은 갈고 닦고 수리해 리사이클 가게에서 판매한다. 아웅의 수리의 달인의 손을 거치고 나면 중고 냉장고도 반짝이는 신품으로 변신한다고. 창고에서 작업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수줍은 듯 인사하던 그는 67세의 산야 노숙자 출신으로 아웅의 창립 맴버 중 한사람이다. 리사이클 가게에서 판매하는 물품들의 90%가 이렇게 공급되고 있다.

또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기물들은 재료별로 일일이 분류해 중간 처리업자에게 판매한다. 목재폐기물 수거업자에게 넘겨진 나무 판자와 문짝 등은 목재칩으로 변신해 바이오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고, 전기 제품 등에 들어 있던 동, 알미늄, 금속 조각은 각각의 처리 업자들의 손을 거쳐 산업 자재로 재활용된다. 2008년 이 폐기물 수거 판매를 시작하면서 아웅의 매상은 비약적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버블 붕괴와 함께 노숙자의 블루 텐드촌이 형성되다

리사이클 가게 아웅은 2002년 산야지구의 50대 노숙자 5명이 1만엔(약10만원)씩 공동 출자해 창업했다. 주소가 없어 취업은 커녕 공적인 생활 보호조차 받지 못해 스미다강가에서 불루텐트를 치고 알루미늄캔 껍질을 모으며 생활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97년 경부터 근처 교회 등에서 헌옷을 기부받아 프리마켓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출발점이 되어 리사이클 가게를 열게 됐다고 한다. 노숙자들과 함께 리사이클 가게 아웅을 설립한 나카무라 미츠오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산야 생활 30년 끝에 아웅을 설립한 나카무라씨

▲산야 생활 30년 끝에 아웅을 설립한 나카무라씨

“1971년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바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몇 번의 옥중 생활을 경험한 뒤 1980년 산야에 직접 들어가 일용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운동을 해 왔습니다”

그가 입학한 1971년은, 1968년 그 정점을 찍었던 안보투쟁(전공투 운동)이 사그라질 무렵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반전 운동과 사회의 가장 저변에서 살고 있는 일용 노동자들의 쟁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30여 년간 줄곧 산야지구에서 살면서 일용노동자조합인 ‘산야쟁의단’에 가입해 그들의 일자리 확보와 복지 증진을 위해 운동해 왔다.

1990년 그의 활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90년대 버블 붕괴와 함께 일용노동자들의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고 요세바(寄せ場-일용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기다리는 새벽 시장)는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도야에서 생활하던 일용 노동자들은 일제히 거리로 내몰려 생활 보호등 행정 시책으로부터도 배제된 채 공원이나 강가에서 블루 텐트를 치고 노숙자 생활을 시작했다. 산야에서 가까운 스마다강가에 1000여 개의 텐트가, 우에노 공원에 수백 개의 텐트가 늘어섰다. 이렇게 산야는 일용노동자들의 거리에서 노숙자들의 거리로 바뀌어 갔으나, 행정 기관은 그로부터 10여 년간 그 어떤 대책도 세우지 않고 이들을 방치해 왔다. 그래서 산야의 일용노동자 운동은 자연스럽게 노숙자들의 생활 지원 운동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는 ‘산야노동자복지회관’을 설립하고 ‘반빈곤네트워크’를 구축해 노숙자들의 생활 지원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버려진 자들, 버려진 물건으로 스스로의 삶을 재생시키다

“철저하게 당사자 운동의 원칙으로 전개됐습니다. 노숙자들 스스로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 일자리를 만들어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힘을 키우자는 겁니다.”
타키다시(炊き出し、노숙자들에게 밥을 지어 나눠주는 활동) 대신 쌀을 기부받아 공원등에 모여 노숙자들 스스로 밥을 짓고 따뜻한 된장국을 끓여 나눠 먹으면서 지원자 그룹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갔다. 이렇게 해서 2000년에는 일본 최초의 ‘푸드뱅크’가 탄생했다. 푸드뱅크는 기부 뿐만 아니라 군마현에 있는 논에서 직접 쌀을 재배하기도 하면서, 산야의 노숙자들과 카나가와등의 노숙자 지원 단체 등에도 쌀을 제공해 주고 있다. 또 ‘쓰미다강 의료상담회’활동도 그와 산야노동자복지회관의 주요 활동 중의 하나다. 매월 제3일요일 쓰미다강가에서 실시되는 의료상담회에는 약 400여명의 노숙자들과 의료종사자들이 모여 공동 취사와 함께 의료상담을 한다. 진찰 결과 약을 제공하기도 하고 계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면 입원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매월 아웅과 쓰미다강의료상담회와 지원자들이 함께 실시하고 있는 공동 취사와 의료 상담

▲매월 아웅과 쓰미다강의료상담회와 지원자들이 함께 실시하고 있는 공동 취사와 의료 상담

‘아웅’은 이러한 일련의 활동 과정에서 노숙자들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맴버 5인이 조성금 등에 의존하지 않고 회비와 교회 등에서 빌려 스스로 자금을 조달해 임대료와 빚을 갚아가며 가게를 키워 왔다. ‘사회가 우리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자. 혼자서는 힘들지만 동료들과 함께라면…다시 한번 활기차게 살고 싶다.’ 라는 생각으로 전력을 다할 것을 약속하고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죠. 반 년간 수익도 없었고 월급도 나눌 수 없었습니다. 쓰미다강에서 노숙하면서 푸드뱅크에서 세끼를 먹으며 힘든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노숙자들이 운영하는 가게에 지역 주민들이 쉽게 마음을 열어 줄리 없었죠. 그래서 일부러 가게 앞 노상에 가전제품을 내놓고 수리했습니다. 노동의욕을 통해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였죠.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지역과 함께 관계 기관들과 함께 협업이 이뤄지도록 노력했습니다. 지역의 생활 보호 수급자들에게 가전 제품을 세트로 팔아 노상 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복지 사무소등과 네트워크를 강화해 고독사한 사람들의 유품 정리를 했습니다. 빈곤자들이 빈곤자들을 대상으로 사업하면서 상부상조한다고 할까요? 자연 지역 주민들도 서서히 헌옷과 생활 용품을 사러 가게를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나카무라씨가 들려준 초창기 고생담이다.

또 하나의 노동, 협동노동이 낳은 기적

아웅이 문을 연 2002년 8월의 매상은 13만엔, 당시 가게 월세가 12만엔이었다. 맴버도 5명이었다. 그렇게 출발한 아웅은 10여 년간의 노력으로 지금 연간 매상이 1억2000만엔, 조합원 35명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35명의 조합원중 현재 일하고 있는 조합원은 21명이다. 고령과 질병으로 더이상 일하기 힘든 조합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노숙자들외에 가정 폭력, 히키코모리, 조기 실업 등의 이유로 사회적으로 격리되고 배재돼 왔던 여성들과 청년들도 함께 참가하고 있다. 모두 자력으로는 자립된 생활을 꾸리기 힘든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시급은 1250엔으로 도쿄도의 최저임금 907엔보다 훨씬 높다. 풀타임으로 일하면 통상 20-25만엔의 월급을 받아가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국민연금등의 사회보장과 함께 주거수당(임대료의 1/4), 싱글마더 수당(월20000엔/아이 1인당)을 별도로 지급하며, 매년 순이익금(200-500만엔)을 퇴직금으로 적립하고 있다. 처우가 여느 정규직 고용에 뒤지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처우를 높이기 보다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낳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사회적일자리라 해도, 노동자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임금을 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아웅은 조합원들에게 최소 주5일, 1일 7시간의 일자리를 보장해 주기 위해 리사이클샵, 벤리야, 폐기물중간처리로 사업 영역을 확대시켜 왔지요.” 그의 말에서 사회성의 틀에 갖혀 흔히 결여되기 쉬운 사업성이 엿보인다. 이처럼 당사자 스스로 사업을 일으켜 사회성과 사업성을 동시에 실천하고 있는 아웅은 노동으로 부터의 소외와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모델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아웅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지 물어 봤다. 나카무라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노동자 협동조합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당사자들이 스스로 일자리 창출에 나섰으니까. 그 때부터 노동자 협동조합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아웅은 월1회 전 조합원이 모여 매상을 확인하고 자신의 일을 평가하며 일하는 시간과 일수를 정해 왔습니다. 매년 인건비 등의 경비를 제외하고 남는 순이익을 바로 분배하지 않고 퇴직금으로 적립하기로 한 것도 조합원들 스스로 결정한 겁니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경영에 필요한 의사 결정에 직접 참여하고 그 결정을 노동으로 직접 집행하는 것이 큰 힘인 것 같습니다.”

가게 앞 트럭에서 짐을 내리고 있던 30대의 젊은 조합원 A씨.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반 회사에 취직했으나 적응을 못하고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고 있었다. 히키코모리 지원 단체의 소개로 아웅에 왔다. 처음에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나 입사 4년째인 지금은 아웅의 벤리야 사업을 주도할 정도로 활기차게 일하고 있다. 창고에서 수줍게 인사하던 창립 맴버였다는 B씨는 오랜 노숙자 생활 탓에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지만 주 3일이라면 무리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며 여전히 아웅의 가전 제품 수리를 책임지고 있다. 이처럼 주체적인 노동이 사회에서 쓸모없이 버려졌던 노동자들의 삶을 재생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려는데 갑자기 저녁을 먹고 가라며 붙잡는다. 일찍 일을 끝낸 조합원들이 벌써 상을 차리고 있다. 이렇게 아웅의 조합원들은 하루 일이 끝나면 2층에 모여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으며 술잔도 곁들이면서 담화를 나누곤 한다. 공동 경영 공동 노동이라는 협동노동의 힘뿐만 아니라 이러한 열린 공동체 의식 또한 아웅의 성공에 큰 힘이 됐으리라 짐작해 본다.

글_ 안신숙(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 [email protected])

화, 2016/01/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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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힘으로 21세기 한국 사회의 희망을 만들자!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싱크탱크, 희망제작소. 대안사회를 꿈꾸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소셜디자이너들이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한국 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디자인하겠다고 ‘싱크탱크 운동을 통한 우리 시대 희망 찾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지가 벌써 10년이 되었다. 2016년 3월, 희망제작소가 10살이 된다.

그런데 그 10년 동안 우리 사회는 희망을, 미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희망이 없는 사회, 미래가 닫힌 나라, 그것이 바로 2016년을 맞이한 대한민국 시민들의 고달픈 현실이다. 그렇지만 ‘헬조선’은 한국 사회의 진정한 희망이 되겠다고 선언했던 희망제작소의 역부족을 드러내어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절박했던 존재이유를 더욱 분명하게 확인해 준다. 사실,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풀뿌리 민주주의가 점점 더 위축되어 가는 ‘기업사회 대한민국’에서 희망제작소의 ‘좌절’은 어쩌면 예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예상을 깨고, 희망제작소가 마침내 10살을 맞이하였다. 이제 새로운 10년을 내다보면서, 희망제작소는 언제나 열려 있는 희망의 가능성을, 결코 미래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보여주고 있다.

희망제작소 10년을 되돌아보는 일은 때로는 즐거움을, 때로는 놀라움을 가져다준다. 지역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시작한 지역희망찾기와 지역순례, 시장학교’ 개설과 목민관클럽 설립 등은 희망제작소가 서울에 갇혀 있지 않음을, 희망제작소가 현장에 있음을, 희망제작소 자체가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임을 보여주었다. 희망제작소의 ‘지역만들기’는 한편으로는 극도로 심화되어 가는 한국 사회의 중앙집중화를 막아내고 지역의 자생력을 살리는 운동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무너져가는 우리 사회 곳곳의 생활공동체를 되살리려는 ‘마을만들기’로 발전하였다. 지역과 마을을 살리려는 희망제작소의 끊임없는 노력은 사회혁신기업가포럼, 소셜이노베이션캠프,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희망제작소가 시민의 싱크탱크가 된다는 것은 희망제작소가 시민 속으로 들어가는 동시에 시민이 희망제작소 속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일이다. 시민들이 직접 사회문제를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희망제작소는 사회창안센터를 만들어서 시민들이 ‘와글와글’ 자유롭게 자신들의 생각을 내어놓을 수 있게 하였다.

이처럼 시민이 공익 디자인 창안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시민참여형 사회창안은 소셜디자이너스쿨 개설로, 우리 사회 시니어들을 위한 행복설계아카데미 개설과 해피시니어어워즈 시상, 시니어NPO학교 개설 등으로 이어졌으며, 또한 희망제작소의 고유한 연구방법으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 사회의 청년 세대가 사회의 주역으로 거침없이 성장하고 또 그들의 방식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 사회는 참된 희망이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희망제작소는 청년들이 주인공이자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내는 싱크탱크가 되어야 한다. 이제 창립 10주년이 되는 희망제작소의 연구자들은 여전히 젊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생활 속에서 직접 경험하고 있으며, 또 그들과 같은 젊은 세대의 절망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 희망제작소의 미래는, 희망제작소가 내어놓는 소셜디자인들의 매력과 힘은, 대한민국의 희망은 바로 이들 젊은 지식인-시민운동가들로부터 나온다.

그렇지만 희망제작소가 앞으로 내다볼 10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희망제작소의 젊은 연구자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희망을, 대한민국을 위한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희망제작소의 모든 구성원들이 현실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이상주의적인 신념을 가지길 권하고 싶다.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에 갇히지 않는 지혜, 비관적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으로부터 오는 절망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끌어내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 이 두 가지 역량이야말로 지금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희망제작소 청년들의 지혜와 용기가 시민들에게 널리널리 전파되기를 빈다.

지혜와 용기는 때로는 역사에서 배우는 상상력으로부터, 때로는 거대담론이 제시하는 해석으로부터, 때로는 철학이 주는 위로로부터 온다. 현장성에, 실사구시에, 구체적 대안에 굳건하게 발을 디디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이상과 행동, 그리고 우연이 만들어내는 인간 사회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현실을 다 파악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에, 바로 그러한 겸손의 순간에, 희망은 살아난다. 한층 더 성숙해진 희망제작소의 연구자들이 시민들 곁으로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가서 더 큰 희망을 함께 만들어가는 꿈을 가져본다.

희망제작소는 소셜디자이너들의 공동체이다. 공동체는 소통을 통해서 구성원들의 차이를 공동체의 발전에 활용한다. 감히 연구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연구를 공유하고, 서로 얼마나 다른가를 확인하라. 서로가 사용하는 연구방법과 이론적 틀을 나눠가지고, 서로가 찾아낸 연구결과와 정책대안을 같이 검토하라. 얽힐 대로 얽혀 있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단순한 역할 분담이 아니라 전체를 함께 보고 각자의 연구결과와 정책대안을 서로 결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희망제작소가 함께 아파하고 함께 희망을 찾아가는 연구자들의 생활공동체가 될 때에 가장 아름다운 희망 하나가 우리 사회 속에서 이미 꽃핀 것이다.

2016년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해이다. 그리고 2017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2018년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다소 과장해서 말한다면, 2016년은 3년에 걸친 ‘선거의 시대’가 시작하는 해이다. 대한민국이 거의 10년째 바닥이 어디쯤인지 모르는 ‘절망의 늪’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고 한다면, ‘선거의 시대’는 시민들이 새로운 국가비전과 국가권력을 만들어냄으로써 희망의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희망제작소가 선거에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선거의 시대에, 희망제작소가 사람을 위한 대안, 사람을 살리는 사회혁신으로 희망의 길을 열어가기를 기대한다.

2016년 희망제작소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에서 거대한 도전에 직면한 것은 아주 뜻깊은 일이다. 지난 10년 동안의 활동을 통해 희망제작소가 체득한 분석과 창안의 능력은, 시민들로부터 받고 있는 신뢰는, 희망제작소의 젊은 연구자 모두가 우리 사회에 큰 희망을 제공하는 소셜디자이너로 우뚝 서도록 만들 것이다. 희망제작소가 만들어나갈 새로운 10년의 희망이야말로 대한민국 시민들이 꿈꾸는 새로운 10년의 희망이 아니겠는가!

글_박순성 (연구자문위원, 동국대학교 교수)

화, 2016/01/0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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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0년 전, 2006년 1월의 일이다. 서울 용산의 삼성경제연구소 사무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한겨레신문에 나온 박원순 변호사(現 서울시장)의 인터뷰 기사 때문이었다. ‘희망제작소’라는 이름의 실사구시적 독립 싱크탱크가 그해 3월 출범한다는 소식이 실린 기사였다. ‘정권이나 특정 기업 편에 서지 않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 기대감 섞인 주문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월급은 얼마나 준대?’ ‘**원만 주면 가서 일하고 싶은데…’라는 말도 들렸다.

당시 나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해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지 꼭 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삼성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다가, 당시 특정 기업이 아니라 국민의 싱크탱크가 될 것을 자임하면서 국가 정책과 지역 정책 연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정부 부처, 국회,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그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을 때였다. 요즘 유행하는 동영상과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보고서를 처음으로 내놓고 인기를 끌고 있을 때이기도 했다. 당장 돈이 만들어지는 일이 아니었지만, 삼성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해외 유수 대학 출신의 박사들을 포함해 많은 인재도 몰려들었다.

그런데도 목마름은 컸다. 연구결과물을 내놓을 때마다 삼성과의 관계, 기업 일반의 이익과의 관계를 신경 써야 했다. 정책보고서를 내놓을 때면 정부와 여당이 잘 받아들이도록 새로운 언어로 감수하고 윤문해야 하는 일이 잦았다. 경제 전망 보고서를 내놓을 때도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지 걱정해야 했다. 돈도 있었고, 인재도 모였고, 영향력도 커졌고, 대중적 인지도 역시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의 갈증은 컸다. 그날 연구소가 술렁였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독립성이었다. 연구자들은 권력이나 자본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오로지 시민의 이익만을 위해 정책을 연구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 그래야 진정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이 나온다. 그 대목에서 희망제작소는 연구자들에게 희망을 줬다. 특정한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인, 오로지 시민이 겪고 있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연구하면 되는 싱크탱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2016년, 희망제작소는 열 돌을 맞게 됐다. 그리고 나는 이곳 희망제작소에 둥지를 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제 더는 국민을 향한 정책보고서를 내지 않는 곳이 됐다. 전략이 바뀌어 삼성 내부의 연구만 하게 되었단다. 독립적 싱크탱크의 반대방향으로 움직인 셈이다. 희망제작소는 10년 동안 독립적 싱크탱크의 길을 조용히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간 희망제작소가 해낸 일은 화려하다.

우선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을 통칭하는 사회적경제 개념을 들여와 확산시켰다. ‘희망별동대’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회적기업가를 직접 키워내기도 했다. ‘소셜디자이너’를 양성하는 소셜디자이너스쿨을 열어 사회적경제 및 비영리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회혁신가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매우 작은 실험으로만 여겨지던 사회적경제는 한국사회 전체에 유행처럼 퍼졌다. ‘사회적기업지원법’과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져 사회적경제는 한국사회에서 법적 시민권을 얻었다. 그 틀을 종합하는 ‘사회적경제기본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기도 하다. 이제 웬만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사회적경제를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이 영역을 육성하려 노력한다. 사회적경제에 매혹되어 뛰어드는 청년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마을공동체 개념을 들여온 것도 희망제작소가 한 일이다. 공동체가 해체되고 각자도생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마을’이라는 익숙하면서도 낯설어져 버린 키워드는 예기치 않은 폭발력을 보였다. 도시는 도시대로, 농촌은 농촌대로 마을공동체 개념을 각기 받아들였다. 또한,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자치활동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두터워지고 있다. 희망제작소가 제시한 주민자치와 풀뿌리 경제가 전국의 마을공동체를 기반으로 싹을 틔우려 하고 있다.

희망제작소는 은퇴자 문제에 처음부터 천착해서 ‘시니어 사회공헌’이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은퇴자들의 재능을 공익적인 곳에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은퇴는 곧 휴식이라는 과거 평생직장 시대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이야기였다. ‘행복설계아카데미’를 통해 전파한 이런 이야기에 공감한 많은 은퇴자가 비영리기관 또는 사회적경제 영역에 진입했다. 시니어 사회공헌은 한국사회 전체의 은퇴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 정부는 ‘사회공헌 일자리’라는 개념의 정책을 도입했다. ‘인생이모작’을 지원하는 조직들이 많이 생겨났고,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관련 교육과 인큐베이팅에 나섰다. 은퇴자 교육에 사회공헌 관련 내용을 담으려는 기업도 생겼다.

지방자치단체, 특히 기초자치단체에 주목한 여러 정책제안활동도 한국사회의 풀뿌리를 강화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희망제작소 설립 당시만 해도 기초자치단체인 시군구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중앙정치가 지나치게 비대한 힘을 갖고 있어 모든 관심을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 중에서도 규모가 큰 광역단체 정도만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희망제작소는 기초자치단체들과 다양한 지역혁신 정책과제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전국 곳곳에 혁신적 기초자치단체들이 생겨났다. 희망제작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연구모임인 ‘목민관클럽’은, 혁신의 확산에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지역에서 혁신적 정책이 도입되면, 목민관클럽을 통해 순식간에 확산되고 있다.

구호로만 난무하던 ‘참여’를 ‘시민창안’이라는 개념을 통해 실질적 방법론으로 발전시킨 곳도 희망제작소다. 시민제안을 정책으로 만들어내는 단계부터 시작해, 시민참여를 통한 사회혁신 방법론을 차곡차곡 진화시켰다. 만들어진 방법론은, 시민 원탁토론을 통해 지역 현안에 대한 정책 대안을 도출하는 데 사용되었다. 전국적으로는,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 안전을 높이기 위한 시민의 지혜를 모으는 ‘노란테이블’로 진화하기도 했다. 이제 시민참여를 주장하면서 실질적 방법론을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은 탁상공론만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형국이 됐다.

2016년 희망제작소는 열 돌을 맞는다. 영광의 10년 위에 무엇을 얹을지 고민이 되는 시점이다. 고민은 다면적이고 중층적이다. 여전히 미시적 해법이 중요하지만, 한국사회는 거시적 사회운용 틀이 너무 낡아 버려서 이 틀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혁신가들과 현장 역시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더 많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 패러다임으로 만들어야 더 큰 차원의 사회 혁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시대 독립적 싱크탱크에게 주어진 과제는 그만큼 다양한 것일지 모른다. 국가 의제에 대한 연구와 거시적 패러다임에 대한 연구도, 현장 중심의 조사와 실천도, 지역과 시민을 직접 만나 생각을 전하는 일도 모두 필요하다. 이런 여러 가지 일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찾아내는 것이 10주년을 맞는 희망제작소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희망제작소는 ‘시민과 함께 사회혁신을 실천하는 Think & Do Tank’라는 슬로건에 가장 잘 맞는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고민은 다양하지만, 관점은 오로지 하나다. 점점 정체되고 굳어져 가는 한국사회가 활력과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혁신적 대안을 더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2016년 희망제작소가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다.

귀를 열고 후원회원으로부터, 시민으로부터, 전문가로부터, 행정가와 정책전문가로부터 희망제작소에 대한 ‘희망’을 듣는 일이 희망제작소 상근자들이 다음 10년을 준비하는 일이다.

화, 2016/01/0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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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힘으로 21세기 한국 사회의 희망을 만들자!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싱크탱크, 희망제작소. 대안사회를 꿈꾸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소셜디자이너들이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한국 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디자인하겠다고 ‘싱크탱크 운동을 통한 우리 시대 희망 찾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지가 벌써 10년이 되었다. 2016년 3월, 희망제작소가 10살이 된다.

그런데 그 10년 동안 우리 사회는 희망을, 미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희망이 없는 사회, 미래가 닫힌 나라, 그것이 바로 2016년을 맞이한 대한민국 시민들의 고달픈 현실이다. 그렇지만 ‘헬조선’은 한국 사회의 진정한 희망이 되겠다고 선언했던 희망제작소의 역부족을 드러내어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절박했던 존재 이유를 더욱 분명하게 확인해 준다. 사실,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풀뿌리 민주주의가 점점 더 위축되어 가는 ‘기업사회 대한민국’에서 희망제작소의 ‘좌절’은 어쩌면 예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예상을 깨고, 희망제작소가 마침내 10살을 맞이하였다. 이제 새로운 10년을 내다보면서, 희망제작소는 언제나 열려 있는 희망의 가능성을, 결코 미래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보여주고 있다.

희망제작소 10년을 되돌아보는 일은 때로는 즐거움을, 때로는 놀라움을 가져다준다. 지역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시작한 지역희망찾기와 지역순례, 시장학교 개설과 목민관클럽 설립 등은 희망제작소가 서울에 갇혀 있지 않음을, 희망제작소가 현장에 있음을, 희망제작소 자체가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임을 보여주었다. 희망제작소의 ‘지역만들기’는 한편으로는 극도로 심화되어 가는 한국 사회의 중앙집중화를 막아내고 지역의 자생력을 살리는 운동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무너져가는 우리 사회 곳곳의 생활공동체를 되살리려는 ‘마을만들기’로 발전하였다. 지역과 마을을 살리려는 희망제작소의 끊임없는 노력은 사회혁신기업가포럼, 소셜이노베이션캠프,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희망제작소가 시민의 싱크탱크가 된다는 것은 희망제작소가 시민 속으로 들어가는 동시에 시민이 희망제작소 속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일이다. 시민들이 직접 사회문제를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희망제작소는 사회창안센터를 만들어서 시민들이 ‘와글와글’ 자유롭게 자신들의 생각을 내어놓을 수 있게 하였다.

이처럼 시민이 공익 디자인 창안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시민참여형 사회창안은 소셜디자이너스쿨 개설로, 우리 사회 시니어들을 위한 행복설계아카데미 개설과 해피시니어어워즈 시상, 시니어NPO학교 개설 등으로 이어졌으며, 또한 희망제작소의 고유한 연구방법으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 사회의 청년 세대가 사회의 주역으로 거침없이 성장하고 또 그들의 방식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 사회는 참된 희망이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희망제작소는 청년들이 주인공이자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내는 싱크탱크가 되어야 한다. 이제 창립 10주년이 되는 희망제작소의 연구원들은 여전히 젊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생활 속에서 직접 경험하고 있으며, 또 그들과 같은 젊은 세대의 절망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 희망제작소의 미래는, 희망제작소가 내어놓는 소셜디자인들의 매력과 힘은, 대한민국의 희망은 바로 이들 젊은 지식인-시민운동가들로부터 나온다.

그렇지만 희망제작소가 앞으로 내다볼 10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희망제작소의 젊은 연구원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희망을, 대한민국을 위한 희망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희망제작소의 모든 구성원들이 현실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이상주의적인 신념을 가지길 권하고 싶다.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에 갇히지 않는 지혜, 비관적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으로부터 오는 절망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끌어내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 이 두 가지 역량이야말로 지금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의 지혜와 용기가 시민들에게 널리널리 전파되기를 빈다.

지혜와 용기는 때로는 역사에서 배우는 상상력으로부터, 때로는 거대담론이 제시하는 해석으로부터, 때로는 철학이 주는 위로로부터 온다. 현장성에, 실사구시에, 구체적 대안에 굳건하게 발을 디디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이상과 행동, 그리고 우연이 만들어내는 인간 사회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현실을 다 파악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에, 바로 그러한 겸손의 순간에, 희망은 살아난다. 한층 더 성숙해진 희망제작소의 연구원들이 시민들 곁으로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가서 더 큰 희망을 함께 만들어가는 꿈을 가져본다.

희망제작소는 소셜디자이너들의 공동체이다. 공동체는 소통을 통해서 구성원들의 차이를 공동체의 발전에 활용한다. 감히 연구원들에게 권하고 싶다. 연구를 공유하고, 서로 얼마나 다른가를 확인하라. 서로가 사용하는 연구방법과 이론적 틀을 나눠가지고, 서로가 찾아낸 연구결과와 정책대안을 같이 검토하라. 얽힐 대로 얽혀 있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단순한 역할 분담이 아니라 전체를 함께 보고 각자의 연구결과와 정책대안을 서로 결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희망제작소가 함께 아파하고 함께 희망을 찾아가는 연구원들의 생활공동체가 될 때에 가장 아름다운 희망 하나가 우리 사회 속에서 이미 꽃핀 것이다.

2016년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해이다. 그리고 2017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2018년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다소 과장해서 말한다면, 2016년은 3년에 걸친 ‘선거의 시대’가 시작하는 해이다. 대한민국이 거의 10년째 바닥이 어디쯤인지 모르는 ‘절망의 늪’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고 한다면, ‘선거의 시대’는 시민들이 새로운 국가비전과 국가권력을 만들어냄으로써 희망의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희망제작소가 선거에 주목해야만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선거의 시대에, 희망제작소가 사람을 위한 대안, 사람을 살리는 사회혁신으로 희망의 길을 열어가기를 기대한다.

2016년 희망제작소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에서 거대한 도전에 직면한 것은 아주 뜻깊은 일이다. 지난 10년 동안의 활동을 통해 희망제작소가 체득한 분석과 창안의 능력은, 시민들로부터 받고 있는 신뢰는, 희망제작소의 젊은 연구원 모두가 우리 사회에 큰 희망을 제공하는 소셜디자이너로 우뚝 서도록 만들 것이다. 희망제작소가 만들어나갈 새로운 10년의 희망이야말로 대한민국 시민들이 꿈꾸는 새로운 10년의 희망이 아니겠는가!

글_박순성(연구자문위원, 동국대학교 교수)

화, 2016/01/0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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