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6일 청주성모성심성당에서 "노동 인권에 날개를 달아 주세요" 라는 내용으로 후원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기꺼이 봉사하기를 자처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주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내주시고 손님 대접함에 소홀함이 없는 풍성한 식탁을 차려주신 봉사자 분들께 다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특히 주방 한켠 에서 해물 파전과 계란 프라이를 구워 내느라 수고하신 두꺼비 친구들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저와 조를 맞춰 두루 다니며 부족한 것을 채워준 오하진 선생님과 임시업 선생님께도 무한 감사드립니다. 또한 끝까지 남아 정리까지 도와주신 회원님들의 손길 잊지 못 할 거에요. 무엇보다 장소를 제공해주신 성모성심성당께 감사드립니다.
공연도 반응이 매우 좋았고, 사회를 봐 주신 김남균 운영위원님, 조순형 전도사님, 김태종 목사님의 축하 말씀도 의미 있었고, 언론 노조 분들의 연대 목소리는 어느 때 보다 카랑카랑했지요.
이렇듯 무엇 하나 하려 해도 연대가 없이는 아무것도 완성도 있게 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공동체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 되기도 했지요.
언제 우리가 이렇게 또 만나 어깨 잇대어 술 한잔 기울여 볼까요. 남은 2017년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내년에는 더욱 멋지고 훌륭한 역할로 각자의 삶 속에서 만나기를 소망 합니다. 사랑합니다.
앞으로 공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비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도 순직심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또 순직이 인정된 비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은 '국가유공자'나 '보훈보상대상자'로 등록신청이 가능하다.
인사혁신처와 국가보훈처는 이 같은 내용의 '공무수행 중 사망한 비정규직 등 순직인정 방안'을 국무회의에 보고했다고 24일 밝혔다.
이에 따라 국가기관과 지자체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무기계약직 근로자가 공무 중 사망할 경우 공무원과 동일하게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를 거쳐 앞으로 제정될 '공무원 재해보상법'에 따라 순직공무원 예우를 받게 된다. 순직공무원 예우에는 순직증서 교부 및 장제 지원과 유족 취업안내 등이 있다.
이들이 업무상 재해를 당할 경우 산업재해보상 제도를 적용해 보상하지만, 순직이 인정되면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 등록신청이 가능하다. 지금은 공무수행 중 사망해도 순직심사에서 제외되고 국가유공자 등록신청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올해 6월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기간제교사들을 순직대상으로 포함하는 법령개정이 이뤄지면서 정부 내 비정규직과 무기계약직 근로자의 공무 중 사망에 대한 순직인정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관련부처 협의결과 이들이 공무수행 중 사망하더라도 순직심사와 유공자 심사신청 자체가 불가능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다만 공무원연금법에 따라 지급하는 순직유족급여가 산재보상의 53~75%에 불과해 공무원 재해보상으로 일률적으로 전환하기 보다는 공무 중 사망한 경우에만 순직심사를 인정해 공무원과 동일하게 예우하고 지원하기로 했다.
>>> 우리 동네 청주에서 지난 엄청난 수해가 있던 날, 비정규직 노동자께서 공무 수행 중 사망하는 안타까운 기사를 접했습니다. 죽음에까지 차별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민주노총 비정규직 없는 충북 만들기 운동본부 에서 기자회견과 함께 홍보 작업을 하며 시민들께 알리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서명운동도 함께 했지요. 결국 법안이 국회에 상정이 되고 순직심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행동하는 에너지가 세상을 변화 시킨다고 믿습니다.
수요일 늦은 오후 오전에 분주했던 마음을 추스리고 있는데 요란하게 전화가 울린다. 목소리 좋은 내 또래의 여성 분이다. 의류 매장에서 일한 지 일주일이 되었는데 눈치를 보니 사장이 매장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거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매장을 넘겼냐는 말에 아니라고 하더니 엊그제 사장이 바뀌었다는 일방적인 통보와 새로 온 사장은 지금 일하는 직원이 계속 일을 해 줄 거라는 말을 듣고 왔다는 거란다. 그녀는 상당히 격앙되어 있었다. 자신이 무슨 물건 같고, 매장 넘길 때 같이 넘겨도 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불쾌하다고 하며 예전 주인과 한바탕하고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우선 임금은 다 받으셨는지 물었다. 임금은 다 해결해주었다고 한다.가만있자 ... 순간 스치는 생각이 많다. 사실 이런 경우에는 딱히 법적으로 대응 할 만한 사안은 아니다.
본인에게는 자존심에 중대한 상처가 되었다 지만 이곳을 찾아오는 노동자에 비교하자면 가벼운? 것이라고 치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디 그런가! 남의 암보다 내 감기가 더 아픈 법.
나는 함께 욕을 해주었다.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감탄사를 내뿜으며 공감하고 동의했다. 같이 막말도 했다 기에 잘했다고 칭찬까지 해주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 사실대로 이런 사항으로는 법적 대응이 미미해서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솔직하게 말하고 센터를 찾아오는 노동자들의 하소연을 했다.
막말 끝 판 왕의 대사를 말해주고 회사 내에서 괴롭힘과 부당한 대우를 참아가며 일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현실과 환경, 무엇보다 그런 상처를 안고도 오늘도 출근 투쟁을 해야 하는 두려움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드렸다. 조용히 듣고 있던 그녀가 웃으며 자신이 당한 것도 억울한데 더 억울하고 분한 사연을 안고 사는 사람이 많은 것에 상대적인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상대적인 행복감과 위안을 받는 것은 사실 정직한 감정은 아니다. 그렇게 위로가 되었다면 다음엔 더 강도 높은 위로가 있어야 하니까 ... 또한 늘 비교의 도마 위에 나를 올려 놓아야 하는 아슬아슬한 긴장을 하게 마련이니까.
상처 받은 순진한 그녀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하신 다. 답답하고 분했는데 이제 좀 마음이 트인다고 하신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 쉽고도 어렵다. 그래도 가벼운 위로로 해결되어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 수사가 한창이다. 국가정보원 주도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는 한마디로 꼴불견이다. 반정부 성향 인물을 찍어 내고, 친정부 성향 인물을 지원하는 차별리스트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노동의 권리와 차별을 금지한 헌법 조문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되돌아보면 이명박 정부만큼 헌법을 경시하고 훼손했던 정부는 없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박기성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이 아예 “노동 3권을 헌법에서 빼는 것이 소신”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박 전 원장은 2009년 9월1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노동 3권 발언’과 관련한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다른 나라는 (노동권을) 법률로서 보장하고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는데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노동연구기관인 노동연구원장의 발언치곤 상식 이하다. 그야말로 궤변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책연구기관장이 이 정도였으니 헌법의 위상은 말할 것도 없다. 헌법에 명시된 노동 3권 조항은 그들의 머릿속엔 없었다.
박근혜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겨울 1천600만명의 촛불은 과거 정권의 헌법 부정에 철퇴를 내렸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2항이 광장에서 메아리쳤다. 노동을 존중하는 헌법을 만들자는 염원으로 이어졌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내년 6월 지방자치단체 선거와 동시에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는 권력구조 재편에 무게를 싣고 있다.
반면 심상정 정의당 의원을 중심으로 노동헌법 33조 위원회가 구성돼 노동을 존중하는 헌법을 만들자는 운동이 가시화했다. 학계와 노동계에서도 노동헌법을 활발하게 논의 중이다. 이런 가운데 1948년 제헌의회가 제정한 헌법의 노동권 조항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제헌헌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17조). 근로자의 단결과 단체교섭권·단체행동의 자유는 법률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 분배를 균점할 권리가 있다(18조).
제헌의회가 이익균점권을 포함한 노동 4권을 제정한 셈이다. 이익균점권이란 노동자가 기업 활동 성과를 사용자와 나눠 가질 권리를 가진다는 뜻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해 제안된 ‘이익공유제’의 원형에 해당한다. 이익균점권은 한국노총의 전신인 대한노총 설립에 기여했고, 초대 사회부 장관을 지낸 전진한씨가 제안했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 정부는 62년 헌법을 개정해 제헌헌법을 훼손했다. 헌법에 있던 노동권 중에서 이익균점권을 삭제했다.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라는 노동 3권 목적에 해당하는 문구도 삽입했다.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에서 인정한 이들 외에 노동 3권을 부정당했다. 이를테면 철도·체신 등 기능직 공무원을 제외한 일반직 공무원은 노동 3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헌법에 명시했다. 4·19 혁명 이후 교사노조가 설립된 것에 대응해 박정희 정부는 헌법에서 공무원노조 설립의 싹을 잘라 냈다.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마련해 노동 3권을 더욱 제한했다. 노동 3권 행사와 관련해 "법률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보장된다"는 내용을 넣었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국영기업체 또는 공익사업체에 속하는 노동자의 노동 3권도 제한했다. 전두환 정권은 헌법을 개정했지만 이러한 기조를 유지했다.
87년 이후 민주화운동과 노동자 대투쟁 영향으로 헌법이 개정됐다. 문제가 된 개별 법률로 단체행동권을 제한(또는 유보)하는 문구가 삭제됐다. 고용·임금·노동조건에서 차별금지와 최저임금제 시행 등의 조항을 신설한 것은 그나마 진전이다. 그럼에도 헌법은 여전히 일을 하는 사람(노동자)을 부지런히 일을 하는 사람(근로자)으로 규정했다.
제헌헌법 이후 헌법 개정을 보면 이익균점권을 삭제하고, 노동 3권을 법률로 제한하는 문구를 헌법에 삽입하는 식이었다. 87년 이후 이것을 개정하려 했지만 사실상 미완에 그쳤다. 제헌헌법에 비하면 못 미치거나 훨씬 후퇴한 셈이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적어도 제헌의회가 노동권 조항을 신설할 당시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헌법은 노동헌법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촛불이 불붙인 헌법개정 정신에 부합한다. 헌법상 기본권의 주체는 모든 국민에서 모든 ‘사람’으로, 근로는 ‘노동’으로 바꿔야 한다. 개정된 헌법에 모든 ‘사람’이 노동할 권리를 가지며, ‘노동자’는 노동 3권을 가진다고 명시해야 한다.
집회시간이 11시 30분이었거든요. 12시에 점심먹으로 나오는 KT사원들에게 알려질까 했는데 점심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회사 밖으로 나오지 않더군요. 그러더니 도시락 배달 아저씨가 열불나게 들락알락하고 있습니다. 정말 나쁜 KT. 회사의 낙점을 받은 노조 위원장이 진정한 위원장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아마 ... 계절이 한번 씩 지난 1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올해도 준비 했습니다. 청주노동인권센터 후원의 밤 행사를 개최합니다. ^^ 그동안 분주했던 생각과 일, 잠시 내려놓으시고 우정과 애틋함으로 만나 안부를 묻는 아름다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SNS로만 '좋아요' 꾹꾹 눌러 표현하던 마음, 그날은 얼굴 보고 좋아요 웃으며 안아주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보드라운 발길을 기다립니다.^^
일시: 11월16일 목요일. 장소: 천주교 성모성심성당(복대동) 시간: 오후 5시~늦은 10시까지.
2017년 11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자비 없네 잡이 없네’ 시리즈로 2030세대의 노동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에 살을 붙여 한 권의 책을 펴냈는데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요?
일한 지가 몇 년인데 모아 놓은 돈도 없냐고요?
모르시는 것 같아 알려드립니다, 우리의 노동
현재 청년 실업률은 연일 치솟고 있는 중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15세~29세 청년 실업률(9.2%)은 IMF 직후였던 1999년(10.3%)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험난한 취업 시장에서 2030세대는 학자금 대출을 등에 진 채 분투하고 있다.
다른 한편, 높은 장벽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신입 사원 4명 중 1명은 1년 안에 퇴사하고 있다. ‘세상 무서운 줄’ 누구보다 잘 아는 청년들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가 있다. 보상 없는 초과근무, 잦은 회식, 성폭력이나 폭언, 개인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조직 구조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건강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전향한 사람들은 임금 체불의 위험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고, 다시 구직자가 된 사람들은 ‘슈퍼 을’이 되어 ‘면접관님’이 만족하실 만한 자소서를 써야 한다. “그 정도도 감내하지 못하다니 약해 빠져가지고.” 하는 타박을 들으며.
압박 면접과 갑질, 주말 출근과 임금 체불…
야생에 가까운 노동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민간싱크탱크 희망제작소가 기획하고 20~30대 연구자 여덟 명이 참여한 이 책은 지금 청년 세대가 마주하고 있는 무자비한 노동환경을 폭로하는 것을 넘어 일과 삶의 균형이 가능한 사회, 노동자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2030세대가 일터에서 겪고 있는 복잡다단한 고통의 실체를 고용 안정, 충분한 휴식, 안정적 소득, 조직 노동, 조직 밖 노동, 전문성, 가치 지향 노동, 구직자의 알 권리라는 주제들로 구체화한다. 아울러 열띤 주제별 좌담을 통해 노동 현장 곳곳에 있는 부조리를 포착하며 20~30대 구직자와 노동자가 알아둬야 할 정보와 다양한 노동 방식을 공유한다.
알고 있나요?
‘연차 15일’은 법으로 규정한 최소 기준일 뿐이라는 것을
당신이 만약 일하고 있다면, 사장님이 법에서 정하고 있는 연차휴가를 주지 않을 경우 노동조합을 통해 고소할 수 있다. 법에서 정하는 최저 기준보다 높은 수준으로 근로조건을 높일 수도 있다. 노동조합과 함께 집단 차원에서 회사와 협상하면 된다. 노동조합이라 하면 왠지 불법적인 조직 같고, 발을 담갔다가는 어디론가 끌려갈 것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노동조합은 헌법이 보장한 법적인 권한과 보호 장치를 갖고 있는 강력한 단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노동조합 경험자는 100명 중 서너 명일 정도로 적다. 우리 사회에 노동조합 자체가 드물다는 뜻이다. 아직 노동자가 아닌 구직자는 노동조합이나 노동 관련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워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한다.
“정보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 취업에 실패한 개인들은 자기반성과 더 ‘노오력’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진짜 문제는 구직자들 스스로 정보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입사 전까지 근로계약서를 보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임금이나 휴가 등도 그냥 알려 주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이다.” /238~240쪽
가까운 예로 현재 구직 사이트의 채용 공고 중 급여 항목을 보면 대다수가 ‘내규에 따름’ ‘협의 후 결정’처럼 모호하게 제시돼 있다. 법적인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법에는 ‘거짓 채용 광고를 내거나 구인 광고 내용을 구직자에 불리하게 변경할 수 없다’는 내용이 있을 뿐이고, 채용 공고에 어떤 정보를 넣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우리는 더 많이 원한다고 말하자
2030세대 당사자들의 집단 구술로 발견한 ‘좋은 일’과 ‘노동 존중 사회’의 밑그림
답답한 상황 가운데서, 이 책은 우리 사회가 개선해야 할 여러 가지 노동조건을 반영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기로 한다. 각 주제별 좌담에서 현실적인 방안을 도출하고, ‘2030세대의 노동 현실 개선을 위한 여덟 가지의 정책’으로 정리한다. 그 내용은 ‘채용 공고에 정확한 정보 기재 의무화’ ‘다양한 노동시간 제도 확산’ ‘일하는 사람 관점의 유연성 확대’ ‘조직 내 민주주의 강화’ ‘초·중·고 노동권 교육 강화’ ‘사용자 대상 노동권 교육 실시’ ‘사각지대 노동자 보호 강화’ ‘전반적 임금수준 상승’이다.
정책들은 2030세대가 요구하는 좋은 일의 요건이 ‘일’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에게 일이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자신의 가치와 일상적인 삶을 지켜 내는 수단’이자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2030세대는 사회적으로 중요시되는 가치보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내 삶을 우선한다는 점에서 개인주의자이지만, 일에 있어서만큼은 이전 세대보다 사회적인 가치를 더 추구한다.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박명준 박사는 좌담에서 나온 여덟 가지 정책이 “정부가 표방하는 ‘노동 존중 사회’와 이를 이루기 위한 ‘사회적 대화’의 방향과도 일치”한다고 이야기한다. 동시에 우리에게 요청한다.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가 반영되도록 더 많은 목소리를 내 달라”고.
촛불 집회 이후 우리 사회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제대로 된 주권자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주권은 자기 결정권이다. 이제는 일터에서도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 2030세대가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를 반영해 노동조건을 개선한다면, 노동 현장에서도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다.
– 글 : 서해문집
* 이 글은 ‘자비 없네 잡이 없어’ 출판을 담당한 ‘서해문집’에서 작성한 서평입니다.
* ‘자비 없네 잡이 없어’ 책 소개 보기(클릭)
민간싱크탱크 희망제작소가 기획하고 20~30대 연구자 여덟 명이 참여한 이 책은 지금 청년 세대가 마주하고 있는 무자비한 노동환경을 폭로하는 것을 넘어 일과 삶의 균형이 가능한 사회, 노동자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2030세대가 일터에서 겪고 있는 복잡다단한 고통의 실체를 고용 안정, 충분한 휴식, 안정적 소득, 조직 노동, 조직 밖 노동, 전문성, 가치 지향 노동, 구직자의 알 권리라는 주제들로 구체화한다. 아울러 열띤 주제별 좌담을 통해 노동 현장 곳곳에 있는 부조리를 포착하며 20~30대 구직자와 노동자가 알아둬야 할 정보와 다양한 노동 방식을 공유한다.
■ 목차
추천사
프롤로그
1. 우리의 일자리 현실, 대체 왜 이럴까?
– 2030세대의 노동 이야기, 시작합니다_황세원
– 지금 몇 번째 직장에 다니시나요? | 우리 이야기, 우리가 직접 해 봤습니다
-2030세대가 유달리 괴로운 이유는? |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고 배운 세대
-안정적 직장이라는 환상과 쏠림 | 우리는 좋은 일을 찾을 수 있을까?
2. 우리는 직장을 여러 번 그만뒀습니다
– 나의 안정을 찾아서_황세원
– 고용 안정의 의미는 어느 세대에게나 똑같을까?
– 고용 안정을 기준으로 진로를 선택한 적 있나요? | 우리가 원하는 게 정년 보장일까?
– 안정된 직장에서도 느끼는 공포 |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
– 정규직의 분명한 장점, 확실한 소속감 | 계급이 돼 버린 정규직, 차별을 만들다
– 정규직은 곧 한 줌밖에 남지 않는다 | 채용 공정성의 붕괴, 공시 열풍
– 조직보다 개인의 안정 | 일하는 사람 관점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 다양한 경험이 가능한 사회를 꿈꾸다
3. 휴가 가려고 사표 냅니다
– 일과 쉼의 공존 가능성_송지혜
– 휴식이란 뭘까, 잊고 사는 직장인들 | 좋아하는 일을 해도 탈출하고 싶다
– 연간 5주 휴가, 주 35시간, 칼퇴근 | 오래 쉬고 나니 분노가 사라졌다
–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휴식을 늘려야 할 때
– 휴식이 있는 삶과 노동하는 삶은 모순일까? | 월급이 줄어도 주 4일제!
– 사표 내지 않고도 충분히 쉬려면 | 나는 더 많이 원한다고 말하자
4. 일하는 만큼 버는 사회 맞나요?
– 잠재력 대신 잠과 재력을_김정민
– 나를 당당하게 하는 건 정기적 수입 |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고민들
– 학자금 대출에 눌린 첫 세대 | 경조사비, 내고 계세요?
– 잠재력 대신 잠과 재력을 | 안정적 소득에 숨어 있는 부가 혜택
– 먹고사니즘과 호캉스 | 임금 유연성에서 노동 안정성으로
– 다른 사람의 슬픔에 무뎌지지 않는 삶
5. 월급쟁이와 머슴의 차이는 뭔가요?
–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_김민아
– 2030세대의 특징과 청년 노동자의 관점 | 의미 없는 일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
– 조직은 나를 지켜 주지 않는다 | 노동조합 경험자는 100명 중 서너 명
–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무 | 노동운동이 힙하고 세련됐다면?
– 높은 임금보다 시간을 원하는 세대 | 평생직장에서 정류장이 된 조직
–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은 필요하다 |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워라밸에 쓰자
– 2030세대에 맞는 보상과 소통 방식 | 점점 더 다양해지는 노동에 안전망을
6. 프리랜서는 행복할까?
– 생존이 목표가 된 사람들_최태섭
– 엉켜 버린 1987과 1997, 그리고 디지털 노마드 | 프리랜서로 일하는 이유
– 조직의 비효율성을 견딜 수 없다 | 좋아하는 일을 하니 나머지는 감수하라?
– 사실은 조직 밖으로 떠밀리는 중 | 프리랜서도 4대 보험이 필요하다
– 시대에 맞지 않는 조직, 조직에 맞지 않는 개인 | 생존이 목표가 된 청년들
– 카페를 전전하는 우리, 언제까지 여기 있을까? | 자유를 지키면서 안정성도 얻을 수는 없을까?
7. 전문성을 어떻게 키워요?
– 대체 불가능한 인재라는 함정_홍진아
– 1만 시간의 법칙을 따르면 전문가가 될까? | 모호한 전문성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
– 전문가는 일의 방향을 아는 사람 | 다양한 전문성을 알아보는 문화를 위해
–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의 아이러니 | 내 일의 역사가 증명하는 나의 전문성
–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해야 전문성이 길러진다? | 전문 계약직, 위험하기만 한 것일까?
8. 회사 욕도 못 하는 우리들의 사정
–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_주수원
– 밀레니얼 세대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 가치 지향 노동은 활동인가, 직업인가?
– 가치 있는 노동과 저녁이 있는 삶 | 작은 조직 안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 열악한 경제적 상황보다 조직 문화의 문제 | 가치 지향 노동의 모순 드러내기
– 여전히 부족한 대화, 떠나는 2030 | 부족함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자
9. 취업은 복불복이어야 하나요?
– 미래의 노동자를 존중하라_김빛나
– 모집 인원 명, 내규에 따름, 협의 후 결정? | 눈 뜨고 코 베이는 구직자들
– 사회 초년생에 더 가혹한 조직 문화 | 인재상 말고 어떤 조직인지 알고 싶다
– 인사 담당자의 한마디 “우리 회사 꼰대 없음” | 입을 떼기 어려운 슈퍼 을
– 근로조건+α | 근로계약서 사전 공개 법제화 | 고민과 정보를 나눌 안전망의 필요성
– 노동자를 존중하는 작지만 큰 시도
10.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 좋은 일자리를 위해 하나만 바꾼다면_황세원
– 이제는 변화를 이야기하자 | 노동시간 제도, 좀 획기적으로 만들 순 없나요?
– 좋아서 일해도 야근 수당은 줍시다 | 아웃소싱 회사인데 정규직이 무슨 의미죠?
– 취업 전에 알리자, 사용자 불법행위 대처법 | 주 10시간 일해도 4대 보험 들 수 있는 사회
– 사용자에게도 노동권 교육을! | 작은 사회적 대화를 모아 일터의 풍경을 바꾸자
‘소풍가는 고양이’는,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 ‘하자센터’에서 비진학 청(소)년을 위해 진행한 연금술사프로젝트에서 탄생한 사회적기업입니다. 2011년 5월 문을 열었고, 회사를 함께 소유하고 책임지며 이익을 나누는 청(소)년 소유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에게 책임감을 심어주고 자립할 수 있는 밑거름을 주자는 경영 철학 덕분입니다. ‘소풍가는 고양이’ 박진숙 대표께서 진로와 노동에 관해 깊은 울림이 담긴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진로’는 한 번에 결정되지 않습니다. 여러 번의 일과 배움 경험으로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10대와 20대 때 자신의 평생 진로를 ‘결정’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진로=직업’이라고 여기며, 쫓겨날 걱정없고 월급 많은 직장에 취업해 일하다가 나이가 차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순서를 따르라고 부추깁니다. 이미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은 자신이 이렇게(소위 부모처럼)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사람은 노동하지 않고 살 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모두에게 일자리를 보장하는 ‘기회의 평등’은 힘을 잃고 초라한 말이 된 지 오래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 취업률이 바닥을 치고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좋지 않은 곳이라도 다니는 게 낫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구인하는 곳보다 구직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노동 가치는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특히 경력이 적은 청소년과 청년들은 헐값 노동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회를 탓하며 세상이 바뀔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청소년과 청년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이런 사회적 현실 앞에서는 ‘나의 진로’에 대한 내용이 각기 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진로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항목 중 하나가 ‘노동’입니다. 우리 사회는 ‘노동’이라는 말을 썩 반기지 않고, 학교에서도 학생에게 노동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람은 노동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데도 말입니다. 우리 사회가 ‘노동’을 단지 일해서 돈 버는 것(임금 노동), 힘들고 고달픈 것(몸 노동)으로 좁게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의 세 가지 형태 – 타율노동, 자율노동, 자활노동
그렇다면 노동이란 무엇일까요? 프랑스 철학자 앙드레 고르는 한 사람이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는데 세 가지 형태의 노동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임금노동입니다. 타인을 위해 노동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형태이지요. 이것을 타율노동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자율노동입니다. 개인의 욕구에 따라 자신이 사는 지역사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돈과 무관한 노동을 말합니다. 희망제작소의 ‘내일상상프로젝트’가 그러하겠네요. 세 번째는 자활노동입니다. 생존을 위해 해야 하는 노동인데요. 청소하기, 음식 만들어 먹고 치우기, 잠자리 정리하기 등과 같이 소소하지만 중요한 활동을 말합니다.
이 세 가지 노동에 관한 감각과 능력을 키우고, 일상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한 배움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에게 필요한 진로교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에 가지 않은 청소년, 청년, 어른들과 협력해 성미산마을(지역공동체)에 ‘소풍가는 고양이’를 만들어 8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생각했던 대로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두 개의 생각 사이에 끼어서 어느 쪽도 결정할 수 없는 상태가 반복됐습니다. ‘배움이 먼저인가, 일이 먼저인가?’ ‘임금과 노동 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 ‘모든 구성원이 단일한 임금을 받아야 할까? 그게 아니라면 구별의 근거는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 ‘청(소)년과 어른 구성원들이 ‘생산성의 우월한 지위 다툼’ 때문에 갈라지는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등등 답을 구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아무리 경험이 많다 해도, 매번 겪는 상황은 늘 처음처럼 어려웠고 답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인간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만 걷는 게 아니다
여전히 어렵지만, 모두가 고르게 잘 사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이런 경험이야말로 앞으로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풍가는 고양이’의 구성원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무엇이 문제인지 제대로 분석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를 통해 최선의 결정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반칙하지 않는 공정한 방법과 방식으로 말이지요.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찾기 어렵고 오래 걸립니다. 청소년뿐 아니라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다만 청소년이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쉽게 지치지 않고 외롭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와 어른들이 너그럽게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본의 만화작가 마스다 미리의 책 『주말엔 숲으로』의 “인간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만 걷는 게 아니다”라는 대목을 기억하면서 말이죠.
– 글 : 박진숙 (주)연금술사 ‘소풍가는 고양이’ 대표
* ‘소풍가는 고양이’의 우연히 시작된 노동과 성장 과정이 궁금하신 분은 이 도서를 참고해주세요.
⇒ 『우리는 작은 가게에서 어른이 되는 중입니다』 (자세히 보기)
지난 2~3세기 동안 인간의 물질적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자본제 시스템은 산업혁명과 더불어 자유주의 그리고 시장기제와 함께 출범했다. 그러나 성취한 풍요 뒤에는 1%의 소수를 위하여 대부분의 시민들이 극빈적 실업 상태 아니면 현대적인 노예 생활을 감수해야 하는 역설적 조건이 형성되었으며, 통제불능인 자본의 탐욕으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와 극심한 자원 낭비가 발생하고, 이에 따라 자연 훼손이 심각해지면서 인간의 생존이 위협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올여름 지독한 더위는 이러한 위기를 피부로 생생하게 체험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팽창과 이익 실현이 주동력인 사회경제적 활동 범위가 전 지구적으로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군사적 영역은 국가 또는 지역 단위에 머물면서 패권 국가 간 또는 지역 간 대립과 갈등이 격화되어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우려가 점증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이라 이름 짓든 현재의 사회경제적 시스템과 이에 대응한 정치군사적 체제로는 결코 인류의 미래가 안전하게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는 셈이다.
자본주의의 한 축을 이루는 자유주의에 대해서는 필자가 지난해 1월 9일 자 ‘다른백년 칼럼’에서 자세히 다루었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관련기사: ‘한국, 자유주의 결핍인가, 과잉인가’ )
존 롤스는 ‘정의론’이라는 저술에서 수요와 공급의 합리적 조정과 자원의 배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정보와 판단기준을 제공해 주는 시장기제는 체제와 상관없이 가치 중립적으로 적용 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자본주의에서 역할을 하듯이 사회주의에서도 공히 같은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다는 해석으로 현재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중국의 괄목할 경제발전의 성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해당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핵심적 주제는 시장의 기제를 넘어서 배후에 존재하는 이념적 성격인 ‘인간 품성에 대한 견해’와 ‘부와 빈곤의 원인’에 대한 해석이다.
소위 ‘인간은 이기적이다’라는 이데올로기에 항상 인용되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완벽하게 조작된 신화적 거짓말이다.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윤리학에 속하여 있던 경제라는 영역을 별도로 분리하여 독립된 학문으로 개척한 스미스는 단순히 분업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노동가치설, 자본축척론, 특혜와 독점에 대한 비판 등을 주창하였고, 주 연구 분야인 윤리학 분야의 저작 ‘도덕감성론’을 통하여 인간사회의 도덕과 정의, 질서 등 광범한 주제를 다루었다.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원용된 표현과는 반대로 그는 가난한 이웃을 위해 평생 상당한 기부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미스는 우리 표현으로 하자면, 공동체의 도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곡간에 쌀이 가득해야 인심이 넘친다’는 판단으로 물질적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분업이라는 천재적인 발상을 저술한 것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수공업적 가내공업에서 공장제 대량생산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었고, 다수의 가내 수공업적 공급체계라는 조건 속에서 이상적인 분업과 시장적 균형이론이 실제로 잘 작동하였다. 본디 애덤 스미스는 오히려 우리에게 잘못 알려진 가공의 ‘스미스’와는 정반대로 미래에 다가오는 공장제적 대량생산이 가져올 독점적 폐해를 매우 걱정을 했다고 한다.
애덤 스미스만큼 잘못 와전된 또 다른 인물이 찰스 다윈(1809~1882)이다. 위대한 그의 진화론은 생명과 자연생태계를 상호관계와 작용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실천적 방법론이고, 완성된 이론이 아니라 현실적 조건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화두(話頭)였다. 그의 자연(환경) 선택론은 여전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대상이 생물계의 개체에서 군락으로, 그리고 인간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역사로 영역을 확장되고 있는 주제이다.
그러나 동시대의 스펜서 등 일군의 학자들이 진화론을 ‘적자생존’과 ‘약육강식’ 같이 저급하고 잘못된 이론으로 축소·해석하면서, 자본제 생성 시기에 맞불려 살인적 노동자 수탈구조를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었다. 성장기에 있는 유소년들을 하루 18시간 이상 장기간 노동시키는 것도 약육강식의 논리로 정당화되었고, 뼛골이 빠지도록 일을 해도 가난과 빈곤을 못 벗어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못난 탓으로 돌려졌으며, 탐욕스러운 귀족과 자본가의 풍요 역시 적자생존의 자연스러운 법칙에 따라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되었다.
현대 생물학적으로 밝혀지는 내용은 인간의 DNA 대부분은 잠재적으로 불용상태에 있으며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과 조건에 따라 생명 유지를 위해 필요에 따라 활성화되면서 부단히 다양하게 적응하고 진화한다고 한다(stochastic theory). 인간의 사회적 진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하버드 대학의 거두 로베르토 M. 웅거 교수는 <주체의 각성(The Self Awakened)>(이재승 옮김, 앨피 펴냄)에서 인간은 고정된 품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환경과 제도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가소적(plastic) 가능성의 존재임을 확인하고 있다.
‘경제적 동물’과 ‘약육강식’이라는 단순한 규정과 천박한 이론이 자본증식의 탐욕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탈바꿈 등장하여 시장과 결합하면서 과학기술과 산업혁명으로 찬란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던 인류의 역사를 오늘날 끝없는 수탈과 처참한 전쟁과 고통스러운 빈곤, 그리고 노동소외로 퇴행하는 역설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자본의 탐욕과 이를 정당하게 포장하는 논리와 실제로 작동하는 시장이라는 기제가 함께 맞불려 칼 폴라니가 표현했듯이, ‘악마의 맷돌’로 변질되면서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우리 삶을 지배하는 괴물이 된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구호는 실상 잘못된 현실을 은폐하고 기존의 기득권 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강력한 지배의 이데올로기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시장은 도구일 뿐이다.
오히려 최근의 현대적 게임이론 등을 통하여 밝혀진 바에 의하면, 도덕의 핵심인 인간의 이타성은 긴 역사를 통하여 공존의 규칙으로 수용되고 정착된 것으로 밝혀졌다. 예외적으로 자본주의의 핵심 논리인 탐욕적 인간이라는 가정은 18세기부터 시작된 자본주의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기득권을 옹호하고 자본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조작되고 강제로 적용된 억압이자 이탈이다. 한마디로 대화적 언어를 공유하고 사회적으로 협동할 수 있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제도와 환경에 의해 유도되고 진화하며 성숙되는 신적(至誠)인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다.
자연스레 산업사회 초기부터 자본의 탐욕에 대한 문제점과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프랑스와 영국에서 전개되었던 소위 공상적 사회주의를 재해석하고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한계를 드러낸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일로 다가온다.
샤를 푸리에(왼쪽), 로버트 오언(오른쪽)
유토피아를 상상한 토머스 무어, 자연재의 공유개념에 기초하여 기본소득을 제시한 토마스 페인, 무제한적 사유제를 비판한 시몬 드 보부아르,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여 시종들을 해방시킨 귀족 출신 생 시몽, 그리고 아래에 언급할 사를 푸리에와 로버트 오언 등으로 연결되는 산업혁명 초기 시절의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을 다시 살펴보는 일로 문제가 많은 현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현대에 와서 화려하게 재평가받는 사를 푸리에의 천재적 제안과 로버트 오언의 실천적 실험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푸리에의 시각에서는 가난과 실업에 시달리는 한 노동자의 권리라는 것이 단지 종이 위에만 존재하는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인민주권론의 원칙과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의 개념은 생활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공격한다. 그에게는 프랑스 대혁명의 구호인 자유, 평등, 박애는 의미 없는 망상과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 당대에 유행하던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사상들도 가난한 인민들에게 품위 있는 생활 수단을 제공해주고, 최고의 자연권적 권리인 노동권을 보장하라는 시대적 명령에 무지하다고 반발한다. 가난한 인민들은 곧 정치철학에 의해 버림받은 존재들에 지나지 않았다. 하여 그는 노동할 권리의 보장을 절대적인 요구라 주장하며, 이 노동할 권리 없이는 여타의 모든 권리가 무용지물임을 선언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푸리에는 노동의 문제를 계급적 관점보다는 자연적 인간 존재라는 방식에 기초하여 고찰하면서, 인간의 내면적 열정을 쫓는 즐거운 노동을 통해서 삶의 의미와 해방이 이루어진다고 확신한다. 참조로 푸리에의 열정과 즐거움에 근거한 노동의 개념은 후에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진우 옮김, 한길사 펴냄)에서 다시 현대적 의미로 부활한다. 이러한 생각을 실현하려는 시도로써 그는 ‘팔랑주(phalange, 적이 공격할 수 없는 잘 짜인 밀집 방어진)’의 건설을 꿈꾼다. 농업과 산업 활동의 결합체이며, 그 운용방식은 노동의 형태와 생산물의 분배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는 공동노동, 업적 및 도급에 의한 차등분배, 조직원의 최저생계보장, 생산단위 간의 업적 경쟁 등을 기초로 하여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팔랑주의 밑그림을 기획한다.
애초에 내면의 열정과 즐거운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하나, 현실적으로는 힘들거나 쾌적하지 못한 노동이 있을 수 있음을 발견하고, 새로운 생산공동체 체계 속에서도 사회적 차별, 임금의 차등, 사유재산제도 도입, 사적 자본의 공헌(일종의 기부금) 등 어쩔 수 없이 불평등적 요소가 존속함을 제한적으로 인정한다. 팔랑주 간에 생산물의 상호교환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공정성이 유지되도록 정치 경제적 최고의 권력이 개입하도록 제안하기도 한다. 규모에 대해서는 최소 80가정과 400여 명 수준의 개인에서 최대한도로 300가정과 1500~2000명 정도를 상정하고 이 단위가 점차 연방적으로 결합하고 궁극적으로 세계체제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어쩌면 유치한 상기 팔랑주의 구상에서 우리는 현대적 협동조합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푸리에는 자신의 글 ‘통일의 이론’에서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연대의 개념에 처음으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다. △ 보험의 원칙, 위험과 빚에 대한 공동의 책임 △ 재산의 공유원칙,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려는 자세 △ 사회적 집단적 연대, 공동체적 소속감을 위한 원칙 △ 공공부양의 원칙, 최저생계의 보장 등 역시 현대적 복지국가의 개념을 시도한 흔적을 볼 수 있다.
모범적으로 잘 이루어진 팔랑주가 표본이 되어 결국 세계적 변혁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리라 믿어 의심 않은 그는 이의 건설에 필요한 자금의 충당을 위해 여러 내각 대신들에게 호소하기에 이르나 아무도 그의 호소에 응대하지 않는다. 마침내 그의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을 누군가가 자신의 기획, 팔랑주의 실현을 지원하기 위해 돈 보따리를 싸 들고 자신을 찾아오리라 굳게 믿으면서 매일 정오에 자신의 집에서 기다리다가 허망하게 생을 마감한다. 이것이 푸리에가 몽상적 휴머니스트라고 조롱을 받는 배경이다.
그러나 그가 제기했던 맹아적 주제들은 마르크스 등에 의해 ‘과학적 인간해방론’으로 되살아나고 20세기에는 정치적 권리를 넘어선 노동과 생활권 개념으로 발전하였으며,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개념의 원형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고, 현재에 일고 있는 기본소득 운동의 역사적 동력을 미리 일깨운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푸리에 이후 이론보다는 산업 현장에서 실천적으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했던 로버트 오언은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기업가이며, 강력한 후견인이었던 장인 역시 규모가 제법 되는 방직공장의 소유주였다.
당시 산업계에는 기업가와 노동자 양측이 끙끙거리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한편으로는 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규율이 무너진 노동자들의 불량하고 게으른 근무 태도였다. 이를 잡기 위해서 기업가들은 협박, 벌금, 해고 등 강압적 수단에 의지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장기간 노동, 열악한 환경, 저임금과 학대, 영양실조 등으로 노동자들이 생산성을 스스로 높이고 싶어도 높일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상황을 안고 있어서 앞뒤의 두 가지 문제들이 뒤엉키어 악순환을 이루고 있었다.
장인인 데일 씨는 당대의 보기 드문 양심적인 기업인으로 뉴라니크 공장에 이미 소년소녀들의 기숙사를 각각 분리 제공하였고, 양호한 급식, 깨끗한 작업환경을 제공하며 야간학교까지 운영해 왔다. 오언은 이에 더하여 고임금 정책을 유지하고. 10세 미만의 아동노동을 금하고, 인원 감축 없이 최신 설비를 들여와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또한 당시 평균 노동시간이 14시간 이상인데 반해, 10.5시간으로 대폭 줄였다. 장인이 기초를 만들었던 여러 가지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복지시설을 더욱 확대하였고, 근무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언이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노동자들의 교육문제였다. 그는 개인의 행복이 공공적 보편적 행복으로 확대되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믿었고 교육이야말로 이성적 사회실현의 참된 지렛대라고 믿었다. 그의 이러한 교육의 지향은 한마디로 사회교육이었고 교육환경론이었다. 노동자들이 교육과 학습을 통해 스스로 자각하고 새로운 인간형으로 거듭나면, 노동의 주체로서 객관적 능력향상과 주관적 품성을 갖추는 것이 사업성공의 요체로 굳게 믿었다.
실제로 20년간 오언은 자신의 믿음을 확실하게 실천하여 동일한 노동자 숫자로 생산량을 두세 배 증대시켰고, 순익도 두 배 이상 증대하는 등 대단한 성공을 이룩하였다. 이윽고, 뉴라나크 방적공장은 사회개량 운동의 산지로 각지에서 명사들이 찾아오는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생기는 법, 외부적 경영환경이 악화되자 다른 주주와 동업자들은 오언의 운용방식이 자본의 논리에 어긋난다고 공개적으로 반대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파산의 위기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동업자들과의 불화가 오언의 절절한 오랜 꿈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지분을 처분하고 1825년 홀연히 미국을 향해 떠난다.
영국에서 방직공장을 운영하는 경험 중에 최신기계와 기술을 도입하면서 증대된 생산물과 성과가 생산물을 만들어낸 노동자들에게 돌아가기는커녕, 오히려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상황을 목격한다. 그는 증대된 생산물을 선순환적으로 소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켜야 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위해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면서, 단기적인 자본주의 이익에 매달리는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구조적인 모순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증대된 생산물과 성과를 온전한 기여자인 노동자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해결된다는 취지로 푸리에가 구상한 팔랑주와 비슷한 생산협동의 공동체를 구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구상을 실현시키기에는 조국인 영국은 너무나 전통적 보수적 관행에 젖어 있었고 경제 불황과 실업의 확대 속에 처해 있었다. 동시에 동업자 간 불화가 그를 동요하게 한다. 선천적으로 낙관적인 오언에게 미국은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신천지로 등장한다. 그는 독일인 목사가 인디애나 주에 창설한 종교공동체인 ‘뉴하모니’를 사들이고 푸리에가 이상적인 숫자로 제시한 900여 명의 주민들과 새로운 사회건설에 대한 예비실험에 들어간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실험은 4년만인 1829년에 실패로 끝나고, 그는 다시 영국 사회로 돌아온다.
뉴하모니 운동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그의 신념과 구상을 홍보해냈고 1836년 다시 햄프셔에 퀸즈우드라는 공산적 공동체를 건립하였으나 이도 18년 뒤인 1854년에 와해된다. 2년 뒤, 그는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나는 이 세계에 중요한 진리를 가져왔다. 세상이 그것을 존중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갔다.”
여기서 섣불리 오언의 다양한 시도에 대한 실패 원인을 쉽게 언급할 수는 없다. 혹자는 그의 관념적 성급성을 비난할 수 있고, 또는 기존 조직원의 종교적 관행과 오언의 사회경제적 신념의 충돌과 부조화를 지적할 수도 있고, 그의 철저하지 못했던 공동체적 방법론을 탓할 수 있다. 사회 전반적 변혁 없이 부분적 지역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명백한 한계도 언급될 수 있다. 혹은 기회의 땅이었던, 그래서 철저하게 개인의 능력주의에 의존하던 미국적 풍토에 오언의 공동체적 이상은 처음부터 궁합이 맞지 않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오언의 변혁적 운동에 대한 실패에 대해 어떠한 단정적인 판단은 유보되어야 한다고 본다.
참조로, 우리에겐 고전적 교과서가 된 <거대한 전환>(홍기빈 옮김, 길 펴냄)의 저자 칼 폴라니는 실패한 오언을 근대 인류사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의 한 사람이며 인본적 실천가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오언의 실험적 시도가 실패한 후에 뒤따라온 것은 19~20세기를 장식한, 강철 같은 조직을 통하여 노동계급 주도의 투쟁과 혁명, 과학적 사회주의 운동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20세기 후반 인간 품성을 무시한 소련 연방의 참담한 실패를 목격한다.
푸리에와 오언의 주요 활동은 한마디로 인간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것, 물질적 생산 기반과 인간의 해방적 공간을 정합적으로 연결시키려는 인본주의적 상상과 헌신적 노력이었다. 따라서 이들을 조롱하기 위하여 붙인 ‘공상적’이라는 형용사는 이제부터 ‘인본적’ 사회주의자라는 찬사로 바뀌어야 한다.
사유재산의 무제한적 허용, 기득권 방어적 거래의 일방적 제도화, 자본만을 중심축으로 하는 회사의 설립과 계약에 관한 법, 이들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제도와 서민적 참여를 제어하는 복잡한 우회 구조, 평범한 사람들의 판단을 마비시키는 문화적 흐름과 사회적 관행 등에 대하여,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방법으로 비판과 대안을 찾으려 했다면 인본적 사회주의자들은 개인의 도덕적 품성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인간과 사회의 해방적 조건을 모색하고 실현하려고 노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회과학이 발달하고 정책적 경험이 누적된 현재, 우리는 가난과 빈곤 그리고 질병에 고통을 받는 힘없는 서민들의 입장에 서서 현안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천 의지가 절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제3섹터 경제론은 유용한 도구로서 과학적 방법론을 뼈대로 삼고, 전망적 좌표로서 인본적 사회주의자들이 지녔던 도덕적 의지를 신경줄 삼아 새로운 모색의 길로 나서고자 한다.
(푸리에와 오언의 이야기는 서강대 박호성 명예교수의 ‘공동체론’에서 원용하였습니다. 필자)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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