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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생각] 미국-러시아의 시리아 임시 휴전 합의,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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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생각] 미국-러시아의 시리아 임시 휴전 합의, 그러나..

익명 (미확인) | 화, 2016/03/08- 19:54

*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6 아시아생각] ① '쯔위 사건', 돈벌이에만 혈안인 K-팝에 '경종'

[2016 아시아생각] ② 쯔위 덕 본 차이잉원 "대처 존경한다"? 

미국-러시아의 시리아 임시 휴전 합의, 그러나…

무력 충돌은 계속된다

 

홍미정 단국대학교 교수  

 


시리아 정책 연구 센터(SCPR)에 따르면, 2011년 3월~2016년 2월까지 시리아 전체 인구 2215만7800명(2014년, The World Bank) 가운데 50% 이상(국내 난민 66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고, 사망자는 47만 명, 부상자는 190 만 명이다.

 

2016년 3월 3일 현재 유엔(UN)에 등록된 전체 시리아 난민은 481만5360명이다. 이 가운데 터키에 271만5789명-유엔 등록, 레바논에 106만 7785명-유엔 등록(실제 150만 명), 요르단에 63만9704명-유엔 등록(실제 140만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시리아 난민에 대해 서로 다른 통계가 존재하며, 시리아 국내와 중동 역내의 불안정성으로 인해서 정확한 통계를 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2016년 2월 27일 자정을 기점으로, 미국과 러시아가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의 적대 행위를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시리아 인권 관측소(SOHR)에 따르면, 휴전 이후 폭력적인 상황이 상당히 줄어들기는 했지만, 2월 27일~3월 5일까지, 휴전 지역에서 135명, 휴전 협정이 적용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550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휴전은 시리아 아사드 정부와 소위 온건한 반정부군으로 명명되는 90여 개의 파벌 사이의 합의 사항이지만, 가장 강력한 반정부군이며,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IS(이슬람 국가)와 알 누스라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리아 휴전 합의'라고 이름 붙이기도 힘들다.

 

3월 2일 <미들이스트 모니터>에 따르면, 시리아 대통령 아사드는 "반군들에게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면, 사면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그는 오는 4월 13일 의회 선거를 실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아사드 대통령이 곧 반정부군을 제압하고, 국민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 지난 2일(현지 시각) 시리아 하마 서방 15킬로미터 마르자프의 원로 지도자들이 휴전 협정에 서명한 텐트 주변에서 시리아 병사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나 이러한 아사드의 주장에 대하여, 3월 5일 사우디 외무장관 압델 알 주베이르는 "우리에게 분명한 것은 임시 정부가 구성되기 전에 아사드가 권좌에서 내려오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현재 사우디가 후원하는 반정부군은 아사드 대통령이 제시한 의회 선거 일정에 반대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우디가 후원하는 반정부군 고위급 협상 위원회(HNC) 의장 리아드 히잡은 미래 시리아에서 대통령 아사드의 역할이 없어야한다는 것이 HNC의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시리아에서 반정부군이 장악한 50개 이상의 지역이 휴전 기간에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군의 표적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불과 5개월 전인 2015년 9월 30일 시리아 분쟁에 전격 개입하면서, '테러리스트' IS를 부수기 위한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나 미 국무부 대변인 존 키르비는 "푸틴의 시리아 개입 목표는 붕괴 위기에 처한 아사드 정권을 구하기 위한 것이고, 러시아 공격의 90%는 아사드 정권을 붕괴시키고 더 나은 시리아의 미래를 건설하려는 온건한 정부 반대파를 겨냥한 것이지, 테러리스트인 IS나 알 누스라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아사드는 왜 미국-사우디-터키가 후원하는 정부 반대파의 표적이 되었는가? 러시아는 왜 뒤늦게 아사드 대통령이 IS에게 시리아 영토의 많은 부분을 빼앗긴 이후, 2015년 9월 30일에야 그의 구원자로 나섰는가? 

 

놀랍게도 2010년 3월 현재 시리아에 최대 자본 투자 국가는 사우디였다. 그뿐만 아니라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사우디의 고 압둘라 왕과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은 상호 방문하는 등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렇다면, 2011년 중반에 갑자기 시리아-사우디 관계가 악화되면서, 사우디가 시리아 정부 반대파를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11년 7월 25일 시리아, 이라크, 이란 석유장관들이 이란에서 회의를 하고, 100억 달러의 건설 비용으로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지중해-유럽'을 통과하여 유럽으로 가는 자칭 '우정의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서구에서는 '이슬람 가스 파이프라인'이라 부름)’을 위한 기본 협정을 체결하였다. 시리아 전쟁이 격화되지 않았다면, 2015년 현재 유럽에 천연가스 공급을 목표로 한 이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리아 내전으로 이 사업은 무산되었다.

 

계획된 '우정의 가스 파이프라인'은 2008년부터 이미 가동 중인 아리시-아쉬켈론(이집트-이스라엘) 가스 파이프라인, 2009년부터 가동 중인 '아랍 가스 파이프라인(이집트-요르단-시리아-레바논)'과 연결되면서, 시리아에 부를 약속하는 석유 가스 파이프라인의 교차로이자 중심지로 만들 것으로 예상되었다. 

 

드디어 시리아가 '우정의 가스 파이프라인, 이집트-이스라엘, 아랍가스 파이프라인'을 통합한 가스 파이프라인 망에서 사우디, 카타르, 터키를 소외시키고, 사우디의 역내 패권을 위협하는 막강한 정치 경제 행위자로 등장할 것 같았다. 이것이 사우디, 카타르, 터키가 시리아 반정부군을 후원하는 중요한 이유다. 

 

사우디의 고 압둘라왕은 아랍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2011년 8월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아사드 정부의 대응 방법을 거세게 비난하였다. 결국 2012년 2월 사우디는 다마스쿠스에 있는 사우디 대사관을 폐쇄하고, 리야드 주재 시리아 대사를 추방함으로써 외교관계를 단절하였다. 

 


▲2009년 이집트-이스라엘--요르단-시리아 가스 파이프라인 ⓒ홍미정 
 

 

다른 한편 시리아 아사드 정부가 구상한 유럽 시장을 겨냥한 가스 라이프라인 건설은 러시아 국영 가즈프롬의 지배적인 지위에 도전한다. 러시아 석유와 가스 세입은 2012년 정부 예산의 52%를 차지하며, 전체 수출의 70%이상 차지했다. 게다가 러시아 총 가스 수출량 중 60%는 유럽 시장이 차지한다. 이것은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 초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반군 세력에게 아사드가 극적으로 밀리는 것을 방관한 이유다.

 

그런데 2013년 8월 당시 사우디정보장관 반다르 왕자는 러시아를 방문하여 푸틴 대통령에게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중단하라'고 요청하면서, "시리아에서 아사드 이후에 어떤 정권이 출현하든지 간에, 새로운 정권은 완전히 사우디의 수중에 있을 것이다. 그 정권은 어떤 걸프 국가에도 시리아를 통과해서 유럽으로 가스를 운반하는 협정을 체결하거나, 러시아 가스 수출과 경쟁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유럽 가스 수출에 대한 러시아 독점권을 보장하겠다는 반다르 왕자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시리아 아사드 정부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시리아 전쟁 초부터 깊이 개입한 미국, 사우디, 터키, 뒤늦게 개입한 러시아는 각각 서로 다른 계산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표면적으로 내세운 공동의 적 IS를 격퇴하는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미국, 사우디, 터키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아사드가 시리아 영토 전역에 대해 통치권을 회복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로버트 케네디(존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는 <폴리티코>에 기고한 글에서 "2009년 시리아 대통령 아사드가 카타르의 '카타르-사우디-요르단-터키-유럽'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제안을 거부했을 때, 미국은 그를 제거하기로 하였다"고 썼다.

 

2015년 11월 29일 버락 멘델손이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시리아와 이라크 분할과 정복 : 왜 서구는 분할을 계획해야 하는가?"에서 그는 현재 시리아와 이라크 위기에 대한 해결책은 '수니 독립국가'를 창설함으로써 '전쟁하는 두 편'을 분리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2년 미 국방정보부(DIA)로부터 나온 기밀 해제된 보고서에 따르면, "시리아 반란군을 지원하는 열강들은-서구 국가들, 걸프 국가들, 터키-시리아 정권을 고립시키기 위해 동부 시리아 지역에 살라피(수니파) 공국 창설을 원했다. 이것은 시아파의 팽창(이라크와 이란)에 대한 철저한 전략이다." 

 

그렇다면, 혹시 '수니 독립국가' 건설 예정 영역이 공동의 적으로 내세운 IS가 현재 통치하는 영역이 아닐까? 나머지 영역을 아사드 정부군과 IS를 제외한 정부 반대파가 협상을 통해 공유하거나 분할하는 것이 또 하나의 대안인가? 어쨌든 시리아 전쟁 상태는 장기간 지속될 것이고, 중동 역내 정치 행위자들의 전략적인 이합집산과 함께 중동 역내 정치적 불안정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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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팟 10회 / 시리아에 평화를 Peace for Syria

 

21세기 참극이라 불리는 시리아 전쟁이 어느덧 7년 째 접어들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가 35만명, 난민은 2000만명에 이릅니다. 2011년 '아랍의 봄'을 맞아 시작된 시리아의 민주화 운동이 참혹한 국제전으로 확대된 것은 시리아 정부의 강경 대응과 강대국과 주변국의 이해 관계, 무력한 국제사회의 대응 등이 복잡하게 얽힌 탓입니다. 

 

특히 지난 2월부터 시작된 동구타 공습으로 한 달 새 민간인 1200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 중 5분의 1은 어린이 입니다. 도대체 시리아에서는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요? 우리는 이 참극을 멈추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번 아시아팟에서는 '헬프 시리아' 사무국장인 압둘 와합씨를 모시고 시리아 전쟁에 대해 들어봅니다. 

 

 

*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경우 : https://goo.gl/bxLNmo (팟빵에서 듣기)

* 아이튠즈로 듣기 : https://goo.gl/dvLk7h

* 유튜브로 듣기 : https://youtu.be/IUHzeDD1U_A

 

오늘의 출연자

  • 진행 : 이미현 간사 (참여연대 정책기획실)

  • 고정출연 : 김형종 교수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국제관계학과)

  • 이슈손님 : 압둘 와합(헬프 시리아 사무국장 https://ko-kr.facebook.com/helpsyriaplease/)

 

같이보기

 

[아시아팟] 목록

1회. 두테르테 1년, 필리핀 가도 될까요?

2회. 한국에서 난민으로 산다는 것은?

3회. 버마의 '로힝쟈', 존재를 부정당하는 사람들

4회. 아시아 사람들은 한국 기업을 반가워할까요?

5회. 미안해요, 베트남!

6회. 우리가 몰랐던 '아세안'

7회. 인도네시아 민주주의는 안녕한가요?

8회. 트럼프의 예루살렘 선언, 후폭풍은 어디까지?

9회. 한국의 원조로 고통받는 필리핀 선주민

10회. 시리아에 평화를 Peace for Syria

 

수, 2018/03/2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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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7 아시아생각] ① 시리아 토마호크 공습, 짜고 친 힘자랑 

[2017 아시아생각] ②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된 시리아 비극, 해법은?

[2017 아시아생각] ③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평화의 페달을 밟는 사람들

 

아세안 50주년을 지배한 '이명박근혜' 그림자

[아시아 생각] 4강 중심외교, 아세안 외교로 보완해야


김형종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한반도 위기에 대한 외교적 해법의 모색이다. 전통적 4강 외교와 함께 동아시아 차원의 역학관계에도 주목해야 한다.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자 간 직접적인 갈등을 회피하며 북핵 문제에 있어 공조를 모색하는 양상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이를 전략적 협상 도구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29일에 필리핀에서 개최된 아세안 정상회의는 설립 50주년을 자축하고 공동체를 향한 협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실제 정상회담을 지배한 이슈는 남중국해 문제와 한반도 문제였다.

 

▲ 아세안지역포럼(AFR)는 6자 회담이 중단된 현재 북한이 참여한 유일한 다자체 기구다. ⓒasean.org 

 

전통적 중립성 탈피한 아세안의 변화에 주목해야  

 

남중국해를 둘러싼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중국 등 당사국 간 분쟁의 평화적 해결 모색은 아세안의 오랜 과제이다. 미국이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통해 남중국해 분쟁의 당사국을 자처하는 과정에서 필리핀과 베트남의 중국과의 갈등은 심화되었다. 지난해 7월 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의 영유권 주장과 인공섬 건설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며 필리핀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는 듯했다. 그러나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등장은 이전 정권이 일관되게 추진한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한 중국견제 전략의 변화를 가져왔다. 두테르테는 인권 문제와 관련 미국과 각을 세웠으며 친 중국 행보를 보이며 투자 등의 실익을 챙기고 있다.  

 

올해 의장국이 필리핀임을 고려할 때 이번 정상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아세안은 유화된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아세안 의장국은 정상회의 의제 설정과 최종 의장성명서의 도출에 있어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번 의장성명서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묘사나 비난의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두테르테는 의장 성명서 발표 이후 필리핀 내 정박 중이던 중국 군함을 방문했다. 그러나 아세안 회원국 간 이해 차이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의견 도출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미국의 일정정도의 용인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된다. 
 
남중국해 사안과는 달리 한반도 위기와 관련 북한에 대한 비판에는 바로 합의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 하루 전에 열린 아세안외무장관회의는 별도의 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심대한 우려(grave concerns)'를 표명했는데 이는 정상회의 의장성명서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정상회의에서는 한반도 긴장 심화가 북한의 행위에서 비롯되었음 명시했다. 그간 아세안 관련회의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특정 상황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한반도 차원의 평화적 노력을 희망하는 수준에서 입장을 표명해왔던 것에 비해 이번 아세안의 입장은 북한에 대한 비판의 수위가 높아진 것이다. 정상회담 이후 동남아 현지 전문가들은 북한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을 주문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1991년 남북한 유엔가입 이전에 남북의 치열한 외교적 각축장이었다. 아세안 설립 이후로는 국제사회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미국, 중국, 일본, 호주, 인도, EU 등 주요 국가들을 대화상대국으로 만들어 협상력을 높였다. 한국은 전두환 정권하에서 대화상대국 관계를 추진하였는데 이는 정권의 정통성을 보완하고 대북 압박의 수단으로 삼으려했다.

 

1981년 아세안 5개국 순방은 이러한 전략에서 추진되었다. 당시 관련 외교문서들은 타 대화상대국에 비해 경제력이 미약한 한국이 북한 견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이에 정치적 부담을 느낀 아세안 국가들이 사실상 한국의 대화관계 수립 제안을 거절하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당시 대화상대국 관계 개설에 실패한 한국 외교부는 자체적으로 '아세안의 푸대접 사례'란 제목의 내부 공문으로 아세안에 서운함을 성토한 바 있다. 이후 냉전해체와 한국의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한-아세안 대화관계가 수립될 수 있었다. 아세안이 정치적 민감성에 대해 집단적으로 중립성을 유지하는 기조에 대한 한국정부의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 이명박 정부가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 추진한 대북견제 외교의 실패는 대표적 사례이다. 

 

북한도 아세안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며 공들여왔다. 전통적으로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인도네시아, 베트남, 라오스 등이 있다. 2000년부터 ARF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아세안과 우호협력조약(Treaty of Amity and Cooperation)을 체결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도 북한의 총 무역액 중 동남아시아의 교역비중은 약 10%를 차지했다. 최근에는 전통적 우호 국가들의 지지를 기대하며 아세안과 대화상대국 관계 설립을 제안했으며 2016년 리수용 현 북한외무성 장관은 아세안 5개국을 방문했다.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에 앞서 아세안의장국에 보낸 서한을 통해 북한은 작금의 한반도 상황이 전쟁직전의 상황임을 알리고 긴장해소를 위한 아세안국가의 협조를 요청했다. 

 

아세안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입장의 변화는 미중간 갈등의 사이에서 헤징전략의 도구로 한반도 사안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위협과 더불어 실리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세안은 미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하는 상황이다. 남중국해 문제는 이러한 아세안의 딜레마를 상징하는 것으로 최근 수년간 아세안 회원국 간 이견이 확대됨에 따라 아세안정치안보공동체의 실현에 있어서도 심각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대북공조를 모색하는 상황에서 필리핀의 국내적 이해관계가 반영된 결과로 아세안은 나름의 명분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5월 4일 아세안 외무장관과 회동한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아세안 국가들에 북한과의 관계를 ' 최소화'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지금 당장 미국의 이해가 남중국해보다 북한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이를 위해 아세안을 활용하여 동아시아적 포위망을 구축하겠다는 의도이다. 아세안이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며 북한을 비판하며 미국과 중국의 이해를 동시에 충족시키려는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아세안의 이러한 변화는 몇 가지 점에서 문제적이다. 우선적으로 아세안이 강조하는 중심적 역할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주요 강대국을 포함하며 동아시아 협력을 주도해온 아세안은 중립원칙을 지키며 강대국의 영향력에서부터 자유를 추구했다. 이는 섣불리 균형자(balancer)역할을 자처하지 않았고 기계적 중립을 고집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갈등 당사국의 민감한 사안을 다루지 않고 지속적 신뢰구축의 장을 마련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강대국들로부터 고른 구애를 받아왔다.

 

이번 조치는 아세안이 강대국의 이해를 수용하며 스스로 균형 잡고자 했던 관행을 훼손했다. 둘째, 한반도 위기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단호한 입장과 더불어 대화의 채널을 회복할 필요성이 있다. 6자회담이 중단된 상태에서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다자체인 ARF는 정치적 부담 없이 당장의 활용이 가능한 대화채널이다. 이번 입장변화는 전통적 의장국의 중립원칙과 상충된다.  

 

이러한 아세안의 입장변화에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북한 고립을 추구한 아세안외교가 영향을 미쳤음도 부정할 수 없다.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한반도위기 해결을 우리가 주도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위한 다양한 대화채널을 사전에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4강 외교뿐만 아니라 아세안에 주목해야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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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7/05/2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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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8 아시아생각] ① UN조차 집계 포기한 21세기 참극 시리아 전쟁 7년 

 

7년 전인 2011년 3월15일은 '아랍의 봄’ 을 맞아 시리아 주요 도시들에서 민주화 시위가 대규모로 벌어진 날이다. 시리아 전쟁은 21세기 최악의 인도적 재난으로 기록된다. 해마다 적게는 5만 명, 많게는 7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시리아는 팔레스타인 난민을 웃도는 최대 난민 배출국가가 됐다. 국제연합(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시리아의 참극을 끝장내지 못하고, 강대국들과 주변국들은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는 동안 희생자는 더 늘어났다.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회에 걸쳐 시리아 전쟁의 실상과 문제점을 다룬다. 편집자 주

 

 

'정의의 무력감' 안긴 시리아 전쟁 어떻게 끝장낼까

[아시아생각] 시리아 전쟁발발 연속기고 ②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기자

 

▲ 전쟁으로 파괴된 시리아 중부 도시 홈스의 구시가지 ⓒ유네세프한국위원회

 

3월 15일로 7년째로 접어든 시리아 전쟁의 문제는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내전이라면 힘의 균형이 무너져 어느 한 쪽이 힘이 빠지면 짧은 기간 안에 그치기 마련이다. 시리아 전쟁에는 저마다 이해관계를 지닌 여러 외부세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7년이나 시리아의 참극이 이어져 온 데엔 중동 지역의 패권을 노린 외부 세력들의 개입 탓이 크다. 결국은 비판의 화살은 국제연합(UN)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시리아에 개입한 강대국과 주변국들로 향한다.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UNHCR) 고등판무관은 2016년 유엔사무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안토니오 구테헤스의 후임자이다. 그는 UNHCR에서 3월 9일에 낸 문건 <시리아 분쟁 7년> 앞머리에서 시리아 시민들이 그동안 겪은 고난을 가리켜 국제사회의 '부끄러운 실패(shameful failure)'탓이라고 못 박았다. 시리아 전쟁을 끝내려는 국제사회의 정치적 의지(political will)가 굳건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엄청난 비극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그란디 고등판무관이 지적했듯이, 군사적 수단으로 시리아 전쟁을 끝내려면 패자와 희생자만 있을 뿐 승자는 없다. 어느 쪽에선가 "우리가 이겼다"고 선언하더라도 상처투성이일 뿐이다. 누가 이기든 희생자는 분명하다. 분쟁에 휘말려 생목숨을 잃은 시민들, 그리고 죽은 이를 기억하며 슬픔에 잠긴 채로 생존의 벼랑 끝에서 전쟁의 고통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시민들이다.  

 

시리아 내전? 전쟁? 분쟁? 

 

여기서 짧게 용어 선택의 문제를 짚어보자. 흔히 시리아에서 지난 7년 동안 벌어져 온 유혈 충돌을 '시리아 내전'이라 부른다. 내전은 한 국가 안에서 이해관계가 크게 다른 무장세력들이 벌이는 유혈사태를 뜻한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의 군대와 그에 맞선 반군 사이의 전쟁은 내전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 시리아에서 무장활동을 벌이는 세력은 정부군과 반군뿐 아니다.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레바논(헤즈볼라 민병대), 터키 등 중동지역에 이해관계를 지닌 세력들이 저마다 군사작전을 펴는 중이다. 따라서 '시리아 내전'이란 용어보다는 '시리아 분쟁' 또는 '시리아 전쟁'이란 용어가 더 정확해 보인다. 

 

전쟁을 오래 끈 4가지 이유 

 

시리아 전쟁이 7년을 넘도록 이어진 까닭은 여러 가지로 풀이된다. 첫째로, 아사드 독재정권의 물리적 바탕인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군사적 균형이다. 일반적으로 전쟁은 군사력의 강약으로 결판이 난다. 그런데 시리아에선 여러 해에 걸쳐 정부군-반군 사이의 힘이 팽팽히 맞서왔다. 탱크나 전투기 등 고급 군사 장비 면에선 정부군이 압도적이지만, 국제 여론을 등에 업고 민주화를 피로써 이루겠다는 전투 의지의 측면에선 반군이 우세했다. 

 

시리아 인구 1800만 명(2017년 추정) 가운데 △수니파 무슬림은 74%로 시리아 사람 4명 가운데 3명은 수니 무슬림이다. 나머지는 △시아파 무슬림 13%(시리아 독재자 아사드가 속한 알라위파), △기독교 10%, △드루즈 3% 등이다. 시아파의 한 분파로 독재자 아사드 가문이 속한 알라위파 사람들은 세속적인 성향을 보이며,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 

 

이슬람 시아파나 수니파 모두 시리아 전쟁이 종파 간의 전쟁이 아니라고 말한다. 시리아 정부는 정부대로 반란을 진압하고 테러 위협으로부터 사회질서와 안정을 되찾으려는 노력이며, 반란군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려 싸울 뿐이라 주장한다. 독재자 아사드는 기회 있을 때마다 테러분자들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안정을 지키겠다고 강조한다. 시리아의 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가 결코 그의 적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아사드 체제를 지지하는 시리아 시민들 가운데는 수니파도 소수지만 섞여 있다. 이들은 체제 안정이 민주화보다는 우선하는 가치라 여긴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약 4년 동안은 그런대로 힘의 균형 상태에 있었다. 반군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힘을 하나로 모아 다마스쿠스로 진격하지 못했다. 시리아 정부군은 민중의 강력한 저항으로 사기가 떨어져 반군을 압도할 수가 없었다. 정부군 가운데에서도 아사드 독재에 환멸을 느낀 병사와 장교들이 탈영해 반군에 가담하는 일들도 잦았다. 아사드 정권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화학무기를 사용해온 데엔 체제 붕괴의 위기감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리아 전쟁 초기에 서구의 여러 중동전문가들과 언론 매체들은 아사드 정권이 곧 무너질 것이라 내다보았다. 그 예측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아사드 정권은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무너졌던 리비아 카다피 정권이나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과는 달랐다. 군 주요 지휘관들은 아사드가 속한 알라위파 출신들로 충성도가 높은 편이다. 아사드는 집권 바트당과 함께 자본가 위주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면서 몇몇 족벌에게 특혜를 주어왔다. 그로 말미암아 사회 양극화가 생겨났지만, 그 수혜자인 대기업가들과 고위 종교인사들로 구성된 기득권층은 아사드 체제에 충성을 바쳐왔다.  

 

이런 내부 결속과 러시아 등 외세의 지원을 바탕으로 아사드는 2016년 말 시리아 제2도시이자, 북부지역의 산업·금융 중심지인 알레포를 반군으로부터 되찾았고, 그 뒤로도 정부군의 우세가 뚜렷이 보인다. 2018년 봄 다마스쿠스 동쪽 교외지역인 동구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즈음 아사드는 여러 공식 석상에서 "곧 시리아의 안정과 평화를 이룰 것이다"라며 큰소릴 치고 있다.  

 

미국의 IS 공격, 아사드에게 반사이익 

 

둘째로, 시리아 전쟁이 오래 끌게 된 데엔 (아울러 독재자 아사드의 군대가 수세 국면에서 공세로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게 된 데엔) 강대국들의 이해 타산적인 개입 정책 탓도 크다. 여기서 강대국이란 미국과 러시아를 가리킨다.  

 

아사드 체제를 위기에서 구해준 것은 역설적이지만 이슬람국가(IS) 세력이다. 2014년 6월 시리아북부 락까를 수도로 한 '이슬람국가(IS)'를 선포하면서 기세를 올리자, 수도 다마스쿠스도 위협받은 상황이 됐다. 바로 여기서 미국이 무력 개입하고 나섰다. 2014년 9월부터 공습이 이루어졌고, 해병대를 주축으로 2000명 규모의 지상군을 투입했다. 쿠르드 민병대와 손을 잡은 미군이 공격 목표로 겨냥한 것은 시리아 독재정권의 군대가 아니라 IS였다. 

 

여기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본다. 미국이 IS를 공격한다면 누구에게 이로울까. 먼저 이스라엘이다. 미국의 중동정책 핵심은 첫째는 중동석유의 안정적 확보, 둘째는 이스라엘 안보로 요약된다. 중동석유를 위해서라면 사우디 독재정권과도 친구가 되며, 이스라엘 안보를 위해서라면 중동지역의 반미정서가 커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왔다. 허약한 아사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강성 이슬람 극단세력인 IS가 다마스쿠스를 점령한다면, 이스라엘에겐 안보 위협이 커지기 마련이다. 이스라엘로선 약한 독재자가 강한 극단세력보다 만만하다. 

 

미국이 IS 공격으로 이스라엘 안보를 챙겨주는 상황에서 반사 이익을 얻는 쪽은 아사드 독재체제이다. 아사드는 2014년 9월부터 벌어진 미군의 공습이 더없이 고마울 것이다. IS는 여러 시리아 반군조직 가운데 가장 세력이 강하고 전투적인 투쟁성을 지녔기에 시리아 정부군조차 두려움을 품었다고 알려진다.  

 

아사드에게 고마운 친구는 또 있다. 미군의 시리아 공습 꼭 1년 뒤인 2015년 9월엔 러시아군이 IS공습으로 시리아에 군사 개입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군은 오로지 IS를 공습하는 미군과는 달리 짬짬이 반군의 근거지들을 공습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시리아-러시아의 우호 관계는 옛소련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시리아군의 무기체계는 미그 전투기와 미사일을 비롯해 옛소련제로 채워져 왔다. 지금 러시아가 옛소련 이외의 지역에 유일하게 해군기지를 두고 있는 곳이 지중해변의 시리아 타르쿠스 항구라는 점은 두 나라의 밀접도를 잘 보여준다. 시리아는 러시아의 최신형 전투기 등을 수입하고, 러시아는 시리아의 인프라 확장공사, 천연가스처리공장 등에 연간 수백억 달러를 투자함으로써 서로의 이해관계를 이어왔다.  

 

지역 패권 노린 사우디-이란의 대리전 

 

셋째,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 저마다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면서 개입한 것도 시리아 전쟁이 오래 끌게 된 한 요인이다. 중동 지역 패권을 노린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proxy war) 양상은 전쟁의 성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왔다. 

 

아사드 독재정권엔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 세력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시아파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헌법상 대통령보다 높은 최고 지도자인 이란은 같은 시아파의 소수 종파인 알라위파가 권력자로 있는 시리아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해왔다. 9.11 테러 뒤 이란 동쪽 아프가니스탄, 이란 서쪽 이라크엔 친미정권이 들어섰다. 이란은 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동맹인 '초승달 벨트'를 통해 국가안보 위협을 덜어내려 한다. 

 

하지만 많은 이란 사람들은 자기모순에 빠져 있음을 느끼고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친미 독재 팔레비 왕조를 몰아냈다는 정치적 자긍심을 지닌 이란 시민들의 시각에선 시리아 독재정권을 지지하는 정부의 대외정책에 박수를 치기 어렵다. 결국 이란-시리아 동맹관계는 시아-수니를 가르는 종교적 신념보다 지정학적 국가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현실정치의 냉정함을 보여준다.  

 

넷째, 끝으로 시리아 전쟁이 오래 끌게 된 데엔 국제사회의 무능한 대응을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리비아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릴 때 내세웠던 '국민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이하 R2P) 논리는 시리아엔 적용되지 않았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과 러시아의 입장이 달라 시리아 평화를 위한 이렇다 할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일시적 휴전을 이뤄내고 그 틈에 긴급 구호활동을 펴는 것이 고작이다. 화학무기로 시리아 시민들을 희생시키는 전쟁범죄에 대해서도 UN 안보리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전쟁에 관한 국제법 문서들은 시리아에서 휴지처럼 구겨졌다.  

 

정치적 해법으로 전쟁 끝내야 

 

기득권 체제의 충성과 외세의 군사적 지원에 힘입어 아사드 체제는 초반의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았다. 2016년 무렵 정부군-반군 사이의 힘의 균형은 깨졌고, 미국과 사우디 등 지원세력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통합력이 없는 반군은 이제는 수세 국면이다.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시리아 전쟁은 자칫 정부군의 승리로 끝날 조짐마저 보인다. 

 

'극적인 반전'이란 군사적 해법이 아닌 정치적 해법이다. 늦었지만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이제라도 정치적 해법으로 시리아 전쟁을 끝장내도록 해야 한다. 지금의 흐름대로 시리아 정부군이 군사적 해법으로 전쟁을 끝내도록 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시리아에 개입한 주요국들의 입장이 서로 엇갈리는 탓에, 아사드에게 퇴로를 열어주거나 퇴진을 압박하지 못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한계로 꼽힌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를 비롯한 미국의 이른바 중동 전문가들이 포진한 여러 싱크 탱크, 또는 미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와 같은 외교전문가 집단에서 시리아 해법에 관련된 글들을 거듭 검색해봤다. 하지만 미국의 중동정책이 이스라엘 안보 챙겨주기에 무게중심이 있는 까닭일까, 눈에 띄는 정치적 해법을 내놓은 글을 찾아보질 못했다.  

 

큰 틀에서 바람직한 정치적 해법은 독재자 아사드 일족이 물러나고 다마스쿠스에 민주정부가 들어서는 쪽이다.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73~1990년 집권)처럼 면죄부를 받고 퇴진하는 수순도 생각해볼 수는 있다. 러시아로 망명해 푸틴의 보호를 받는 방식도 있다. 하지만 아사드로선 그럴 뜻이 없다고 알려진다. 지금껏 아사드 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측근들도 아사드의 퇴진을 반대할 것이다. 군부 쿠데타나 암살 등 극적인 사건이 터진다면? 전쟁의 긴 터널 끝이 보이겠지만, 그 가능성은 말하기 어렵다. 

 

끝으로 전쟁범죄. 국제사회에 정의가 살아있다면 시리아 전쟁을 마무리하면서 전쟁범죄를 덮어주긴 어렵다. 아사드와 그의 일족이 퇴진을 거부하는 데엔 전쟁범죄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7년 동안 아사드 체제가 저지른 전쟁범죄 목록은 길다. 전쟁범죄는 공소시효나 국적에 관계없이 처벌받아야 한다는 '보편적 사법권' 논리가 국제법계에서 힘을 얻는 마당에, 아사드를 전쟁범죄자로 붙잡아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세워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좀 더 시일이 지나야 될 일처럼 보인다.  

 

 

결론적으로 전쟁을 하루빨리 끝장내고 '아랍의 봄'을 시리아에서 되살리려면, 결국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아사드 독재정권을 외교적으로 압박하면서 평화 중재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길밖에 없다. 아사드의 퇴진과 전쟁범죄 처리는 그 뒤 수순이다. 인권과 민주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세계 시민들은 지난 7년 동안 시리아의 재앙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픔 속에 무력감을 느끼곤 했다. 시리아에 7년째 이어지는 '아랍의 겨울'은 끝내려면 이제라도 국제사회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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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3/14-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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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016 아시아생각] ① '쯔위 사건', 돈벌이에만 혈안인 K-팝에 '경종'

[2016 아시아생각] ② 쯔위 덕 본 차이잉원 "대처 존경한다"? 

[2016 아시아생각] ③ 미국-러시아의 시리아 임시 휴전 합의, 그러나...

[2016 아시아생각] ④ 수치의 '막후정치', 버마의 앞날이 불안하다

[2016 아시아생각] ⑤ 피플파워+30, 독재자의 처자식은 뭘하고 있을까 

[2016 아시아생각] ⑥ 필리핀 선거에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 

[2016 아시아생각] ⑦ 광주인권상 수상 막은 말레이시아 정부 

[2016 아시아생각] ⑧ 땅은 우리의 삶, 필리핀 할라우강에서 온 선주민의 호소

 

"폭격으로 죽은 11명은 누구였을까?"

[아시아 생각] '세계 인도주의의 날'을 기억해야 하는 진짜 이유

 


하늬 평화교육프로젝트 모모 활동가

 

지난 8월 15일 예멘 서북부 지역에 위치한 한 병원이 사우디 주도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최소 11명이 사망했다. 이 병원은 '국경없는의사회(MSF)'가 운영하는 것으로, 사망자에는 민간인뿐만 아니라 구호 활동가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세계 인도주의의 날'을 4일 앞두고 들린 소식이다.

 

8월 19일은 유엔이 제정한 '세계 인도주의의 날(World Humanitarian Day)'이다. 2003년 8월 1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 위치한 유엔 사무소가 폭탄 공격을 받아 인도주의 활동가 22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유엔은 2008년부터 '세계 인도주의 날'을 통해 여러 국제 구호 단체와 함께 분쟁과 내전 현장 및 재난 지역에서 인도적 지원 활동을 하다 희생당한 활동가들을 기억하고 이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 예멘 서북부 지역에 위치한 압스 병원이 공습당한 모습. 이로 인해 최소 14명이 사망했고 24명이 부상당했다. ⓒ국경없는의사회

 

 

공격의 목표가 되어버린 인도주의 활동가들 

 

안타깝게도 '세계 인도주의의 날' 제정 이후 현장에서 활동하다 목숨을 잃은 활동가들의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14년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영국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주의 활동가들의 사망자 수가 매년 100여 명이 훌쩍 뛰어넘고 있으며, 부상이나 납치 등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몇 년간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국가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소말리아, 수단, 남수단과 시리아였다. 즉, 지속적으로 분쟁과 내전 상황으로 인해 인도주의 지원이 가장 절실한 곳에서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 위험 속에서 구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인도법에서는 인도주의 활동가를 공격하는 것은 명백한 전쟁 범죄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무력 갈등으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만 있을 뿐,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독립적인 조사는 진행되지 않는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희생되는 인도주의 활동가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처럼,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민간인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과 통제 불능의 무기 거래, 인도주의 활동가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 

 

2016년 2월 세계인도주의 정상회의(World Humanitarian Summit)에서 발표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보고서 에 따르면, 전 세계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지역의 80% 이상이 무력 갈등으로 인해 삶의 터전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곳이며, 인구 밀집 지역 공격의 피해자 90% 이상이 민간인이다. 

 

시리아는 내전이 5년 이상 고착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수천 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있고 미처 공격을 피하지 못하거나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정부군이나 반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또한, 미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각각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은 공습을 퍼붓는데 군사 시설과 민간 시설을 구분한 지도 오래이다. 아니 이제는 구호 물자나 민간인들이 필요한 물자가 들어오는 통로를 차단하기 위해 공격한다. 또한 공격에 필요한 무기들은 통제의 기능을 상실한 거래를 통해 잘못된 손에 흘러 들어가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조사에 따르면, 무책임한 무기 거래로 인해 사망하는 민간인의 수는 매년 50만 명이 넘는다. 무력 갈등을 또 다른 무력으로 막으려는 시도들이 난무하고 그에 반해 불충분하고 불균등한 인도적 지원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인과 이를 위해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몫이다. 

 

현실이 이러한데 인도주의 활동가들의 안전한 활동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 각국 정부에서 자신들의 전략적 이익을 취하기에 급급해 군사적 지원에 열을 올리고 있으면서 어떻게 인도주의 활동가들의 희생을 진심으로 기억하자고 호소할 수 있을까?

 

분쟁을 멈추려는 시도,'세계 인도주의 날'에 가장 필요한 것은 아닐지 

 

국제 구호 단체를 비롯해 인도주의 단체에서 지금까지 인도적 지원에 대한 필요성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더 많은 지역에 충분한 지원이 균등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로 인해 2003년보다 훨씬 더 많은 시민들이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국제사회에 요구하고 있다. 

 

'세계 인도주의의 날'을 통해 인도주의 활동가들의 희생을 높이 기리고 그들의 활동이 얼마나 필요하고 소중한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 활동을 기억하는데 그치기보다, 활동가들이 그 현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제 사회가 인도주의 활동가들의 희생을 진정으로 고민하고 안타까워한다면, 이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전쟁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전쟁과 무기 거래를 조장하는 것을 멈춰야 할 것이다. 군사적 지원 대신 인도적 지원이 충분히 전 세계 곳곳에서 전해져야 하며, 소형 무기와 같이 민간인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무기 거래를 통제하여 안전한 곳에서 인도주의 활동가들이 구호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또한 분쟁으로 인해 셀 수 없을 정도로 희생당한 민간인의 피해를 줄여나가는 방법 역시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전 세계 곳곳,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활동하는 인도주의 활동가들의 노력에 감사하면서도 전쟁으로 인해 이름조차 모두 알 수 없는 수많은 희생자를 기억하고 이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잠시나마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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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6/08/1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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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선거 권위주의 체제' 완성한 캄보디아 총선

[아시아생각] 유일야당도 강제해산시킨 '민주주의 우롱 선거'

 

정연식 / 창원대학교 교수

 

 

지난 7월 29일 캄보디아에서 총선이 실시되었다. 5년 임기의 하원의원 125명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에서 여당인 캄보디아인민당(Cambodian People's Party)은 76.84%의 득표율로 125석 전석을 석권했다. 이로써 지난 33년간 내리 총리를 지낸 훈센(Hun Sen) 총리는 세계 최장수 총리 기록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을 두고 캄보디아의 민주주의가 붕괴했다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미국, 호주, 캐나다, EU는 선거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훈센 정부에 대해 민주주의의 복원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캄보디아 제재 법안이 하원에서 의결된 상태다. 선거를 인정하지 않는 근거는 캄보디아인민당의 유일한 경쟁자였던 캄보디아구국당(Cambodian National Rescue Party)이 지난해 말 강제 해산되어 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다는 데 있다. 경쟁 없는 선거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구성요건에 정면으로 위배되기에 캄보디아의 민주주의가 붕괴했다고 보는 것이다.  

야당의 전략 실패 


캄보디아구국당이 참여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이번 총선은 ‘엉터리 선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고, 인민당의 일방적인 승리가 예견되면서 인민당이 선거를 통해 얻고자 했던 합법성은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이미 훼손되고 말았다. 그러나 망명중인 삼랭시(Sam Rainsy) 전 구국당 대표가 선거 거부 운동을 전개하면서 의미 없는 선거에 의미를 부여했다. 투표를 거부함으로써 인민당에 대한 반대, 구국당 해산에 대한 반대, 구국당이 배제된 선거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시해달라고 유권자들에게 주문한 것이다. 인민당은 선거 거부는 반역 행위라는 프레임으로 투표 독려 운동을 펼쳤다. 구국당의 선거 거부 운동은 결과적으로 인민당의 선거 독려 대응과 맞물려 이번 총선을 투표율이 승부를 결정하는 대결구도로 전환시켰다.

결과는 인민당의 승리였다. 투표율은 83.02%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2013년 총선 투표율 69.61%에서 10% 포인트 이상 증가한 것이다. 구국당 인사들은 투표율이 조작되었다며 선거결과를 부정했지만 그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 하고 있다. 선거감시기구들 또한 선거 자체를 부정하며 선거감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작이 있었다 하더라도 근거를 제시할 방법이 없다.  

83%의 투표율이 비정상적이라 할 수도 없는 것이 역대 총선 투표율의 평균 수준이 80%대인 데다가 구국당이 참여했던 1년 전 지방선거 투표율 90.37%에 비해서는 오히려 낮기 때문이다. 아울러 구국당이 전개했던 선거 거부 운동 그 자체에서 높은 투표율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선거 거부 운동의 구호가 된 '깨끗한 손가락'은 투표하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그것은 투표 직후 1주일 이상 지워지지 않는 잉크에 오른손 검지를 찍기 때문이다. 손가락 잉크 찍기는 본디 부정선거의 주범으로 지목되던 다중 투표를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투표 여부를 한눈에 가려내는 장치로 용도가 바뀌었다. 인민당이 깨끗한 손가락을 반역 행위로 규정해버린 이번 총선에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손가락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기에 인민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라 하더라도 보복이나 불이익을 우려해 투표소로 가야만 했던 것이다. 구국당의 '깨끗한 손가락' 운동은 한마디로 완전한 패착이었다.

투표율보다 더욱 주목을 끄는 것은 59만4659표로 집계된 무효표다. 이전 선거에서 무효표가 평균적으로 10만 표 내외였음을 감안하면 최소 50만 명에 달하는 유권자들이 어쩔 수 없이 투표는 하되 무효표로 인민당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들은 또한 구국당 해산에 대해 반대하는 의사를 표현했다고도 볼 수 있다. 만약 구국당이 선거 거부가 아니라 무효표 전략을 택했다면 더 많은 무효표를 기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50만 명이 결코 적은 수는 아니지만 인민당의 입장에서 보자면 확고한 구국당 지지자 혹은 인민당에 대해 뚜렷한 반대 의사를 가진 유권자의 수가 전체 투표자의 8.5%에 그친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무효표 8.5%의 의미를 구국당 지지로 해석하면 구국당 지지자가 2013년 총선과 2017년 지방선거의 44.46%와 43.83%의 20% 수준으로 크게 감소한 것이 된다. 이에 반해 인민당의 득표율 76.84%는 같은 기준으로 48.83%와 50.76%에서 크게 증가했다. 40% 내외의 확고한 인민당 지지층을 상수로 잡으면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구국당을 지지했던 유권자 가운데 백만 명 이상이 인민당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들이 모두 인민당 지지로 선회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극적인 반대를 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이번 총선은 구국당 해산과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징벌적 심판이 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인민당의 시각에서는 오히려 인민당이 의도했던 최소한의 형식적 합법성 획득의 수준을 넘어 구국당 해산에 대한 암묵적 인정과 인민당 정부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는 선거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인민당으로서는 구국당 해산에 따른 비판과 민주주의 복원 요구를 막아줄 방어막이 완성된 셈이다. 인민당의 선거결과 해석과 그 형식논리를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83.02%의 투표율, 76.84%의 인민당 득표율, 무효표 8.5%가 캄보디아의 민주주의 복원 가능성에 대해 갖는 의미는 사뭇 비관적이다. 국민의 다수가 딱히 인민당 정부를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인민당 정부체제를 수용하고 있으며, 민주주의 복원을 요구하고 추구할 수 있는 정치 세력과 시민사회는 크게 위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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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 피살, 구속, 폐간, 해고, 방송국 폐쇄 

 

인민당 정부는 그동안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저항하는 인사들에 대해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구속기소하는 방식을 통해 정치인, 언론, 시민사회를 위축시키고 재갈을 물려왔다. 구국당의 대표였던 삼랭시는 구속을 피해 2016년부터 망명 상태에 있으며 정부에 대한 거친 비판으로 주목받던 정치평론가 껨레이(Kem Rey)는 피살되었다. 현재 정치평론가 낌속(Kim Sok)을 포함해 20명의 시민사회운동가와 언론인들이 구속 상태에 있으며, 영문 일간지 캄보디아데일리(Cambodia Daily)는 정부의 압력에 폐간하였고, 프놈펜포스트(Phnom Penh Post)는 훈센 총리와 친분이 있는 말레이시아 자본에 매각된 후 편집국장을 해고했다. 인민당 정부는 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방송을 폐쇄하고 외국인 직원을 강제 추방하는 한편 내국인 직원을 구속했으며, 미국의 소리와 자유 아시아 방송(Radio Free Asia) 프로그램을 송출한 라디오 방송국 19개를 강제 폐쇄했다.

캄보디아의 시민사회와 정치 세력이 그동안 인민당 정부에 의해 얼마나 무력화되었는지는 캄보디아구국당이 해산되는 과정에서 뚜렷이 나타났다. 구국당 해산은 2017년 1월 정당법 개정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구국당은 새 정당법이 구국당 해산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저지에 나서지 않았다. 껨소카 대표가 반역 혐의로 체포되어 당 해산이 임박했을 때에도 비판 성명을 내는 수준 정도에서 멈췄다. 자신들도 체포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을 교체하면 모두 복구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마침내 대법원이 해산을 선고하자 구국당은 순순히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곧장 55명의 의원 중 30여 명이 국외로 빠져나가면서 구국당은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는 저항의 시위 한 번 조직하지도 못 할 만큼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총선 결과는 인민당 정부가 오랫동안 사회를 억압해 순응하도록 길들여온 결과물인 것이다. 

선거권위주의의 완성 


1993년 첫 총선으로 시작된 캄보디아 민주주의의 역사를 보면 민주주의가 이번 총선을 계기로 갑자기 붕괴한 것은 아니다. 사실 캄보디아가 온전한 민주주의체제로 평가될 수 있는 시기는 한 차례도 없었다. 내전 종식과 함께 '민주주의 제도'는 도입되었지만 '민주화'는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민당 정부의 장기집권으로 오히려 권위주의 성격이 강화되었고, 그에 따라 민주주의보다는 선거권위주의 개념이 체제의 성격과 더 부합하게 되었다. 선거권위주의는 선거를 치른다는 점 외에는 권위주의 속성이 강한 정치체제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캄보디아구국당 강제 해산은 선거에서 경쟁을 제거함으로써 선거권위주의체제를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였다.  

구국당의 핵심 인사들은 이제 국외로 나가 '캄보디아구국운동'으로 이름을 바꾸고 캄보디아 민주주의의 복원을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EU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훈센 총리를 굴복시킬 만한 수준의 경제적 제재를 가할지 미지수이며, 제재를 가한다 하더라도 그럴 경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중국이 버티고 있어서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결국 캄보디아 민주주의의 복원은 캄보디아의 주권자들이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나설 때에만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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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8/08/1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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