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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냥 고용정책 말고, ‘좋은 일’ 정책을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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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냥 고용정책 말고, ‘좋은 일’ 정책을 원해요!

익명 (미확인) | 화, 2016/03/0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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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이라는 게 별거냐? 아무리 월급 많이 주고 복지혜택 많아도 바로 옆에서 일하는 사람이 스트레스 주면 사표 내게 된다.”

“일을 안 해야 좋은 일이지.”

“앞으로 로봇이 노동력을 대체한다는데, 좋은 일을 고민해봐야 뭐하나?”

“어차피 인구가 줄고 있어서 얼마 후면 원하는 일자리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게 된다.”

희망제작소 창립 10주년 기획 연구 ‘좋은 일, 공정한 노동’을 진행하면서 자주 들었던 비판입니다. ‘하나마나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뜻인가 싶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곱씹어보면 일리가 있는 말들입니다. 예리한 통찰이 들어있기도 합니다. 이런 고민들까지 포괄할 수 있어야 ‘좋은 일’의 기준을 찾는다는 이 기획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격인지, 이 기획연구를 담당하는 저의 눈에는 유달리 노동 관련 이슈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영향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나가는 버스에, 열차 좌석들에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알리는 너구리인지 강아지인지 모를 캐릭터가 도배돼 있고, 그 비싸다는 포털 메인의 최상단 광고 자리에 ‘노동개혁’을 홍보하는 배너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이렇게 발 벗고 나서서 적잖은 돈을 뿌리니, 여기저기서 ‘노동’ 소리가 들려온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일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 ‘노동개혁’이라는 것이 스스로에게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수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2015년 11월 17일부터 2016년 1월 31일까지 네이버 해피빈재단과의 협력으로 진행한 ‘좋은 일 기준 찾기’ 온라인 설문조사에 15,000명 이상이 참여했고, 그중 3,200여 명이 추가 의견을 남겼는데, 상당수가 자신의 노동조건이 합법적인지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있었습니다.

“근로시간과 급여가 빈칸인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하라고 합니다. 출산휴가도 한 달만 주고, 연차가 없어서 하루 쉬려면 무급으로 쉬어야 합니다.”

“다른 조건은 좋은 편인데 근로계약서를 안 써줍니다. 야근 수당이 없다는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장님은 근로계약서 안 썼다고 부당한 대우는 없을 거라고 하시지만 직원들은 불안해합니다.”

“대졸인데도 주 70시간 이상 근무에 월급을 90만~100만 원밖에 못 받습니다. 회사 사람들은 ‘경력이 쌓여야 월급이 올라가는 거지 처음에는 다 그렇다’라고만 합니다.”

모두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들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근로기준법이 나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부당하면 어디에 말해야 하는지 거의 모르는 채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 활동이 잘 이뤄지는 기업에 들어간 사람은 좀 낫지만, 노조조직률이 10%, 중소기업은 겨우 2% 수준이니 그마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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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지만, 아니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좋은 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열망은 더욱 크다고 생각됩니다. 위 설문조사의 응답 항목이 상당히 많았음에도 두 달여 동안 15,000명 이상 이 참여한 것만 봐도 그 열망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희망제작소가 가진 문제의식은, ‘무엇이 좋은 일이냐’는 것부터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는 좋은 일의 기준이 ‘정규직’, 혹은 ‘대기업 정규직’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100대 대기업이 전체 고용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정규직은 빠르게 없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정규직’은 법적 표현도 아닙니다. 예전에는 고용형태가 모두 정규직이었다가 계약직, 파견직 등이 하나 둘 생겨나다보니 정규직 법적 개념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라는 식으로 모호합니다. “정규직을 달라며 투쟁했더니 무기계약직을 줬다”는 2007년 510일간의 홈에버 파업 결과도 그런 모호함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일’의 진짜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먼저 살펴봤습니다. 네이버 해피로그 연재를 통해서였습니다. 첫 회 ‘어떤 일을 원하세요? 정규직이면 되나요?’에서는 여러 사람에게 들어본 다양한 일자리 모습을 전했습니다. 대부분은 비정규직 고용, 정체되는 연봉 등으로 불만스러워 하는 사람들의 사례였지만 단 한 명, 자기 일에 만족한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직장 내 학력‧성별 차별이 없고, 같은 직급의 고용형태는 모두 같으며, 직원을 배려하는 근로조건이 있다는 점이 만족스럽다는 것입니다.

당시 글에는 싣지 못했지만 삼성전자의 중간 관리자급인 40대 초 남성과의 인터뷰도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원하는지 관심이 있는 직장이 있다면 연봉이 줄더라도 옮기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후 설문조사에서 ‘(임금을 제외한) 근로조건 측면에서 ’좋은 일‘의 기준에 부합하는 직장이 있다면 임금이 줄더라도 옮기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응답자의 39.9%가 ‘그렇다’고 답한 것과 통합니다.

이 결과를 곧이곧대로 ‘임금이 줄어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전문가 지적도 있었습니다만, 적어도 위의 40대 남성은 분명히 그렇게 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내부경쟁이 너무 심하고, 나라는 사람이 꼭 필요한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5년 후에도 이 기업에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연봉을 받으면서 일하다 40대 중반에 밀려나는 것보다는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다른 대안을 찾고 싶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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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정규직이란 게 뭔지 알고 계세요?’에서는 보다 본격적으로 정규직이라는 말로 대변될 수 없는 좋은 일 기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때 청년일자리 현황 파악을 위해 20~30대 여성 20명을 집중인터뷰 한 한국여성민우회 류형림 활동가를 만나서 들었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경력단절여성 문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에 어리둥절했습니다. 제 주변에 손으로 다 꼽기도 어려울 만큼 경력단절 여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들어보니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여성들 전체가 ‘나쁜 일자리’에 직면해 있다. 단지 이름 있는 대학을 나오고, 외국어 실력을 쌓을 기회가 있었던 아주 소수의 여성들에게만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길이 그것도 남성들이 비해 아주 좁게 열려 있는데, 그나마도 출산과 육아의 상황에 직면하면 밀려 나오게 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그 여성들에게조차 경력도 학력도 인정 못 받는 최저 수준의 ‘나쁜 일자리’ 기회만 주어진다는 것이죠.

맞는 이야기였습니다.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재취업‧이직의 기회가 적은 우리 사회에서는 남성들도 ‘좁은 길’에서 한 번 밀려나오면 ‘나쁜 일자리’ 기회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치킨집이 그렇게 많은 이유가 거기 있겠지요.

그러고 보면 우리 중 대다수는 엉뚱한 노력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좁은 길’로 어차피 들어가지도 못할 텐데, 들어가 봐야 몇 년 버티지도 못할 텐데, 좋은 대학에 가고 스펙을 쌓으려고 그 많은 노력과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극소수만이 아니라 더 많은 수의 일자리가 ‘좋은 일’이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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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연재 시리즈는 노동시간, 임금, 노동조합, 일과 삶의 균형, 존중, 재미 등의 주제로 각기 이 조건에서 의미 있는 시도를 하고 있는 기업 또는 단체를 찾아가 봤습니다. 여기에도 역시 “이런 일부의 사례가 무슨 소용이냐”는 비판이 있었지만, 긍정적인 반응이 훨씬 많았습니다. 주 4일만 출근 해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 새누리당 사무처에도 노동조합이 있다는 것, ‘일과 삶의 균형’을 최우선 목적으로 하는 기업도 존재한다는 것이 더 널리 알려졌으면, 그래서 사회 전체적으로 영향을 받았으면 하는 의견들이었습니다.

‘좋은 일 찾기’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임금’보다 ‘적절한 노동시간과 삶의 질 증진, 과도한 스트레스나 프라이버시 침해가 없는 근로조건’이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우리 사회가 열망하는 ‘좋은 일’의 상(像)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년이 보장되며, 주 40시간 이하 노동시간을 지키고, 나의 적성에 맞거나 재미가 있으며, 일하는 사람 간에 화합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가 갖춰져 있고, 일하는 과정에서 나의 전문성과 숙련도가 증진되며, 그에 따라 임금도 상승하는 일”

좋은 일 찾기 복면좌담회

이에 대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2월 20일에는 설문 응답자 중 연령‧성별‧직종별로 선별한 11명과 ‘좋은 일 찾기 복면 좌담회’를 가졌습니다. 서울 평창로 희망제작소 4층 희망모울에서 열린 이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각자 일하면서 느껴온 점, ‘좋은 일’의 중요한 기준 등을 적극적으로 말했습니다. 특히 좋은 일을 확산시키기 위한 방안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내놓은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좋은 일 찾기 복면 좌담회 후기)

“채용 공고 할 때 회사 기밀사항을 제외하고는 정확한 임금과 근로조건을 공개하는 것을 법제화해야 한다. 근로계약서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는지도 전체를 외부에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자식에게 부끄러움 없이 보여줄 수 있어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노동자의 가족들이 직장에 방문하고 체험하는 것을 의무화하면 어떨까?”

“취업규칙을 입사할 때 한 번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매년 재교육을 하도록 의무화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노동법 교육도 의무화했으면 좋겠다.”

▲좋은 일 찾기 복면 좌담회

▲좋은 일 찾기 복면 좌담회

좋은 일을 위한 단순명료한 정책요구 토론회

이런 의견들을 구처적인 정책요구안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2월 24일에는 ‘좋은 일을 위한 단순명료한 정책요구 토론회’도 가졌습니다. 역시 희망제작소 희망모울에서 열렸고,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강진구 경향신문 논설위원(공인노무사),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김혜진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참석했습니다.

현실이 난맥상인데 해법이 ‘단순명료’하기가 말처럼 쉽겠습니까마는, 그래도 발제 내용들에서는 최대한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내놓으려 고민한 흔적들이 엿보였습니다.

강성태 교수는 노동자가 고용계약을 맺을 때 가까운 지역 고용관청에서 최저근로기준을 담은 ‘근로기준명세서’를 개별 노동자들에게 교부하도록 하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고용 계약 내용을 분명히 알고 체결할 수 있게 하자는, 어찌 보면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그런 만큼, 그조차도 잘 지켜지지 않는 우리 현실에 꼭 필요한 해법이었습니다. 이밖에도 노동시간 단축, 직장 내 인권보호 및 차별금지, 공정노동 인증 등에 대한 방안들이 제시됐습니다.(좋은 일을 위한 단순명료한 정책요구 토론회 후기)

▲ 좋은 일을 위한 단순명료한 정책요구 토론회

▲ 좋은 일을 위한 단순명료한 정책요구 토론회

이번 연구에서 남은 것은 이 모든 내용을 담은 ‘정책요구 보고서’를 내놓는 것입니다. 물론 보고서가 나온다고 정책에 다 반영될 수도 없겠고, 노동 현실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토론회에서 강성태 교수님이 “희망제작소 연구의 좋은 점은 일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모았다는 것”이라고 하신 것처럼 의의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나왔던 “근로계약법 맺는 법에 대한 교육이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일에 대해 청소년기부터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요청부터 희망제작소답게, 시민들과의 접점에서 가능한 방법으로 모색해 보려고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입니다. 당장 총선이 다가오면서 ‘일자리 정책’, ‘청년 고용 정책’ 등이 들려올 것입니다. 고용률 높이자고 비정규직, 인턴 자리만 양산하는 그런 정책 말고, 진짜 우리 노동 환경을 바꾸는, 그래서 우리의 삶이 풍족해지게 하는 그런 정책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냥 고용 정책 말고, ’좋은 일‘을 원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1인 1표의 민주주의는 그러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참, 앞에서 전한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에 해당된다면 당장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저희 연구에 자문을 해준 이현종 노무사는 “고용노동부 상담센터(전화 1350)나 지역별 관할고용센터 민원실을 찾아 상담하라”면서 “이런 상담이 고용노동부 본연의, 가장 주된 업무이므로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습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강진구 경향신문 논설위원(노무사)도 적극적으로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합니다.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노노모) 사무국(0505-930-2710)에 연락해 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글 : 황세원 | 사회의제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사진 : 이우기 | 사진작가
*위 사진들 중 일부는 희망제작소 사무공간을 찍은 것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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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해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안신숙의 일본통신 47
지역 공동체 활동의 핵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어린이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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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3년 사이 일본에서 ‘어린이 식당’이 전국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2014년 6명중의 1명이라는 아동 빈곤률이 발표되고, 2016년 ‘빈곤아동대책법’이 제정되면서, 2013년까지 21개에 불과했던 ‘어린이 식당’이 작년100여개, 올 상반기 185개가 새로 생겨났다. ‘어린이 식당’의 전국/지역 네트워크가 조직돼 현재 319개 단체가 활동 중이다. 지역 공동체가 갈 곳 없는 빈곤 아동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곳, ‘어린이 식당’은 어떤 곳일까.

‘어린이 식당’은 아이들이 훌쩍 찾아와 따뜻한 밥 한 끼 편히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부모의 늦은 귀가로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을까’, ‘저녁을 어떻게 때울까’하는 아이들의 고민을 덜어준다. ‘어린이 식당’은 제대로 저녁식사를 할 수 없는 지역 내 빈곤가정의 아이들과 방과후 혼자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위한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에서 소외되기 쉬운 아이들에게 식사만을 대접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식당에서 또래 친구, 이웃 할아버지와 할머니, 때로는 형과 누나들과 함께 숙제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어린이 식당’ 운영은 아동/빈곤 문제 해소를 위해 활동하는 NPO 법인과 지역 내 자원활동(볼런티어) 단체 혹은 사회복지 단체들이 맡고 있다. 단체에 따라 월1회, 주1회, 주5회 등으로 운영한다. 또한 평일에 저녁을 제공하거나, 학교 급식이 쉬는 주말과 휴일 혹은 방학 때 점심을 제공하는 등 단체마다 다양한 형태로 운영한다. ‘어린이 식당’에는 식사 공간뿐 아니라 학습지도를 비롯해 어린이카페, 작은 도서관 등 학습과 놀이를 병행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이처럼 ‘어린이 식당’이 단기간에 다양한 형태와 운영으로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이 식당’에 참여하는 관계자들은 ‘어린이 식당’이 지역 공동체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누구든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어요.”
“아이들이 가정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고령자 분들도 쉽게 참여해요.”
“먹거리를 테마로 지역 주민 간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지역 내 숨은 문제를 발견할 수 있어요. 행정에 기대지 않고 다음 단계의 활동을 이어갈 수 있어요.”

어린이 식당의 원조, ‘야채가게 단단 마을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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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오타구 주택가에서 ‘콘도 히로코(近藤博子,56세)’씨는 가게 이름도 심상치 않은 ‘변덕스런 야채가게 단단(気まぐれ八百屋だんだん)’을 운영했다. 그녀 혼자 식당을 운영하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땐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어 ‘변덕스런 야채 가게’라고 이름을 붙였다. ‘단단’은 ‘차츰 차츰’이란 뜻으로 콘도 씨의 고향인 시마네에서는 ‘고맙습니다’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콘도 씨는 전국 곳곳의 생산자로부터 직접 주문한 유기농 야채, 과일과 함께 조미료, 즉석식품 등을 엄선해 판매했다. 그는 야채가게 내 여유 공간을 이용해 2012년 1월 ‘어린이 식당 단단’을 열었다.

콘도 씨는 본격적으로 ‘어린이 식당 단단’을 열기 전부터 꾸준히 지역 활동을 해왔다. 과거 치과 위생사였던 그는 평소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때마침 지인의 농가의 간절한 부탁으로 주말마다 야채를 조달해 배달하는 작은 택배사업을 시작했고, 평일에도 영업을 해달라는 고령의 지역민들의 요청으로 2008년 30여년 간의 병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야채가게’에 뛰어들었다.

‘야채가게 단단’이 지역에서 자리를 잡아가면서, 다양한 문화 강좌를 여는 ‘지역 살롱’의 구실도 했다. 처음에는 옛날 동네 절에서 아이들을 모아 공부시키던 곳을 뜻하는 ‘테라고야’를 따서 ‘One Coin 테라고야’ 교실을 열었다. 500엔짜리 동전 하나로 배울 수 있는 공부방이다. 우리나라에 빗대면 서당과 같은 곳이다. 이 교실을 열게 된 계기는 고등학생 딸이 수학이 너무 어렵다는 말에 지인인 전직 교사화 함께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모아 공부를 배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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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 씨는 이를 계기로 ‘One Coin 테라고야’ 교실을 열었다. 작은 야채 가게의 지역 활동이 신문에 게재되는 등 입 소문을 타면서 교육 경험이 있는 자원활동 교사의 지원과 배우려는 학생이 점점 늘어났다. 이후 ‘One Coin 테라코야’와는 별도로 아이들이 숙제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미치쿠사 테라고야’를 시작했다. ‘미치쿠사’란 길가에 자라는 잡초이다. 길을 가던 말들이 도중에 잠시 멈춰 풀을 뜯어 먹고 다시 길을 간다는 고사성어처럼 아이들이 하굣길 공부방에 들러 숙제하고, 함께 노는 곳을 표방한다.

콘도 씨는 학습 교실 외에도 요가, 갤러리, 영어회화, 철학, 동화 등 ‘One Coin’으로 참여할 수 있는 문화 강좌 교실들을 여러 차례 열었다. 예컨대 수화를 할 수 있는 동네 주민이 수화를 알려주고 싶다고 하면, 수화 교실을 열어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모으는 방식으로 강좌가 다양해진 것이다. 이른바 ‘푸치 기획’으로 ‘야채가게 단단’은 지역 주민들이 붐비는 동네 우물가와 같은 문화 공간으로 변화했다.

바나나 한 개로 아침 저녁을 대신하는 아이 때문에 시작한 ‘어린이 식당 단단’

‘어린이 식당 단단’은 지역민의 한 사연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야채가게에 들른 초등학교 교장이 ‘학교에 어머니가 병들어 아침과 저녁을 바나나 한 개로 견디는 아이가 있다’는 얘기를 지나가는 말로 전했다. 콘도 씨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했지만 결국 그 아이는 아동보호시설로 보내졌다. 콘도 씨는 당시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고, 이어 아이들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찾는 식당을 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실상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자신이 설 자리가 없는 아이들이 지역 내에서 혼자서도 갈 수 있는 곳을 찾기란 어렵다. 콘도 씨는 ‘엄마랑 같이 온 게 아니니?’라고 묻지 않는 식당, ‘혼자 와도 좋은 곳이란다’라고 말해주는 식당, 아이들이 혼자서도 편하게 따뜻한 밥 한끼를 먹고 갈 수 있는 ‘어린이 식당 단단’을 열었다. 사실 제도적 지원도, 전례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콘도 씨는 일단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나섰다. 그가 직접 카레를 만들고, 이웃들의 일손을 빌어 식당을 열었다. 강좌에 참여하는 PTA(학교운영위원회) 임원 분들에게도 ‘원하는 아이들은 누구든 와서 밥을 먹을 수 있고, 그 안에서 결식 아동들이 자연스레 함께 어울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집안 사정이 어려운 아이만 가는 곳이라는 선입견을 덜어내기 위해서다.

‘어린이 식당 단단’은 신문 등 언론 보도를 통해 입 소문을 타면서 식당 일을 돕겠다는 자원 활동가와 식당을 찾는 아이들도 늘어났다. 초창기에는 격주로 운영됐으나 현재는 주1회로 운영되고 있다. ‘어린이 식당 단단’의 식단은 ‘야채가게’인만큼 신선한 야채를 넉넉하게 사용한 요리를 제공하고 있다. 자원활동가와 함께 식단 구성을 논의하면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고려한 따스한 요리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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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세대 교류의 장이 되고 있는 어린이 식당

‘어린이 식당 단단’은 혼자 오는 아이, 형제와 함께 오는 아이, 그리고 엄마 손을 잡고 오는 아이들로 언제나 만석이다. 유치원생부터, 초/중/고등학생, 그리고 홀로 지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찾곤 한다. 어른들은 500엔을 내고 밥을 먹지만, 아이들은100엔만 내면 된다. 만약 돈이 없다면 무료로 먹기도 하고, 일손을 거들기도 한다. ‘어린이 식당 단단’은 이웃들이 기부하는 돈과 식자재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숙제 다했어?’, ‘오늘 학교에서 뭐 배웠니?’ 등 부모가 아닌 어른들의 말 한 마디가 어색했던 아이들은 이제 깔깔 웃으며 큰 소리로 대꾸를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청소년들은 아이들과 함께 놀아준다. 또한 자원 활동하는 분들이 선보이는 어린이 동화를 듣거나, 풍선 아트를 즐기기도 한다. 이처럼 ‘어린이 식당 단단’은 아이들이 귀갓길에 들려서 단지 한끼 식사를 먹는 곳이 아니라 따스한 정(情)을 나누는 또 하나의 가정과 같은 곳이 됐다.

“’어린이 식당 단단’은 비단 어려운 아이들만의 둥지가 아닙니다. 혼자 먹는 밥이 외로운 어른들도 찾아와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옛 추억을 다시 떠올립니다. 외국인들은 지역사회의 일원이 됩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젊은 엄마와 아빠들은 육아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인생 선배들로부터 조언을 얻기도 하죠. 아이들은 일상에서 어른들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마치 자기네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대하듯, 형과 누나를 대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늘어놓지요. ’’

이처럼 ‘어린이 식당 단단’은 지역 내 다세대 교류의 장(場), 어른들에게는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음을 환기시켜주는 공간, 아이들에게는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의 희망을 키울 수 있는 ‘꿈터’이다. 콘도 씨는 ‘어린이 식당’이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공공기관의 정책이 육아/빈곤 /노인 /일자리 문제 등을 개별적으로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 반해 ‘어린이 식당’은 다양한 계층과 세대의 지역 주민들이 지역 문제를 함께 거론하고, 함께 해결해나가는 네트워크를 지역 내에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 : 안신숙 |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 [email protected]

월, 2016/12/1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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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짱! 요리짱! 어린이 요리 교실]

 

즐겁고! 맛있고! 건강하게!

지역 어린이들의 많은 참가 바랍니다.

 

– 수업진행 :

1) 1차 : 1월 18일(수) 10시 30분 / 김해매장 내 활동실

2) 2차 : 1월 19일(목) 10시 30분 / 장유 도담도담 활동실

– 대상 : 김해/장유지역 초등학생 16명

– 재료비 : 5,000원

– 준비물 : 앞치마, 담아갈 통

– 신청 : 선착순 문자신청(010-9340-3133)

– 문의 : 070-7432-6615

 

한살림경남 홈페이지
금, 2017/01/1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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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불을 때서 지어야 맛있습니다

 

냉동볶음밥으로 우리쌀 지키기

 

전북 김제 한우물영농조합 최정운 생산자

 

모처럼 미세먼지 없이 하늘이 맑았던 날, 한살림에 냉동볶음밥 물품을 공급하는 김제 한우물영농조합을 찾았다.
김제는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지역으로 예부터 쌀이 많이 나는 평야지대로 유명하다. 김제에 위치한 한우물영농조합은 우리쌀을 지키고,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 2009년부터 냉동볶음밥을 생산해오고 있다. 한살림에는 올해 2월부터 곤드레나물밥, 채소볶음밥, 닭고기볶음밥을 공급하고 있다.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최정운 생산자와 함께 쌀과 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흙과 사는 게 좋아요. 체질인가 봐요
200여 명이 일하는 법인의 대표이사로 바쁘게 일하면서 어떻게 농사까지 지을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최정운 생산자는 어릴 적부터 계속 논농사를 짓고 있다. 농부의 아들로써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지으며 부농이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고. 농부의 DNA는 자연스레 한우물영농조합의 성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우물영농조합이 냉동볶음밥을 시작한 계기도 ‘소비자들이 어떻게 하면 우리쌀을 더 많이 먹을까?’ 라는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가마솥 직화방식’으로 밥을 짓는 것도 당연한 선택이었다. 가마솥 직화방식은 대형 밥공장이나 급식에서 쓰는 증기 찜방식보다 생산성은 떨어졌지만 밥맛이 훨씬 뛰어났다.

우리 농업을 유지하려면 소비자가 우리 농산물을 소비해야 한다. 당연하면서도 참 어려운 말이지만, 한우물영농조합은 이를 목표로 성장해왔다. 한살림이 내세운 ‘농업살림·밥상살림·생명살림’의 가치와 같은 것이다. 한우물영농조합은 한살림의 가치에 공감하고 한살림에 냉동볶음밥을 공급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국내에 있는 냉동볶음밥 제조사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지만, 한살림과 함께 하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가공식품에 대한 공식을 완전히 깨뜨려야 했다. 한살림에 처음 물품을 공급하는 가공품 생산지들이 흔히 겪는 일이지만, 우선 시중상품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화학첨가물을 모두 빼야 했다. 첨가물을 빼니 맛이 나지 않아, 제대로 된 맛이 나올 때까지 물품개발에만 많은 시간을 들였다. 원재료도 당연히 한살림물품을 써야 했다. 한살림 냉동볶음밥을 생산하는 날에는 한살림전용 생산라인을 지정해, 한살림 냉동 볶음밥 생산라인에서는 다른 곳으로 나가는 제품을 생산할 수 없도록 했다. 부득이한 경우 한살림물품 생산을 끝낸 뒤에야 다른 제품을 생산하도록 해, 다른 원재료가 섞일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한살림과 함께 한 단계 성장하다
최정운 생산자는 한살림에 물품을 공급하며 많은 경험이 축적되고, 농업살림 가치를 실천하는 동반자가 되어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최근에는 강원도에 유기농업단지를 마련하고 우리 농업과 자연을 살려내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한다. 한살림처럼 농민이 판로걱정 없이 농사를 지속할 수 있는 체계다.
최근 한우물영농조합은 한살림 기준에 맞춰 새우볶음밥, 소불고기볶음밥, 오징어볶음밥을 개발하고 있다. 새로운 냉동볶음밥 3종이 공급되면 많은 이용과 더불어 우리농업·우리쌀 살리는 데도 많이 응원해 주면 좋겠다.

 

글ㆍ사진 박근모 편집부

 


 

냉동볶음밥 주요 생산과정

 

❶ 이물질 선별 – 원재료에서 이물질을 확인하고, 골라냅니다

 

❷ 취반 – 가마솥 직화방식으로 밥을 하고, 뜸을 들입니다.

 

❸ 재료 볶음 – 볶음밥에 넣을 부재료를 볶습니다.

 

❹ 교반 – 밥과 부재료를 섞습니다.

 

❺ 개별 급속 동결 – 짧은 시간에 쌀알과 부재료가 뭉치지 않게 개별적으로 냉각합니다.

 

❻ 소분 포장 – 냉동볶음밥을 용량에 맞춰 소분하고 포장합니다.

 

❼ 금속검출 검사·X-ray 이물질 검사

 

 

 

 

화, 2017/06/1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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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의 근로감독관을 찾아가다

올해 여러 차례 노동 사안을 취재 하면서 몇 차례 근로감독관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근로감독관을 만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요.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이나 임금을 체불당한 노동자들의 문제를 취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먼저 근로감독관부터 만나게 됐죠. 일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최전선에서 지켜주는 파수꾼이 바로 근로감독관이기 때문입니다. 패스트푸드 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작 시급 2천원을 받고 새벽까지 일하던 고등학교 때를 생각하니, 근로감독관이 뭐하는 사람인지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근로감독관은 최저임금 위반이나 임금 체불 등 노동관계법 위반에 대한 조사와 처벌 외에도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정기적으로 혹은 불시에 사업장을 방문해 노동법이 잘 지켜지는지 감시하기도 하고, 사업장의 노동 환경과 관련한 각종 인허가 업무도 처리합니다. 이 정도 얘기만 들어도 왠지 이 사람들, 많이 바쁠 것 같지 않나요? 실제로 이번에 만난 한 현직 근로감독관이 자신이 일하는 자리를 보여줬는데, 책상엔 빈틈없이 서류가 쌓여있고 컴퓨터의 전용 프로그램에는 백여 개의 담당 사건이 빽빽하게 목록화 되어 있더군요.

하지만 일이 많다는 것이 근로감독관이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겠죠? 근로감독관의 역할을 검증하는 이번 보도를 준비하면서 여섯 명의 근로감독관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면서 근로감독관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여러 문제들을 알게 됐는데요. 한 명씩 만나볼까요?

근로감독관의 배신… 김OO 근로감독관

부산합동양조에서 만드는 막걸리 ‘생탁’. 휴일 보장이나 수당 지급 등 최소한의 근로기준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했던 60세 안팎 노동자들의 이야기, 이미 지난 3월에 한 번 전해드렸죠? (관련 기사 : “개한테는 주지 않는다”) 그때 다 못했던 이야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이 사건을 담당했던 근로감독관 김모 씨에 관한 얘기입니다.

응당 받아야 할 돈을 못 받고 쉬어야 할 날에도 계속 일해왔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생탁 노동자들은 억울한 마음으로 근로감독관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처음 이 사건을 맡은 김 감독관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먼저 생탁 신용섭 사장을 만나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파업 시작 이틀 후인 작년 5월 1일, 이번에는 생탁 회사 사무실에서 사장 신모 씨, 사하경찰서 정보관 정모 씨까지 모여 대화를 나눈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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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이 대화를 들은 내부 인물의 증언으로 대화 내용이 알려졌습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증언을 바탕으로 관련자들을 취재해 이날 3인이 만나서 나눈 대화의 내용을 재구성해 봤습니다.

생탁 사장 : 노조하고 말이 안 통합니다. 파업 계속되면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근로감독관 : 독하게 마음 먹고 한달만 놔둬봐요. 저거 못 견디고 스스로 와해될 겁니다. 골수분자는 회사에서 잘라내야죠.

감독관이 대놓고 사측에 유리한 조언을 건네고 있습니다. 잠시 후에는 경찰 정보관(정보과 형사)과 함께 노조를 와해시킬 방법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근로감독관 : 어차피 조직부장하고 총무부장은 파업 푸는데 동의 안 할 거예요. 갈 때까지 가보자는 마인드입니다. 설득할 수 있는 건 분회장이에요. 분회장이 나는 못하겠다, 하고 빠져나오면 노조에 동요가 일어날 거예요.

생탁 사장 : 감독관님 말씀대로 (노조) 빠져나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저희가 보장을 해드리죠.

경찰 정보관 : 아침에 분회장하고 30분쯤 얘기했는데 뭐 그런 시각은 같습니다.

(*좀 더 자세한 정황은 뉴스 영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근로감독관의 ‘배신’입니다. 감독관이 사측과 밀담을 나눈 뒤, 실제 분회장 전모 씨가 “나는 못하겠다”며 노조를 탈퇴하고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사측에 우호적인 제2노조를 만들었죠. “빠져나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저희가 보장을 하겠다”는 사장의 말 또한 현실로 이뤄졌습니다. 먼저 파업을 풀고 복귀한 조합원들에게 회사 측이 휴일 보장이나 상여금 지급 등 ‘당근’을 제공한 것이지요. 결국 파업 중이던 조합원들 상당수가 새로 만들어진 제2노조로 옮겨 왔습니다.

▲ 생탁 노동자들의 부산시청 앞 고공농성장

▲ 생탁 노동자들의 부산시청 앞 고공농성장

제자리를 지킨 노조원들은 이제 갈 곳이 없습니다. 한 명은 스트레스성 심장사로 지난 6월 세상을 떠났고 남은 사람은 8명 뿐입니다. 생탁 노동자 송복남 씨는 결국 부산시청 앞 10여미터 높이의 광고탑 위에 올라갔습니다. 7월 24일로 고공농성 100일이 됩니다.

근로감독관 김모 씨는 이 사태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생탁에서의 발언이 문제가 돼서 징계를 받았던 김 감독관은 이제 부산고용노동청이 아닌 울산고용노동청에 있었습니다. 너무 멀리 계신 것 같아서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설명이 들어보고 싶어 먼 길 마다않고 찾아갔습니다.

▲ 근로감독관 김모 씨

▲ 근로감독관 김모 씨

김 감독관은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맞아주셨어요. 하지만 피하지 않고 당시에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들려주었습니다. 김 감독관은 여러 말을 했지만 핵심은 하나였죠. 사측의 마음을 얻고 속내를 떠보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겁니다.

기자님은 그걸 쉽게 이해 못 하는게 맞을 거예요. 현장에서 일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납득이 안 가는 건 맞죠. 하지만 우리들은 일을 하면 상대방 말에 일부 맞장구 치는 부분도 있어요. 그러다보면 상대방이 어느 정도 저한테 마음의 문을 열거든요.

고용노동부는 김 감독관의 해명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시간이 지나자 슬그머니 다시 징계를 철회했습니다. 결국 김 감독관은 명예를 회복했지만 생탁 노동자들은 거리에 나앉은채로 15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가 사측을 떠보기 위해 주고받은 말들은 현실로 이뤄졌고요. 그는 2009년 올해의 근로감독관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공정한 남자’… 추OO 근로감독관

근로감독관 추모 씨는 김 감독관에 이어 작년 5월부터 생탁 파업 사태를 맡았습니다. 노동자들은 추 감독관이 시간을 끌면서, 제2노조가 만들어지고 교섭권을 빼앗아 갈 시간을 벌어줬다고 말합니다. 해명을 들어보기 위해 부산고용노동청으로 찾아갔습니다.

약속도 잡지 않고 불쑥 찾아갔지만 추 감독관은 한 시간 넘게 시간을 내서 성의껏 그간 생탁 문제를 처리해온 과정을 들려줬습니다. 추 감독관은 법이 허락하는 한계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조사를 해왔다고 말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사장이 25명인데 하나하나 조사해보니 선대 아들이 이름만 올려둔 경우고 있고 나이든 사람들이 돈만 받아가는 경우도 있고… 경영에 책임 있는 사업주를 가리는 데만도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생탁을 만드는 부산합동양조 장림공장은 사장만 25명인 특이한 회사입니다. 이 중 상당수는 이름만 올려두고 돈만 받아가는 사장들인데요. 창업은 선대에서 함께 했지만 세대가 지나면서 소수가 경영을 책임지는 식으로 바뀐 것이죠. 어쨌든 추 감독관은 경영 책임이 있는 9명 사장들에 대한 소환 조사와 사업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쳐 생탁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와 임금체불 4건에 대해 사법처리를 했습니다.

▲ 부산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 추모 씨

▲ 부산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 추모 씨

결국 이 문제가 어떻게 풀려야 하는지 묻자 추 감독관은 ‘양보’를 강조합니다. 노사가 한발씩 양보해야 타협이 가능하다는 말 그대로 ‘공정한’ 답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5개월간 제2노조 설립과 교섭권 박탈 등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밀려나기만 했던 노동자 측에게 어떤 양보를 더 바랄 수 있을까요.

추 감독관은 일단 복귀를 해서 현장에서 문제를 푸는 게 답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측이 징계나 정년 규정을 악용해 사실상의 해고를 하는 것이 가능한 상황에서 무조건 회사에 복귀하는 것이 노동자 측에게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느 시점부턴가 이 ‘공정한 남자’와는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공정성을 가장한 방치는 사실상 버틸 여력이 강한 쪽을 편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모르고 있을까요. 추 감독관도 고용노동부가 뽑은 2013년 올해의 근로감독관이었습니다.

소망교회 걱정에 잠 못드는… 이OO 근로감독관

자, 이제 장소를 서울로 옮겨볼까요? 이번에는 다른 노동 현장을 보겠습니다. 지난 이명박 정부때부터 ‘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으로 묶여 유명해진 소망교회. 힘쎈 대형 교회에서 경비로 일하던 노동자들이 임금 체불 문제로 작년 12월, 처음으로 근로감독관을 찾아갔습니다. 그 중 한 명인 이상철(가명) 씨는 이 사건을 맡았던 근로감독관들에 대해 분통을 터뜨립니다.

처음 사건을 맡은 근로감독관 공모 씨는 임금체불 건에 대해 계속 시간을 끌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3월, 이제 만나볼 근로감독관 이모 씨에게 사건을 넘깁니다. 하지만 이 감독관도 마찬가지로 7월까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결국 사건을 검찰에 넘겼습니다. 규정상 25일 안에 처리하게 돼 있는 일반 민원 사건에 대해 무려 7개월이나 시간을 끈 겁니다. 이상철 씨는 검찰이 결론을 낼 때까지 또다시 긴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 기자와 만난 전 소망교회 경비노동자 이상철 씨

▲ 기자와 만난 전 소망교회 경비노동자 이상철 씨

왜 이렇게 시간을 끌었을까. 서울 강남고용노동지청으로 감독관 이씨를 만나러 갔습니다. 먼저 전화를 드렸는데 별로 반기지 않는 것 같은 눈치였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으니 일단 찾아가 봤습니다. 긴 시간 기다려 만난 이 감독관. 하지만 만나자마자 문전박대입니다. 겨우 자리를 만들어 몇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기자 : 이 사건을 이렇게 오래 끌어온 이유가 뭔가요?

근로감독관 : 그건 뭐 조사과정에서 당사자들 주장이 첨예해서 그렇죠. 주장이 첨예하고 증거가 불충분하니 조사가 당연히 길어지죠.

기자 : 그렇다해도 기간이 너무 길었는데, 이게 확실하다고 확정짓지 못한 논점들이 있었나요?

근로 감독관 : 제가 검사하고 충분히 얘기했는데 지휘와 보고를 받다보니 저하고 좀 생각이 달랐어요. 그래서 그 부분에서 자기가 좀 생각을 해보겠다고…

하지만 계속 되묻자 결국 ‘소망교회’ 얘기가 나옵니다. 이상철 씨와 담당 노무사 모두 근로감독관이 소망교회 눈치를 보느라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이 감독관은 “소망교회라는 대외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법 위반은 했지만 우리가 살다보면 실수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게 고의적이 아니고 무지해서 생긴 걸 소망교회가 나쁘다고 언론에서 내면 안되잖아요. 그런 뜻이기 때문에 검사도 그걸 공소할 때 조심스러운 거예요.”라고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위법행위는 저질렀지만 소망교회의 대외적 이미지가 다치면 안된다는 데 공감한 검찰과 고용노동부의 끈끈한 공조일까요. 이 감독관은 중간에 대화를 끊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만둬서 행복해요… 한용걸 前 근로감독관 (가명)

근로감독관들을 좀 더 이해해보고 싶었습니다. 일선 사업장을 관리 감독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고 사법경찰관으로서 수사권도 가진 근로감독관. 잘만 하면 임금체불이나 최저임금 위반 같은 고질적인 문제들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감독관들이 게으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근로감독관들은 대체로 상당한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전직 근로감독관을 만나 허심탄회한 얘기를 들어보고자 했습니다. 수소문한 끝에 지금은 공인노무사로 일하는 전직 근로감독관과 대화를 나눠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업무량이 거의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었다고 말합니다.

임금체불 신고업무가 항상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상태에서 또 감독 업무 차원에서 감독 계획들이 내려오거든요. 그런 거는 겨우겨우 시간을 쪼개서 나가요. 그러면은 제대로 된 감독도 안 이뤄져요. 임금체불 지도하는 것보다는 사업장 전체에 노동법이 제대로 관리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한데, 어찌보면 주객이 전도돼 가지고…

그는 근로감독관으로 일할 때 야근은 기본이었고 주말에도 집안에 큰 일이 없으면 무조건 일을 하러 나가곤 했다고 말합니다. 잘 하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근로감독관이지만, 그만 둔 지금이 더 낫다는 말도 덧붙였구요.

▲ 근로감독관 1인당 담당 사업체 수, 노동자 수 (2011)

▲ 근로감독관 1인당 담당 사업체 수, 노동자 수 (2011)

2011년에 고용노동부에서 조사한 자료를 보면, 근로감독관 한 명이 담당하는 사업체 수는 1,711개, 노동자 수는 15,272명에 이릅니다. 격무에 비해 처우는 열악하기 때문에 고용노동부 내에서도 피하는 자리여서 근로감독관 충원율은 정원의 84~87% 선에 불과합니다. (2014년 기준 정원 1,689명, 현원 1,485명, 충원율 87.9%)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앞서 생탁이나 소망교회 사건에서 본 것처럼 근로감독관들이 회사 측에 편향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단지 일이 많아서라는 이유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어디서부터가 문제였을까요.

자부심 잃고 떠나다… 안영식 前 근로감독관 (가명)

이해의 실마리는 안영식 전 근로감독관을 만나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안영식 씨는 근로감독관을 선발하는 과정과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 노동인권을 고민하고 공부할 수 있는 지점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노동법에 대한 기본 소양이 있어야 하는데 일반 행정법 시험치고 들어온 공무원들이 어쩌다가 배치가 되니까 노동 문제를 잘 몰라요. 자기가 알아서 공부를 해야 해요. 저는 인강 들으면서 다녔어요. 노동인권을 고민해본 적이 없는 공무원이 화내는 민원인들을 만나다보니까 반감이 생기죠. 가장 반노동적인 인사들일 걸요? 노동부 직원들이…

갈수록 사측에 기울어진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늘 바쁘니까 어쩌다가 정기감독 나가면 기껏해야 한 사업장 한 번 가는 거예요. 그럼 먼저 사측 사람들 안내 받고 얘기 듣고 오지 몇 번씩 찾아가서 노조 얘기 듣고 다른 얘기도 듣고 할 시간이 없죠. 그런 식으로 계속 하다보면 점점 사측 논리에 세뇌돼요. 그러다보면 근로자는 나쁜 놈이라고 머릿 속에 넣고 있는 사람도 많아요.

안영식 감독관은 원래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근로감독관이 되고 싶어서 자원해서 일을 시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터넷으로 노동법과 형사소송법을 공부하면서 근로감독관 일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 근로감독관이 됐을 때 자부심도 컸고, 일도 열심히 해서 인정도 받았지만 결국 한계를 느꼈습니다. 이제 그는 연구기관에서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많이들 도망가요”… 정태화 근로감독관  (가명)

▲ 근로감독관의 위반건수 적발과 처벌 건수 (2014)

▲ 근로감독관의 위반건수 적발과 처벌 건수 (2014)

이번 근로감독관 보도를 준비하면서 근로감독관이 노동관련법을 위반한 사업장을 많이 적발해도 실제 처벌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고용노동부에 공식 인터뷰를 요청해 얘기를 들어보니, 적발된 후 사업주가 대부분 위반 사항을 시정했기 때문에 처벌 횟수가 낮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멀리 지방에 내려가 만난 현직 근로감독관 정태화 씨의 설명은 달랐습니다. 처벌을 하려고 해도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아 잘 안하게 된다는 겁니다.

변명인지 모르겠지만 일이 어려워지잖아요. 일은 많은데… 처벌을 하려고 하면 증거주의이고 자백이 필요한데 증거나 자백을 얻기가 쉽지 않아요. 사업주 반발도 심하고… 그렇게 할 능력이나 의향이 있는 감독관이 지금 몇 퍼센트나 될까요?

이는 앞서 만난 안영식 전 감독관의 말과도 일치합니다. 그는 5만원짜리 과태료 처벌 하나 하려고 해도 피의자 조서, 진술 조서, 송치서, 지청장 사인 등 필요한 서류와 절차가 많기 때문에 “송치 하나 줄이는 것이 해피한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 정태화 현직 근로감독관과 만남

▲ 정태화 현직 근로감독관과 만남

늦은 밤 술 한 잔을 나누며 들었던 정태화 감독관의 얘기는 근로감독관에 대한 많은 기대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격무와 상대적으로 낮은 보상은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여기에 노동 문제의 특수성을 고민할 기회가 없었던 일반 공무원들이 마지못해 배치 받아 오는 곳이 근로감독관이라는 상황도 문제였습니다. 노동인권을 지키는 첫 번째 파수꾼인 근로감독관이 되기에는 자격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일반행정직 들어와서 이런 업무를 하게 되리라고 상상도 못하고, 힘들다 보니까 다른 부처로 많이 도망갔어요. 도망 안 가거나 견뎌보자, 이런 사람들만 남았어요. 일을 위한 일을 한다는 인식인데… 기자님은 저희가 소명의식 가지고 근로자 권익 보호를 위해 일을 해야하지 않냐고 말하십니다만, 부끄럽게도 그런 소명의식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일 겁니다.

( *뉴스 영상에서 근로감독관들의 좀 더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습니다. )

목, 2015/07/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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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_초절임용마늘_메인슬라이드

 

 

내년에도 마늘농사 지을 수  있으려나 – 연이은 비와 안개 때문에 한숨 깊은 전남 해남 참솔공동체 정재열·남순옥 생산자

 

552호_2면

“봄 안개는 죽안개”라고 한다. 가을 안개를 ”쌀안개”나 “천 석을 올리는 안개”라 부르는 것에 비해 너무 박한가 싶다가도 봄 안개가 얼마나 농사를 ‘죽 쑤게’ 하는지 들으면 마땅하다 싶다. 벼가 여무는 가을날의 안개는 따스한 온도를 유지하게 해 풍년이 들게 돕지만, 봄 안개는 볕이 식물에게 가는 길을 막고 숨구멍을 틀어막아 생장을 방해하고 병해를 입히고 그 습한 기운으로 병을 키운다.

마늘은 특히나 거의 다 키웠을 때쯤인 생장후기에 습한 기후에 노출되면 갈색 잎마름병에 걸리기 십상이라는데 전남 해남에는 지난 4월 한달 동안 열여섯 날이나 비가 내렸다. 안개 낀 날도 계속되었다. 한참 푸르고 생기로워야 할 마늘잎이 빨간 점박이로 뒤덮이면서, 전남 해남 참솔공동체의 정재열·남순옥 생산자의 마음도 빨갰다가 까맸다가 했다.

 

 

맛있는 장아찌를 담그고 싶다면 그에 맞는 마늘을 고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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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아찌로 담그면 맛난 한살림 초절임용 마늘

 

“아따, 이파리가 녹는데 밑이 제대로 들겄오?” 마늘을 내려다보는 정재열 생산자의 한숨이 깊다. 마늘을 심은 지난해 가을에는 날이 너무 따스해 마늘이 웃자란 데다 겨울철 냉해를 입어 가뜩이나 약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 봄에 안개까지 낮게 깔렸다. 지난해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해남뿐 아니라 전북 부안과 경북 영천, 제주도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올해 한살림 전지역에서 생산되는 난지형 마늘은 계획했던 것에 비해 생산량이 60.5%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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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작긴 하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실하게 속을 채운 마늘

 

더구나 정재열 생산자가 농사짓고 있는 해남 황산면은 지난 1996년 바다를 막는 간척지 사업이 벌어진 이후 농사가 어려워졌다. 군데군데 호수가 생겨 안개가 심해지고 이전보다 병충해가 많아졌다. ‘고랭지배추와 파와 마늘이 잘 자란다’는 명성도 과거의 이야기가 되어 그곳 농부들은 고민이 많다. 게다가 올 봄엔 비가 끊이지 않았다.

익은 마늘을 땅에서 뽑는 일은 일꾼들이 꺼려할 만큼 힘든 일인데, 올해는 마늘이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데다가 통이 크게 여물지 않아 그리 힘들이지 않고뽑혔다. 그렇다고 관행농사를 짓는 이들이 하는 것처럼 화학 살균제로 어떻게 해 볼 생각은 단 한번도 안했다.

 

한 번 담가 두고 두고 먹는 ‘알싸달곰’한 장아찌

난지형마늘은 흔히 ‘육쪽마늘’이라고도 부르는 한지형마늘보다 통이 큰 편인데 올해는 눈으로 보기에 큰 차이가 없었다. 난지형마늘과 초절임용 마늘은 마늘쪽수가 일정하지 않고 줄기와 이어진 윗부분이 조금 벌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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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정재열 생산자가 심은 초절임용 마늘은 ‘대서종’이다. 초절임용 마늘은 아린 맛이 덜해 매운 것을 못 먹는 사람이 생으로 먹거나 양념할 때 써도 좋지만 단단하기가 덜해 오래 저장할 수 없어 초절임이나 장아찌를 담그곤 한다.

막 귀농한 친구는 마늘을 처음 심은 해에 풍년이 들어 창고에 가득 쌓인 마늘로 장아찌를 담갔다고 했다. 드디어 3개월을 기다렸다가 맛을 보았는데 그때까지 아린 맛이 안 가셔서 몇 개월을 더 보내고야 먹을 수 있었다며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니 맛있는 장아찌를 담그고 싶다면 그에 맞는 마늘을 고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흙에 짚 덮어 주고 다섯 시간 곤 친환경자재 뿌려 주고…

난지형마늘이나 한지형마늘이나 재배 과정은 비슷한데 기르는 지역과 시기에 차이가 있다. 난지형마늘은 이름 그대로 남쪽에서 기르는 마늘로, 중부 지역에서 기르는 한지형마늘보다 생장이 1~2개월 정도 앞서 9월에 심고 이듬해 5월쯤 거둔다. 심을 때부터 밑 부분을 땅에서 바르게 놓이게 해야 뿌리가 제대로 내린다. 너무 깊게 심으면 늦게 자라기 때문에 적당한 깊이로 심어야 한다. 겨울엔 얼지 말라고 비닐을 덮고 잘 살피며 발소리를 들려주고, 봄엔 비닐에 구멍을 뚫어 마늘대 오르는 길을 내 준다. 또 마늘종을 잘라 영양이 분산되는 걸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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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의 활동을 촉진시켜 땅을 건강하게 하려고 짚을 덮어 주기도 한다. 농약을 안 뿌리는 대신 수시로 풀을 뽑고 친환경 자재를 만들어 뿌려 준다. 정재열생산자는 살균 효과가 있는 돼지감자, 은행, 협죽도 등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직접 친환경제재를 만든다. 가마솥에 여러 재료를 넣어 한 다섯 시간 정도 고는데 한 번에 많은 양을 준비하기 때문에 친환경자재를 만드는 데만 몇 날 며칠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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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잎이 이렇게 빨간 점박이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이웃들은 약을 사다 뿌리면 되는 걸 왜 그러고 있냐면서 ‘아따, 좀 편하게 살아’라고들 하면서도 이제는 저희를 존중해 주세요. 서서히 친환경농사하는 분들도 생겼고요. 마을에 76살 된 어느 할머니는 우리가 농사짓는 걸 수년 지켜보더니 지난해부터 논농사는 우리를 따라 우렁이를 풀어 친환경으로 짓기 시작했어요.”

30년 넘게 고집스레 친환경농사를 지은 그에게도 올해 마늘농사는 힘들었다. 속상할 게 뻔한데 그는 불긋불긋한 마늘밭에 들어서는 이에게 “마늘잎에 단풍이 들었다”고 농담처럼 말을 건넨다. 잘 자랐다면 막 봄에 접어든 때, 그 야들야들한 연두색 잎을 몇 개 따 초장과 양념에 버무려 먹는 소소한 재미를 누릴 수도 있었겠지. “일희일비하면 농사 못 지어요. 털어내야지. 자연환경이 그런 걸 사람이 어쩌겠어요?”라고 말하는 그지만, 그런 그도 내년에 또 마늘농사를 계속 지을지 아직 결심이 서지 않는다.

김세진 · 사진 김현준 편집부

 

새콤달콤 마늘장아찌 담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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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통마늘 3kg, 식초 10컵(2L), 간장 2컵, 소금 10큰술(100g), 설탕 1컵

방법 

1. 마늘의 뿌리 부분을 잘라 내고 줄기를 1cm 정도만 남기고 자른다. 겉껍질을 벗기고 속껍질 한두 겹 정도만 남겨서 물에 씻어 건져 놓는다.

2. 큰 볼에 물, 식초, 소금을 잘 섞어 식촛물을 만든다.

3. 저장 용기에 마늘을 담고 식촛물을 부은 뒤 윗부분을 무거운 것으로 눌러 준다.

4. 뚜껑을 덮고 서늘한 곳에서 1주일 이상 두고 매운 맛을 빼고 신맛을 입힌다.

5. 식촛물을 저장 용기에 따라낸 후 간장과 설탕을 넣고 우르르 한 번 끓인다.

6. 마늘이 담긴 저장 용기에 끓여서 식힌 간장물을 부어 저장해 두고 먹는다. 

고은정 한살림연합식생활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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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6/05/3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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