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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희망의 꽃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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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희망의 꽃눈

익명 (미확인) | 월, 2016/02/29- 17:09

 

희망의 꽃눈

 

 

글. 김균
경제학자. 현재 고려대 교수이자 참여연대 공동대표. 노년이 지척인데 아직도, 고쳐야 할 것들이 수두룩한 미완의 삶에 끌려 다니고 있음. 그러나 이제는 인생사에서 우연의 작용을 인정함. 산 밑에 살고 있음.

 

 

참여사회 2016년 3월호(통권 232호)

 

지난 주말 북한산 둘레길를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길가 집 담장너머로 솜털 가득한 꽃눈들을 잔뜩 보듬고 있는 백목련 나무가 보였다. 어느새 봄이 가까이 온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바람에도 봄 냄새가 묻어있고 마른 나뭇잎사귀들이 바삭거리는 소리도 더 이상 차가운 겨울 소리가 아니다. 아마 남도에는 벌써 매화가 피었으리라. 긴 겨울이 지나면 언 땅이 녹고 새순 나고 새가 우는 봄이 온다는 자연의 섭리가 매번 무섭도록 신기했는데, 이번에도 봄은 어김없이 오고 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언제나 봄이 오면 뭔가 좋은 일들이 있을 것 같고 어디선가 좋은 소식도 날라 올 듯했다. 마음도 덩달아 약간 부풀러 올랐고 세상도 더 부드러운 눈으로 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올 봄은 좀 다르다. 오는 봄에는 ‘더불어숲’ 신영복 선생도 계시지 않고, 지식을 공깃돌처럼 가지고 놀던 유쾌한 유럽사람 움베르토 에코도 며칠 전 지구를 떠났다. 이미 나의 책읽기 습관이 많이 퇴조했지만 그래도 이들이 더 이상 새 글을 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하다. 내 개인 일상도 이런저런 연유로 앞으로는 세상사는 재미가 적잖이 줄어들 게 분명하니, 봄이 온다는데 영 봄 기분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세상이라도 제대로 돌아가느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세상 꼴은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심히 걱정스럽다. 북한, 개성공단, 박근혜 대통령, 총선, 세월호, 청년실업, 노인빈곤, 이른바 노동개혁, 빈부격차, 경기침체, 장기 인구감소 전망 등등을 생각하면 암담하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어디부터 시작해서 고쳐야할 지 알 수도 없다. 오히려 세상은 급속하게 수십 년 전으로 퇴행해 버렸다. 그저 꿈같은 얘기겠지만, 어디 숨은 현자나 초인이 있어 우리 사회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버린다면 좋겠다. 그러니 올 봄에는 기대할 좋은 소식들도 별로 없다. 모든 게 사방으로 꽉꽉 막혀 있어 어떤 희망적 요소나 좋은 기운이 감지되지 않는다. 


이런 말장난이 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모든 악덕들이 인간 세상에 확 펴졌는데, 그때 빠져나오지 못하고 상자에 그대로 갇힌 게 희망이라는 악덕이라서 아직 인간 세상에는 희망이 남아있다고 한다. 근거 없는 희망은 희망고문이라는 말처럼 악덕이겠지만 그래도 희망이라는 보편가치가 없다면 인간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고 무의미할 것이다. 


사실 내게, 또 우리에게 좋은 일이 하나도 없는 건 아니다. 내가 품고 있는 희망이 하나 있다. 이달 하순께부터 쌍용자동차 해직자 20여명이 복직하여 출근을 시작했다고 한다. 2009년 대량해고 사태 이후 28명이 세상을 떴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세월의 마무리가 일단 시작된 것이다. 전원복직 계획이 아직 확정적이지도 않고 많은 부분이 여전히 불투명하며 복직규모도 미흡하지만 쌍차 노동자들이 오래 동안 겪었던 고통과 눈물을 생각하면 7년만의 첫 출근 뉴스는 분명 기분 좋은 봄소식이다. 부디 올해와 내년 사이에 빠르게 전원 복직되기를 희망한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첫 출근 뉴스는 희망의 꽃눈이다. 또 다른 무수한 털복숭이 꽃눈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피어나 만개한 백목련 꽃나무, 살만한 세상을 만나는 봄의 희망을 가져본다. 


참여연대가 그 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정기총회가 봄에 열리는 것도 봄이 희망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3월초 참여연대 정기총회 역시 우리 사회의 희망의 꽃눈을 하나하나 정성껏 가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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