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오피니언] 가치 있는 노동이 없다면 좋은 삶도 없다

지역

[오피니언] 가치 있는 노동이 없다면 좋은 삶도 없다

익명 (미확인) | 월, 2016/02/29- 14:10

“노동이 없다면 좋은 삶도 없다.”
국내에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이라는 이름의 저서가 번역‧출간돼 알려진 독일의 프리랜서 작가 토마스 바셰크는 이와 같은 말로 “좋은 삶, 진정한 삶은 노동 바깥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기존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는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하지만 노동은 이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복잡한 면을 지니고 있다”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짧은 노동이 아니라 여가에 집착하지 않는 좋은 노동”이라고 했다.

노르웨이 노동 철학자 라르스 스벤젠도 책 <노동이란 무엇인가>에서 칸트의 통찰을 인용해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훨씬 큰 만족을 얻을 것”이라며 “노동은 사람에게 힘이 솟구치게 한다”고 했다. 이런 전제 하에서 스벤젠은 노동의 미래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노동시간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노동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노동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좋은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런 관점은 노동시간을 줄여 나가서 노동자를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좋은 삶’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최근의 보편적 인식과는 방향이 다르다. 자본주의를 붕괴시킴으로써 노동의 소외를 극복하려 했던 마르크스의 주장과도 배치된다.

노동을 삶과 분리시켜 노동의 바깥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노동이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고 노동 자체를 ‘좋은 노동’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인데, 이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두 가지 질문이 남는다.

첫 번째 질문은 ‘좋은 노동이란 과연 무엇인가’이며, 두 번째 질문은 ‘좋은 노동은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답하려 할 때 어려운 점은, 좋은 노동을 명확히 정의하거나 도식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똑같은 직장에서 동일한 직무를 담당하더라도 자신의 일에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좋은 노동이란 일자리 자체의 특성뿐 아니라 노동을 대하는 노동자들의 태도와 능력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돈을 많이 받는 직장에서 일하면 만족감이 올라갈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한 소설 <달과 6펜스>에는 남들이 부러워하고 안정적 급여를 받는 증권회사 간부였던 주인공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파리 외곽의 허름한 호텔로 무작정 가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가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물에 빠진 사람은 헤엄을 칠 수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물론 노동을 자아실현을 위한 활동으로만 볼 수는 없다. 당연히 노동은 생계수단으로서 의미를 갖고 있다. 좋은 노동이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고용안정을 요구한다. 하지만 적정한 급여와 해고 위협에 시달리지 않는 안정성은 좋은 노동의 기본적 조건일 뿐이다.

좋은 노동이 되기 위해서는 일하는 사람이 노동에서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 신념을 표현하고 스스로 자신의 노동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노동자가 고립된 주체로가 아니라 사회적관계속에 노동을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좋은 노동은 자신의 노동 결과물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요약하면 좋은 노동이란 노동을 통해 안정된 생계를 보장받고 자아를 실현할 기회를 가지면서 동시에 사회적 기여를 통해 주변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노동 3권은 좋은 노동의 필수 조건

이제 두 번째 질문인 ‘좋은 노동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좋은 노동을 위해서는 먼저 노동자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을 대하는 태도를 적극적으로 바꾸고,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개인의 마음가짐과 노력만으로 나쁜 노동을 좋은 노동으로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알베르토 카뮈의 <시지포스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매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노동자들이 아무리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려 해도 거기서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결국 무의미하고 지루한 노동을 보다 인간적인 노동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컨베이어 작업속도, 직무순환구조, 교육훈련기회 등 노동조건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사용자 통제 하의, 고도로 분업화된 생산 시스템 하에서 개별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노동조건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좋은 노동을 만들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힘이 필요하다. 노동3권이 좋은 노동을 위한 필수 조건인 이유다. 대한민국 헌법 상 노동3권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노동조합을 조직해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파업 등 단체행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된 권리다.

하지만 법원과 정부는 노동3권 행사의 목적인 노동조건을 임금, 복리후생 등 ‘경제적 이익’으로 제한하고 있다. 철도노동자들의 민영화반대,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영리의료화 반대, 언론노동자들의 공정보도 투쟁 등은 모두 좋은 노동을 목적으로 한 노동3권의 행사라 할 수 있는데도 이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입장에서 자신의 노동이 이윤추구나 특정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전체 공동체의 공공선에 기여함으로써 가치 있는 노동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난해 홈플러스가 직원들에게 고객 1인당 100원씩 수수료를 주는 조건으로 경품추첨행사에 가능한 많은 고객들이 응모하도록 독려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때 조합에서 ‘개인정보유출’을 이유로 사측의 지시를 거부한 것도 좋은 노동을 위한 모범적 투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 대한민국의 법은 공동선을 위한 노동3권은 인정하지 않고 ‘밥그릇 투쟁’만을 허용한다. 노동3권을 생존의 권리로 제한하면서 사실상 노동자들을 임금노예로 가두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 노동자의 합법적인 투쟁은 ‘밥그릇 투쟁’이라고 욕하는 아이러니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나쁜 노동을 만들어 낼 때 노동자들은 이를 좋은 노동으로 바꿔낼 의무와 권리가 있다. 이를 위해서 노동 3권은 ‘밥그릇 지키는 권리’를 넘어 ‘좋은 노동을 위한 권리’로 재정립돼야 한다.

노동 3권이 ‘시민권’이어야 하는 이유

고대 그리스시대 아리스토텔레스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덕을 획득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할 시민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시민들이 정치적 활동을 위해 여가를 누리는 사이 일은 노예들에게 맡겨졌다.

근대 시민민주주의에서도 시민은 부르주아 계급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노동자들은 ‘시민’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프랑스 사회사상가 루소의 통찰을 빌리자면 노동자들은 투표하는 날 하루만 시민으로 살 뿐이고 투표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되돌아간다. 형식상 신분질서에서 풀려났지만 여전히 공공토론에서 배제돼 있으면서 실질적인 시민권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자신에게도 책임은 있다. 스스로 노동을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공동체의 이익에 무관심하게 살아 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1906~1975)는 “현대 대중사회는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성을 높이는 데만 모든 관심을 집중한다”고 지적했다. 도구적 이성의 위험성을 강조한 마르쿠제(1898~1979)역시 노동자들이 오로지 자동차, 요리도구 상품 속에서만 자신의 영혼을 발견하면서 ‘일차원적 존재’로 퇴락했다고 주장했다.

노동이 기술적 표준화, 자동화에 따라 점점 획일화되고 노동자들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데만 빠져 있으면서 공동체의 윤리나 도덕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노동을 위해서 앞에서 말한 정당한 대가, 자아실현의 기회도 주어져야 하지만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공익활동이 보장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점에서 좋은 노동에 대한 요구는 시민적 권리이기도 하다.

프랑스 현대철학자 들뢰즈는 “자본주의가 이익을 위한 데모는 견디어 낼 수 있지만 욕망을 위한 데모는 전혀 견디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때의 욕망은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결핍’의 산물이 아니라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바깥세계로 끊임없이 발산하게 만드는 ‘생산’의 동력이다.

인간은 본래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더 많은 ‘가치 있는 노동’을 욕망한다. 가치 있는 노동은 생산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타인과 관계 맺고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 그럴 때 노동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삶 그 자체가 된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 3권’인 동시에 ‘시민권’인 권리다. 이 권리가 보장될 때 노동자들은 비로소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주에서 풀려나 ‘시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가치 있는 노동’, ‘좋은 삶’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강진구 | 경향신문 논설위원(공인노무사)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금융행정혁신위원회 권고 이행하라대다수 국민을 위한 금융개혁이 금융위원회에 의해 발목이 잡혔다.최종구 ...
수, 2017/12/27- 15:27
12
0
한국노총-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 간담회   한국노총과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는 11월 1일(...
수, 2017/11/01- 16:32
12
0
대한민국교육청공무원노동조합연맹 ․ 전국이마트노동조합 한국노총 가입 2017년 11월 13(월) 각각 오...
월, 2017/11/13- 15:15
12
0




                                [구청이 들썩들썩]

총선 이후, 지역정치를 말하다

                                                - 수다회


선거가 끝나고 난 뒤, 허전하고 답답한 마음 나누고자 마련했습니다. 선거를 직간접적으로 접하며 몸으로 마음으로 부딪혔던 생각들을 공유하고 정리 해보려 합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이며 어떤 전환을 모색해야 할지 거창한 얘기 빼고, 가감없는 당원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수다 떨러 오세요. 


● 일정


2016년 4월 26일(화)

7:30

중앙당 회의실


● 술과 안주를 조금씩 가져와 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월, 2016/04/18- 13:58
11
0

[주간소식] 177:



노동당서울시당 주간 소식



177(2016. 4. 20)





[위원장칼럼] 위원장 1년을 돌아보며

평가를 넘어선 전망을 위해_첫번째



때때로 무성한 평가가 의미 없을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예측 가능한 실패에 대한 평가가 그렇고, 더구나 그 실패가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따라 불가피해 보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미래의 전망을 담을 수 없는 평가가 가장 무의미해 보입니다. 잘못한 것이 10가지라면 그 중에 절반 정도는 ‘그래서 이렇게 하자'는 전망이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 이것 자체가 잘 보이지 않을 경우 평가는 때때로 독약이 되기도 합니다.



서울시당 위원장으로서 저는 평가 자체보다는 어떤 전망을 탑재하는 것이 필요한가라는 부분에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량, 그리고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살펴보면서도 길게는 2008년부터 짧게는 2013년부터 노동당으로서 견지해왔던 정치적 입장과 비전들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민을 담은 이야기를 먼저 서울시당 당원들에게 전합니다. 이 내용은 5월 운영위원회에서 담길 공식적인 평가의 내용이라기 보다는(그렇다고 아예 다른 것도 아니지만) 서울시당 위원장으로서 가지고 있는 고민이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가감없는 의견과 토론을 부탁드립니다.



평가의 부분에 있어서 가장 주목했던 것은, 서울지역의 정당 지지와 관련한 부분이었습니다. 알다시피, 지난 지방선거에서부터 이번 총선까지 서울지역의 정당 지지는 전체 노동당의 평균적인 지지를 깍아 먹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그만큼 서울시당의 사업과 활동이 일반 서울지역 대중들에게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없었고, 매력조차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좀 더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면 노동당은 비판적 지지대상인 ‘더불어민주당', 공동의 지지대상인 ‘정의당', 그리고 아예 새로운 형식과 열정을 보여준 ‘녹색당'과 견주어 ‘대체 불가능한 어떤 것'이 결정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실제로 대안적인 노동사회의 비전을 보여준 정책 공약은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그것 자체 만으로는 위의 정당들과 구분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주장하는 내용이 엇비슷하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노동당을 찍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하고 간단하게 답을 전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특히 서울지역과 같이 별도의 지역정서보다는 중앙정치의 축소판 같은 곳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실제로 노동당의 운동은 매우 원칙적이고 급진적이며 실천 중심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그 모습들이 구체적인 지지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 ‘조직적 대중을 타겟으로 삼지도 대중을 조직해서 지지자로 만들고자 하지도' 못한 것입니다. 노동당이 진보신당에서부터 가지고 있던 참신함이라는 형식은 녹색당의 것이 되었습니다. 모든 진보언론에서 선거연대=선이라는 공식을 강요하면서 정의당이 보인 보수적인 정치실용주의에 대한 견제도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지지가 아니라, 배제투표의 가능성이 있었던 일부 조차 과거 통합진보당 세력의 정치세력화로 기대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번 총선의 실패가 담고 있는 함의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정치세력과 ‘대체가능한' 정치세력으로서 노동당이 지금 처한 곤란함이라면 그동안 우리가 관행적으로 해왔던 각종 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는 필수적입니다. 또한 총선 시기에 우리가 얼마나 유연하게 확장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는가도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어떻게 당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가라는 부분의 실패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노동당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활동당원 -시간에 융통성이 있고, 필요하다면 당직의 일부를 맡을 수도 있는-이 매우 적습니다. 또한 2011, 2015년 두 번의 집단 탈당으로 인해 당직의 경험을 가지고 있고 실무적으로 당의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이들도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은 다른 생업이 있는 일상의 당원들이 좀 더 수월하게 활동을 할 수 있는 시험적인 기획들이 있었어야 했습니다. 의도치 않게 당원을 소외시키는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힘들 겁니다.



당의 확장성은 당원 개개인의 확장성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외에도 좀 더 구체적으로 <총선기본계획>에 따른 평가나 혹은 구체적인 득표 현황을 분석한 평가도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선 이 이야기를 앞세워 평가하고 싶었습니다. “대체 가능한 정당"으로 비춰졌다는 것과 “당원을 소외시키는 선거"를 했다는 것 말입니다. 다음 주엔 이 두 가지 부분에 대해 ‘그러면 어떻게 할 건데?’라는 고민을 담아보겠습니다. 제가 고민을 하면서 놓치고 있거나 혹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가감 없이 이야기해 주십시오(이 칼럼이 실린 이메일의 ‘답장' 버튼만 누르면 간단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논평] 임시시설인 창동음악기지가 홍대의 대안이라고?


한 연못이 있다. 그런데 갑자가 황소개구리가 나타나서, 노래하는 개구리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한 사람이 인공 연못을 만들어서 노래하는 개구리를 이주시킨다. 그리고 맘껏 노래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인공 연못은 사실 임시시설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황소개구리는 더욱 '안전'하게 개구리들을 잡아먹게 되었다. 이 것이 대안일 수 있을까.


몇년전부터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권역별 개발 사업 중, 창동 차량기지 이전과 KTX연장에 따른 복합환승시설, 대규모 민자유치를 통한 아레나 건립 사업 등을 골자로 추진 중인 <창동 상계 신경제중심지 조성사업>이 있다. 이 중 철도공사가 이후 환승시설을 지을 부지에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임시로 대중음악 지원시설로 사용하는 것이 "창동플랫폼 61"사업이다. 이 사업의 개관이 가까워지자 주요 언론에서 조명을 받고 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사례다. 실제로 대중음악에 대해 공공행정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공간과 재원을 지원한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공간이 마치 문화백화 현상으로 골치를 썩고 있는 홍대 인디씬을 대체하거나 혹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은 적절하지 않다.


무엇보다 여타 예술계도 마찬가지지만 대중음악계, 특히 인디씬은 단순히 작업실-공연장으로 연결되는 '음악 생산-공연' 과정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오히려 생태계라 할 정도로 특색있는 가게들로 형성된 유입인구들이 있고, 여기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음악인들의 네트워크가 공연장을 중심으로든 레이블을 중심으로든 만들어진다. 공연장은 레파토리에 등장하는 음악인들의 특징에 따라 개성을 지니게 되고 그것이 다시 거리로, 지역으로 영향을 미친다


노동당서울시당은 창동플랫폼61 사업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자칫 이 사업으로 잘못 이해될 수 있는 정책의 오판을 우려해 몇가지 한계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홍대에서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과 문화백화 현상을 직접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실제로 현재 홍대의 모습을 만든데는 중앙정부나 서울시 정부의 책임도 있다. 각종 정책 지원의 결과가 '어디로' 귀결되는지 살펴보지 않았다. 정작 건물주의 횡포로부터, 각종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의 확산으로부터 맞설 수 있는 힘을 음악인에게 주지 않고 오히려 건물주들의 재테크를 부추겼고, 문화백화 현상을 부추기는 관광정책을 밀어붙였다. 이런데, 이젠 홍대를 탈출해 창동으로 오라는 말이 쉽게 나올 수 있는가. 오히려 홍대인디씬에 대한 고민을 서울시가 회피할 수 있는 정책적 변명거리가 될까 우려스럽다


둘째, 해당 창동플랫폼61은 임시시설이다. 알다시피 공역역 인근 늘장도 철도공사의 부지이지만 최근 개발계획에 밀려 쫒겨날 처지에 놓였다. 잠시 놀고 있는 땅의 가치를 유지하는데 사회적 경제나 예술인들을 이용하는 것은 낯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계속 반복하는 것은 염치가 없다. , 창동플랫폼61은 특정 기간 동안 서울시가 상계동과 창동에 대규모 민자유치를 하는데 홍보가 될 앵커사업이다. 적어도 이 부분은 정직하게 이야기 되어야 한다. 실제로 서울시는 오는 20년까지 2만석 규모의 K-POP 전용 공연장인 '서울아레나'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내외 주요 공연기획사의 투자를 모집하고 있다. 전체 사업의 진행 과정에서 보면, 창동플랫폼61은 대규모 민자개발사업을 위한 '문화적 워싱'에 가까워 보인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과도한 환상이 아니라 명확하게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아닐까


세째, 창동플랫폼61이 엉뚱하게 생계선을 오가면서도 자신의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인디 음악인들에게 열패감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실제로 창동플랫폼을 운영하는 거버넌스에는 얼마나 다양한 음악씬의 당사자가 들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홍대인디씬을 지키고 있는 주요한 주체들은 빠진 것이 확실해 보인다. 중앙정부나 서울시의 정책실패로 안그래도 홍대인디씬을 지키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창동플랫폼61이 이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된다. 그런면에서 창동플랫폼61은 말 그대로 플랫폼이어야지 씬 자체를 대체하거나 구조조정을 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노동당서울시당 입장에서는 창동 컨테이너 61개를 설치하고 임시적으로 사용하는 앵커시설의 비용과 건물주의 약탈적인 임대료 인상에 의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는 홍대-합정-상수 지역의 슬픈 공연장과 가게들이 비교할 수 밖에 없다. 지금도 동네 공연장과 가게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홍대 인디씬의 예술인들에게 '창동플랫폼61'은 지나치게 화려한 인공연못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긴다. 창동플랫폼61로 대중음악 특히 인디씬에 대한 대책은 마련되었다고 자화자찬하는 일도  우려된다("홍대여 잘 있거나~ 우리는 창동으로 간다" 같은). 이런 입장이 과도한 것이고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






[기회사업] 지역정치 빨간펜 구청이 들썩들썩
총선 이후, 지역정치를 말하다
-
수다회

선거가 끝나고 난 뒤, 허전하고 답답한 마음 나누고자 마련했습니다. 선거를 직간접적으로 접하며 몸으로 마음으로 부딪혔던 생각들을 공유하고 정리 해보려 합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이며 어떤 전환을 모색해야 할지 거창한 얘기 빼고, 가감없는 당원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수다 떨러 오세요.

일정

2016426()
7:30
중앙당 회의실

수다를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술과 음식을 조금씩 가지고 오세요~ ^^*








[모집] 일본산수산물수입재개반대 1인 시위

총선 이후 첫번째 일인시위는 종로당협의 이지은 당원님께서 동참해 주셨습니다. 종로를 누비고 다니느라 힘드셨을 텐데 잊지 않고 일인시위에 나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주 수요일은 어김없이! 일인시위가 예정되어 있으니 언제든 참가 신청 해 주세요.

신청서http://goo.gl/forms/nLcSjHu2AB

외교부 청사에서 매주 수요일, 12시부터 1시까지 진행
시간이 없어서 10분만 참여하더라도 환영합니다~
부담없이 참여해 주세요.






[연대] 한동안 뜸 했습니다

선거란 핑계로 한동안 뜸 했습니다.

다시 동지들에게 찾아가겠습니다.

첫번째 일정입니다.

일정

421일 목요일

1. 1730분 노동당서울시당 유성분향소 분향

- 유성 한광호 열사 서울시청분향소

2. 18시 투쟁사업장과 함께하는 유성분향소

- 유성 한광호 열사 서울시청분향소

3. 19시 티브로드 선별고용반대 투쟁

- 명동티브로드 본사앞

4. 1930분 세종호텔노조 노조탄압분쇄 투쟁

- 세종호텔 앞






[
연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임재춘의 ‘우리에겐 내일은 있다’ 출판기념회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김경봉님의 글입니다.

<고향인 공주에 도착하여 마트에 들렀더니 동네 어르신이 계셨다. ,,,인사 후 돌아서는 순간에 무엇이라도 사드리려고 했지만 지갑에 돈이 없어 그냥 돌아섰다. 마음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잖아‘하고 생각하였다. 눈물이 났다.> 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이 장면의 다른 지점에서 멈췄다. <무엇이라도 사드리려고 했지만> 인간미는 이렇게 디테일에서 차이가 난달까
그러다가 문득 205페이지에서 얼굴이 빨개졌다
<
현재 농성장에는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다. 그래서 너무 외롭고 답답하다. 농성자들이 무엇을 잘못했나, 반성도 한다. 연대한 사람들에게 나쁜 말과 행동을 했는지 돌이켜보곤 한다. 한때 끈끈한 인연들은 어디 갔을까?> 20056월 어쩌다 한번씩 들렀던 기억이 난다. 뭐가 바빴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지금은 드로잉 데이를 하고 있어서 진짜 다행이다 라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 독후감 중-

2014420일 수요일 저녁 7 
장소 :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 오세요.








[간추린일정]

날짜

일정

4/20()

우리에겐 내일은 있다-출판기념회 19:00 @마포구 카톨릭청년회관

4/21()

한동안 뜸 했습니다 17:30 @서울시청 유성분향소

4/22()


4/23()


4/24()


4/25()


4/26()

구청이 들썩들썩 수다회 19:30 @중앙당 회의실

4/27()




저작자 표시 비영리
수, 2016/04/20- 18:14
1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