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 피해자들은 산재인정을 받기 까지 아주 오랜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인 고 황유미씨 유족들은 산재신청을 한지 7년3개월 만에 최종 산재인정을 받았다. 그 중 3년2개월이 항소심 재판 기간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의 항소에 따른 것이다. 공단은 다른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 '뇌종양' 사건에서도 무책임한 항소를 거듭해왔다.
고 이은주씨 유족들은 산재신청을 한 지 9개월 만에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그로부터 다시 3년여 만에 근로복지공단이 아닌 법원의 산재인정 판결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다시 근로복지공단의 항소로 유족들은 더 오랜 시간을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이제 근로복지공단에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근로복지공단의 존재 이유를 근로복지공단만 모르는 것은 아니냐고.
지난 14일 참여연대가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 현안과 관련해 ‘사회 위에 군림하는 삼성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자(http://www.peoplepower21.org/Economy/1360585 참조), 일부 언론이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가 피해자 보상을 소홀히 하고 공익법인 설립에 집착한다고 보도했다. <한국경제신문>은 더 나아가 시민단체가 공익법인 설립에 집착하는 이유를 시민단체의 ‘이권’ 때문으로 설명하는 기사를 실었다. <헤럴드경제>는 시민단체가 이 문제에 ‘몽니’를 부려 삼성의 외국자본 투자 유치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걱정하였다. 이처럼 다수 언론이 문제의 핵심을 왜곡하고, 이 문제에서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반올림에 대한 악의적 흠집내기에 나서고 있다. 보도자료를 낸 당사자에 대한 기초 취재도 없이 쓴 이런 기사는 사회적 흉기가 되어버린 언론 현실을 보여준다.
참여연대가 조정위 권고안 수용을 촉구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이다. 첫째, 그것이 ‘사회적 문제’인 이 문제의 ‘사회적 해결’에 부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삼성이 스스로 조정위 구성을 요청한 것은 이 문제를 가해자 기업인 삼성이 일방적으로 풀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반성이 이미 전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삼성은 자기들 입맛에 맞는 위원들로 구성된 보상위를 구성하고 보상의 범위와 수위를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참여연대는 애초 약속인 사회적 해결 방식으로 우리 앞에 주어진 대안은 현재로서는 조정위의 권고안이 유일하다고 판단했다. 둘째, 조정위 권고안이 미흡하나마 가해자의 진솔한 사과, 차별과 배제 없는 실질적 보상, 재발방지대책 마련이라는 직업병 문제의 기초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 세 가지 원칙 중 어느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의 궁박한 처지를 이용해 가해기업인 삼성 스스로 정한 기준에 따라 일사천리 보상으로 이 문제를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만 읽힐 뿐이다.
반올림을 비롯해 그동안 헌신적인 활동을 펼쳐 온 단체들이 있음에도 참여연대가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한 것은 시민단체 본연의 역할인 연대 차원이다. 조정위 권고안이 나온 직후 참여연대는 이 문제에 대해 개입할 자격과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조정위가 권고한 공익법인 설립과 운영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하지 않겠다는 내부 의사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도 고쳐 쓰지 마라’는 속담을 인용해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를 비판했다. 이 속담이 누군가를 겨냥한다면 그 대상은 시민단체가 아니라 오히려 언론에 가깝다. 언론은 삼성의 광고라는 일상적인 ‘오얏나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이 속담을 자사에 적용해 삼성 광고를 일절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세계일류기업’ 삼성전자의 작업장에서 일한 죄로 불치의 병을 얻고 죽어간 수많은 피해자들의 원한과, 차마 살아있다 말할 수 없는 꽃다운 청춘들의 망가진 인생과 그 가족들의 비통함이 서려 있는 문제다. 사회는 그들의 원한을 풀고 비통을 덜어줄 의무가 있다. 그리고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사회적 약속을 만들 의무도 있다. 사회적 공기를 자처하는 한, 언론도 그럴 의무가 있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가 2008년 첫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산재신청을 낸 이후 12번째 산재신청을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다고 26일 밝혔다. 김씨를 비롯해 삼성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이나 뇌종양, 악성림프종 등으로 사망하거나 투병 중인 5명에 대한 추가 신청이다.
지금까지 반올림을 통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한 삼성반도체·디스플레이 출신 환자는 60명이다. 그 중 6명만 산재 승인을 받았다.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 직업병 관련 추가 제보가 들어오고 있으며 그 중 산재 신청을 원하는 분들과 유가족의 바램에 따라 집단신청을 낸 것”이라고 했다.
울산지역노동자건강권대책위원회는 최근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가 산재노동자 요양신청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직무를 유기했다며 공단 본부에 감사를 청구했다. 대책위는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가 산재 신청한 노동자의 작업장(현대차 울산공장)을 현장조사하면서 현대차 안전환경팀이 촬영한 작업동영상을 받아 산재 결정과정에 반영하거나 작업장(현대중공업) 출입사실을 안전모에 부착된 센서로도 간단히 파악할 수 있는데도 동료와 업주의 거짓 진술만을 반영해 산재 불승인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해자보다 20cm 큰 동료 촬영해 작업시 목 각도 왜곡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13년 5개월을 사내하청으로 일해온 이승룡 씨는 한 작업에만 고정근무했다. 싼타페와 맥스크루즈의 트렁크 리프트를 장착하면서 늘 고개를 45도 정도 뒤로 젖힌 채 일했다. 지난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 씨는 이번엔 반대로 차 안에 들어가 고개를 숙이고 비트는 작업을 하다가 통증이 심해져 병원에 갔다. 이 씨는 경추부(목) 4-5번과 5-6번 추간판 탈출증 진단을 받고 업무상 재해를 신청했지만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는 지난 5월 28일 불승인했다.
이 씨의 경우 근골격계 질환 현장조사 때 근로복지공단 담당자가 해야 할 작업 동영상 촬영을 현대차 안전환경팀에 의뢰해 그 영상으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자료로 제출했다. 이 씨와 대책위는 “공단이 스스로 정한 업무지침을 위반한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키가 164cm인데 동영상으로 촬영된 동료는 183cm로 20cm 가량 더 크다. 대책위는 “동영상에 나오는 노동자는 키가 커 이씨처럼 고개를 뒤로 젖히는 각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도 공단은 해당 동영상을 질병판정위원회에 그대로 제출했다”고 지적했다.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현미향 사무국장은 “이 씨가 다친 곳이 목이라 작은 키 차이에도 목을 뒤로 젖히는 각도가 상당히 차이 나기 때문에 산재인정에 결정적 요인”이라고 했다. 실제 동영상에 나온 큰 키의 작업자는 자기 눈높이 근처에서 리프트를 장착하지만, 다친 이씨는 “저는 키가 작아 팔을 완전히 뻗은 채 일했기에 목을 늘 45도 가량 뒤로 젖혀야 했다”고 했다.
▲ 출처 : 울산지역노동자건강권대책위원
공단 “배터리 떨어져 불가피… 키 차이 알았다”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 재활보상부 배성룡 과장은 “보통 현장조사 때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는데 그 날 따라 배터리가 다 돼 현대차 안전환경팀에 촬영을 맡겼고, 이 씨와 촬영 대상자의 키 차이가 나는 건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배 과장은 “이 사실을 대책위와 면담 때도 알렸다”고 했다. 현미향 국장은 “배 과장이 현장조사했던 현대차 4건 모두 촬영을 현대차 보건환경팀이 했는데 그 때마다 배터리가 다 됐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키가 163cm인 이창우 씨도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12년 동안 차 문짝 작업을 하면서 최고 180cm 높이에 있는 부품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작업하다가 오른 어깨 충돌증후군 등으로 지난 5월 산재신청을 했다. 이번에도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는 현장조사 때 현대차 안전환경팀에 촬영을 맡겼다. 촬영 대상자는 이 씨보다 13cm나 키가 컸다. 대책위는 “이 씨의 키가 163cm인데 176cm의 작업자를 촬영해 작업자세를 왜곡시켰다”고 말했다.
현대차 안전팀이 4건 모두 ‘작업장면 촬영’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사내하청으로 13년을 일한 이재식 씨도 한쪽 팔을 차 안에 집어넣어 커튼 에어백을 줄곧 달아오다가 최근 정규직으로 전환돼 작업공정이 바뀌자 예전 작업 부위인 어깨에 통증을 느껴 산재를 신청했다. 공단 울산지사는 이재식 씨의 현장조사 때도 작업 동영상을 현대차 안전환경팀에게 맡겼다. 공단 울산지사는 현대차에서 34년째 일해온 권동화 씨의 현장조사 때도 현대차 안전환경팀이 작업 동영상을 촬영했다.
대책위는 “재해노동자 현장조사 참여를 배제하고 공단 직원이 해야 할 작업동영상 촬영을 사업주에게 맡기는 건 사업주의 산재를 은폐를 묵인하는 듯한 조치로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말했다. 공단 울산지사 배성룡 과장은 “공단 담당자는 나가서 현장조사를 하고, 결정은 질병판정위원회가 여러 사안을 검토해 결정한다”고 했다.
사업주 허위진술 검토 않아 산재 불승인
산재 현장조사 때 사업주가 허위진술을 해도 이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산재 불승인된 사례도 있었다.
1982년부터 35년째 조선소와 건설현장에서 블럭과 파이프 용접을 해온 장기철 씨는 지난해 4월 11일 울산 온산공단에 있는 초대형 조선기자재 생산업체 세진중공업의 사내하청 선진테크에서 무게 40kg 짜리 자재를 뒤집다가 허리를 삐끗해 병원에 갔다. 장씨는 3-4번 요추 추간판 탈출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장 씨는 선진테크에서 4년 간 주로 무게 6~150kg짜리 철재부속물(너그)를 용접했다.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용접한 뒤 너그를 들어 올려 뒤집은 다음 다시 용접하는데 40kg 이하는 혼자 뒤집고, 더 무거운 건 동료와 같이 뒤집었다. 현장에 뒤집는 장비가 있지만 시간을 줄이기 위해 거의 사용하지 않고, 너그를 뒤집는 데 해당 장비를 이용하기도 어려워 거의 수작업으로 일했다.
▲ 울산지역노동자건강권대책위원회가 지난달 27일 고용노동부 현장노동청에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처리 부당사례 24건에 대한 진정서를 접수했다. ⓒ 이정호
장 씨는 진단 받은 병원과 부산대 양산병원 직업환경의학과 모두 직업 관련성을 인정해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 자문의도 MRI상 상병을 확인해줬다.
장 씨는 공단의 산재 현장조사에 참여하려고 했으나 산재신청 때문에 사직을 강요받고 퇴사한 뒤였다. 장 씨는 사업주의 반대로 현장조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현장조사 때 사업주는 ‘장비를 이용해 너그를 뒤집는다’며 장 씨와 달리 말했다. 공단 울산지사는 장 씨와 사업주 말이 다른데도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았고, 사업주의 주장을 장 씨에게 알려주지도 않아 반박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이 조사 등을 근거로 근로복지공단은 업무 관련성이 낮다며 산재 불승인 처리했다.
장 씨의 끈질긴 요구로 지난 7월 28일 진행된 현장 재조사에서야 사업주는 ‘장비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재심결과를 기다리는 장 씨는 6개월째 직장도 잃고 제대로 된 치료도 못받아 고통받고 있다.
센서에 선박블럭 출입기록 다 있는데
우준하(59) 씨는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사내하청업체에서 안전요원으로 일하다가 지난해 6월 16일 다른 하청업체 노동자가 숨졌을 때 현장에 들어가 구호 작업을 함께 했다. 우 씨는 다음날인 6월 17일 노동부의 사고조사 때 현장에 다시 갔다가 어지러움과 두통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다. 우씨는 외상 후 스트레스(트라우마)로 산재신청을 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불승인했다.
6월 17일 사고 현장에 우 씨가 들어가는 걸 못 봤다는 직원들의 진술서가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우 씨는 안전모에 부착된 선박블럭 입출입 센서 기록 등을 제출하며 재심사를 요청했다. 공단은 재심사에서도 산재를 불승인했다. 공단은 숨진 노동자와 우 씨가 모르는 사이라서 외상후 스트레스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조 정동석 노동안전국장은 “용접 등에 열중한 작업자가 안전요원의 동선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데도, 기초적인 입출입 센서 기록도 확인 않고 진술서대로 산재 처리에 반영한 부실한 조사였다”고 주장했다.
울산 산재 불승인 44%, 현대차 울산공장은 53%
울산지역 노동자건강권 대책위원회는 “지난 3월 한 달간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의 부당한 산재처리 사례를 24건이나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지난 4월 11일, 7월 7일, 8월 21일 3차례 공단 울산지사를 방문해 전면적 재조사를 요구했다. 공단 울산지사는 대책위가 주장한 24건의 산재 부당처리 사례 가운데 산재불승인 2건 등 모두 7건에 대해선 조치를 취했다.
대책위는 “부산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해 울산지역에서 업무상 질병으로 산재신청한 노동자 311명 중 175명만 산재를 승인해 불승인율이 44%인데, 특히 현대차의 경우 산재 불승인율이 53%로 더 높다”며 “대기업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지난달 27일 고용노동부 현장노동청에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처리 부당사례 24건에 대해 진정 하는 한편 이승룡, 장기철 씨 등 3명은 오는 11월 26일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자신들의 사연을 설명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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