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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쇠락한 일본 마을을 살린 지역활성화협력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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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쇠락한 일본 마을을 살린 지역활성화협력대원들

익명 (미확인) | 목, 2016/02/25- 11:48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해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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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한 일본 마을을 살린 지역활성화협력대원들

2009년, 일본 총무성은 ‘지역활성화협력대(地域起こし協力隊)’라는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았다. 지역 활성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지역에서 창업을 하거나 일자리를 찾아 정착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동안 생활비와 활동비를 지원하는 제도이다. 그 과정은 이렇다. 과소지역(과도한 인구 감소로 지역 사회의 기반이 변동하여 생활 수준, 생산 기능의 유지가 곤란하게 되어 있는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지방자치단체가 이주 희망자들을 ’협력대원‘으로 위촉하면, 협력대원들은 각자의 관심에 따라 농업, 어업, 임업, 마을 만들기, 지역 브랜드 상품 개발, 판매, 프로모션, 도시민과의 교류사업 등의 일에 종사하면서 지역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찾는다. 최고 3년간 보장되는 정착기간 동안 협력대원들은 정부로부터 연간 200~250만 엔의 생활비를, 창업을 희망할 경우 100만 엔의 창업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으며, 주택을 제공받기도 한다.

여러 정책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과소지역은 계속 증가하고 있고, 현재 추이대로라면 25년 후에는 약 900여 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행 6년째를 맞이한 지역활성화협력대의 성과를 속단할 단계는 아니지만, 매년 협력대원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한 점이다.

또한, 총무성이 2013년 임기가 끝난 협력대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약 60%가 그 지역에 정주했고, 정주자의 약 90%가 창업(9%), 취업(53%), 취농(26%)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총무성은 2020년까지 그 수를 4,000여 명으로 확대하고, 서포트 데스크와 연수를 실시하여 청년 창업을 늘리는 등 내실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역활성화협력대원 실시현황

▲지역활성화협력대원 실시현황

청년 협력대원들이 이룬 변화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가장 높은 협력대가 바로 오카야마 현(岡山県) 미마사키 시(美作市)의 협력대다. 현북동부에 위치한 미마사키 시는 인구 30,498명, 고령화율 35.2%로, 특히 산간부를 중심으로 과소지역과 한계촌락(集落)이 많다. 이러한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0년부터 협력대원을 배치해 왔다. 현재 협력대원 10명과 임기만료 후 정주한 6명의 사람들이 5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마사키 시 협력대의 명성을 높인 것은 우에야마(上山)의 타나다(棚田、계단식 논으로 산간 지역이 많은 일본의 전통적인 농업 방식 중의 하나)를 되살린 것이다. 우에야마는 현 수도 오카야마 시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중산간지방의 마을이다. 예전부터 8,300여 개의 논이 산비탈에 층층이 계단을 이루어 주변의 숲들과 함께 그림 같이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령화와 일손 부족으로 타나다는 조릿대잎과 칡덩굴로 뒤덮이고 숲은 황폐해져 갔다.

2007년 오사카 일대의 시민들이 우에야마의 타나다를 되살리고 자연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NPO법인 아이다 우에야마 타나다단(英田上山棚田団, 이하 ‘타나다단’이라 칭함, http://tanadadan.org/)을 조직해 활동을 시작했다. 회원들은 주로 도시 직장인과 학생들로 주말을 이용해 우에야마를 찾아 타나다의 잡초와 잡목을 제거하고 수로를 정비했다.

그러던 중 2010년 3명의 협력대원이 이주하면서 타나다 재생사업에 박차가 가해졌다. 당시만 해도 타나다는 워낙 풀과 잡목이 무성해 어디가 논인지 어디가 산인지 구별하기도 힘든 상태였다. 대원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타나다에 나가 그저 풀을 뽑고 나무를 베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생각한 것이 ‘화전’이었다. 물론 주민들과 땅 주인의 동의가 필요했다. 풀과 잡목을 불 태우고 땅을 일궈 약 20헥타르의 타나다를 되살릴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이들은 수로를 정비해 10여 년 만에 논에 물을 끌여들였다. 타나단의 지지자들과 함께 봄에 모내기를 하고 가을에 추수를 했다. 생산된 쌀은 타나다미라는 이름의 브랜드 상품으로 개발돼 온라인샵 우에야마 메리샵(Ueyama Merry Shop)에서 판매하고 있다. 우에야마 메리샵에는 지역 브랜드로 개발한 정종과 맥주, 현미커피 등도 판매하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된 채소와 산에서 채취한 약초, 가공식품, 공예품 등을 인근 오카야마 시나 오사카 시에서 열리는 마르셰에 참여해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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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목에 뒤덮여 있던 버려진 땅이 축제의 장으로

우에야마의 타나다는 때때로 예술 무대로 변하기도 한다. 우에야마 주민들의 활짝 웃는 얼굴을 프린트한 우산이 모내기를 끝낸 타나다를 장식하고 있다. 우에야마에 새로운 웃음꽃을 안겨줄 것을 약속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는 북경 올림픽 오프닝 세레모니의 예술 고문을 지낸 미즈타니 코우지(水谷孝次)의 작품이다. 그는 우에야마의 준주민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 지역 브랜드 상품의 디자인도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주민들의 고령화로 사라졌던 지역의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수백년 이어졌던 여름 축제와 봉오도리(盆踊り, 음력 7월 15일 밤에 남녀들이 모여서 추는 윤무), 사자춤이 8년 만에 부활됐다. 또 추수 뒤에는 야간 노점과 스카이랜턴 날리기 등의 새로운 이벤트가 열려, 타나다는 쉴 틈 없이 주민들과 방문객들의 흥겨운 놀이판이 되곤 한다. 주민들의 손으로 직접 만든 수백 수천 개의 등이 밤하늘을 천천히 올라가며 연출하는 경관은 보는 이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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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야마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유

커뮤니티 공간도 운영하고 있다. 타나다 작업 과정에서 우연히 30여 년 동안 잡초와 잡목에 뒤덮여 있던 오래된 집을 발견했다. 이를 직접 개조해 카페를 열었다. 주민들과 외지에서 찾아 오는 손님들은 이곳에 훌쩍 찾아와 직접 만든 커피와 쥬스, 케익을 먹으면서 잠시 휴식을 갖고 친구들과 화롯불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중앙에는 당구대도 있고 안쪽 방에는 아이들의 놀이방도 있다. 때로는 영화 상영 등의 이벤트가 개최되고 주민들의 모임도 열려, 지역의 소중한 커뮤니티 공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금까지 모두 3채의 오래된 집을 개조하여 이주자들을 위한 셰어 하우스나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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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민들을 위한 농촌 체험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타나다단을 중심으로 마을의 다양한 주체들이 협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우에야마 타나다 대학’이 바로 그것이다. 모내기와 벼 베기, 농지 관리, 수로 청소, 요리교실 등의 농업 체험은 물론, 간벌, 닥나무 종이 만들기 등의 임업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연간 10여 회 제공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 여름 체험 캠프 ‘그로스 세미나’는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하며, 스스로 결과을 만들어 내는 것을 콘셉트로 다양한 놀이와 작업으로 구성돼 매년 인기리에 실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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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성공 스토리는 도시민들을 우에야마로 불러들이는 힘이 됐다. 임기가 끝난 협력대원들과 현 협력대원들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우에야마에 보금자리를 틀기 시작했다. 도예가, 의사, 탭댄서, 디자이너, 엔지니어 등 10여 명의 신주민들은 ‘우에야마를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즐거운 마을로 만들자!’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마을을 살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한다’는 각오로 다양한 신사업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주민들과 약 4,000여 명의 우에야마 마을의 팬들이 동참하고 있다.

우에야마 협력대원들이 준 교훈

우에야마 협력대원들의 활약을 본 다른 과소지역에서 협력대원들의 파견을 요청했다. 두 번째로 협력대원들의 거점이 된 곳은 카지나미촌(梶並村)으로 겨울에 눈으로 고립되는 80세 이상의 고령자가 발생되는 냉혹한 지역이다. 협력대원들은 이곳의 오래된 집을 개조해 셰어하우스, 할로워크, 플레이그라운드, 크래프트워크, 오가닉팜 등의 사업을 펼쳐 성공을 거뒀다. 협력대원들과 이주자들로 구성된 ‘산촌엔터프라이즈’가 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협력대원들의 활동은 현재 5개 지역으로 확대됐다.

지역민들의 힘으로만 지역 활성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지방자치단체들에게 주민들의 협조, 행정의 지원을 받은 협력대원들과 NPO 등 다양한 인재 참여와 도농교류로 커뮤니티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한 우에야마 지역활성화협력대 사례는 큰 시사점을 주고 있다.

글 : 안신숙 |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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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해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안신숙의 일본통신 39
리사이클 가게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재생’한 노숙자들

노숙자들이 운영하는 리사이클 가게 아웅을 소개합니다.

도쿄도 다이토구(台東区) 북동부 우에나와 아사쿠사 근방에 위치한 산야(山谷)지구는 오사카의 카마가사키, 요코하마의 고토부키쵸와 함께 3대 일용 노동자들의 거주지로 알려져 있다. 메이지 초기부터 근처 유곽에서 일하는 마부 등 빈곤자들이 많이 거주해 온 관계로 도야(쪽방)라 불리는 간이 숙박소가 줄지어 들어섰으며, 고도경제성장기가 되자 공사장에서 일하는 일용노동자들이 이들 값싼 간이숙박소를 찾아 모여들면서 일용노동자들의 마을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일자리를 잃고 도야에서조차 내몰린 일용노동자이 근처 스미다강가나 우에노공원 등지에 텐트를 치고 노상 생활을 시작하면서 노숙자들 또한 많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도쿄 히가시닛포리에서 문을 연 리사이클샵 아웅, 그 옆에 트럭 주차장과 물품 창고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도쿄 히가시닛포리에서 문을 연 리사이클샵 아웅, 그 옆에 트럭 주차장과 물품 창고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이 산야지구에서 조금 떨어진 아라가와구 히가시닛포리(荒川区東日暮里) 주택가 한쪽 모퉁이에 ‘리사이클 가게 아웅’이 있다. 토요일 오후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꽤 많은 손님들이 20평 남짓한 가게에서 헌옷과 잡화를 둘러보고 있다. 파산한 마치코바(시내 영세 공장)를 임대하여 조합원들이 폐건자재를 이용해 손수 개조했다고 한다. 1층 오른켠에는 헌옷이 가즈란히 걸려 있고, 왼켠에는 새것처럼 잘 닦여진 생활 잡화가 정렬돼 있다. 나무로 설치한 계단을 타고 2층에 올라가니 헌옷과 각종 잡화들이 가득 쌓여 있다. 여기서 수집된 헌옷과 잡화들을 점포 판매용, 노숙자들에게 나눠줄 물건, 중간상들에게 넘길 물건등으로 분리하고 있다고 한다.

“일단 아웅에 오면 노숙자등 빈곤자들이 목조 아파트 한 칸을 빌려 새생활을 시작하는데 필요한 물건 일체를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본 컨셉입니다.”
아웅을 이끌고 있는 나카무라 미츠오(中村光男, 64세)씨의 설명대로 잡화 코너에는 냉장고등의 소형 가전제품은 물론 담요와 코다츠, 커텐 레일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 지역 주민, 학생, 외국인 등이 점포를 꾸준히 방문해 주기도 하지만 신생활자들을 위한 ‘패키지 판매’가 매상을 올리는 주력이라고 한다. 냉장고, 세탁기, 가스렌지, 전기 밥솥, 테이블, 칼라 복스 등을 저렴한 가격의 패키지로 준비해 전화로 주문하면 배달과 설치까지 해주고 있어 주머니가 얇은 빈민들에게는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벤리야(便利屋)와 산업폐기물 처리업으로 사업 모델 합리화

아웅에서 판매하고 있는 헌옷과 잡화중 기부받는 물품은 불과 10%에 지나지 않는다. 리사이클가게를 개점한 이듬해 2003년 부터 벤리야(심부름센터와 같은 용달업)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가게 옆 주차장에는 영업용 2톤 트럭들이 나란히 주차돼 있다. 2대로 시작해 지금은 8대의 트럭을 소유할 정도로 일거리가 많아졌다고 한다. 동네에서 험한 일은 무엇이든 받아하는 이 ‘용달업’이 실은 아웅의 리사이클판매업과 산업폐기물중간처리업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복지사무소나 구청 고령자복지과에서 의뢰받은 무연고자들의 유품 정리와 고령자들의 이사 대행이 가장 많다.

이사나 유품 정리를 하고 나면 다량의 불용품과 폐기물이 나오는데, 아웅은 이들 폐기물을, 헌옷과 가전, 가재 도구뿐만 아니라 나무 판자나 알미늄 샷시등의 폐건자재, 하물며 전기줄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모두 수거해 온다. 그중 재활용 가능한 것들은 갈고 닦고 수리해 리사이클 가게에서 판매한다. 아웅의 수리의 달인의 손을 거치고 나면 중고 냉장고도 반짝이는 신품으로 변신한다고. 창고에서 작업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수줍은 듯 인사하던 그는 67세의 산야 노숙자 출신으로 아웅의 창립 맴버 중 한사람이다. 리사이클 가게에서 판매하는 물품들의 90%가 이렇게 공급되고 있다.

또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기물들은 재료별로 일일이 분류해 중간 처리업자에게 판매한다. 목재폐기물 수거업자에게 넘겨진 나무 판자와 문짝 등은 목재칩으로 변신해 바이오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고, 전기 제품 등에 들어 있던 동, 알미늄, 금속 조각은 각각의 처리 업자들의 손을 거쳐 산업 자재로 재활용된다. 2008년 이 폐기물 수거 판매를 시작하면서 아웅의 매상은 비약적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버블 붕괴와 함께 노숙자의 블루 텐드촌이 형성되다

리사이클 가게 아웅은 2002년 산야지구의 50대 노숙자 5명이 1만엔(약10만원)씩 공동 출자해 창업했다. 주소가 없어 취업은 커녕 공적인 생활 보호조차 받지 못해 스미다강가에서 불루텐트를 치고 알루미늄캔 껍질을 모으며 생활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97년 경부터 근처 교회 등에서 헌옷을 기부받아 프리마켓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출발점이 되어 리사이클 가게를 열게 됐다고 한다. 노숙자들과 함께 리사이클 가게 아웅을 설립한 나카무라 미츠오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산야 생활 30년 끝에 아웅을 설립한 나카무라씨

▲산야 생활 30년 끝에 아웅을 설립한 나카무라씨

“1971년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바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몇 번의 옥중 생활을 경험한 뒤 1980년 산야에 직접 들어가 일용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운동을 해 왔습니다”

그가 입학한 1971년은, 1968년 그 정점을 찍었던 안보투쟁(전공투 운동)이 사그라질 무렵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반전 운동과 사회의 가장 저변에서 살고 있는 일용 노동자들의 쟁의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30여 년간 줄곧 산야지구에서 살면서 일용노동자조합인 ‘산야쟁의단’에 가입해 그들의 일자리 확보와 복지 증진을 위해 운동해 왔다.

1990년 그의 활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90년대 버블 붕괴와 함께 일용노동자들의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고 요세바(寄せ場-일용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기다리는 새벽 시장)는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도야에서 생활하던 일용 노동자들은 일제히 거리로 내몰려 생활 보호등 행정 시책으로부터도 배제된 채 공원이나 강가에서 블루 텐트를 치고 노숙자 생활을 시작했다. 산야에서 가까운 스마다강가에 1000여 개의 텐트가, 우에노 공원에 수백 개의 텐트가 늘어섰다. 이렇게 산야는 일용노동자들의 거리에서 노숙자들의 거리로 바뀌어 갔으나, 행정 기관은 그로부터 10여 년간 그 어떤 대책도 세우지 않고 이들을 방치해 왔다. 그래서 산야의 일용노동자 운동은 자연스럽게 노숙자들의 생활 지원 운동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는 ‘산야노동자복지회관’을 설립하고 ‘반빈곤네트워크’를 구축해 노숙자들의 생활 지원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버려진 자들, 버려진 물건으로 스스로의 삶을 재생시키다

“철저하게 당사자 운동의 원칙으로 전개됐습니다. 노숙자들 스스로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 일자리를 만들어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힘을 키우자는 겁니다.”
타키다시(炊き出し、노숙자들에게 밥을 지어 나눠주는 활동) 대신 쌀을 기부받아 공원등에 모여 노숙자들 스스로 밥을 짓고 따뜻한 된장국을 끓여 나눠 먹으면서 지원자 그룹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갔다. 이렇게 해서 2000년에는 일본 최초의 ‘푸드뱅크’가 탄생했다. 푸드뱅크는 기부 뿐만 아니라 군마현에 있는 논에서 직접 쌀을 재배하기도 하면서, 산야의 노숙자들과 카나가와등의 노숙자 지원 단체 등에도 쌀을 제공해 주고 있다. 또 ‘쓰미다강 의료상담회’활동도 그와 산야노동자복지회관의 주요 활동 중의 하나다. 매월 제3일요일 쓰미다강가에서 실시되는 의료상담회에는 약 400여명의 노숙자들과 의료종사자들이 모여 공동 취사와 함께 의료상담을 한다. 진찰 결과 약을 제공하기도 하고 계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면 입원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매월 아웅과 쓰미다강의료상담회와 지원자들이 함께 실시하고 있는 공동 취사와 의료 상담

▲매월 아웅과 쓰미다강의료상담회와 지원자들이 함께 실시하고 있는 공동 취사와 의료 상담

‘아웅’은 이러한 일련의 활동 과정에서 노숙자들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맴버 5인이 조성금 등에 의존하지 않고 회비와 교회 등에서 빌려 스스로 자금을 조달해 임대료와 빚을 갚아가며 가게를 키워 왔다. ‘사회가 우리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자. 혼자서는 힘들지만 동료들과 함께라면…다시 한번 활기차게 살고 싶다.’ 라는 생각으로 전력을 다할 것을 약속하고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죠. 반 년간 수익도 없었고 월급도 나눌 수 없었습니다. 쓰미다강에서 노숙하면서 푸드뱅크에서 세끼를 먹으며 힘든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노숙자들이 운영하는 가게에 지역 주민들이 쉽게 마음을 열어 줄리 없었죠. 그래서 일부러 가게 앞 노상에 가전제품을 내놓고 수리했습니다. 노동의욕을 통해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였죠.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지역과 함께 관계 기관들과 함께 협업이 이뤄지도록 노력했습니다. 지역의 생활 보호 수급자들에게 가전 제품을 세트로 팔아 노상 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복지 사무소등과 네트워크를 강화해 고독사한 사람들의 유품 정리를 했습니다. 빈곤자들이 빈곤자들을 대상으로 사업하면서 상부상조한다고 할까요? 자연 지역 주민들도 서서히 헌옷과 생활 용품을 사러 가게를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나카무라씨가 들려준 초창기 고생담이다.

또 하나의 노동, 협동노동이 낳은 기적

아웅이 문을 연 2002년 8월의 매상은 13만엔, 당시 가게 월세가 12만엔이었다. 맴버도 5명이었다. 그렇게 출발한 아웅은 10여 년간의 노력으로 지금 연간 매상이 1억2000만엔, 조합원 35명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35명의 조합원중 현재 일하고 있는 조합원은 21명이다. 고령과 질병으로 더이상 일하기 힘든 조합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노숙자들외에 가정 폭력, 히키코모리, 조기 실업 등의 이유로 사회적으로 격리되고 배재돼 왔던 여성들과 청년들도 함께 참가하고 있다. 모두 자력으로는 자립된 생활을 꾸리기 힘든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시급은 1250엔으로 도쿄도의 최저임금 907엔보다 훨씬 높다. 풀타임으로 일하면 통상 20-25만엔의 월급을 받아가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국민연금등의 사회보장과 함께 주거수당(임대료의 1/4), 싱글마더 수당(월20000엔/아이 1인당)을 별도로 지급하며, 매년 순이익금(200-500만엔)을 퇴직금으로 적립하고 있다. 처우가 여느 정규직 고용에 뒤지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처우를 높이기 보다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낳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사회적일자리라 해도, 노동자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임금을 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아웅은 조합원들에게 최소 주5일, 1일 7시간의 일자리를 보장해 주기 위해 리사이클샵, 벤리야, 폐기물중간처리로 사업 영역을 확대시켜 왔지요.” 그의 말에서 사회성의 틀에 갖혀 흔히 결여되기 쉬운 사업성이 엿보인다. 이처럼 당사자 스스로 사업을 일으켜 사회성과 사업성을 동시에 실천하고 있는 아웅은 노동으로 부터의 소외와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모델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아웅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지 물어 봤다. 나카무라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노동자 협동조합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당사자들이 스스로 일자리 창출에 나섰으니까. 그 때부터 노동자 협동조합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아웅은 월1회 전 조합원이 모여 매상을 확인하고 자신의 일을 평가하며 일하는 시간과 일수를 정해 왔습니다. 매년 인건비 등의 경비를 제외하고 남는 순이익을 바로 분배하지 않고 퇴직금으로 적립하기로 한 것도 조합원들 스스로 결정한 겁니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경영에 필요한 의사 결정에 직접 참여하고 그 결정을 노동으로 직접 집행하는 것이 큰 힘인 것 같습니다.”

가게 앞 트럭에서 짐을 내리고 있던 30대의 젊은 조합원 A씨.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반 회사에 취직했으나 적응을 못하고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고 있었다. 히키코모리 지원 단체의 소개로 아웅에 왔다. 처음에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나 입사 4년째인 지금은 아웅의 벤리야 사업을 주도할 정도로 활기차게 일하고 있다. 창고에서 수줍게 인사하던 창립 맴버였다는 B씨는 오랜 노숙자 생활 탓에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지만 주 3일이라면 무리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며 여전히 아웅의 가전 제품 수리를 책임지고 있다. 이처럼 주체적인 노동이 사회에서 쓸모없이 버려졌던 노동자들의 삶을 재생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려는데 갑자기 저녁을 먹고 가라며 붙잡는다. 일찍 일을 끝낸 조합원들이 벌써 상을 차리고 있다. 이렇게 아웅의 조합원들은 하루 일이 끝나면 2층에 모여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으며 술잔도 곁들이면서 담화를 나누곤 한다. 공동 경영 공동 노동이라는 협동노동의 힘뿐만 아니라 이러한 열린 공동체 의식 또한 아웅의 성공에 큰 힘이 됐으리라 짐작해 본다.

글_ 안신숙(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 [email protected])

화, 2016/01/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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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불온대장정 2기

 

그들이 돌아왔다. 국가폭력이 휩쓸고 간 수많은 장소들. 불온한 20대 청년들이 함께 가서 희망과 연대의 마음을 전파한다! 

 

모집인원 : 20명


지원자격 : 매우 불온한 20대 (만28세 이하)


활동기간 : 8/14~8/17 (총 3박4일)


활동일정 :  * 대장정 전, 총 3회의 사전프로그램 진행(직접행동 작당모의)
                  ⇒ 8/7, 8/9, 8/13 저녁7시 참여연대에서 진행(추후 공지)
1. 용   산 : <무한랜드 철가면레이스> 용산화상경마장 연대방문
2. 평   택 : <당신들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오산 미군기지 탄저균 사태 관련 활동
3. 청   도 : <살매 새순> 청도 삼평리 투쟁현장 농활
4. 고   리 : <이 고리를 끊자> 부산 고리원전 관련 활동
5. 안   산 : <잊지않을게> 안산 416 기록저장소, 단원고, 합동분향소, 유가족간담회 진행
(방문장소는 추후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참가비용 :  10만원 (만 28세이하) : 내일로열차권 + 3박4일 숙식제공 + 단체티
             
접수방법 : (참여연대 홈페이지 참조 www.peoplepower21.org)
                 1. 신청서 쓰러가기!를 클릭, 작성
                 2. 참가비 입금! (국민은행 995701-01-057713 예금주 : 참여연대)
                 3. 접수완료 되면 개별 연락

 
접수마감 : 2014. 8. 6(목) 자정까지 (선착순 마감)
 
문     의 :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이정민 간사 02) 723-4251  

월, 2015/07/20-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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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그래도 희망은 20대였다

청년들의 정치 참여가 대한민국을 바꾼다

 

정태석 전북대학교 교수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야권이 패배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비례대표를 포함하여 더불어민주당 123석, 새누리당 122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이 당선되어, 여소야대에다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되는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의원이 문재인 대표 체제에 반기를 들면서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하고 천정배 의원 등과 연합하여 국민의당을 창당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야권 분열에 따른 패배를 점쳤다. 새누리당은 한편으로는 남북 긴장 관계와 북한을 이용하는 안보와 반공 논리로 보수층을 결집시켜려 애썼고, 다른 한편으로는 친노 패권주의 논리를 확산시키며 야권 분열을 더욱 부추기려 애썼다. TV조선, 채널A, MBN 등 종합 편성 채널과 YTN, <연합뉴스> 등 보도 채널, 그리고 심지어 공중파인 한국방송공사(KBS), 문화방송(MBC)까지 열심히 북한 소식을 앞세우며 안보 불안 심리를 조장하려 했고, 친노 패권주의 비판으로 국민의당을 띄우면서 야권 분열을 부추기려고 애썼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도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주인공 송중기를 앞세워 안보와 애국심 등 보수 심리를 자극하는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다.

과거와 같은 정치의 흐름이었다면 아마도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패배라는 결과가 나온 것은,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의 집권이 지속되는 동안 민심이 서서히 등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인데, 결국 언론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도 이미 떠난 민심을 되돌리기가 어려웠던 셈이다. 사실 선거가 있기 전에 주변 사람들은 야권 분열과 50대 이상 고령층의 강한 보수 성향으로 인해 새누리당이 대승을 거두거나 최소한 과반수 의석을 얻을 것이라고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종편 등 언론의 영향으로 국민들의 보수 성향이 강화되었을 것이라고 우려했고, 또 청년들이 보수적이며 투표를 잘 하지 않는다며 답답해했다.

하지만 나는 종편 등 언론의 영향이 생각처럼 그리 크지 않다고 반박하는 편이었다. 종편은 어차피 보수층인 고령층들이 주로 보고 있고, 젊은 층, 특히 청년들은 TV 자체를 거의 보지 않고 인터넷으로 소통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청년들이 보수적이며 투표를 잘 하지 않는다는 것도 386 세대의 잘못된 선입견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만 19세와 20대는 18대 대선에서 70%에 가까운 투표 참여율(전체 75.8%)을 보여주었고, 문재인 야권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65.8%로 30대(66.5%) 다음으로 높았다. 그래서 청년들이 암울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만을 투표를 통해 표출한다면 야권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내심 품고 있었다. '헬조선' 담론도 그러한 기대를 품게 한 하나의 근거였다.

 

아무래도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안보니 종북 좌파니 하는 낡은 레코드판으로도 가릴 수 없는 현실적인 삶의 문제로 봐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번 선거야말로 경기 침체 속에서 진정으로 경제, 일자리, 양육, 복지 등 삶의 문제가 선택의 현실적 기준이 되었던, 그러면서도 집권 여당의 온갖 왜곡과 과장에도 쉽게 속을 수 없었던 선거였다. 그리고 청년들의 분노와 정치 참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선거였다.

국민들은 거짓 정책으로 국민들을 속이려고 한 정권, 아버지 박정희를 정당화하기 위해 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한 정권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선거 운동 막판에 위기를 느껴 당의 간판 인물들이 무릎을 꿇으며 사죄하는 정치쇼를 벌였지만, 한두 마디 립서비스나 감정에 호소하는 정치쇼로 마음을 돌리기에는 시민들의 삶은 너무 팍팍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새누리당의 텃밭이었던 대구, 부산, 경남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다수 당선된 것은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한다.

길게 보면 새누리당의 참패는 그동안의 정부와 국회의 실정과 오만의 결과였다. 여소야대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특별히 잘해서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독선과 여권의 헛발질이 이루어낸 합작품인 셈이다. 19대 총선에서 간신히 과반을 획득한 새누리당과 18대 대선에서 박정희 향수와 함께 경제 민주화와 복지 확대 공약 등으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준 통치 과정은, 국민들, 특히 청년들이 정치가 얼마나 국민들을 속일 수 있으며, 또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얼마나 암울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각성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우선 기초 노령 연금의 후퇴는 복지가 취약한 60대 이상 노인들의 삶을 비루하게 만들었다. 낮은 소득과 높은 자살률은 새누리당이 안보와 종북 타령으로 노인들을 붙잡아두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영남에서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데에는 고령층의 혼란과 지지 철회가 한몫을 했다고 짐작된다. 50대는 조기 퇴직이나 자영업 부진 등으로 생계가 어려운 데다, 청년이 된 자녀들의 취업도 걱정이고 부모 부양도 걱정이다. 그러니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부의 재벌 집중, 소득 양극화, 갑을 관계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새누리당 정권을 선뜻 지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중고생을 자녀로 둔 40대는 주택 마련과 자녀 교육을 위한 비용 지출로 고통을 받고 있는 데다가, 자녀 또래의 많은 고등학생이 희생된 세월호 사고를 겪으면서 국가에 대한 불신마저 커졌다. 어린이를 자녀로 둔 30대는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를 고집하며 후보 시절에 공약한 보육비 지원마저 교육청에 떠넘기려는 모습을 보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였다. 많은 청년들은 높은 청년 실업률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좋은 일자리를 얻기 어려워 좌절에 빠져있다. 이처럼 경기 침체와 취약한 복지 속에서 소득 양극화와 일자리, 비정규직 문제 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은 애초부터 지지의 유지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제대로 된 구조 개혁의 청사진이 없는 상태에서, 부모의 임금을 깎아서 청년 비정규직을 늘리고 부모의 일자리를 쉽게 빼앗아 자녀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기만적인 정책을 경제 살리기 법안이라고 우기고 있는 정권에게 누가 지지를 보낼 수 있겠는가? 부의 재벌 집중과 소득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재벌 대기업 살리기, '증세 없는 복지' 등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한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는 정권에게 누가 지지를 보낼 수 있겠는가? 정부는 청년 수당 등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적인 복지 정책에 제동을 걸고 도지사는 공공 시설인 의료원의 폐원을 강행하는 그런 집권 여당에 대해 누가 지지를 보낼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제시한 일자리 정책들을 통해 약속한 일자리를 모두 모으면 완전 고용을 달성하고도 남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왜 실업률이 줄어들지 않는지에 대해 아무런 근본적 성찰과 해명도 없이, 경제 살리기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야당이 문제라며 '국회 심판론'을 들고 나오는 정권에게 누가 지지를 보낼 수 있겠는가?

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의 교훈도 잊어버리고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환경 정책이나 핵 에너지 정책을 후퇴시키고 있는 정권에게 누가 지지를 보낼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의 기초인 언론 자유와 인권을 후퇴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면서 국민들의 이념과 역사 의식마저 통제하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하는 정권에게 누가 지지를 보낼 수 있겠는가? 더구나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 세월호 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응 실패에 대하여 책임 소재를 밝히는 일에 서도 책임 회피와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니 누가 정부를 믿고 집권 여당을 지지할 수 있겠는가?

보수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20대 총선에서 후보를 결정하는 데 기준이 된 요인들 중 1위를 차지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짐작컨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후보 결정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황당하고 기만적인 정책들을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우기면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솔직하게 고백한 같은 당의 유승민 의원에 대해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다고 색깔이 불분명한 사람으로 몰아 이한구 공천심사위원장을 통해 탈당을 강요한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포용을 모르는 '원한과 아집의 정치'가 중도보수층, 대구와 경북의 지지층의 이반을 낳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번 20대 총선의 전체 투표율은 58.0%로서 19대 총선 54.2%에 비해 약간 상승했다. KBS 출구 조사에서 나타난 연령대별 투표율을 보면, 20대 이하가 49.4%로 19대 총선 41.5%에 비해 투표율이 상당히 상승했다. 물론 추정치여서 약간의 변동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상승이다. 이것은 청년들이 지난 4년간 새누리당의 의정 활동을 보면서, 높은 청년 실업률과 비정규직 취업이라는 현실적인 처지를 개선하는 데에는 대선 못지않게 총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30대 역시 49.5%로 19대 총선 45.5%에 비해 상승했고, 반면에 40대, 50대, 60대 이상은 각각 54.1%, 65.0%, 70.6%로 19대 총선에 비해 2~3% 정도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선관위 집계 결과 20대 총선에서의 사전 투표율이 12.19%로 전체 투표자 수 기준으로는 21.0%에 달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전 투표자 중 20대 이하의 비율이 25.8%로 60대 이상의 비율 23.2%보다 높다고 추정되고 있는데, 물론 선관위의 최종 집계가 나오면 확인이 되겠지만, 이러한 현상들은 '청년의 투표 참여'가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겠다.

또한 지역별로 볼 때, 대구의 투표율이 54.8%로 최저를 기록했고 경북도 56.7%로 평균보다 낮은 수치를 보여준 것은 새누리당에 대한 실망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에 광주는 61.6%, 전북은 62.9%, 최고치를 기록한 전남은 63.7% 등 평균을 웃도는 투표율로서 19대에 평균을 밑돌던 것과 비교하여 큰 폭의 상승을 보여준 것인데, 이것은 예전에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실망을 기권으로 표출할 수밖에 없었던 호남의 유권자들이 국민의당이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등장함에 따라 투표 참여의 계기가 생겨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전체적으로 세대별, 지역별 투표율을 보면 청년의 선거 참여가 제법 크게 늘었으며, 새누리당에 대한 실망과 불만이 텃밭에서도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진보적인 젊은 층이 점차 성장하고 보수적인 고령층이 점차 쇠퇴하는 인구학적 변화에 비추어볼 때, 근본적인 혁신과 변화가 없는 한 새누리당이 집권할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은 야권이 집권하여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책을 통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전제할 때 가능한 일이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한 가지는 새누리당에 반대한 유권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점이다. 야권 분열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수도권에서 현실적인 당선 가능성을 고려하여 유권자들이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기 때문이었다. 수도권 유권자들이 야권 분열로 새누리당 후보다 당선되는 결과를 피하려고 스스로 후보 단일화를 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우리는 국민의당이 야권 분열로 인한 혼란을 가져다주었지만 결과적으로 여소야대에 양면적인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고 짐작해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층의 표를 끌어온 효과가 있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수도권에서 위기 의식을 형성하여 더불어민주당 후보로의 암묵적 단일화에 기여했던 것이다.

그런데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석권하게 된 것은 무슨 연유일까? 호남에서는 어차피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각성을 요구하는 민심이 강했기에 국민의당 후보에게로 지지가 쏠렸고, 그 결과가 국민의당의 석권으로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것이 진정으로 호남의 유권자들이 국민의당의 이념과 정책을 지지했다거나 국민의당을 새정치를 하는 혁신적인 정당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천정배 의원과 안철수 의원이 연대하여 국민의당을 만들고, 또 공천에서 탈락하여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의원들을 특별한 기준 없이 끌어모아 원내 교섭단체를 만들려고 애쓴 모습을 보면서 혁신을 기대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안철수 의원 스스로가 혁신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국민의당은 이념적, 정책적 노선도 불분명하고 혁신의 의미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출마의 기회를 잡으려는 정치인들에게 국회의원 후보 자리를 제공해준 정당의 꼴이 되었다. 그것도 주로 호남 정치인들을 구제해준 정당이 되었다.

그 결과 국민의당은 반(反) 문재인과 친노 패권주의 비판으로 뭉친 정당이 되었다. 국민의당이 수도권의 두 석을 제외하면 유독 호남, 특히 광주·전남에서 지역구를 석권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한 호남 정치인들이 호남 주민들의 소외감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정서를 정략적으로 동원하여 실체도 불분명한 친노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 논리를 증폭시킨 결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는 신선한 대항마를 내세우지 못한 더불어민주당의 한계도 한몫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당원들에 의해 선출된, 집권하고 있지도 않은 야당의 대표를 패권주의로 몰아붙인 것은 권력 투쟁을 위한 정략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이 헛발질을 하는 동안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체제를 앞세워 경제를 쟁점화하면서도 우클릭을 통해 중도·보수층을 끌어들이려고 애썼고, 국민의당은 혁신을 내세운 틈새 전략으로 광범위한 중도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애썼다. 이들 사이에서 진보 정당인 정의당은 야권 연대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이념과 정책의 색깔을 내세우는 차별화를 통해 중도, 진보층의 지지를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정의당은 야권 분열이라는 악재로 인해 당에 대한 지지도만큼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청년의 적극적인 선거 참여'에 의한 여소야대의 결과에 안도하면서도, 국회의원 선거가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성찰해 보아야 한다. 우선 당의 지도부가 공천권을 독점하며 당원 민주주의를 가로막아 선거철만 되면 지분 논란, 탈당, 분당, 이합집산 현상이 나타나고, 이념적, 정책적 차별성이 없는 당의 분화를 다당제의 논리로 정당화하고 있는 비민주적 정당 제도를 민주적인 정당 제도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청년들이 지역구 후보가 되고 또 당선되기까지 너무나 큰 현실의 벽이 존재하고 있고,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 선거 공약과 국회의원 선거공약 간의 차별성을 찾아내기 어렵고, 득표를 위해 정치인들이 무분별한 지역 개발 논리를 앞세워 지역 이기주의 정서를 부추기도록 하고, 정당 지지율과 의석 점유율 간의 괴리를 키우고, 지지하는 정당 후보를 마음 놓고 찍지 못하고 많은 사표를 통해 투표의 대표성을 왜곡시키는 지역구 선거 제도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지역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익, 다양한 가치를 골고루 공정하게 대표할 수 있도록 하는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로의 개혁과 당내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통해 국민들의 다양한 의사가 민주적으로 공정하게 대표될 수 있을 때, 청년들의 정치참여도 활발해지고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토론하고 경쟁하는 선진적인 정치 문화도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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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수, 2016/04/27-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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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소식지 582호 중 [생산지 탐방]

 

우리밀과 종국만으로 발효한

유전자 조작 콩 걱정 없는

진간장

 

한살림서울 가공품위원회

맛가마식품

 

 

때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6월 말, 한살림서울 가공품위원회가 9월 18일부터 10월 20일까지 진행할 ‘Non-GMO 홍보 물품시식회’ 준비의 일환으로 한살림 진간장을 생산하는 맛가마식품으로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분과장으로서는 첫산지 탐방이어서 분과원으로 참석할 때와는 사뭇 다른 마음가짐과 사명감을 안고 산지로 향했습니다.
물품시식회는 물품을 알리는 것이 목적인만큼, 무엇보다 진간장의 원재료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었습니다. 맛가마식품에서는 고흥에서 나는 소립종 콩을 원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수입산과 쉽게 구별하기 위해서라는데, 육안으로 봐도 일부러 섞으려 해도 섞기 힘들 정도로 수입산 대두와는 크기 부터 확연히 달랐습니다.
한살림 진간장은 보존료와 색소, 감미료를 일절 넣지 않고 콩을 찐 뒤, 우리밀과 종국을 넣어 발효해 적당한 온도로 6개월 이상 자연 숙성한 양조간장입니다. 일명 조선간장인 재래식 한식 간장과의 차이점은 발효를 돕는 종국을 사용하고 단맛을 내기 위해 우리밀을 섞는다는 것뿐입니다. GMO 사용 여부가 불분명한 수입산 대두, 게다가 정제를 거쳐 기름을 짠 대두 찌꺼기(탈지대두)에 각종 첨가물 범벅인 시중 양조간장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입니다. 그러다 보니 색이 연하고 짠맛이 강하다는 이용기도 있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한살림’다운 기특한 물품입니다.
간장은 음식 속에 묻혀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알고 보면 건강한 밥상의 기본이 되는 물품입니다. 이번 산지탐방을 통해 다시 한 번 GMO 걱정 없는 한살림 물품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곧열릴 서울 가공품위원회의 물품시식회를 통해서도 조합원들과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해 더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글·사진 이내리 한살림서울 가공품위원회 위원

 

 

맛가마식품 생산자님께 물었습니다

 

 

시중 간장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시중 간장 대부분은 수입산 대두를 원료로 하며, 산분해방식의 속성간장과 소량의 양조간장을 혼합한 혼합간장인 경우가 많습니다. 탈지대두를 사용하기 때문에 분해와 발효가 빠르게 진행되어 제조기간도 짧은 편으로, 한살림 간장과는 원재료와 제조방법부터 다릅니다.
한살림 간장이 유난히 짠 이유가 있나요?
한살림 간장은 맛을 내는 향미증진제나 합성보존료, 액상과당 등의 첨가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런 첨가물이 없기에 한살림 간장이 상대적으로 더 짜다고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요리의 색보다는 소량씩 간을 보면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월, 2017/08/2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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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소식지 572호 중 [생산지 탐방]

 

생산자 소비자 나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맛의 비결!

자연에찬 국류·반찬류

 

한살림서울 중서지부 가공품분과

자연에찬

자연에찬161227 (22)

한살림에서 사먹는 국과 반찬은 언제나 집에서 만든 것 같아서 좋다. 그중에서도 시래기된장국이나 소고기미역국은 정말 집에서 만든 것과 똑같다. 어디서 이렇게 맛있게 만드는 지 궁금하던 차에 국과 반찬 물품을 생산하는 자연에찬을 탐방했다.

자연에찬은 경기도 일산과 인천 강화 두 곳에서 물품을 생산하고 있다. 먼저 강화 작업장을 방문했다. 작업장에 도착하자 작고 아담한 크기의 작업장에서 한주나 생산자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생산 공정을 둘러보기에 앞서 위생복을 입고 먼지를 제거하는 등 위생 관리를 위한 과정을 꼼꼼히 거쳤다. 그 뒤 작업장을 자세히 둘러보고 생산자님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화에서는 자연에찬 물품 중 전류(녹두전, 동태전, 동그랑땡)만을 생산하고 있다. 공정 과정 일부에 오염이 생겼을 때 모든 물품으로 영향이 확대되지 않도록 생산시설을 분리했다고 한다. 7명의 생산자들이 위생복을 입고 열심히 녹두전을 굽고 있었다. 부침하기에 좋게 맞추어진 긴 열판에 사람들이 양쪽으로 서서 큰 그릇에 담긴 반죽을 일일이 계량컵에 계량을 하여 한 장씩 부치고 있었다. 부쳐진 녹두전은 판에 놓고 선풍기로 식힌 뒤 포장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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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작업장을 둘러보고 다시 일산 작업장으로 향했다. 이곳 작업장에서는 다양한 국류와 반찬류를 생산하고 있다. 강화 작업장보다 규모도 크고 더 체계가 갖추어진 모습이었다. 일산에서는 이창배 생산자님과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를 통해 물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생산 과정의 고충도 들을 수 있었다.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입맛을 맞추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과 무농약, 무항생제, 무화학첨가제 식자재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탐방을 통해 생산자와 조합원이 입장은 다르지만 양쪽 모두 한살림 사람으로서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한 중요성에 깊이 공감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살림이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주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글 이경미 한살림서울 중서지부 가공품분과장

 

생산자님께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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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찬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자연에찬은 2008년 경기도 고양시의 공동육아 어린이집 엄마들이 모여 이웃에게 국과 반찬을 배달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먹인다는 마음으로 친환경 재료를 손수 다듬고, 조리해 만든 음식들이 지역민들에게 호응을 받아 지금과 같은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원부재료는 어떤 것들을 쓰나요?

한살림축산식품의 한우, 마하탑의 소금, 방주명가영농조합법인의 산골된장, 자연의선물의 톳, 완도수산 다시마, 해성씨푸드 디포리 등 한살림 생산지에서 구할 수 있는 물품은 모두 한살림에서 이용합니다. 한살림에서 공급받기 어려운 물품들도 친환경 식재료를 이용하여 생산합니다. 친환경 먹을거리는 대부분 손질된 식자재나 대용량 양념거리들이 따로 없기 때문에 모든 채소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손으로 직접 손질하고 세척하여 사용합니다.

 

화, 2017/03/2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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