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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돈보다 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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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돈보다 어업

익명 (미확인) | 금, 2016/02/05- 23:00

tvN 예능프로 ‘꽃보다 청춘’의 ‘포스톤즈’는 결국 아이슬란드의 오로라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정상훈·조정석·정우·강하늘, 네 명의 연예인들이 추위를 뚫고 간 그곳은 아이슬란드. 영국의 북쪽,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북서쪽에 있는 북대서양의 섬나라다. 오로라는 물론 눈물 흘릴 만큼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이 나라에서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해 일어난 거대한 변화야말로 오로라만큼이나 눈물을 자아낼 법하다.

달콤한 금융자본의 유혹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그 거대한 변화를 겪은 아이슬란드 어부 발리 호스쿨드손의 이야기를 전한다. 어부인 그의 책장에는 리스크 관리와 국제금융 등 금융 관련 서적이 여전히 꽂혀 있다. 어부와 금융전문가라는, 두 개의 아주 다른 직업을 몇 년 사이에 옮겨가게 된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호스쿨드손은 많은 건강한 아이슬란드 청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갑자기 고기잡이를 그만두고 투자은행에 취직해 투자자문을 하게 됐다. 어부가 하루아침에 금융전문가로 변신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다시 어부의 자리로 돌아와 있다.

그가 직업을 바꾼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아이슬란드는 국가 시스템이 두 번이나 크게 변화했다. 어업이 핵심 산업이던 인구 32만 명의 소국은 하루아침에 글로벌 금융 허브 국가로 발돋움하며 전세계 큰손들의 놀이터가 됐다. 몇 년 만에 주요 은행 모두가 파산하고 자산 가치가 폭락하는 금융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다시 어업국가로 돌아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오랫동안 아이슬란드의 가장 중요한 산업은 고기잡이였다. 그리고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게 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유엔이 세계 각국의 삶의 질을 조사해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에서는 늘 세계 5위 안에 들던 나라였다. 그런데 어느 날, 사회시스템이 바뀌면서 아이슬란드인들의 삶은 송두리째 변화하게 된다.

2000년대 초반 무렵의 일이다.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이 아이슬란드 은행들에 접근했다. 레버리지 차입, 인수·합병, 파생상품, 외환거래 등 그때까지는 낯설기만 하던 다양한 금융기법을 소개한 이 투자은행가들은 오랜 기간 섬에 갇혀 지내던 아이슬란드인들에게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다. 아이슬란드인들이 받아들인 메시지는 단순했다. 고기잡이처럼 힘들이지 않고도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 큰 깨달음 이후, 아이슬란드는 외국 돈을 끌어들여 쉽게 돈을 벌어보기로 결정했다. 해외자본의 투자 관련 규제를 풀고 금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투자하기는 쉽고 이자는 높으니 해외투자자에게는 이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이미 국제적으로 유동성이 넘쳐 갈 곳을 찾아헤매던 시기였다. 국제 자금이 아이슬란드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2003년 아이슬란드 3대 은행의 자산은 합쳐야 수십억달러(수조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3년 뒤 이 3대 은행의 자산을 합치니 1400억달러(약 154조원)가 됐다. 전체 자금의 3분의 2를 외국에서 가져왔다. 영국에서는 아이슬란드에 투자하는 ‘아이스 세이브’라는 금융상품이 대히트를 기록한다. 얼음나라에 돈이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어부에서 투자자로

돈이 풀리자 자산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은행들은 넘쳐나는 현금을 국민에게 뿌렸다. 고기잡이만 알던 이들이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아주 쉽게 대출을 해줬다. 2003년부터 4년 동안 아이슬란드 주식시장은 9배 성장했다. 수도 레이캬비크의 부동산 가격은 3배가 됐다. 아이슬란드 평균 가정의 자산도 3년 만에 3배가 됐다. 이 기간에 금융산업 활성화로 한 해 7%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어부들은 이제 투자자로 변신해갔다. 어부들이 통화 차익거래를 알게 되고 그걸로 많은 돈을 벌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고급 주택과 주식을 사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데 고기잡이에 나설 이유가 없었다. 아이슬란드에서 발달한 학문 중 하나는 어업경제학이었는데, 아이슬란드 젊은이들은 더 이상 어업경제학을 공부하려 하지 않았다. 모두 금융을 배우겠다고 나섰다. 공대에서도 수학과에서도 금융공학을 개설했다. 청년들은 어업보다는 옵션가격 결정 모델에 심취했다. 아이슬란드 3대 은행에 취업해서, 세계적 투자은행가로 성장하겠다는 꿈을 키운다.

호스쿨드손이 어부 일을 그만두고 금융업에 뛰어든 것은 그 무렵이었다. 위험관리와 국제금융 책을 들여다보며 투자자문을 시작했다. 그는 회고한다. “한 농부가 찾아와 20년이나 된 농기계를 담보로 잡아 6만5천유로를 빌려달라고 했어요. 직장 상사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냥 주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2배를 원하면 2배를 줘도 된다고요.” 그는 당시를 높은 보너스에 눈이 멀어 광기에 동참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그 아이슬란드가 2008년 갑자기 국가부도를 선언한다. 은행들이 무분별하게 빚을 늘려놓았다가 상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예금이 인출되고 지급불능 사태가 벌어진다.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파산 뒤 한 여론조사에서는 아이슬란드 국민의 3분의 1이 ‘이민을 원한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였다.

이때 아이슬란드는 다시 한번 정책 방향을 크게 전환한다. 다른 나라들이 금융위기 때 은행에 세금을 넣어 되살린 것과 반대로, 아이슬란드는 3대 은행을 모두 파산시킨다. 그리고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금융사들이 부실 책임을 지기는커녕 금융위기 기간에도 고액 연봉과 보너스를 챙긴 것과 반대로, 아이슬란드 은행 경영자들은 부실에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가게 된다. 또 아이슬란드는 이번엔 거꾸로 외국 돈을 쫓아내기로 했다. 아이슬란드인들의 은행 계좌는 보호해주지만, 외국인들은 돈을 인출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아버린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다시 투자받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아이슬란드 투자자가 많은 영국 정부는 강력하게 반발한다. 글로벌 금융 허브 국가로 돌아가기는 아예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정부는 몇 년 만에 다시 한번 유턴을 단행했다. 금융이 아니라 어업으로 유턴을 한 것이다.

냄비와 솥으로 막은 채무 상환

이 시기 아이슬란드 정부로부터 상징적 정책이 하나 더 나온다. 위기 직후에 모든 고기잡이 장소를 개방하고 시민 누구나 하루 650kg까지 물고기를 잡고 팔 수 있게 규제를 푼 것이다. 돈에 대한 규제는 묶고 고기잡이에 대한 규제는 푼 셈이다. 몇 년 전 금융 규제를 풀었던 것과 정반대 방향의 정책이다.

다시 한번 진행한 유턴의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아이슬란드 사회는 다시 변화한다. 자산 가치는 추락하고 금융산업은 쪼그라들었다. 대신 시민들은 너도나도 주중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물고기를 잡으러 몰려나온다. 몇 년 동안 추락하던 어업은 다시 아이슬란드의 주력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어업이 아이슬란드 수출의 42%를 다시 차지하게 된다. 이 시기에 호스쿨드손도 투자은행을 떠나 다시 어부의 자리로 돌아갔다.

사실 아이슬란드인들의 삶의 변화, 호스쿨드손의 삶의 변화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2009년 국가채무 35억유로를 영국과 네덜란드에 15년 동안 5.5%의 금리로 갚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 1인당 매달 100유로씩이나 되는 액수다. 위기를 맞은 은행들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다른 나라 정부들이 대부분 채택한 계획이다.

그 계획을 무산시키고 지금의 길을 가게 만든 것은 아이슬란드인들이다. 세금으로 국가빚을 갚는 것을 반대한 아이슬란드인들은 금융위기를 초래한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2009년 초 수도 레이캬비크에서는 연일 최대 규모의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가 냄비와 솥을 들고 두드리며 시위를 벌여 ‘프라이팬 혁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결국 당시 게이르 하르데 총리는 사퇴했다. 정부는 시위대의 요구대로 국민투표를 통해 채무 상환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2010년 3월6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93%의 압도적인 다수가 채무 상환안을 거부했다.

한때 규제를 풀고 어부의 길을 버리고 일확천금의 꿈을 꾸어보겠다는 선택은 아이슬란드인들이 했던 것이다. 결국 그 꿈이 허황된 것이라 판단하고 어부의 길로 되돌아온 것도 그들이 했던 선택이다. 그 선택 과정에서 정치가 있었고 선거가 있었고 시위가 있었고 국민투표도 있었다. 그 선택을 뒷받침하는 정책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정책과 사회시스템이 가동됐다.

그 결과 그들의 경제는 완만하지만 회복 중이다. 일확천금의 투자 비즈니스는 사라졌지만 어업과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과 건강한 민주주의가 자라났다. 젊은 층은 자라나 H&M 같은 브랜드 쇼핑을 덜 하게 됐다. 대신 뜨개질 붐이 뜨겁게 일어났다. 뜨개질 산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풍력·수력·지력 같은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조차 아이슬란드 경제가 건전하게 회복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모든 것은 ‘호스쿨드손’들이 선택한 것이다. 그들은 금융전문가의 꿈을 꾸는 대신 어부가 되는 길을 다시 선택했고, 그 길을 가는 데 맞는 정책과 사회 패러다임을 선택했다. 그 과실을 얻으며 책임도 지는 중이다.

우리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경제는 빠르게 본궤도에 올랐다. 다만 금융 방식이 아니라 고기잡이의 방식으로. 쉽게 돈 버는 길을 포기한 대신, 땀 흘려 일한 만큼 보상받는 삶을 살게 됐다. 인생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정책과 사회 패러다임도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슬란드인들이 어떤 사회에 살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선택을 하는 순간 사회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삶의 양상이 뒤바뀌었다.

한국 사회는 점점 더 굳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게 주어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헬조선’과 ‘흙수저’론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유행어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늘 사람들에게는 선택권이 있고 변화할 수도 있다. 이를 깨닫는 데서 희망은 시작된다. 아이슬란드가 아름다운 것은 오로라 때문만은 아니다.

[ 한겨레21 / 2016.02.05 /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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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직업이 좋은지 판단할 때 임금이나 정규직 여부보다 적정 노동시간과 삶의 질 등 노동조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희망제작소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네이버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서 설문조사한 결과 설문참여자 1만5천399명 중 절반에 가까운 48%(7천320명)가 좋은 일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근로조건’을 꼽았다고 17일 밝혔다.

정규직 여부에 해당하는 고용안정이 중요하다는 응답은 16%, 직무·직업 특성은 13%였으며, 임금은 12%에 불과했다.

지금 하는 일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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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6/02/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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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좋은 일’이 많아지기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과 차별금지 등을 위한 획기적인 개선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개별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명세서’ 교부를 의무화하고 공정노동 인증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희망제작소는 24일 ‘좋은 일’의 확산을 위해 필요한 정책 및 법안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김혜진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이 참여했다.

전문가들은 좋은 일을 확산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 방안 등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규식 선임연구위원은 이를 위해 연장근로수당은 월 급여에 합산해 지급하는 ‘포괄임금제’를 규제해야 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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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6/02/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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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앞에는 맛있는 단골 빵집이 있다. 그 집이 어느 날 문을 닫아걸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대기업 브랜드 빵집들 사이에서 자기만의 간판으로 잘도 버티던 집이었다. 친절한 주인아저씨 표정이 어른거렸다.

다행히 눈 밝은 우리 아이가 기쁜 소식을 알려줬다. 실은 새로운 종류의 빵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장비를 갖추느라 잠시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다. 곧 다시 문을 연다고 했다. 돌아가 자세히 보니 공사중인 빵집 유리창에는 몇 주 뒤 다시 문을 연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몇 주 뒤 돌아온 빵집의 인테리어는 훨씬 더 세련되고 멋스러워졌다. 건강에 좋다는 발효빵도 들여왔고,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모카빵도 제자리를 찾았다. 이런 정도라면 서울의 가장 부자 동네에 가도 어울리겠다는 탄성이 나왔다.

눈을 돌려 보니 옆 동네에도 고급 빵집들이 생겼다. 팥과 버터를 넣어 새로운 빵을 개발한 빵집도 있었고, 바게트가 맛있다는 빵집도 자리를 잡았다. 생활반경 안에 고급스런 동네 빵집이 세 개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훌륭한 동네에 산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몇 년 사이 생긴 변화다.

그런데 무엇이 이들을 고급스럽게 만들었을까? 투자다. 무엇이 동네 빵집 주인들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게 만들었을까? 물론 돈과 시간이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와 기술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기회와 비전이다.

2013년 2월 동반성장위원회는 동네 빵집 반경 500m 안에는 대기업 빵집이 들어서지 못하게 하고 매장 수 증가도 전년 대비 2% 이내로 제한하도록 합의했다. 그 뒤 동네 빵집 수는 부쩍 늘었다. 기존에 있던 빵집에도 내 단골집에서처럼 투자가 일어났다. 대기업 브랜드 빵집에 일방적으로 밀리던 동네 빵집들에도 기회가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빵집 주인들이 투자에 나섰으리라. 빵을 잘 만들기만 하면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비전이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중앙에서 만든 냉동 생지를 그대로 굽는 대기업 브랜드 빵집보다 더 나은 빵을 만들기 위해 더 투자하고 더 많이 노력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동네에는 더 다양한 빵이 등장했다. 혜택은 나 같은 소비자가 보게 됐다.

그런데 올해 동반성장위원회는 동네 빵집 보호 규제를 일부 완화했다. 일부 새도시에서지만 결과에 따라 전국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미용실의 경우 충북 오송 지역에서 대기업 등 법인도 진출할 수 있게 풀었다. 냉동식품을 만드는 씨제이(CJ)가 빵집을 차린 것처럼, 화장품을 만드는 엘지(LG)가 미용실을 연다고 한다. 여기가 무슨 배급사회인가. 이 동네에서나 저 동네에서나 우리는 씨제이가 기획한 빵을 다같이 먹고 엘지가 선택한 헤어스타일로 머리를 하고 다니게 되는 것일까. 이런 규제완화가 정말 투자와 혁신으로 이어진다고 믿는 것인가. 가격경쟁으로 다들 값싸게 비슷한 제품을 소비하게 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

때로는 기업가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영역 사이 울타리를 쳐야 할 때가 있다. 사자와 소를 한 우리에 넣어 두고 소에게 창의성과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초원을 살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제품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내 단골 빵집 주인은 진짜 기업가다. 8년 전에는 ‘내 빵을 직접 굽겠다’면서 프랜차이즈 빵집 간판을 내리고 자기만의 간판을 걸더니, 또 사고를 쳤다. 이렇게 사고 치는 이들이 늘어나야 동네가 다양해지고 풍요로워진다. 빵을 사 먹는 게 일상인 나와 빵을 굽는 게 생계인 빵집 주인 아저씨는 그럴 때 함께 이길 수 있다. 이게 대방동에 사나 대치동에 사나 똑같은 빵만 먹어야 하는 이 이상한 도시를 조금이라도 바꾸는 방법이다.

이 빵집이 어딘지는 밝힐 수 없다.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던킨도너츠는 아니다.

[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 / 한겨레 / 2016.0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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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6/03/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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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6/03/0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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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조원 규모의 국민연금기금이 우리 사회가 당면한 사회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이 떠오르고 있다. 4월로 다가온 총선을 앞두고 주요 정당들이 국민연금의 사회투자 공약을 내놓고 있다. 정책논쟁이 실종된 한국정치에서 그나마 토론해 볼 만한 중요한 주제가 떠올라 반갑다.

더불어민주당은 3월4일 국민연금기금 공공투자 공약을 발표했다. 공공임대주택 및 보육시설 확충에 국민연금기금을 매년 10조원씩 투자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해서 현재 전체 주택의 5.2%를 차지하는 장기공공임대주택 비중을 10년 뒤에는 13%까지 높이는 것이 목표다. 또 국공립 보육시설의 아동수용률을 현재 10.6%에서 3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국민의당은 2월11일 국민연금기금이 청년세대 공공주택에 투자하도록 하기 위한 공공주택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연금기금으로 ‘청년희망임대주택’을 조성해 만 35세 이하 청년과 신혼부부들이 입주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현재 국민연금 적립시스템이 청년세대에 불리하다는 진단에서 나온 처방이다.

여기에 대해 정부와 새누리당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총선 공약에 대해 ‘안정성과 수익성이 기금 운용 대원칙’이라면서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국민연금의 청년희망 임대주택 건설 등에는 수천억원 이상의 돈이 들어간다”면서 “국민연금을 주머니 돈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고 한다. 선거 정국이 되면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국민연금을 복지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국민연금이 공공투자에 나서는 일은 자연스럽다. 국민연금의 이해관계자는 전 국민이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사회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해결하는 데 국민연금기금을 투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특히 그 문제를 해결해서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거나 기금 자체의 지속에 도움이 된다면 더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이미 선진국 연기금들이 도입하고 있는 사회책임투자 원칙과도 맥이 닿는다.

현재 국민연금기금이 어떻게 투자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더 그렇다.

2015년 9월 현재 국민연금기금 505조원 가운데 22조원은 국내 대체투자, 즉 사모펀드나 부동산 등에 투자되어 있다. 이 투자의 목적은 수익성 극대화이기 때문에 투자대상 부동산이 사회문제 해결에 긍정적 효과를 내는지 부정적 효과를 내는지는 알 수 없다. 만일 이런 투자의 결과로 땅값이 올라 국민들의 주거비가 올라 있는 상태라면, 국민연금기금은 투자이익과 국민 주거비 상승을 맞바꾼 셈이 되고 만다. 더 큰 액수인 27조원은 해외 대체투자에 투입된 상태다. 해외 부동산에 주로 투자됐다.

93조원은 국내 주식에 투자되어 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대형주가 74조원이다. 대기업 자금조달과 주가 유지에 투입되어 있는 셈이다. 대기업 자금조달이 국민 전체에 대해 갖는 사회적 효과는 현재로서는 미미할 것이다. 게다가 대기업들의 경우 국민연금이 아니라도 충분히 다른 투자자를 찾을 수 있다. 국가 전체의 금융자원 배분이라는 관점에서도 그리 효율적이지 않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국민연금기금의 공공부문투자 방식은 주로 기금이 국채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공투자용 특수국채를 발행하면 기금이 이 채권을 사들여 투자하게 한다는 것이다. 직접 임대주택에 투자하는 방식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식이다. 다만 기존 국채나 지방채와 크게 다르지 않아 실제 투자가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단점도 있다.

종합적으로 보아 국민연금기금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투자자로 나선다면 환영할 일이다. 미래세대가 맞닥뜨린 주거와 보육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국민연금은 기금유지 자체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인구구조 변화로 미래세대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태다. 미래세대의 불안이 줄고 출산율이 높아져 인구구조가 안정화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따라서 국민연금기금은 사회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되, 미래세대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과 가족에 대한 투자가 우선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청년 주거비와 보육비를 낮추는 방향으로 투자하는 방향이 맞다. 젊은 세대가 살 수 있는 다양한 규모의 임대주택에 파격적으로 투자하고, 보육의 질을 높이고 육아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

[ 뉴스토마토 / 2016.03.07 /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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