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기획연재] 재미있게 일하면 안 되나요?

지역

[기획연재] 재미있게 일하면 안 되나요?

익명 (미확인) | 화, 2016/01/26- 11:15

희망제작소는 2016년 창립 10주년을 앞두고 시민 관점의 정책제안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이 시리즈는 ‘좋은 일’의 기준을 찾는 설문조사를 위한 것입니다. 설문결과는 전문가토론을 거쳐 ‘2016 정책제안 보고서’에 반영됩니다.

[기획연재] 좋은 일, 공정한 노동⑧ 재미있게 일하면 안 되나요?

GW8_1-400-266

“월요일에 원래대로 출근할 것입니다.”
최근 세계 최대 당첨금 액수로 유명한 미국의 ‘파워볼’ 복권 당첨자인 한 중년 부부가 NBC 방송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남편은 창고 관리자로, 아내는 병원 사무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들은 우리 돈으로 약 4,800억 원에 달하는 당첨금을 일시불로 받게 됐는데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102살의 나이에도 유치원‧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요리와 바느질을 가르치는 미국의 ‘할머니 선생님’ 이야기도 최근 화제가 됐다. 이 선생님은 “이 일을 가능한 한 오래 하고 싶다”, “가르치는 일이 행복하다”고 했다.
지금도 고된 일상을 주머니 속 복권 한 장에 대한 희망으로 이겨내고 있는, 어떻게든 빨리 일에서 놓여나야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하는 많은 직장인들은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이란, 금전적 여유가 충분하면 할 필요 없는 것일까? 두말 할 필요도 없이 그랬던 시절도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은 책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4세기에 “만족과 보수를 받는 일자리는 구조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한 말을 전한다. 이후 2,000년 이상 이런 생각이 유지되다가 18세기에 이르러 신흥 자본가 계급인 부르지아지에 의해 “보수를 받는 일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태도가 나타났다. 이는 “결혼 안에도 로맨스가 있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었다면서, 알랭 드 보통은 책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일을 중심에 둔 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일이 형벌이나 속죄 이상의 어떤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 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처음이다. (중략) 직업 선택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새로 사귀게 된 사람에게도 어디 출신이냐, 부모가 누구냐 묻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GW8_2-400-266

그래서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어떤 직업을 원하느냐?’와 같은 뜻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그런 질문을 수없이 들으며 자란다. 어려서는 무작정 야구선수, 요리사, 연예인 등 ‘재미있을 것 같은’ 직업을 댄다. 주변의 시선과 인정, 부모님의 기대 등을 의식하면서 의사, 변호사 등 보다 현실적인 직업을 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역시 ‘개인의 삶은 포기해도 돈은 많이 받는’ 식의 기준을 받아들였다는 뜻은 아니다. 기왕이면 사회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기능할 수 있는 일,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일,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직업 선택의 요건에 늘 ‘적성’이 들어가는 것도 그런 이유다. 적성이란, 내가 그 일에서 재미를 느낄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은 일’의 조건에서 ‘재미’는 어디쯤 위치할까? 고용이 안정되고, 임금과 근무조건이 괜찮고, 인정과 존중이 있는 일이라 해도 ‘재미’가 없으면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일까? 여기서의 ‘재미’란, 어떤 의미일까?

‘구성원 즐겁게 해주기’ 전담팀 둔 기업

요즘 부러움을 사는 근무환경으로 ‘꿈의 직장’이라 통하는 기업이 몇 군데 있다. 그 중에서 ‘재미있는 직장’으로 자주 거론되는 기업 ‘㈜우아한형제들’을 찾아가봤다.
‘배달의민족’ 어플리케이션 개발‧운영업체로 더 유명한 ‘우아한형제들’은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바로 앞, 놀이동산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건물에 위치해 있다. 최근 몇 년간 정규직만 300명에 달하는 규모로 성장하고, 신선식품을 배달하는 ‘배민프레시’, 맛집 메뉴를 배달하는 ‘배민라이더스’등 조직이 더 생기면서 지금은 본사의 옆 건물 일부도 사용하고 있었다.

이용화 피플팀장과 성호경 홍보팀장을 만나기 위해 지난 1월 13일 오전 찾아갔을 때, 이들은 옆 건물 지하의 식당으로 안내했다. 직원들에게 월요일 점심, 화~금요일 아침과 점심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인데, 요리를 책임지는 쉐프 2명도 피플팀 소속의 직원이라고 했다.

GW8_3-400-266

피플팀은 인사팀의 다른 이름인가 했는데, 전혀 다른 일을 하는 부서였다. 쉐프를 제외하면 총 5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구성원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 주된 업무다.
“저희는 직원이 아니라 구성원이라고 불러요. ‘관리’가 아니라 ‘관심’이라는 말을 쓰고요. 구성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기업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저희 팀의 역할입니다.”

대표적인 업무가 구성원의 생일을 챙기는 것이다. 300명의 생일을 일일이 챙기는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닐 텐데, 그 수준도 회의 때 이름 불러서 문화상품권 주는 그런 정도가 아니다.
이 팀장이 “제가 최근에 받았던 생일 케이크”라면서 보여준 휴대전화 속 사진을 보니, 케이크 위에 ‘용’과 ‘꽃’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팀장의 이름(용화)에 맞게 구성원들이 데코레이션을 해준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생일 맞은 사람의 특성에 맞게 케이크를 준비하고, 개성 있는 사진을 담은 포스터를 만들어 복도에 붙여 놓고 여러 사람에게 축하 메시지를 받아서 전달한다.

생일날에는 오후 4시에 퇴근하게 한다. 이것을 ‘지만가’라고 하는데 ‘지(자기)만 집에 가도 돼요’라는 뜻이란다. ‘지만가’는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 자녀, 양가 부모님 생일과 결혼기념일에도 적용된다. 각 부서에서 이를 제대로 지키도록 하는 것도 피플팀의 일이다. 부서장에게 일주일 전부터 날짜를 알리고, 적극적으로 업무를 조정해서 해당 일에 구성원을 일찍 퇴근시키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GW8_4-400-266

매년 9월에는 전 직원 야유회라고 할 수 있는 ‘플레이샵’ 행사가 크게 열린다. 2015년 9월에는 회사 전체를 피터팬 동화 속 네버랜드를 콘셉트로 꾸몄다. 이런 일은 피플팀원들끼리 할 수 없기 때문에 ‘자발적 노예’라는 이름의 봉사자를 모집한다. 자기 업무를 하면서 시간을 더 내서 참여하라는 것인데도 경쟁률이 상당하다. 지원 동기와 특기를 적어내도록 해서 이를 바탕으로 선발해야 할 정도다.

“내 아이디어가 채택될 때 제일 즐겁다”

이렇게 별도의 팀까지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구성원을 즐겁게 하는’ 이유에 대해, 이 팀장은 “경쟁이 치열한 업계다보니 발 빠르게 대응해야 될 상황도 자주 생기고, 야근도 자주 하게 되는데 구성원들끼리 친하고 즐겁지 않으면 어떻게 일하겠느냐”고 했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기업은 성과에 대한 압박, 내부 경쟁, ‘밀리면 끝장’이라는 공포 분위기를 활용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팀장은 “재치 있고 기발한 서비스, 광고, 이벤트 등을 계속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사업인데, 그런 문화가 내부에서부터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시키겠느냐는 생각도 깔려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 말은 즉, 사람들이 즐겁게 일하는 것이 이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뜻이다.

“소통이 중요하다는 건 어느 기업이나 알아요. 그렇지만 ‘소통하라’고 액자에 써서 온 사무실에 붙여 놓는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탑다운’(top-down) 방식은 한계가 있어요. 뭔가를 진짜로 바꾸려면 아래로부터 문화를 만들어내고 유지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죠.”

GW8_5-400-266

이 기업에서 중시하는 ‘재미’는 비단 이벤트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 자체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데 더 강조점이 있다. 사내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 11가지’라는 포스터를 보면 “개발자가 개발만 잘하고,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잘하면 회사는 망한다”, “잡담을 많이 나누는 것이 경쟁력이다”, “나는 일의 마지막이 아닌 중간에 있다” 등 문구들이 눈에 띈다. 자기 업무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업무 전체를 파악하고, 능동적으로 일하라는 메시지다.

성호경 홍보팀장은 “구성원 개개인이 일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런 생각은 대학생 인턴십 프로그램의 운영 방식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대학생 인턴은 ‘열정 노동’ 논란이 일면서 없어지거나 축소되는 추세지만, 우아한형제들은 지난 여름까지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IT 개발자 지망생을 위한 ‘배민 개발학당’, 마케팅과 디자인 분야 지망자를 위한 ‘우아한 캠프’ 등이 진행됐는데, 처음부터 채용을 조건으로 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참여자들의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고 한다.

성 팀장은 커피를 따라 줬던 종이컵을 들어 보이며, “여기 이 ‘나를 따르라’는 문구도 대학생 인턴 팀에서 디자인한 것”이라며 “현재 비즈니스에 사용되는 아이템”이라고 했다. 또 다른 팀은 대학들을 다니면서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계단을 활용한 옥외 광고 아이디어를 내서 실제로 실현되기도 했다.

GW8_6-400-266

“프로그램을 마칠 때 들어보면 ‘제일 즐거웠던 순간은 내가 낸 아이디어가 채택됐을 때’라고들 합니다. 조사하느라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고, 야근도 하면서 고생했지만 그만큼 재미있었다는 거지요. 그런 면에서 이 프로그램은 기업에 도움이 됐을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에게도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

독특한 기업 문화가 알려지면서 견학을 오는 기업들도 많아졌다. 성 팀장은 “제가 알기로는 젊은 기업, 특히 IT업계 기업들 중에는 기업문화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곳들이 꽤 많다”면서 “세대가 바뀌어감에 따라서 새로운 문화가 많이 생겨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초점이 ‘구성원에 대한 관심’이어야 하고, 아래서부터 문화가 생겨나야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공포 줄여야 재미 찾을 수 있다

다음으로 만난 사람은 전자책 출판 협동조합 롤링다이스의 제현주 대표다. 최근 ‘내리막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일할 것인가’라는 부제를 가진 책인데 ‘재미’의 측면에 대해 조금 색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대학 졸업 후 글로벌 경영컨설팅 회사, 투자은행, 사모펀드 등을 거치며 누구 못지않게 치열한 시간을 보냈던 제 대표는 직장을 그만뒀을 때 “왜 그만뒀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 때마다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해 “재미없어서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독서 모임을 함께 하던 사람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었을 때도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라고 답했다.
“그래서 돈을 벌겠느냐”, “무책임한 소리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는데, 제 대표는 “재미를 ‘쾌락’의 개념으로 생각해서 나오는 반응들이 아닐까 하는데, 제가 생각하는 재미는 이렇다”면서 네 가지를 제시했다.

GW8_7-400-266

첫째는 활동 자체가 주는 재미다. 몇 시간이 잠깐처럼 느껴질 만큼 몰입해서 일할 때 느끼는 그런 재미를 말한다. 두 번째는 원하는 판을 짜서 일하는 재미다. 이것은 자기결정권의 문제라고 제 대표는 말한다.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을 책임질 마음으로 일하는 것”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재미다. 이것은 두 번째 재미와 어느 정도 연결된다. “내가 원하는 판에서 일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재미는 때로 지루하고 괴로운 활동을 견뎌내고 남을 정도로 크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재미다. 혼자 하거나 잘 맞지 않는 사람과 할 때는 재미없는 일도 맘이 맞는 사람과 합을 맞추면 재미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설명을 들으니 비로소 일의 ‘재미’라는 게 특정 분야, 특정 직업, 특수한 환경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보다는 ‘어떻게’, ‘누구와 일하느냐’, 얼마만큼의 자율성과 결정권을 가지고 일하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다.

2012년 설립된 롤링다이스는 조합원 12명이 공동으로 책임지는 구조다. 처음에는 상근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각기 직업을 가진 12명이 일주일에 서너 시간씩 할애하면 한 명의 풀타임 직원이 하는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상근자 2명, 파트타임 직원 2명을 두고 있다.

제 대표는 “사실, 일은 언제든지 그만두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때 제일 재미있다”고 했다. 롤링다이스는 망하더라도 12명이 12분의 1 만큼 책임지면 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기에 큰 부담이 없었고, 그래서 재미있었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무리 재미있던 일도 꼭 해야 하는 일이 될 때 싫어지게 마련이죠.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말라는 말도 있고요. 우리 사회는 직장생활이든 사업이든 자기 인생을 온전히 걸어야 할 때가 많아요. 그럴 때 오는 부담은 ‘공포’에 가깝죠. 공포를 느끼면서 동시에 재미를 느끼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GW8_8-400-266

제 대표는 마치 시시포스 신화에 나오는 돌 굴리기처럼 고된 노동을 그만둘 수 없게 하는 이유 중 첫째가 ‘생계유지의 공포’라면서 이 공포를 줄일 수 있어야 ‘일의 재미’를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자칫 돌을 놓치더라도 잠깐 손을 뻗어서 잡아줄 수 있는 존재가 옆에 있다면 공포는 줄어들 거예요. 그 존재는 동료일 수도 있고, 맞벌이하는 배우자일 수도 있고, 공동체, 혹은 사회복지일 수도 있어요. 그렇게 ‘굶어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기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기겠죠. 그럴 때 일에서 재미를 느낄 수도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사회 구조와 의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일하는 사람 개개인이 자신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 당장 누릴 즐거움과 행복감이 있어야 사회 변화를 이끌 동력도 생기기 때문이다.

일이 즐거운 시대는 언제 올까? 혹시 이제 곧?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밖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강원도 대관령에 집에 있고 서울을 오가며 일한다는 제 대표는 “조금씩 할 때는 뿌듯하고 재미있지만 혼자서 해야 하고, 꼭 해야 할 때 고되고 공포스러워지는 대표적인 일이 눈 치우기”라면서 웃었다.

책 ‘가슴 뛰는 회사’를 펴낸 존 애이브램스는 자신이 공동 창립한 미국의 건축회사 ‘사우스 마운틴’에 대해 “이윤보다 우선시해야 할 다양한 가치들을 지향한다”고 했다. 그 중에는 ‘직원의 마음이 기쁜지, 생계는 잘 유지되는지, 서로 잘 배려하는지’ 등이 포함된다. 그밖에도 고객, 지역, 환경 등의 가치를 고려하는데, 그 이유는 ‘성공하는 회사가 되는 데 경쟁보다 협동이 유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004년 독일의 단체 ‘노동의 새로운 질을 위한 운동’은 “좋은 노동이란 무엇인가?”라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7,444명의 근로자에게 일의 어떤 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노동은 재미있어야 한다”(85%), “노동은 의미 있게 느껴져야 한다”(73%)는 대답이 고정적 소득(92%), 안정성(88%) 못지않게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책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에서 재인용).

GW8_9-400-266

지금까지 이 연재 시리즈를 통해서 고용안정, 노동시간, 임금, 노동조합, 일과 삶의 균형, 존중, 그리고 재미와 발전까지 ‘좋은 일’의 측면을 나눠서 생각해 봤다. 매 회차마다 수만 명이 글을 읽었고, 함께 진행한 ‘좋은 일’의 기준을 찾는 설문조사에는 1만 2,000여명이 참여했다. 그만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불만과 더 나은 일에 대한 열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또 아직 집계 중이지만, 기존 산업화 시대의 좋은 직장과는 다른 차원의 ‘좋은 일’에 대한 기대들이 상당수 눈에 띈다.

그러나 “직장이 놀이터냐”, “이것저것 따지는 사람을 누가 쓰겠느냐”, “놀 거 다 놀고 월급 받으려 하느냐” 등의 비판도 많았다. 이 글 밑에도 틀림없이 그런 댓글이 달릴 것이다. 고용주인 기업가들만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매일 하는 일을 ‘의미 없는 밥벌이’라고 한탄하면서도, 우리는 왜 ‘원래 그런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을까?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꿈’을 묻고 ‘적성을 찾으라’고 하면서 어른이 돼서는 왜 다 잊어버리는 걸까?

어쩌면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이래로 아직 충분히 시간이 흐르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연애결혼’이란 건 상상도 못 했던 시절은 지나갔는데, ‘일은 즐거울 수 있다’, ‘좋은 일을 요구하자’고 생각하는 시대는 언제쯤에나 올까? 혹시, 지금 거의 도래했는데 깨닫지 못 하는 것은 아닐까?

이로써 8회에 걸친 ‘좋은 일’ 탐방은 끝났다. 1월 31일로 설문조사는 마감되며, 결과는 2월 중에 발표된다. 아울러, 자신의 일 이야기를 들려줄 세대별, 직군별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층 인터뷰, 전문가들에게 구체적인 정책 방향과 대안을 묻는 토론회도 진행된다. 그 이후로도, ‘좋은 일’의 상(像)을 찾는 노력은 계속될 예정이다.

글 황세원(연구조정실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사진 이우기(사진작가)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채권단 산업은행은 경영정상화에 나서라! - 썬코어 노조 산업은행 앞 집회 개최 -   금속노련 썬코어노...
수, 2017/09/13- 20:23
217
0
  [활동가 편지] “노란봉투법 톡톡 싹 틔워요” - 10/19 “당신의 어깨를 톡톡, 노란봉투 톡톡쇼” 현장이야기 들어보세요 *사진제공 : 아름다운재단   안녕하세요, 손잡고입니다! 지난 19일 국회헌정기념관에서 노란봉투캠페인 […]
목, 2015/10/22- 19:36
216
0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빌며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정부는 진심 어린 사과,

책임규명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합니다

 

백남기 농민이 끝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작년 11월 농민대회에 참가했다가 집회현장에서 쓰러진 지 317일만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안타까운 일을 당한 유족들께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책임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가 모두 목격했으며 알고 있는 것처럼 경찰 방호벽 앞에 서 있던 그는 일흔에 가까운 노인이었고 맨손뿐이었습니다. 그가 공권력을 향해 외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쌀 한 가마(80kg) 21만 원 보장을 이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은 고인을 향해 정조준하여 살수차를 발사하였고, 그가 쓰러진 뒤에도 공격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백남기 농민이 고향인 전남 보성에서 멀리 서울까지 올라와 도로에서 외친 것은 대단한 특권과 이익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농민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달라는 절박한 호소였습니다. 난데없는 요구가 아니라 대통령 스스로 선거를 앞두고 국민에게 했던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농업은 농민들의 생업일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쌀값 보장 공약이 등장한 것도 그러한 사회적 공감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러나 쌀값 보장을 위한 노력은 진척되지 않았고 오히려 관세화를 통한 쌀 시장 개방과 쌀값 폭락이 이어졌습니다. 백남기 농민이 맨손으로 경찰 방호벽 앞에 나서서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입니다.

정부와 경찰은 백남기 농민이 사경을 생사를 넘나드는 동안, 유족들이 애끓는 심정으로 해를 넘기며 병상을 지켰지만 이제까지 진정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않았습니다. 집회 시위의 과정의 진압 장비 사용과 공권력 행사는 정해진 규정과 절차에 따라 행해져야 합니다. 이제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보면 경찰은 이를 준수하지 않았으며 이에 대한 책임도 묻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무고한 피해자가 또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절차와 규정을 무시한 채 공권력을 남용하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또한, 백남기 농민이 거리에 나서서 절박하게 외치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절멸의 위기로 내몰린 우리 농업의 현실이 있다는 점을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다시 한 번 정부가 유족을 향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책임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할 것을 요구합니다. 백남기 농민이 염원하던 대로 농민이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는 현실을 향해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나아가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2016년 9월 26일

한살림연합

 

월, 2016/09/26- 13:59
216
0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나 역시 김지영 씨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태어났다. 다른 게 있다면 그녀는 대도시, 나는 농어촌 소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내 고향에는 그 흔한 슈퍼 하나 없었다. 대신 이장님이 가정집 한 편에 생필품을 대량으로 사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되팔곤 했다. 버스는 하루에 5번 정해진 시각에만 오갔다. 혹여라도 늦잠자서 첫차를 놓치는 날에는 1시간을 걸어 등교해야 했다.

2018년 3월, 희망제작소는 평창동 시대를 마무리하고 성산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깁니다. 새 터전에서 희망제작소는 ‘모든 시민이 연구자인 시대’를 실현하려 합니다. 생활 현장을 실험실로 만들고, 그 현장에서 뿌리내리고 있는 시민이 연구자가 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수송동과 평창동에서 희망제작소는 여러 실험을 했고, 이를 통해 많은 시민을 만났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우리 사회의 어떤 요구에서 탄생했을까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시민과 함께 어떤 변화를 만들었을까요? 밀레니얼 세대(millenials)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글은 총 다섯 번에 걸쳐 연재됩니다.

* 밀레니얼세대(millenials) :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세대.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정보기술(IT)에 능통하며 대학 진학률이 높다는 특징을 가진다. 2007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해 고용 감소, 일자리 질 저하 등을 겪어 평균 소득이 낮으며 대학 학자금 부담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결혼을 미루고 내 집 마련에 적극적이지 않다. (출처 : 박문각 시사상식사전)

[기획연재] 밀레니얼세대 다이어리 : ① 내 고향은 ‘식민지’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나 역시 김지영 씨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태어났다. 다른 게 있다면 그녀는 대도시, 나는 농어촌 소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점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내 고향에는 그 흔한 슈퍼 하나 없었다. 대신 이장님이 가정집 한 편에 생필품을 대량으로 사두고 마을 사람들에게 되팔곤 했다. 버스는 하루에 5번 정해진 시각에만 오갔다. 혹여라도 늦잠자서 첫차를 놓치는 날에는 1시간을 걸어 등교해야 했다.
차를 타고 50여 분 달려야 당도할 수 있는 ‘시내’라고 불리는 곳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그곳에는 작은 규모나마 병원과 슈퍼, 음식점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따라 장이라도 보러 가는 날에는 신세계를 경험한 것처럼 길거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 나는 농어촌 소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불편은 당연한 것?

고등학교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 아버지가 암으로 쓰러지셨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씩 항암 치료를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 치료가 끝난 후에도 추적 관찰을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했다. 병원에 가는 날에 아버지는 다른 일정을 일절 잡지 않았다. 이동에만 왕복 다섯 시간, 대기와 진료시간까지 합치면 일곱 시간이 넘게 걸리다 보니 하루를 꼬박 반납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호자 역할로 아버지 따라 병원에 가는 날에는 다른 약속을 잡을 수 없었다. 평생을 시골에서만 자라 처음으로 서울 땅을 밟게 됐지만, 그곳이 어떤 세계인지 살필 겨를 없이 병원만 찍고 집에 돌아가기 바빴다. 우리 부녀의 하루는 돌아볼 여유 없이 그 어느 때보다 잽싸게 지나갔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대도시로 ‘유학’을 가게 됐다. 고향에는 4년제는 물론 2, 3년제 대학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나 자취라는 것을 하게 됐다.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보다 생활비가 배로 들었다.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리겠다는 생각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고달픈 생활이 이어졌지만 ‘유학’ 온 입장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 부모님 부담을 덜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내용과 무관합니다

아니, 당연하지 않았다

그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의심을 품게 된 것은 친구가 아프면서부터다.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병원에서 이상 징후 소견을 들은 친구는 그다음 날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했고 한 주 뒤부터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는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 후에는 영화 한 편을 보고 애인과 데이트도 했다. 밤늦은 시간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책을 읽는다고도 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하루를 꼬박 반납하면서 아버지와 서울 병원을 오갔을 때가 떠올랐다. 미묘한 이질감과 박탈감이 몰려왔다. 돌이켜보니 병원뿐만이 아니었다. 수능시험을 본 후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겠다고 서울에 갔던 때를 떠올렸다. 공연 관람비는 2만 원이었지만 왕복 교통비는 4만 원에 달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 하지만 서울에서는 왕복 2천 원이면 공연장과 집을 오갈 수 있다 했다. 내 고향에는 대학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서울에는 4년제만 해도 60여 개에 달한다.
아!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그렇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들은 당연한 게 아니었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던 것들은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교육, 의료, 문화, 일자리 등 내 삶의 궤적과 직결된 모든 것이 대도시, 특히 서울에 집중돼 있었다. 그렇다보니 지역에서 나고 자란 내 생활은 철저히 대도시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지방은 식민지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 서울러(서울사람)과 지방러(지방사람)의 차이 / 트위터 갈무리

▲ 서울러(서울사람)과 지방러(지방사람)의 차이 / 트위터 갈무리

식민지의 삶은 ‘여전히’ 유효

지금 내 일터는 서울에 있다. 생활터전 역시 서울이다. 부모님은 대도시에서 일하는 자식을 자랑스러워 하시지만, 화려한 싱글은 영화에서나 가능할 뿐 1인 가구의 삶이 녹록할 리 없다. 언제라도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가서도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아 망설이고 있다.
이제는 병원에 가기 위해 하루를 꼬박 쓰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왕복 3천 원의 교통비로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러 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이는 내가 과거에 경험했던 것들을 그대로 겪고 있을 것이다. 주체와 대상만 바뀔 뿐 현상은 그대로다. 근본적인 것이 바뀌지 않는 이상 식민지의 삶은 유효하다.
그간 지역 격차를 줄이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역대 정권의 빠지지 않는 공약과 과제였다. 하지만 성과는 늘 미약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지방분권을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헌법 개정안에 이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대부분의 친구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이 사안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몇 년이 되었고,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대 2라서 뜯어고쳐야 한다는 말은 나에게도 어려운 내용이다. 하지만 지방분권, 즉 분산이 필요하다는 것은 저런 설명 없이도 잘 알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겪어 온 지역 간 격차가 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지방분권과 자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서울’이 아니라 ‘지역’에 집중

민선 5기 이후,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분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지역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곳이 지방정부이다보니, 현안에 따라 기민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성과도 있었다. 포켓몬고 게임이 속초, 고성, 양양 등지에서만 가능하던 때에, 속초시는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했고 해외에 ‘속초’라는 지역을 널리 알렸다. 전주시는 ‘한옥마을’이라는 자산을 근처 남부시장과 엮어 전통시장 살리기에 성공했다. 모두 ‘서울’이 아니라 ‘지역’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당장 많은 것을 바꾸거나 격차를 한순간에 줄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과 중앙에 몰려있는 것들을 분산하려 계속 노력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그 출발이 지방분권이 되길 바란다. 이번에는 부디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기를. 내 고향이 더는 식민지라는 단어와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덧붙임.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나는 농어촌에서 나고 자란 것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곳에서 얻은 소중한 추억은 내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지역 간 격차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 한국에서 미국 외교관으로 활동한 그레고리 헨더슨은 “파리가 곧 프랑스이듯이, 서울이 곧 한국이다”라며 모든 것이 중앙에 집중된 한국의 현실을 꼬집기도 했지요.

희망제작소는 2006년 창립 이래, 지역 문제에 꾸준히 천착해 왔습니다. 지역은 우리 삶의 자양분이고 국가의 중심이며, 지역이 살아야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에 지역과 중앙의 균등한 발전을 도모하고 지방자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활동을 꾸준히 진행했습니다.

* 대표 활동
– 목민관클럽 : 지방자치 혁신을 고민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연구모임입니다. 정기포럼과 소식지 발간 등으로 서로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으며, 희망제작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기)
– 협치 아카데미 : 지역의 정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데 주민과 행정이 함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협치 아카데미와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이를 통해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했습니다. (사례 보기)
– 지방분권 매니페스토 운동 :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지방분권을 위한 7대 과제 실천서약(매니페스토) 운동을 펼쳤습니다. 약 120여 명의 여야 후보가 서명하였습니다. (자세히 보기)
– 주민참여예산교육 : 2011년 지방재정법 개정으로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의무화되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주민이 더욱 쉽게 제도를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매해 각 지역 특성에 맞춘 주민참여예산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례 보기)
– 지역리더교육 : 통·반장, 자치위원 등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민을 지원했습니다.
– 목민관학교 : 지역을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교육감과 교육의원 출마 희망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아카데미입니다. 2008년부터 총 7기에 걸쳐 프로그램을 운영하였고, 약 170여 명의 역량 있는 지역사회리더를 발굴, 양성하였습니다. (사례 보기)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설정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현실에 기초하여 창조되었음을 밝힙니다.

– 글 : 최은영 | 커뮤니케이션센터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

월, 2018/01/15- 13:13
216
0

강동당협 서울시당 대의원 후보 김운호


<약력>

2005년도 민주노동당 강동갑 장애인위원회 위원장 역임

2007년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대의원 역임

2009년도 사회복지 강동협의체 장애인분과 위원으로 활동

2004년도부터 2010년도까지 강동장애인 자립생활센터 소장으로 역임

현재 포이에마 자립센터 소장으로 활동 중

<출마의 변>


노동조합과 지역사회가 배출하고, 진보정당이 키운 노동당 서울시당 대의원선거에 출마한 김운호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노동당 서울시당 당원동지들께 다시 한번 머리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개인사정으로 인하여 당활동을 못하다가 이제부터라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활동하려 합니다


마침 당원분들께서 저를 좋게 봐 주시고 저에게 선거에 출마해 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능력을 아는 바 망설였지만 최선을 다하고자 그리고 추천해 주신 당원 여러분들게 보답하고자 출마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대의원이 돼어서 지역에서에 당원조직하는 것과 당원들의 의견들을 서울시 대의원대회에 정확히 전달하려 합니다 당원분들의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공약>

1. 지역 장애인 활동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2. 평등한 당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3.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등이 배제되지 않는 당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화, 2017/02/28- 20:20
21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