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지부 전봉호변호사의 아침편지
천년 고도에서 맞은 회원 천명 시대
- 박미혜(경남지부)
5월의 푸르름이 한창일 때에 맞추어 열리는 민변의 정기총회… 게다가 이번엔 경주에서 열려, 집에서 가깝고 가족 동반으로도 좋은 일정이라 용기를 내어 17개월 둘째도 데리고 나섰다. 멀미가 심하셔서 차를 잘 못타시는 시부모님도 해운대에서 기차를 타고 합류하신 덕에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내가 가장 많은 가족을 동반한 회원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들 때문에 일찌감치 숙소에 체크인을 한 후 한번 쓰윽 둘러보니 정말 오래된 숙박시설인 것을 금방 알겠다. 방문 열고 들어서서 식탁 의자에 앉자마자 등받이에서 우지직 소리가 나며 모서리가 툭 떨어진다. 그래도 예전에 참석했던 총회 장소들과 비교하면 숙소가 나날이 럭셔리해지는구나 라며 실실거렸다.
점심 후 대릉원과 천마총, 첨성대를 돌아보는 일정에 합류했다. 학교 다닐 때 왔던 곳들을 아이들과 함께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때마침 비가 시작되어 우산을 쓰고 해설가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데 좀….힘들다.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업이 길어지면 학생들의 영혼은 떠나는 법. 등에 업힌 아이가 보챈다는 핑계로 대열에서 살짝 빠져나와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과 인사하고 때로는 그들을 꼭 닮은 2세들과도 인사를 나누다 보니 정말 경주에 온 이유…. 총회를 할 시간이 다 되었다.
경남지부에서는 나와 김형일 변호사, 신입회원 김태형, 유태영 변호사가 참석했다. 조촐한 참석 인원이지만 신입 회원이 무려 두명이나(!) 되고, 김형일 변호사의 스티브 잡스 스타일 지부보고로 인해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라고 자평한다). 최근 민변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장기발전 전략에 대해서도 접근성이 떨어지는 탓에 잘 알지 못했는데, 이 날 총회를 통해 논의의 대략적인 틀은 알 수 있었다.
민변 소속 변호사님들과 간사님들을 1년에 한번 만나는 자리인 정기총회는 지부 회원인 나에게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보고 싶은 얼굴, 때로는 언론에서 소식을 듣던 얼굴들을 직접 만나 반가운 자리이고, 회원으로써 소속감을 확인하는 자리이다. 또한 자극을 받아가는 자리이다. 열심히 활동하는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를 돌아보게 되고 배워서 온다.
회원 천명의 시대를 천년 고도 경주에서 맞이한 이번 총회!
회원 수가 늘어나고 역사가 또 한해 더해진 만큼 사회적 역할, 책임감, 올바른 방향성에 대해서도 고민이 깊어지는 듯 했고 로스쿨 출신 변호사님들의 회원 가입이 늘고 또 그 분들이 열심히 활동하시면서 세대교체가 시작되는 느낌도 있었다. 패기 왕성한 청년 변호사님들을 보며 든든하다는 생각과 함께 선배들보다 더 많은 분야에서 더 잘했으면 하는 기대도 걸어보는 나를 보며, 나도 이제 좀 노쇠한(?) 꼰대(?)가 되었나라는 생각이 경주 밤바람과 함께 확 스쳤다.
“드디어 봄이다!”
2017.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와 ‘긴급조치변호단’이 함께한 공동워크샵
과거사청산위원회와 긴급조치변호단은 2017. 4. 1. 경상북도 경산시에 위치한 코발트광산과 대구광역시 팔공산 갓바위를 들르는 일정으로 워크샵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일정은 특별히 과거사청산위원회와 긴급조치변호단이 함께 기획하고 참여하였다는 데에서 더욱 의미가 컸습니다.
이번 워크샵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바로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사건”과 “대구 10월 항쟁”. 두 사건 모두 국가가 해방 이후 혼란기에 민간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던 비극적인 사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이와 같은 비극을 한으로, 운명으로 안고 살아가는 유가족들이 있는 사건들이었습니다.
버스는 오전 7시에 출발했습니다. 경상북도를 당일로 다녀와야 하는 일정인 만큼, 서둘러야겠지요? 이른 아침이었지만, 피곤함보다는 설렘이 앞섭니다. 배움이 있는 여행은 언제나 즐거우니까요!
김상숙 박사님의 ‘10월 항쟁’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버스는 경상북도 경산시 코발트 광산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도로변에서도 쉽게 보이는 광산. 버스에 내려서 5분도 채 안 걸었는데 기념비로 보이는 조각물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코발트 광산 학살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위령탑이었습니다. 코발트 광산 학살사건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경산, 청도, 대구, 영동 등지에서 끌려온 국민보도연맹원 및 요시찰 대상자들과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재소자 중 상당수가 경산․청도지역 경찰과 경북지구CIC 경산․청도 파견대, 국군 제22헌병대에 의해 1950년 7~8월경 경상북도 경산시 평산동에 위치한 코발트광산 등지에서 집단 사살된 사건입니다. 전체 희생자 수는 1,800명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희생자 수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위령탑 앞에서 서중희 위원장님이 제를 올리고, 추도사를 낭독하였습니다.
이어서 前 진실과화해위원회 유해발굴팀장이자 현재 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과에 계시는 노용석 교수님이 코발트 광산 학살사건에 대하여 실제 학살이 이루어진 경로, 유해 발굴과정 등을 실감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이후 코발트 광산 안으로 들어가서 실제 광산의 모습을 둘러보았습니다. 위원장님과 조영선변호사님, 그리고 코발트광산 유족회장님 뒤에 보이는 저 철문이 코발트 광산으로 들어가는 통로입니다.
내부 통로는 무고하게 학살당한 분들의 유해가 쌓여 있던 수직 갱도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수직 갱도에는 아직 미처 발굴하지 못한 유해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조속히 남은 유해들도 지상 밖으로 모시고, 진상규명을 통하여 그 원통함을 조금이나마 달래드리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과거사위&긴조변호단은 코발트 광산을 둘러본 후 팔공산 갓바위로 향했습니다.
갓바위로 향하는 회원님들의 모습이 즐겁기 그지없습니다.
갓바위 정상에서 단체샷!
하산하는 길에 함께 막걸리를 나누는 소소한 즐거움도 있었구요.
원래 워크샵 당일에 비가 예보되어 있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비는 다행히도 팔공산 갓바위에서 하산할 때가 되어서야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늘도 이번 워크샵을 배려해주었던 것이 아닐까요ㅎㅎ 하산한 후 기쁜 마음으로 함께 단체 사진 촬영!
산도 올랐으니 출출한 배도 달랠 겸, 뒷풀이를 안 하면 섭섭하겠지요? 저녁식사는 팔공산 근처에 위치한 “이조명가”에서 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사진만 봐도 군침이 돌지 않나요? 이조명가의 대표메뉴 ‘오리쟁반정식’과 함께, 막걸리, 소주, 맥주, 고량주 등의 술을 곁들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늘 있었던 과거사 워크샵 일정을 곱씹으며, 서로 소감도 공유하고요.
그런데 한가지 더, 우리가 저녁식사를 위해 자리 잡은 “이조명가”는 10월항쟁민간인희생자유족회 회장이신 채영희 선생님이 운영하고 계시는 식당입니다. 채영희 회장님의 부친께서는 1946년 10월 항쟁 당시 경찰의 무자비한 학살에 의하여 무고하게 희생당하셨습니다.
채영희 회장님은 10월 항쟁 유족들의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 현황을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간곡히 당부하셨습니다. 10월 항쟁을 잊지 말아줄 것을, 그리고 유가족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써 주기를..
채영희 회장님이 부친을 생각하며 불러주신 “여옥의 노래”의 한 소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10월 항쟁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전달해보고자 합니다.
「불러도 대답없는 님의 모습 찾아서 외로히 가는 길에 낙엽이 날립니다 들국화 송이송이 그리운 마음 사람은 말없구나 어디매 계시온지 거니는 발자욱 자욱마다 넘치는 이 마음 그리움을 내어이 전하리까」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채영희 회장님과 함께 단체샷.
너무나도 즐거운 워크샵이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먹먹함과 사명감을 안고 갈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며 더 좋은 미래를 꿈꾸는 변호사들의 모임!이상 민변과거사청산위원회, 긴급조치변호단의 공동 워크샵 후기였습니다.^^
[19기 자원활동가 인터뷰]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를 꿈꾸다 : 조현주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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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이 맑던 6월의 어느 날,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에서 조현주 변호사를 만났다. 변호사가 된 후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자의 곁에서 보낸 그는 만도지부 투쟁, 쌍용자동차 대한문분향소 투쟁, 콘티넨탈지회 노조 간 차별 소송 등 굵직한 노동 사건들을 맡아왔다.
최근 열린 민변 31차 정기총회에서 모범회원상을 수상한 그는 ‘세상에 이로운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진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를 꿈꾼다는 조현주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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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변호사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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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현주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조현주 변호사입니다. 2009년에 변호사가 된 후 2011년에 민주노총 법률원을 시작으로 금속노조 볍률원을 거쳐 작년 5월부터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Q. ‘조현주 변호사‘라고 하면 ’노동‘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같아요. 대학시절부터 노동 변호사를 꿈꾸신 건가요?
사실 대학교에 들어갈 땐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노동 분야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어요.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마냥 낭만적인 캠퍼스 라이프를 꿈꿨죠. 그러던 중 정말 우연한 계기로 학내문제 관련 집회에 참가하게 됐어요. 그런데 거기서 연세대학교 학생 한 명이 죽는 일이 발생한 거예요. 그 학생은 풍물패 단원이었는데, 집회가 진행되기 전 준비 작업을 했을 뿐인데 토끼몰이식의 시위 진압으로 인해 맨 앞에서 맞아 죽은 거죠. 그 학생이 위협적인 무기를 가지고 폭력적인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걸 보면서 왜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회의 자유가 지켜지지 않는 건지 그 이유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한 후 자연스럽게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웠고,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이후 졸업할 시기가 되어 ‘내가 뭘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고, 제 대답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하다’는 거였어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 즉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 길로 시험 준비를 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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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원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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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럼 사법고시 합격 후 처음부터 법률원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으셨던 건가요?
네. 연수원 수료할 때 법률원에 지원을 했는데 그 때는 지원이 늦기도 했고 채용이 안 되었어요. 그래서 우선 일반 법률사무소에서 2년 정도 근무를 한 후에 다시 지원을 해서 운 좋게 민주노총법률원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Q. 현재는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에서 일하신다고 하셨는데 어떤 업무를 하고 계신지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려요.
우선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은 공공운수노조의 부설기관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노조 관련한 일을 하는데요, 구체적으로는 상담 및 자문, 의견서 작성, 법률 교육, 다른 단체와의 연대활동, 기본적인 송무 등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사무실에는 변호사 9분, 노무사님 4분, 차장님 3분이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업무의 강도는 어떤지 궁금해요.
법률원에 들어오기 전에 바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저도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 걱정을 했어요. 지금은 법률원 규모도 어느 정도 커지고 인원 충당이 많이 돼서 예전 선배들만큼 고생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기본적인 업무는 상당한 편에 속해요.
특히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시기에는 처리해야 할 일이 상당히 많아지죠. 또 단순히 투쟁은 끝나더라도 법률적인 싸움은 지속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기본적으로 업무량은 있는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주말에는 최대한 쉬려고 노력하는데, 이때는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거나 미술관도 가거나 다른 취미생활을 해요.
Q.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높은 업무강도를 버티기 위한 나름의 비법이라도 있나요?
정말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 스스로도 아직 비법을 찾지 못했거든요.(웃음)
다만, 예전에는 최대한 일을 빨리 끝내려고 식사도 자리에서 대충 해치웠는데, 이제는 점심시간에 바깥공기도 쐬고 많이 걸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있는 것만큼 척추에 무리가 가는 것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식사시간에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산책도하고, 혈액을 순환시켜주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에요.
Q. 그동안 다양한 법률원에서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제가 금속노조법률원에 있었던 2016년 초에 노조가 처음으로 압수수색을 당한 사건이 있었어요. 그 때 금속노조 사무처 분이 “그래도 변호사님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어요.”라고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그때 내가 도움이 됐구나, 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문자를 보내주셨던 게 아직까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이 외에도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여럿 있어요. 일을 하다가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하는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떠올리는 분들, 노조들이 있어요. 절 잊지 않으시고 “보고 싶다”고 연락 주시는 분, “고맙다. 잘했다”고 말해주셨던 분들이요.
한번은 제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수련회에 참석해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는데, 최근에 지회장님이 농담으로 ‘변호사님이 불러준 그 노래 때문에 우리가 투쟁할 수 있었어요’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런 가벼운 농담일지라도 기억에 남죠. 이런 순간순간들이 모여서 저한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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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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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직장갑질 119에서 활동을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직장갑질 119>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네이버 밴드, 메일 등을 통해서 노동자분들이 직장에서 받으신 부당한 대우에 대해 말해주시면 스태프들이 법률 자문을 해주는 시스템인데요, 저도 스태프로 직장 내 부당한 대우나 차별적 관행에 대한 법률 자문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Q. 직장갑질 119에 자문을 의뢰하는 분들은 대부분 어떤 피해를 입으신 분들인가요?
피해자 분들이 얘기해주시는 사건들은 대부분 근로기준법 위반과 관련된 것들이에요. 임금체불이나 근로시간 산정, 연차 수당과 관련된 문제들이 상당히 많고요, 이 외에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비율도 꽤 높은 편입니다. 이런 고민들을 들으면 저는 항상 노조에 가입하거나, 노조를 직접 만드시라고 제안을 하는 편이에요. 문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혼자보단 여럿이 힘을 합쳐 해결하는 게 훨씬 수월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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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직장갑질 119에서 진행되는 상담과 법률원 측에서 진행하는 노동 상담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민주노총 법률원에서도 유선 상으로 노동 상담을 하긴 해요. 다만, 이쪽으로 전화를 주시는 분들은 대부분 노동조합에 대해 거부감이 없으신 분들이고, 상담이 진행되기 전에 저희가 거의 이름, 전화번호 등을 확인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누군지 저희가 좀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죠.
이에 반해 직장갑질 119를 통해 문의해주시는 분들은 모두 익명이기 때문에 저희가 정확한 신원을 파악할 수 없어요. 익명이기 때문에 상담을 신청해주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덜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고, 접근성이 좋아지는 측면은 있어요. 한편으로 저희가 상담을 해드려도 실질적으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활동이 정말 중요한데 이분들이 상담 후에 노동조합 활동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실지는 미지수죠. 이 부분은 민주노총 법률원 유선 상담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갑질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법률상담을 넘어서 ‘직접 힘을 모아 부당한 것을 바꾸자’는 것이 필요한데 그런 측면에서 상담을 넘어선 집단적 변화를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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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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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변호사로서 노동 현장에 함께 하시면서 노동권 보장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법적 장치, 사법 환경이 있나요?
문제들이 한 둘이 아니라 단정하기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를 규정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특히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는 분들이 있는데, 이 분들은 지금 법원의 해석으로 ‘노동자’의 범위에 포섭되고 있거든요. 이분들이 더 이상 법원의 해석을 기다리지 않고 권리를 보장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 부분은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사항이기도 하고요.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도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권고가 내려왔는데 이행기간이 내년 상반기로 알고 있어요.
이 외에도 지금 창구단일화 구조는 사용자의 입맛에 맞춰 교섭을 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변경되어야 하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법정형이 낮은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또 지금 현행법에서는 강요된 근로를 금지하기는 하는데 ‘감금’과 같은 수단을 요구해요. 즉, 아무리 강요된 근로가 발생했더라도 그것이 ‘감금’과 같은 수단에 의한 것이 아니면 형사적 처벌을 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요새 누가 감금해놓고 강제로 일을 시키나요?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인거죠. 뿐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을 때 그게 실질적으로는 폭행을 하거나 협박에 이르는 정도는 아니어서 법적 처벌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지속되는 경우가 있고요. 이렇게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시급히 개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2013년 변호사님께서 쓰신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라는 칼럼을 읽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가 되기 위한 선결과제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노동자의 개념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우리사회는 ‘노동자’라고 하면 아직까지도 ’막노동‘의 이미지만 떠올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들은 노동자야’, ‘나는 커서 노동자가 되지 않을 거야’, ‘나는 노사관계와 관련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은 것 같아요. 왜 이런 편견들이 생겨나는 걸까요? 우리가 학교에서 이 부분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죠. 우리 모두가 노동자가 될 수 있고, 노동자가 되었을 때 어떠한 권리들을 요구할 수 있는 지에 대해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교육이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해요.
또,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막연하게 ‘투쟁을 하는 단체’, ‘공격적인 단체’라고 편견을 갖는 부분도 개선되어야겠죠. 노동조합을 활동할 권리가 헌법에 명시된 이유는 이 활동을 통해 우리가 기본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만큼 노동조합이 중요한 데 그 중요성이 과소평가되는 것 같아요. 이 외에도, 노동조합의 투쟁방식도 천차만별일 수 있는 데 노조에 대해 공격적 이미지만 갖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런 편견들이 해소될 때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는 사회가 만들어 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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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한 인터뷰에서 “정의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변호사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추상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윤보다 사람의 가치가 소중한 것’이구요, 구체적으로는 ‘구성원들의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음식과 식당이 차고 넘치는 데 굶어 죽는 분들이 있고, 길거리에 집이 이렇게나 많은데 내 한 몸 뉘일 곳이 없는 분들이 있다는 게 이해가 안가요. 아픈데 돈이 없어서 죽어야 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노후를 위해서 일평생을 바치는 그것도 이해가 안 가요.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해결되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 실질적인 평등이 보장되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겠죠.


Q.마지막으로, 인간 조현주의 앞으로의 계획, 꿈은 무엇인가요?
법률원에 처음 들어올 때 술자리에서 꿈 얘기를 했는데, 나중에 묘비에 ‘인권변호사‘ 라는 글자가 새겨질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살다 보면 현실적 여건 때문에 지금 이야기 하는 꿈이 바뀔 수는 있겠죠.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인권변호사’로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연구, 조사, 변론, 여론형성 및 연대활동 등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1988년에 결성된 단체입니다.
우리 민변에서는 아래와 같이 출산육아휴직 대체근무를 할 상근 활동가를 채용하오니 많은 관심과 지원 요청 드립니다.
1. 채용분야 및 인원 : 출판홍보팀, 민생경제위원회, TF 2개 외 사무처 업무 담당 간사 1명/ 출산육아휴직 대체인력 – 근무기간 2016/06/20 ∼ 2017/09/17(15개월)
2. 채용일정 : 서류전형 -> 면접
- 서류접수 마감 : 2016. 5. 31.(화) 24시
- 서류전형 합격자 통지 : 2016. 6. 3.(금) (개별통지)
- 면접 예정일 : 구체적 시간은 서류전형 합격자에게 추후통보
- 최종 합격자 통지: 개별통지
3. 업무내용 및 우대조건
- 포토샵 활용, 일러스트레이터, 영상제작 가능자
- 뉴스레터 발행, 홈페이지 관리(워드프레스)
4. 지원자격
학력·연령·성별 제한 없음
합격자 발표 후 바로 근무가능한 자
5. 제출서류 및 접수방법
① 이력서(연락처 기재 필)
② 자기소개서(형식자유)
③ 한국 사회의 인권상황에 대한 의견(A4 2장 이내)
- 제출서류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 접수방법 : 이메일 접수, [email protected]
- 지원서를 보내실 때는 메일 제목에 ‘지원자 이름과 지원 분야(000-출판홍보팀 담당 간사)를 반드시 명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6. 근로조건 및 복지사항
- 4대 보험 및 퇴직금, 구체적인 급여는 사무처 내규에 의함.
- 경력자는 급여 조정 가능
- 근무시작일 : 합격 통지일로부터 1-2주 이내
- 채용 후 2개월간 수습기간 적용
7. 문의 : 민변 김현근 간사 (T. 02-522-7284 / [email protected])
- 문의는 가급적 이메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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